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네일러...
늘 약 아니면 술에 취해 조금이라도 수틀리면 아들에게 무지막지한 폭력을 일쌈는 그의 아버지는 단단히 박힌 못 처럼 질기게 살아라고 그런 이름을 그에게 붙여주었다고 했다. 네일러는 그 이름이 마치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신탁이라도 된 양 그렇게 살았고 사실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는 세상이기도 했다. 때는 언젠가의 미래. 세상의 대부분이 '절대수축'이라는 해수면 상승으로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자원마저 고갈되어 오로지 재활용을 통해서만 필요한 자원을 얻을 수 밖에 없게 되었다. 그렇게 한정되어진 자원으로 인해 당연히 빈부의 격차는 극심해지고 모든 것은 그저 가진 '자본'의 양으로만 결정되었다. 따라서 국가는 더이상 소용없어지고 오로지 소수의 다국적 기업만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네일러는 이러한 마치 영국이 한창 식민지 건설을 통해 제국주의로 향해 나가던 것과 같은 세상에서 가장 빈곤한 계층의 아이로 태어났다. 그 계층이 살아남으려면 오로지 제 몸뚱이를 이용하여 좌초된 선박에 들어가 다국적 기업에 팔만한 고철더미들을 모으는 것 밖에는 없다. 그러니까 예전 우리나라 난지도에도 있었다는 재활용할만한 물건들을 찾아 쓰레기 더미를 뒤지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넝마주의'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도 그건 그나마 괜찮은 편이다. 그들을 특히 '스캐빈져'라 부르는데 그렇게 배에 들어가 고철을 가져오는 것도 왜만한 행운이 따르지 않으면 될 수 없는 지극한 부러움의 대상이니까. 세상에는 그조차 되지 못해서 자신의 장기나 피를 기업에 팔 수 밖에 없는 사람들로 넘쳐나기 때문에...
그러한 스캐빈져들에게 있어 희망은 딱 두 가지 밖에 없다. 하나는 절대 몸이 자라지 않는 것. 왜냐하면 선박 도처에 뚫린 구멍을 찾아 그 안으로 들어가 필요한 금속을 가져와야 하는 스캐빈져들로서는 몸이 커져 버리면 더이상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특히나 유조선 같은 경우 아직도 발견되지 않은 석유 탱크를 찾아내는 것이다. 석유가 완전히 고갈되어 그렇게 찾아낸 석유는 엄청나게 고가에 팔리기 때문이다. 즉 어딘가 잠자고 있는 탱크 속 석유는 스캐빈져들에게 한 방에 그 고단한 삶으로 부터 탈출시켜 줄 로또와도 같은 것이다.
네일러도 마찬가지였다. 그 둘의 희망만을 안고 단순히 오늘만은 살아남기 위해 내일 같은 건 전혀 생각하지 않고 어두운 통로들을 기어다니며 금속들을 모았다. 하지만 그래도 네일러는 바라는 게 하나 더 있었다.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었던 '쾌속선'을 타고 푸른 바다를 항해하는 것. 잠깐만 마음을 놓아도 그런 자신의 모습을 공상할 만큼 간절한 바람이지만 낮에는 어둡고 자칫 잘못하면 목숨마저 위태로운 통로들과 밤에는 무자비하게 가해질 아버지의 폭력 밖에는 없는 네일러에겐 그건 영원히 이루어지지 않을 꿈이었다. 그러니까 절망의 우물 바닥에 빠져버린 자의 두 눈 안에 비쳐드는 밤하늘의 별들과도 같은 그런 꿈이었다.
생각해보면 바치갈루피가 그려내는 세상들은 다 그랬다. '와인드 업 걸'에서도 그랬다. 온갖 유전병들이 들끓고 다국적 기업들이 식량을 제멋대로 통제하는 바람에 굶주림만이 가득한 그렇게 희망이라고는 그 어디도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바치갈루피에게 그저 디스토피아라는 의미만으로 머무르지 않는다. 그가 이런 가혹한 세상을 주인공들에게 선사하는 것은 디스토피아를 다루는 소설들이 흔히 그렇듯이 미래에 닥쳐올지도 모를 비극적 세계를 묘사로써 지금 현실을 계도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사실 보다 궁극적인 목적은 오히려 주인공들의 성장을 위한 발판을 마련해주기 위해서다. 그러니까 달리 말해 이렇게 세상을 묘사하는 건 거기에 바치갈루피가 정말 주인공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그런 마음이 투영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이란 다름아닌 주인공들이 그 어디에도 기대지 않고 제 스스로의 의지와 결정으로 서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바치갈루피는 그 무엇보다 오로지 혼자의 힘과 생각으로 그 자신만의 길을 가도록 원한다. 그건 그대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그의 진심이기도 하다. 때문에 그는 '와인드 업 걸'에서도 그랬지만 이 소설 '십 브레이커'에서도 일단 세상을 한 번 '리셋' 시킨다. 노아 시대의 홍수와도 같이 '와인드 업 걸'에서는 거대한 홍수로 또한 이 소설에선 카트리나와도 같은 거대한 태풍으로 기존의 모든 것들을 날려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기성의 모든 것들이 완전히 비워진 상태에서 주인공들이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그렇게 '십 브레이커'에서 네일러가 사는 마을은 완전히 전복되고 네일러는 그 뒤집어진 세상 속에서 자신의 꿈에 다가갈 계기를 얻게된다. 그리고 그 계기를 통해 네일러는 그 오래된 꿈을 위해 거침없이 달려가게 된다. 더 이상 하루하루를 견뎌내기에 급급한 자맥질이 아니라 힘차디 힘찬 헤엄으로 세상이 가르쳐 준 법칙이 아니라 자신이 발견한 새로운 삶과 인간에 대한 믿음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아버지라면 망설이지 않았을 것이다. 이 부잣집 소녀의 목을 긋고, 반지를 빼내고, 거기서 피를 씻어내며 웃었을 것이다. 일주일 전이라면 네일러 자신도 똑같은 일을 했을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슬로스가 나의 생명도 그녀의 생명만큼 소중하다고 생각해주기를 너무도 간절히 바랐지' (...) 물에 빠진 소녀의 애원하는 눈을 바라보면서 네일러는 한 때 자신의 눈도 꼭 그러했으리라고 생각했다. (P.128)
바치갈루피는 늘 압도적인 서사를 자랑한다. 그는 그 누구보다 흠뻑 매혹시킬만한 이야기를 할 줄 아는 작가이다. 거기다 SF적 세계인데도 그 디테일이 뛰어나서 현실감이 넘치기 때문에 더 이야기 속으로 빨려들게 한다. 그 블랙홀과도 같은 이야기 속에서 바치갈루피는 똑똑히 보여준다. 그 수많은 고난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스스로가 찾아낸 믿음 안에서 당당히 나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그러니까 바치갈루피의 매력이기도 한 압도적인 서사는 사실은 독자들에게 어떤 희망을 주기 위함이다. 즉 소설의 주인공처럼 그렇게 자신을 믿고 가도 된다는, 전혀 세상이 말하는 규칙 같은 것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오로지 네 자신만 믿고 나아가도 충분히 괜찮다는 바로 그런 믿음을 주기 위함인 것이다.
