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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글쓰기 책을 읽어 봐도 정작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 지, 또는 교사는 어떻게 잘 써야 할 지 감이 안 잡힌다. 아이들 글쓰기 교육서 같은 경우도 수 많은 비슷 비슷한 기술들을 어지럽게 모아 놓은 경우가 많다.
이 책은 아이들 글쓰기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 지와, 그에 따라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 지 알기쉽게 제시하고 있다. 바로, 삶을 가꾸는 글쓰기를 하라고 한다. 글을 쓰기 위한 글쓰기가 아니라, 글을 쓰면 내 삶이 풍성해 지는 글쓰기를 하라는 말이다. 우리 교사는 이 사실을 너무 자주 잊어 먹는다. 그래서, 아이들의 솔직하고 담백한 글들을 보면, 책을 많이 안 읽었다든지, 글쓰기 연습을 열심히 안 했다든지, 하는 잘못된 판단을 쉽게 내린다. 이 책은 그런 교사들에게 죽비소리가 되고 있다.
글쓰기와 삶쓰기를 병행하고 싶은 교사라면 꼭 기억해야 할 이야기가 많다. 특히, 어른 글 흉내를 내지 못하게 하라.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써라 같은 말들이 기억난다.
생각해 보면, 나도 항상 생각은 글은 자신의 삶을 가꾸기 위해 써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수업을 들어가면, 교과서의 틀에 얽매여, 아이들의 생각을 억압하고 옭아매는 글쓰기 수업을 수없이 해 왔다. 다시 한 번, 나부터 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게 그리 쉽지 않다. 이유의 대부분은 나의 게으름 때문이다. 이런 고백을 이렇게 쉽게 하니, 나는 더더욱 고치기 어려운가 ㅋ
마지막으로, 어설픈 외국말 어법과 어휘를 교사 자신의 글부터 고쳐가라는 가르침이 기억남는다. 사소한 글이라도 정성스럽게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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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글쓰기 지도에 관한 이오덕 선생님의 삶과 철학이 담긴 책이다. 이오덕 선생님의 글쓰기 교육의 철학은 이 문구에서 드러나는데 바로 "삶을 가꾸는 글쓰기"로 대변된다.
어른들은 흔히 아이들이 어른들의 흉내를 내어 거짓으로 꾸며 쓰는 글을 잘 쓴 글이라 칭찬하고 온갖 상술로 포장된 글쓰기 대회를 통해 아이들을 망쳐놓고 있다고 진단한다. 아이들이란 본디 글쓰는 것을 좋아하는데 정직하게 삶을 가꿀 수 있는 가치있는 글쓰기가 되어야 글쓰기의 참된 목표에 도달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글쓰기 교육의 철학적 질문과 생각을 중심으로 구체적인 "삶을 가꾸는 글쓰기"의 실제를 다루고 있는 글쓰기 교육의 입문서이다.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선생님들은 물론 집에서 아이들에게 틀린 받아쓰기 글자를 질책하는 평범한 우리 어머니들에게도 꼭 필요한 책이라고 추천하고 싶다. "삶을 가꾸는 글쓰기" 우리 아이들이 누려야 하는 글쓰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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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2024.12.21. 