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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사대부의 밥상
"조선시대 사대부의 밥상" 내용보기
2008년 8월 초순으로 기억이 된다. 어느날 문득, 춘천 단골집의 막국수가 먹고 싶었다. 토요일 오전 10시쯤 춘천을 향해 차를 몰았다. 대략 1시쯤이면 도착해서 막국수를 먹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갖고서...  토요일 오전 경춘가도 입구부터 차량들이 심하게 엉키고 있었다. 아~~ 맞다. 휴가철이다는 걸 미처 생각 못했다. 차량의 정체는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난 어쩔수 없이
"조선시대 사대부의 밥상" 내용보기

2008년 8월 초순으로 기억이 된다. 어느날 문득, 춘천 단골집의 막국수가 먹고 싶었다. 토요일 오전 10시쯤 춘천을 향해 차를 몰았다. 대략 1시쯤이면 도착해서 막국수를 먹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갖고서...  토요일 오전 경춘가도 입구부터 차량들이 심하게 엉키고 있었다. 아~~ 맞다. 휴가철이다는 걸 미처 생각 못했다. 차량의 정체는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난 어쩔수 없이 그저 차량의 흐름에 몸을 맞기고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차량의 정체는 계속 이어졌고, 워낙 막히는 국도라 중간에 되돌아 갈수 있는 방법도, 차량을 길옆으로 뺄 수 있는 방법도 없이, 막연히 차량의 흐름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혼자서 떠난 길이라 생리적인 현상도 해결하지 못하고, 끼니때가 한참이나 넘었지만 중간에 차를 세울 수 있는 여건은 더더욱 아니었다. 한참을 지나 춘천에 도착한 것이 밤 10시 반, 이미 막국수 집은 문을 닫아버린 시간이었고, 이 고생을 하고 온 길을 아무 소득도 없이 다시 돌아가기는 너무 억울했다. 그래서 춘천에서 일박을 하고, 다음날 늦은 아침과 이른 점심으로 2그릇의 막국수를 먹었다. 맛있었다.

 

음식이란 한 끼의 배고픔을 해결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선호하는 음식을 취하기 위한 애식(愛食)은 이렇듯 어이없는 행동도 가능케 한다. 언론을 통해 소개되는 '맛집'과 파워 블로거의 포스팅을 따라 색다른 맛을 즐기려는 사람들의 욕구가 넘쳐나는 오늘날, 우리는 먹을 것이 넘쳐 나는 축복 속에서 탐식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탐식이란 음식에 대한 과도한 관심과 지나친 몰두를 뜻한다. 중세 기독교에서는 탐식을 '일곱 가지 대죄' 가운데 두 번째 죄악으로 꼽았고, 조선 시대에서도 탐식은 부모로부터 받은 몸을 망가뜨려 불효를 하게 된다거나 집안 살림을 거덜 내고 사회를 병들게 하는 것으로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조선의 지배이념인 성리학에서는 탐식을 부도덕으로 여기긴 했지만, 죄악으로 규정하지는 않았다. 조선정부는 신분에 따라 음식의 가짓수와 상차림의 격을 제한하는 법을 만들고, 그 규정을 어긴 사람을 처벌하겠노라고 공표했다. 하지만 실제로 규제를 강하게 하지는 않았다. 

 

이 책에서 살펴보는 조선의 탐식가는 그 종류도 다양하다. 먼저 권력의 달콤함을 혀로 느끼고자 했던 윤원형, 김안로, 정후겸, 커다란 밥상으로 부를 과시할려고 했던 졸부들, 중국 사대부들의 흥취를 그대로 따라했던 문화 사대주의자들, 금령을 비웃은 소고기 마니아들, 두부 먹으러 절간으로 달려간 호사가들, 음식조리서 <수운잡방>을 쓴 안동 선비 김유 등이 있다. 또, 진귀하고 맛난 음식을 찾아 먹고 기록한 이른바 '맛집 탐방형'의 대표적 인물로는 우심적, 두부, 순채 등에 대해 수많은 시를 써서 남긴 조선 초기 문신 서거정과 조선 팔도의 명물 토산품과 별미음식을 소개한 조선 최초의 음식 비평서인 「도문대작」을 남긴 허균을 들고 있다. 반면에 귀양살이의 고단함을 음식으로 달래고자 했던 추사 김정희, 신분 차별의 설움을 미식으로 달래려 했던 중인 이표, 신선처럼 살고 싶어 했던 이규경등은 탐식가로 분류하기보다는 다른 차원의 미식가였다. 한편 탐식의 정반대편에 선 사람들도 소개되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다산 정약용은 유배생활 내내 직접 채마밭을 가꾸고 밥을 상추로 싸 크기를 부풀려 먹으며 포만감을 느끼려 했다. 평소에도 소박한 식습관을 가진 그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 조선이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를 음식 사치와 주책없이 많이 먹는 것에서 찾았던 이익도 콩을 주식으로 한 소박한 식단을 몸소 실천한 이른바 '악식가'(맛없고 거친 음식을 즐겨 먹는 사람)였다. 대식가로는 홍길동의 형 홍일동과 정응두, 김좌점을, 조선시대 대표적인 술고래로는 횽윤성을 꼽고 있다.

 

또한 이 책에선 조선시대에 사대부가 가장 즐겨먹는 소고기와 소고기 탐식풍속인 난로회, 사대부들이 동경했던 귀거래의 대표음식인 순챗국과 농어회에 관한 애기, 조선후기에 양반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며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인 열구자탕(신선로)이 중국음식임을 사료를 통해 밝히고 있어, 마치 숨겨진 역사를 보는듯이,읽는  재미 또한 솔솔하다

하지만 조선시대 선비들의 탐식풍속인 난로회, 순챗국과 농어회를 좋아했던 이유가 음식 본래의 맛이나 멋을 따른게 아니라, 중국의 풍속을 그대로 따른 문화 사대주의에 근거한 것이었다는 것과, 선비들에게 '환상의 풀'이라 불림을 받은 순채가 일제강점기 때 일제에 의해 우리네 밥상에서 사라졌다는 사실은 읽는 내내 입맛을 씁씁하게 했다.

 

이 책을 보면서 아쉬운 것은 이 책의 제목이 ‘조선의 탐식가’가 아닌 ‘조선 사대부의 밥상’이라고 하였으면 더 좋았을 뻔 했다. 저자가 책의 후기에 “탐식이라는 주제와 거리가 있는 이야기들까지 주섬주섬 엮어 놓았기 때문에, 조선 선비들의 음식문화를 써놓고 탐식가 이야기라고 우기는 것 같아 읽는 분들에게 미안하다” 고 기술한 것처럼, 이 책은 탐식가의 애기가 아닌, 조선시대의 음식문화에 관한 애기가 주를 이룬다. 아마 전체적인 책의 분류도 그런 식으로 전개되었으면 이야기 구성이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조금 더 깔끔해지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더군다나 미식과 탐식에 대한 정확한 구분이 없이 쓰여진 용어는 읽는 동안 상당한 불편을 야기했다.

