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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의 숨은 주역, 식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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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욕구를 식욕, 성욕, 수면욕을 친다. 이중 첫 번째에 해당하는 식욕은 바로 생명의 유지와 직결되는 중요한 욕구이다. 흔히 먹는 걸 뜻하는 단어로 음식과 식량을 말한다. 음식이란 먹는다는 기본적인 요건이 충족되어 졌을 때 무엇을 먹을 것 인가 하는 질(質)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면, 식량이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전제조건인 먹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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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욕구를 식욕, 성욕, 수면욕을 친다. 이중 첫 번째에 해당하는 식욕은 바로 생명의 유지와 직결되는 중요한 욕구이다. 흔히 먹는 걸 뜻하는 단어로 음식과 식량을 말한다. 음식이란 먹는다는 기본적인 요건이 충족되어 졌을 때 무엇을 먹을 것 인가 하는 질(質)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면, 식량이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전제조건인 먹는 양(量)에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책 『 식량의 세계사』는 바로 이 먹는 양에 대한 역사적인 관점의 기록서이다. 총 6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세계사의 발전 및 변화의 중대한 원인이 식량에 있다는 색다른 관점에서 세계사의 변천과정을 기술하고 있다.

 

세계사 속에서의 식량의 역활.

 

선사시대 수렵 채집 생활에서 시작한 인류는 농사로의 전환을 하게 된다. 이를 두고 한 인류학자는 농사의 채택을 가리켜 ‘인류 역사상 최대의 실수’라고 한다. 수렵생활은 주2일 근무로 가능했지만, 농사를 시작함으로 주 7일 노동으로의 노동 체계의 변질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또한 수렵채집시대에는 이동의 편리함을 위해 사유재산이 그리 필요하지 않았지만, 한군데 정착하는 농업시대로의 전환으로 인해 사유재산의 개념이 도입 되었다.

 

농업시대는 토지를 경작하기 위해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고, 그로 인한 수확물의 분배문제가 대두되었다. 그로 인해 식량을 분리하고 구분하는 역할을 맡은 자에게 권력과 부가 생겼다. 농업을 위한 땅의 분배 및 소유개념의 등장과 더불어 고대사회에서는 식량은 화폐의 대용으로 부각되었다. 식량의 지배권한 및 배포권한은 곧 권력이며, 부의 표상이었다. 이러한 농업시대의 등장으로 군집생활을 통한 노동력의 확보를 위해 도시 및 국가가 생성되었고, 곡물을 통한 지배 권력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농업시대의 대표적인 경작물은 근동의 밀과 보리, 아시아의 쌀과 기장, 아메리카의 옥수수등 이었다. 이러한 곡물이 중요한 식량자원으로서의 대두되었으며, 옥수수, 밀, 벼의 재배지의 확대로 인한 전 세계로의 식량자원의 전파, 선택과 집중에 의해 이루어진 품질개량, 그리고 곡물위주의 식생활 변화로 세계인의 체격이 수렵시대보다 왜소해졌다는 것은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 게 된 사항이다.

 

지구의 크기를 확대시킨 향신료 무역

 

정향, 육두구, 육계, 후추, 육두구화등의 비싼 값에 거래되는 향신료를 찾기 위해, 콜럼버스를 필두로 한 대항해시대가 개막되었다. 향신료가 사상 최초로 전 지구적 무역망을 형성할 수 있었던 까닭은 이것이야말로 장거리 운송에 적합한 물품이었기 때문이다. 향신료를 찾아 나선 항해로 인해 신대륙의 발견 등 지구의 진정한 모습이 드러났으며, 인류역사에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향신료 때문에 유럽의 여러 강대국이 지구 전역에 교두보를 마련하고, 무역소와 식민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향신료는 유럽인의 발견과 탐험의 항해로 내보냈을 뿐 아니라. 종교 및 전염병의 전파로 인하여 훗날 자라날 식민 제국의 씨앗을 뿌리기도 했던 것이다.

 

콜럼버스 이후 벌어진 식량의 전 지구적 요동은 농업의 채택이후 인류에 의해 벌어진 자연환경의 재편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이었다. 녹색혁명을 통한 식량의 증산은 농업에 필요한 노동력의 감소를 촉진시켰고, 이로 인한 유휴 노동력의 도시집중으로 산업화가 촉진되었다는 주장도 신선했다. 농업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식량은 가치의 저장물로, 통화로, 부의 지표로 가능하며, 이것이야말로 사람들이 온종일 애써가며 생산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의 도시 사회에서는 식량대신 돈이 이런 역할을 담당한다. 선진국에 사는 사람들이 오늘날 일반적으로 전문직에 종사한다는 것은 지난 수천 년 동안 농사의 생산성을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나타난 식량 잉여분이 빚어낸 직접적인 결과다. 이렇게 싹트기 시작한 식량 잉여물의 또 다른 결과는 부자와 빈자. 힘센 자와 약한 자의 분화다. 인류의 생존기간 중에서도 대부분 기간을 규정하는 사회구조인 수렵 채집민 집단에서만 봐도 이런 분화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수렵채집민은 재산이 거의 또는 전혀 없었지만-이동의 편리를 위해- 그렇다고 이들이 가난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가난’은 어디까지나 물품을 축적할 수 있는 입장에 있는 정착 농업 사회 구성원과 비교했을 때만 뚜렷해진다. 부와 가난은 농업, 그리고 그 소산이 문명의 불가피한 결과처럼 보인다는 이야기다.

 

군대는 배(腹)로 행군한다.

 

손자병법에 이르기를 ‘용병을 잘하는 자는 군역을 두 번 일으키지 않고 식량을 세 번 실어나르지 않으며 나라에서 비용을 취하되 양식은 적으로부터 빼앗는다. 그러므로 군대의 식량이 충족될 수 있는 것이다. 라고 되어 있다. 보급체제의 정비로 인해 프랑스의 영웅으로 등장한 나폴레옹은 그의 장기인 보급체계가 러시아의 초토화 전략으로 인해 1812년 러시아 원정에서 패배했다. 그의 장기가 그의 몰락을 가져온 것은 아이러니 하기만 하다.

 

보급품의 조달이 승패를 결정지은 전쟁들, 미국과 소련의 냉전시대에 대표적인 분쟁지역인 베를린에서의 대규모 공수작전을 통한 식량의 조달로 인한 이념전쟁의 승리, 마오쩌뚱의 잘못된 식량정책에 의한 중국민의 죽음, 발트3국을 위시하여 소련위성국들의 주권국 선언의 계기가 된 역사상 최악의 기근을 불러일으킨 소련의 농업정책, 철도망을 통한 보급체계의 정비로 미국의 남북전쟁에서의 승리한 북군의 애기 등은 전쟁에 있어 식량의 중요성을 부각시킨 역사적인 사건들이다.

 

 

식량의 미래와 아시아의 대두

 

멜서스의 인구론으로 인해 제기된 전 세계적인 식량문제는 질소비료의 발명을 시작으로 한 녹색혁명에 의해 전 세계 식량의 자급 자족화로 이어졌다. 그 결과 농업산출물의 증가로 전세계인구의 약 반에 해당하는 30억명이 굶주리지 않고 혜택을 보고 있다. 유럽의 공업화 진행과 비슷한 절차로 진행되고 있는 아시아의 신흥강국으로의 대두는 식량의 증산으로 인한 아시아의 농업인구의 공업화로의 진행으로 인함이다. 노동력의 이동에 따른 급진적인 공업화의 진행으로 인해 중국, 인도 등의 급속한 경제발전의 진행, 곡물가의 폭등, 인구의 증가에 따른 녹색혁명의 한계치와 그동안 등한시 했던 식량문제의 대두, 바이오디젤의 제조에 따른 식량자원의 전이, 생활의 풍요로움으로 인해 고기를 얻기 위해 사료로서의 식량공급이 식량의 절대의 부족을 초래하는 문제 등이 향후 식량으로 인해 제기될 새로운 문제들이다.