이오덕 읽는 하루 ― 시키지 않고 같이 쓰기 《글쓰기 어떻게 가르칠까》 이오덕 보리 1993.8.15. 글을 어떻게 쓰라고 굳이 가르쳐야 할 까닭은 없습니다. 글은 한참 못 써도 됩니다. 말부터 차근차근 펼 줄 알면 됩니다. 예전에는 누가 옆에서 말을 받아적거나 담아야 했다면, 요즈음은 손전화로 말을 그대로 담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글을 잘 쓸 만한가 하고 따지거나 배우려 하지 말고, 내 마음을 어떻게 한집안 사람하고 동무하고 이웃한테 고스란히 말로 들려줄 만한가 하는 하루를 되새길 노릇입니다. 마음을 소리로 담아서 말입니다. 그렇기에 말을 꾸민다면 마음을 꾸민다는 뜻입니다. 나한테 없는 마음을 남한테 잘 보이려는 뜻에서 말을 꾸미면서 마음을 덩달아 구며요. 너랑 내가 한집안을 이루는 사랑으로 지내려고 고스란히 말을 합니다. 너랑 내가 동무에 이웃으로 만나면서 마음을 나누려는 뜻으로 고스란히 말을 하지요. 다만, 말은 더듬어도 됩니다. 말소리가 새거나 사투리를 써도 즐겁습니다. 글을 쓰며 맞춤길이나 띄어쓰기가 틀릴 수 있듯, 말을 하면서 더듬거나 새거나 어긋날 수 있어요. 게다가 고장마다 다른 삶결이 묻어나는 사투리를 쓸 적에는 말맛이 살게 마련입니다. 《글쓰기 어떻게 가르칠까》는 열일곱 살 언저리 푸름이한테 눈결을 맞춘 길잡이책입니다. ‘말하기’를 살피고 추스르면 될 열일곱 살 푸름이일 테지만, 막상 말보다는 ‘글쓰기’에 꽂힌 푸름이를 살살 타이르는 꾸러미입니다. 굳이 글을 잘 쓰려고 용쓰거나 애쓰거나 힘들지 말라고 달래는 이야기입니다. 글이란 말을 담고, 말이란 마음을 담고, 마음이란 삶을 담고, 삶이란 살림을 담고, 살림이란 사랑을 담고, 사랑이란 꿈을 담으며, 꿈이란 넋을 담습니다. 이오덕 님은 이 얼거리 가운데 ‘삶·살림’까지만 짚으시는데, 우리가 적어도 삶과 살림을 짚을 줄 안다면, 저마다 새롭게 사랑과 꿈과 넋도 짚으면서 이 길을 노래할 만합니다. 돋보이는 글이란, 남을 깔보는 글입니다. 눈에 띄는 글이란, 남을 밟고 올라선 글입니다. 여러 글 가운데 어느 글이 돋보이거나 뜨일 만합니다만, 모든 글은 ‘남보다 잘 썼구나’ 하고 느낄 적에는 영 허울스럽습니다. 모든 글은 ‘이 글을 쓴 분이 어떤 삶과 마음과 꿈이로구나’ 하고 느낄 적에 그야말로 사랑스럽습니다. 글밥을 먹건 안 먹건 ‘글이란 곧 말’이면서 ‘말이란 곧 마음’인 줄 모르는 분이 너무 많고, 모르는 척하는 분도 대단히 많고, 배운 적 없는 분이 참으로 많고, 그냥 등지는 분이 숱하게 많습니다. 예전에는 배움책(교과서)이 순 우두머리(독재자)를 치켜세우는 줄거리였다면, 오늘날에는 배움책이 그만 ‘캐릭터북’으로 바뀌었어요. 얼추 2015년 즈음부터 우리나라에는 배움책이 자취를 감추었다고 여길 만합니다. 알맹이란 사라진 채 손꼽히는 ‘웹툰작가·그림책작가’를 끌어들여서 겉으로만 그럴듯하게 꾸미는 허울책이 넘쳐납니다. 지난날에 배움터를 다닌 분이라면, 그저 외우고 시키고 나이로 줄을 매기면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한자리를 거머쥐려고 용썼습니다. 이런 발버둥이 모여서 우두머리(독재자)한테 고분고분한 글담(문학단체·권력)을 한켠에서 이루고, 우두머리를 꾸짖고 나무라면서 뒤에서는 술판·계집질을 일삼는 안쓰러운 글담(문학단체·권력)을 다른켠에서 이루었습니다. 