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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책의 저자 무라카미 류에 대해서 아는게 거의 없다. 그가 잘나가는 소설가라는 사실외에는.... 책읽기에 있어 일종의 편식같은 거일수 있지만, 난 소설류를 잘 읽지 않는다. 거기에 굳히 소설을 볼기회가 있어도 국내작가의 글에 우선 손이 간다. 일단 한번의 번역을 거쳐 작가의 감성이 그대로 전달되지 않았던, 어릴적 번역서 읽기에 호되게 당한 이후로는 번역물에는 더더욱 손이 가지 않는터라, 저자에 대한 지식은 별무하다. 그저 가끔 만나는 지인이 무라카미 류의 거의 광신도적인 팬이 있어 그를 통해 들은 약간은 난해함을 즐기는 작가라는 정도가 아는 전부이다. 지인은 무라카리 류의 글에 대한 주옥같은 찬사와 가끔 외우는 문장을 통해 지속적으로 나의 호기심에 불을 지폈고, 그덕인지 한번쯤은 작가의 글을 접해봐야겠다고 생각하던 터에 출판사의 배려로 이책을 접하게 되었다.
그런데 소설가라고 알고있는 저자가 쓴 책이 비즈니스 잠언집이란다. 이건 뭥미??? 소설가가 비즈니스 잠언집이라니...소설가는 프리랜서 아닌가?? 하는 생각에 저자의 이력을 확인해 보았다. 무라카미 류는 일본에서 영화감독, TV토크쇼의 진행자, 쿠바 음악 제작자, 사진작가등 전방위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만능 엔터네인먼트였다. 음~~ 그런다면 일단 비즈니스 잠언집을 쓸 조건은 주어진다고 봐야겠다.
이책에 실린 글은 작가가 비즈니스 맨을 위한 월간지 "괴테"에 연재한 글을 모아 책으로 내었단다. 소설가로만 알고있던 작가가 다방면에 걸친 다양한 재능을 어떻게 이야기로 풀어낼지가 궁금해졌다. 그에 대한 이런 기대를 가지고 첫장을 넘긴다.
처음 만나게 되는 꼭지가 책의 제목과 같은 "무취미의 권유" 이다. "취미가 나쁜건 아니다. 하지만 취미란 기본적으로 노인의것이다. 너무나 좋아해서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몰두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면, 젊은이들은 그것을 취미로 하는 아마추어가 아니라 일로 삼는 프로가 되는 게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라고 애기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취미의 개념을 무참히 파괴한다. 그럼 우리가 이제까지 자기소개를 할때나 이력서에 숱하게 적었던 취미는???, 그래서 위키피티아에서 정의한 취미를 찾아보았다. 위키피티아는 "취미(趣味)는 인간이 금전적 목적이 아닌 기쁨을 얻는 활동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저자의 취미에 대한 주장과 우리가 알고있던 내용은 언뜻보기엔 상극이다. 하지만 저자의 주장은 취미는 가슴이 무너지는 실망도, 환희나 기쁨도, 성취감도 주지않으니, 그저 그런 수준의 취미에 열정을 투자하기 보다는, 가슴이 뛰는 성취감과 때로는 실의와 절망을 줄수 있는 일에 매진하라는 거다. 아니 일이 아니라 취미라도 제대로 할려면 프로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 열정적으로 하라는 거다. 프로가 되는 순간, 취미는 취미가 아니라 직업이 될수 있기 때문에... 생각해 보니 맞다... 맞는 말이다. 이렇듯 무라카미 류의 글은 직설적이다. 에두르는 법이 없다.그러니 묘한 거부감도 불러일으킨다. 이런 글쓰기는 저자의 특징이고, 저자만의 색깔인듯 하다. 이러한 글쓰기의 자신감은 두가지로 해석될수 있다. 하나는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고집이요. 다른 하나는 그만한 경험에서 나오는 자신감이다..무라카리 류는 후자인듯 하다.
이렇듯 무라카미 류는 "무취미의 권유" 를 통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상식을 깨는 글쓰기로 우리의 사고를 휘젖는다. 그리고 그속에서 참된 것이 무엇인지 우리의 머리를 깨고, 우리의 상식을 짓밝아 새로운 틀을 갖게한다. 마치 흙탕물을 휘젖고 나면, 흙은 밑에 가라앉고, 맑은 물은 위에 따로 남는 것처럼...
이런 상식의 파괴는 계속 이어진다. "괴테"라는 잡지에 몇년간 연재된 글 38개의 꼭지를 모은이책은 각 꼭지가 원고지 10매내외의 단문이다. 꼭지 하나하나가 우리가 비즈니스 사회에서 고민하는 협상,어학, 인맥, 접대, 기획, 글쓰기, 동기부여, 전직, 스케줄 관리등 다방면에 걸쳐 명쾌하고 단호하게 풀어낸다. 책의 사이즈도 조그맣고, 꼭지마다 무척 짧은 글이지만, 그안엔 쉽게 읽어낼수 없는 작가만의 가르침이 상존하다. 그래서 버겁다. 아니 버겁다기 보다는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꼭지 하나를 읽는데 채 5분도 되지않는 다. 하지만 하나의 단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십배의 시간을 투자하여 사색으로 버무려야만이 상식의 편견을 깨는 그만의 상식에 동조가 된다. 마치 흙탕물이 가라앉기를 기다리기 위해선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한것처럼 말이다. 때로는 고개를 끄덕이게 하고, 때로는 작가의 단독성에 동조하기 어려운 부분도 마주치지만, 그렇다고 그의 주장이 이질적이지는 않다. 우리가 너무 상식의 편견에 오래 물들어 있는 탓이리라.
이책의 띠지에 " 20,30대에겐 따끔한 조언!, 40,50대에겐 마음의 위안!"을 준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직장생활 25년차의 50대인 나에게는 마음의 위안보다는 따끔한 충고로 더 다가왔다. 그동안 직책이 주는 권력(?)으로 인해 직원들에게 했던 상담이나 권유, 질책이 많이도 잘못되었음을 느끼게 한것을 보니 작가의 글쓰기의 내공이 상당 하다. 40이 넘은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것은 돌부처를 돌아앉게 만드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하지 않던가!! ㅠ.ㅠ
읽고 그냥 덮을수 있는 책이 아니라. 책상 한모서리에 올려놓고 두고두고 곱싶어 봐야 할듯 하다. 중요한 결정이나, 직원들과의 상담시, 다시 한번 펼쳐보며, 잠언집으로 활용 할듯 하다. 잊을만하면 다시 펴보는 채근담(菜根譚)처럼...그러다 보면 몇년남은 직장생활에 잘못된 우는 조금은 줄일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책을 보는동안 저자인 무라까미 류가 기술한 내용중 최근에 읽은 책과의 유사성을 발견한 것은 또다른 재미였다. 역시 진리는 하나인듯 하다...