 

역사를 보는 새로운 시각

 

사물을 보는 시각은 멀리서 관조하면 객관적인 시각에서 전체를 볼 수 있겠지만, 역사에 있어서 만큼은 때로는 장님이 코끼리 만지기 식의 서술도 필요하다고 본다. 전체를 관조할 때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가까이 다가가 부분 부분을 만져보고 세밀히 살펴보면 우리가 보지 못한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의 기록이란 기록하는 자의 주관적인 사관(史觀)에 의한 관념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 그러함이 역사를 대하는 오도된 시각을 갖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주관적인 사관의 개입이 오히려 그동안 보지 못한 이면의 내밀함을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역사를 대하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하는 긍정적인 요소 또한 존재한다. 이 책 『 식량의 세계사』는 그런 부분에서 우리가 모르고 있는 역사적인 사실을 인류의 생존에 가장 중요한 식량의 문제를 가지고 접근했다는 점에서 신선함을 준다. 하지만 저자의 개인적인 사상의 영향인지 모르겠지만, 자유 민주주의를 옹호화고 공산주의를 절대적으로 부정하는 듯 한 문체는 역사를 기술에서 필연적으로 구비되어야 할 객관성을 상실했다는 점에서는 약간의 아쉬움을 준다.

하지만 매일 우리의 식탁에 오르는 음식의 중요성과 그를 통해 미래를 조망해 본다는 점에서 이 책 『 식량의 세계사』가 가지고 있는 매력은 충분히 그 역활을 수행한 듯하다. 이렇듯 다양한 시각에서의 역사의 조명은 역사의 이면에 감춰진 진실성을 찾는 안내자의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h*****o 2012.03.12. 신고 공감 9 댓글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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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간섭 없이는 살지 못하는 동식물들로 본 역사..
"인간의 간섭 없이는 살지 못하는 동식물들로 본 역사.." 내용보기
어렸을 때의 기억이다. 흔히들 말하는 보릿고개가 되면 어쩔수없이 보리와의 전쟁이 시작되곤 했다. 그나마 보리밥 이라도 맘껏 먹을수 있다면 다행이었다. 그때 물려서 일까? 지금도 남들은 건강식이라고 가끔씩 찾는 보리밥을 아예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식량이 남아돌기 시작했다. 물론 그 전에 식량을 자급자족하겠다고 정부가 나서기 시작했고, 그렇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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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의 기억이다. 흔히들 말하는 보릿고개가 되면 어쩔수없이 보리와의 전쟁이 시작되곤 했다. 그나마 보리밥 이라도 맘껏 먹을수 있다면 다행이었다. 그때 물려서 일까? 지금도 남들은 건강식이라고 가끔씩 찾는 보리밥을 아예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식량이 남아돌기 시작했다. 물론 그 전에 식량을 자급자족하겠다고 정부가 나서기 시작했고, 그렇지만 음식이 남아돌면서 식량의 자급자족 이야기는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곤 자유무역과 세계화에 대한 이야기가 범람하면서, 식량은 이제 한 국가의 이야기가 아닌 전지구적 차원의 담론이 되어 버렸다. 또한 육식의 증가와 화석연료의 정점에 대한 우려는, 인간들이 식량으로 사용하던 곡물을 두고 인간과 가축과 기계가 서로 경쟁을 벌이게 만들었다. 아직도 기아와 빈곤에 시달리는 인간들이 셀 수도 없이 많이 있는데..

 

과거를 바라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중요한 사건들이 일어난 날짜들의 목록으로, 제국들의 흥망성쇠로, 또는 기술적인 진보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도 있지만, 우리들이 매일 먹어야 하는 식량을 통해서도 바라볼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식량은 최초 문명이 세워지는 기반을 제공 하였으며, 국가가 탄생하고 제국을 건설하는데 영향을 끼쳤고, 고대이래 전쟁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또 현대에 들어서는 무역, 개발, 세계화와 같은 주요 이슈들의 전장이 되었다. 저자는 그러한 식량의 역사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 단순히 식량의 역사나 식량과 연관된 세계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 역사 사이의 교차점에서 현대 세계가 형성되는데 식량이 어떻게 기여하였고, 그러한 식량은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보고 있다.

 

인류는 처음 등장해서부터 수렵과 채집을 기본으로 삼아 생활했다. 고고학적 결과에 따르면 신체의 체격, 기대수명, 건강상태 그리고 노동시간에 이르기까지 수렵과 채집이 농업보다 우위에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어느 순간, 농업으로의 전환이 이루어 졌다. 현생인류가 나타난 이래 지금까지 15만년이란 기간을 한 시간으로 비유한다면, 인류가 농사를 지은 기간은 마지막 430초에 불과하고, 농사가 인류에게 먹을 거리를 제공한 기간은 마지막 1 30초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 마지막 430초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그것은 당시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전혀 모르던 상태에서 벌어진 일이고, 인간들이 그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되돌리기에 너무 늦었을 때라고 저자는 말한다.

 

순수한 수렵채집민에서 전적으로 농사에 의존하는 사람들로의 변화는 일종의 스펙트럼을 이루었다. 점차 정착형 사회를 이루고, 인구가 증가하면서 곡물을 식단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으나, 결론은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결정한 것이 아니라는 것, 매 단계에서 그 순간에 가장 이치에 맞는 행동을 했을 뿐이라고 한다. 농업은 자연에서 결코 나지 않는 것을 만들어내는 과정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동식물은 인간의 창조물이었고, 새로운 형태의 식량을 생산하는데 사용되는 신중히 고안된 도구였다고 한다. 다양한 식물은 수렵채집에서 농업으로의 변화가 일종의 스펙트럼을 이루었듯이, 야생 농작물에서 길들인 농작물로의 변화 스펙트럼 위에 놓여있다. 그 스펙트럼은 완전히 야생상태인 식물에서 시작하여, 인간에게 적합하도록 조절된 몇 가지 특성을 지닌 길들여진 식물을 거쳐, 이제는 인간의 도움 없이는 번식이 불가능할 정도로 완전히 길들여진 식물에 이르기까지에 걸쳐있다. 대표적인 식량인 밀, , 옥수수가 그렇다. 원시 농민들은 야생초에서 자연에서 생존하는 식물로써는 열등하지만, 식량으로써는 우월한 특징을 지닌 종들만을 채취하면서 돌연변이를 확산시켰다. 인간의 선택이 생물 종들의 진화방향을 결정해 버린 것이다.

 

그 결과 식물은 인간에 의존하지 않고는 생존이 불가능한 상태로 되어 버렸다. 옥수수, , 쌀은 야생에서 혼자 힘으로 살아갈 수 없게 되었지만, 모든 문명을 지탱하기에 충분한 식량을 제공하면서 세계 문명의 토대가 되었다. 이렇게 길들여진 식물과 동물은 하나같이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고, 그것들의 기원은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기원전 2000년경에 이미 길들이기가 끝났다고 한다. 저자는 애초부터 농사는 자연적이지 않은 것 이었다고 말한다. 길들여진 동식물은 자연상태에서는 존재하지 않으며, 인간의 간섭 없이는 살아남지 못한다. 이렇게 길들여진 동식물은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문명의 근거가 되었다. 그리고 현대사회의 기반, 그 자체를 만들었다고 한다.

 

식량이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기술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인류의 역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풀어 나가고 있다. 농업은 자연히 식량잉여분을 만들게 되었고, 이 잉여분은 사유재산이 출현하는 동기가 되었으며, 이는 빈자와 부자, 지배자와 농민이라는 사회의 계층화로 나타났다. 또한 부는 사람들을 토지노동에서 멀어지게 했고, 오늘날 일반적으로 전문직에 종사한다는 것은 지난 수천년동안 농업생산성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나타난 식량 잉여분이 빚어낸 결과이었다.  그리고 그것의 또 다른 결과는 부자와 빈자, 힘쎈자와 약한자의 계층화라고 저자는 말한다. , 부와 가난은 농업과 그 소산인 문명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었다.

