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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우리가 전적으로 인간의 진지한 측면만을 감싸안음으로써 우리의 통속적인 측면을 못 본 척 한다면 우리가 소유할 수 없는 완벽함을 자만하는 것이고, 만일 인간의 통속적인 측면만을 강조하여 우리의 진지한 측면을 무시한다면 우리 자신의 한계를 지나치게 과장하는 셈이 될 것이다. (... 모티머 J. 애들러)
통속성이란 어쩌면 우리가 인간인 이상 모두가 지니고 있는 몇 안되는 공통점들 중 하나일지 모른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것을 거부한다. 우선 나부터도 그랬다. "개그 콘서트" 같은 프로를 보고 눈쌀부터 찌푸리던 게 다반사였는데... 요즘 유행하는 대중문화연구에 대해서도 "So What?"하면 기표해석에만 파뭍혀 이론의 유희를 해대는 꼬라지에 구역질이 날 정도였는데... 하지만 사람들 중 많은 다수가 즐기는 것이라면 그 안에는 뭔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도 해보곤 했다... 하지만 어렴풋할 뿐...
이 책은 그런 나에게 어떤 문을 열어주는 책이었다. 아직 그 문이 어떤 것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대중예술속의 통속적인 것이 지닌 실존적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해 주었고, 전통적인 미학의 체계의 연장선상에서 그런 통속적인 것이 어떤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가의 실마리를 제공해주는 책이기도 했다. 100% 진지한 예술도, 100% 통속적인 예술도 없다. 그런 구분이야말로 통속적인 구분일 뿐, 진지함 속에 통속이, 통속 속에 진지함이 들어있다.
지금 책의 후반부를 읽고 있다.... 칸트가 판단력 비판에서 미의 분석론과 숭고의 분석론을 구성했듯이 저자는 통속성의 미적 분석론을 쓰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사서 보자...^^ [인상깊은구절] 통속적인 것과 진지한 것은 서로 다를 뿐이며, 서로 보충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통속적인 것은 진지한 것의 빛에 비추어 이해될 수 있고, 진지한 것은 통속적인 것의 빛에 비추어 이해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통속적인 것과 진지한 것을 상상력이라는 감수성의 세계에서 질적으로 서로 구별되는 적극적인 두 영역으로 이해할 때, 통속적인 것 - 진지한 것의 습관적인 소극적 이분법은 적극적 이분법으로 변화합니다. 이것이 대중예술과 고급예술의 생산적 이분법의 의미이며, 소극적인 것에서 적극적인 것으로 관점을 전환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받아들일 수 없는 자신의 통속성, 그리고 자기 자신을 향한 병적인 분노, 그것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어떤 진지한 의미를 필요로 하는 경직된 상황, 이러한 상황이 우리로 하여금 문화적으로 의미있는 통속성을 향유할 수 없게 하는 주된 장애 중에 하나가 아닐까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금 진지한 것을 평범한 것의 잣대로 재려는 것이 아닌가 또는 우리가 지금 통속적인 것을 진지한 것의 잣대로 재려는 것이 아닌가를 항상 우리 자신에게 되물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대중예술과 관련된 통속적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