거짓말을 비웃을 수 있는 진실을 가르쳐주는 자가 누구지? 누가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고 어떻게 지킬것인가를 결정하지? 누가 우리를 바꾸지? 누가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 열쇠를 가지고 있지? 그건 바로 너야. 너는 이미 너에게 필요한 모든 무기를 가졌어 그러니 이제 싸워!
- 마치 영화 'SUCKER PUNCH' 이러한 마지막 독백과도 같이... -
지금보다 한 십년만 거슬러 올라가기만 해도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주로 했던 말은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였다. 아이들은 그들에게 남겨진 시간의 양 만큼이나 무한한 미래의 가능성과 동의어였고 그래서 한 편으론 어른들의 부러움과 시기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그래도 어른들은 아이들이 그 남겨진 가능성을 아낌없이 모조리 쓰기를 원했다. 하지만 지금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하는 말은 이제 더 이상 그 말이 아니다. 지금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소년들이여, 제발 살아달라!"
그렇게 어른들이 절박하게 외쳐야 할 만큼 현재의 대한민국은 아이들이 죽어나가는 시대다. 아파트에서 떨어지고 집에서 목을 메고 각종 폭력에 시달리다 죽는다. 비단 육체적인 죽음 뿐만이 아니다. 오직 좋은 성적만 강요하는 사회. 입고 있는 옷의 브랜드와 살고 있는 집의 평수로 모든 삶이 단정되어버리는 사회. 자신의 꿈조차 제가 원하는 것이 아닌 기성품 처럼 남들이 찍어주는 것에 맞춰주어야 하는 사회. 그 속에서 이제 그들의 영혼마저 죽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그들의 자살 역시도 영혼의 타살을 자행하고 있는 사회에 대해 더이상 그들의 희생을 강요하지 말라는 절박한 외침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그들은 '살아달라'는 말 밖에는 할 수 없는 어른들의 무기력을 비웃고 그것으로 그들에게서 더이상 아무런 구원의 빛이 나올 수 없음을 통박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로지 앞만 보고 빨리 달리기 위해 스스로 거세해 버린 경주마와 같은 어른들로 가득한 이 세계...
바치갈루피가 그려내는 '십 브레이커'의 세상은 그러니 사실은 먼 얘기가 아닌 것이다. 네일러의 하루를 몸으로 착쥐하고 영혼으로 핍박하던 그 세상이나 바로 지금 우리들 세상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어른들의 강요가 매일 아이들의 희망을 압살해 가는... 다만 우리는 '그들을 위해서'라는 사실은 자신 조차 믿지 않는 거짓말로 그걸 치장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사실은 지금 우리의 현실이 아이들에게 더 잔인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잔인한 세상에서 바치갈루피는 처음 청소년을 위해 쓴 이 소설에서 말하는 것이다. "세상은 너를 그저 벽돌벽 속의 벽돌 하나로 만드려고 한다. 하지만 어른들이 너를 위해 무언가를 해 주기를 기다리지 말고 먼저 스스로 벽돌벽 속 한 개의 벽돌이기를 거부하고 뛰쳐나가라. 구원은 오직 너의 그 탈주의 몸부림 안에만 있으니..."
사실 이런 말조차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이 소설에 어울리지 않는 중언부언에 지나지 않는다. 바치갈루피의 이 소설이 말하고 싶은 바는 단 한 문장으로도 나타낼 수 있다.
"거세된 어른들은 신경쓰지마! 너에겐 너 만의 진리가 있다."
|
|
SF에서 묘사하는 미래는 대부분 디스토피아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럴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자원은 점점 고갈되어 가는데 인구는 계속 늘어난다.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서 국가와 기업은 싸움도 불사할테고 계속된 개발로 자연은 점점 황폐해진다. 자연이 파괴될수록 이상기온이 생겨나고 자연재해도 많아진다.
권력을 가진 사람은 일반인들을 통제하려 하고 빈부격차도 심해진다. 그러다보면 디스토피아가 만들어지는 것도 시간문제에 불과하다.
