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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총점 종이책
자신을 위해 죽는 이기적이고 급진적 사랑의 다른 이름 ,정사 情死
"자신을 위해 죽는 이기적이고 급진적 사랑의 다른 이름 ,정사 情死" 내용보기
사랑 그 사랑 때문에 그 사람 때문에 내가 지금껏 살아서 오늘 오늘이 지나서 그 사람 다시 볼 수 없게 되면 다시 볼 수 없게 되면 어쩌죠그 많은 인연에 왜 하필 우리 만나서 사랑하고 그대 먼저 떠나요우리가 만들고 우리가 함께한 시절 잊진 못할 거야....  임재범의 사랑노래  中에서 -     사랑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노래가 임재범의 <<사랑>>이다. 임재범의 애절하고
"자신을 위해 죽는 이기적이고 급진적 사랑의 다른 이름 ,정사 情死" 내용보기
사랑 그 사랑 때문에 그 사람 때문에 내가 지금껏 살아서 오늘 오늘이 지나서

그 사람 다시 볼 수 없게 되면 다시 볼 수 없게 되면 어쩌죠
그 많은 인연에 왜 하필 우리 만나서 사랑하고 그대 먼저 떠나요
우리가 만들고 우리가 함께한 시절 잊진 못할 거야....

 

임재범의 사랑노래  中에서 -

 

 

사랑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노래가 임재범의 <<사랑>>이다. 임재범의 애절하고 허스키한 분위기도 좋지만 무엇보다 가사가 들을 때마다 찌르르하다. 얼마나 사랑하면 다시 볼 수 없을 것을 걱정하고 먼저 떠나라고 하는지, 그리고 항상 머리에 강한 충격으로 남아있는 영화<<글루미 선데이>>에서 두 남자가 한 여자를 두고 사랑싸움을 벌이다가 두 남자가 한말, " 일루미와 헤어지느니 반으로 나누자." 는 말은 아직도 충격으로 남아있다. 이외에도 <<타이타닉>>의 마지막 장면 , 자신을 위해서 살아달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바다 깊은 곳으로 침몰해 들어가는 영상은 오랜 세월동안 사랑과 함께 떠오르던 기억의 편린들이다. 이렇게 둘이서 끔찍이 사랑하다 어느 한쪽이 먼저 목숨을 끊거나 함께 죽는 ‘그 일’을 우리는 ‘정사(情死)’라 부른다. 

 

이 책 <<사랑하다 죽다>>에서는 이제 껏 우리가 알고 있던 사랑의 관점을 다른 관점으로 해석하여 역사속에서 모든 것이 변해왔듯이 '정사' 또한 사회학적인 측면에서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살펴본다. 따라서 일반적인 사랑의 개념과는 틀린 접근방법이다. 저자는 사랑을 '인문학적 주제이자 사회과학적 탐구대상'이라는 시선으로 책을 집필한 듯 하나, 사랑이라는 것이 탐구대상인 것은  맞지만 과연 정치적이고 사회학적인 설명이 가능한 것일까 하는 호기심으로 읽게 되었다.  

 

첫장의 시작에서 '연애'를 '정치'라고 하는 이유를 저자는 '관계'의 지탱과 확장 혹은 단점과 소멸까지 말하며 굳이 깐깐하게 굴지 않더라도 사람이 기다리며  간절해하는 '다스림'의 정치의 모습으로 설명하고 있다. 사랑해서 기꺼이 대신 죽어도 좋은 , 오로지 죽음만이 사랑의 완결을 가져오는 경우 또한 흔치는 않은 경우이다. 따라서 사랑 또한 아무나 할 수 없지만 죽음 또한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다. 소유할 수 없는데도 멈출 수 없는 무한소유 욕구의 독한 패러독스와  세상 모두가 사라져도 둘의 사랑만 있으면 된다는 '제로섬'논리로 인한 결과는 죽음뿐이다.  그러나 결국 이런 정사 情死는 '자신을 위해 죽는 이기적이고 급진적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왕조국가에서 정사情死는 가부장제 국가 남성 특권과 그 영속적 향유를 의식한 권력의 의지로서, 사랑이 하나의 학습과 체험을 통한 교화의 대상이었다는 사실을 배제할 수 없다. 신분사회 조선이 강요한 복종의 일방성과 그로써 무르익은 위선의 문화가 부추긴 귀결은 자연적으로 情死로 이어져 열녀문(열행)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식민시대의 정사情死를 살펴보면 신분의 제약도 사라지고 유교 격식과 율법또한  자유로와지지만 그 속에서 탄생하는 '신여성'이란 " 서양의 물질, 육체성을 정신의 부재와 타락 및 퇴페'가 내재된 식민지 조선에서 부르주아의 자식과 유녀층이 따라하는 퇴페적인 현상이며 겉치레만 따라하는 어설픔 모방, 불완전한 모방의 모습이었다. 이 사이를 연애라는 자유감정이 근대와 함께 스며들게 되는데 왕조국가에서 보았던 열행의 정사 情死의 모습은 사라지지만 식민지시대의 정사情死는 훨씬 엽기적이고 살벌한 죽음과 죽임의 형식으로 분화, 발전하게 된다. 저자는 이 변화의 모습이 3.1운동 이후로 본격적으로  도드라지기 시작했으며 나라 잃고 모국어를 쓰지 못하는 삶이 맺지 못할 님과의 인연이 더욱 처절하고 기구하게 다가와 죽음마저 불사하는 모습의 정사情死로서 암울한 시대상을 자기 부정성과 연결되어 표출된 모습으로서 메커니즘이 작동된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신여성은 계층과 신분을 지칭하는 개념이 아니라 의식수준과 행태의 파격을 함축하는 단어라는 것이다. 봇물 터지듯이 강점기에 터진 정사情死의 모습은 부호의 아들과 기생, 교수와 여제자, 유부남과 처녀, 카페여급과 혼외 남녀가 일상의 불륜의 모습을 보이는 이유가 이미 사랑의 감정이 인습으로도 막지 못할 역사적 한계에 다다랐음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해방 후 한국사회의 구조적 분화와 기능적 전문화는 그만큼 세상의 복잡화를 유도하였고 해방의 감격과 찾아온 자유의 파편들 속에 상실과 소외감을 느끼며 식민의 시대가 주는 척박함과는 또 다른 경쟁과 갈등의 그늘이 삶을 지치게 하고 그 속에서 자살수치는 증가해가고 있었다. 더군다나 국내 변사인구 가운데 남녀 간 애정문제로 자살한 숫자가 5만이 넘었다는 것은 실제로 사회안정망으로의 국가기능을 하지 못한채 1970년대 중반 , 애정 자살인구가 최고조에 달하게 된 것을 저자는 자살을 인문학적 생소함으로 받아들여 학문적 거부감을 이유로 집중 분석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며 지금까지도 꾸준히 증가하는 자살인구는 국가의 무능과 권력의 무기력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동시에  시민과 공공정책의 단절 혹은 허구성을 잘 말해주는 것이라고 한다. 

 

자살이라는 것이 여전히 국민 각자의 사적인 일로 치부되어 있듯이 정사情死에 국가가 개입할 여지는 여전히 좁아보인다. 맥락을 같이하여 가정폭력이나 가족의 문제 또한 여전이 국가의 개입은 없다. 하지만 사회면에 나는 사건과 사고는 거의 정사情死로 인한 사건과 가족내의 빈번한 다툼으로 인한 죽음이 대부분이다. 정사情死를 사회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는 시각은 신선하고 자살이든 정사이든 죽음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 또한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는 바이다. 허나 글을 지나치게 전문적으로 썻고 우선 문장자체에 주어가 없다. 따라서 누구를 위해 글을 쓴 것일까에 대한 의문이 드는 책이다. 일반적인 독자를 염두에 두고 책을 펴냈다면 좀더 쉬운 접근을 했어야 하는데 지나치게 긴 장문의 글과 주어가 없는 글에 다소 황당함이 든다. 한국말을 번역해서 읽기는 처음인 것 같다. 정사情死의 사회적 접근 , 의도는 좋았으나,저자의 문체에 심히 유감이 드는 책이다. 이 책을 읽고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기가 무척 힘들었으며, 남는 것이 있다면 사랑해서 죽는 사람들을 위한 최소한 사회적 보호장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에는 응원을 보낸다.  




