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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와 공존하는 방법 - 인간의 욕심을 내려놓기 계절이 세 번 바뀌는 동안 같은 길을 반복해서 걸었던 경험이 있다. 산기슭으로 난 그 길에서 사진 속에서만 보았던 예쁜 야생화도 보고 새로운 잎이 나서 짙은 녹음으로 우거지고 다시 낙엽이 되는 과정을 본 것이다. 일주일에 한 두 번씩, 매번 길을 때마다 달라지는 풍경을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같은 곳이지만 매번 달리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시간이 변하면서 숲이 변해가는 것이 일차적인 이유가 될 것이지만 또 하나의 이유는 차츰차츰 그 길에 익숙해지면서 지난번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된다는 점이다. 어디쯤 가면 무엇이 있고 지금쯤 어떤 모습으로 변해고 있을까 하는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길이 되었던 것이다. 수년전에 숲해설가 교육을 받으며 내가 사는 도시의 근교에 있는 산이며 들판, 바닷가에 이르기까지 두루 살핀 적이 있다. 그때도 느끼지 못했던 자연과 동화되는 속에서 얻는 소소한 행복이 무엇인지 알게 된 시간이었다. 지난여름 이사를 하고 정착하기 시작한 시골 마을 가까운 곳에 저수지가 있다. 그 저수지 위로 제법 깊은 계곡이 있고 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는 곳이라 새들의 보금자리 역할도 한다. 눈앞에 펼쳐진 야산의 나무와 숲이 주는 청량감, 밤하늘에 걸린 달과 별을 보는 맛, 계절이 바뀌는 것을 실감하는 일상생활 등 이사하기 잘했다는 생각이다. 내게 이러한 행복과 즐거움을 준 것은 무엇일까? 그 일차적 요인은 자연이다. 하지만, 그 자연은 나와 떨어져 내가 바라봐야 하는 대상으로써의 자연이 아니다. 마음속에서 자연을 투자의 가치나 물신성을 앞세우고 대할 때와는 분명하게 다른 느낌을 전해준다. 이런 개인적인 경험을 넘어 장녀과 인간이 공존하며 위기에 처한 자연과 인류의 운명에 대한 구체적 프로그램을 만들어 실천하는 단체가 있다. 지구와 공존하는 방법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산처럼 생각하라’는 책의 핵심적인 내용을 이끌어가고 있는 단체로 ‘만물협의회’가 그 단체이다. ‘만물협의회’는 심층생태학의 창시자인 아르네 네스를 비롯한 존 시드, 조애나 메이시, 팻 플레밍 등이 단체를 구성하여 지구와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이를 체험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있다. 활동의 중심적인 내용은 열대우림 보호운동, 평화와 여성운동, 환경운동 등이며 이러한 운동은 곧 생명운동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생명운동은 자연과 그 자연을 구성하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구성원이 같이 생명의 소중함으로 공존을 모색해야 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운동이라 생각된다. 만물협의회가 지향하는 운동의 내용을 따라가기 위해 이 책은 그 기본적인 텍스트를 제공하고 있다. 인간이 자연과 공존하는 생태적 생존법으로 안내하는 제1부 ‘산처럼 생각하기’와 제2부 ‘땅이 우는 소리 듣기’ 그리고 만물협의회의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있는 제3부 ‘만물협의회:공존의 방법’을 구성되어 있다. 1, 2부의 중심 내용이 사람들의 자연에 대한 기본적 시각을 바꾸는 내용과 더불어 자연과 인간, 그리고 다른 생명체와 인간의 관계를 어떻게 바라보는 것이 올바른지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서 자연과 인간의 관계의 규정을 핵심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시애틀 추장의 연설’이 아닌가 한다. 생명운동과 관련된 권위 있는 글들을 한 곳에 모아두고 관련된 운동에 도움이 될 수 있으며 독자들에게 위기에 직면한 지구의 운명에 대해 깊이 있는 성찰로 가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보여 진다. 부록 - ‘워크숍 사례 두 가지’는 환경운동이나 생명존중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참고할만한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맞은 봄이다. 봄 햇살이 따스함을 전하는 어느 날 지난 해 걸었던 그 길에 서서 평화로움을 전해주는 이웃들과 인사 나눌 수 있길 바래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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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처럼 생각하라" 라는 제목과 산뜻한 이미지의 책표지에 마음을 홀딱 던지게 된다. 요즘은 책들도 정말 이쁘게 나오는 것 같다. 이런 책들을 보면 어쩔 수 없이 책탐이 또 시작된다.