파올로 바치갈루피의 2009년 작품 <십 브레이커>에도 역시 이런 디스토피아가 등장한다. <십 브레이커>는 석유가 고갈되고 해수면이 상승해서 많은 도시가 침수된 미래의 세계를 무대로 한다.
다국적 기업의 이윤추구로 환경이 파괴되고 폐허가 된 세상에서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 무슨 일이든지 하면서 살아간다. 과학기술이 발달해서 사람과 동물을 합성해 만들어낸 '반인(半人)'들도 인간과 함께 살아간다. 강인한 육체와 야생의 공격성을 가지고 있는 반인들은 오직 부자들의 이익과 안전을 위한 존재이다.
기후변화로 망가진 미래의 세상
주인공 네일러는 황폐한 해변의 마을에서 아버지와 함께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네일러는 수명이 다되서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선박에 들어가서 고철과 금속을 떼어내는 일을 하고 있다. 이렇게 선박을 분해하는 사람들을 가리켜서 '십 브레이커(ship breaker)'라고 부른다.
네일러는 자기가 몇 살인지도 모른다. 열여섯 살 보다 어리다는 것은 아는데 정확히 몇살인지는 모른다. 누군가가 몇 살이냐고 물으면, "그게 뭐가 중요해요? 할당량 맞춰서 일할 수 있으면 되죠"라고 대답한다. 네일러는 이 일을 아주 오랫동안 해왔다. 낮에는 어둡고 지저분한 선박 속을 헤매고 다니면서 팔 수 있는 고철을 끌어모으고, 밤에는 친구들과 해변에 앉아서 싸구려 술을 마시는 것이 낙이다.
그렇다고 돈을 많이 받는 것도 아니다. 네일러가 2주 동안 받는 급료는 부자들이 반나절 동안 쇼핑을 하면 없어질 금액이다. 이런 일자리 조차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것들을 판다. 혈액, 장기, 눈알, 난자 등 모든 것이 거래된다. 모든 것이 열악한 환경에서 네일러는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네일러는 해변에서 난파된 호화 여객선을 발견한다. 그 안에는 네일러를 부자로 만들어줄 금은보석들이 가득하다. 네일러가 귀금속을 챙겨서 떠나려는 순간 선실에서 의식을 잃고있는 소녀를 보게 된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소녀는 자신이 거대 선박회사 소유주의 딸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제안을 한다. 자신이 지금 쫓기고 있는데 자신을 도와주면 네일러를 부자로 만들어주겠다는 것이다. 지저분한 해변을 떠나고 십 브레이커 신세도 면하게 해주겠다는 것이다. 네일러는 갈등한다. 그냥 소녀를 죽여버리고 배안의 보물을 가지고 가더라도 자신은 부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네일러는 소녀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함께 길을 떠난다. 거대 선박회사의 음모와 추격전의 한 가운데로 던져진 것이다.
모험을 떠나는 소년과 소녀
네일러와 소녀는 해변을 떠나서 한때 도시였지만 지금은 물속에 잠긴 폐허를 가로지른다. 대책없는 인간의 어리석음과 무지 때문에 세상은 엉망으로 변해버렸다. 인간은 자연의 변화를 예측하거나 따라가지 못했다. 거대기업은 석유와 가스를 뽑아내기 위해서 바다 밑을 뚫고 섬들을 파괴했다. 그 결과로 무시무시해진 폭풍우가 주기적으로 해변을 덮친다. 전에는 장벽역할을 하던 섬들이 모두 파괴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작품 속에서 한 반인이 말한다. 때로는 실수를 통해서 배우기도 한다고. 하지만 실수를 통해서 배우지 못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미래의 죽은 도시들은 사람들이 변해가는 환경을 받아들이는데 얼마나 뒤쳐졌는지를 알려주는 좋은 예이다.
이런 소설을 읽다보면 작품에 등장하는 네일러 같은 아이들에게 동정하게 된다. 단지 그들이 어린 나이에 중노동에 시달리기 때문은 아니다. 참담하게 변해버리기 전의 세상, 유토피아라고 부를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아이들의 맑은 웃음이 어디서나 들려오던 세상을 네일러가 경험하지 못한다는 것이 안타깝기 때문이다.
동시에 두려움도 생겨난다. 미래의 세상이 마치 <십 브레이커>에서 묘사하는 것처럼 변해갈까봐, 아이들의 웃음이 사라진 그런 미래가 정말로 얼마 남지 않았을까봐 두렵다. |
|
용기는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두려워도 그냥 하는 것, 단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책에서 이와 같은 말을 보았고 텔레비전에서도 어떤 사람이 이 비슷한 말을 하는 것도 들어봤다. 그러나 삶을 살아가면서 용기를 내는 것, 포기하지 않는 것이 그리 쉽지 않음을 알아간다.