YES마니아 : 로얄 k********2 2012.03.10. 신고 공감 17 댓글 26
리뷰 총점 종이책
情死보다 더 어려운 것..
"情死보다 더 어려운 것.." 내용보기
학교 다닐 때, 술 한잔 얼큰하면 부르던 노래가 있었다. <사의 찬미>가 그것이었다. 당시에 내가 死를 찬미했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가사에 혹해서, 아님 처량한 멜로디에 반해서인지, 그것도 아니면 현해탄에서 투신자살한 윤심덕 때문인지, 암튼 술이 얼큰해지면 의례 한번쯤은 불렀다는 기억이 있다. 그녀의 투신이 情死인지, 혹은 다른 이유인지 알지는 못했지만, 情死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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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닐 때, 술 한잔 얼큰하면 부르던 노래가 있었다. <사의 찬미가 그것이었다. 당시에 내가 死를 찬미했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가사에 혹해서, 아님 처량한 멜로디에 반해서인지, 그것도 아니면 현해탄에서 투신자살한 윤심덕 때문인지, 암튼 술이 얼큰해지면 의례 한번쯤은 불렀다는 기억이 있다. 그녀의 투신이 情死인지, 혹은 다른 이유인지 알지는 못했지만, 情死라 하면 그녀를 빼놓고는 말이 될 것 같지 않았던 시절이었고, 그녀의 투신이 부러웠던 때이기도 했었다.

 

언젠가 그녀가 나한테 같이 죽을래?’ 하고 물어온 적이 있었고, 난 망설임 없이 그럴까’, 하고 대답했던 것 같다. 어차피 물어보는 그녀나, 대답하는 나나 죽음을 결행할 마음은 없었기에, 말이라도 그렇게 해야 서로에게 위안이 되지 않았나 싶다.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가 다 사랑을 한다. 대상이 연인이건, 국가이건, 아님 마음속의 자신이건..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그것이 자의가 되었던, 아님 수명을 다했던 간에 죽는다. 결국 사랑하다가 죽는 것이다. 누구를, 무엇을, 어떻게 사랑했는지를 따지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 책 [사랑하다 죽다]는 생경한 느낌으로 다가왔고, 부제로 붙은 정사情死의 정치학이라는 말은 표지에 걸려있는 소주병과 더불어, 어쩌면 정사라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그것이 아닌, 타살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기도 했다. 저자는 정사를 이렇게 정의한다. 끝내 스스로 사라지는 어느 한쪽 혹은 둘 모두의 죽음을 세상은 정사라고 부른다 라고..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정사의 사전적 의미와 별로 다르지도 않다. 다만, 서로 사랑하는 남녀가 그 뜻을 이루지 못하여 함께 자살하는 일이 어느 한쪽 혹은 둘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런데 저자는 왜 정사를 정치와 연결 지었을까? 그는 이렇게 말한다. 사랑과 정치를 나란히 견주어 보려는 게 애당초 억지인줄은 알지만, 권력의 허무맹랑함을 교정하고, 스스로 돌아보도록 건설적으로 부추기는 것은 적어도 사랑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결국 사랑이나, 정사나, 그것을 정치에 연결시키는 것은 오롯이 책을 읽는 내 몫이 되어 버린 것 같다. 그래서일까? 책 속에 나오는 저자의 글로 나 또한 정사를 정치와 연결시켜 본다. 정사의 기본이 되는 연애라는 것도, 사랑이라는 것도, 세상이 정한 결합의 틀로 들어갈지, 말지를 정하는 것을 정치적 목적지로 둔다면, 그것을 거스르기 위한 것은 자살이 되었던, 정사가 되었던, 누구도 등 떠밀지 않은 자신의 결행이라지만, 그것은 무엇보다도 시대와 인습에 대한 저항이었기에, 정사, 아니 죽음 그 자체는 정치가 될 수밖에 없었다고 말이다.

 

사랑이란 것이 개인과 개인 사이의 일이지만, 조금 범위를 넓혀 본다면 국가와 개인 사이의 일이기도 하다. 그렇게 볼 때, 죽음속에서 인문학을 찾는다는 것은 몰라도, 정사 속에서 어떤 인문학을 느낄 것인지는, 나 역시 인문학적 소양이 부족하기에 이해가 되지 않지만, 조선시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정사를 통하여, 그 의미가 어떻게 변질되고 결국은 무엇을 지향하는지를 조금은 알것 같기도 하다.

 

저자는 조선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정사를 이렇게 표현한다. 바라보다 죽을 수밖에 없었던 왕조 시대의 사랑 아닌 사랑, 기다리다 죽은 식민시대의 연정, 돌아보다 죽은 해방공간과 개발독재 시대의 치정, 그리고 정사 드문 세상이 되어버린 현재. 시대별로 정사는 어떻게 이루어졌고, 또 어떻게 기능했는지를 글을 따라가며 헤아려보면서도 누군가와 사랑하다 죽는 것보다도, 하루라도 더 죽도록 사랑하는 삶이 먼저라는 글에 유독 눈길이 머문다.

 

왕조시대의 정사라는 것은 엄밀히 이야기하면 정사情死가 아니다. 지아비가 죽었기에 따라 죽어야 했던 수많은 열녀들의 그것은 가슴 미어지는 연정이나, 애끓는 사부곡이 아닌 가부장적 제도를 공고화하려는 지배계급 남성들의 타살이기 때문이다. 물론 모두 다 그렇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개인의 결혼생활까지도 국가가 구속하는 사회에서 정사는 당연히 금기사항이었을 것이다. 죽는 자가 대부분 여성이었다는 것은 이것에 대한 반증이 아닐까? 물론 정사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겠지만, 오늘에 사는 우리가 알 수 있도록 남겨진 것이라면, 사회를 지탱하는 미담이 아니고서는 근본적으로 기록화 되어지긴 어려웠을 것이다. 극명하게 나타난 情死의 정치학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신소설이라는 것이 등장한다. 자유연애니, 모던 걸이니 하는 말들이 생겨나면서 신분상의 제약과 유교라는 율법이 사라진 자리에는 연정으로 포장된 욕망과 일탈만이 남았을 뿐이다. 혼외 남녀가 일상의 불륜을 넘어 세상의 축복과 인정받지 못할 사랑 때문에 괴로워 한 일은 이미 세상에 널려있는 일이 되고 말았다. 잃어버린 나라를 향한 연정이 신여성이라는 표현으로 나타난 욕망을 통하여 정사를 부추긴 시대, 식민시대는 의도된 정사의 정치학이 펼쳐진 시대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새 시대가 돌아왔건만, 불륜은 이제 더 판을 친다. 정사는 정사라는 말을 빈 타살이 되어 갔다. 권력과 금력은 왕조시대 사대부들을 흉내 내고 있다. 그들에게 情死란 그때와 마찬가지로 금기어가 되었다. 불륜이 아무렇지도 않은 세상이 되어간다. 그렇기에 온갖 매체들은 불륜을 권장(?)하고, 선전하는데 혈안이 된다. 그러나 정사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이 땅의 자살 인구는 꾸준히 늘어가는데도 말이다. 그것은 국가의 무능과 권력의 무기력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어디까지를 정사로 보아야 할지 그것은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것을 정사로 보던지 간에 지금 이 시간에도 정사는 있지 않을까?

 

저자는 情死의 정치학이란 부제 밑에 혹은 지독한 순정이나 아련한 절망의 형식이라고 써넣고 있다. 정사의 정의에 부합되는 설명이 아닌가 싶다. 그가 정사를 살펴보면서 무얼 보여주려고 했는지, 아니면 무얼 말하려고 했는지를 떠나, 죽음이라는 주제는 항상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것이 자살이던, 아님 천수를 다하고 죽는 것이든.. 사랑하다 죽다 라는 말에, 정사라는 말에, 저자의 글을 읽으며 그것이 주는 정치학적 의미를 생각해 본다. 제대로 이해하였는지, 아닌지를 떠나 국가를 사랑하다 실망하여, 혹은 너무나도 국가를 사랑하였기에 죽을 수밖에 없었던 것, 그것 역시 또 다른 情死에 다름 아닐까 싶다.

