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상에서 자본주의의 역할과 장단점을 중심으로 엮어진 책이다 긍정론과 비관론으로 나누어 질수 있다 상기의 그림에서 보다시피 역사상으로 그려진 자본주의의 무늬는 쉽게 다가오는 그림은 아니다 그러나 함께 살아가는 자본주의는 인정하고 나름대로의 무늬를 그리고 있다고 생각해야겠다 그게 살아가는 지혜인것 같다
우선 장점부터 나열해 보면 1.생산의 효율성과 이로 인한 집단적 부의 증대 2.개인들의 기본적인 욕구 충족 3.잉여가치의 분배수혜자 확대 4.교육기관의 확장 5.과학 인권 능력주의의 확산 6.민주주의 번성
이에 못지않게 부정적이고 우리가 목도하는 면도 많이 있다 1.만물의 상품화 2.끝없는 축적 3.이윤극대화 4.독점화 추구 5.양극화
그러나 이런 자본주의체제도 역사상의 여타 체제처럼 영속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창조물이고 긴 역사에 비추어 일시적인 체체이고 향후에 이에 대한 변화의 모습이 나타날 것이란 예후도 담고 있다 역시 역사상의 자본주의는 이론도 아닌 실제의 모습을 담고 있어 재독 삼독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
|
읽을 때마다 새로운 지적 자극과 영감을 주는 책.
월러스틴의 이론(세계체제론)을 공부하려고 한다면, 가장 먼저 읽어야 될 책이 아닐까 싶다.(방대한 <세계체제론>은 읽기 겁난다.T_T)
월러스틴의 주장은 다음과 같이 크게 몇 가지로 나눠볼 수 있을 듯하다.
첫째, 자본주의는 역사적 사회체제다. (이 무슨 당연한 말씀인가 싶지만, 어떤 특정한 사회체제 안에서 살고 있는 동시대인들은 거의 머릿 속에서 지우고 살아가는 명제이다.) 자본주의 또한 인류 역사 발전 과정의 한 단계이며, 따라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체제는 현상태로 완결된 게 아니다.(자본주의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쉽게 상상이 안 되리라 생각한다.)
둘째, 서구의 보편주의는 인종주의와 성차별주의와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보편주의는 역사적 자본주의라는 세계체제 안에서 정치적 경제적 권력을 장악한 사람들이 퍼뜨린 이데올로기로서 발전해온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사회 이론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보편주의가 기반을 이루고 있는 서구의 사회과학 패러다임에서 탈피해야 한다.
셋째, 현재 자본주의 문명은 위기에 접어들었으나(새로운 세계로의 이행기) 다가올 대안적 세계체제가 지금보다 나으리라는 보장은 없다.(주의!!!) 당연스레 역사의 '진보'를 믿는 것은 환상이다. 좋은 세상은 그저 기다린다고 오는 게 아니며, 인류가 잘못된 판단을 한다면 야만의 시대가 도래할 수도 있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확산이 전지구적인 재앙을 낳고 있는 것을 볼 때, 이를 연구하고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서 월러스틴의 주장은 효과적인 도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그가 말하는 '전지구적 수준'에서의 반체제운동이라는 게 뭘까 하는 물음표가 남지만, 그 의문에 대한 답은 책상 앞에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월러스틴은 대기주의적 낙관을 경계하고 있지만, 그의 책을 읽다보면 괜시리 지금보다는 나아진 다음 세상을 상상하게 되고 그러한 영감이 또다른 앎으로 나아가는 추진력을 주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인상깊은구절] 문화적 이상으로서의 진리는 하나의 아편으로서, 그것도 어쩌면 근대세계에서 유일하게 심각한 아편으로서 기능해왔다. 종교는 대중의 아편이라고 칼 맑스는 말한 바 있다. 레이몽 아로은 맑스주의 사상이 지식인들의 아편이 되었다고 되받아쳤다. 이들 양편의 논란 속에는 다 어떤 통찰이 담겨 있다. 그러나 통찰이 곧 진리인가? 아마도 진리는 대중과 지식인들 모두에게 진짜 아편 노릇을 해왔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세계체제론> |
|
이매뉴얼 월러스틴은 모리스 돕과 더불어 '새로운 유통주의적 관점'에서 자본주의 체제를 해석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의 여러 저서 중 '역사적 자본주의'는 일반 대중을 위해 보다 평이하고 간결하게 서술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전세계적으로 각광받은 것은 1980년대 사회주의의 몰락을 예언하면서부터인걸로 기억하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역사적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끊임없는 자기확대와 극단적인 폭력성에 주목한다. 즉 역사적 자본주의 하에서는 절대로 평등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고, 이 체제는 계서제(세계를 중심부-반중심부-주변부)라는 피라미드형 중층구조를 만들어 주변부의 잉여이윤을 중심부에서 착취하는 형태를 취한다고 본다. 일국가내에서의 착취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일어나는 노동불평등과 노동 착취에 대해서 설명을 한 것이다. 그는 이러한 계서제를 통해 인종차별주의, 성차별주의에 대한 역사적 근거를 보여준다. 또한 그는 기존 맑시스트들이 주장하는 노동의 상품화를 자본주의의 시초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 바로 노동의 상품화라고 본다.