 

예전 돌아가신 할머님이 생전에 음식에 대한 2가지 교훈을 항시 말씀하셨다. 첫째는 ‘한번 거른 끼니는 절대 챙길 수 없다’는 것과 둘째는 '사람은 평생에 먹을 음식의 양이 정해져 있으니, 그 양을 빨리 먹으면 빨리 가고(죽고), 천천히 먹으면 늦게 간다(죽는다)'고 하셨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음식에 관한한 최고의 진리가 아닌가 한다. 첫 번째 말씀은 어떠한 경우라도 끼니를 거르지 말고, 음식을 먹을 수 있음을 소중히 생각하라는 말씀이셨고, 두 번째는 소식(小食)을 하라는 가르침이셨다. 최근 현대인의 모든 병의 근원이 영양과다에서 오는 것 이니, 결코 틀린 말씀은 아니셨다.

 

우리가 현대를 살아가면서, 무엇을 어떻게 먹을 것인지 분별해야 할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옛 사람들의 탐식, 혹은 미식을 그린 이 책에서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며 먹는 것" 보다 "음식에 담긴 삶을 맛보는 것"의 미덕을 발견하는게 탐식의 해악을 피하면서 멋스럽게 먹는 미식가의 길을 갈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는것을 탐식이라고 단정할수 있을까? 한번 내몸에 들어온 음식은 다시 되돌릴수 없다. 단순히 금전적인 이유가 아닌 내몸에 들어와 내몸의 일부가 되는 음식을 선택함에 있어 조금 더 좋은(맛있는) 음식을 찾는것을 탐식이 아니라, 미식이 아닐까 한다. 한번 먹은 끼니와 놓쳐버린 끼니는 절대 되돌릴수 없기에...그럼 막국수 한그릇을 먹기 위해 하루를 소비하고, 스파게티 한 그릇을 위해 추운겨울 3시간을 길에 서서 기다리는 난 미식가일까?? 탐식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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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 2012.02.22. 신고 공감 14 댓글 26
리뷰 총점 종이책
허균이 조선 최초의 맛 칼럼니스트이자 미식가였다고?-조선의 탐식가들
"허균이 조선 최초의 맛 칼럼니스트이자 미식가였다고?-조선의 탐식가들" 내용보기
어쩌다 밥먹으면서 보게 되는  '한국인의 밥상'.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밥을 먹으면 밥맛이 훨씬 더 좋아지는  느낌이 든다. 각 지역에서 나오는 재료들로 만든 푸짐한 밥상을 받아든 최불암씨를 보니 식욕이 솟을 수 밖에. 전국 방방곡곡 각 지역의 특산물로 만든 별미를 먹는 것만해도 호사인데 거기에다 출연료까지 받는 최불암씨가 부러워지기까지 하는데 이런 경우 최불암씨를 탐식
"허균이 조선 최초의 맛 칼럼니스트이자 미식가였다고?-조선의 탐식가들" 내용보기

 

어쩌다 밥먹으면서 보게 되는  '한국인의 밥상'.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밥을 먹으면 밥맛이 훨씬 더 좋아지는  느낌이 든다. 각 지역에서 나오는 재료들로 만든 푸짐한 밥상을 받아든 최불암씨를 보니 식욕이 솟을 수 밖에. 전국 방방곡곡 각 지역의 특산물로 만든 별미를 먹는 것만해도 호사인데 거기에다 출연료까지 받는 최불암씨가 부러워지기까지 하는데 이런 경우 최불암씨를 탐식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이때 탐식가의 탐자는 찾을 探, 탐즐 耽  탐낼 貪 중 어느 쪽일까? 모두 다 해당하지 않을까. 먹을 것을 찾아다니고, 즐기고, 탐내고.

 

'조선의 탐식가들'을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이 그랬다. 이 탐식가에선  어떤 한자를 쓸 수 있을까?하고.

이 책에는 조선의 음식과 인물을 다루고 있는데, 이 중 허균이 인상적이었다.  혀균과 달리 정약용은 유배 뒤에는  야채를 키우며 음식을 절제했던데 비해 이 당대의 풍운아 허균은 자신은 평생 먹을 것만 탐한 사람이라고 스스럼없이 털어놓았다니 조선시대에 손꼽히는 탐식가이긴 했나보다.

 

명문가 출신으로 먹을 걱정없이 살았던 그였지만 이 책에서는 그가 탐식을 하게 된 원인을 그의 성장사, 애정결핌에서 찾고 분석하고 있는 것은 좀 의외였다. 거칠 것 없었던 그가 호방하게 술안주를 즐긴 정도가 아니었을까 짐작했는데, 그는 부임지에서 식도락을 꽤 즐겼고, 그것이 부임하는 즐거움으로 여겼다니.

그의 탐식은 단순히 취향이나 식도락의 경지에 그치지 않았다. 음식품평서 '도문도식'까지 냈으니 조선최초의 맛컬럼니스트였던 셈이다. 그는 맛마저도 학구적으로 탐구했던 진정한 탐식가의 경지에 이르렀던 셈이다.

 

허균같은 탐식가가 있었지만 군자를 추구했던 성리학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식도락이나 탐식을 권장했을 리는 만무하고, 그런만큼 탐식은 결코 권장되는 덕목이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절제가 권장되었겠지만 하지만 인간의 본능인 식욕을 마냥 억누를 수는 없었을테고. 더욱이 사대부들은 끼니 해결을 넘어  체면을 차리면서 탐식의 자리를 만들었던 것이고, 권력의 전리품처럼 진미를 찾는 경향까지 있었다.

 

불교를 숭상했던 고려에서 육식은 금기시됐지만, 조선에서는 육식이 금기시되는 분위기도 해제됐다. 우심적은 존경하는 선비에게 바치는 음식으로, 난로회를 통해 함께 모여서 소고기를 즐겼고,우금령이 내려져도 소고기 수요는 여전했다. 심지어 난로회에 정조가 참석한 경우도 있었으니, 조선의 소고기 사랑은 유별났다.

 

이 책에서는 소고기 외에도 개고기나 두부 순챗국와 농어회, 그리고 승기악탕(勝妓樂湯) 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승기악탕은 왜관을 통해 전해진 일본음식 스기야키와 스키야키가  조선화돼 인기를 끌게 된 대표적인 경우였다.