추레한 술판을 저지른 사람은 고은 한 사람뿐이 아니지만, 고은 한 사람 이름만 불거졌고, 고은하고 술판을 걸쭉하게 누리고 함께하던 이들이 여태까지 글담 한복판을 주름잡습니다. 우두머리한테 조아리는 글담도 이제껏 바보짓을 뉘우친 적이 없습니다만, 우두머리한테 맞선다면서 목소리를 높인 글담도 이제까지 얼뜬짓을 뉘우친 적이 없습니다. 왜 이런 두 갈래 글담이 생겼을까요? 우리 스스로 안 배운 탓입니다. 예전에 배운 사람은 예전대로 꼰대스러운 모습으로 글담을 움켜쥐면서 ‘스스로 마음과 말부터 안 바꿉’니다. 오늘은 오늘 배운 사람대로 꾸미고 덧바르고 매만지는 글담을 휘어잡으니 ‘스스로 마음과 말부터 안 바꾸’는 얼거리는 나란합니다. 《글쓰기 어떻게 가르칠까》를 곰곰이 읽어 본다면, 우리 가운데 어느 누가 스스로 ‘어른’이라는 이름을 쓸 만한지 아리송합니다. 아마 하나같이 ‘어른 아닌 꼰대’이지 싶습니다. 꼬부라지고 꼬인 꼰대입니다. 꼿꼿하게 서서 곱게 피어나서 아이들한테 선선히 자리를 내주는 ‘꽃대’는 도무지 안 보입니다. 말끝 하나로 ‘꼰대’하고 ‘꽃대’를 가를 만한데, 말끝 하나란 무엇인지 헤아려 봐요. 예전 배움책에 익숙한 대로 외워 버릇한 늙은꼰대는 ‘시골사람이나 어린이나 학교를 덜 다니거나 못 다닌 사람 눈높이’를 살피며 쉽게 쓰는 글은 아예 안 쳐다봅니다. 오늘 배움책에 익숙한 대로 캐릭터북에 길든 젊은꼰대는 ‘꾸미고 덧붙이고 베끼고 흉내내고 멋부리는 굴레’에 사로잡혀 바쁜 터라, 젊은꼰대는 젊은꼰대대로 ‘내가 나답게 서는 나로서 나를 사랑하는 말’을 바라보는 길하고 스스로 등졌습니다. 어린이한테 들려주는 말이라면, 모든 말마디가 오직 사랑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른이면서 오직 사랑이라면, 어린이한테 들려줄 ‘모든 말마디’를 하나씩 바로잡고 다듬고 고치게 마련입니다. 우리가 어른으로 무르익지 않거나, 아직 사랑이 무르익지 않았으면 “뭐 이쯤은 그냥 쓰지!” 하면서 넘어갑니다. 우리가 어른이라면 아이가 묻는 모든 말을 함께 생각할 뿐 아니라, “그래, 넌 어떻게 생각하는데 나한테 물어보니? 네가 아는 바가 있어서 말하고 싶지만 내(어른)가 어떻게 보는지 궁금해서 물어보지 않니? 내(어른)가 어떻게 보든 대수롭지 않으니까, 네가 보고 듣고 느낀 그대로 먼저 이야기를 하면 돼.” 하며 길잡이 노릇을 합니다. 이오덕 님이 그동안 쓴 여러 책에서 밝히기도 하는데, 어쩌면 못 알아차리는 분이 많을 텐데요, 이오덕 님이 어린이나 푸름이한테 글쓰기를 가르칠 적에는 ‘쓰라고 시키기’만 하지 않습니다. 이오덕 어른도 늘 곁에서 같이 씁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글쓰기 교사’나 ‘담임 교사’를 보셔요. 아이들한테 숙제를 맡기거나 시키기만 할 뿐, 정작 같이 쓰는 분은 몇인가요? 그래도 더러 아이하고 같이 쓰는 분이 있기에, 오늘날 우리글과 우리말이 아직 안 죽었다고 느껴요. 그저 너무 드물게 같이 쓸 뿐이라, 아이들 눈빛이 살아나기 어려울 뿐입니다. 우리가 손쉽게 사다먹는 주전부리를 돌아봐요. 주전부리 껍데기에 어떤 글이 적혔나요? 작은 동사무소·면사무소에 있는 글자락(서류)을 봐요. 배움턱을 디디지 못 한 사람한테는 대단히 어려운 일본한자말이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2024년 12월에 모지리 같은 우두머리가 ‘계엄’을 폈는데, ‘계엄’은 어느 나라 말일까요? 아니 ‘대통령’이란 이름부터 일본말인 줄 아는 사람은 몇일까요? ‘국회·국회의원’도 우리말이 아닌 줄 알아보는 사람은 몇인가요? 