무엇보다도 그는 자본주의를 전부문에서의 상품화 경향이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정의내린다. 즉 그에게 있어 전지구적인 자본주의화가 되었을때 바로 그 정점에서 자본주의는 몰락할 것이라고 예측한 것이다. 그러나 이를 어쩌랴? 전지구가 물리적 공간의 한계에 도달하려는 순간 '사이버' 공간을 창출해버린것을... 어쩌면 이 폭력적이고 몰인정한(인류의 행복을 위한 상품생산과 소비가 아닌 자본의 확대를 위한 가치생산을 목표로 하는) 자본주의는 영원한 생명을 가진 괴물일지도 모른다. [인상깊은구절] 인종차별주의는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하나의 포괄적인 이데올로기로서 작용해왔다. 그러나 그것은 그 이상의 훨씬 더 큰 구실을 해왔다. 그것은 여러 집단들로 하여금 세계경제 안에서 맡은 역할을 다하도록 길들이는데 이바지해왔다...... 성 차별주의와 마찬가지로 인종차별주의는 자기억압적인 이데올로기 구실을 하여 사람들의 바람을 조작하고 또 제한했던 것이다. |
| 월러스틴이 말하는 세계체계로서의 자본주의는 근본 성격에 있어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이해에 뿌리를 둔다. 만물의 상품화를 향해 진행하는 자본주의는, 자본의 자기확장 위한 연쇄체계를 완성하였으나 이 관계안에 내재적 모순을 가지고 있어 이를 극복하고자 끊임없이 확장하여야만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프롤레타리아화되어 왔으나 이는 도리어 이윤하락을 가져왔고, 지리적 팽창으로 새로운 노동력을 편입하여 상쇄해 나가야만 했다. 이런 절대 불합리한 체제가 자리 잡은 이유는 이 체제에 의해 이득을 얻는 1450년대 위기의 지배층에서 그대로 1650년대 자본주의 체제의 상부층된 계급의 의지에 있다. 월러스틴의 주제는 이런 자본의 확장과 계층의 이행이라는 주제하에 국가가 어떻게 역사적 자본주의를 지지해 왔으며, 국가간의 견제와 무역관계가 이 체계에서의 탈피를 불가능하게 하면서 점점더 많은 국가들을 그 하부조직의 한 분업자로 끌여들였는지를 설명해 나간다. 결국 겉으로 보기에 민족, 반제국주의,민주주의,진보지향을 보였던 투쟁들은 그 의미에서 결국 결국 가진자와 못 가진 자의 투쟁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흔히 반체제 운동이라는 것도 결국 국가권력의 장악을 통한 개량에 목적있으며, 결국 권력획득 후 역사적 자본주의 분업체계의 일부 기능을 맡게 되었다. 여러 세력들은 역사를 통해 부글거렸으나 결국 끊임없는 자본 축적을 이롭게 하고, 실질적인 격차의 끊임없는 확대를 돕는 역할만을 해 왔다는 것이다. 흔히 이런 사상적 파행의 감시자 역할을 기대해 왔던 지식층과 여론의 역할은 도리어 이런 체제를 공고히하고 확산되도록 도왔다. 인종차별주의는 노동력을 계층화하고 재생산시켜 하부층을 지배하기 편리케 했으며, 계몽주의에 뿌리를 둔 보편주의는 중간층을 회유하고, 부의 소유를 합리화하여 자본을 방어하며, 능력주의라는 미명하에 교묘한 계층을 만드는 구실이 되어왔다. 진보의 이념이 결국 반자본주의를 타도하여왔다. 아무도 진보를 반대하지 않고 자본주의의 반대자도 진보를 찬양하는 가운데 공산주의 역시 진보의 그늘아래 있었고 또 실패의 길을 내달았다. 아무도 진보를 반대치 못하는 이유는 진보가 인간을 부유하게 했고 빈곤을 몰아냈다는 환상때문이다. 실제 20세기 인간의 대다수는 오히려 절대빈곤에 떨어지게 되고 합리화의 계층인 10-15%만이 서로 합리화 시키며 이를 부정하고 있다. 