"아울러 실제 교섭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상대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는 것이다. (중략) 이러한 역지사지(易地思之)는 교섭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필수불가결한데도 문화나 가치관이 다른 상대와 교섭을 해 본 역사가 일천한 사회에서는 소극적인 저자세라고 평가받는 것이다. 상대의 처지에서 생각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상대에 관한 정보를 상세하게 꿰고 있어야 한다. 상대의 처지에서 볼 수 있고, 그렇게 양쪽 모두의 조건을 파악할 수 있을 때에야 교섭 전략이 마련되고 보다 유리한 타협점을 이끌어 내는 것이 가능하다. 철저하게 상대의 관점에 서 보는 것, 바로 여기서 교섭이 시작된다." - 무라카미 류의 무취미의 권유 중에서 -
"먼저 상대방의 머릿속 그림을 그려보아라. 그리고 질문을 통해 머릿속 그림을 확인하라. 그 다음 한 걸음씩 서서히 목표를 향해 나아가라. 상대방의 머릿속 그림은 출발점이고, 협상의 목표는 종착점이며, 점진적 단계는 거기까지 가는 중간 과정이다. 이러한 내용을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반드시 실행에 옮겨야 한다."
- 스튜어트 다이아몬드의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을것인가 에서 -
두 저자가 시공을 초월하여 글을 썼지만 그 주장은 일치한다.또한 "결국 아이디어란 언제나 직감적으로 떠오르는데, 직감이란 '오랜 시간 집중하면서 머리를 쥐어짜는 것' 그러니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는 몰두의 연장선 위에서만 작동한다"는 작가의 글은 황농문 교수가 쓴 "몰입"이라는 책과도 상통하는 의견이니, 그의 지혜와 통찰력이 다방면에 걸쳐있음을, 그 지혜와 통찰력이 석학들과 연계되어 있음을 발견하는 것도 이책을 읽는 색다른 즐거움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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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정말 많은 취미를 시작했다. 돈도 좀 생겼겠다, 인생의 슬럼프가 찾아와서 그런가 여러가지를 의욕적으로 한꺼번에 시작했지만. 근본적인 의문은 떨쳐낼수 없었다. "이 판타스틱한 세상의 개같은 나의 일을 꾸준히 할 수 있는 활력소로 돈 들여 취미하는게 무슨의미인가" 라는 점이었다. 비싼 돈 주고 산 카메라, 기타, 꾸준히 보고 있는 영화 등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이 소모적인 삶을 지탱하는 하나의 도구로 이용 당하고 있는 사실에 허무함을 느꼈다.
한때 무라카미 하루키와 함께 무라카미 붐을 우리 땅이 불러 일으켜던 무라카미 류의『무취미의 권유』. 표제작 '무취미의 권유'를 보면 취미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취미란 기본적으로 노인의 것이다. 너무나 좋아해서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몰두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다면, 젊은이들은 그것을 취미로 하는 아마추어가 아니라 일로 삼는 프로가 되는게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결국 내가 하고 있는 취미를 극한까지 끌어올려 일의 개념으로 생각을 하라는 말이다. "무언가를 해냈을 때 얻을 수 있는 진정한 성취감과 충실감은 상당한 비용과 위험이 따르는 일 안에 있으며, 거기에는 늘 실의와 절망도 함께한다. 결국 우리는 '일'을 통해서만 이런 것들을 모두 경험할 수 있다." 취미도 결국 일로 생각 하라는 것.
'일'이란게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지, 책 내내 무라카미 류는 계속적으로 역설한다. 부제는 무라카미 류의 '비즈니스 잠언집'이다. 노동자의 입장보다는 내가 보기엔 팀의 리더나 CEO의 입장이 많이 들어간 것 처럼 보인다.
목표가 없는 어른이 많다. 아니, 목표를 세웠더라도 이런 목표를 내가 대체 왜 세운거고 이걸 성취하면 도대체 어디다 쓰지 하는 회의적인 생각을 나는 많이 하는데, 무라카미 류는 '목표'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목표는 있는게 없는 것보다는 나은 그런 것이 아니라 물이나 공기와 마찬가지로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필수적인 것이다. 목표가 없다면 사람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노력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목표의 비슷한 말 '꿈'은 뭘까. "뭔가 구체적인 것을 지향하는 사람이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건 꿈이 아니라 현실이다" "목표를 갖는다는 건 곧 걱정을 끌어안는 것이다"
올바른 독서란 무엇일까? "비즈니스맨이든 학생이든 소설가든 어떤 직업이든 문제는 책을 읽느냐 읽지 않느냐가 아니다. 어떤 정보가 필요해서 독서를 하는지 스스로 분명하게 파악하고 있는지가 관건이다." 독서를 한다는건 정보를 얻는다는 건데, 본인의 필요성에 의해 하는 독서는 정말 몸에 피가 되고 살이 되더라. "중요한 것은 독서 자체가 아니라 그 사람이 얼마나 새로운 정보에 목말라하는가에 달려 있다"
일을 하다보면 과정이 정말 짜증날 때가 있다. 예컨대 팀장이 일을 툭툭 시도때도 없이 던져주거나 갑자기 하라고 할때면 빡치는 일이 많은데. 무라카미 류 왈 "업무에서 중요한건 목표를 세워 추진하고 성공하는 것이지 품격이나 미학이 문제는 아니다." 무라카미 씨 보소. 목표를 세우는건 윗대가리들이고, 세운다고 해도 그건 반강제적으로 세우게 되는 것이고, 또한 업무 방법도 옳고 그른지 따져보는것도 중요한것 같습니다만.. 하지만 나도 일을 할때 매일매일 To do list 를 작성하고 지워가는 재미에 하고 있으니까. 방법론적인걸 생각할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한것도 사실이다.