 

저자는 또 향신료를 얻기 위해 무역로가 개척되기 시작하면서 대항해시대가 시작되었고, 이 때문에 지구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고 인류역사에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유럽의 여러 강대국이 지구 전역에 교두보를 마련하고 무역소와 식민지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패권시대가 나타나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런가 하면, 향신료에서 시작된 새로운 작물의 전지구적 이동은, 인간이 농업을 채택한 이래 인류에 의해 벌어진 자연환경의 재편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이기도 하다. 옥수수와 감자가 신세계에서 구세계에 도입되고, 사탕수수가 신세계에 건너가면서, 유럽은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하게 되어 그 결과가 인구증가와 산업혁명으로 나타났지만, 신대륙은 노예제를 근간으로 하는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식량은 전쟁에서도 가장 효과적인 무기가 되기도 했다. 동서고금의 전쟁에서 승패는 항상 식량의 보급에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20세기 중반, 냉전시대에는 이러한 식량이 이념의 무기로 사용되기도 했다. 소련의 집단농장과 중국의 대약진운동은 식량을 이념화하려다 실패한 대표적인 본보기 이기도 하다.

 

20세기 후반, 세계는 다시 한번 식량에 의해 요동친다. 폭탄 연료로 개발된 질소덕분에 화학비료가 등장하면서 식량 공급은 대대적인 비약을 가져온다. 이른바 녹색혁명으로 불리는 화학비료의 발명은 인구폭발을 가능하게 했고, 수억 명을 가난과 기아에서 구했으며, 여러 가지 논란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식량공급을 바꿔 놓은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저자는 이러한 녹색혁명이 환경문제, 다양성 감소 등 문제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인류의 식량문제를 해결했다고 말한다. 이런 문제를 완화시키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만, 녹색혁명을 포기함으로써 생기는 결과는 이러한 문제보다 훨씬 더 나쁠 것이라고 주장한다.

 

녹색혁명에 대한 저자의 견해, 그리고 유전자 조작식품 등, 새로운 식량에 대한 저자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의견이 옳고, 그름을 떠나, 이 책은 우리가 일상에서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식량을 통해 문명과 역사에 대한 통찰을 준다. 식량을 통해서도 역사를 바라본다는 것이, 우리가 막연하게 알고 있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새삼 깨닫게 해주고 있다. 가축화와 작물화가 인간에게는 축복이었지만, 자연에게는 대 재앙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그러나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생각은, 어찌해서 인간의 식량이었던 곡물을 두고 인간과 가축과 기계가 서로 경합하게 되었는지 하는 것이다. 입맛이 떨떠름할 뿐이다.



k*****1 2012.03.12. 신고 공감 8 댓글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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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기원부터 녹색혁명까지, 식량의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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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세계지리의 결합일까? 마치 세계사를 식량과 더불어 다른 각도에서 새로이 배우는 느낌이 들었다.   수렵채집 - 농사 - 식량의 분배 - 부의 축적(권위 획득) - 문명의 탄생 - 부족, 왕국, 제국 거대해지는 나라 - 이념(자본주의(민주주의), 공산주의)과 관련하여 밀, 쌀, 옥수수, 향신료, 설탕, 감자, 통조림, 질소로 만들어낸 비료에 이르기까지 식량과 관련된 인류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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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세계지리의 결합일까? 마치 세계사를 식량과 더불어 다른 각도에서 새로이 배우는 느낌이 들었다.

 

수렵채집 - 농사 - 식량의 분배 - 부의 축적(권위 획득) - 문명의 탄생 - 부족, 왕국, 제국 거대해지는 나라 - 이념(자본주의(민주주의), 공산주의)과 관련하여 밀, 쌀, 옥수수, 향신료, 설탕, 감자, 통조림, 질소로 만들어낸 비료에 이르기까지 식량과 관련된 인류의 모든 것을 낱낱이 파헤친다.

 

특히 인간이 길들인 식물로 일컬어지는 밀, 쌀, 옥수수 그리고 구황작물이라고 할 수 있는 감자와 한때 귀하게 대접받았던 향신료(육계,계피,후추,생강...)등 핵심열쇠가 될 만한 작물들을 등장시켜 사람들 사이에 어떠한 이해관계가 발생했으며 세계사에 어떻게 작용했는지 집중 조명하고 있다. 우리는 국사시간에 인류의 탄생과 무리를 만들어 살게된 과정, 그리고 어떤 형태의 집에서 생활했으며 또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에 대해서 배우게 된다. 

 

수렵 채집 생활을 거쳐 인류는 농사를 지음으로써 정착 생활을 하게 되는데...

 

이렇듯 평범한 내용들이 이어질 것 같지만 이야기는 식량과 관련해 조금씩 비껴서 전개된다. 어쩜 수렵 채집 생활이 손쉽게 음식을 구할 수 있고 힘도 덜 드는데 어째서 차츰 농사같은 걸 짓게 된 건지에 대한 의문부터 농사라는 걸 짓게 되면서 조금씩 부와 권력을 축적하여 유용하는 부분을 다루는데 신기하게도 처음부터 소위 지위가 있는 이들이 부와 권력을 축적한 것은 아니며 자신들이 먹을 것 외에 과하게 생산되는 부분 혹은 자신이 가진 식량의 전부를 나눠주었다는 것이다. 악착같이 모으는 게 아니라 나눔으로써 부와 권력을 가지다니... 예나 지금이나 베풂으로써 '덕'을 쌓거나 '민심'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모양이다.

 

농사라는 걸 짓게 되면서 부와 권력이 생겨나고 거기에 계급까지 더해졌는데 사람들 중 으뜸 우두머리라고 할 수 있는 왕이 출현하여 몸소 농사를 장려하기까지한다. 시대는 흐르고 흘러 바야흐로 대항해시대가 도래하고 유명하디 유명한 콜럼버스는 신세계를 찾아나서게 된다.

 

역사속 유명인물들과 관련하여 콜롬버스가 끼친 해악이며, 프랑스의 마지막 왕비인 마리 앙투아네트의 명대사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면 되지'라는 말의 진실, 그리고 나폴레옹이 벌인 전쟁에서 식량이 전쟁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지 조목조목 나열하고 있다.

 

그리고 프랑스의 요리사 니콜라 아페르에 의해 최초로 발명된 통조림은 처음에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와 녹색혁명을 가져온 질소는 본디 인간이 의존하는 주요 곡물의 단백질 성분을 책임지는 영양소인데 이런 영양소를 이용한 비료의 생산과 난쟁이 품종이라 일컬어지는 벼 품종의 개량이 인류에게 얼마나 많은 식량과 풍족함을 가져다주었는지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는 곧 영국의 경제학자, 토마스 멜서스가 제기한 오늘날 멜서스의 덫(식량의 생산이 인구의 증가를 따라잡지 못해 불균등해지면서 가져다 올 수 있는 문제점)이라 칭해지는 이론을 뒤엎을 만한 혁명이었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이념의 무기로서의 식량이 끼친 해악이었다. 소련이 존재했을 당시 집권했던 스탈린이 공산주의 이념의 우수함을 보여주고자 집단농장이라는 것을 만들고 모든 식량을 국가의 것이라 규정하고 국민들이 먹을 식량조차 남겨두지 않은 채 모두 거둬들여 수출을 했을 정도로 곡물 최대 수출 국가였으나 이는 허울좋은 모습일 뿐 실상 국민들은, 나아가 농민들은 굶주림에 죽어가야했다하니 아이러니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정말 실소를 금치 못하는 것은 이런 모순덩어리 정책을 중국이 그대로 답습했다는 사실이다.