진보이데올로기는 부르조와지로 변신한 토지귀족의 창작품이다. 이런 상태에서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이라는 것은 결국 자본주의의 껍질만 벗는 새로운 차별수단의 지속이 될 수 있다. 이제 반체제 투쟁이란 자본주의가 평등한 사회주의로 이행하는데 기여해야만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투쟁의 장은 사실 반체제세력 자신의 내부, 즉 그 진보에 대한 애착과 이권에 대한 집착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월러스틴은 내 안에 자본주의의 이해에 대한 또 하나의 벽을 무너뜨리는 역할을 한다. 한국의 중산 지식계급이 도저히 경험적으로 인정할 수 없는 세계의 모습을 들이대고 옳음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과연 더 많은 동료 인간들이 비인간적이고 열악한 삶으로 버텨내야하는 피라미드의 윗층에서, 장난감 놀이 같은 피라미드 내부의 사람들을 만족시키는 삶을 살고 말 것인가라고... |
|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이 작은 소책자는 '근대세계체제' 및 '자본주의 세계경제'와 '세계경제의 정치학' 등 일련의 작업의 이론적 뼈대가 되는 중요한 저작이다. 그의 관점은 자본주의를 역사적 실체로써 규정함으로서 특이하게 형성되는데, 이 과정 안에서 자본이 스스로를 증식하여 만물을 상품화하고, 그에 따라 부르주아 간의 이익 축적을 통한 투쟁의 과정이 생겨나며, 이후엔 진리가 권력의 시녀로서 기득권을 쥐고있는 당대의 담론을 합리화하는 도구로 전락하는 과정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 구체적 과정으로서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26p)이 어떻게 분리되고, 그 과정에서 노동의 상품화가 진행되는가를 살폈고, 그것이 수요와 공급이 지배하는 시장논리에까지 확대되는 인과적 흐름을 보여주었다. (결국 이렇게 됨으로서 역사적 자본주의는 세계체제 내의 여러 지역에서 엄청난 임금수준의 차이들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상품화 및 자본화의 편재적 논리는 자본가들 내에서도 조장된 경쟁을 만연시켰는데, 그 승리자는 오직 자본 자체였을뿐, 시장경제를 실재적으로 담당했던 모든 사람들은 피해자였다. 이 이상한 자본 자체와 근대적 지식의 담론체계가 가지는 결연관계는 결국 물질문명 내에, 비반성적인 토대를 넘어 반성 자체가 가능하지 않은 무반성적인 이윤투쟁으로 나아갔다. 결국 자본주의는 그 자체의 구조상 자본 자체의 증식에만 눈이 멀 뿐, 역사적인 항로설정에는 속수무책인 과정에로까지 전락한다. 적어도 필자에게는 자본주의가 '부르조아 내부의 투쟁'(67p)이 되고마는 자본의 보편적 내성화의 과정에서, 맑스의 구호마저 전도되고마는 참담함을 느꼈다. 지식인의 진리와 신념체계도 상품화되는 그 역사적 자본주의의 체계는 어떤 실질적 권력자도 없이, 자본 자체의 자기증식만을 산출한다는 점에서 자르지 않고는 풀 수 없는 실타래와 같았다. 그러나 무엇을 자른단 말인가? 우리에겐 길로틴에 처형시켜야 할 어떤 이데올로기나 체제의 권력자가 없다. 그래서 월러스틴의 '역사적인 사회주의'(116p)는 내게 너무 막연한 대항구조로 여겨질 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