 

그녀가 왜 나에게 같이 죽을 수 있느냐고 물었는지는 지금도 의문이다. 나 또한 왜 그럴까라고 대답했는지 그것도 잘 모르겠다. 저자의 말이 와 닿는다. 죽기는 살기보다 어렵고, 자살하기는 천수를 누리기보다 훨씬 힘겹다. 게다가 목숨을 다하여 죽거나, 스스로 끊기보다 더 힘든 고통은 오늘 이 순간을 이대로 살아내는 일이다.



k*****1 2012.03.27. 신고 공감 14 댓글 22
리뷰 총점 종이책
사랑은 가고 죽음은 잊혀졌다. 남는건 어색함뿐...
"사랑은 가고 죽음은 잊혀졌다. 남는건 어색함뿐..." 내용보기
『사랑하다 죽다』는 책의 제목과 노란색 표지를 접하고선 영화 타이타닉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배가 침몰한 후 널빤지에 간신히 의지해 물에 떠있던 로즈(케이트 윈슬렛 분)와 잭(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 물속에 잠겨있는 잭은 마지막 숨을 몰아 로즈에게 애기한다. “사람들이 구하러 올 거야 잘 들어. 당신은 언젠간 죽겠지만 여기선 아냐, 타이타닉 티켓을 따 낸 것이 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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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다 죽다』는 책의 제목과 노란색 표지를 접하고선 영화 타이타닉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배가 침몰한 후 널빤지에 간신히 의지해 물에 떠있던 로즈(케이트 윈슬렛 분)와 잭(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 물속에 잠겨있는 잭은 마지막 숨을 몰아 로즈에게 애기한다. “사람들이 구하러 올 거야 잘 들어. 당신은 언젠간 죽겠지만 여기선 아냐, 타이타닉 티켓을 따 낸 것이 내 인생 최고의 행운 이었어, 그것 때문에 당신을 만났으니까, 그리고 당신에게 감사해... 약속해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줘 약속해”라는 대사를 마지막으로 물속으로 사라져 가던 잭의 모습이, 그리곤 들려오던 “ My heart will go on" 이라는 주제가. 자신의 생명을 던져 사랑하는 사람을 구원하고 그의 안녕을 빌어주던 그 장면이...

 

  하지만 그건 “사랑을 위해 죽다” 이지 “사랑하다 죽다”는 아니었다. 책은 오히려 세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현실에서는 사의 찬미를 부른 윤심덕을 떠오르게 했다. 거기에 이 책의 부제는 “정사(情死)의 정치학” 이란다. 이 낯 설은 단어 정사(情死)를 국어사전의 힘을 빌어 찾아봤다. “정사(情死)=서로 사랑하는 남녀가 그 뜻을 이루지 못하여 함께 자살하는 일”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그래도 웬지 낯설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단어가 아니 어서인가, 아니면 우리의 뇌리 속에서 잊혀 진 단어 어서인가?? 정사(情死)하면 먼저 정사(情事)가 생각난다. 사랑을 빌미한 감각적이고 원초적인 남녀간의 애정 애기가 깃들였을 것 같은 에로스 적인 호기심이 피어오른다. 더불어 말초신경을 자극 하는 삼류 잡지의 기사가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정사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주는 고정된 이미지 때문일 듯 하다. 사랑하다 죽는 걸 의미하는 ‘정사’와 ‘정치학’은 웬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사랑은 가슴으로 한다. 그리고 정치는 머리로 하는 게임이다. 머리와 가슴의 화합, 이질감이 가득 몰려온다. 더군다나 정치에 관한 이미지가 지금처럼 모두를 실망시키는 작금에 있어서 정치라는 단어는 우리를 힘들게 한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 조합을 작가는 어떻게 풀어냈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책장을 연다.

 

  이 책 『사랑하다 죽다』를 통해 글쓴이는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 때문에 끝내 스스로 사라지는 어느 한쪽의 아니면 둘 모두의 죽음을 정사라 표현하다. 그들의 행위는 3가지로 나뉜단다. 선행과 동반, 그리고 추종이란다. 바꿔 말하면 정사의 패턴은 ‘먼저’죽거나 ‘같이’가거나 ‘뒤따라’ 사라지는 모습을 취하되 각기 그에 걸 맞는 시차의 정치성을 지닌단다. 이러한 정사에 대해 글쓴이는 시대별로 구분하여 애기를 풀어나간다. 조선왕조와 일제식민시대 그리고 해방 이후와 현대로 크게 사등분하여 각 시대의 시대상을 반영한 정사의 애기를 펼쳐 보인다.

 

  1장에서는 왕조시대의 정사가 단순히 사랑의 이름이 아니라 유교사상에 근거한 가문을 위한 정사로, 세상이 등 떠밀던 정치적 정사로, 열녀의 표상의 유행으로 인한 정사임을 거론한다. 이는 우리가 즐겨보는 연속극의 심심치 않은 소재로 많이 이용되었던 애기 아닌가? 하지만 임란 이후 사회적 대유행이었던 정사가 정치적이었다면, 조선 초, 전반기에 나타나는 여성들의 극단적인 자기부정행위와 남성들의 정사가 갖는 순수함을 절개와 의리만으로 치부해 버리려 함은 곧 죽음의 온전한 자발성을 훼손하는 행위이며 그들의 사랑을 왜곡하는 것이다 고 애기한다. 그들의 숭고한 죽음 뒤에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으로 가려진 진정한 사랑으로 인한 순수한 의미의 정사는 존재했다는 것이다.

 

  2장 식민시대의 연정은 왕조국가에서 벗어난 이후 급격히 밀려들어오는 신문물로 인한 가치관의 붕괴 및 서양문화에 대한 호기심등으로 시작되었다. 모더니즘과 자유부인으로 대표되는 그 시절 문화적 허기가 야기한 자유의 기운은 누구도 말리지 못할 혁명 같은 숨결이었다. 정사하면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현해탄 연락선에서 투신자살한 윤심덕과 김우진의 정사를 들 수 있다. 아마도 정사의 가장 기본적인 애기이리라. 글쓴이는 이시대의 정사는 한낱 숙고와 심사의 대상이 아니라 결국 지독한 이기와 용서받지 못할 원색적 탐욕의 봉우리에서 치러지는 고결한 탈주의식이란 해석을 내리고 있다.

 

  3장 넘쳐나는 미련과 절제의 빈곤에서는 해방 후 지속적인 역사 단절과 이념의 격돌을 통한 정치 갈등은 일관된 통계 산정의 공간적. 현실적 어려움으로 정확한 추정은 불가하단다. 이 시기의 통계에서 자살자의 약 3분의 1이 가정과 애정문제로 인한 자살로 표현되고 있는 것은 통계의 어려움 때문이란다.

 

  현대는 정사가 드문 세상이다. 사랑하다 죽지만 그 경우들 대부분은 ‘사랑으로’ 같이 목숨걸거나 ’사랑 때문에‘ 함께 이승을 등지는 과거의 낭만성을 보이진 않는다. 그저 주관적 분노나 의심에서 비롯된 자기 파괴적 형태를 보인단다. 자살인구는 늘어나지만 국가 공식통계에서 정사는 아예 항목으로도 인정받지 못할 정도로 절대량은 감소한다. 글쓴이는 그 이유를 이제 세상은 사랑에 ‘속거나’ 사랑에 ‘우는’ 낭만이 없기 때문이란다. 사랑에 목매고 죽음마저 불사할 의지로 자신을 던지는 일이란 좀체 빈발하기 어려운 나날들이란다. 나의 대상은 물론 ‘유일무이’한 사랑이 아니다. 나에게도 그(녀)에게도 그(녀)는 많은 그(녀)들 중 하나다. 사랑은 어쩌면 프로젝트이기는커녕 소비행동의 하나로 취급당하고 있다. 열정적 사랑이 ‘스펙’같은 ‘조건’에 의해 대체되고 있는 상황이 일단 중요하겠다.

