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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이성을 만나고 관계를 맺고 헤어지는 과정이 꼭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피차 어쩔 수 없는 사연들에 의해 그렇게 흘러가는 과정을 피할 수가 없다.상대가 맘에 들어 없으면 죽을거 같은 불같은 시간도 긴시간에 견주어 보면 찰라와 같고 나는 맘에 없는데 상대는 내게 열렬하게 좋아하는 경우엔 사랑할까 말까의 경계에서 갈등과 고민을 하는 경우도 있다.풋풋하고 생동감 넘치는 20대 청년기의 남.녀 사이의 만남은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변수가 많다.경제력과 신체조건,성격,배려 등을 만남의 조건이 되다시피한 경우를 제외하면 상대방이 어떠한 사람일지까지만 알아보고 또 다른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사랑의 시행착오를 겪는다.
이 글의 주인공 비르질은 몽상가의 소유주이다.직접 만나지도 않은 상상 속의 이성을 10일간의 마음의 고통과 번뇌를 이어 나가며 결국 클라라라는 보지도 않은 이성에게 차이고 마는 어처구니 없는 이별 선고식을 받는다.클라라라는 여성이 비르질에게 자동응답기로 전한 이별 통보는 비르질로 하여금 클라라에 대해 무한의 상상력의 나래를 펼치게 한다.
비르질은 대학을 나와 아파트,카페,친구들과의 모임 등을 통해 자신이 이성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 나갈지를 궁리하기도 한다.비르질을 챙겨주는 아르멜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짜증나고 지겹게 느껴지게 하며 그의 성격은 비꼬기를 좋아하고 제멋대로 사는 것이다.독신자인 그에게 찾아오는 우울증을 친구들과의 희비극적 사랑놀이를 통해 해소하기도 한다.그 과정에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사랑마냥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보호를 받으며 이해받으려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그는 광고 세계를 통해 참신한 아이디어를 뿜어내고 자유롭고 고독하게 하루하루의 삶을 꾸려갈 수 있는 '스펜칼리'는 그의 안식처가 되었다.그는 카피라이터가 되면서 톡톡 튀는 컨셉으로 광고 세계에서 승부욕을 과시하면서 동료들과의 대화,커피 한 잔 나누는 시간도 좋았다.때론 항변을 해야 하고 때론 건실한 비판적인 생각을 짜내기도 하는 비르질에겐 늘 클라라가 뇌리에서 떠나지를 않는다.'원형 경기장 속에 놓인 비르질'은 아파트,카페,회사라는 공간과 동료,지인,독백을 통해 삶과 이상을 펼쳐나간다.
작가 마르탱 파주의 작품은 두 번째이다.<나는 어떻게 바보가 되었나>에 이은 이 작품을 통해 한 젊은이의 몽상가적인 사랑의 변주곡을 듣는거 같았다.사랑은 실제하기도 하지만 상상에 의한 무실제적인 사랑 이야기도 구미를 당긴다.비관적인 비젼을 잃는 것이 사랑하던 사람과 헤어지는 아픔보다 더욱 통증을 느꼈을 비르질식의 사랑법을 사적인 위험으로 정의하고 있다.비현실적이면서 사건도 증거도 없는 토대 위에서 흘러가는 작가만의 사랑 이야기는 지금 이 시간 애타게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 세레나데를 음미하는 작지만 울림이 있는 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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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평생 주목받지 않기 위해 노력한 남자가 있다. 평범함을 추구하며, 삶에서 성공도 실패도 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럼으로써 그는 생존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표지엔 한 남자가 있다. 머리에는 안전모를 쓰고 있으며 에펠탑과 같은 크기의 거대한 사람이 소심하게 건물 뒤로 숨어 있는 듯하다. 이 사람이 바로 책의 주인공이다. 전작에 이은 사랑을 찾아 나선 두번째 바보 이야기라고 하지만 이 남자는 바보가 아니다. 단지, 삶에 안전함을 유지하려고 겁을 먹고 있을 뿐이었다.