리더는 중요하다. 리더가 바뀌면 팀원의 인생이 바뀐다. 옳은 리더가 필요하다. 일을 '잘' 시키고, 책임을 져주고, 케어를 해주는 그런 리더가 필요하다. 분기에 한번씩 회의를 하는데 윗분이 와서 잘했니 못했니 일장연설을 늘어놓는다. 그분 밑에 직원이야 그 분들의 비전을 가지고 하나하나 실행해 나가는건데, 실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잘 안됐을 경우에는 비전이 잘못된 것이고 그러면 자연스레 물러나는게 순서일텐데, 자기 목을 걸고 이야기 하는 사람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어떻게 바꿀 것인지, 변화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이지, 우선순위를 어떻게 매길 것인지, 결과에 어떤 책임을 질 것인지와 같은 물음에 대해 구체적으로 답을 밝히지 않는 리더는 신뢰할 수 없다." 절대 공감이다. 1. 내 주위에는 자극이 될만한 비즈니스 맨이 없고 2. 대안이 없어 다니고 있는 것 같은 인상 3. 몰락하는 업계에 어찌할수 없이 붙어있는 듯하고 4. 날아오는 공만 힘 없이 휘둘러서 치는 인상인데.. 나름 다 사정이 있겠지요.
일에서 실패하거나 거래처에게 실수를 저질러 손실을 발생 시킬경우 1. 사죄를 하고 2. 내용을 설명하고(누가 어떻게 잘못해서 이렇게 문제가 발생되었는지를 말해야 하는데, 시스템에 책임을 돌리는 경우가 많고 이건 거의 사실이다. 보통 사원에게 시스템을 바꿔야 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 3. 처리 방법을 이야기하는게 수순일 것이다. 사죄 보다 중요한건 이런 책임 설명과 후속 대책 마련과 앞으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시스템 재구축이 필요하다. 덮어놓고 사과만 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고 무라카미 류는 말하네 "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으며 경위는 어떠한지, 원인은 무엇이고 자신은 어떻게 연루되어 있는지, 책임은 누가 지며 손해는 얼마나 되는지, 어떻게 대응했고 사태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는지, 언제쯤이나 해결될 것이고 재발을 막기 위해 어떤 대책을 취해야 하는지, 손해배상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준비하고 이번 사고에 누가 어떤 책임을 질 것인지 등에 대해 가능한 한 신속하고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 사죄보다 훨씬 중요하다"
인맥 관리, 무척이나 중요한데. 여기서 포인트는 다음과 같다. "만나는 사람들을 친절하고 예의바르게 대하는 것도 빠뜨릴 수 없다. 상대가 자신에게 쓸모 있을 것인지를 따지기에 앞서 상대가 자신을 유용한 인재라고 생각하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싸가지 없는 인간보다 일못하는 사원이 더 최악이라고. 일 잘하는 인상을 팍팍 심어줘야 이 격동의 시대 쉽게 이직도 하고 돈도 벌수 있다는 말. "불황일수록 바깥을 의식하는 전략이 그것이다. 경기침체니 디플레니 하는 달갑지 않은 경고들이 나오면 아무래도 사람들은 안으로 움츠러들기 마련이다. (.....) 신선한 공기를 들이 마시기 위해서는 문 밖으로 나서야 한다." 그럼 그렇지 우리가 탄 배는 곧 침몰할 거라고!
일대일 문의가 시도 때도 없이 들어온다. 가끔 고객에게 전화를 해야 될때가 있다. 말투도 사뭇 공손해지고 정말 친절하게 대한다. 감정노동을 심각하게 해야 한다. 소비자가 왕인 시대다. 지금의 시대가 다음과 같기 때문이다. "우리는 심각한 딜레마에 빠지고 말았다. 소비자로서는 '왕처럼' 대접 받지만 노동자의 처지로는 반대다. 소수의 전문직 종사자를 제외하고 노동자들은 대체로 소모품처럼 취급받으며 일의 보람도 잃은 채 꼭 필요한 소비조자 줄이고 있다.
'일본어'를 전공으로 택한걸 가끔 후회하고 있다. 이런 실용학문 말고 대학에서나 배울수 있는 기초학문을 할걸 후회를 하곤한다. 뭐 우리나라 대학에서 자기 연구+가르치는 능력 까지 겸비한 선생이 얼마나 있을까 궁금하지만. 일본 교수들은 직업 윤리란게 확실했다. 내경험상으론. 가르치는 게 정말로 성실했다. 입문이나 개론 수업의 경우 학생들에게 더 배울수 있도록 호기심을 자극해야 하는데 그런것도 잘했고, 역사 수업을 들었었는데 하나의 사실을 가지고 어떤 학자는 이렇게도 보고 다른 학자는 저렇게도 보고 하는데, 이쪽학자의 의견이 학계에서는 정설로 통합니다. 등등의 방식으로 수업을 해줘서 너무나 좋았다
어쨋든 무라카미 류는 외국어 능력을 가지고 있는 비즈니스 맨에게 충고한다. "외국어 구사 능력이 대단히 중요하고 쓸모 있는 건 맞다. 그러나 외국어 능력은 단지 그 사람의 인생을 '보다 유리'하게 해 줄 뿐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역자보다 저자가 더 대우를 받는 것 처럼. 외국어+다른능력을 가진이가 대우를 받는다는 것이다.
흔히 우리는 실패를 하는 사람이 성공을 한다고 이야기 하는데, 무라카미 류는 실패에도 다른 종류가 있다고 말한다. "일을 하다가 겪는 실패는 '단순한 실수'가 대부분이다. 준비가 부족하고 능력이 모자라서 실패하면 신뢰에 금이 가고 질책이 쏟아진다. 그런 실패를 통해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뭔가 배울 수 있는 경우란 도전할 가치가 있는 일에 온 힘을 다해 매달렸지만 지식이나 경험, 정보가 부족하여 실패했을 뿐이다. 본디 대부분의 사람은 도전할 가치가 있는 것과 만날 기회를 얻지 못한다. 심지어 무엇에 도전해야 좋을지조차 모른다. 도전할 만한 가치 있는 무엇인가를 만난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일단은 전력투구 할만한 도전 상대를 찾아야 한다는 것.
끝이다. 무라카미 류, 소설도 그렇지만 에세이도 잔인하다. 그건 그렇고 왜 난 이딴 책을 읽고 이렇게 길게 리뷰를 쓰는 걸까. 나도 썩었다, 썩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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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작으로 유명한 무라카미 류, 그의 소설들은 늘 불편한 진실들을 담고 있어서 나로 하여금 쉽게 다가설 수 없게 만드는 그런 풍이었다. 몇 번을 시도해 보였지만 결과는 참담했고, 결국 그가 풀어놓는 썰들은 나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 그런 그의 독설이 제법 어울릴 것 같은 잠언집을 발표해서 내심 궁금했었다.