산처럼 생각하라~라는 제목은 꼭 스님의 말씀, 불가의 말씀을 담고 있을 것 같지만 지구와 공존하는 방법, 산처럼 생각하고 인디언처럼 노래하라!는 문구처럼 환경에 관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아니 지금 생각해보니 전체적인 맥락은 그리 다르지만은 않은 것 같다.
출간된 지 20여 년이 흐르는 동안, "산처럼 생각하라"는 10여 개의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땅과 새로운 관계를 맺기 위하여 ‘만물협의회’를 비롯한 다양한 워크샵을 열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나 지금이나 전혀 바뀌지 않고 있는 사람들... 환경을 파괴하고 지구와 공존하는 것보다 지배를 하고 있는 상황이 더욱 안타깝게만 느껴진다. 이 책을 집어들게 된 이유는 초등학교 딸아이 때문이었다. 매번 학교 초기에 "환경문제"에 관한 표어라던가 글짓기를 하기 때문에 좀 깊은 생각을 해보자는 생각에 읽기 시작했는데 아이에게 도대체 이기적인 인간의 행동들을 어찌 설명해줘야할지 더욱 난감해진다.
아이들에게 학교에서는 자연을 보호하고 아끼라고 강조하면서 어른들의 행보는 전혀 다른 이기적인 길을 가고 있으니 말이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위한 구럼비 해안 바위 발파가 시도되면서 제 3회 국제사진공모전에서 입상한 미국인 Mattew hoew씨의 '강정마을'이 요즘 핫이슈이로 떠오르는 것 같다. 항간에는 정우철 감독이 찍은 사진이라는데 진실여부는 아직 모르겠다.
지구는 누구의 소유도 아닐진데... 실상은 소유자가 존재하는 듯하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아마도 정치적 싸움이라는 생각에 두눈 감고 두 귀 닫고 살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지구. 내가 땅 딪고 살고 있는 이 곳을 당연히 존재하는 곳으로 여기고 살았을 것 같다.
정치적 이념과 이기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지구를 한번 돌아보라고. 지구는 누구의 소유물도 아니라고!!1 이책을 권해주고 싶다! 땅이 우는 소리를 들어보라고......
서로 경쟁하고 누군가를 밟고 일어나는 것이 최고라고 인식하는 세상에 남을 배려하고 함께하고 같이하는 것이 최고의 기쁨이라는 것을 느끼라는 이 이야기가 너무도 당연하지만 씁쓸하게 다가온다. 나조차도 실천하지 못할 뿐더러 치열한 생존사회에서 아이들에게도 어디가서 맞지말고 자기 거 뺏기지 말라고 세뇌시키는 내가 너무 찔렸기 때문이다.
환경운동가들은 정말 자신을 헌신하고 사는 사람들이란 생각이든다. 궁극적으로는 사람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
심층생태학의 창시자인 아르네 네스의 철학에 영감을 받은 존 시드, 조애나 메이시, 팻 플레밍 등은 호주의 열대우림 보호운동, 평화와 여성운동, 환경운동 등을 하며‘만물협의회(Council of All Being)’를 구성하였다. 정기적으로 매회 이루어지고 있는 이 워크숍은 생태운동의 방법으로 '체험으로서의 실천'을 강조한다. 참가자들은 각자가 물, 흙, 공기, 불, 동물, 식물, 인류 등이 되어 지구의 근원을 통해 인간에게 당한 패해를 말하며 인류와의 화해와 이해, 앞으로의 나아갈 방향을 감성적 언어로 이야기 하고있다
환경운동가!라고 생각하면 떠오르는 다소 과격한 행동들이나 글들은 전혀 없고 좀 더 지구를 한껏 느낄 수 있는 글들이 많아서 더욱 지구와 함께 공존하자는 말에 공감을 하게 된다.