 

  마치 약정을 조건으로 구입한 새 핸드폰의 약정기간이 끝나면 다른 핸드폰으로 바꾸는 것처럼 현대의 사랑은 그저 잠시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행동이고 결혼은 서로간의 조건이 만나는 하나의 거래나 계약처럼 얽혀버린 사랑의 변질 때문이다. 그저 정사가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마냥 잊혀져가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낭만도 무너지고, 정사도 기대하기 힘든 무의미한 사랑이 판치는 그런 세상 말이다.

 

  이 책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기 어려운 주제와 접하기 어려운 통계를 기반으로 애기를 풀어나간다. 저자의 직업이 교수여서인지는 몰라도 각 꼭지 마다 철저한 주석과 근거자료로 제시하는 글쓰기의 폼이 마치 학술논문을 대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정사와 정치학이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 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 부분을 몇 번을 다시 읽었지만 글쓴이의 그 논리는 내가 이해하기에는 너무 높은 곳에 걸려있는 신 포도였다. 더불어 이 책의 서문에서부터 시작된 문장의 독특함이 주는 이질감은 책을 읽는 내내 나를 힘들게 했다. 수없이 많은 비교조사와 반복되는 비유는 읽는 동안 연필을 들고 가지치기를 해가며 읽어나가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지만, 문장이 주는 이질감은 이 책을 덮는 순간까지 멀리할 수 없는 숙제였다. 워낙에 문장의 화려함을 싫어하는 개인의 독특한 취향도 있지만, 그러한 취향으로 인해 소설도 잘 읽지 않는 성격을 백번 감안한다고 해도, 이런 문장의 책을 대하면 그 이질감은 당혹감을 넘어 혼란스럽기만 하다.

 

  얼마 전에 탄 전철 맞은 편에 3명의 여고생이 앉았다. 교복상의는 몸에 꼭 맞게 줄이고, 치마는 더 이상 짧을 수 없을 정도로 줄여 입었다. 그 짧은 치마사이로 드러나는 속살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은 전철에 타자마자 화장을 하기 시작했다. 눈썹을 붙이고, 화운데이션을 칠하고, 입술에 색조화장을 했다. 그마저도 부족했는지 눈 주위를 팬더 마냥 덧칠하기 시작했다. 그 또래가 가질 청초함과 풋풋함은 사라지고. 부조화속에 화려한 어색함만이 남았다. 자주 하지 않는 화장으로 허옇게 뜬 얼굴빛, 어울리지 않는 칼라의 색조화장, 타이트한 교복사이로 비치는 속살이 주는 천박함. 이 모든 것으로 인한 거북함. 이 책을 보고 난 지금 그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YES마니아 : 로얄 h*****o 2012.03.31. 신고 공감 8 댓글 17
리뷰 총점 종이책
[12-18] 사랑하기에 죽는 것일까, 사랑했지만 죽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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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情死)란 무엇인가    글쓴이는 지독하도록 순수한 사랑의 결과 “끝내 스스로 사라지는 어느 한쪽의, 아니 둘 모두의 ‘죽음’1)”를 정사(情死)라고 부른다고 말한다. 이성(異性)간 혹은 동성(同性)간에 사랑하다가 어느 한쪽이 자살을 하거나 또는 두 사람 모두 죽음을 향해 몸 던지는 것이 정사(情死)인 셈인데, 언뜻 사회의 문제가 아닌 개인의 문제로만 보인다. 하지만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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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情死)란 무엇인가 

 

글쓴이는 지독하도록 순수한 사랑의 결과 끝내 스스로 사라지는 어느 한쪽의, 아니 둘 모두의 죽음1)를 정사(情死)라고 부른다고 말한다. 이성(異性)간 혹은 동성(同性)간에 사랑하다가 어느 한쪽이 자살을 하거나 또는 두 사람 모두 죽음을 향해 몸 던지는 것이 정사(情死)인 셈인데, 언뜻 사회의 문제가 아닌 개인의 문제로만 보인다.

하지만 그들의 죽음이 실질적으로 아무에게도 강요 받지 않은 것이냐 할 때, 쉽게 “yes”라고 대답하기는 어렵다.

 

먼저 저자가 왕조시대의 사랑 아닌 사랑이라고 표현한 사례들을 살펴보자. 아마도 자료의 한계 때문이라고 생각되지만, 조선시대만을 대상으로 하였기에 국가가 여성들의 자진(自盡)을 주문했다는 결론이 나왔을 것이다.

그것은 조선(朝鮮)이라는 나라가 유교, 보다 정확하게는 성리학 이데올로기에 기초하여 성립되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그 죽음의 이유가 무엇이든 남성을 위한 여성의 희생, 즉 죽음을 찬양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보면 형식적으로 정사(情死)로 볼 수 있는, 수많은 열녀문(烈女門)의 주인공들이 오직 사랑 때문이 아니라 가족이, 사회가, 국가가 그들에게 강요한 죽음을 어쩔 수 없이 수용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결국 압박에 지칠 대로 지쳐, 벼랑 끝으로 몰린 그녀들이 마지못해 선택한 것이 바로 죽음이었을 뿐이다.

물론 이들의 죽음 모두가 사회에 의해 사실상 떠밀려 죽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죽음에 당시 사회를 지탱했던 가치관이 보다 큰 책임을 떠맡아야 한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정사(情死)를 사회의 문제로 생각해볼 여지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사(情死)하면 떠오르는 윤심덕 김우진 커플의 경우에는 다르다. 그들의 경우에는 죽음이 시대에 대한 정면대항이자 인정받지 못한 사랑에 대한 극단의 도발2)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하면, ()의 찬미로 유명한 윤심덕 - 김우진 커플의 정사(情死)는 구시대와 신시대의 교체라는 시대의 전환기가 낳은 희생양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사랑했기에 죽은 것일까, 아니면 사랑하지만 죽은 것일까?

만약 사랑했기에 죽은 것이라면 개인의 문제로 치환할 수도 있겠지만, 사랑하지만 죽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라면 사회의 문제로 보아야 할 것이다.

 

어쩌면 정사자(情死者)들은 순수하고 열정적이어서 그렇게 행동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이 먹은 중년들이, 머리가 희끗해진 노년들이 그러한 순정(純情)의 깃발을 들기에는 세상의 찌든 때에 충분히 절어있으니까.

 

절망의 끝에서 내딛는 한 발이 정사(情死)라면, 이 또한 굳게 문을 잠근 세상을 향해 두드리는, 소통을 위한 피맺힌 속삭임일 것이다.

 

세상이 나아감에 따라 사람들은 순수를 벗고 영악함을 뒤집어 씀에 따라 이제 우리는 정사(情死)가 아닌 정사(情事)를 볼 수 있을 뿐이다. 굳이 정사(情死)를 보려면 세익스피어의로미오와 줄리엣같은 문학작품이나 뒤적여 볼 수 밖에.

 

 

 희망이 없으면 두려움도 없다. (No Hope, No Fear).

 

순수(純粹)를 잃어버린 현대는 사랑했기에 죽는 사람도, 사랑하지만 죽는 사람도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누군가와 사랑하다 함께 죽는 보다 하루라도 더 죽도록 사랑하는 이 먼저3)이기에 정사(情死)의 정치학이라는 막연하고 종잡을 수 없는 길을 헤매기 보다는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고 싶다.

 

희망이 없으면 두려움도 없는 법(No Hope, No Fear)4)이라는 저자의 말이 정사(情死)가 줄어드는 오늘날, 아직은 희망의 빛이 남아 있다는 반증(反證)이 아닐까 하는 가냘픈 소망을 꿈꾸게 해준다.