저자와의 만남은 이책으로 알게 되었다. 프랑스의 젊은 이들에게 인기를 받고 있는 작가이다. 그렇기에 과연 이 소설의 내용 또한 궁금했었다. 그리 두껍지 않은 페이지 그러나 내용은 단순하지가 않았다. 주인공인 '비르질' 은 어느 도시 보다 파리를 사랑한다.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는 창녀들과 함께 사용하면서도 그는 이 사실에 신경스지 않으면서 깨끗한 도시보단 오히려 이 곳 터전을 사랑하고 있다. 이렇게 평온한 나날을 보내오던 중 그에게 뜻밖의 사건이 일어난다.
어느 날, 퇴근 후 가장 평안한 안식처인 집에서 '클라라'라는 여인이 이별을 선포하는 메세지가 있었다. 그 순간, 과연 이 여인과 사귀었나 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그는 어느 누구와도 만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심리상담실을 찾게 되고 그 와중에 친구의 조언을 통해 그는 서서히 변해간다. 주위에서는 차였기 때문에 그를 위로하려 하지만 의문의 여인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그였기에 이 부분을 해결해야만 했다.
세상과는 단절함이 편했던 남자. 알 수 없는 여인의 이별 전화 메세지로 심리상담실을 찾고 결국 CT촬영을 감행한다.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아니 얼마 남지 않았다고 확신하며 주위를 정리히지만 결과는 아주 건강한 사실이다. 그뒤 그는 자신의 삶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고, 친구와 함께 '클라라'라는 여인을 찾아가면서 자신 역시 어둠에서 빛으로 한걸음 나오기 시작한다.
내용은 단순하다. 이별의 메세지를 남긴 여인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친구인 '아르멜'이 있다. 그녀는 걸어갈 수 있도록 등을 떠미는 역할이다. 이어, 점성학을 배우고 이것을 본 업으로 시작했는데, 그녀는 미래를 예측하는 엉뚱한 상상이 아니라 무엇보다 진실된 열정 그 자체로 인간을 이해하며 해결책을 주기 위해 고군분투 인물이다.
주인공 '비르질'과는 전혀 다른 캐릭이다. '아르멜'과 '비르질'의 캐릭은 인간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열정을 가진 자와 포기한 자로 말이다. 그러나 결국 , 그녀의 도움으로 그는 삶을 사랑하기 시작하는 것은 절망에서 희망을 의미한다.
거의 그녀를 찾을 쯤엔 그는 그녀를 찾지 않는다. 이유는 사랑하지 않았고 사랑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에겐 너무 일렀다 하지만, 그녀를 찾아가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여기서 의문이 남는다 그럼 '클라라'와 '비르질'의 진실은 무엇인가. 답은, 그녀의 행방을 확인해가는 여정에 그는 비로소 자신이 살 수 있다는 것과 행동하고 변화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이 책의 여정을 따라 난 무엇을 깨달았을까. '비르질은 10월의 차가운 밤공기를 들이마셨다. 그는 살아 있었다. 살아 있다는 것을 이토록 강렬히 느껴본 적은 없었다. ' 이것이 나의 정답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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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장르소설만 읽다가 최근에 일반소설들을 자주 접하게 되면서 그런지는 몰라도 읽기에 너무 힘이 들 때가 있다. 이전에 읽은 몇몇 작품들도 금방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확실하게 설명을 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는데,내가 이번에 처음 접한 마르탱 파주의 작품 <아마도 사랑이야기>도 그 범주에 포함될 것이다. 지루하지 않게 금방 읽었음에도 뭔가 설명하기에는 약간 애매한 부분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줄거리만 보면 다른 소설들과 다르다. 주인공 바르질로부터 사귄 적도 없고,그렇다고 기억나지도 않는 클라라라는 여자가 자신을 떠나겠다는 자동응답기 메시지를 받기 때문이다. 혹여 바르질이 머리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하고 CT촬영을 받지만,그렇다고 별 이상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바르질이 직접 그녀의 흔적을 찾기에 이른다. 어찌보면 장르소설에나 나올 법한 줄거리이지만,여기에 작가는 주인공이 정말로 사랑에 빠져있었는지,아니면 혼자 만의 생각에 빠져있는지 눈치채지 못하게 현실과 픽션을 왔다갔다하는 구성으로 소설을 이어가고 있는데,주인공의 사랑관을 보여주기에 더없이 좋은 방법이 아니었나 싶은 게 내 생각이다. 그럼에도 캐릭터에 동화되기는 힘들었는데,르몽드의 평처럼 히치콕을 연상시키는 우디 앨런 식이라는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스릴러를 연상시키는 구성에 우디 앨런의 코미디같은 문체가 더해졌기 때문이다.