무라카미 류의 '무취미의 권유'는 비즈니스맨을 위한 매우 현실적이고 냉정한 조언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남의 조언만 쫓지 말고 사태의 본질을 짚어 일과 인생의 주체로 살라'는 38꼭지의 직장인들을 위한, 변명 따위가 통하지 않는 따끔한 충고들이다. 다방면으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그가 직장인들이 현실을 제대로 직시할 수 있도록 이끌고 있다. 경제인을 초청하여 이야기를 듣는 TV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어서인지, 사회/경제에 전반적인 부분에 새로운 시각들을 가지고 있어서 색다른 충고를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다만, 어떤 부분에선 그의 직설적인 조언들이 조금은 부담스러웠다. 그건 각자 독자의 몫이겠지만, 나의 경우엔 역시나 저자 특유의 독설이 여전히 마냥 반갑지만은 않았다. 내가 영위하고 있는 삶의 기반, 내가 추구하고 있는 가치관들이 책을 읽는 동안 흔들릴지라도 스스로 균형을 잘 잡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벤처 정신을 지닌 사람은 원칙적으로 소수파이다. 누구나 하려고 하는 것, 누구나 이미 하고 있는 것, 이미 수요가 포화 상태인 것, 가치가 정해져 있는 것 따위에 본능적으로 등을 돌리는 자질이 없다면 벤처에 뛰어들 수 없다.(p.12)
직업이나 생업으로서 일은 누구나 해야 하고 반드시 성공해야만 하는 것이다. 업무에서 미학이나 품격을 추구하는 사람은 뭔가 대단한 특권이라도 지녔거나 아니면 구제 불능의 바보이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p.76)
직장인들이 전직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대목은 자기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지금 다나는 회사에서 어떠한 평가를 받고 있는지를 따져 보는 일이다. 역설적이게도 제발 마음을 돌려 사표를 찢으라며 상사와 동료들이 나서서 붙잡는 사람이어야 전직이 합당한 것이다. (p.125)
무엇을 최우선 순위로 할 것인지를 분명하게 파악한 경우라면 결단은 다음과 같은 법칙에 따라 한다. 선택지 가운데 가장 까다롭고 가장 어렵고 가장 귀찮은 것을 고르는 게 정답이다.(p.138)
외국어 구사 능력이 대단히 중요하고 쓸모 있는 건 맞다. 그러나 외국어 능력은 단지 그 사람의 인생을 '보다 유리'하게 해 줄 뿐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p.163)
독특한 시각을 가진 무라카미 류의 자기계발 조언들은 가슴에 품었던 열정을 식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 열정을 다시금 분석할 수 있는 힘을 주기도 한다. 그것이 무라카미 류식의 충고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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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경험하고 사유하는 것들은 동일한 생물학적 기관, 즉 오감 탓에 보편성을 지니고 그래서 서로 교감하고 공감할 수 있다. 누군가가 이러한 경험과 사색의 시간을 보다 더 확보할 수 있어서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나누어 주는 것은 언제나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같은 것을 바라보더라도 판단력이란 개별화된 작업을 거치면 서로 다른 해석을 내 놓는다. 이것을 좌우하는 것이 소위 지식이란 것인데, 이 한계 때문에 편협하거나 잘 못된 이해로 치닫기도 한다.
일본의 방송인이자 소설가이고 영화인이기도 한 작가가 세상을 향한 삶의 이치에 대한 나름의 권유인 이 책은 때문에 그 광범위한 영역으로 인해 사유의 흠결을 안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들의 지리한 삶을 자극하고 어떤 전환의 계기가 될 수 있는 도약의 언어들이 분명 존재하고 그것을 발견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이 책에서 기대한 것은 정신없이 달려 온 후 인생의 누적된 피로로 회의와 공허함에 사로잡혀 꼼짝달싹 할 수 없는 느낌을 덜어내기 위한 삶의 어떤 새로운 해석을 찾을 수 있을까 해서였다. ‘무취미의 권유’라는 일견‘취미 없음’을 권유한다는 모순어를 지닌 표제는 이러한 상황에서 그야말로 맞춤이란 생각을 들게 하였다.
총 38개의 단상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이러한 내 시선에 들어 온 글들은 사실 그리 많지 않다. 아마 자신이 처한 현실적 위치에 따라 그 받아들이는 강도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우선 나는 작가처럼 취미(趣味)를 해석하지 않는다. 취미란“자신을 위협하고 요동치게 만들 무언가를 맞닥뜨리거나 발견하게 해주는 것”이기에 결국 이것은 일을 통해서만 가능하니 무취미라는 것인데, 취미가 반드시 삶의 위협과 격정을 초래하는 것일 필요는 없는 것 아니겠는가? 일 이외에 자기 내면의 성취를 위해 무언가를 만드는 극히 개인적이고 소박한 작업들이 취미로서 충분히 의미작용을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의 첫 대문에서 이렇게 낙망했다.
그러나 곧 이어지는 세계화의 적응에 관한 장에서 그 유명한 영화 <대부 II>에서‘마이클 콜레오네’가 했다는 대사 한 마디에서 작은 자극을 얻었다. “아버지는 친구와 가까이 하고, 적과는 더 가까이 하라고 날 가르쳤네.” 소통 능력에 대한 교훈인데 내가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었다는 이유 때문이어서 였는지 사람들과의 관계성에 대해 고민해 보게 된다. 이처럼 내 마음에 파동을 가져온 몇 개의 장이 있는데, 집중하기위해서는 이완(弛緩)이 필요하고, 더구나 당면한 상황에 대한 정확한 자각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조언은 준비되지 못한 자의 긴장을 부끄럽게 되돌아보게 한다.
또한 직장 부하나 조직에의‘동기부여’라는 필요적 동력을 견인함에 있어서 정곡을 찌르는 “희망과 짝을 이룰 때 비로소 성립”하는 것이라는 한 마디나, “선택지 가운데 가장 까다롭고, 가장 어렵고, 가장 귀찮은 것을 고르는 게 정답”이라는 인생길의 결단에 대한 촌철살인의 문장은 내가 어떤 문제의 문턱에서 해매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도와준다. 특히 일본 무사도 정신 중 하나인 죽음에 철저히 임하는 결연한 삶의 자세를 말하는‘하가쿠레’는 내가 잊고 있던 ‘미셸 푸코’의 '멜레테 타나토(melete thanatou)', 즉 막 죽으려 할 때처럼 내 자신의 행동을 사유해 보려고 목표하는 것, 그럼으로써 ‘내 자신으로의 회귀, 내가 영위한 영원한 삶으로의 회귀, 죽음의 척도에 비추어 내가 실현하고자 하는 행동의 가치로 회귀’할 수 있다는 진정한 삶의 빛을 다시금 떠올리는 불꽃을 댕겨주어 어둡게 드리워졌던 어떤 장막을 걷어낼 수 있는 용기를 얻는 촉매가 되어주기도 한다.