우리말은 ‘고장·고을·마을’인데, ‘시도·구군·동읍면’ 같은 일본말을 여태 못 버리거나 못 바꾸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글쓰기란, 말쓰기이면서 마음쓰기이고 삶쓰기에 살림쓰기입니다. 바야흐로 사랑쓰기에 꿈쓰기에 넋쓰기입니다. 이리하여 글쓰기란, 숨결쓰기에 사람쓰기에 하루쓰기입니다. 글쓰기란, 오늘씨기에 나쓰기(너쓰기)에 씨앗쓰기입니다. 글쓰기란, 별빛쓰기에 해쓰기에 바람쓰기에 비쓰기에 숲쓰기에 나무쓰기에 풀꽃쓰기입니다. 머리를 쥐어짜서 겉으로 멋스러이 꾸밀 적에는 ‘글쓰기’가 아닌 ‘꾸미기’입니다. 예전에 아직 국민학교라는 이름이던 무렵에 아이들한테 ‘만들기’를 짐으로 내주기 일쑤였는데, 오늘날 적잖은 글은 ‘글만들기’에 갇혔습니다. 서로 마음을 쓰듯 글을 쓰기에 서로 반갑습니다. 서로 살림을 짓듯 글을 짓기에 함께 웃습니다. 그러나 꾸미고 만들고 멋부리는 동안에는 그만 담벼락이 높습니다. 날마다 부지런히 써도 안 나쁩니다만, 이레에 한 꼭지를 써도 아름답습니다. 보름이나 달마다 한 자락을 써도 빛납니다. 철이 바뀌거나 해가 갈 적에 하나를 써도 즐겁습니다. 손으로 짓고 발로 다니고 몸으로 겪고 마음으로 받아들여서 넋으로 사랑하는 하루를 쓸 줄 안다면, 마음과 말과 글이 나란히 반짝일 만합니다. ㅅㄴㄹ 아이들에게 저마다 삶을 바로 보게 하여 그것을 소중히 여기면서 정직한 글을 쓰게 하지 않고, 삶을 덮어두고 삶을 등지고 돌아앉아 거짓스런 말장난을 하게 합니다. 그리고 어른들의 글을 흉내내는 손재주를 문예 교육이니 창작 교육이니 하는 이름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4쪽) 어른들이 길을 막고 있다고 간단하게 말했지만, 생각하니 어른들의 무지와 횡포는 아이들이 바르게 자라나지 못하게 억누르는 온갖 교육과 문화의 조건으로 나타나고 있다. (12쪽) 아이들에게 자기가 보고 듣고 한 일을 쓰게 하지 않고 책에 나온 어른들의 글을 따라 쓰게 하거나 책에 나온 낱말을 문법에 맞추어서 쓰게 하는 것을 글짓기 공부라 해서 시킬 때 아이들은 글을 못 쓰게 된다. 쓰더라도 아주 맛없는 글, 죽은 글밖에 못 쓴다. (17쪽) 우리 아이들은 오래 전부터 마음의 숨을 못 쉬고 있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숨구멍을 꽁꽁 틀어막는다. (25쪽) 글쓰기 교육의 목표는 아이들을 정직하고 진실한 사람으로 키우는 데 있다. (44쪽) 정직하게만 썼으면 그만인가? 정직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 정직은 진실을 얻기 위함이다. (60쪽) 죽어가는 흙과 흙 속의 생명을 살리는 교육을 해야 한다. 이것이 삶을 가꾸는 교육이다. (72쪽) 정직하게 쓴 시인데 별로 감동이 오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이 시가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거나 삶을 높여 주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냥 설거지가 지겹고 신경질이 난다고만 했으니까요. (138쪽) 글을 쓴다고 하니 공연히 마음이 굳어져서 근사한 말재주를 부리고, 그래서 어렵고 재미없는 글이 된 것이겠다. 