소설 <십브레이커>에서도 이런 시험의 과정이 많이 찾아온다. 주인공 네일러의 선택은 어쩌면 가장 지혜롭지 못하고 가장 어리석은 판단으로 자신의 삶을 이끈다. 그러나 생사의 기로에서 동료의 매몰찬 배신을 경험했던 네일러는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었다. 지구는 온난화로 많은 도시가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고 브라이트 샌드 비치는 많은 폐선들의 해체작업장인 스캐빈지의 영역이다. 몸집이 작은 아이들은 경량팀에서 구리선과 같은 돈이 되는 것들을 해체하고 힘이 센 사람들은 중량팀에서 일한다. 그러나 이도 저도 아닌 사람들은 무법천지 해변에서 살며 그 어떤 소속감도 없이 지내며 생사를 넘나들어야한다. 주인공 네일러는 나이에 비해 작은 몸집으로 아직 경량팀에서 일한다. 폭도인 아버지는 약과 술에 취해 기분에 따라 네일러를 샌드백 취급할 뿐 네일러의 의식주를 책임지지 않는다. 이제 네일러도 1~2년 후면, 아니 몸집이 조금이라도 더 커지면 경량팀에서 쫓겨날 것이고 힘이 약한 체격에 중량팀에도 들어가지 못한 채 험난한 비치에서의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매일 할당량을 채우는 지금의 삶이라도 감사한 이유다. 그러던 어느 날 도시 살인귀라 불리는 허리케인이 오기 하루 전, 더욱 부과된 할당량과 경량팀에서의 불안한 위치를 확고히 하고자 다시 폐선 안으로 들어갔던 네일러는 기름통으로 떨어진다. 부를 가져다 줄 기름이지만 지금은 죽음의 늪일 뿐인 그 곳에서 죽음의 공포와 싸우던 중 동료인 슬로스가 자신을 발견하지만 그녀는 모르는 척 떠나버린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살아난 네일러는 허리케인이 가져다 준 침몰한 쾌속선에서 브라이트 샌드 비치의 그 누구보다 많은 부를 가져다 줄 부유한 스왱크의 물품들을 발견한다. 거기서 다 죽어가는 니타 처드허리를 만나며 스캐빈지 네일러는 스왱크 니타와 함께 파란만장한 모험의 세계로 들어간다. <십브레이커>를 읽으면서 나는 색다른 것을 두 개 발견하는 즐거움을 가졌다. 오해를 불러일으킨 시대적 상황과 남다른 스케일! 첫 번째 발견한 시대적 상황은 소설의 초반부를 다 읽는 동안 계속 내 어리석은 판단이 가세한 덕분이다. 예전에 폐선 해체 작업을 하는 가난한 나라의 노동자들 이야기를 다큐맨터리로 본 적이 있기에 소설 초반부 네일러의 근무 환경은 그 곳을 연상시켰다. 그러나 소설 중간중간 등장하는 스캐빈지, 반인, 리넨 중적화, 도시 살인귀라는 허리케인 등 생소한 단어들의 심심찮은 등장으로 의구심을 품게 되었다. 애초에 소설이든 영화든 최소한의 정보만으로 직접 대면하기에 이런 일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이렇게까지 혼돈이 오래 가는 것은 판타지소설로 굳이 장르를 구분하지 않아도 될만큼 작가가 현실 같은 미래를 표현한 덕분이다. 그러나 결국 ‘반인’의 정체로 인해 내 오판은 끝이 났다. 이런 미래의 모습은 영화 속 그 어떤 미래의 모습보다 가장 현실적이었다. 두 번째 남다른 스케일은 단순히 청소년 소설이려니 생각하며 읽는 이들에게 사건의 중심이 브라이트 샌드 비치에서 올리언스로 그리고 다시 망망대해로, 티스로 향하며 다양한 캐릭터와 가난한 스캐빈저가 부유한 스왱크의 세계의 음모와 혈투에 참여하며 개인적으론 아버지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그 아픔과 미련까지 다룬다. 이런 즐거움 외에 <십브레이커>는 그 어떤 소설이나 영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세상을 묘사하며 신선함을 보여주었고 그 안에서 미래 속 작금의 현실을 이야기하며 독자의 몰입도를 높이고, 미래가 지금 우리의 현실의 결과물이기에, 지금 우리 삶에 대한 고찰과 주인공 네일러를 통한 물질 만능주의, 자본주의 폐단의 시대에 사는 우리네 삶을 뒤돌아보게 한다. 어린 네일러의 삶은 우리 아이들의 미래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미래를 책임져야 할 우리의 현실에 대한 책임은 결국 우리가 아니라 우리 후손들이 떠안게 된다. 한 편의 소설을 통해 재미를 느끼고 고민을 하게 되는 경험, 아주 오랜 만에 느껴본 다! |
|
탄소에너지의 고갈,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지구 생태계의 파괴, 인간의 도덕적 오만을 대표하는 유전공학 기술의 남용이 만들어 낸 반인(半人), 이렇듯 암울해진 미래의 인간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사회는 극단적으로 양극화되어 부자들의 세계와 빈자들의 세계는 차단되어 폐허가 된 쓰레기 더미에서 재생품을 수집하기 위해 중노동에 시달리는 아이들과 그들을 착취하고 폭력과 살인, 배신과 기만만이 숨 쉬는 무법 공간의 지옥도가 펼쳐진다. 아무런 안전도구도, 생명에 대한 어떠한 연민도 없는, 생존의 욕구만 팽배한 현장, 거대한 폐선(廢船)을 해체하여 수입이 될 수 있는 구리, 철, 폐유(廢油) 등을 수집하기 위해 불빛조차 없는 암흑의 폐선 바닥과 좁은 덕트 속에서 쉴 새 없이 목숨을 건 노동을 해야 생존할 수 있는 곳이다. 사실 이러한 묘사는 상상의 미래도, 과장된 디스토피아도 아니다. 바로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는 거대 글로벌 기업들이 어린 소년소녀들의 노동을 착취하는 끔찍한 선박해체 작업의 현장은 즐비하기에 소설 속 소년과 소녀를 보는 마음은 안타깝기만 하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타인을 믿는다는 것은 커다란 위험이 되는 세계이고, 중노동일지언정 그것만이 유일한 생존의 길이다. 