 

자본주의(혹은 민주주의), 공산주의 어느 이념이 더 우수하고 덜 우수하고를 떠나 가장 막심한 피해를 입은 건 그 이념의 지배를 받은 국가의 국민들이었다. 여기서 한가지 깨달은 건 사람이 삶을 영위해나가는데 있어, 혹은 일이라는 걸 하기에 앞서 '동기 부여'가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한다한들 무엇 하나 얻을 수도, 이룰 수도 없다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을 테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언급한 노르웨이 스피츠베르겐섬에 있는 노아의 방주라고 할 수 있는 '스발바르 세계 종자 저장소'의 존재는 커다란 경외감으로 다가왔다. 혹시 있을지도 모를 기후변화로 인한 재해 혹은 전쟁에 맞서 미리 대비하고 수십억개의 종자를 보관하고 있다는 것만도 놀라운데 여러 국가에서 관리하는 것이 아닌, 노르웨이에서 직접 운영에 관리까지하고 있다니 그저 감탄만 나올 정도로 존경스러울 뿐이다. 아니 부럽기까지 하다. 과연 우리나라는 앞으로 다가올 불확실한 미래에 맞서 어떠한 대비를 하고 있는 것일까? 여러가지 생각과 함께 깊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k****e 2012.03.22. 신고 공감 7 댓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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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먹는 밥 한술의 이면에 뭍혀있는 역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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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세계사라는 과목을 매우 싫어했었다. 내 나라 역사도 잘 모르는데, 남의 나라 역사를 왜 알고 외워야 하고, 시험을 봐야만 하는지 당시에는 이해 불가능한 일이었다. 무작정 외우기만했어야 하는 교육 제도의 폐해일 지도 모른다.글로벌한 현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은,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거의 실시간으로 우리나라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기에 자연스레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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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세계사라는 과목을 매우 싫어했었다. 내 나라 역사도 잘 모르는데, 남의 나라 역사를 
왜 알고 외워야 하고, 시험을 봐야만 하는지 당시에는 이해 불가능한 일이었다. 무작정 외우기만
했어야 하는 교육 제도의 폐해일 지도 모른다.

글로벌한 현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은,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거의 실시간으로 우리
나라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기에 자연스레 관심을 가지게 되고, 특정 국가들의 행동의 이면에
숨겨진 진의라던지, 그 국가가 처한 환경, 그렇게 된 연유 등에도 관심이 생긴다. 국가라는 거대한
조직이 구성이 되고, 그 나라의 정치, 문화, 경제 등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 아래에는 각기 다른 
상황과 사건들이 있게 마련이고, 세계사라는 학문은 과거를 통해서 현 시대를 이해할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새삼 느끼게 된다.

<식량의 세계사>라는 책은 매우 독특한 시각을 가진 책이다.

저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인간 문명 변천사의 중심 원인을, 식량이라는 요소를 중심으로 
바라보고 있다. 수렵채집민 시대인 기원전 1만년 때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세계 역사의 주요 
사건들을 시간순으로 기술하되, 그 사건 발생 원인을 식량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점이 이 책의 
특징이다.

세계사에 대해 잘 모르고, 조금은 지루하고 어렵다고 느끼는 나로서도, 기발한 시각이 가져다 
주는 이색적인 글에 흥미를 가지고 들여다 보게 되었는데, 특히나, 수렵채집민 시대에서 농경 
시대로 넘어가는 일련의 과정들은 무척이나 흥미롭게 보았다.

예컨대, 옥수수와 벼, 밀 등이 자연이 우리에게 제공한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라, 인간의 필요성에
의해서, 본래의 품종이 아닌 돌연변이들이 (식용으로 더 좋았기 떄문에) 선별되고, 길러진 선택적
개량 품종이라는 점... 과거 수렵채집민이 농민들보다 평균 신장이 더 컸으며, 더 균형잡힌 식사를
했고, 더 건강했었다는 점... 식량의 수요와 공급에서 기인한 계급 체제의 발생 등은 의외의 
내용으로 놀라움을 주었다.

간략하게 요점을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다.

1. 따뜻하고 습해진 기후와 변화
2. 식량을 구하기 쉬운 강 근처에 정착을 하게 됨.
3. 도구의 제작으로 인한 식량 채집 기술 향상으로 멀리 움직일 필요가 없게 됨.
4. 정주로 인한 인구의 증가
5. 식량공급을 유지하기 위한 농사의 발달
6. 잉여 식량과 물품의 보관 가능
7. 식량 축적량에 따른 계급 발생
8. 부와 가난의 계층화 발생
9. 대항해 시대 향신료로 인한 항로의 개척과 무역의 발달
10. 향신료를 차지하기 위한 무력 발생
11. 전쟁의 발생..
...
...
기타 현대까지 발생한 주요한 사건들에 식량이 준 영향력.....
 
세계사에 관심이 많거나, 지식이 많은 분들이라면 재미있게 읽어볼 수 있는 서적이며, 몇몇가지 
가정을 제외하고는 타당한 근거를 들어 이야기를 풀어 나가고 있으므로, 교육용 교재로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조금 아쉬운 점은, 중후반으로 갈 수록 주객이 전도된다는 느낌이라는 점이다.
제목도 그렇고 책 표지의 문구들도 식량이 주 원인으로 다양한 사건들이 발생한 것 처럼 기술되어
있으나, 중반 이후부터는, 식량은 그저 하나의 원인으로써 역할을 할 뿐, 초반의 흥미로움을 
끝까지 유지하며 끌고 가지 못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이것이 상기 내용 요약에서 중후반 내용을 ... 으로 표시한 이유이다.)
중후반부에서는 여느 세계사 책과 큰 차이가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또, 하나 지도가 조금 더 많았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지리에 관심이 많아, 머리 속에 시대별 세계 지도를 넣고 있지 않는 이상, 머리 속에 명확하게 
정리되지가 않을 것 같다. 단원별로 이해를 돕기 위한 지도나 그림이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마지막으로, 각종 용어들에 대한 각주가 없는 점도 아쉬운 점이다.
읽다 보면 모르는 단어나 내용들이 나오는데, 설명이 없어 머리에 명확히 다가오지 않는 것들이 
있다. 예컨대, '바지선'이라는 단어를 아는 분들이 많지 않을 것 같다.
화물의 운송을 위해(상선의 개념하고는 다르다.) 만들어진 평평한 형태의 동력장치가 없는 배를 
의미하는데, 이 단어는 내가 관련 업종에 지식을 가지고 있기에 이해가 된 부분이지,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단어가 아니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해당 단어를 몰라도 문맥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지만, 기왕, 지식을 전달하는 책이라면, 그런 배려정도는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몇몇가지 아쉬움을 남기면서 책을 덮었지만, 내가 세계사에 대해 무지함으로 인해 발생된 점들이
더 많으리라고 생각되며, 해당 영역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충분히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이다.

식량 생산의 미래와 인류의 미래를 위한 현재의 준비 과정에 대해.. 녹색 혁명이라는 주제로 
정리된 마지막 파트는 많은 생각의 여지를 남겨준다.. 인류가 과연 환경 재앙을 피하면서도,
모두가 풍족하게 먹고 살 수 있는 식량의 확보를 이뤄낼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d******4 2012.03.16. 신고 공감 7 댓글 17
리뷰 총점 종이책 주간우수작
식량의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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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의 세계사    먹거리 [발음:먹꺼리] 사람이 살아가기 위하여 먹는 온갖 것. (네이버 국어사전)   삶이 꼭 먹거리만을 위한 것은 아니라고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이 외쳐오지 않았는가? 위의 사전적 정의에 한마디를 추가하면 멋들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사람이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살아가기 위하여 먹는 온갖 것’이라는 정의 가 더 낫지 않은가? 나는 오늘도 좀 더 나은 삶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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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의 세계사 

 

먹거리 [발음:먹꺼리] 사람이 살아가기 위하여 먹는 온갖 것. (네이버 국어사전)

 

삶이 꼭 먹거리만을 위한 것은 아니라고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이 외쳐오지 않았는가? 위의 사전적 정의에 한마디를 추가하면 멋들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사람이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살아가기 위하여 먹는 온갖 것이라는 정의 가 더 낫지 않은가? 나는 오늘도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살아가기 위하여 밥이라는 먹거리를 세 끼 다 먹었다.