아이들이 이런 선생님의 글을 읽고 닮아갈 것이 아닌가 싶어 걱정된다. (191쪽) 내가 알기로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일수록 자기들의 집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우리 겨레의 마음이었다. (202쪽) 아이들이 쓴 책을 내는 것은 아이들이 보도록 하기 위함이지만, 한편 어른들도 좀 읽어서 배우란 뜻이다. (246쪽) 잘못된 환경과 교육으로 현실을 도피하는 아이들은 자기의 삶과 자기의 말이 아닌 남의 삶과 남의 말로 거짓된 표현을 하는 곡예를 익혀서 그 마음이 점점 더 깊이 병든다. (324쪽) 글을 쉬운 말로 쓰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겨야 할 터인데 도리어 부끄럽게 여긴다. 그리고 아이들이 읽을 수 있게 써 놓은 글은 가치가 없는 글이라 생각한다. (362쪽) 《글쓰기 어떻게 가르칠까》(이오덕, 보리, 1993)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씁니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라는 이름으로 시골인 전남 고흥에서 서재도서관·책박물관을 꾸립니다. ‘보리 국어사전’ 편집장을 맡았고, ‘이오덕 어른 유고’를 갈무리했습니다. 《들꽃내음 따라 걷다가 작은책집을 보았습니다》, 《우리말꽃》, 《미래세대를 위한 우리말과 문해력》, 《쉬운 말이 평화》, 《곁말》, 《곁책》, 《새로 쓰는 말밑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책숲마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우리말 동시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읽는 우리말 사전 1·2·3》 들을 썼습니다. blog.naver.com/hbooklov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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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유명하신 이오덕 선생님~ 40년 넘게 농촌학교에서 글쓰기를 하셨다고 한다. 처음 책을 받고 두께가 두꺼워서 어느세월에 읽을까 걱정을 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술술 책장이 넘어갔다. 아이들의 순수함과 정직한 글들을 읽으면서는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러면서 안타까운것은 아이들이 진솔되게 글을 썼을때 어른들이 제재하거나 혼을 내는 부분, 그리고 상을 타기위해 써야하는 인위적인 글들을 아이들이 써야한다는것이다. 머리로 꾸며 만들어진 글들에 상을 주는 현실을 개탄하고 있는듯보인다. 어린이들은 어른과 달리 보고 듣고 한것을 사실그대로 쓰고 자기의 말과 생각으로 쓴다고 한다. 그러기에 아이들이 정직하고 진솔하게 글을 쓸수 있도록 해야 그 글이 가치있는 글이 된다고 한다. 그런 글속에는 아이들의 삶과 마음을 알수가 있고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을 더욱 가꿀수가 있으며 아이스스로 자기의 삶을 바라보고, 삶을 다져서 건강하게 살아가는 태도를 가지게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이 말에는 공감되는 부분이 크다. 아이들은 글쓰기나 그림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느데 거짓으로 쓴글에는 아이들의 마음과 삶을 볼수가없기 때문이다.