이 거친 일마저도 얻기 위해 비굴함과 폭력에 시달려야 하고, 노동력을 상실하면 장기를 비롯한 신체를 팔아야 하고 이마저도 없어지면 죽음만이 기다리는 그런 곳이다. 그래서 감독자가 되고 쓰레기 수거권리를 가지는 자가 되어 노동에서 벗어나는 행운을 쥐기 위해 남들이 찾아내지 못한 가치 있는 물건을 찾는 것은 이상이자 꿈이 된다. 선박 해체작업의 경량(輕量)팀 일원인 소년‘네일러’는 우연히 팀의 조장인 연상의 소녀인‘피마’와 해안 근처의 섬을 탐색하던 중 폭풍우에 전복된 부자들의 세계에서 온 쾌속선을 발견하고, 그들의 눈앞에 전개된 엄청난 귀중품들과 유일한 생존자인 부자들의 세계에서 온 소녀를 마주하게 된다. 네일러와 피마에게 있어 이것은 중노동을 벗어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임을 의미한다. 소녀는 그들의 세계에 돌려주고 보상을 받을 수도, 아니면 신체라는 물질로서 팔수도 있는 대상이며, 그녀를 장식하고 있는 금과 다이아몬드등 귀금속만으로도 하나의 작업권리를 살 수 있다. 우리에게 이러한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까? 내 생존의 수단으로서 한 인간 생명의 사생결단권을 갖게 되었을 경우 내 이익과 타자의 생명을 교환할 수 있을까? 더구나 자신들의 신체를 착취하고 인간적 존엄성을 부정하는 부자들의 세계에서 온 소녀를 위해 자신에게 온 행운을 포기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 조차 여의치 않게 되는데, 폭력과 살인, 타자의 생명에 대해 어떠한 연민도 갖지 않는 잔혹한 인물, 바로 네일러의 아버지가 이끄는 일군의 무리와 생사를 건 사투를 벌이게 된다. 생명을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살인, 끔찍한 이 세계에도 사랑과 보호와 연민의 유대는 있어 그들의 도움을 받아 경멸과 조롱의 의미를 담은 부자들, 스웽크(swank)인 소녀와 탈출을 감행한다. 소설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소녀의 세계, 즉 부자들의 세계 또한 그치지 않는 탐욕으로 얼룩진 세계임을 드러낸다. 불법과 야만적 욕망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서 소녀의 생명을 노리는 세력들로 인해 네일러의 꿈과 희망, 소녀의 귀환이라는 여정에는 끊임없이 위험이 놓이고 용기와 도전을 요구한다. 성취를 향한 길은 결코 평탄치 않다. 때론 예기치 않은 존재로부터의 도움이 있고, 도저히 건널 수 없는 장애를 넘어서야 하는 순간이 있으며, 삶과 죽음의 경계에선 절대 절명의 선택이 요구되기도 한다. 그것은 미지에 대한 과감한 도전의 용기이며, 폭풍우 몰아치는 거칠고 거대한 파도의 비탈과 협곡을 곤두박질치는 사투를 건 승부의 세계이기도 하다. 소녀 니타와 소년 네일러는 그들 서로에게 ‘러키 걸’, ‘러키 보이’라는 행운으로 불리지만 이들에게 다가온 행운(lucky)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하기위해서는 이처럼 힘겨운 풍랑과 마주하는 태도일 것이다. 사실 이러한 결론은 진부하고 낭만적인 교훈이라고, 선박해체작업에 내몰린 어린 소년소녀들의 실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공허한 소리에 불과하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찾아야 할 꿈조차 꿀 수 없고, 도전해야할 희망조차 없다면, 우린 무엇을 말 할 수 있겠는가? “교만과 죽음은 빨리 찾아오는 법”이라고 말한다. 오늘의 우리 세계가 보이는 행태는 인류 역사의 그 어느 시기보다 오만하고 자기 과신에 젖어있다. 물질은 정신을 압도하고, 과학은 자연의 본성을 통치하려한다. 아마 우린 죽음, 자신들의 운명을 재촉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 난자에 개, 호랑이, 하이에나의 유전자를 혼합하여 만들어낸 혼합생명체인 반인, 가난한 자들의 노동착취와 신체를 거래대상으로 하는 파텔, 로스앤칼슨 등 거대기업들의 부도덕성, 해수면 아래로 잠겨버린 한때 영화로 불리던 도시의 음울함 등은 이 소설이 전하려는 메시지들을 이처럼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미래 세대들, 지금의 어린 소녀 소년들에게 지향해야 할 인간의 진정한 가치, 덕목이 무엇인지를 생각게 하는 생명의 이야기가 된다. 생명, 인간의 존엄성, 그 고귀한 가치들에 대해서... |
|
일단 수상 내역이 화려한 책이다.
2011 마이클 프린츠상을 수상하고 2010년 아마존닷컴 에디터 선정 최고의 책으로 뽑히고,2010년 내셔널 북어워드 최종후보에 올랐다는..
띠지의 광고 글귀에 적혀있는대로라면 그렇단다.
이책에선 시대가 언제인지 어느정도의 미래인지를 알려주는 글은 없다.
내용 중간중간에 지나친 개발..그중에서도 석유자원의 개발로 해양생태계가 파괴되고 지형도 변하면서
잦은 허리케인에 고스란히 노출된 사람들
그로인해 물에 잠긴 도시가 많아지고 돈이 있는 사람들은 살기위해 다른도시로 떠나고
없는자들은 뒤에 남아 처절한 삶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는
이야기가 조금씩 나와서 그저 막연하게 미래이야기라고 짐작하는 정도
주인공 네일러는 부서진 선박에서 자기목숨값보다 더 비싼 구리나 니켈과 같은 고철들을 찾아 폐선을 뒤지고
목숨을 걸고 힘겹게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소년이다
거기다 약에 취하고 술에 취해 끊임없이 폭력을 휘두르는 잔인한아빠까지 있는...