지금 편한 상태가 아니라 미래의 후손들..을 위해 내것이 아닌 지구를 마음대로 손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머리 속이 아니라 가슴 속에 자리를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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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처럼 생각하라. 무엇을 ? 지구를
심층생태학의 창시자로서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의 명예교수, 열대림 정보센터의 소장 , 세계의 종교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동시에 평화와 정의를 위한 운동의 활동가, 평화 환경 여성단체등에서 다양한 워크샵과 강좌 참여하고 있는 강사, 열대우림에 살고 있는 저명한 화가 그들이 환경에 대한 인문적 메시지를 들려줍니다.
내가 살고있는 환경에 관심은 많은데 실천은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는 난 평소 나의 행동속에서 이러면 안되는데 싶을때가 참 많습니다. 종이컵을 사용하는 일, 너무 쉽게 버려지는 종이들, 물티슈 등등, 쓰지 않아도 되는것을 사용하고 있을때면 스스로를 책망하는 횟수가 많아졌습니다. 그러면서 하나씩 둘씩 나의 모순된 행동들을 바꾸어가고도 있습니다.
이 세상에 살기 위한 하나의 생태적 접근법, 자기실현 , 먼저 우리가 스스로를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 하나의 문장속에서 전 스스로 미미하다란 생각에서 스스럼없이 행해지는 작은 행동들이 지구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 하나인데, 무슨 해당이 되겠어, 하지만 그걸 모든 사람들이 하고 있다라는데 문제가 되겠지요. 그렇게 만성적인 생각들은 모이고 모여 더욱 규모가 커져간다라는데 또 문제가 있을테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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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로서의 우리 생을 24시간으로 압축을 한다면 오후 5시가 되기까지의 모든 모험은 지질학적인 것이었습니다. 오후 5시 이후에야 생물이 나타났으며 포유류가 등장한것은 밤 11시 30분이후 인간은 자정 직전 1초였다라고 합니다.
그 1초동안의 힘 게다가 환경파괴라는 지구전체를 위협하는 지금의 세상(산업사회)을 만드는것은 마지막 1초중에서도 100만분의 몇초 동안에 벌어진 일 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지구가 아주 거대하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절대적이면서도 지금과 같이 우리의 모든 행동들을 관용적으로 품어줄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짚어가면 그 관용이 그저 무한대이지만은 않다라는 것을 알게됩니다. 오래 전 빙하가 만들어 낸 돌가루가 비옥한 흙이 되기까지 약 25,000년이 걸린데 반해 비옥한 표토의 절반을 유실시키는 데는 불과 150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라는 현실, 멸종위기에 처한 세계 각지의 생물종을 기록해두는 제네바의 장부는 이젠 너무 무거워 들 수가 없을 정도라는 현실, 북극의 빙하가 한해 한해 다르게 사라져버리는 현실 그것이 지금의 인류에게 닫친 모습이었습니다.
19세기 시애틀 추장의 연설은 이미 우리에게 경고를 했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세상의 이치를 편리하게 살기위한 사람 중심으로 만들어 가고자했던 인류는 귀를 막고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150여년 그 짧은 시간동안 지구의 모습은 너무나 황폐화 되어갔습니다.
풍족함과 편리함에 눈이 멀어 한동안은 외면했었다 치더라도 지금은 함께 공존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라는것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만성이 되어버린 편안함에 미혹되고 당장의 이익을 저버릴 수 없는 사람들로 인해 여전합니다.
알면서 행하지 않는 죄악이 가장 크다라고 하는데, 앞에서 이야기했듯 저 역시도 자유롭지 못한 문제입니다. 아마도 전 인류의 마음이 그러하지 않을가요 ?.
숲이 사라지고 빙하가 사라지는 자금의 현실을 노래로 풀어놓고, 사라져간 생물들에 보내는 시와 구체적인 시간적 수치로서 환산해 놓은 현실들은 앞으로 어찌 어찌 해야만 한다라는 당부와 교훈보다 훨씬 큰 울림이었습니다.