 

인간의 욕구는 타고난 것이며 욕구를 강도와 중요성에 따라 5단계로 말한 매슬로는 욕구 5단계설의 가장 낮은 단계인 1단계에서 먹고 자는 생리적 욕구가 위치한다고 하였다. 일단 먹고 나서야 다음 단계, 또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 최종적으로 자아실현의 단계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그렇다. 먹거리가 없고서는 자아실현도 힘들다는 것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하지만, 내가 살아가는 삶에서 이러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 및 고민은 오직 무엇을 먹을까?’에만 고정되어 있었다. 책을 접하면서 먹거리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조금 비켜나가는 즐거움을 얻을 수 있었다. 저자의 경쾌한 문체(물론 엮자의 몫이었겠지만)로 책에서는 이러한 먹거리에 대한 생각에 대하여 그의 기원, 역사, 사회에 어떠한 영향이 미쳤는지 마지막으로 식량의 미래에 까지 줄곧 재미있는 관점으로 풀어내었다.

 

1부 식량과 문명의 기원을 읽으면서 농업은 언제부터 시작되었고 왜 주 2일제의 수렵의 삶의 패러다임이 주 7일의 농사라는 힘든 삶으로 변화되었는지 호기심이 가득하여 책장을 넘겼다.

 

(P40.) …새로이 안정을 찾은 기후가 농사 채택을 촉진한 유일한 요인이었다면, 세계 곳곳에서 동시적으로 농사가 지어졌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으며, 이것만 보아도 다른 요인들이 함께(수렵에서 농사로의 전환에 대하여) 작용한 것이 분명하다. 그런 다른 요인들 가운데 하나는 정주(定住)가 이전보다 증가한 것이었다. 세계의 일부 지역에서는 수렵채집민이 이전보다 덜 이동하고, 한해 동안에 한 아영지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고, 심지어 영구 정착지를 만드는 일이 생겨났다….

 

정주(定住), 같은 말로 토착, 일정한 곳에 자리를 잡고 사는 것이 수렵에서 농사로의 전환을 이루었다고 한다. 한 곳에 자리를 잡고 사는 것이 여러 곳을 이동해야 하는 변화무쌍한 삶보다 더 안정된 삶이라 생각된다. 그렇기 때문에 불규칙적인 소득인 수렵보다는 그나마 더 규칙적인 농사로의 패러다임 쉬프트를 이루었으리라. 인간이라는 것이 처한 환경에서 어떠한 것을 선택했다기 보다는 처해진 환경에 내던져짐으로 그 환경에 적응해 나가는 것이 더 맞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당시 농사를 선택(?)한 사람들은 그 이유가 어찌하였건 당시 상황에서 가장 본인들에게 맞는 것이었으리라.

 

5부 무기로서의 식량에서는 전쟁에서 나타나는 식량의 중요성을 짚어주고 있다. 물론 재미있게. 고대시대의 전쟁에서부터 근대의 나폴레옹, 미국과 영국의 독립전쟁, 미국의 남북전쟁 등 실제적인 전쟁에서의 식량을 중요한 전쟁양상의 변화점으로 보았다. 저자가 손자병법이나 삼국지를 접하였더라면 중국에서의 고대전쟁도 다루지 않았을까?

 

(P221.) 그의(나폴레옹) 군대가 보여준 유례없는 속도와 기동성(필요할 경우 전통적인 보급 체계에서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는 프랑스 군의 능력)은 이번 승리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나폴레옹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고찰했다고 전해진다. “군대는 배[]로 행군한다.”

 

극단적인 생각이겠지만 나폴레옹은 먹거리의 적절한 공급으로 전쟁에 성공하여 먹거리의 공급실패로 전쟁에 실패하였다고 한다. 보급. 그때도 그러하였지만 지금도 전쟁에서는 빼어 놓을 수 없는 중요한 것이라 생각된다.

 

책을 읽어가면서 먹거리라는 것을 가지고 이렇게 재미있는 있는 이야기로 풀어낼 수도 있다는 것에 감탄하게 되었다. 앞으로 내 삶에서는 이러한 다양한 스토리가 있는 먹거리의 섭취함에 있어서, 나의 입에 들오기까지 여러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쳤을 것이므로 그 많은 사람들에 감사하며 배속을 채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o******4 2012.02.22. 신고 공감 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왜 먹거리 선택이 정치인가 : 식량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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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정무역 커피하우스를 운영한다. 하고 많은 커피 가운데, 나는 공정무역 (유기농 혹은 자연산)커피를 택했다. 동티모르 사메 사람들(과 자연)이 만든 커피, 멕시코 치아파스 사람들(과 자연)이 만든 커피, 에티오피아 시다모 사람들(과 자연)이 만든 커피가 그것이다. 설탕(시럽) 또한 파라과이의 공정무역 유기농 비정제 설탕을 쓴다. 우리는 그렇게 가능하면 공정무역과 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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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정무역 커피하우스를 운영한다. 하고 많은 커피 가운데, 나는 공정무역 (유기농 혹은 자연산)커피를 택했다. 동티모르 사메 사람들(과 자연)이 만든 커피, 멕시코 치아파스 사람들(과 자연)이 만든 커피, 에티오피아 시다모 사람들(과 자연)이 만든 커피가 그것이다. 설탕(시럽) 또한 파라과이의 공정무역 유기농 비정제 설탕을 쓴다.


우리는 그렇게 가능하면 공정무역과 유기농을 쓰고자 노력한다. 이리 한다고, 나를 윤리적 인간이나 착한 사람으로 오해하지는 말라. (나는 공정무역 제품 소비를 ‘착한 소비’라고 일컫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나는 그저, 정치적 선택을 한 것이다. 공정무역 제품을 택했다는 것. 유기농 재료를 사용한다는 것. 또한 그것들을 소비자들에게 연결시켜준다는 것. 왜 정치적 선택일까?


공정무역은 기존 자유무역 체계가 지닌 극심한 불평등과 불공정, 거대 자본의 횡포에 소극적이나마 저항한다. 즉, 나는 대규모 플랜테이션 농장주(자본)와 거대 커피회사(와 유통업체)의 뱃대지를 불리는 일에 더 이상 동참하기 싫다. 그런 의미도 품고 있다. 저임금 (커피)노동자와 그 가족의 지속가능한 삶과 우리가 하나의 연결된 세계임을 인식하는 것 또한 내가 공정무역 커피를 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멕시코 치아파스 커피는 특히 멕시코 혁명군 사파티스타에 대한 지지를 표현한 것이다.  


유기농도 그렇다. 그것은 환경에 대한 우려이자 무차별적 생산을 위한 땅과 식물에 대한 자본의 학대에 반대하는 의미다. 유기농이 몸에 좋다고 선택했다기보다는 이런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것도 생각해보자. 대형 마트의 확장이나 이용을 보이콧하는 행위. 거대 커피체인을 이용하지 않는 행위. 이는 거대 식품복합체 중심의 시스템에 반대 혹은 저항하는 ‘정치적’ 행위다. 나는 이들의 확장이 인간과 사회를 획일화 시킨다고 본다.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앗는다. 그들은 싸고 질 좋은 상품을 제공한다는 명분을 내걸지만 새빨간 거짓말이다. 소비자들의 선택과 사유를 앗아가는 교묘한 정치적 행위다.   


식량 선택의 정치학이다. 《한국음식문화박물지》의 황교익 선생은 “정치는 먹는 것을 나누는 행위”라고 했다. 나는 완전 동의한다. 왜? 어렵지 않다. 누가 더 먹고 누가 덜 먹을 것인지, 누가 좋은 것을 먹고 누가 나쁜 것을 먹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정치다. 그것이 무엇이든 먹는 것을 놓고 핑퐁하는 것이 또한 정치다. 그러나 한국인, 오랫동안 속았고 여전히 속고 있다. 먹는 것이 정치와 상관없다는 세뇌(!) 때문이다.


그런 족속들이 있다. 먹을거리 선택이 비정치나 탈정치로 여겨지길 바라는 족속들. 지금의 먹을거리 유통과 판매를 통해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정치적으로 비춰지길 바라지 않는다. 왜 먹는 것 갖고 그러냐고 되레 반격한다. 식량의 정치학에 우리가 제대로 눈을 떠야 할 이유가 그것에 있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먹는 것이니까!