하루하루 목숨을 연명하고 내일을 기대할수 없는 삶을 살던 네일러에게 어느날 뜻밖의 기회가 왔다.
엄청나게 비싼 여객선이 허리케인에 난파되고 그안에는 값비싼 물건이 가득하다..
모두가 죽은 줄 알았던 곳에는 한 소녀가 있었고 그 소녀가 엄청난 부잣집딸이자 자기를 구해주면
다른삶을 살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하는데...
그 소녀...니타를 구해줄려면 아버지를 등지고 배신해야하는걸 의미하는것과 동시에 네일러 자신의 목숨도 걸어야한다는걸 의미한다
갈등의 순간..이대로 시궁창같은곳에서 목숨이나 부지하며 살것인가...?
아님 죽을지 모르지만 비상할수도 있는 이 기회를 잡을것인가...?
목숨을 건 대 탈주..그리고 악귀같이 뒤를 쫒는 아버지와의 사투,그리고 니타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의 대추격
인간다움을 잃지않고 살아가기가 힘든곳에서 믿음을 지키고 인간다움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소년 네일러의 모험담이 흥미로웠다.
그리고 친아버지와의 화해로 끝을 맺는 진부함을 보이지않고 새드나 아줌마와 피마와 같이 비록 피로 맺은 가족은 아니지만
사랑으로.. 신뢰로 ..새로운 형태의 가족상을 보여준 점이 흥미로웠다
아쉬운 점이라면 뒷부분의 이야기를 너무 흐지부지 끝낸것 같은 점...
게다가 뒷이야기가 더 궁금한데 결말을 너무 서둘러서 마무리지은점이 넘 아쉽다.
![]() |
|
앞으로 50년 100년 후의 우리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끝이 보이는 천연자원과 지금도 찬반논란이 가득한 유전자조작문제, 힘을 가진 대기업의 무분별한 개발로 파괴되어 가는 아마존과 남극의 환경, 거대 기업이 조작하고 이끄는 세계경제. 그리고 지금도 조금씩 느껴지는 지구 온난화로 야기는 문제점들,,, 가지지 못한 서민의 입장에서는 암담하기 그지없다 그렇다면 SF 소설로는 이례적으로 '타임'이 ‘올해 최고의 소설’로 선정하는 등 차세대를 이끌 작가로 주목받는 파올로 바치갈루피가 본 미래의 모습이 바로 이책 [ 십 브레이커] 속에 있다. 소녀를 포기하고 배에서 얻게되는 엄청난 부를 포기하고 소녀를 구하고 지키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네일러의 엄청난 모험과 여정 |
|
작가의 상상력은 무한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 책의 배경이 되는 상황은 참 싫었다. 사람의 목숨보다 기름이 더 귀하게 여겨지는 사회가 온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너무 끔찍하다. 그리고 자신의 길에 걸림돌이 된다 싶으면 자식이라도 얼마든지 버릴수 있고, 그 자리가 탐나고 자신이 꼭 앉아야겠다 싶으면 어려운 난관에 빠져 허우적 거리는 사람을 얼마든지 외면할수 있다는 것이 섬뜩했다. 폐선에서 금속을 떼어내 그 고철을 선박제조업체에 되파는 일을 가리켜 '십 브레이커(ship breaker)'라 한다. 처음 십 브레이커를 접했을때는 이게 무슨뜻인가 했는데, 영어로 보니 더 이해가 쏙쏙 되었다. 아무튼 이 책의 주인공은 엄마의 죽음 이후 술과 약에 절어 자신을 폭행하는 아버지로부터 벗어나지 못한채 그날그날을 연명하는 네일러다. 누구에게나 배우자의 죽음은 스트레스 1요인이 된다고 하지만, 그래도 자식이 있는데, 나같으면 어떻게 해서라도 아득바득 살아보려 노력했을 것 같은데, 너무나도 쉽게 허물어지고 도저히 아버지로서는 할수 없는 행동과 생각을 하는 네일러 아버지의 정신상태가 궁금해졌다. 비좁은 배안에서 움직일수 있는 몸집이 작은 아이들로 구성된 '경량팀' 소속인 네일러는 아버지의 폭행에도 꿋꿋하게 나중에 커서는 선원이 되겠다는 꿈을 꾸고 있으며, 더 몸집이 커지면 내려갈수 없는 작업환경을 찾아 내려갔다가 동료의 배신을 보게 되고, 또 그안에서 거대 선박회사 사장의 딸이라 주장하는 니타를 만나게 된다. 잘살고 못살든간에 사람은 다 각기 속해있는 집단내에서, 그리고 자신과의 삶의 법칙이 있기 마련이다. 니타를 위해 자신의 법칙을 내던진채 안전하게 니타를 되돌려 보내려는 네일러. 그렇지만 그 결심과 함께 네일러는 생각지도 않았던 거대 선박회사의 권력다툼과 음모, 또 그안에서 숱하게 벌어지는 배신, 숨막히는 추격전에 쫓기는 신세가 된다. 부자라고 해서 마냥 행복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다시한번 느낄수 있었다. 또 예전에는 무조건 발명이 최고이고, 또 문명의 이기로 인한 장점만을 생각했었는데, 하나둘 나이를 먹다 보니, 문명이 발달한다고 하여 그게 100% 좋은것만은 결코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질의 발달과 시간의 단축등은 우리의 생활을 편리하게 했을지는 모르나, 우리네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고, 어떤 감정상태의 고갈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거기다 인간의 유전자에 개나 호랑이, 하이에나 같은 동물유전자를 합성해 새로운 생명체를 탄생시킨다는 것이 과연 과학의 발달이라고 해야 할지. 