환경보호에 대한 방법들을 따져들때면, 한 개인의 힘이냐, 기업이냐, 국가적인 문제냐 등 책임져야 할 사람이나 변화해야 할 기관들, 어느 나라이냐를 구분하는 등 소모적인 신경전을 펼치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미미하다 생각했던 작은 행동들을 책임져야 하는것은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었슴입니다.
재난공포영화가 현실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들의 힘으로 만들어온 지금의 세상을 모든 사람들의 힘으로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방법으로 만들어가야 함이 아닐까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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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강도 7 이상의 지진이 일어났다. 큰 규모의 지진이 있었던 일본은 지금 화산폭발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역사적인 자료에 의하면 강도가 높은 지진 후에 반드시 화산폭발이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연에 대한 위협앞에 무기력하다. 자연을 지배하며 살았던 힘이 이제는 자연앞에 무릎을 꿇게 된 것이다.
"산처럼 생각하라"는 팻 플레밍 등의 공저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가고자 한다. 자연과 하나된 사람들의 모습을 찾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연의 일부이다. 자연과 함께 살아가게 되어있다. 그러나 자연을 지배하고 파괴하며 살았던 과거의 과오가 혹독함으로 자연에게 받고 있다. 거스릴 수 없는 자연의 힘은 우리들을 생명과 재산을 빼앗아간다. 그러나 수많은 자연을 살리고자 하는 환경운동가들은 사람들이 자연에 해를 끼쳤기에 당연히 받을 수 밖에 없는 인과응보임을 말한다.
그러면 이대로 당할 수 밖에 없을까. 우리는 대안을 마련해야만 한다. 다시금 자연을 살려야한다. 자연은 우리에게 수많은 것을 주었다. 그러나 쟁취해서는 안된다. 다시 돌려주어야 하는 한다. 자연을 파괴함에 대한 보상을 해야 한다. 파괴는 한순간이지만 되돌리는 것은 수많은 세월이 걸린다. 그렇지만 자연은 자생력을 가지고 있다. 그 자생력을 더욱 활발하게 해 주는 것이 이 책에서 고민하게 해 준다.
우리들은 시애틀 추장의 연설을 통해서 땅의 일부임을 깨닫게 된다. 땅은 우리의 육체이다. 육체의 근원은 땅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자연의 일부이다는 것이다. 자연속에서 우리는 삶을 일구며 살아가게 된다. 자연의 소리를 우리는 들어야 한다. 그들은 신음소리를 우리는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 이 책을 통해 만물에 대한 심층생태학을 통해 우리는 지금의 현실을 보게 된다. 저자들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지구와 공존하는 방법을 깨우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이 책에 담았다.
자연을 살리는 것은 지구를 살리는 것이다. 우리의 삶의 터전을 살리며 함께 공존해 가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가 춤추는 것은 인간중심적 활동과 사고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진정한 삶의 모습은 생태적 접근에서 찾아가게 되며, 그 안에서 우리는 진정한 삶의 존재적인 목적을 이루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이책을 통해 자연에 대한 놀라운 힘을 보게 되면서 함께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나누게 됨을 다행으로 여긴다. 지금의 자리에서 공존하는 방법을 나누며 실천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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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는 한창 말이 많다. 