《식량의 세계사》는 식량이, 먹는다는 것이 왜 정치적인지 오랜 역사를 통해 증명한다. 식량이라는 창을 통해 역사를 바라보고 지금의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이 책이 지닌 미덕이다. 책에 의하면, 식량은 사회 변모, 사회적 조직, 지정학적 경쟁, 산업 발전, 군사적 충돌, 경제적 팽창 등에 촉매 작용을 했다. 즉, 문명의 기반이자 권력의 시초였다. 이 말을 보자.

 

“화폐가 발명되기 오래전에 고대사회 전체를 통틀어 식량은 곧 부였고, 식량의 지배는 곧 권력이었다.”(p.5)

 

먹는 것 갖고 장난치는 법, 아니다. 그것은 오래 전부터였었다. 먹을 것을 지배하는 자가 곧 권력인 것은 지금이라고 다르지 않다. 지난해 아랍권에서 들불처럼 일어난 혁명.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으로 곧잘 표현됐지만, 그 궁극은 먹을 것을 달라는 요구였다. 민주주의는 곧 먹을 것과 통한다. 우리의 1980년대도 그랬다. 1998년 노벨 경제학상을 탄 인도의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의 말도 그것을 표현한다. “비교적 언론 자유가 보장된 독립적이고 민주적인 국가에서 심각한 기근이 발생한 적은 없었다.” 

 

먹지 못하면 인류는, 아니 어떤 인간도 삶을 유지할 수 없다. 먹는 것 자체에 대한 근심이 비교적 덜 한 지금의 한국, 식량에 대한 논의나 사유가 건강 측면에 치우친 것은 심히 유감스럽다. 식량이 인류의 역사와 문명을 어떤 식으로 바꿨고, 우리 역사에서도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한 사유가 없으니, 많은 우리는 먹을 것을 너무 우습게 본다.

 

그런 면에서 산업혁명이 증기기관의 발명에만 기댄 것이 아니라, 설탕과 감자가 산업시대의 동력으로 역할을 했다는 이 책의 관점은 신선하고 타당해 뵌다. 즉, 노동자들에게 설탕과 감자라는 저렴한 먹을거리를 제공함으로써 산업혁명은 쭉쭉 뻗어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노동자 없이 산업혁명은 완수되지 못했을 것이므로.

 

아울러, 식량 무역 경로가 ‘세계화’의 단초였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식량만 바다를 건넌 것이 아니었다. 문화와 종교도 바다를 건넜다. 특히 특히 향신료를 둘러싼 이전투구는 흥미진진하다. 아랍의 향신료 무역 독점을 깨트리려는 유럽의 열망이 신세계의 발견을 가져온 것이다. 이는 곧 유럽-아메리카-아시아를 잇는 해상무역이 이뤄진 한편 식민시대를 열었다.

 

“유럽 국가들이 제국을 건설하기 위해 경쟁하면서 식량은 인류 역사에서 그다음의 거대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영향을 미쳤다.”(p.6)

 

물론 그전에 농사가 있었다. 농사는 결국 땅을 착취하는 일이라는 내 생각에 이 책은 좀 더 깊은 역사를 들려준다. 주2일 노동(?)이면 충분했던 수렵채집민의 생활을 주7일 노동으로 바꾼 것이 농업이었다. 생활방식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수렵채집이 다채롭고 여유 있는 삶을 만들었다면 농사는 정착을 빌미로 단조롭고 고된 삶으로 인류를 몰아넣었다. 

 

그렇다. 농사는 자연적인 일이 아니었다. 세계를 변화시켰고, 환경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삶의 방식은 또 어떻고. 《식량의 세계사》는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우리가 먹는 식량에서 자연산은 거의 없다고 단언한다. 대부분 식량은 선택적 품종 개량을 거친 결과물이다. 식물이나 동물 모두 마찬가지다. 당근이 원래 지금의 주황색이 아닌 흰색이나 보라색이었다면, 쉽게 믿어지는가? 옥수수도 자연적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란다. 허허. 내가 그리 좋아하는 옥수수가 품종 개량을 한 변태라니, 놀랍다. 참고로 세계 최초의 문명을 부양한 세 가지 식량은 밀, 쌀, 옥수수란다.

 

저자는 이렇게도 단언한다. “만약 농업이 오늘날에 발명된다면, 사람들은 이 새로운 기술을 기꺼이 받아들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럼에도 농업은 문명의 근거다. 길들여진 식물과 동물이 현대 세계의 기반 자체를 만들었다. 문명적 인식의 기반을 농업에 두는 것이 당연한 이유다.

 

새삼 재밌는 건, 농업이 계층을 분리했다는 주장이다. 농업이 집중화되면서 부자와 빈자, 지배자와 농민으로 나눠졌다. 오늘날 누가 누구보다 재산을 더 많이 가진 것이 일면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인류가 존재한 이래 대부분 기간 이런 일은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농업의 확산으로 식량으로 부와 권력을 나누는 것은 자연스러워졌다.

 

하긴 음식점을 놓고서도 우리는 이미 계층적 분화의 모습을 본다. 아주 값비싼 음식점과 싸구려 분식점. 식량은 분리하고 구분하는 역할을 오래 전부터 해왔던 것이다. 식량이 곧 부였고, 식량을 지배하는 것이 곧 권력이었으니까.

 

“식량에 대한 지배가 곧 권력이었던 까닭은, 사람과 동물을 먹여 살리는 식량이야말로 문자 그대로 모든 것을 굴러가게 하는 원동력이었기 때문이다.”(p.57)

 

헌데, 이 책이 내놓은 역사적 사실 하나는 지금의 풍경과 너무도 다르다. 거물. 이른바 권력층이자 (오피니언) 리더였을 텐데, 당시의 거물은 남보다 더 일찍, 더 늦게까지 열심히 일하고(이건 기본이요), 남에게 부를 나눠줄 때에야 존재감을 빛내고, 반드시 큰 잔치를 베풀고 신용을 쌓아야 했다. 그래야 지도자가 될 수 있었고, 집단을 부양하고 재분배를 통제하는 능력으로 지위를 평가받았다.

 

하다못해 멜라네시아에서는 집단을 부양하지 못하거나 너무 많은 몫을 차지하는 지도자는 쫓겨나거나 피살될 가능성까지 있었단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를 보라. 지도층의 위치에서 부패하고 사적인 부를 뒷주머니에 축적한 이명박(으로 대변되는)을 '거물'로 둔 우리들. 쫓겨나거나 피살될 가능성, 있나?

 

다시 식량 선택의 정치학으로 돌아가서. 왜 식량이 정치인가. 문명의 시작부터 식량의 정치적 위치를 조목조목 알려준 책은 1791년을 일단 주목한다. 식량을 이용해 폭넓은 정치적 쟁점을 드러내는 방법이 본격 등장했기 때문이다. 당시 노예제를 반대한 사람들은 설탕을 보이콧했다.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노예를 부리며 생산된 설탕. 그 설탕을 보이콧한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노예무역의 지지자가 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원한 것은 아니나 노예제를 조장한 데 일조했다는 것에 죄의식을 느끼고 반성의 의미로 행동에 나선 것이다. 설탕 불매!

 

나는 이 정치의 시즌에, 다시 정치를 생각한다. 먹을거리를 재차 생각한다. 아, 역시 식량은 독특한 정치적 위력을 지니고 있구나! 어떤 먹을거리를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는, 톰 스탠디지(《식량의 세계사》저자)의 말마따나, 사회적 신호 표시의 유력한 유력한 수단이다.

 

우리는 먹어야 산다. 살기 위해 먹고 먹기 위해 산다. 그러기 위해선 끊임없이 매일 매주 매달 매년 엄청나게 많은 먹을거리 선택의 기로에 선다. 이는 선거보다 훨씬 만흔 저치적 표현의 기회를 가진다는 말과 동의어다.