그래서 유전공학부분은 절대적으로 조심해야 하고, 인간의 도리를 벗어나는 범위의 실험은 행해서는 안된다고 하나 보다. 그렇게 탄생한 인간도 아니고, 그렇다고 동물도 아닌 어정쩡한 반인이 또 극소수 부자들의 경호를 위하여 매매된다는 것은 인간성이 얼마나 상실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가 되었다. 어떤 나쁜 물건을 만드는 사람에게 "왜 이런것을 만드느냐?"라고 했을때, 그들이 "사는사람이 있기 때문이 아니겠소."라고 아주 당당히 말을 하는 원리와 같지 않을까? 아무튼 이 책은 네일러의 모험담을 통해 인간이 진짜로 잃어버리면 안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절실히, 열심히 생각해보라고 권고 하는 것 같다. |
|
십브레이커 파올로 바치갈루피 지음 RHK
세상과 온몸으로 부딪쳐 자신의 길을 찾는 소년의 이야기 아마도 미래의 어느 날, 인간들의 무절제한 환경파괴로 거대한 폭풍우가 일어나고, 섬이 가라앉고 도시는 멸망하고, 훼손된 상태로 인간의 목숨이 기름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 브라이트 샌즈 비치에서 선박 해체 작업으로 근근히 살아가는 한 소년 네일러. 그는 열병으로 사망한 엄마와 악마와 같은 리처드 로페즈(아빠)의 폭행에서 벋어나고 싶은 소년이다. 네일러는 덕트에 들어가 구리선 등을 구해 오는 일을 하는 경량팀에 속해 있고, 이들은 고철을 사들이는 기업을 상대로 재활용 쓰레기를 수집해서 먹고 산다. 그저 하루하루 살아갈 뿐, 이들에게는 희망도, 미래도 없고, 이렇게 살아가기 위해 똑똑한 머리와 행운이 뒤따라야 한다고 믿는다. 기름탱크에 빠져 죽을 뻔한 일을 겪은 네일러는 난파선 윈드위치호에서 스왱크인 니타를 발견하고, 그녀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고, 피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니타를 구해주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그 순간부터 거대 선박회사의 권력 다툼과 음모, 그리고 악마같은 아버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탈출을 감행하고, 숨 막히는 추격전이 시작된다. 상상하고 싶지 않을만큼 끔찍한 상황. 이런 미래는 맞고 싶지 않다. 저자는 우리에게 경고한다. 이런 미래를 원하지 않는다면, 환경훼손에 가담하지 말라고~ 부자이건, 아무 힘도 없는 보잘것 없는 인생이건, 인간이 자신들만의 이익을 위해 유전자 변이를 통해 만들어낸 반인이건, 모두에게 절망스러운 미래이다. 이야기가 시작되면서부터 결말은 예상한 바다. 결국에는 네일러는 니타를 구해내고, 럭키보이로 등극하리라는 것은. 다만, 아버지와의 한판이 어떻게 전개될지, 그의 행운이 어떻게 그 위력을 발휘할지, 그리고 그의 영민한 감각이 어떤 식으로 그려질지 자못 궁금했다. 그리고 니타와의 로맨스까지도~ 올리언스를 배경으로 하고, 중국의 화폐라고 중적화(Chinese Red Paper)가 통용된다는 설정이나, 수중익(선체의 흘수선 아래에 장치된 날개)을 비롯한 선박용어등은 낯설지만, 이야기에 빠져들게 한다. 상속받기 까지는 모계의 성을 사용한다는 설정도 재미있고, 인간의 난자에 다른 동물의 유전자를 혼합하여 반은 인간이고 반은 동물인 반인을 맞들어내고, 개과의 유전자의 특성으로 주인이 죽으면 하루하루 야위어가다가 결국 죽게 된다는 설정도 독특하다. 거대 기업으로 파텔, 제너럴 일렉트릭, 플루이드 디자인, 쿠오크 LG. 등의 기업을 설정한 것도 흥미롭다. 작가의 독특한 상상력에 세계에 초대받고 하루를 즐겁게 보냈다. 네일러도 되었다가, 니타도 되었다가... 반인이 되보고 싶지는 않으니~ 모험을 직접 해보고 싶은 용기는 없고, 이렇게 책으로 잠깐씩 즐겨보는 것으로 만족하리라~ 2012.2.11. 모험의 세계로 나들이를 다녀온 |
|
첫번째 장편으로 미국 SF계를 평정해버린 '파올로 바치갈루피'의 두번째 장편소설. 갑자기 영 어덜트 계열로 나온다고 해서 조금은 힘을 뺀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염려했는데, 'boy meet girl'인 모험 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그다지 독자층에 연연한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다.
항상 죽음과 인접해 있는 선박 해체꾼인 주인공 '네일러'와 소년소녀들은, 서로간의 절대적인 신뢰를 기반으로 한 '팀'을 이루어 미래가 보이지 않는 가혹한 하루하루를 어떻게든 버티며 살아가고 있다. 초반의 에피소드에서 보여지는 팀의 끈끈한 관계는 줄곧 네일러와 아버지의 피를 나눈 부모자식간의 미묘한 애증 관계와 대치된다. 혈연보다 중요한 것이 '사람'이며 서로 지지해주고 도와줄수 있는 사이라면 그게 더 가족이라 불릴 가치가 있다는 뉘앙스가 곳곳에 새겨넣어져 있다.