 

아빠가 살았던 42년은 너무나 짧은 시간이죠. 별들의 숫자에 비하면 그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하지만 상상해보세요. 그 빛들을 나눠서 쪼일 수 있었다면 아빠는 평생 매초당 7 54995047 2325개의 별빛을 받으면서 살았던 것이에요. 그렇다면 그건 정말 대단한 1초였을 거예요. 그렇게 대단한 1초라는 걸 알았더라면 아빠는 울지도 않았을 텐데요. 소주를 마시지도 않았을 거고, 약병을 들고 죽겠다고 아들에게 소리치지도 않았을 테죠. 아빠 인생의 1초가 그렇게 많은 빛으로 가득했다는 걸 알았더라면 말이죠.5)라는 소설의 한 구절처럼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책에 대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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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종성, <사랑하다 죽다>, (인간사랑, 2012), p. 27

2) 박종성, 앞의 책, p. 25

3) 박종성, 앞의 책, p. 11

4) 박종성, 앞의 책, p. 147

5) 김연수, <원더보이>, (문학동네, 2012), p. 41

w******f 2012.04.05. 신고 공감 6 댓글 6
리뷰 총점 종이책
[박종성] 사랑하다 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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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책은 인간사랑 출판사에서 서평단이벤트에서 받은 책임을 밝힌다. 내가 이 책에 대해서 알고 있던 배경지식은 전무하다. 저자인 박종성 교수가 서울대학교 정치행정학과 교수인 것도 몰랐고, 심지어 이 책이 수필인지 소설인지도 감을 잡지 못했다. 다만 '인간사랑' 출판사에 대해서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처음 읽었던 '자기계몽'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고, 이어서 읽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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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책은 인간사랑 출판사에서 서평단이벤트에서 받은 책임을 밝힌다. 내가 이 책에 대해서 알고 있던 배경지식은 전무하다. 저자인 박종성 교수가 서울대학교 정치행정학과 교수인 것도 몰랐고, 심지어 이 책이 수필인지 소설인지도 감을 잡지 못했다.


다만 '인간사랑' 출판사에 대해서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처음 읽었던 '자기계몽'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고, 이어서 읽은 '그대의 꿈이 현실이다'에서도 젊은이들이 칭키즈칸(징기스칸)이룬 몽골리카나의 꿈을 통해 우리의 미래를 가꾸자는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면서 큰 감동을 받았었다.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인 '사랑하다 죽다'! 얼마나 낭만적인가? 나는 달콤하면서도 뜨거운 정염이 넘치는 로맨스를 상상했다. 그러면서 지친 마음을 달래줄 벗을 만나는 마음으로 느긋하게 책장을 넘겼다.


그러나 내용은…? 마치 대학의 철학 교재나 성경을 읽는 듯한 느낌이었다. 무언가 품격이 있는 글인 듯 느껴지기는 하지만, 읽어도 읽어도 무슨 말인지 감을 잡기가 힘들었다.


한참을 읽다가 잠시 한눈을 팔다 보면 내가 몇째 줄까지 읽었는지 모를 정도였다. 지금 여러 모로 경황이 없는 터라 집중이 안 되어서 그런가 싶어서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읽었지만 역시 마찬 가지였다. 주제는 물론 읽은 내용이 무엇인지도 머리에 남는 것이 없었다.


첫날 1부 69쪽까지 읽었지만 그렇게 정독을 했건만 무엇을 읽었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저 떠오르는 것은 서로 사랑하는 남녀가 그 뜻을 이루지 못하여 함께 자살하는 정사(情死)는 반드시 함께 죽는 것만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누군가 먼저 죽고, 그 사람을 못 잊어서 따라 죽는 것도 역시 정사라는 것이다. 물론 이 내용이 이 글의 주제가 아니다. 죽음, 그 중에서도 정사의 사회적인 의미에 대해서 설명하는데 그 내용만 기억에 남았다는 것이다.


이 책을 내가 과연 완독할 수 있을까, 부담에 앞서 두렵기도 했다. 아무튼 나는 사흘에 걸쳐서 264쪽의 이 책을 완독했다. 이 책에는 학위논문처럼 주가 달려 있는데, 그것이 매우 상세했다. 그 부분을 뺀다고 해도 본문이 200쪽은 넘을 것이다.


뒤로 가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대학의 철학교재나 학위논문을 읽는 느낌이라는 것이 절대로 과장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 책이 나쁜 책이라는 것은 아니다. 저자인 박종성 교수는 서울대학교 정치행정학과 교수이다. 우리나라 최고 명문대의 현직 교수라는 명망을 지닌 분이다. 문장마나 품격이 느껴지고, 낱말 하나하나에서 저자의 학식이 느껴졌다. 방대하고 구하기 힘든 통계 자료에서 이 책에 들인 저자의 노고도 짐작되었다.


그러나 역시 어려운 책이다. 반시간 정도 읽다가 1분 정도 다른 생각을 하다 보면, 내가 어디까지 읽었는지 생각이 안 날 정도였다. 그래서 그 쪽의 처음부터 몇 줄 읽다 보면 아, 여기는 읽었지, 라고 깨닫게 되곤 했다.


다행히 이 책에서 정사의 예화로 든 윤심덕과 김우진의 사연, 박침과 박저생 부자가 번갈아 정을 통한 파독이라는 여인의 사연, 조선시대 무덤에서 발견 된 원이 엄마의 사연, 내가 사는 원주 사람 조태의 딸 조씨 여인의 죽음 등은 흥미가 있었다. 그 이야기들은 나도 알고 있거나, 내가 사는 고장의 이야기이니 관심을 끈 것일 것이다.


나는 윤심덕이 애인과 정사를 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김우진과 얽힌 내막은 몰랐다. 이 책을 통해 윤심덕이 대단한 여성이었고, 그와 함께 정사를 한 김우진 역시 보통 인물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박저생의 첩이었던 파독이 남편 전처의 아들인 박저생과 정을 통한 뒤에 남편이 사망한 후 그의 품에 안겼다는 불륜에 대해서는 다른 역사책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그 후 박저생의 자살을 정사의 차원으로 논한 저자의 안목과 시각에 대해서 나 역시 일정 부분 공감을 했다.

 

이미 널리 알려진 원이엄마(1586년에 죽은 이응태의 부인으로 원이엄마로만 알려져 있음)는 남편을 따라 죽지는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머리칼로 짚신을 삼아 남편과 함께 묻으면서 애절한 마음을 그런 글로 표현한 그녀의 처신이 정사자보다 뒤진 것이 아니라는 저자의 지적에 동의했다.


조태의 딸인 조씨 여인은 남편에게 버림받다시피 했으면서도 그 남편이 죽자 뒤를 따랐다. 그의 죽음은 사랑을 위한 정사인가, 당시 강조하던 일부종사의 인습에 의한 명예사형인가에 대한 저자의 논리가 눈에 와 닿았다. 뒤로 갈수록 이런 흥미 있는 예화들이 많이 나오기는 한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역시 어려운 책이다.


모처럼 정독(이해가 안 되어서 어쩔 수 없이 *^^*)을 한 나의 입장에서 이 책에 대한 평가(사실 그럴 자격이 없다. 아직도 이 책의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할 수는 없으니….)를 써보겠다.


첫째,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책이다. 재미가 있거나 쉽게 읽힌다고 좋은 책은 아니다. 구약성서 모세5경을 보면 아담의 족보는 지루하고, 성전을 세울 때 기둥 수나 인부의 이름 등은 정신이 없고, 각 지파의 족장이나 인구수가 나올 때는 짜증까지 난다. 그러나 성경의 가치는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이 책 역시 그런 면에서 읽으면 충분한 가치가 있다. 정사에 대해서 사회학적, 역사적 고찰과 평가는 분명이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매우 수준이 높은 역작이다.


둘째, 통계 자료 등이 유용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찾은 왕조별로 자살한 사람과 열녀들, 그리고 실제 열녀로 기록된 수치는 의미 있는 자료이다. 또한 일제강점기의 자살자와 정사자의 비율 등도 일반인은 접하기 힘든 희귀한 자료들이다. 또한 1964년부터 최근인 2010년까지의 변사자(치정, 실연, 부정으로 인한 자살자)의 남녀별 통계 역시 그렇지 않은가?


셋째, 허를 찌르는 지식도 많이 발견했다. 나나 일반인의 상식을 벗어나는 지식도 많았다. 1972년 이후 언론에서는 정사(情死)에 관한 뉴스가 사라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실제로 정사자(情死者)가 감소한 것이 아니라 당시 유신독재를 펼쳤던 박정희 대통령이 언론을 통제 탓이라고 한다. 당시에는 사회 불안을 조장하는 소식을 보도하는 것을 금기시했으므로 그런 소식들이 신문 지상에서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15개시도 중에서 인구 비율로 보았을 때가 자살자가 가장 많은 곳이 어디일까? 나는 일반적으로 화끈한 성격을 지녔다고 생각하는 영남지방이나, 우리 사회에서 차별을 받았다고 생각되는 호남지방, 또는 각지에서 각양각색의 인구가 유입되고 있는 서울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나와 유사하지 않을까?