작품에서 바르질은 클라라의 메시지 한 통 때문에 자신이 만난 여자들을 돌아보게 되고,급기야 자신의 인생까지 바꾸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집 계약을 해지하거나,전화를 중단시키거나 같은 여러 행위들이 그것인데,아마도 그것은 자신의 깊은 마음 속에 숨겨진 또다른 자아를 끄집어낸 것이 아닐까 싶다. 그것을 현실 속의 자아라고 부르고 싶은데,바르질의 행동들이 그 사건 이후로 급격하게 변하기 때문이다. 제목이 '아마도 사랑이야기'인 것도 확실한 사랑이야기가 나오지는 않지만,아마도 사랑이야기라고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금방 읽은 책임에도 책 어느 부분에 나온대로 큰 사건도 없고 그렇다고 확실한 해결도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작가의 유머러스한 문체나 여러가지 정확하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설명 등은 어느 정도의 재미를 갖췄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전작 격인 <나는 어떻게 바보가 되었나>를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이 작품만 읽더라도 금방 작가의 매력에 빠질 수 있을 것이다.
2012/2/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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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탱 파주는 참 기발한것 같다 사랑이라는 주제로 이런 글을 쓸수 있다니 그저 마르탱 파주가 가진 재능이 부럽기만 한것 같다 마르탱 파주의 작품속에서 개인적으로는 나는 지진이다 라는 책과 나는 어떻게 바보가 되었나 라는 두 작품을 좋아하지만 이외에도 다양한 마르탱 파주의 책들 속에서 컬러보이나 완벽한 하루 그리고 비 라는 작품은 읽을때 마다 마르탱 파주가 가진 재능과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책속의 주인공들에게 많은 감정이입을 하게 되는것 같다
이책은 자동읍답기에 녹음된 클라라 라는 여자의 우리이제 헤어져 라는 엉뚱한 말에서 부터 이야기가 전개된다 전혀 알지도 못하는 클라라 라는 여자의 이별 통고를 받고 바르질은 클라라 라는 여자를 되찾아보기로 결정한다 왜냐하면 정확한 실체는 기억에 없지만 어렴풋이 모드네 파티장에서 만났던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클라라 라는 여자를 찾는 과정속에서 바르질은 사랑에 대해서 성장하게 된다 왜냐하면 바르질이라는 남자는 사랑에 대해서 무감각하고 사랑은 그저 현실적으로 이루어질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남자 였으니까 .. 하지만 클라라 라는 여자를 되찾는 과정에서 사랑이라는 두 글자에서 진정 하게 느끼게 되는 감성과 생각에 대해서 사유하고 성찰하게 되고 작가는 그런 바르질이라는 한 남자를 통해서 독자들을 이야기속으로 끌고 간다
사실 어떻게 보면 클라라 라는 여자 때문에 바르질은 평범했던 일상에서 변화를 갖게된다 그리고 작가의 이번작품은 진부한 사랑을 표현하기에는 소재가 조금은 기발하지만 현실속에서도 누구에게나 충분히 벌어질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빠르게 돌아가는 현실속에서 너도 나도 사랑을 하는데 있어 너무나 빨리 만나보고 헤어지는 과정속에서 누구나 사랑에 대해서 진정함은 알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랑을 하는 과정속에서도 진정한 사랑에 대해서 깨닫을려면 누구나 한번쯤은 이별과 상처를 통해서 진정한 사랑이란 뭘까 조금은 이해하게 되고 배우게 된다고 생각한다
마르탱 파주는 바르질이라는 한남자를 통해서 독자에게 어떤 감정을 전해주고 싶었던걸까 ????? 그건 아마도 사랑이란 어쩌면 아주 우연한 계기로 부터 시작될수도 있다는걸 사랑은 하고 싶다고 이뤄지는게 아니라 어떠한 작은 일상속의 변화로 나타날수도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던게 아닐까
참 재밌있게 읽은 책인것 같다