여기에 더해 내 행동양식의 범주를 성찰하게 해준“자신과 세계의 관계를 살펴보고 바깥을 향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 “신선한 공기를 들이 마시기 위해서는 문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구절을 통해 잃었던 용기에 대해 생각게 되기도 한다. 내가 너무 안주하고 버티려고만 하지 않았는지, 이제라도 나도 모르게 둘러쳤던 벽의 존재를 깨닫게 되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의 인생에 필요한 의외의 실마리나 단서를 발견하는 기회가 되어주기도 하고, 직장과 사회에서 요구되는 세련된 삶의 지혜를 담은 단상으로 세상에 대한 유용한 관점을 얻을 수 도 있다.
다만, 지나치게 경제주의(經濟主義)적 시류에 경도되어 효율화, 성공, 목표 지향과 같은 자칫 편향된 가치들로 분별없이 단정 짓는 일부의 단상들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일례로 근대이전에도 노예, 병졸, 소작농으로 여유라는 개념과 무관한 삶을 강요받아왔으니 근대산업사회의 덕목인 효율화는 중요한 미덕이다. 그러니 노동자들이 효율화에 대해 시시비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이나, 살아가는데 성공, 돈 이외의 가치를 구체적으로 발견할 수 있느냐고 물으면서‘품격과 미학’을 얘기하는 것은 생활의 의미를 알지 못하는 생뚱맞은 발상이라고 폄하하는 것과 같은 것들이다. 더구나 월급쟁이들의 노후대비에 대한 불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유명 프로골퍼가 “한 번도 월급쟁이였던 적이 없어 모르겠네요.”라고 답변한 것을 솔직하다고 칭송하면서 “녹화 스튜디오는 상쾌한 공기로 가득 찼다.”는 사례는 사실 아찔한 현기증을 나게 하기도 한다. 이건 솔직함이 아니라 타자에 대한 무관심, 무지라고 해야 한다. 사회적 연대감을 상실한 오늘의 개인주의 병폐의 현주소가 아니겠는가?
이 책이 우리들 인생의 조언, 혹은 마음의 위로, 세상의 이해에 대한 멋진 사유들이란 미덕을 가지고 있음을 부인 할 수는 없다. 세대와 현실의 처한 양상에 따라 서로 다른 이해와 감동을 분명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 된다. 그러나 삶의 가치가 오직 일과 효율, 성공에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다소의 아쉬움을 떨쳐버릴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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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류, 무라카미 하루키 두 사람을 일본에서는 호적수라고 말하는 모양인데 하루키의 책은 여러 권 읽었음에도 류의 책은 처음이다. <무취미의 권유>라는 멋진 제목과 시집같이 작고 예쁜 제본에 어울리지 않게 부제는 비즈니스 잠언집이다. 비즈니스와는 아무 관련도, 관심도 없는 내가 우아한 표지에 이끌려 이 책을 집어들었으니 실수라면 실수이다. 비즈니스 맨을 위한 월간지 《괴테》에 연재한 것을 모았다는데 비즈니스 맨을 위한 잡지의 이름이 《괴테》??? 일본의 경제버블이 꺼지면서 사회 전체가 품격이나 미학같은 애매한 환상을 추구하게 되었다는 저자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하다.
일본경제의 고도성장기에는 중학교만 졸업해도 단체취업되고 종신고용이 보장되고 열심히 일하기만 하면 월급도 오르고 승진도 되었지만 안정되고 성숙한 사회가 된 지금 일본의 젊은이들은 왜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지 왜 일을 해야하는지 과거에는 아무도 하지 않았던 의문을 품고 방황한다고 한다. 미래에 대한 희망과 확신이 없는데 동기부여가 가당키나 하냐고 말하지만 자신의 일과 삶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지 못한다면 살기 어려운 것이 사람이 아닌가.
월급장이 노릇을 해본 적도 없는 잘나가는 작가는 자유롭고 평생현역이니 행복할까? 사람들이 취미로 생각하는 독서, 글쓰기, 여행도 그에게는 편집광처럼 또다시 읽고 또 읽고 쓰고 또다시 쓰는 따분하고 재미없는 일이고 걸작 하나가 나오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수준높은 작업을 해야하기 때문에 취미가 아니라 일일 뿐이라고 강변한다. 매일매일 직장에 매여 똑같은 일을 하며 간혹 독서로 기분전환하는 월급장이의 입장에선 취미가 없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그가 부럽기만 하다. 그의 말처럼 아직 자신의 진로를 정하지 않은 젊은이는 너무나 좋아해서 몰두하게 되는 뭔가를 발견하면 그것을 취미가 아니라 일로 삼으면 될테니 청년시대를 무엇을 좋아하는지 탐구하면서 보내면 좋겠다. 오랜 시간 자기분야에서 노력해온 장년이나 노년층은 일을 떠난 후에도 즐겁고 보람있는 삶을 누리기 위해서 지금부터라도 자신의 취미를 가꾸어 나가야 할 것이다. 취미는 기본적으로 노인의 것이라는 작가의 말은 신랄하지만 진실을 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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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류가 이런 류의 책도 쓰는 구나하는 생각으로 읽었는데, 성공한 경제인들과 대담을 하는 프로를 진행했다고 하니 보고 듣고 느끼고 하면서 나름의 논리도 키우고 충분히 사회/경제 분야에 대한 나름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겠구나 싶다.
어린시절 읽었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불루'가 주는 선입관이 너무 큰 탓인지 무라카미 류가 쓴 책이라면 좀 생뚱 맞다는 생각도 했는데, 나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문고판 크기에 내용은 짧지만 우리가 그간 생각해왔던 '취미'를 '여유를 회복하는' 목적으로 바라보던 시각에 대해 '아니올씨다'라는 생각을 제시한다.
비즈니스맨에게 취미는 '제대로 승부를 내어야 할 일'이지 도피 수준의 소일이 되어선 안된다는 주장이다. 일견 수긍이가고 합당한 부분은 있는 것 같은데, 과연 내가 바이올린을 배우고 연습하는 시간을 부질없는 시간으로만 치부하기에는 나름의 가치가 크다는 생각이다.