그러나 뜻밖에도 2010년도에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이 가장 높은 지방은 충북이고, 전체 자살자가 가장 많은 지방은 충남이며, 서울은 뜻밖에도 전국에서 가장 적었다고 한다. (이 책은 10. 10. 9일, 중부매일신문, 박상준 기자의 기사를 인용했음)


일반적으로 성격이 느긋한 것으로 알려진 충청 지방에서 자살률과 자살자가 가장 많은 것이 의외이다. 또한 여러 지역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밀집되어 있는 서울이 자살률이나 자살자가 최소인 것도 뜻밖이다. 이 책에서는 그에 대한 설명이나 분석이 없다.

 

다만 개인적으로 이렇게 유추했다. 절박한 상황은 어느 지역 누구에게나 있었을 것이다. 서울에 사는 이들은 대개 고향을 떠나서 그곳까지 왔다. 그만큼 강한 각오를 지녔을 테고, 그런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다 보니 더욱 강하게 되어서 죽음의 유혹도 뿌리친 것이 아니었을까. 또한 충청도 분들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대로 착한 성품을 지녔을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살다가 극한 상황을 만나면 그 상처를 견디기 힘들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논리적인 근거는 없는 개인적인 견해)했다.


어떤 책이든 의미나 가치가 없는 책은 드물다는 것이 책에 대한 나의 생각이다. 이 책은 충분한 의미와 가치를 지닌 책이다. 그러나 쉽게 읽혀지는 책은 아니라는 아쉬움을 전하며 글을 마무리 한다.  



y******3 2012.03.17.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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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情死) 뒤에 숨어있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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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백과사전에는 정사(情死)를 “사랑하는 남녀가 그 뜻을 이루지 못하든가 또는 다른 사정으로 함께 자살하는 일”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모두 죽은 경우에는 법률적으로 문제가 없지만, 한쪽이라도 살아남게 되는 경우 자살의 방조 혹은 교사 여부를 따져 자살관여죄(형법 제252조 2항)가 성립되며, 정사를 가장한 위계(僞計)·폭행·협박 등의 위력(威力)으로 자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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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백과사전에는 정사(情死)“사랑하는 남녀가 그 뜻을 이루지 못하든가 또는 다른 사정으로 함께 자살하는 일”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모두 죽은 경우에는 법률적으로 문제가 없지만, 한쪽이라도 살아남게 되는 경우 자살의 방조 혹은 교사 여부를 따져 자살관여죄(형법 제252조 2항)가 성립되며, 정사를 가장한 위계(僞計)·폭행·협박 등의 위력(威力)으로 자살을 결의하게 한 때에도 살인죄(제253조)나 미수범으로 처벌(제254조)된다고 합니다.

 

자살이라는 형태의 죽음이 때로는 동정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향인데, 정사의 경우는 적지 않은 경우 일반적인 시각에서 보면 정상이라고 하기 어려운 형태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경향이 있어 죽은 이들의 사정이 타인에게 알려지기를 꺼려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남의 일에 관심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사건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죽음의 형태에서 차지하는 정사의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한 통계자료를 가지고 비교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정사에 관한 분석적 글을 읽기 어려운 이유일 것 같습니다.

 

‘정사의 정치학 혹은 지독한 순정이나 아련한 절망의 형식’이라는 부제를 단 <사랑하다 죽다>는 서원대학교 정치행정학과 박종성교수님의 이러한 정사의 한계에 대한 과감한 도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연히 호사가들의 관음증을 자극하기 위한 주제가 아니냐는 삐딱한 시선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기는 합니다.

 

저자는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정사사건을 조선시대, 일제 강점기, 해방이후로 구분하여 시대별 발생빈도나 사연들을 비교하였습니다. 앞서 논한 것처럼 정사 가운데 타인에게 알려지는 것을 기피하는 경우가 많아 사회적으로 알려진 사건들만 기록으로 남았을 가능성이 있으며, 사망신고에 따른 통계자료의 집계가 가능했던 일제강점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도 정사라는 죽음의 형태가 신고형식에서 구분해낼 수 없는 바, 조선시대에는 실록을 포함한 각종 기록을 통해서, 일제 강점기 이후에는 언론매체 등에 의존하여 자료의 수집이 가능하였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조선시대의 경우 신분제가 엄격했으며 삼강오륜을 근간으로 하는 유교적 윤리가 사회적 규범으로 통하던 때였던지라 사랑이 완성될 수 없는 관계가 있었을 것입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유교적 윤리의식이 많이 퇴조하던 시절이었습니다만, 일본을 통해서 들어온 서구문화와 전통문화가 충돌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형태의 갈등이 일었던 것이라 하겠습니다. 특히, 일본에서는 에도 시대(江戶時代:1653~1868)의 관습과 규범의 속박으로 정사하는 사례가 많아 연극과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였다고 합니다. 일본의 이런 풍조가 우리나라에 유입되면서 심지어는 정사를 예찬하는 분위기가 일었던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해방이 되면서 우리 사회에 일기 시작한 의식구조의 대변화로 인하여 정사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은 많이 줄기도 했지만, 정사를 시도할 만큼 절박한 사랑도 많이 줄어든 탓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누군가와 사랑하다 함께 죽는 것보다 하루라도 더 죽도록 사랑하는 삶이 먼저”라는 정재복교수님의 말을 많은 사람들이 깨닫게 된 때문일까요?

 

그런데 저자는 정사를 굳이 정치라는 시각에서 바라보았을까 궁금해집니다. 굳이 같이 가려는 추구의지를 담았기 때문일까요? 설명이 쉽지 않을 듯합니다만, “사랑이 ‘관계’ 개념에서 파생하는 극히 자연적인 현상이자 하필이면 둘만의 선별적 정념이 빚어내는 감정의 숙성과정이라면 그건 그 자체만으로도 곧 ‘정치’다.(37쪽)”라고 명쾌하게 정의하고 나선 저자이고 보면 정치학을 전공하는 저자의 독특한 시각이 빚어낸 반짝이는 결정체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저자는 실록 등의 자료를 통하여 도출하고 있는 조선시대의 ‘열녀’에 관한 기록을 시대상을 반영한 정사의 한 형태로 보았습니다. 유독 추종의 형태가 많은 열녀의 죽음은 나라에서 열녀문을 세워 그 아름다운 행적을 기리는 등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조선시대의 여성들은 은근히 죽음을 강요받았거나 살해 후 자살로 위장한 사례는 없었는지 의문이 생긴다는 점을 굳이 감추고 싶지는 않습니다.

 

사실 죽기로 마음을 먹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진대 아무리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비관한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사랑하다 죽기’로 작정한 이들이 끝내 그 관문을 넘어서는 과정도 시대적 차이가 있을 것라 짐작합니다. 다만 다양한 정사의 방식이 살아남은 자들에게 준 ‘떨림’과 ‘울림’의 인문학에까지 생각이 미치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 저자의 사념의 깊이를 엿볼 수 있습니다. 정사의 시대적 변천과정을 비교검토하는 이유는 최근 들어 보기 어려운 정사를 예찬하고 권장하기 위함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색다른 주제를 즐길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y*****2 2012.03.18. 신고 공감 2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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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죽음 그리고 정치학의 삼각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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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情死)는 자살의 한 유형이다. 자살은 암, 뇌혈관 질환, 심장 질환과 더불어 한국인의 4대 사인(死因)에 해당한다. 자살의 이유는 대개 정신적 문제, 질병, 경제문제, 가정문제, 남녀문제, 직장문제 순이다. 여기서 가정문제와 남녀문제로 인한 자살이 넓은 의미의 정사에 해당한다.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족·애정문제는 다시 치정·실연·부정에 의한 자살로 구분이 가능하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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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情死)는 자살의 한 유형이다. 자살은 암, 뇌혈관 질환, 심장 질환과 더불어 한국인의 4대 사인(死因)에 해당한다. 자살의 이유는 대개 정신적 문제, 질병, 경제문제, 가정문제, 남녀문제, 직장문제 순이다. 여기서 가정문제와 남녀문제로 인한 자살이 넓은 의미의 정사에 해당한다. 좀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족·애정문제는 다시 치정·실연·부정에 의한 자살로 구분이 가능하다. 하지만 고전적 의미의 정사 혹은 낭만적 의미의 순정은 오늘날에는 매우 드문 편이다. 자살률이 가장 높은 지역은 충남이고 성별로 본다면 남자가 여자보다 높다. 연령별로 본다면 자살의 고위험성을 쉽게 알 수 있는데 10대부터 30대까지의 사망원인 1순위, 40대와 50대의 사망원인 2위가 바로 자살이다.