역시 마르탱 파주는 완소 작가이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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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우리에게 진정한 것들을 보여 주는 하나의 도구이다. 그것은 확실한 것들을 읽어낼 수 있고 상황에 따라 적절한 행동을 보여준다. 또한 우리가 그려내는 마음에 또 다른 사랑이 싹트기도 하고 유쾌한 모습을 지니도록 도와준다. 아마도 사랑 이야기는 주변의 기억에 의한 사랑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아무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마음들이 내 몸에 있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라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이것은 소위 말하는 사람의 모습과 그 모양에 대해 한번쯤 다시금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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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르질은 자동응답기를 통해 들리는 클라라의 "우리 그만 헤어져. 당신을 떠나기로 했어" 라는말을 듣고 클라라가 누구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제트킨박사에게 상담을 받는다. 비르질의 머릿속엔 클라라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어진 여인으로 인해 상처받고 아플것이라는 포스틴의 짐작으로 시작된 위로를 받게 되고 포스틴으로 인해 클라라에게 차였다는 소문?(사실)이 친구들 사이에 공표되기에 이른다.클라라와 헤어졌다는 소문이 기정사실화 된 이후부터 비르질은 친구들로부터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해 준다는 이유로 매일 밤 친구들을 만나고 위로 아닌 위로를 받으며 시간을 보내게 된다 친구들은 돌아가며 비르질의 베이비시팅을 자처했으며 종내는 하나같이 중매쟁이로 나서겠다고 말해주었다 그로인해 비르질의 마음은 여자에게 차였다는 생각에서도 멀어졌고 차인후의 시간을 고충없이 즐길 줄 알게도 되었다 그리고 깨달은 것은 모든 친구들이 하나같이 클라라와 얘기를 나눠 본적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도대체 클라라는 실존인물이 맞기는 한건가? 파티에서 술을 마시는게 아니었는데 후회도 해본다. 이렇게 기억이 없을 수도 있을까? 생각도 해본다.
하루동안 클라라와 사귀었다고 믿었고 일주일동안 클라라와 헤어졌다는 사실에 눈물을 흘렸고 두사람 사이에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음을 깨달았지만 이제는 클라라가 그리워졌다.먹고 살기 위해 일하지 성공하기 위해 일하지 않는 비르질은 그냥 조용하게 반복되는 일상이 좋은데 회사라는 단체에서는 비르질(연봉도 높고 능력도 있는 몸인지라) 앞에 승진을 승락해야 하는 정말이지 거추장스런 일을 만들어 놓았고 할수만 있다면 노조에 연락해서 편한 직장생활을 보호 받고 싶을 지경이다. 스벤갈리 커뮤니케이션 광고회사는 비르질의 놀이터와도 같은 곳인데 터무늬 없이 높은 연봉을 받으며 성과가 좋다는 이유로 비르질의 놀이터를 망쳐버리려는 듯하다. 그는 더이상의 책임을 지고 싶지 않을 뿐인데 말이다. 모든이들이 이해할 수 없는 승진 누락을 바라는 비르질의 머릿속엔 허상의 클라라가 현실의 보고품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그래서 찾아나서기로 했다. 사랑이라기보다는 미지의 여인을 찾아나선다는 자체가 재미있어서 그것으로 충분히 자신이 살아있음을 깨닫게 되었고 덕분에 자신의 행동이 변화할 수 있다는 것도 발견했다. 비르질은 살아있고 숨쉬고 있다는 것이 곧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듯하다. 나에게 프랑스와 대한민국은 너무 다르다 그래서인지 나의 생각과는 영판 다른 방향으로 달리는 비르질이 혼란스럽기도 했음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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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와 제목만으로 쉽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러나 그것은 오산, 왠지 책장을 넘길수록 더욱 내 자신이 이상해지고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생각하기에 바빴다. 한 마디로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철학적인 느낌이 강하다고나할까. 