2부에서는 아이들 글쓰기를 어떻게 지도할까에 대해 자세히 나와있다. 지도하는 6가지 단계로 요령도 배울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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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글쓰기를 어떻게 지도해야할지에 대해 약간은 알게된듯하다. 글의 설명뿐만아니라 아이들이 쓴글이 예시되어 있어이해가 빨리된다. 아이들의 글쓰기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조금은 알게된듯하다. 삶을 가꾸는 글쓰기를 하는데 있어 방해요소들이 많을수 밖에 없는 현실이기도 하고 선생님이나 다른 어른들 또한 잘못된판단을 내리고 편견을 가지기가 쉬운것 같다. 나또한 아이들이 부정적인 글을 쓰면 그렇게 쓰지말라고 하기도 했으니까. 글쓰기를 가르치는 선생님이라면 꼭 읽어봐야할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목표에 따라 아이들의 지도방법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어떤 목표를 정해야할지 이 책을 읽으면 약간은 감이 잡히지 않을까?생각한다. 아이들이 하고 싶고 쓰고 싶은 글을 솔직하게 쓸수 있는 환경이 되고 그것이 인정하며 어른들 스스로도 반성하는 계기를 삼으면 좋을것 같다. 나부터 반성하며 우리아이들 글쓰기를 지도할때 많은 참고를 해야겠다. 우리아이가 글쓰기를 싫어하는 이유중 하나가 틀에 밖힌 글을 쓰라하고 강요에 의한 글쓰리가 더욱 싫어하는것 같다. 아이들은 삶이 전부이기때문에 아이들에게 참 삶을 체험으로 가르치고 세상을 바로 볼수 있도록 해주는것이 내가 도와야할 부분인것 같다. |
| 평생 존경할만한 마음의 스승을 갖는다는게 참으로 행운이다. 이오덕선생님은 우리에게 참사람이 되라고 몸소 가르쳐 주실 수 있는 드문 스승이시다. 책을 읽고 두어번 울었다. 선생님이 소개해주신 정말이지 우리 마음을 흔드는 진솔한 학생들의 시를 읽고서이다. 그래, 바로 이런게 시구나... 이런게 참 글이구나... 어디가서 이런 걸 배우나. 인간의 마음의 결을 이렇게 잘 살펴서 쓰고 그래야만 인간다워질 수 있다는 가르침을 어디가서 배우나. 좋은 글을 쓰면 삶의 폭이 넓어진다는 진리를 누가 일러 주나. 선생께서 타계하신 빈 자리가 참으로 크게 느껴진다. 이 책은 이오덕선생의 책을 하나씩 사모으면서 책장에 꽂혀있던 책이다. 몇년전에도 한 번 읽은 적이 있었을텐데 이제 내가 내아이에게 직접 글쓰기를 가르쳐야 할 때가 되자 본격적으로 읽어 보게 되었다. 선생의 참글쓰기 사상이 그대로 들어 있는 이 책 한권만이라도 읽는다면 모든 부모는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거라고 감히 생각해 본다. 예전에 밥 굶고 일하던 아이들보다 요즘에 성적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더 불쌍하다는 말씀이 절절히 가슴에 와 닿는다. 예전의 정말이지 가혹할정도로 먹고 살기 위한 노동에 시달리던 아이들의 시를 대하면 가슴이 그만 싸르르한데 요즘의 아이들이 그보다 더 불쌍하다면 정말이지 우리 아이들이 너무나 불쌍하지 않은가. 나도 별 생각없이 아이를 그렇게 키워가고 있는게 아닌가?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아이답게 클 수 있을때 어른다운 어른도 될 수 있다는 것도 깨달을 수 있었다. 돌아가신 후에도 이렇게 우리들을 진정 사람되게 가르쳐 주시는 이오덕선생님. 이런책을 남겨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아이들은 마음이 깨끗하고 계산하지 못하고 이기적이지 않고 하늘이 주신 올바른 마음을 갖고 있으니 모든 어른의 스승이라는 말씀이 정말로 맞습니다. 저도 그런 깨끗하고 참된 마음을 가진 우리 아이가 그 마음을 다치지 않고 잘 자랄 수 있도록 부모로서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그러면서 저도 좀 더 사람다운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는 바램도 가져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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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글쓰기에 관한 다른 책들과 가장 구별되는 특징은 머리로 쓰는 글쓰기가 아니라, 손과 발로 쓰는 글쓰기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농촌의 초등학교에서 40년 이상 아이들의 글쓰기 교육을 지도하신 이오덕 선생님의 글쓰기 교육 철학이 가슴 뭉클하게 배어 있다.
글을 쓴 사람의 삶을 반영하는 정직하고 때 묻지 않은 글이야말로 읽는 이로 하여금 감동을 주는 힘이 들어있다고 한다. 이오덕 선생님은 머리로 쓴 글과 손과 발로 쓴 글을 실제 가르치신 아이들의 글을 보여줌으로써 독자가 비교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하여 독자로 하여금 손과 발로 쓴 진실한 글에 깃든 힘과 감동을 느끼고 그 가치를 깨달을 수 있도록 한다. 맞춤법이나 각종 수사법을 사용하고 따지는 일은 그 다음 문제인 듯하다.