 

정사의 유형은 선행자살, 동반자살, 추종자살 세 가지다. 특히 동반자살은 낭만적 의미의 정사에 속하는 가장 대표적인 유형이다. 국내에서는 식민시대 극작가 김우진(1897-1926)과 성악가 윤심덕(1897-1926)의 현해탄 투신자살이 유명하고, 일본에서는 연인과 같이 시안화칼륨을 삼키고 도쿄 미타카의 다마 강으로 뛰어든 무뢰파 문학의 기수 다자이 오사무(1909-1948)가 유명하다. 추종자살은 대개 지아비가 죽었을 때 아녀자가 따라 죽거나 유명스타가 죽었을 때 스타를 사모하는 팬이 자살하는 경우를 가리킨다. 선행자살은 설명하기가 애매한 구석이 있지만 실연으로 인한 절명이 대표적일 것이다. 내 머리에 떠오르는 사례로는 1985년 5월 14일 애정문제로 집에서 가스를 틀고 자살한 홍콩배우 옹미령(翁美玲)의 경우다. 홍콩무협드라마 마니아라면 황일화와 옹미령이 나오는 <사조영웅문>을 기억할 것이다. 당시 황용역을 맡아 매우 유명해진 옹미령은 그만 탕진업(湯鎭業)과 헤어진 뒤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옹미령의 자살로 탕진업의 배우 생활도 한동안 내리막길을 걸었다. 

 

정사란 결국 사랑 때문에 죽는 일이다. 내 머리에 떠오르는 대표적인 정사의 나라는 일본이고 떠오르는 영화는 당연 《감각의 제국》이다. 일본의 정사문화는 아시아에서, 아니 전세계에서 독보적이다. 정사의 미학이 일본의 전형적인 문화특성이라는 점을 부인하긴 어렵다. 물론 우리에게도 자생적인 정사의 미학이 있겠지만 말이다. 역사나 문학과 영화를 들여다보면 정사는 확실히 '국화와 칼'로 대변되는 일본적 색채가 짙다. 《감각의 제국》을 보면 일본인이 정사를 남녀간의 도덕적 에토스로 승화시킨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영화에 나오는 남녀주인공 키치조와 사다의 정사(情死)에 이르는 정사(情事)는 가부장적이고 제국주의적인 문화에 대한 극단적 반항에 해당한다.

 

"사랑이 '관계' 개념에서 파생하는 극히 자연적인 현상이자 하필이면 둘만의 선별적 정념이 빚어내는 감정의 숙성과정이라면 그건 그 자체만으로도 곧 '정치'다. 어쩔 수 없이 서로를 다스리면서 서로에게 빨려들어 가거나 자기 논리와 전략으로 상대를 제어하는 매료의 통치는 알고도 당하는 '피지배'요, 한사코 사로잡아야 할 압도의 오브제다. 그래서 사랑은 관계의 유지와 확장 혹은 단절을 둘러싼 끝없는 운동이며 가변적 변용을 주제로 삼는 불꽃 튀는 정치다."(36-7쪽)

 

저자는 사랑이 연애의 자원이자 동시에 치열한 정치라고 운운하지만 사랑의 정치학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는 실패한 것 같다. 사랑이 치열한 정치가 된 구체적인 사례가 어디 정사뿐이겠는가? 정사의 탐구는 말그대로 사랑과 죽음에 대한 탐구와 겹친다. 그렇다면 자살의 정치학에 대해서도 마땅히 논증을 이어 나가야 한다. 하지만 사랑의 정치학에 대해서도 자살의 정치학에 대해서도 저자는 입을 닫고 만다. 심지어 책의 주된 테마인 정사의 정치적 저항 의미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논증과 해석을 시도하지 않는다. 게다가 허공에 뜬 저자의 의고풍 애상으로 인하여 마땅히 갖추어야 할 사회과학적 상상력이 담론 속에서 증발해 버리고 만다. 

 

일본 문화에 재현된 정사는 프랑스 철학에서 강조하는 에로티시즘의 비밀과 통하는 구석이 많다. 가령 드리외 라 로셸이 지은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청춘》(중앙일보사, 1982)의 주인공 질 강비에의 에로티시즘은 영화 《감각의 제국》에서 보여준 에로티시즘 정치학의 반항적 의미와 가족유사성을 갖는다.

 

"그[질 강비에]의 짙은 에로티시즘으로의 경사는 단순한 성적 괴벽도, 또 감상적 사랑의 표현도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도취의 순간을 통해 실현할 수 있는 일종의 내적 혁명 또는 변신을 향한 기대다. 그런데 이 경지는 육체를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68-9쪽)

 

위의 인용문은 소설의 역자 정명환이 바람둥이 질의 에로티시즘을 논한 글이다. 내가 보기에 고전적 의미의 정사가 지향하는 바도 "일종의 내적 혁명 또는 변신을 향한 기대"를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 그런데 저자는 이런 의미심장한 구절을 단순한 '주'로 처리하고 말았다.

 

저자는 아쉽게도 정사에 대한 명확한 개념 정의를 내리지 않는다. 저자가 강조하는 정사의 가장 뚜렷한 정의는 단지 "연애의 좌절과 사랑의 막힘을 죽음으로 푸는 과업"이거나 현실에 대한 "반이성적 일탈형식의 저항"으로 양분화된다. 글에서 얼핏 낭만적 의미의 정사를 예찬하는 듯 보이기도 하지만 정사를 저항의 미학으로 강조하는 데는 주춤하는 모습이다. 정사가 과연 정치적 저항의 근거로 활용될 수 있을까? 저자는 자신있게 '정사는 정치적 저항이다'라는 명제를 말하지도 설명하지도 못한다. 책제목 '정사의 정치학'에 비춘다면 정치학적 요소가 결핍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정사의 정치학'은 단지 수사학적인 미사여구로 전락하고 만다. 이는 조선시대의 정사를 바라보는 저자의 이중적 시각에서 잘 드러난다. 한편으로는 조선시대 열녀들의 열행을 단순한 기형적 자학이나 명예나 보상을 갈구한 정치적 계산 결과로 폄훼할 수 없다고 강조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열녀의 자진과 수절은 신분사회 조선이 강요한 복종의 일방성과 위선의 문화가 부추긴 귀결이기도 하다고 설명한다. 조선 시대 열녀의 열행과 절명에 순수한 사랑이 없다고 그 누가 단언할 수 있겠는가.