 

군자를 추구하는 성리학의 세계에서 탐식을 즐겼다는 것은 개인에게, 사회에 어떤 의미였을까.조선의 탐식은 복잡하게 읽혔다. 지금처럼 음식이 상업적으로 개발되는 상황이 아닌만큼 식도락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탐식이 권력과 부를 과시하는 수단이었다는 점에서 탐식을 통해 본능적인 욕망과 과시욕을 충족하려한 심리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것은 사대부들이 욕망에 눈을 떠가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고, 자신들에게 가해졌던 성리학의 압박에서 조금은 느슨해져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요즘 유명한 맛집에 가서 인증샷을 올리며 행복한 일상을 과시하는 현대인처럼 부와 권력과 행복함을 과시하는 것처럼 시대는 변화해도 결국 음식을 대하는 인간의 욕망은 크게 변하지 않은 것이다.

 

 

 

 

e****0 2018.11.16. 신고 공감 4 댓글 5
리뷰 총점 종이책
조선의 탐식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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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받았을 때 가슴이 설레었었다. 내가 무척이나 원했던 책이었기에 얼른 들춰보고 싶었지만 갑자기 너무 바빠져 곁에 두고 안타까움에 마음만 급했었다. 그래도 틈틈히 손에 들었는데… 이런!!! 첫 장을 읽으면서 내가 생각한 것은 ‘내가 생각한 그런 종류의 책이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또 하나의 생각. 도대체 왜 이 책의 제목이 왜 ‘조선의 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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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받았을 때 가슴이 설레었었다. 내가 무척이나 원했던 책이었기에 얼른 들춰보고 싶었지만 갑자기 너무 바빠져 곁에 두고 안타까움에 마음만 급했었다. 그래도 틈틈히 손에 들었는데… 이런!!! 첫 장을 읽으면서 내가 생각한 것은 내가 생각한 그런 종류의 책이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또 하나의 생각. 도대체 왜 이 책의 제목이 왜 ‘조선의 탐식가들’인지 하는 것. 하지만 이것 또한 후기에 있었다. ‘탐식이라는 주제와 거리가 있는 이야기들까지 주섬주섬 엮어 놓았기 때문에 조선 선비들의 음식문화를 써 놓고 탐식가 이야기라고 우기는 것 같았다’라고. 역시 작가도 마음에 걸렸었던 거다.

 

이 책은 내가 생각한 것처럼 조선시대의 음식문화에 대한 전반적인 것은 아니었고, 그것보다는 좁은 의미의 책이었다. 하긴, 조선시대의 음식문화를 모두 기술하려면 페이지가 더 많았어야 했으리라. 어찌보면 몇 가지의 음식과 그것에 얽힌 사람들에 대해서만 자세히 기술되어 있어 겉핥기식의 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것도 사실이다.

 

존경하는 선비에게 바치는 음식으로 멋스러움이 강조되었다는 우심적, 혜경궁 홍씨의 생일상에까지 올랐다는 개고기, 그리고 금주령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접대에 있어 없어서는 안될 것이기에 양반가에서는 절대로 마르지 않았다는 술. 그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흥미롭기도 하지만 서글프기도 하다.

조선의 건국으로 성리학이 나라의 근간이 되면서 가능해진 육식. 그에 대한 영향으로 일어난 여러가지 사회적 현상들. 우금령에도 불구하고 살인을 저지르면서까지도 소고기를 공급을 해야 했던 시대적 상황이, 또는 남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그 맛을 잊을 수 없어서 구와 견으로 구별해 가면서까지 개고기를 취했던 것들에도 시대적인 아픔은 공존했고,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 기호를 버리지 못했다. 수고하는 자와 그것을 취하는 자가 다르므로 그것에 대한 수고로움을 공유할 수 없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것이겠지서글프다.

결국 사대부의 밥상이라는 것 자체도 신분제도를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방책이었다지 않는가? 신분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백성들의 알권리를 무시한 '훈민정음 창제의 반대' 이유와도 일맥 상통하는 비극이라고 보면 너무 모르는 말일까? 그러니 우금령이든 금주령이든 단지 허울뿐인 명령밖에는 되지 못했을 것이다. 사대부들의 뱃속을 채워주기 위해, 또는 시심을 채워주기 위한 서민들의 수고는 누가 위로해 줄까?

 

윤원형, 정사룡, 박원종, 홍일동, 정응두, 홍윤성. 작가가 얘기하는 탐식가들에 부합하는 그들. 그것이 그들의 허영이든,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대리만족이든 그들은 그것으로 인해서 만족감을 얻었고, 또 정적들에게 본인들을 제거할 빌미를 제공하는 수단이 되어 탄핵을 받았으며, 가지고 있던 지위에서 끌어내려졌다. 그나마 그것과 구별하여 미식가라는 말을 덧붙여 줄 수 있는 사람이 자유로운 영혼의 허균이라는 사람이었을까? 단순하게는 홍길동의 저자이며 난설헌과는 남매인 그. 어려서부터 주어진 환경 덕분에 많은 음식을 접할 수 있었지만 마음의 허기를 풀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던 그것이, 너무나도 격의없이 자유로운 그의 행동과 글들로 인해 그의 미식가적 취향마저도 적이었던 누군가에게 제거의 빌미를 주는 수단이 되고 말았고, 실제로 죽임을 당했다. 아 무서워라~~

 

여기까지만 보면, 이 책이 참 많이 우울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두부”. 이 얼마나 포근한 느낌인가? 어감도 좋고 발음할 때 입모양도 예쁘다. 내가 좋아하는 두부가 서민음식이라고만 알고 있었건만 처음에는 사찰에서만 만들 수 있었고, 또 궐에서만 먹을 수 있었다니 놀랍다.(남들에겐 기본상식이려나?) 게다가 명에 보낸 공녀들에게 두부만드는 법을 깨우쳐 보냈다고 하니 외교로써도 한몫 단단히 한 대단한 음식이지 않는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제대로 된 두부요리는 어렸을 적 할머니께서 만들어 주셨던 따끈했던 두부외에는 몇 번 먹어보지 못한 것 같다. 그리고 또 한가지, "도미면" 오랑캐로부터 함경도를 지키기 위해 온 허종장군을 위해 주민들이 정성껏 만들어 바쳤다는 정성가득한 음식. 아직 먹어본적은 없지만 궁금한 음식이다. 작가의 말마따나 의미로만 따져도 신선로보다는 주목받아야 할 음식이라는 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식탐에 얽힌 뒷배경에 대한 것을 말하고자 함인지, 식탐했던 사람들의 말로가 어떠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인지, 그와 반대된 청빈해야 함을 말하고자 함인지 솔직히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 모든 얘기들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고, 전혀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되면서 이런 것들을 더 잘 알고자 하는 궁금증이 뭉게뭉게 피어나더라. 특히, 두부와 정약용, 허균에 대해서 더 궁금해지게 만드는 책이다.!!!!