그래서인지 가벼운 마음으로 쉽게 읽혀지지가 않았다. 솔직히 이 책이 나에겐 마르탱 파주의 두 번째 작품이었지만 처음 읽었었던 <나는 어떻게 바보가 되었나>를 재미있게 읽었었던 기억으로 로맨틱 코미디라는 보도자료를 보고서 가볍게 읽으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아마도 사랑이야기>도 큰 기대를 안고 읽었었는데 생각보다 조금은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광고회사를 다니고 있는 주인공 비르질은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어느 날, 자동응답기에 녹음되어 있는 한 여자의 음성메시지를 확인한다. “나야, 클라라. 미안해. 우리 그만 헤어져, 비르질. 당신을 떠나기로 했어.” 라는 너무도 황당한 메시지에 비르질은 자동응답기를 들고 5년동안 심리상담을받고 있는 제트킨박사를 찾아간다. 이 사건을 계기로 비르질은 자신이 전혀 사귄적이 없는 여자와 어떻게 헤어지냐며 더 혼동하면서 자신에게 이상이 있는것은 아닌지 CT촬영도 해보지만 ‘정상’이라는 판정. 결국 비르질은 파티에서 잠깐 만났던 클라라의 이름을 기억하고 상상과 추리를 시작하지만 클라라와 사귄 기억은 없다는 그래서 확실한 대답을 찾지를 못한다. 그래서 비르질은 작은 모험을 시작하게 된다. 전혀 관계를 맺지도 사귄 적도 없는 클라라를 찾아 나서는것.
결국 클라라 오빠의 집에까지 가서 클라라를 만날 수도 있었던 기회를 저버리고 클라라 오빠의 집을 나오게 된다. 마지막까지 클라라에 대한 존재를 확인할 수 없었지만 비르질은 많은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클라라를 찾아 나서며 여러 사건을 겪게 되는 비르질은 생전처음 자신의 존재에 대한 밝은 비전을 느낀다.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뚜렷하게 알수 있었다. 결국 비르질은 클라라 덕분에 여태까지 몰랐던 사실들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동안 ‘비정상인‘ 범주에 속해 있었던 자신이 바로 살 수 있다는 것과 자신도 행동하고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정해놓은 틀에서 벗어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은 ’정상인‘의 범주에 들었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한 마디로 클라라 덕분에 살아있음을 느끼게 된 비르질이다. 처음엔 엉뚱한 생각으로 정말 비정상인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었는데 마지막엔 자신의 존재를 깨닫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나에게도 비르질과 같은 상황이 닥치면 어떻게 했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잠깐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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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사랑 이야기'는 '2008년 프랑스에서 출간된 로맨틱 코미디 소설로 작가는 ' 마르탱 파주'이다. '나는 어떻게 바보가 되었나', '나는 지진이다' 같은 감각적이고 유머러스한 소설들이 작가의 전작들이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대강 이렇다. 광고회사에 다니는 30대 초반의 주인공 '비르질'은 혼자 사는 삶에 익숙한 독신이다. 그러던 어느날 '바르질'의 전화응답기에 그어느 날 자동응답기로 이별을 통보 받는다. 하지만 이별의 메시지를 남긴 주인공인 '클라라'라는 여성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자신에게 욕심이 없다는 것을 비르질도 잘 알고 있었다. 야심찬 것과 일을 하는 데 있어 최선을 다하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비르질은 이제부터 일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삶에 있어서도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 자신의 태도를 바꾸고, 앞으로 나아가며, 혼란스러운 것을 잊기로 했다. 그러나 한 번도 사귀어보지 못한 여자를 다시 찾겠다는 것이 야심찬 일인가? 혹 정신적 불균형을 증명하는 일은 아닌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본문 중에서