아무튼 새로운 화두를 던진 부분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고, 사회/경제/환경 및 국제관계에 대해서도 나름의 짧은 글들로 설득력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어 주변에 권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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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소개하고자 하는 대부분의 양식에는 취미란이 있게 마련이다. 나의 취미에 대해 알게 된다면 나의 성향에 대해서도 쉽게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취미란을 볼 때마다 고민에 빠진다. 딱히 취미라고 할만한 과외의 활동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유로 무라카미 류의 [무취미의 권유]는 무척이나 반가운 책이었다.
[무취미의 권유]는 38개의 제목들로 이루어진 무라카미 류의 에세이 집이라고 볼 수 있는데, 내 눈을 번쩍 뜨이게 했던 '무취미의 권유'도 38개의 전체 제목들 중의 하나여서 그 내용은 달랑 두페이지 반에 불과했다. 하지만 전달하는 내용은 간결하면서도 단호했다. 취미는 노인들의 전유물이라는 무라카미의 주장은 얼마나 통쾌한가. 그 단호함에 속이 시원해질 지경이다. 이 책에서 무라카미는 '~ 같을 것이다.' 라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는다. 자신이 경험해 보지 못해 알 수 없는 것은 모른다고 대답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있다. 자신의 대담프로 '캄브리아 궁전'에 출연했던 프로골퍼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단호함이 시원하다 못해 따갑게 느껴질 경우도 있는데 내 경우엔 '사죄라는 행위는'이라는 부분이 그러했다. 사죄라는 행위는 문제 발생에 따른 해결책을 내 놓는 것이 우선이므로 그저 상대방의 상처를 위로하기 위한 사과는 불필요하다는 것이 무라카미의 주장이다. 그것을 뒷받침하는 일화로서, 워싱턴이 자신의 아버지가 아끼던 벚나무를 실수로 베어버리고, 자신의 실수를 인정한 것에 대한 칭찬만을 받았을 뿐 그가 사과했다는 내용은 찾아 볼 수 없었다는 것을 들고 있다. 물론 문제해결에 따른 책임을 다하지 않고 습관처럼 내뱉는 죄송이라는 단어는 없어져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도의적 책임까지 무시할 수는 없다. 상대방이 입은 손실을 충당할만한 행동은 당연한 것이고, 심리적인 상처까지도 아우를 수 있는 사과도 필요하다. 법정에서도 물리적 손상외에 심리적 손상에 따른 비용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당연한 이치가 아닐까.
이렇듯 무라카미의 주장을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생각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도 이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또다른 즐거움이다. 아마도 무라카미 류를 직접 만난다면 그가 말하는 '아우라'에 눌러 입이라도 제대로 뗄 수 있을까 싶지만, 아무렴 어떠랴. 그는 책속에 있을 뿐이고 나는 책 밖에서 그를 지켜보고 있는 수많은 독자중에 한 명일 뿐이니, 이처럼 딴지를 건다해도 그에겐 아마 간지러움의 수준일 것이다. 그것이 내심 못마땅하긴 하지만 - 나는 속이 시원하다 못해 따끔해질 지경인데 너무 불공평하지 않은가 -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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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서문을 읽으면 그때부터 더 읽어야 할지 말지가 금새 판가름 난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말한다. 젊은 사람들, 한참 활동적으로 일을 하거나 공부하거나 등 '취미가 아닌'행동을 해야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어느정도 나이를 먹은 노후에 어르신들이 즐기는 것이 바로 취미라고 말이다. 그러니 이력서는 물론 초면에 만난 사람들이 서로 묻고 답하는 '취미가 뭐에요?'라는 대화가 저자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을 통해 얻은 스트레스를 취미활동으로 해결하라는 말을 많이 듣게되는데 이게 무슨말인지 헷갈릴게 뻔하다. 저자가 말하는 취미는 그야말로 목표의식을 두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하는 것인데 솔직히 우리가 어떤 행위를 취미로 갖게 될 때 그것이 스포츠라면 점수나 기록에 연연하게 되고 요즘 많이 하는 '스마트폰게임'의 경우도 점수를 올리려고 애쓰고 심지어 실제 돈까지 투자하며 몰입한다면 더이상 그것은 취미라고 볼 수 없다라는 것이다. 책읽기에 관한 의견도 상당히 호불호가 갈릴만한데 우선 책추천을 해달라는 것이 이상하고 어느 언론이나 명사가 추천하는 책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도 좋지 않다고 말한다. 책을 읽는 다는것은 독자가 책을 통해 무엇인가 얻어내려는 '정보수집'의 목적을 무시할 수 없는데 타인에게 별로 좋지 않았다고 해서 자신이 찾으려는 무언가를 찾지못하리란 법은 없다라는 것이다. 내가 찾고하는 정보가'무엇'이라면 스스로 그 무엇을 알아내기 위해 직접 책을 찾아보고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양에 집착하지 말라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전과는 달리 아이에게 다독을 권하는 사람들이 전보다 많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예전에는 1년에 100권 읽기, 1주일에 1권읽기 열풍도 있었지만 저자의 논리라면 평생 적은 양의 책을 읽더라도 제대로 자신이 얻고자하는 바를 얻었다면 무의미한 다량의 독서보다 훨씬 이롭다는 것이다. 독서와 관련된 부분은 여러모로 공감할 만한 내용이 많았다. 마지막으로 호불호가 갈릴 저자의 주장은' 목표설정의 필요성'이다. 저자는 목표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고 말한다. 꿈이 있는지를 따지기 전에 아주 사소한 일을 할 때도 그 일을 통해 얻으려는 것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목표를 상정해야된다고 말한다. 그렇게되면 자신에게 꿈이 있는지 없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고 하나하나 순간순간의 목표를 위해 노력하다보면 꿈에 자연스럽게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다. 목표라는 것은 세워라 말아라 할게 아니라는 의미였다. 우리는 무조건 '해야한다'라는 당위와 강압에 많이 노출되어있다. 취미도 가져야 하고, 목표도 세워야만 하는 것이고 책은 많이 읽을수록, 다수가 인정하는 명사가 추천한 책이라면 반드시 읽어야만 하는 식이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은 자신이 가장 잘안다고 저자는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런 부담에 억눌려있는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될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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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취미의 권유』는 '비즈니스맨을 위한 월간지 『괴테』에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연재한 글을 모은 것(작가소개글에서)' 이다. 연재라고는 하지만 앞 뒤 글이 연결된 기승전결은 없다. 책 판형도 일반 보다 작고 전체 분량도 200쪽이 채 안되는데다 글씨 크기도 큰 편이다. 거서른 여덟 꼭지가 들어 있으니 하나 하나는 단숨에 읽어버릴 만큼 짧다. 나는 이런 글을 좋아한다. 짧은 글 . 짧으면서도 할 말은 다 하는 글. 군더더기 없는 글.