 

저자의 정사론에서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일제 식민지 시대의 정사에 대한 설명이다. 식민의 시대는 동시에 자유연애의 모던 시대였다. 식민지 조선의 신여성은 오랫동안 온몸을 억압하던 열녀 이데올로기의 족쇄가 풀리자마자 자유연애에 대한 낭만적인 동경과 더불어 일본을 비롯한 유행하는 서구문물을 강박적으로 모방하기 시작한다. 정사와 사랑을 근대적 이식의 산물이자 일본의 수입품이라는 인식이 일반적인데 이에 대해 저자는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한다. 다시 말해서 조선의 정사가 식민지배를 통한 일본의 문화중첩이자 불가피한 파급의 소산이 아니라 내재적 발전으로 숙성된 결과물이란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 연애사건의 대종을 이룬 것은 "부호의 아들과 기생, 교수와 여제자, 유부남과 처녀, 카페 여급과 청년의사 등 혼외 남녀가 일상의 불륜을 넘어 세상의 축복과 인정받지 못할 사랑 때문에 괴로워하는 일"이었다. 이처럼 빈곤과 불륜, 불구와 동성, 인종과 언어, 문화와 개성, 신분과 출신의 장벽은 식민시대의 정사의 사회적 맥락을 이룬다.    

z***a 2012.03.16. 신고 공감 2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정사의 정치학
"정사의 정치학" 내용보기
<사랑하다 죽다>     제목만으로는 이 책의 장르를 짐작하기 조차 어려울 것이다. 또한 이 책의 부제인 <정사의 정치학 - 혹은 지독한 순정이나 아련한 절망의 형식>만으로도 이 책의 장르를  알 수 없는 것이다. 독자들이 이 책을 에세이나 가벼운 인문학 서적으로 생각했다면 읽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이쯤에서 밝혀 두건데, 이 책은 사회학 관련 책이다.
"정사의 정치학" 내용보기

<사랑하다 죽다>

 

 

제목만으로는 이 책의 장르를 짐작하기 조차 어려울 것이다.

또한 이 책의 부제인 <정사의 정치학 - 혹은 지독한 순정이나 아련한 절망의 형식>만으로도 이 책의 장르를  알 수 없는 것이다.

독자들이 이 책을 에세이나 가벼운 인문학 서적으로 생각했다면 읽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이쯤에서 밝혀 두건데, 이 책은 사회학 관련 책이다.

철학책을 읽는 것보다도 더 책장이 넘어가지 않고, 읽으면서 과연 어떤 내용인지 쉽게 이해가 안될 정도로 난해하다.

이 책의 저자인 박종성는 정치행정학 교수이다.

그의 저서를 훑어 보는 것만으로도 저자의 학문의 깊이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것이다.

<혁명의 이론사>, <박헌영론>, <왕조의 정치변동>, <강점기 조선의 정치 질서>, <정치는 파벌을 낳고 파벌은 정치를 배반한다>, <한국의 파벌정치> 등.

그리고, 재미없는 정치에 짜증난 학생들을 위해 영화와 문학을 강의실로 옮겨와서 < 정치와 영화>, <포르노는 없다>, <씨네 폴리틱스> 등이 있다.

이렇게 저자의 저서를 나열하는 것은 그만큼 저자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으면  이 책을 읽기가 난해하다는 것이다.

처음 어느 정도의 책읽기는 저자의 글쓰기 성향을 알지 못하면 따라 읽기가 힘들다.

정사라고 하면, 현해탄에 몸을 던진 '사의 찬미'의 윤심덕이 생각나지 않던가~~

'정사의 정치학'이란 부제 역시, 책의 1장에 해당하는 ' 연애, 그 막막한 정치 : 그리고 자살의 인문학'을 읽을 때까지는 이 책이 '정치를 정사에 빗대어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인가, 아니면 정사를 정치에 빗대어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인가' 조차 혼돈스러울 정도로 저자의 글은 현란한 문체로 쓰여져 있다.

" '기어이', '사랑을 이루기 위해', ' 이루지 못한' 과거를 분연히 딛고 서는 철저한 자기부정. 하지만 이처럼 죽어서라도 끝내 사랑의 연을 잇거나 혹은 그 좌절을 느끼며 죽음을 다짐하려는 논리적 모순은 당사자들에게는 어쩔 수 없는 정치적 인과관계를 이룬다. " (p. 26)

" 그러다  끝내 스스로 사라지는 어느 한쪽의, 아니 둘 모두의 '죽음'을 세상은 언제부턴가 '정사'라 부르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가혹한 자살이요, 누구도 등  떠밀지 않은 가련의 결행이었다. 저들의 숱한 죽음은 무엇보다 '시대'와 '인습'에 대한 저항이었다. 게다가 상식의 파괴로 엄혹히 기억되고 있다. "( p. 27)

사랑때문에.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사랑의 이름으로.

사랑을 건지려는 정사.

이는 자기중심적이라기 보다는 그 밑에 해당하는 이기주의의 행동일 것이다.

그것은 '정사'의 당사자들은 남느 이의 마음은 죽음을 가로막을 어떤 장해도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저자는 '정사'를,

'왕조시대의 사랑과 이별',

'넘쳐나는 미련과 절제의 빈곤'

'그러나 정사가 드문 세상'으로 나누어 설명을 해나간다.

 

여기에서 왕조시대란 조선을 중심으로 정사를 생각해 본다.

 

 

조선은 유교 사상이 바탕이 되어 남녀차별의 사회갈등이 심했던 양성 불평등의 사회였다.

세상은 남성중심으로 돌아갔고, 여성은 속박과 질곡의 나날을 보내야 했고, 여기에 계층과 신분을 초월한 사랑이 존재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물론, 문학작품이나 영화의 소재로도 많이 읽거나 보았을 것이다.

여기에서 저자는 '조선시대의 정사 통계'를 보여준다.

조선조의 761건에 이르는 자살이 통계에 올라와 있다.

이런 자살의 통계가 겉으로는 동일한 것같지만, 그 자살의 사연은 다양했을 것이다.

 

 

열녀라 불리는 여인들의 자살. 그리고 이루지 못한 사랑때문에 한 자살.

남성들이 적어 놓은 다종다양한 열녀의 자살은 사회적 강요나 정치적 반복 학습에 의한 기형적 자학일 수도 있음을 저자는 말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불륜에 관한 문헌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것은 왕조 시대의 사랑의 어긋남을 말해주는 것일 것이다.

조선의 신분사회가 강요한 복종의 일방성이 '정사'에 있어서도 위선의 문화로 나타난 것이다.

 

그렇다면 식민지 시대의 정사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근대'라는 개념은 선망과 이상의 인프라가 작옹하는 시기이다.

암울했던 식민지 시대에 나타나게 되는 신여성들.

그들은 의식수준과 형태의 파격을 함축하는 아이콘이었을 것이다.

이 시대에 떠오르는 정사의 인물은 단연 윤심덕이다.

<다뉴브 강의 잔물결>을 번안한 윤심덕의 <사의 찬미>는 그의 정사만큼이나 애절하게 들린다.

" 정사가 한낱 숙고와 심사의 대상이 아니라, 결국 지독한 이기와 용서받지 못할 원색적 탐욕의 봉우리에서 치러지는 고결한 탈주의적이란 해석도 가능하다." (p. 146)

이처럼 저자의 문체는 직설적인 문장들이 아니라, 현란한 문장이어서 난해할 수 밖에 없는 것이며, 그래서 읽는 독자들은 정확한 글의 의미를 깊이 해석해 보아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사의 현대사이다.

 

  
 

 
해방이후 한국사회가 정사를 보는 시각은 많이 희석된다. 지금의 추세는 정사를 그리 크게 다루지도 않고, 별로 관심을 가지지도 않는 듯하다.

" '사랑하다' 죽지만 그 경우들 대부분은 '사랑으로' 같이 목숨걸거나, '사랑때문에' 함께 이승을 등지는 과거의 낭만성을 보이기 보다 주관적 분노나 의심에서 비롯된 자기 파괴적 행태를 보인다. 원인은 '사랑이지만' 결과는 '홀로 무너지는' 예외적 일탈행위로 볼 일이다. " (p. 217)

" 오늘의 정사는 '보여도', '드러나지 않으며', '희미하건만', ' 질기고', '아쉽게' 지탱한다. " (p. 220)

이처럼 조선시대부터 식민지를 거치면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의 '정사의 정치학'을 설명해 준다.

대학 논문보다도 더 어렵게 느껴질 정도로 쓰여진 글이지만, 내용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많은 사례들과 통계자료, 도표 등을 이용하고 있다.

그 누가 '정사의 정치학'을 생각했겠는가, 서로 어울리지도 않고, 어떤 연관이 있으리라는 생각도 할 수 없는 것을 저자는 이렇게 서로 연결을 시키고 있는 것이다.

 

많이 힘겹게 읽히는 책이지만 사회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읽어보면 좋을 듯싶다.

 

 

 

 



n******5 2012.03.19.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