또 하나의 포인트는,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어진 반인(반인반수) '툴'의 존재다. 인간과 몇몇 야수의 유전자가 섞여 바람처럼 움직이고 무시무시하게 싸우는 거한이라는 설정자체도 이미 매력적이지만, 이 또한 소설 속에서 단순하고 강력한 메세지를 시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이 툴이 이야기하는 '반인'과 '후원자' 의 관계 역시 네일러와 아버지의 관계와는 또다른 시점에서 대비 된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것들은 연기처럼 흩어질 거짓말에 지나지 않는다'는 강렬한 표현에서는 다소 문화적 차이를 느낀다고 해도, 매력적인 이 디스토피아의 세계를 조립해가는 바치갈루피의 문장은 훌륭하다. 예를 들어 서두에서는 선박 해체 작업중인 네일러에게 밀착한 시점에서 단번에 카메라를 당겨와 폐선의 전경을 묘사하는 부분이 있다. 영화의 한장면 같은 이런 연출이 아주 마음에 든다.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이미 속편이 계약되서 현재 집필중이라고 한다. |
|
십브레이커ship breaker 선박 해체 작업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사용 주기가 지나서 더 이상 쓸 수 없게 된 배들은 재활용할 수 있는 선체의 금속이나 갑판의 장비들을 모으기 위해 배를 부수고 해체하는 작업을 하는데 이 작업을 ‘십 브레이킹(ship breaking)’ 이라 하고 이 작업을 하는 사람들을 ‘십 브레이커’라고한다.
SF에 대해서는 무지합니다. SF라고하면 생각나는 것이라곤 단어의 나열입니다.(아차, 여기서는 연관되는 것이라고 해야하나요) <배틀스타 갤럭시카>, <닥터후>, <우주전쟁> 등 활자보다야 영상으로 접하는 것이 더 쉽게 다가오겠지만 왠지 ‘SF’라는 단어에 두려움이라고나 할까요. 이런 것이 있어 영상화나 활자나 둘 다 제대로 접해본 적이 없습니다. 이번에 읽게된 책은 SF긴 하지만 YA계열입니다. 말하자면 SF에 처음 접하는 분들도 쉽게 접할 수 있다는 말 아닐까요. 작가 파올로 바치갈루피는 이쪽에 무지한 저라도 책 제목만은 들었음직한 작가입니다. <와인드업 걸>이라 작년 9월에 출간된 SF소설인데 미국에서 여러 상을 석권할 정도로 작품성도 인정받은 작가이구요. 이러한 작가의 YA 데뷔작이 <십 브레이커>라니 제목만 언뜻봐서는 욕이 연상되지만 한 번 읽어보고 싶더라구요. 어렵다고만 하는 장르를 어떻게 표현할련지, 어떻게 나에게 다가올련지.
작가가 말하는 미래는 정말 ‘먼 미래’지만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미래는 아닙니다. 여지껏 SF라고하면 우주가 배경인 것만 생각이 들었는데(옷도 위아래 연결된 스판텍스옷) 적어도 여기서는 배경이 지구니까 이렇게 적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가 말하는 미래에는 기름이 인간보다 더 중요히 여깁니다. 그 배경은 화석 연료가 고갈되고, 해수면이 상승해 도시는 침수되고, 빈부 격차가 극심해진 미래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다국적 기업의 이윤 추구로 환경이 파괴되고 이로 인한 자연 재해로 폐허가 된 세상 속에서 살아갑니다. 매일 매일이 고된 하루지만 자기들이 사는 세상 외의 세상은 어떤 건지 모르기에 살아있다는 있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할 뿐이구요. 세상은 ‘물’로 가득차 있으며 태풍이 그저 스쳐지나간 것 뿐에 불가해도 해안가의 마을들은 초토화됩니다. 나무 판자와 여러 가지 것들로 얼기설기 만든 조잡한 ‘집’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몇몇의 사람들은 죽기도합니다. 주인공 네일러가 사는 빈민촌 브라이트 샌드비치는 사람이 자그마한 병에도 죽어나가고 조그마한 재해에도 죽어나갑니다. 현실에서는 손쉽게 구하는 항생제가 없어 운명의 여신에게 맡기고 높은 열로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것이죠. 사람의 목숨보다 ‘돈과 기름’이 더 중요히 여기는 시대입니다. 이 곳에서 네일러는 약속과 신뢰의 가치를 보여주는 것으로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위해 네일러의 모험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네일러와 니타의 이야기를 풀어나가지만 그들의 풋사랑이 중점적이지않고 더 커다란 틀을 보여줍니다. 그들의 세계는 어떠한지, 빈민가에서 살아온 네일러와 부자를 뜻하는 스왱크인 니타의 사회적 지위와 생각 차이도 눈에 띄구요. 거대 선박 회사의 권력 다툼이 이야기의 중점이지만 그것보다 배경이 더 눈에 들어옵니다. 여러 측면에서 다가가 볼 수 있는 이들의 이야기와 세계관에1 눈에 휘둥그레지며 이들의 이야기에 빨리듯 들어갔습니다. SF긴하지만 YA에 속하는 소설이라 조금은 마음을 놓고 본 측면이 없잖아있는데 작가는 그 속에 인간들의 이기심, 과도한 발달로 인한 망가진 미래의 모습 등 현대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간접적으로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단편적으로만 생각하고 끝나는 것이아닌 곱씹어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로 읽고 검색한뒤 좋았던 건 이 작품의 후속작에 대한 기대입니다. 미래를 이런식으로도 표현할 수 있구나라고 생각이 드는 작품으로, 바탕이되는 그들의 세계관과 생각들을 다시금 만날 수 있으니 그 기대감에 과하다고할지도 모를 별점으로 답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