'차례' 조차 한 눈에 다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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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를 보면서 관심 끄는 제목부터 찾아서 읽었다. 우선 '메모'와 '비즈니스와 독서'를 읽고, 다음으로 '업 무상 글쓰기', '기획하는 방법'을 찾아 읽었다. 이후로는 처음부터 차례대로 읽었다.
행여 오해가 있을까 봐 밝히건대 메모 얘기를 꺼냈다고 해서 '나는 이렇게 메모를 많이 한다.'라고 자랑하려는 게 아니다. 필요하기에 하는 것일 뿐이니 자랑은 가당치 않다. 문제는 메모를 한다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메모를 하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로 늘 정보에 목말라 있느냐 하는 것이다.(64-65p. _메모)
예전에 '책을 버리고 거리로 나가자.' 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대다수 사람들에게서 독서가 지극히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거리 또한 활기와 매력이 넘치던 시대의 이야기이다. 당시에 나는 '굳이 책을 버릴 게 뭐람. 거리로 나가고 싶으면 나가면 그만이고, 시골이나 산속 혹은 바닷가에 틀어박혀 독서를 해도 상관없잖아.' 하는 생각을 했다.(68p. _비즈니스와 독서) 결국 중요한 것은 독서 자체가 아니라 그 사람이 얼마나 새로운 정보에 목말라하는가에 달려 있다.(71p. _비즈니스와 독서)
목마름, 갈망.. 오랜만이다. 이런 낱말을 들어 본 지도 써 본 지도 너무 오랜만이다. 그래. 언제나 새로운 것에 목말랐지. 언제나 열망할 수 있는 대상을 찾아 헤맸지.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술을 마시고, 많은 일을 하고, 많이 돌아다녔지. 그땐 그랬지.
이러고 있는 나는, 이러고 앉아서 남이 쓴 책이나 읽고 있는 나는, 이러고 아무 위협을 못 느끼며 취미처럼 책을 읽고 있는 나는, 취미로 독서하는 노인이 되었다? 그런가?
왜 그런가.
음.. 그럴듯 하군.
크흐. 그래서 건축설계 하는 인간들이 늘 하는 얘기가 있지.
돈벌이로 건축설계하는 하는 건 너무 고달프다고, 건축설계는 그냥 취미로 하고 생활은 어디서 따박 따박 나오는 걸로(예를 들면 한달에 천만원씩 나오는 부동산 임대수익이랄지, 은행 이자랄지, 나 없이도 잘 돌아가는 사업 소득 같은..) 하면 좋겠다는 말.
아는 사람 하나는 부모님이 지어준 5층짜리 빌딩에 꼭대기 층은 주택으로 쓰고 4층은 건축설계사무실로 쓰면서, 1, 2, 3층에서 나오는 월세로 직원 월급 주고 생활하면서 말 그대로 건축설계는 취미로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근데 그게 참.. 이런 일이 있었다. 그냥 '아는 사람'이었을 때는 그가 취미로 건축설계를 하거나 말거나 내 알 바가 아니었는데, 그가 같이 일하자는 제안을 해온것이다. 그러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같이 일을? 일할때보다 놀때가 더 많다며! 건축은 취미로 하는 거라며! 아래층 월세만 받아도 직원 월급까지 다 주고도 남는다며!' 같이 일할 만한 사람인지 어떤지를 놓고 생각을 해보니 이상하게 뭔가 찜찜한 면이 있었다. 그렇게 어려움을 모르고 살아온 사람, 건축설계를 취미로 하는, 음.. 그건 그냥 주변에서 시샘하는 소리일 뿐일 수도 있으니까, 정확히 말해서 '건축설계를 취미로 한다는 소문이 난 사람'하고 같이 일을 한다고 생각하니 '좋을 땐 좋겠지만 대립할 일이 생기면 어떨까?' 하는 생각부터 시작해서 여러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하게 되었다.
이리 저리 재고 머리를 굴리다가 나는 결국 그와 함께 일하지 않기로 했다. 그때 느낀 찜찜함의 정체를, 아래 문장을 읽고 알게 되었다.
요즘 넘쳐나는 '취미'란 한결같이 동호회처럼 특정 모임에서 세련되고 완벽한 무언가를 추구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기존의 사고방식이나 생활방식을 현실 속에서 성찰한다거나 변화시키는 활동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취미의 세계에는 자신을 위협하는 건 없지만 삶을 요동치게 만들 무언가를 맞닥뜨리거나 발견하게 해 주는 것도 없다. 가슴이 무너지는 실망도, 정신이 번쩍 나게 하는 환희나 흥분도 없다는 말이다. 무언가를 해냈을 때 얻을 수 있는 진정한 성취감과 충실감은 상당한 비용과 위험이 따르는 일 안에 있으며, 거기에는 늘 실의와 절망도 함께한다. 결국 우리는 '일'을 통해서만 이런 것들을 모두 경험할 수 있다.(8~9p. _무취미의 권유)
그렇다. 30대에 빌딩 임대수익으로 직원 월급 주며 취미 삼아 건축설계한다는 그 꿈에 그리던 건축설계 사무소에서 내가 느끼지 못한 것은 바로 그거, '긴장감'이었다.' 삶을 위협하는 게 없는 상태, 삶을 요동치게 만들 무언가를 맞닥뜨리거나 발견하게 해 주는 것' 말이다.
무라카미 류는 글쓰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소설을 쓴다. 그는 소설 쓰는 것을 '일'이라고 했다. 취미가 아니고 일이라고 했을 뿐더러, 예술한다거나 문학한다는 말을 쓰지 않는다. 하긴 소설가도 예술가가 될 수 있고 요리사도 예술가, 농사꾼도 예술가가 된다. 예술이란 그 무엇으로도 할 수 있다. 어떤 분야에서라도 그것을 잘 해내고 멋지게 해내면 예술이라 부를 수 있으니까.
