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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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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운동이이화 지음 / 김태현 그림사파리  동학농민운동은 1894년(고종 31) 전라도 고부의 동학접주 전봉준(全琫準) 등을 지도자로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합세하여 일으킨 농민운동으로 이 운동은 처음 교조 최제우(崔濟愚)의 신원운동(伸寃運動)을 통하여 정치운동으로 성장하고 뒤에 민란과 결합하여 동학농민운동으로 전개되었는데, 황현(黃玹)이 “동학이 난민과 합쳐졌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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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농민운동

이이화 지음 / 김태현 그림

사파리

 

 동학농민운동은 1894년(고종 31) 전라도 고부의 동학접주 전봉준() 등을 지도자로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합세하여 일으킨 농민운동으로 이 운동은 처음 교조 최제우()의 신원운동()을 통하여 정치운동으로 성장하고 뒤에 민란과 결합하여 동학농민운동으로 전개되었는데, 황현()이 “동학이 난민과 합쳐졌다”라고 표현한 것은 이 경우를 가리킨 것이다.

일본으로의 수출로 인한 제품가격의 증가와 정부로부터의 세금, 지주의 수탈 심화로 농민 생활이 고달파지고 2대 교주인 최시형에 의해 동학의 교세가 확산되어 창시자인 교조 최제우의 억울한 죽음에 교도들이 교조신원운동을 벌인다.

1차 봉기는 고부군수 조병갑의 수탈 ⇒ 고부농민봉기 ⇒ 정부 조사관의 횡포 ⇒ 농민군 확대 개편⇒ 황토현 전투 승리 ⇒ 전라도 일대 장악 ⇒ 청군대 파병 ⇒ 전주화약 ⇒

2차 봉기는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 청일전쟁 ⇒ 일본군 몰아내기 위해 다시 봉기 ⇒ 한성으로 진격 ⇒ 우금치 전투 패배 ⇒ 전봉준 체포, 처형 ⇒ 실패

조선 사회를 개혁하고자, 외세를 몰아내려고 하였고 이후 개혁에 영향을 주었다.

농민군을 진압하고자 조정이 청군의 출병을 요청한 것은 옳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농민들이 요구한 조항들이 국가에게 실현 가능한 조항들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농민들과 합의하기도 전에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서 결코 아군이라고 할 수 없는 청군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은 너무 어리석고 이기적이다. 자기 힘으로 해결하지 않고 외세의 힘을 빌림으로 전쟁을 유발하고 농민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않았다. 지원요청 자체가 백성들에게 커다란 피해이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주춧돌」 제5권 『평등과 자주를 외친 동학농민운동』. 이 시리즈는 최고의 저자가 쓴 글에 다양한 시각 자료를 곁들여 문화, 예술, 역사, 철학 등 인문적 교양을 아우르는 튼튼한 초석이 되어준다. 오랫동안 한국사를 연구해온 역사학자로서 초대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을 역임한 이이화가 저술한 제5권은 평등과 자주를 외친 동학농민운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1894년에 일어나 100만여 명이 참여하여 10만여 명의 희생을 치른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게 된 시대 배경과 진행 과정, 그리고 결말을 총체적 시각으로 조망하여 체계 있게 서술했다. 동학농민운동이 열망한 인간 평등의 실현, 자주 국가의 건설에 대해서도 탐구한다.

2016.5.1.(일) 이은우(중3)

i***2 2016.05.1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