물론 곧 있을 행사와도 상충되는 짓이고, 여러모로 좀 안타까운 것이 많다. 국제 정세, 이념간의 갈등 그런것들을 차치하고서라도 자연은 자연 그대로여야 하는데 자연스럽지 못한 인간의 행동은 어리석은 결과를 가져오기 마련이다. 이것은 역사적으로도 볼 수 있는 것이고 앞으로도 심하면 심하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현실. 자연을 보호하자는 것은 초등학교 도덕시간때부터 늘 들어오고 배워오던 것이지만 산업사회의 개발이라는 명목 하에 이루어지는 만행에 대해서는 배우는 것이 그다지 없는데, 그것은 70년대부터 급격히 성장한 경, 중화학 공업의 눈부신 성장을 누려온 세대들이 만들어낸 교과서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교과서에서 배우는 꽃을 꺽지 말든지 쓰래기를 버리지 말든지 그런 것은 아주 작은 도덕적인 실천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물론 이마저도 지켜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긴 하다. 생각해보라, 21세기는 생존의 문제에 직결해있다. 자원은 유한하고, 한정되지 않는 것들을 찾아서 과학은 발전하고 있다. 보호와 보전의 중요성을 생각해야할 시기이지만 여전히 강대국들은 강대국 나름의 논리를 들고, 개발도상국은 개발도상국 나름의 논리를 편다. 그 모든 것을 정리해보면 결국 항상 인간이라는 존재가 자연의 위에 서있고 파괴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다. 사라지기 위해 다른 것들을 사라지게 만드는 인간의 행동은 우리는 보아오고 있지만 그 속에서 그 어떤 각성이나 반성은 없다. 다 같이 살 수는 없을까. 책에서 볼 수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글은 정말 이들만의 문제일까. 바위를 깨뜨리고, 숲을 없애는 것. 회색빛으로 물들이는 지구는 과연 내가 살 수 있는 행성일까. 생각을 해보자. 산처럼이든, 바람처럼이든, 구름처럼이든. 결국 우리는 자연속의 일부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공존이 필요하다는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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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들은 자연을 정복해야할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끌어안아야 하는 대상, 공존해야 하는 대상으로 본다.
우리는 세상을 정복하기보다는 끌어안기 위해 있다 p33
2011년 3월 일본 동북지방의 끔찍한 자연재해를 생각만 하더라도 이런 생각과 실천은 때늦은 감이 없지않아 있지만, 아무튼 응원해주고 싶어진다. 그런데 말은 간단한데, 사실 이 생각이 기존 생각과 너무나 다른 것이다. 180도 사고가 전환되어야 하는데, 그러다보니 이 책을 읽어나가는 중에 약간 어지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오랫동안 굳어 있던 사고를 전환하는 것은 이처럼 단순한 것만은 아닌가보다.
자연과 가까이 이어져 있다는 것을 '체험으로' 하는 사람들이 정말 있었다. 역사 속의 인물로는 간디가 있었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벌레들을 절대 죽이지 않고 그저 내버려두었다. 공존을 실천한 것이다. 그리고 이 책속의 저자는 목까지 땅 속에 묻혀서는 오른손은 두 통나무 사이에 묶고 있다. 땅에 깊숙이 받은 장대 끝에 발을 묶고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사람도 있다. 저지하는 사람들이 파내더라도 쉽게 꺼내지지 않게 하려고 한 것이다.
땅에 박혀 있는 모습은 마치 땅에서 식물이 나와 있는 것 같았다. 목, 머리만 드러내고 있다. 그렇게 며칠을 보냈던 것이다. 열대우림을 보존하기 위한 비폭력 운동이다. 경찰은 이들을 체포하기 위해 굴착기, 절단기 등 총 동원을 한다. 자칫 잘못하면 손목이 잘릴 수도 있고, 몸에 상처를 입을 수도 있는 상황. 그럼에도 이런 상상할 수 없는 행동을 하게 한 것은 무엇일까?