 

e*******e 2012.02.27. 신고 공감 3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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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식과 미식의 차이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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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식과 미식의 차이는 무엇일까? 맛 집으로 넘쳐나는 세상이다. 어딜 가든 맛있는 음식으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음식점들이 부지기수다. 먹을거리가 넘쳐나는데도 막상 무엇을 먹을지 난감할 때가 많다. 음식이란 사람의 삶을 영위하는데 기본적으로 갖춰야할 의식주 중에 하나다. 하지만, 먹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은 사람에게 음식이란 그저 배고픔을 면할 수 있을 정도면 그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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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식과 미식의 차이는 무엇일까?

맛 집으로 넘쳐나는 세상이다. 어딜 가든 맛있는 음식으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음식점들이 부지기수다. 먹을거리가 넘쳐나는데도 막상 무엇을 먹을지 난감할 때가 많다. 음식이란 사람의 삶을 영위하는데 기본적으로 갖춰야할 의식주 중에 하나다. 하지만, 먹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은 사람에게 음식이란 그저 배고픔을 면할 수 있을 정도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피할 수도 없는 것이라는 말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여기에도 해당된다면 꼭 맞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탐식이나 미식가들이 그들이 아닐까? 아니 그들은 먹는 것 자체를 좋아하고 찾아다니기까지 하는 사람들이기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은 맞지 않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음식을 즐기는 사람들은 많다. 즐기는 것을 넘어 즐긴다는 말이 무색할 만큼 음식을 탐하는 경우를 ‘탐식가’라고 한다. 음식이 넘쳐나는 시대에 그 음식의 맛을 찾아다니며 것을 두고 왈가불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닐지라도 과유불급이라고 지나친 것은 피해야 옳다는 말이다. 맛을 찾아다니거나 음식에 과도한 집착을 보이는 경우는 현대에 들어 생긴 일이 아니다. 역사를 보면 다양한 시대에 지나친 음식에 대한 몰두가 지탄의 대상이 되거나 정적을 제거하는데 이용되기도 했다. 서양의 역사뿐 아니라 우리의 경우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이렇게 음식에 주목하여 조선시대 ‘탐식가’와 ‘미식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 김정호의 ‘조선의 탐식가’들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조선은 성리학이 지배하는 사회이기에 성리학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음식 또한 제한을 받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살생을 금했던 불교국가였던 고려이후 조선에 들어서면서 고기에 대한 금기가 풀리면서 음식문화에 대한 폭이 넓어졌다. 그것이 조선의 사대부들 사이에 음식을 탐하는 문화로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계급에 의해 12첩 반상이니 9첩, 7첩, 5첩 등으로 밥상까지 규제했던 사회에서도 탐식가들은 있었다. 조선의 탐식가들 경우 저자에 의하면 김안로와 윤형원과 같이 권력과 부의 맛을 밥상에서 느끼려 한 경우와 서거정과 허균처럼 진귀하고 맛난 음식을 찾아 먹고 기록한 이른바 '맛집 탐방형'도 있었다. 이들이 주목했던 음식으로는 우심적이나 두부, 순채 등이다. 하지만 이와는 달리 소박한 밥상론의 이덕무나 정약용처럼 소박한 식단을 지키며 살았던 사람도 있었다. 성리학이 지배하던 시대의 음식철학을 구현한 사람들은 성리학을 이념으로 살았던 사대부들 보다는 이덕무처럼 ‘중인’ 신분인 사람들이었다.

 

정약용과 개고기, 어쩜 부적절한 조합이 아닐까? 하지만 정약용은 형 정약전이 흑산도 유배생활에서 몸이 상했다는 것을 알고 개고기를 추천하며 그 요리법까지 알려주고 있다. 홍길동의 저자로 알려진 허균은 귀양을 가면서도 먹고 싶은 것이 있는 고장으로 가게 해달라고 했다. 개고기를 뇌물로 받고 사람을 추천한 김안로도 있다. 모두 성리학이 지배하던 조선시대 음식과 관련된 이야기다.

 

소중화로 자처하며 중국의 문화를 따라하는 것이 자신의 지위를 높이는 것으로 생각했던 조선의 사대부들은 음식문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리하여 중국의 누가 무엇을 먹었다는 기록의 의거하여 자신들도 그것을 좋아했다. 우심적이나 두부 등이 그 대표적인 음식이다. 또한 중국의 열구자탕이나, 일본으로부터 승기악탕과 같은 외국음식들도 당시에 유행했다는 것을 통해 당시 음식문화의 한 단면을 살필 수 있다. 저자는 소박하고 담박해야 할 성리학의 밥상을 뒤엎은 조선 시대의 탐식과 미식을 파고들었다.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가? 전국 곳곳이 맛 집이지만 ‘맛’에만 집중할 뿐 음식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는 드문 것이 현실이다.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며 먹는 것’ 보다 ‘음식에 담긴 삶을 맛보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닐까? 이 책 ‘조선의 탐식가들’은 각종 기록을 찾아 조선 시대의 음식문화를 살필 수 있게 한 것이지만 이를 통해 현대인들에게 음식의 가치와 의미를 살필 기회를 제공해 주는 책으로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m*****8 2012.09.2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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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사대부의 밥상에서 엿보는 그들의 탐욕
"조선의 사대부의 밥상에서 엿보는 그들의 탐욕" 내용보기
불교를 국교로 삼던 고려 왕조가 막을 내리고 새로운 조선 왕조가 열리면서 조선의 사대부들은 억눌렀던 식탐의 욕구가 더욱 드러내게 되었다. 하지만 성리학자로서 몸과 마음을 수양하며 절제를 미덕으로 삼으며 한편으로 풍류를 즐기던 이중적인 모습이었다. 이는 마치 늘 건강과 다이어트에 집착하면서도 이른바 ‘맛집’을 찾아다니는 오늘날의 현대인의 이중생활과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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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를 국교로 삼던 고려 왕조가 막을 내리고 새로운 조선 왕조가 열리면서 조선의 사대부들은 억눌렀던 식탐의 욕구가 더욱 드러내게 되었다. 하지만 성리학자로서 몸과 마음을 수양하며 절제를 미덕으로 삼으며 한편으로 풍류를 즐기던 이중적인 모습이었다. 이는 마치 늘 건강과 다이어트에 집착하면서도 이른바 ‘맛집’을 찾아다니는 오늘날의 현대인의 이중생활과 닮아 있었다.