30대가 지나면 남녀간의 만남이 회사 면접과도 같아진다. 많은 실패와 아픔을 겪고 난 후라 더 조심스러워진다. -본문 중에서
'마르탱 파주'는 어릴적 우울이 자신을 작가의 세계로 이끌었다고 했다. 우울한 세상에서 책으로 긍정과 함께 대안을 제시하고 싶었다고도 말했다. 저자는 대학에서 심리학, 언어학, 철학, 사회학, 예술사, 인류학, 음악 등을 전공했다고 한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이 작가의 작품에서는 감각적이고 깊이 있는 문장을 자주 만날 수 있었다. 다양한 분야에서 심오한 지성이 느껴지는 문장들이 많은 편이었다. 매일매일 노동에 시달리느라 사유할 시간조차 없어 물질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빈곤한 대다수의 직장인들의 삶에서 주인공인 '비르질'을 작가는 규정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으로 묘사한다. 주인공이 이렇게 된 이유는 그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의 부모님들은 서커스 사업을 했는데 이 사업이 법적으로 골칫거리가 많은 편이었으며 그 덕분에 비르질의 습관처럼 규정을 잘 지키는 그런 유형의 사람이 되었다고 묘사하고 있다. 성공적인 사회형 인간이 위해 최적화된 순응자의 캐릭터도 느껴진다. 주인공은 경쟁에 대해서 무심하다. 연인이 될뻔 했던 '포스틴'이라는 여성에게도 매달리는 다른 남자들이 많았지만 경쟁에 대한 욕심도 관심도 없는 비르질이기에 불타는 사랑을 고백할 기회를 놓쳐버리고 쉽게 포기 해버리고 마는 그런 성격을 가졌다. 이런 성향은 '우리가 사랑할 수 있었던 사람을 잃지 않는 유일한 방법을 그사람이 자신의 인생속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만든다는 심리학적인 '회피성향'을 가진 평범하지 못한 나약한 심성을 보여준다. 프랑스 소설 특유의 은유가 느껴지는 문장 한 구절 한구절이 은율적으로는 다가오지만 그 의미 부여에 대한 공감은 결코 쉽지 않게 느껴진 소설로 평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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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의 이야기는 비르질에서 걸려온 한통의 전화에서 시작된다.
“나야, 클라라. 미안해. 하지만 여기서 끝내는 게 좋을 것 같아. 우리 그만 헤어져, 비르질. 당신을 떠나기로 했어.”
이순간부터 비르질은 혼란속으로 빠져든다. 자신도 기억하지 못하는 클라라라는 여성을 떠올려 보려고 하지만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리곤 자신의 뇌가 문제가 생겨서 분명히 사귀었던 여자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래서 뇌 촬영을 하기 위해 병원을 예약하게 되고, 그 상이 분명 자신은 뇌문제로 죽을 것이라 믿게 된 비르질은 전기회사에 연락해 계약을 해지하고, 집 계약을 해지하는 등의 신변정리에 들어간다.
하지만 병원 검사 결과 그는 지극히 정상으로 판별된다. 그럼 도대체 뭐가 문제라 말인가... 그때부터 비르질은 클라라의 존재와 기억에 대해서 끊임없이 상기시켜 나간다. 그리고 이 모든 사건의 원인이자 해결이기도 한 클라라를 다시 만나기로 결심한다.
서커스단원이였던 부모님의 영향으로 여자와 인간관계, 나아가 인생에 대해서도 뭔가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고, 그로 인해 자신의 범주안에서만 머무는 듯 보였던 비르질은 인생에 있어 처음으로 새로운 뭔가를 시작하고자 한 것이다.
"귀찮은 일은 어떻게든 피하려고 노력하면서 살았어. 그 결과는 아주 엉망이지. 그러니 한 번 정도는 위험을 감수해봐도 되지 않겠어?"
자신의 기억속에 없는 클라라를 다시 찾겠다는 비르질의 다짐이다. 그런 비르질의 곁에서 아르멜은 정신적 조언자로 그의 새로운 삶을 응원한다.
회사에서 주어지는 승진기회조차도 삶의 변화를 꺼려해서 거부했던 비르질이 새로운 삶으로 당당하게 먼저 다가가는 모습이다. 모드의 파티에서 맨 처음 클라라를 만나서 대화를 했음을 기억한 비르질은 모드를 통해서 비르질의 존재를 알게되고, 그녀의 추적해 간다. 그리고 그 추적의 끝에서 모드의 남자친구이자 클라라의 오빠인 캉탱에게 자신의 전화번호를 건넨다. 우연을 가장한 만남을 기대하며 말이다.
"다시 시작하고 싶어요. 마치 처음인 것처럼, 한 번도 사귀어보지 않은 것처럼 말이죠."