땅이 우는 소리. 위험한 지구를 자각할 것을 호소한다. 사라진 동물친구들의 목록들을 보니 참 씁쓸했다. 생각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위해 행동하는 모습, 이야기들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일본 원전사고가 일어난 지 1년이 지났다. 문제가 된 원자로를 폐쇄하는데 40년이 걸린다고 한다. 탈원전을 부르짖는 일본인들이 데모를 하고 집회를 열며 한 목소리를 내던 뉴스가 생각난다. 지구와 공존하는 방법, 정말 지금이야말로 심각하게 고민할 때인 것 같다. 그리고 작은 행동이라도 실천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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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고 싶은 생각인가 [환경책 읽기 39] 아르네 네스와 네 사람, 《산처럼 생각하라》
(최종규 .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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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지키기 위해 들고 일어나 기업이나 정부나 군대를 상대로 목소리를 낼 때, 우리는 사적인 변덕이나 한때의 취미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살아온 45억년 세월의 권위로 말하는 것이다!˝(1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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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미국의 전직 부통령 앨 고어가 지구 온난화에 대한 강연에서 사용한 슬라이드 쇼를 바탕으로 제작된 다큐멘터리 영화 “불편한 진실(An Inconvenient Truth, 2006)”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다큐멘터리 상을 수상하면서 지구 온난화로 인한 환경파괴의 심각성에 대한 논의가 불거졌다. 지구의 허파라고 불리는 아마존이 심하게 훼손되고 있는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나 최근 모방송사에서 방영한 ‘남극의 눈물’이라는 프로그램 등도 자연파괴가 심각한 수준에 다다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최근 이웃나라 일본에서 일어난 해일과 원전 사고는 자연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무기력하고 왜소한 지를 느끼게 했다. 우리는 말로만 자연보호, 환경보호를 외치는 것 같다. 공기가 오염되었다, 물이 오염되었다, 라고 이야기만 할 뿐 자연보호를 위한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가는 것 같지는 않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해년마다 자동차 수는 늘어나기만 하고, 휴가철 피서지에서는 피서객들이 마구 버린 쓰레기로 넘쳐나고 있으며, 장마철만 되면 폐수가 몰래 버려지고 있다. 자연을 보호하고 생태계를 보전하는 것이 좋다는 것은 알지만, 우리는 당장 편하다는 생각에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 주위의 환경과 자연을 훼손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금 현재 우리의 환경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처해있는지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는 것 같다. 지구가 위험하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 의식 속의 어느 수준에서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지구 생물의 생존을 위협하는 생태위기가 점점 심해지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전문가인 생물학자나 식물학자, 환경과학자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명백한 현실이 되었다. 그것은 우리가 숨쉬는 공기의 질에서, 우리가 먹는 먹을 거리에서, 더 이상 낚시나 수영이 불가능한 강에서, 우리의 상수원에 독소를 흘려보내는 쓰레기더미에서, 석유유출이나 산성비, 우리를 보호해주던 오존층이 파괴되고 있다는 뉴스보도에서 명백해지고 있다. 불과 1분마다 22에이커의 열대우림이 파괴되고 있다. 그것은 매일같이 1초마다 축구장 하나만한 숲이 사라지고 있다는 뜻이다. 21세기 전반기에는 백만 종의 동식물이 지상에서 사라져버릴 것이라고 한다. 제네바에서는 멸종위기에 처한 세계 각지의 생물종을 기록해두는 장부가 있는데, 그게 너무 무거워 들 수가 없을 정도라고 한다(본서 127, 145, 146쪽 참조). 우리 주변을 보더라도 예전에는 흔히 볼 수 있었던 곤충들이 보이지 않고 있다. 식물들도 마찬가지로 찾아 보기 쉽지 않게 되었다. 마치 그림 속에 그려진 동물과 식물이 하나 둘씩 사라져 가는 느낌이다. 그 그림 속의 인간들도 결국에는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우리가 이 지구상에서 영원히 살아갈 것이라고 착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당장 내 생애 동안에는 환경재앙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오랜 동안 자연보호와 환경파괴의 심각성을 알리는 홍보와 교육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제자리 걸음인 것을 보면 자연과 환경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크게 변화가 없는 것 같다.