 

 

  ‘조선의 탐식가’에서는 이러한 한계에 놓여 있던 조선 사대부들이 탐하던 ‘음식’들이 소개되어있다. 그 첫째로 소개되고 있는 음식은 소고기이다.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 오늘날 ‘한우’에 대한 입맛은 옛 조상들과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양이다. 당시 이러한 소고기 열풍에 조선 정부는 농사에 쓰이던 소가 마구잡이로 도축되어 우금령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그 식탐은 식을 줄 몰랐다. 특히 ‘우심적’이라 불리는 소의 안심으로 만드는 적은 중국 고사로도 전해져 사대부들 사이에 귀한 음식으로 여겨졌다. 그리하여 조선 사대부들의 풍류를 읊은 시 속에는 이 ‘우심적’이 자주 등장한다. 또한 ‘난로회’라는 세시 풍속을 만들기도 하였는데, 늦가을에서 초겨울 무렵인 이때 조선의 사대부들은 화로에 소고기를 구어 먹으며 국가의 우금령을 보란 듯이 비웃었다.

 

 

  오늘날 보신탕으로 찾는 ‘개고기’ 또한 조선의 사대부들로부터 전해진 것이다. 이는 성리학의 오행 사상에서 나온 복 풍습에서 비롯되었다. 초, 중, 말의 복날은 이른바 경일로 쇠의 기운이 성한 날로 보신탕과 삼계탕과 같은 뜨거운 음식을 먹어 쇠를 억눌러야 건강하다는 믿고 이를 ‘복달임’이라 불렀다.

또한 오늘날 많이 사랑받는 두부도 사대부들에게 사랑받던 음식이었다. 이는 일찍이 고려 왕조로부터 제례에 올리던 음식으로 ‘조포사’ 또는 ‘능침사’로 지정받는 절은 이 두부를 담당하던 왕실 소속의 공납을 담당하던 절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조선의 사대부들은 두부를 즐기기 위한 유흥 공간으로 절을 이용하기도 했다.

 

 

  그밖에도 순챗국과 농어회, 승기악탕과 같은 사대부들에게 사랑받던 음식들이 소개된다. 또 이런 식탐에 급급하던 부유한 사대부들과는 달리 소박한 음식과 차를 즐기던 정약용의 밥상이 대비된다.

이런 조선의 사대부들의 탐식하던 음식들은 절제를 미덕으로 삼던 당시 성리학적 잣대에 의해 그 기록이 세세하게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풍류를 읊었던 문학이나 당시 실록 등에서 그나마 엿볼 수 있을 따름이다. 어쩌면 이런 ‘맛’에 대한 예민한 기록의 부족은 당시 사대부들의 밥상에는 ‘탐미’가 아닌 감추고 싶던 ‘탐식’, ‘탐욕’만 가득했음을 보여주는 방증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기준에서 이 책의 말미에서 ‘미식가와 탐식가의 구분의 기준은 자신의 몸에 증거를 남기는 것이다’라는 말에 공감이 간다. 오로지 혀에서 즐겁고 그치는 음식들은 지나친 ‘탐’의 증거로 몸에 담는다. 진정한 맛에 대한 ‘미’는 입을 지나 마음으로 와 닿아 그 기록이 후세에까지 남겨지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YES마니아 : 로얄 i******i 2012.02.2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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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탐식가들을 통해 그들의 삶을 맛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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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은 먹는 것도 좋아하고, 만드는 것도 좋아 해서 탐식의 대가로 몸의 나이테가 점점 두꺼워져 가고 있다는 작가 소개를 읽으며 책을 펼쳐본다.   먹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다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엿보는 즐거움은, 동시대를 살지 못했던 궁금증과 신비로움이 새로움을 가져다 주기 때문일 것이다.   수많은 먹거리와 음식을 소개하는 프로그램과 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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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은 먹는 것도 좋아하고, 만드는 것도 좋아 해서 탐식의 대가로 몸의 나이테가 점점

두꺼워져 가고 있다는 작가 소개를 읽으며 책을 펼쳐본다.

 

먹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다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엿보는 즐거움은, 동시대를 살지 못했던 궁금증과 신비로움이

새로움을 가져다 주기 때문일 것이다.

 

수많은 먹거리와 음식을 소개하는 프로그램과 넘쳐나는 인터넷 정보들을 찾아 음식을 탐하는

현대인들과는 조선시대 탐식가들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하는 호기심과 나의 식탐과도 비교하며

출발한다.

 

“조선의 지배 이념인 성리학에서 탐식을 부도덕으로 여기긴 했으나 죄악으로 규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탐식은 부모로부터 받은 몸을 망가뜨려 불효를 하기 된다거나 집안 살림을 거덜 내고 사회를

병들게 한다고 목소리 높여 경고 했다.

그런데 정작 조선에서 탐식이 사회문제가 된 적은 소고기 탐식 외에는 별로 없었다. 그 까닭은 조선

사회의 농업 생산력이 워낙 낮았고, 국토가 좁고 기후가 단일하여 식재료가 다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탐식은 소수 권세가들이 누린 특권이었고, 인구의 다수는 기아에 항구적으로 시달렸다. 따라서 정부가

틀어쥐려 한 것은 일반 민중이 아닌 특권층의 목구멍이었다.“고 후기에 거론한 대로 소수 특권층들의

탐식한 음식들과 그들이 권력을 쥐게 된 배경과 조선시대의 생활상들이 이야기 된다.

 

책의 목차 대로, 존경하는 선비에게 바치는 음식이 되었다는 우심적 (소의 심장, 때론 염통과 간까지),

농업 안정을 위해 우금령(사사로이 소와 말을 도살하는 것은 마땅히 금지령이 있어야 한다)이 내려지면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들, 소고기를 구워 먹었다는 난로회와 양반들의 입을 달군 열구자탕(신선로), 사대부들의 개고기 사랑, 다섯 가지 미덕을 갖추었다는 두부사랑, 지금은 사라진 순채요리, 조선 최초의 음식 칼럼니스트인 허균, 채소밭을 가꾸며 살아가는 정약용의 소박한 밥상, 조선 사람들을 사로잡았다는 승기악탕, 그 외에 조선시대의 탐식가들이 소개된다.