 

먹을거리를 선택한다는 것. 투표를 대체할 수는 없겠다. 그럼에도 먹을거리 선택이 우리가 일상적으로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정치적 선택임을 알 때, 우리는 좀 더 좋고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또한 우리가 살고 싶은 세계를 향한 발걸음임을 자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 것이나 먹겠다는 생각, 이제는 버릴 때가 됐다. 개념을 가진 사람이라면 무턱 대고 거대 자본의 프랜차이즈에 가선 안 되겠다. 무조건 가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보자는 뜻이다.

 

단순해 보이는 식량의 선택이 거대자본이 돌리는 착취구조에 협력하는 것일 수도 있다. 기존 질서에 의해 피 흘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 질서에 순응하는 것은, 비록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는 않는 것이라도 작금의 질서와 체제가 행하는 살인에 동참하거나 방조하는 일이다.

 

《식량의 세계사》는 그런 의미에서, 일상의 정치적인 선택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무엇을 먹을 것인가에 담긴 정치적 인문학적 성찰이다.  

       

“식량 선택의 결과와 정치학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나아가 더 넓은 사회적 우려에 대한 피뢰침으로 작동하는 소비재라는 식량의 이례적인 지위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즉, 여러분이 어떤 정치적 견해를 지니고 있건 간에, 그 정치적 견해에 따라 여러분이 꼭 구입하거나 또는 절대 구입하지 않는 종류의 식료품이 있게 마련이다.”(p.272)

 

18세기 프랑스의 미식가, 장 앙텔므 브리야 사바랭의 말로 끝맺자.

“국가의 운명은 어떤 식량을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는 멘붕(멘탈 붕괴)된 작자들의 미친 짓이고, 해서는 안 될 더러운 작태였다. 그 FTA를 몰아붙인 이들에게 '거물'이라는 타이틀을 붙여줄 순 없다. 그들은 자신의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99%의 시민들의 피를 빨아먹는 '거머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자, 식량 선택만큼 또 하나 중요한 시즌이 온다.

 

4월11일, 우리가 4년 동안 먹을 식량(?)을 선택하는 날이다. 강정마을과 구럼비 바위도 그렇고, FTA도 그렇고, 보편적 복지도 그렇고. 잘 선택하고 볼 일이다. 단순히 권력의 주체를 바꾸는 일이 아니라, 세상과 시스템을 바꾸는 일이 돼야 한다. 먹을 것 고르듯이!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작성됐다. 그러나 그런 사실에 영향을 받지 않고, 내가 느끼는 바 그대로를 긁적였다.) 



 

j******2 2012.03.19. 신고 공감 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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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의 역사와 산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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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의 세계사를 더듬어 보면서 식량과 산업화의 관련성을연계해 봄으로써 영국의 산업혁명과 우리나라의 근대화가 어느정도친연성이 있음을 알수 있다 따라서 충분한 농업생산성은 산업화의 동인으로 즉농업혁명의 완성은 산업혁명으로 전이가 됨을 알 수 있다  1.변화의 동인으로 본 식량: 전역사를 통해서 식량에 의해 모든 것이 수행되었다  2.식량을 통해본 세계사: 산업혁명은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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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의 세계사를 더듬어 보면서 식량과 산업화의 관련성을

연계해 봄으로써 영국의 산업혁명과 우리나라의 근대화가 어느정도

친연성이 있음을 알수 있다

 

따라서 충분한 농업생산성은 산업화의 동인으로 즉

농업혁명의 완성은 산업혁명으로 전이가 됨을 알 수 있다

 

 

1.변화의 동인으로 본 식량: 전역사를 통해서 식량에 의해 모든 것이 수행되었다

 

2.식량을 통해본 세계사: 산업혁명은 지구에 도달했던 과거의 햇빛을 파내어서(화석연료) 사용하는 것으로 충분한 햇빛의 현재사용중인 농업혁명과 배치됨을 알 수 있다

 

3.농업혁명에서 산업혁명으로는 충분한 농업생산성이 뒷받침 되어야만 가능함을 알수 있다.

 

k*******n 2017.01.14.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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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정말 이끌어가는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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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는 스토리텔링의 시대라고 말한다. 이전까지 우리들은 대부분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존재였다. 그렇게 소수의 저자들 혹은 학자들이 대부분 이야기의 생산을 맡았고 우리는 그저 소비자의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사실 상황이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이야기를 남들에게 들려주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게 있었고 그건 개인의 힘으로 불가능한 것이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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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는 스토리텔링의 시대라고 말한다. 이전까지 우리들은 대부분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존재였다. 그렇게 소수의 저자들 혹은 학자들이 대부분 이야기의 생산을 맡았고 우리는 그저 소비자의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사실 상황이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이야기를 남들에게 들려주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게 있었고 그건 개인의 힘으로 불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문학은 인쇄되어 출판을 하여야만 남들에게 들려줄 수 있었다. 영화는 고가의 촬영장비와 별도의 상영관이 있어야 보여줄 수 있었다. 바로 그러한 한정되어진 매개의 통로가 사람들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고 들려줄 수 있는 데 있어 장애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달라졌다. 테크놀로지의 발달이 이 매개의 통로들을 거치지 않아도 되게끔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굳이 남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별도의 인쇄나 출판을 거칠 필요가 없다. 보여주기 위하여 고가의 영상 장비나 상영관도 필요치 않다. 그러므로 스토리텔링의 시대라는 의미에는 이렇게 더 이상 사람들이 이야기에 있어서 소비자가 아니라 이제 생산자로 되었다는 의미 또한 강하게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모든 이가 소비자가 아니라 생산자가 되었다는 것은 그렇게 이제 소수의 지배적인 이야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다양한 이야기가 그와 대등하게 얼마든지 창출될 수 있다는 시대라는 것 또한 의미한다. 이러한 거시적 담론이 이제 미시적으로 분화되는 것, 또한 그러한 미시적인 것이 더 이상 주변에 머물지 않고 당당히 하나의 중심이 되어 그렇게 서로 대등한 다양한 중심들이 존재하는 것. 그것은 바로 현대를 정의하는 또 다른 이름인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특징이기도 했다. '메타 담론'에 의해 가려졌거나 버려졌거나 혹은 주눅들었던 작은 목소리들이 자신을 그렇게 만들었던 큰 목소리 못지않게 스스로의 목소리를 들려 줄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스토리텔링의 시대의 본질이며 또한 포스트모더니즘이 가진 궁극의 장점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오늘날엔 이제 그것이 가능하다. 네 명이 지하에 모여 만들어낸 일개 앱 어플에 불과한 '나꼼수'가 얼마든지 주류 언론의 프레임을 격파해 버렸듯이 말이다.

 

 

  그렇게 역사를 바라보는 것 또한 달라졌다. 아날학파 이래로 이제 역사를 더 이상 왕조나 전쟁 혹은 혁명 같은 거대한 사건들의 연대기로 보지 않는다. 역사는 이제 그것들을 그보다 훨씬 거대한 시간의 흐름이 우연히 만들어낸 빙산의 일각으로 간주하며 오히려 그와 같은 것을 형성한 기층에 존재하는 광대하고도 도도한 흐름을 쫓는다. 때로는 엠마누엘 라뒤리가 '랑그독'이란 지역 자체를 중심에 놓고 역사를 써 갔듯이 아예 인간 자체를 그 역사적 주체에서 배제시키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가 흔히들 생각할 수 있는 사건중심적 관점, 인간중심적 관점을 역사는 이제 서서히 지워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그동안 역사가 배제시켜온 작은 목소리들을 다시금 되살리는 것과 일치한다. 왕조 중심에 의해 가려졌던 민중의 삶을 복원하고 인간에 의해 가려졌던 사물들의 목소리들을 다시금 복원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렇게 잊혀졌던 사물들의 복원, 즉 인간이 주체가 됨으로써 오로지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었던 그들에게 다시금 인간과 대등한 하나의 주체의 자리를 인정해 주는 것은 이제 역사를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일례로 앞서 말한 라뒤리는 '랑그독' 지역 전체를 역사적 주체로 상정하고 살펴보니 랑그독의 그 오랜 역사 내내 일어난 기근, 전쟁을 비롯한 모든 사건들이 랑그독이라는 지역 자체가 마치 생물이 지니고 있는 항상성 처럼 스스로 수요와 공급을 맞춰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인간이 역사를 만들어가는 줄 알았는데 사실은 그 인간을 너머 오히려 인간을 하나의 도구로 역사를 형성해 갔던 주체가 있었음을 보게 된 것이다. 그렇게 사물을 다시금 되살려 내는 것은 인간이 역사에 대해 가지고 있는 오만을 깨뜨리는 작용을 한다. 세계의 중심은 오로지 인간이며 자연이란 인간에게 주어진 수단에 불과하다는 그 오만말이다. 그것은 물론 서구 대대로 이어져 온 인간 중심주의적 사고가 만들어낸 부작용이기도 했다. 사물이 지닌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임은 그렇게 우리 인간이 유일한 주체이며 자연은 다만 그를 위한 배경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깨뜨리는 계기가 된다. 그래서 인간 못지 않게 사물 역시 인간과 더불어 역사적 주체로 당당히 활동해왔음을 깨달아 자연에 대해 겸허의 시선을 가지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의 사물을 중심에 두고 그에 얽힌 역사를 살펴 봄은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톰 스탠디지의 '식량의 세계사'는 바로 그러한 책이다.