특히, 어린 시절의 제대로 된 글쓰기 교육은 삶을 가꾸는 일과 더욱 밀접하기 때문에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런 의미에서 머리로 기교를 부려 그럴 듯하게 어른의 글을 흉내 내어 쓴 어린이 글을 경계하라고 한다.
사실, 나는 글쓰기 교육에 관한 탁월한 비법이 있는지 기대를 하고 이 책을 읽었다. 그러나 기대한 노하우가 모두 들어 있지는 않았지만 그보다 더욱 소중한 기본 가치를 배울 수 있었다. 즉, 글쓰기 교육은 삶을 가꾸는 교육이요, 정직한 자기 마음의 소리를 담지 않은 글은 쓸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또, 쉽고 편리하게 쓰는 우리말을 놔두고 한자어나 외래어를 사용하면 더 멋지게 보일 거라고 생각하는 사대주의 근성을 버리고 우리말을 살려 쓰자는 내용은 머리를 절로 끄덕이게 한다.
여러모로 글쓰기를 시작하고 가르치기에 앞서 가장 기본이 되는 소중한 점을 점검해 보도록 해주는, 참된 선생님의 참된 글쓰기 교육 책이다. 글쓰기와 글쓰기 교육에 관심 있는 모든 사람들이 꼭 읽어보았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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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받았던 잘못된 교육 때문인지, 그간 살아오면서 어영부영 읽어온 몇 권의 책들 때문인지 그동안 저는 ‘글쓰기’와 ‘글짓기’도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어렵지 않게 글을 쓴다고 늘상 생각해 왔지만 <글쓰기 어떻게 가르칠까>를 읽고나니 그동안 제가 써온 글은 죽어있는 글, ~척(잘난 척, 있는 척, 아는 척) 하는 글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어지는 설명을 읽고나서야 ‘아! 그렇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은 게 몇 번이나 됩니다. 기초적인 모국어 교육을 받고 어렸을 때부터 책읽기를 꾸준히 해온 사람이라면 몸으로 익힐 수도 있는 부분이었을 텐데 잘못된 교육 풍조 아래서 잘못 배웠기 때문인 듯 합니다.
저는 지금껏 그래왔지만 책읽기와 글쓰기에 정성을 더 쏟아야겠습니다. 다행히 너무 늦지 않게 이 책을 만나게 되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씹고 또 씹고, 되새기고 또 되새겨서 우리 아이들이 우리 글을 정말 소중하고 알차게 쓸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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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것 그 자체, 이 책을 읽고 이 글을 쓰고 싶어했던 마음 그 자체, 그럼으로써 내가 느낄 수 있는 만족과 행복한 마음. 글쓰기란 모름지기 이러해야 한다는 것을 바로 이 책이 가르쳐 주고 있다. 억지로 쓰는 것 말고, 상을 받기 위해 꾸미는 것 말고, 내가 책을 통해 세상을 통해 받아들인 모든 것을 내 식으로 표현해 보는 것. 그러므로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발적인 동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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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삶을 가꾸는 글 쓰기 교육’과 같은 맥락이다.글쓰기를 통해 자아를 정직하고 진실되게 키워 삶을 보다 가치 있고 뜻있게 살아가도록 교육자는 아이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에 많은 공감을 했다. 책을 읽으면서 자신을 많이 돌아보게 한 부분은 예문 중에 “어른들의 마음”과” 공부”이다.엄마의 난폭한 행동에 죽을 것 까지 생각하는 여자아이,엄마가 짜놓은 틀 속에 어쩔 수 없이 맞추어야 하는 아이를 보면서 내 자신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과 미안하고 잘못해왔다는 마음이 들었다.아마도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대부분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으리라 본다. 아이의 행복은 무엇인가?