 

식생활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이루는 토대이며 시대를 말하는 그 자체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조선시대의 탐식(음식에 과도한 관심과 지나친 몰두)을 통해 그 시대의

삶을 맛보고자 했음 이었을 것이다.

황교익이 정의한 탐식(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며 먹는 것)을 하는 현대인들에게

미식(음식에 담긴 삶을 맛보자)가가 되어 보기를 권하며 탐식의 해악을 피하면서

멋스럽게 먹자고 제안하고 있는 책이다.

나도 이젠 탐식이 아닌 미식가가 되어 보고자 한다.

 

j******5 2012.02.27.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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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식과 미식의 그 차이 속에서 만난 사람들,조선의 탐식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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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눈여겨 보는 짧막한 프로중에 EBS의 '천년의 밥상' 이 있다. 이 방송을 보다보면 단지 음식이 음식이 아닌 '우리의 역사와 삶'이란 것을 알 수 있다. 하나의 음식속에 깃들어 있는 우리의 질곡의 역사와 고난했던 삶이 그대로 담겨 있어 하나의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전통을 먹는 것과 같은 느낌이 있다. 그런 이유로 방송에서 나온 음식을 현실에서 접하게 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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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눈여겨 보는 짧막한 프로중에 EBS의 '천년의 밥상' 이 있다. 이 방송을 보다보면 단지 음식이 음식이 아닌 '우리의 역사와 삶'이란 것을 알 수 있다. 하나의 음식속에 깃들어 있는 우리의 질곡의 역사와 고난했던 삶이 그대로 담겨 있어 하나의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전통을 먹는 것과 같은 느낌이 있다. 그런 이유로 방송에서 나온 음식을 현실에서 접하게 되면 그야말로 음식이라기 보다는 그 음식이 탄생하기까지의 '역사'를 보게 되니 함부로 탐하기가 어렵다.

 

현대사회는 대량생산에 넘쳐나는 사회이기 때문에 배를 채운다는 기본적인 의미보다는 '건강' 이나 '맛'을 추구하는 음식에 한가지 아니 몇가지 의미를 더 부여하여 그야말로 '맛탐험'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어느 식당 어디를 가도 '맛집' 이라는 간판 하나 걸리지 않은 집이 없을 정도로 어디에 나왔다가 중요한 홍보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맛집을 알리는 한 방편으로는 '블로거'들의 숨은 노력 또한 담겨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그것이 득이 되기도 하겠지만 그것이 잘못 이용되면 돌리어 화가 되어 돌아오는 세상이기도 하다. 그런 이유로 어느 식당은 '사진절대금지' 라는 곳도 있다. 현대사회의 인심이란 단번에 아군이 적군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 또한 가끔 이런 맛집을 찾기도 하는데 그런 맛집 보다는 내게 맞는 음식과 그외 여러 이유를 따져 맛집을 기피하는 경향도 있다. 남들 입맛이 내 입맛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조선의 탐식가와 미식가들'은 어떠했을까? 아니 정말 탐식가와 미식가가 있었을까? 굶주림도 심했고 한편으로는 사대부들은 먹거리가 넘쳐나게 흥청망청 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책 속의 내용처럼 반상에도 3첩 5첩등 그 겪을 두어 제한하였다는 것은 그만큼의 음식사치를 못하게 했다는 이야기도 되지만 그렇게까지 할 정도로 식재료가 풍부했을까, 지금과는 너무도 다르게 식재료가 풍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탐식가로 자처한 '혀균'은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많이 남겼기에 그가 탐식가임이 밝혀진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숭불사회에서 숭유억불사회가 되면서 살생이 밥상에 끼친 영향에서 다른 것 보다 '소고기' 대한 것이 심했던 듯 하다. 왜 안그렇겠는가. 땅덩이는 좁고 농경사회였으니 농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소'를 중요시 했겠지만 소고기에 탐이 다른 고기보다 또 남달랐던 사회인듯 하다. 돼지고기값이 소고기값보다 비쌌다고 하니 말이다. 소 한마리가 없어지면 사람 몇 명이 그 힘을 대신해야 했다니,그러면서도 반대로 억압을 하면 더욱 먹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이 인간의 심리인듯 하다. 소의 도축을 금지하고 소고기 먹는 것을 금지하면 할수록 그에 반하는 잘못된 편법들이 동원되었다니 그 속사정 이야기가 재밋기도 하다.

 

우심적,당시 우심을 맛본다는 행위는 사대부가 남들로부터 호탕한 기개를 인정받는 것을 의미했다.하지만 한편으로는 유배를 갔던 정약용은 '소 염통 구워 먹는 게 부추밭 가꿈보다 났다.' 라고 했다는데 유배가기 전에는 그도 음식을 탐하던, 양반들이 주로 먹던 음식에 대한 탐식이 있었지만 유배생활에서는 음식이란 자신을 지탱하는 한 방법이었기에 가장도 즐겨하고 흑산도에 유배를 간 형에게도 자신이 즐기는 가장및 그 방법과 양념을 전했다는 것이 이채롭다. 음식이란 있는 사람들에게는 탐식이기도 했지만 그외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출세를 위해 '음식'을 이용하기도 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따라 일을 선택하는 허균과 같은 사람도 있었다니 정말 재밌다. 그런 그이기에 조선의 '맛지도'를 써내기도 하지 않았을까.그야말로 최초의 '식객'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음식에 대한 탐이 대단했던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자신의 좋고 나쁨을 누구보다 더 자유롭게 표현해 낸 사람일지도 모른다. 좀더 조선시대에 음식에 대한 '레시피' 를 남겨 두었다면 음식은 더 발전하고 그 문화를 좀더 다양하게 꽃 피울 수도 있지 않았을까. 구전되고 손맛으로 전해지던 음식이 '기록' 속에서 보여지는 재밌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역사를 읽는 느낌이다.

 

'조선 사대부들은 우심적을 먹으며 왕희지를 떠올렸고,왕희지처럼 대접받고 싶어 했다. 우심적에는 '당신을 왕희지처럼 여긴다' 라는 뜻이 담겨 있으므로,사대부들은 정작 우심적의 맛보다 그런 호사가 더 즐거웠으리라.' 겉 멋에 도살된 소들이 많으니 '사사로이 소와 말을 도살하는 것은 마땅히 금지령이 있어야 한다.' 며 한성부가 이를 관장하도록 했다. 그것이 '우금령' 이다.' 그런가 하면 '서울 풍습에 음력 10월 초하룻날, 화로 안에 숯을 시뻘겋게 피워 석쇠를 올려놓고 소고기를 기름장,달걀,파,마늘,산초가루로 양념한 후 구우면서 둘러 앉아 먹는 것을 '난로회' 라고 한다' 이런 날이 있었다니, 민초들 보다는 양반들이 누렸을 이 호사가 지금 우리가 즐겨 먹는 외식의 한 방법인 '숯불구이'는 아닐까.