 

  의식주 중의 하나로 우리 인간의 지속에 있어 가장 필수적인 3대 기본 요소 중 하나인 식량을 역사적 주체로 삼아 원시시대 때 부터 지금까지의 역사를 살펴보는 책이다. 그렇게 톰 스탠디지는 그 식량이 태초부터 우리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으며, 그것이 부의 중요한 자원이 됨으로써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는 계급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대항해시대의 콜롬부스의 아메리카 발견나 산업혁명 같은 거대한 시대적 전환점들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또한 현대에 있어서도 이 식량이라는 것이 여전히 우리 역사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한결같은 관점으로 세세하게 풀어놓는다. 방대하면서도 세부적인 식량에 얽힌 이 역사적 사실들을 읽다보면 앞서 말했던 대로 정말 역사를 이끌어 온 것은 인간이 아니라 바로 식량이었음을 깊이 느끼게 된다.

 

   결국 톰 스탠디지의 '식량의 세계사'라는 책을 통해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역사책들을 그저 하나의 정보 창고로만 여기지는 말자는 것이다. 내 생각에 이렇게 역사를 이끌어가는 주체로 인정하고 그 사물에게 귀를 기울이는 책들은 차라리 하나의 증언에 가깝다. 바로 우리가 세계에 대해 그리고 나 아닌 다른 이들에 대해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가 그 무엇보다 바로 '겸손'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증언'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톰 스탠디지의 '식량의 세계사'는 귀담아 들어 볼만한 증언이 아닐까 한다.

 

 

   



l****1 2012.03.17. 신고 공감 2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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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의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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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가장 기초적인 필요는 의식주이다. 그중에서 사람이 성장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먹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이 관계하는 데에 있어서 먹을 것을 빼놓을 수 없다. 먹으면서 정이 싹튼다는 말이 있듯이 함께 얼마나 많은 식사를 하느냐에 따라서 그 관계가 얼마나 진전이 되었는가를 판단할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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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가장 기초적인 필요는 의식주이다. 그중에서 사람이 성장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먹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이 관계하는 데에 있어서 먹을 것을 빼놓을 수 없다. 먹으면서 정이 싹튼다는 말이 있듯이 함께 얼마나 많은 식사를 하느냐에 따라서 그 관계가 얼마나 진전이 되었는가를 판단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먹는 것 즉 식량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어지게 되는지에 대해서 한번쯤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그 고민에 대한 답을 주는 것이 이 책이다. 단순히 식량은 먹는 것이다 라는 것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는 다양한 시각에서 식량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식량의 가장 최초의 역할을 알아보자면 모든 문명의 기반이 되었다 라는 사실이다. 농업의 채택으로 새로운 정착 생활 방식이 가능해지면서 인간은 점차 문명의 발달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면서 점차 사회가 구성되고 무역 경로가 생겨지고, 상업의 교환뿐만이 아니라 문화와 종교의 교환까지 가져오게 되었다. 그리고 식량을 전쟁 무기로 사용한 일이 비일비재했고, 18~19세기에는 대규모 군사 충돌을 일으키는 새로운 차원의 일들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념의 갈들이 생겨지고 식량은 무역, 개발, 세계화 같은 여러 가지 이슈들로 전환되었다.

 

종합적으로 정리해 보자면 식량과 문명의 기원, 계급의 탄생, 대항해 시대, 산업혁명과 맬서스의 덫, 무기로서의 식량, 녹색혁명의 미래로 총 6부에 걸쳐서 식량의 세계사를 이야기 한다. 그저 먹을 것으로만 생활에 있어서 꼭 필요한 것으로만 여겨졌던 식량이 어쩌면 세계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 많은 역사적 흐름을 가지고 있음에 새롭게 깨닫게 된다.

 

무언가를 먹느냐, 먹지 않느냐에 따라서 종교적인 갈등을 일으키고, 그것으로 인해 전쟁이 일어나기도 한다. 무언가를 먹느냐, 먹지 않느냐에 따라는 그 사람의 신분의 부가가치가 높아지고 낮아지고 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식량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많은 의미를 부여해 주고 있다. 예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그냥 스쳐 지나가 버렸던 세상을 새롭게 보고 있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그래서 책 제목이 식량의 세계사 이지 않는가 라는 생각도 해 보게 된다. 식량을 통해서 새롭게 바라보는 세상을 보며 앞으로 살아가게 될 세상에 대한 여러 가지 많은 숙제를 받게 되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슈퍼마켓에서 그냥 스쳐지나가는 것이 아닌 새로운 환경과 신기술을 만들어 내는 식량에 대한 가치를 높이 평가해 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YES마니아 : 로얄 s****8 2012.02.2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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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식량의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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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인의 주식은 쌀이고, 서양인들의 주식은 밀과 감자이다. 인간은 생존하기 위해서는 매일 최소한의 양만큼의 식량을 섭취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식량은 어디서부터 생산되어 오는 것일까? 또, 왜 동양인의 주식은 쌀이고 서양인들의 주식과는 다른 것일까?  책을 읽기 전에는 우리가 매일 섭취하는 식량에 대해서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냥 막연히 당연히 우리 주변에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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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양인의 주식은 쌀이고, 서양인들의 주식은 밀과 감자이다. 인간은 생존하기 위해서는 매일 최소한의 양만큼의 식량을 섭취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식량은 어디서부터 생산되어 오는 것일까? 또, 왜 동양인의 주식은 쌀이고 서양인들의 주식과는 다른 것일까?


  책을 읽기 전에는 우리가 매일 섭취하는 식량에 대해서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냥 막연히 당연히 우리 주변에 있고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이라고 생각만 했지, 이런 식량이 어디서 왔고 왜 우리는 이런 종류의 식량을 먹게 됐는지 생각해보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 '식량의 세계사'를 읽고 나서 우리가 어떠한 이유도 없이 우리가 섭취하게 될 식량을 선택하지 않은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늘 아침 식탁 위에 올라온 음식들은 우리 인류가 살아온 환경, 정치사상, 문화가 담겨 있다. 초기 인간이 선택한 식량인 옥수수는 어느 날 갑자기 '딱'하고 나타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창조물이다. 서양인들의 주식인 감자는 처음엔 생김세와 질병을 유발한다는 잘못된 소문 때문에 외면받았었다. 하지만 감자의 쉬운 재배법과 다른 작물들의 흉작으로 인한 환경과 정치적 책략으로 주식으로서 자리 잡게 되었다. 통조림은 전쟁의 발발로 필요에 의해서 발명되었다. 또한 스탈린과 마오쩌둥은 식량은 사회주의 이념의 우수함을 내세우기 위해서 사용하기도 하였다.


  이러하듯 식량은 단순히 먹는다는 것에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인류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모든 부분을 담고 있는 것이 식량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식량이 가지는 다양한 의미와 유래에 대해 알게 되고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t********3 2015.12.2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