이책에선 끝까지 클라라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마치 비르질과의 만남을 아껴둔 것처럼. 솔직히 어떤 모습일지 상상조차도 못하겠다. 바로 이런점이 비르질에겐 이전까지 만났던 여성들과 클라라의 차이점일테고, 자신의 상상으로 그려낼 수 없다는 매력에 비르질이 더욱 그녀를 만나고자 하는지도 모르겠다.
끝까지 어떤 결말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뭔가 특별한 사랑을 기대한 나로서는 솔직히 허무한 결말이기도 한 책이다. 비르질이 낯선 클라라에게 느끼는 그 감정이 "아마도 사랑"이 아닌가 싶기에, 그런 비르질의 이야기가 바로 "아마도 사랑 이야기"라는 얘기가 아닌가 싶다. 확실한 결말을 원했고, 비르질과 클라라의 사랑 이야기를 기대한 나에겐 다소 실망스러운 이야기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클라라는 왜 자동응답기에 그런 메시지를 남겼는지 모르겠다. 비르질과 클라라의 친구들도 그들의 관계를 목격하지 못했고, 비르질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는 그 관계가 과연 존재하기나 했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드는 그런 내용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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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사랑이야기
프랑스 소설가 마르탱 파주의 소설이다. 제목이 구렁이 담 넘어가듯 애매하다. 아마도~ 사랑 이야기라니. 사랑 이야기라고 생각해 달라는 말인가?
이 소설은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쓰여졌다. 그런데 읽는 도중 내가 느낀 것은 시점이 1인칭 주인공으로 해야 더 실감이 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는 주인공인 비르질의 시선으로 소설의 장면이 전개 되기 때문이다. 간혹 등장하는 그의 친구들인 포스틴, 아르멜은 그저 보조 수단이었다. 그들의 생각이나 심리를 소설에서는 거의 설명해 주지 않았다. 그렇다면 애당초 1인칭이 어울리지 않을까.
1. 비르질이란 남자가 어느 날 자동 응답기에서 클라라라는 여자에게 이별 통보를 받는다. 그런데 비르질은 클라라를 모른다. 여기서 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자신도 모르는 여자에게 버림을 받았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 그럼에도 비르질은 이별을 당한 사람처럼 심신이 지쳐간다. 그는 심리 분석가인 제트킨 박사를 찾아가서 상담을 한다.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는 현대 사회의 모든 혜택을 끊어 버린다. 전기, 수도, 전화기 까지. 그리고 클라라를 찾아 나선다.
2. 제목처럼 아마도? 사랑이야기가 아닌것 같다. 단지 한 인물에 대한 탐구같다. 그래서 3인칭으로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1인칭이 더 어울린다고 본다.
이 소설의 큰 사건은 없다. 첫 부분에서 클라라의 이별 통보가 사건이다. 그리고 나서 벌어지는 일들은 비르질의 개인적인 일들이다.
그는 요구르트 광고를 짜는 기획안을 맡는다. 별별 광고안을 생각해 낸다. 그리고 사회에 대한 모순덩어리들을 은근 슬쩍 비즐리이 아닌 작가가 주입한다.
읽다 보면 비즐리의 생각이 아닌 작가의 생각이란게 너무 눈에 띄어 당혹스러웠다.
작가가 은밀히 자신의 생각을 주입하고 싶었다면 다른 방법을 시도해도 좋지 않았나 싶다.
3.
이 소설의 매력은 솔직히 잘 찾지 못 하겠다. 마치 도시의 회색 빌딩을 멍하니 바라보는 심정이랄까? 막막하고 딱딱하고 유머는 사막에서 꽃이 피기를 기다려야 할 정도로 없고 인물에게 동화가 되려고 해도 비즐리란 인물이 워낙 괴짜라서, 그렇다면 호감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이 소설은 사랑이야기가 아닌다. 책 표지를 보면 재밌는 로맨스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이 소설은 비즐리란 인물을 통해서 우리가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우리는 왜 미치는가. 누가 우리를 미치게 하는가. 사회라는 환경이 그렇데 만들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소설은 철학적인 양념을 너무 많이 쳐서 소설의 재미가 조금은 반감이 된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