 

책의 후기에서도 밝혔듯이 '조선의 탐식가들'이라기 보다는 음식에 얽힌 이야기며 탐식과 미식의 그 차이를 찾아 나서지만 그 미묘한 차이를 어찌 다 빍힐 수 있을까? 음식에 담긴 인물의 이야기와 역사 그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보면 좋을 듯 하다. 먹는 다는 것은 탐하기 보다는 그 음식에 깃들여 있는 '삶'을 맛보는 것이라고 한 맛 칼럼리스트 황교익의 말처럼 맛을 탐하기 보다는 '천년의 밥상'편에도 담겨 있듯이 '역사와 삶' 을 맛본다면 탐식이 아닌 미식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정말 탐식가들 보다는 '조선의 음식에 얽힌 이야기'를 읽은 것처럼 내가 모르던 부분들도 알게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견과 구'의 차이가 확실했다는 것이다. 애견은 먹을 수 없는 것이지만 '황구'처럼 구가 들어가는 개는 식용개였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복날의 복은 '날씨가 더워서 개도 주인 옆에 엎드려 있다'라는 한자의 의미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두부'라는 것은 정말 귀했던 것으로 '대보름날 세시풍속,두부 먹기'라는 것이 있어 액막이로 두부를 먹은 것에서 유래를 하여 감옥에서 나온 사람에게 두부를 먹이는 풍속 역시 관재수를 막는 액막이라는 것이다.그런하면 추사 김정희가 늘그막에 깨달은 위대한 음식은 '두붓국' 이었다. 그 두붓국은 추사가 가족과 같이 먹고 싶은 음식이었다는 것이다. 오랜 유배생활로 가족과 떨어져 홀로 지내다보니 가족의 소중함및 함께 하던 그시절이 그리웠으리라. '대팽두부과강채 고회부처아녀손'이란 말이 추사 고택 기둥에 있다는데 얼마전에 다녀왔는데 지나쳤나보다. 그 뜻은 '위대한 음식은 두부,오이,생강, 나물이요. 가장 즐거운 모임은 부부,아들딸,손주를 만나는 것' 이란 뜻이란다. 무릇 음식이란 가족과 함께 즐겁게 먹어야 제맛이고 내 몸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듯 하다. 홀로 쓸쓸히 먹는 음식은 독이 될 수도 있다.탐식가든 미식가든 음식에 깃든 삶을 따라 가다보니 조선의 역사와 인물을 만난 듯 하다. 조선의 음식에 깃든 다양한 '삶'을 한상 가득 받은 느낌이다.음식이란 자신이 취할 수 있는 독이면서 자신을 살리는 길일 것이다. 점점 섭생이 중요해지는 현대사회 음식속에 깃든 역사와 삶을 생각하며 먹는다면 내 몸에 어떻게 변할까. 

 

*오타 수정

110p  그의 가성각에는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 그의 가성각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250p  채소 위로 식사를 하기 - 채소 위주로 식사를 하기

252p  보사는 강진 고을 자리 잡고 있으니 - 보림사가 아닐까.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y******2 2012.02.23. 신고 공감 1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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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조선의 탐식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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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정호저자 김정호는 충남 청양의 작은 광산촌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살았다. 2학년 때 서울로 전학 왔는데, 가장 아쉬웠던 것은 수학여행을 놓친 일이다. 새 학교는 이미 1학년 때 다녀왔던 것. 그래서 학창시절의 가운데 토막이라 할 수학여행이 내 사진첩에는 공백으로 남아 있다. 대학에서는 종교철학을 공부했다. 취직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한 학문이었지만, 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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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정호
저자 김정호는 충남 청양의 작은 광산촌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살았다. 2학년 때 서울로 전학 왔는데, 가장 아쉬웠던 것은 수학여행을 놓친 일이다. 새 학교는 이미 1학년 때 다녀왔던 것. 그래서 학창시절의 가운데 토막이라 할 수학여행이 내 사진첩에는 공백으로 남아 있다. 대학에서는 종교철학을 공부했다. 취직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한 학문이었지만, 덕분에 인류의 역사와 문화를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고, 작가로서 글을 쓰는 데는 자양분이 되었다. 첫 책은 《신세대 : 네 멋대로 해라》(1993)였다. 문화창작집단 ‘미메시스’에서 동인들과 함께 썼다. 그 뒤로 출판 기획, 논술 교재 집필을 하면서 창작에 매달려 가까스로 동화 《양수리의 봄》을 출간하였다. 《현철이의 꽝복권》, 《도깨비네 상상 보따리 1~10》, 《꼬마 농부 부섭이》, 《고집쟁이 미생》 외에 몇몇 동화를 썼고, 역사 교양서로 《조선의 왕세자 교육》, 《조선의 왕세자는 어린 시절 어떻게 살았을까?》. 《초등 저학년을 위한 처음 한국사 1, 2》(2011) 따위를 썼다. 음식은 먹는 것도 좋아하고, 만드는 것도 좋아한다. 요즘에는 관심을 술까지 넓혀서, 막걸리를 집에서 담가 마시려고 이화곡(쌀누룩) 띄우기에 매달리고 있는데, 그간의 탐식의 대가로 내 몸의 나이테는 점점 두꺼워지고 있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미식과 탐식의 경계는 언제나 모호하다. 어쨌든 '탐미'란 어색한 말이 안니지 않은가. 특히나 성리학 윤리에 의해서 육체적 향락을 경계하는 문화였던 조선에서 그래도 기록에 남은 음식이나 혹은 음식을 먹은 사람들의 이야기라면 더욱 탐과 미의 간격은 가까와질 듯 하다.

 

 문헌에 많이 의지한 바 크기 때문이겠지만, 이 책에 나오는 우심적이나 순채, 농어회 등의 요리에는 성리학자들의 문화관, 그것도 꽤나 사대적인 문화관이 나열되어 있다. 나중에 실학자들의 체험(주로 현지의 유배체험)과 식문화관에 의해서 미식, 혹은 음식 일반에 대한 관념도 좀 더 구체적이고 주체적인 것이 되어가는 경향이 있다.