하고 항상 생각은 하지만 아이의 행복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좁은 식견을 가지고 아이의 미래를 나의 경험에만 비추어 아이들을 옭아매는 것은 아닌지 반성도 하다가 어느덧 다시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내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이런 생각을 갖고 살고 있던 나에게 이 책은 나에게 큰 방향 전환의 계기가 되었다. .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발전시키고 자아를 성장시켜 갈 수 있다는 저자의 주장이 내게 크게 다가왔다. 어린 시절부터 각인 되어온 글쓰기는 내 생각보다는 사람들이 보고 감탄할 수 있도록 멋진 말,기특한 생각들 온통 모범생과에 속하는 말들로 나열하는 그런 글이었다. 그런 글은 상도 많이 타고 글짓기 대회에도 여지없이 나간다.그러나 나는 책의 저자가 말한 것과 같이 흉내내기,말장난조차 할 수 없어서 글짓기 시간엔 시간 가기만을 기다렸고, 글짓기 숙제는 거의 하지 못했다. 나의 말을 글로 쓰는 것이 부끄러웠고 내 생활을 아이들이 알게 될까 봐 창피한 마음도 있었기 때문이다. 글은 자신이 쓰고 싶은 것을 정직하고 정확하게 자기말로 쓰는 것이라고 했다.이 얼마나 쉬운가! 나 자신의 생활을 글로 표현하면서 자신의 그릇된 생각은 선생님의 지도와 친구들의 글을 통해 깨닫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오늘 친구 가족을 만나서 식사를 하는데 아이가 일기 속에 “엄마가 때려서 억울하다”라는 글을 썼다면서 아이 때문에 속상하고 창피하다는 말을 했다.부모의 입장에서는 그 아이로 하여금 자신의 모습이 선생님이나 다른 사람이 알게 된 것에 창피한 마음도 있겠고 혼을 낸 것에 반성하는 뜻이 전혀 없다는 것에 걱정하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하지만 나는 그 아이가 솔직한 자신을 표현한 것에 박수를 보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무엇 때문에 매를 맞고 왜 억울하다는 표현을 썼는지 모르지만 아이의 마음에 아직 해결되지 않은 그 무엇이 남아 잔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그 글을 읽은 부모는 아이의 글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고 글을 통해서 깨닫고, 깨달은 것을 실천할 때 아이를 위한 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부모가 짜 놓은 틀 속에 아이를 가두어 생각까지 아니 글쓰는 것까지 막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다.오히려 저자의 말대로 부모는 아이들의 글을 거울로 삼아 배워야 한다고 까지 말하고 있지 않은가? 방향을 바꾸어서 이 글을 본 선생님은 어떻게 바라보고 지도해 줄 수 있을까? 글쓰기를 하는 지도 교사의 목표는 글을 완성시키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면서 생각하고 비판하면서 잘 못된 것을 고치고 마음과 생각,행동들을 성장하도록 돕는데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다시 말해 완성된 글이 아니라 건강한 삶을 살도록 인도하라는 말이다. 교사과정을 밟고 있는 나로선 사뭇 무겁고 어려운 일이지만 정말 내가 그 아이의 삶을 바로 보고 바로 진단하여 바로 살게 도울 수 있다면 이것 이야말로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건강한 삶이란 나 혼자만을 위한 삶이 아니고 더불어 가는 사회 속에서 돕고 나누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 한다는 말이 생각난다. 저자가 말한 정직하게 진실되게,흉내내지 않고 자신의 그대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여 보다 희망적으로 살아가도록 지도하는 선생님이야말로 예수님의 제자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너무 과장되고 비약적인 주장에 사뭇 놀라고 고개가 갸웃거리는 부분도 있었지만 어린아이를 사랑한 마음이 컸기 때문으로 받아들였다.어린이를 어린이라 부르도록 이름 진 방정환 선생님이 있었고 그 어린이의 삶이 중요하고 고귀한 삶이기에 저자 또한 어린 시절의 글쓰기를 중요시했다.나 또한 어린이들을 예수님을 닮은 사람으로 가르치는 과정 속에 있으니 이 사명에 성실히 임하려 한다.기도와 쉼 없는 독서를 통해 쓰기와 더불어서 기초를 쌓아가려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