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새로운 저항이나 운동을 계속할 것이 아니라 의식의 변화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지은이들은 생태철학의 관점으로 환경문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에게 환경윤리가 필요하지만 사람들이 자연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 이타적으로 자기 이익을 포기하고 심지어 희생까지 한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장기적으로는 생태에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한다. 생태운동 내의 광범위한 도덕적 교화는 대중에게 우선 희생을 할 것을, 책임과 우려와 도덕성을 더 보일 것을 요구하는 그릇된 인상을 심어줬다는 것이 지은이들의 주장이다. 환경문제에 관하여 사람들에게 우선은 도덕보다는 각자의 성향에 따라 행동할 방법을 찾아줌으로써 미(美)적인 행위를 하도록 영향을 끼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삶의 풍요로움과 다양성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고 자유로운 자연경관을 더 소중히 여김으로써, 다양하고도 숱한 기쁨의 원천을 활짝 여는 것이 먼저라는 것이다. 지은이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제까지 우리는 환경문제를 윤리적인 것으로 접근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머리로만 생각하는 환경문제였지, 몸으로 직접 체험하고 느끼는 환경문제는 아니었던 것이다. 자연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인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생각해 볼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각종 도표나 그래프로 환경문제에 대한 심각한 상황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우리의 감성을 불러 일으키는 그림과 시, 에세이, 연설문, 워크숍 기록 등으로 채워져 있다. ‘우리는 땅의 일부요 땅은 우리의 일부다’ 라는 시애틀 추장의 연설, 우리 주위에서 사라져 간 동물들을 하나 둘씩 읊어내려가는 ‘사라진 동물친구들에게’는 아주 인상적인 글들이었다. 우리는 자연과 공생하는 관계라는 것을 잊고 지내온 지도 모른다. 자연을 정복하고 이용하는 관계로만 생각했던 것이다. 지은이들은 심층생태학의 관점과 가치를 제대로 활용하고 생태적 지각을 발달시키기 위해서는 일정 형식의 집단요법이나 체험과정을 거치는 수단으로 “만물협의회”라는 집단 체험과정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 또한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동물, 식물, 산 등의 가면을 쓰고 ‘애도와 기억, 그리고 다른 생명체의 관점에서 하는 발언’으로 이루어진 체험과정은 숭고한 의식이자 자연을 인식하는 순간이었다. 자연은 우리에게 말하거나 행동하지 못한다. 우리가 인식하려고 노력하여야 한다. 마치 학예회 발표회 같다는 느낌이었지만 가장 원초적인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이 제전의식이야말로 우리가 자연의 입장에서 우리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한다.
우리는 환경이 ‘저기 바깥에’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가 공기나 물이나 땅을 오염시키면 우리 역시 그 일부인 생물의 방대한 순환에 따라 우리 자신도 오염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본서 제154쪽 참조). 환경문제에 대한 우리의 의식의 전환과 함께 실천해야 한다. 이 지구상에서 자연과 인간이 서로 공존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우리의 노력이 필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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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문득 오래간 만에 하늘을 올려 다 봤다. 하늘에 구름이 서서히 흐르면서 나에게 무어라고 말한다. 힘든 나에게 힘을 내라고 말이다. 어떤 친구는 말한다. 나무들이 바람에 날리며 무어라고 말한다고 말이다. 이렇게 자연과 우리는 더불어 살아간다. 그런데 인간은 점점 더 자연을 파괴하고 자신의 소유물로 여겨질 때가 많다. 자연을 소유하고 다스리는 입장에서만 바라보고 있어서 그렇지 아니한가 생각해 본다. 자연을 보호하겠다고 하는 것도 진정한 의미에서 바라보면 내 자신이 사는 곳을 지키기 위해서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생각들이 ‘심층생태학’이라고 불리운다고 한다. 지구를 지켜야 한다는 추상적인 생각에서 이제는 지구에 속해 있는 자로서 지구의 일부로서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산처럼 생각하라”라는 의미이다. 새로운 환경의 변화에 따라 멸종할 위기에 처한 생물들도 있고, 핵전쟁과 그 밖의 환경파괴들로 어지러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이제는 그저 막연히 바라보는 것이 아닌 실제적인 우리의 삶 속에 질문해야 하는 것이다. 그저 머리로만 아는 자연이 아닌 실제적으로 체험하는 자연을 말한다. 머리로만 아는 나로서 여러 가지 개념적인 부분에서 이해가 힘들었다. 경험 풍부한 활동가들이 글과 시와 공상과 워크숍 기록들을 정리한 것이라 더욱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의 목적대로 살아있는 지구와의 단절감을 넘어서서 지구에서 살고 있는 나를 새롭게 발견해 보는 시간이 되기도 하였다. 우연히 자연의 바람과 소리에 힘을 얻는 것이 아닌 그것이 내 삶의 일부인 것을 깨닫게 되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