 

대개가 한문서인 문집과 시가를 깊이 파고들은 점은 인상적이다. 다만 일부 시가의 해석은 조금 생각해볼 여지들이 있는 것이 있다.

e****h 2014.02.1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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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의 나라 조선에서 찾은 음식이야기 - 조선의 탐식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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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먹을것이 넘쳐나는 시대이다. 돈만 있다면 못 사먹을 음식이 없다. 우리나라 고유의 음식들뿐만 아니라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의 음식을 비롯해 유럽이나 미국 등 전세계 각국의 다양한 요리들을 손쉽게 접할 수가 있다. 이렇게 많은 음식들을 접하다보니 어떤이들은 그 요리들 중에서 좀더 특별한 무언가를 찾으려고 한다. 소위 말해 미식가라 불리는 이들이 그러하다. 사실 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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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먹을것이 넘쳐나는 시대이다. 돈만 있다면 못 사먹을 음식이 없다. 우리나라 고유의 음식들뿐만 아니라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의 음식을 비롯해 유럽이나 미국 등 전세계 각국의 다양한 요리들을 손쉽게 접할 수가 있다. 이렇게 많은 음식들을 접하다보니 어떤이들은 그 요리들 중에서 좀더 특별한 무언가를 찾으려고 한다. 소위 말해 미식가라 불리는 이들이 그러하다. 사실 미식가라고 해서 특별할것은 없다. 자신만의 기호를 가지고 있고 자신의 좋아하는 음식을 찾아 먹는 사람이면 누구나 미식가로 불릴수가 있을테니 말이다. 이렇게 보면 미식가는 시대와 지역을 떠나 어디에나 존재할 것이라 생각된다. 사람은 무언가 먹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는 존재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하기 바로 직전에 존재했던 나라 조선은 어떠할까? 조선시대는 법적으로는 양천제로 구분된 사회였지만 실제로는 양반과 중인, 평민과 천민 이렇게 4개의 계급으로 구성된 사회였다. 그 중에서도 양반 즉 사대부 중심의 국가가 바로 조선이다. 성리학으로 똘똘 뭉쳐진 그들은 보통의 백성들과 자신들은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온갖 혜택들을 향유해가며 살아가고 있었다. 당연히 먹는 것에 있어서도 일반 백성들과는 다를 수 밖에 없었다. 이렇다보니 조선에서 미식가들을 찾는다면 일반 백성들보다는 양반 사대부에서 찾는게 옳은 방향인거 같다. 백성들이 먹을수 있는 음식은 한정된 반면 사대부들은 귀한 음식들을 접했을 것으로 추정되니 그렇다.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되면서 여러가지에서 변화가 생겨났는데 그중에는 육식 금지 해제가 있다고 한다. 고려가 성종 이후 유교를 숭상해왔지만 고려 사회 전반을 지배해온 사상은 불교였다. 불교에서는 살생을 금하므로 그 시대에 육식을 권장할지가 만무하다. 하지만 조선을 건국한 신진사대부는 성리학을 숭상했고 불교를 전면적으로 배척했기에 그들의 살생 금지를 따를 필요가 없었다. 사대부의 육식 열풍은 조선 정부는 '소 도살 금령'으로 통제하려 한거 같다. 농업사회에서 소는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소가 있고 없고는 농사에 있어서 하늘과 땅 차이였을 것이다. 하지만 소고기의 맛을 본 사대부가 그 맛을 쉽게 잊을리 만무하다. 나라가 금지한다면 당연히 밀거래가 성행할 것이고 실제로 <비변사등록>에는 남의 소를 강탈하여 도살장에 팔거나, 직접 밀도살하여 소고기를 유통하는 범죄 집단이 존재했음이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역시 예나 지금이나 소고기의 맛은 어떤 음식과도 비교할 수 없는거 같다. 

 

 

소고기뿐만 아니라 개고기 역시 조선시대에 많은 사랑을 받은 음식인거 같다. 비싸고 농사에 꼭 필요했던 소에 비해 개는 조선의 서민들이 즐겨먹던 육식이다. 그렇다고해서 사대부들이 개고기를 먹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음식디미방>, <원행을묘정리의궤> 등 다양한 서적에서 개고기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있으니 말이다.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에도 개고기가 놓여졌다고 하니 왕실에서도 개고기는 애용되었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가 있다. 실학을 집대성한 다산 정약용은 개고기 애호가였다고 한다. 예전 학창시절 교과서에 실려있던 글중에 다산이 유배지에서 손수 텃밭에 채소를 길러 먹는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이것은 다산이 채식주의자여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였다고 책은 말하고 있었다. 다산은 흑산도로 유배된 형에게 쓴 편지에서 산개를 잡는 묘안은 물론 개고기 삶는 법도 설명해주고 있다고 하니 그가 얼마나 개고기 마니아였는지 알 수가 있다. 또한 조선전기의 문신 김안로는 개고기를 워낙좋아했기에 그에게 개고기를 접대하며 벼슬자리를 부탁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하니 실로 웃음이 지어졌다. 

 

 

책을 읽다보니 음식에 대한 탐욕은 권력이나 재물에 대한 탐욕 못지않게 강하다는 것을 느낄수가 있다. 특히나 사대부의 나라로서 '예'를 중시하고 성리학의 명분론을 중시한 조선의 선비들이 먹을 것 앞에서 사족을 못썼다는 이야기는 놀랍기도 하면서 재미있게 느껴졌다. 인간은 무언가를 먹지 않고는 살 수가 없고 또한 기왕 먹을것이라면 좀더 맛있는 요리를 먹고 싶어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본능이 아닌가 싶다. 책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미식가와 탐식가를 구분하고자 했다.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의 말을 빌려 탐식은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며 먹는 것"이라 했고, 미식은 "음식에 담긴 삶을 맛보자는 것"이라고 했다. 과연 이 책에 등장하는 조선의 사대부들은 미식가였을까, 탐식가였을까? 그리고 문전성시를 이루는 맛집을 찾아다니는 수많은 사람들은 미식가일까, 탐식가일까?  

 

 

먹는 것을 워낙 좋아라하고 그래서 맛있는 것을 먹으로 다니는 것을 좋아하며 여행을 가더라도 먹는 것에 돈을 가장 많이 쓰는 나이기에 책 속의 사대부들의 모습이 나의 모습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만약 내가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면 그리고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있는 여유가 되는 사대부라면 양반의 체면을 체져두고 먹는 것에 집착하지 않았을까 싶다. 아마 소 밀수 조직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 책을 보면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조선 사회의 또다른 모습을 바라본거 같다. 혹자는 이러한 모습이 사대부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들의 모습은 인간의 당연한 모습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더욱더 흥미롭게 그들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었던거 같다. 또한 앞으로 음식을 먹으면서 주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수 있는 소잿거리를 얻을수 있었던거 같다. 역시나 음식은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존재임이 틀림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n****5 2012.02.27.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