실제 소설의 글쓰기 작업은 전혀 그렇지 않다. 머리를 쥐어짜고 가능한 한 정확성을 기하는, 재미라곤 찾아볼 수 없는 지루한 작업의 연속에 지나지 않는다. 이야기의 구성이 허물어지지는 않는지, 인물 설정에 오류는 없는지, 등장인물의 언행에 자연스럽지 않은 구석은 없는지, 묘사가 지나치거나 부족하지는 않은지, 비유는 적당한지, 독자가 읽을 때 독서 리듬을 깨뜨리는 생략이나 반복은 없는지 따위를 따져 보며 마치 편집광처럼 수도 없이 읽고 또 읽는다. 문장과 말의 군더더기를 발라내고, 장면 묘사나 글에 부족함이 있으면 더 써넣는다. 재미없기로 치면 이만큼 따분하고 재미없는 게 또 있을까 싶은 일을 끝없이 반복하는 게 '소설 집필'이다. 그렇게 해서 문장 전체의 정확함이 일정 수준에 이르면 스토리가 힘 있고 독자들로 하여금 빨려 들게 만드는 '강제력'을 얻는다. 하지만 그것을 '역작'이라 할 수는 없다. 실수가 전혀 허용되지 않는 프로그래밍이나 화학 실험, 건축 설계에 가깝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157~158p. _업무상 글쓰기)
아하, 그렇다. 집을 '짓는다'고 하고 글도 짓는다고 한다. 또 있다. 밥도 짓는다. 약도 짓고, 농사도 짓고... 집짓기와 글짓기가 통하는 데가 있구나. 역시. 그래 좋아. 그렇다면! 이렇게 노인처럼 취미로 독서하고 취미로 리뷰 쓰고 그러지 말고 젊은이 처럼 일로 삼아 열중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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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취미의 권유 / 무라카미 류 / 유병선 / 부키]
제목 : [무취미의 권유] 깊이는 있는데 치우친 느낌의 비즈니스 잠언집
소설가이자 영화감독, 방송진행자, 사진작가의 일을 하고 있는 무라카미 류의 비즈니스 잠언집이다. 잠언이라 하면 훈계나 경계가 되는 짧은 말, 짧은 단상을 말한다. 저자는 비즈니스 세계에서 주의해야 할 점, 늘 염두에 두어야 할 일들을 짧은 글로 소개하고 있다.
제일 먼저 나오는 글은 이 책의 제목인 ‘무취미의 권유’다. 저자는 여기에서 취미의 무용론을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는 ‘취미란 기본적으로 노인의 것’이라 생각한다. ‘너무나 좋아해서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몰두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다면, 젊은이들은 그것을 취미로 하는 아마추어가 아니라 일로 삼는 프로가 되는 게 자연스러운 흐름’이라 말한다. 저자는 ‘취미의 세계는 자신을 위협하는 건 없지만 삶을 요동치게 만들 무언가를 맞닥뜨리거나 발견하게 해주는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취미에 시간을 쏟고 몰두하는 것은 무의미하며, 취미로 시간을 보내기 보다는 자신의 일을 더 발전시키라고 말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나오는 글인 ‘분재를 시작할 때’에서는 취미의 무용론에 쐐기를 박는다. 저자 자신도 분재를 취미로 시작할 때가 온다면, 일에서 은퇴를 하거나 분재를 또 다른 일로 발전시킬 것이라는 얘기다.
저자가 왜 일과 취미를 같이 비교하는지, 취미와 일을 별개로 생각할 수는 없는지, 그리고 취미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는지, 저자의 생각을 쉽게 이해할 수 없다. 오히려 나는 젊을 때 일수록 적극적으로 취미 활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은퇴 후에 일도 안하고 취미생활도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우리나라 은퇴자들의 큰 고민 중 하나가 바로 그것이다. 일에 얽매이다보니 정작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모른다는 것. 너무 늦게 취미를 찾다보니 준비가 부족하고 힘들다는 것이다.
첫 글부터 뭔지 모를 이질감을 느꼈다. 그 이질감은 저자가 비즈니스 관점에서 이야기 하고 있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한편으론 글의 분량이 너무 짧아서 내용이 축약되었거나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뭔가 놓친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런 이질감은 이 책에 실린 다른 편의 글에서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일본인 특유의 정서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저자 특유의 사고가 나의 사고와 많은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몇몇 글 중에는 비즈니스와 인생, 일본의 현황에 대해서 깊이 있는 의견을 제시한다. 먼저, ‘일과 인생의 파트너십’에서 저자는 이상적인 파트너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업의 동반자와 부부는 닮은 점이 많다. 신뢰가 기본이라는 건 두말할 나위도 없고, 결정적인 상황에서 상대의 잘못을 바로잡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도 부부 사이나 사업동반자 사이가 마찬가지다. 그리고 가장 절실한 조건이 있다면 혼자서도 생존할 수 있는지, 그러니까 자립과 자율이 가능한지에 관한 것이다.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 신뢰와 전망을 공유할 때 이상적인 동반자로서 첫걸음을 내딛을 수 있다. - 26p.
또 메모에 대해서 ‘메모를 하기 위한 도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보를 갈망하는 욕구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말한다. 독서에 대해서 ‘어떤 정보가 필요해서 독서를 하는지 스스로 분명하게 파악하고 있는지가 관건’이라고 말한다.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글은 ‘최고의 걸작과 작품군’이다. 사람들은 최고의 걸작을 ‘한방’으로 생각하는데, 최고의 걸작은 작품군(群)을 전제로 할 때만 가능하다. 달랑 하나의 작품만으로 그것이 탁월한지, 최고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는 없다. 작품군으로 묶여 평가 받는 작품을 남겨놓아야 최고의 작품을 찾을 수 있다. 이때의 작품군이란 체계적이고 중층적(重層的)이어야 한다. 점점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는 작품들이 쌓이다보면 그 중에 걸작이 나온다. 이것은 작품과 창작물뿐만 아니라 비즈니스맨의 업무 업적에도 관계된다. 꾸준히 일을 하고, 거기에서 점점 좋은 성과를 얻고, 그것이 하나 둘 쌓여 가면 업무에서 전문가가 되고 인지도가 높아지는 것이다. 이 점은 새겨들을 만하다.
이외에도 리더의 역할, 업무상 글쓰기, 호적수, 협상 등 비즈니스계에서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생각해볼만한 문제들을 짧은 글로 들려주고 있다. 다만 너무 비즈니스의 입장에 치우쳐서 이질감, 괴리감이 느껴지는 글이 있고 또 독자를 불쾌하게 만드는 주제의 글도 몇 편 있다. 일본의 현실과 비즈니스 세계에 대한 옹호,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들이 그렇다. 또 이 책의 가격에 대해서도 불만이다. 176 쪽의 분량인데 책의 크기도 작고 글자 크기는 커서 실제 책 한권의 분량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오히려 저자의 다른 산문집에 포함시켜도 될 정도다. 아쉬운 점은 있지만, 비즈니스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저자의 다양한 주제의 깊이 있는 의견은 읽어볼만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