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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뱃대를 꼬다 물은 그의 품새 속에서 나는 순박한 야수를 본다. 궁벽한 초옥을 닮은 이문구 그가 짓무른 세상을 향해 포효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그것의 발원처를 더듬어보면 한국이고 중에서도 남한, 중에서도 1910-45년 일제식민지 시대, 나아가 한국전쟁- 이란 파편의 맥을 짚을 수 있다. 맥이라 했다. 절단 난데서 부서진 데서 멈추지 않고 팔딱팔딱 살아 꿈틀거리는 인고의 몸부림을, 나는 감히 이렇게라도 전달하고 싶다.
전前과 과거過去라는 것을 떠올리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고작해야 이것이다. 연일 검은 그림자에 묻혀 살자니, 저리 아름다운 산천은 내 조국 위에 눈물을 띄우고 그리도 향기롭던 논밭 내음은 내 이웃과 형제들에게 시름을 얹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노래를 하게 만들었다는 것. 그것이 젖은 갱지에 넋두리를 채우고 한 뙤기도 안 되는 마당에 시를 남기고 응어리진 우리네 누구누구 조상의 가슴 위에 지울 수 없는 토혈각혈을 새겼다는 것. 그리하여 황토는 여전히 황토임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 작가는, 뉘 집 마당 턱에 쭈그리고 앉아 자신이 뿜어대던 담배 연기에 조국의 시름을 기록했으리라, 이렇게 나는 괘씸한 추측정도를 해볼 뿐이다.
더불어 지금 또 생각해보면 내가 잃은 조국과 가족, 형제는 참 별 것도 아니었다. 인절미 하나 얻어먹고 의사의 오진으로 두 살배기 남동생이 연기처럼 사라져버린 것이며 그 동생 잃은 슬픔으로 만취한 아버지마저 교통사고로 구름처럼 사라져버린 것이며. 둘을 잃고도 내게는 여전히 욕 잘하고 건강하신 어머니와 사고뭉치 언니와 토끼 같은 동생이 남아 있었다는 것. 또 초코파이 하나 반으로 갈라 나눠먹을 동전 한 개, 장마철이면 변소간 똥물 넘실거려도 몸 뉘일 방 하나, 연탄불로 덥힌 물 받아 갈색 고무통에 몸담고 묵은 때 털어내던 그 고마운 부엌인지 목욕탕인지 하나-가 있었으므로 수시로 옷고름 적셔가며 살던 우리네 조상 누구누구보다 훨씬 낫지 않은가. 그럼에도 덜 자라고 덜 큰 게 무슨 벼슬이라고 생활보호대상자 아동에게 지급되던 그 연두색 털장화를 나는 죽어도 받고 싶지도, 신고 싶지도 않았다. 털 난 미물(쥐)하나 그 틈을 노려 자리만 지키고 서 있는 그 털장화 속에서 겨울을 났다. 그것은 그대로 새것이자 헌것이 되어버렸다. 그런가하면 다른 친구들과 색이 다른 누런 육성회비 종이를 뭉그적거리며 받아들고서는 ‘느그 엄마는 왜 그렇게 돈을 안 낸다냐?’묻던 담임의 시선을 피해 가뜩이나 소심했던 나는 더 벙어리가 되어야했던 내 과거와 과거의 과거는 얼마나 아픈 것이었을까.
작가가 써낸 시대와 인물의 질곡은 이보다, 나의 것보다 몇 배는 더 아프고 시리다. 다섯 손가락 지져 아프지 않은 손가락 없다고 민중이란 나무에 열린 모든 가지가 그칠 줄 모르는 메뚜기 떼의 습격으로 아물지 못한 채 썩어갔다. 그렇게 쉬이 썩을 것 같지 않았던 나무와 산과 숲이 죄 자취를 감춘 고향을 찾아온 작가는 순간 실향민이 된 듯한 느낌에 빠지고 만다. 유일하게 변하지 않은 것이라곤 고향에서의 추억뿐이었다. 자연과 사람과의 추억. 집안의 대들보로 무던히도 완고하셨던 할아버지, 그에 반해 비밀조직에서 무신 해방운동인가를 펼치던 아버지, 어린 꼬맹이였던 그에게 어머니 같았던 여종 옹점이, 동생 재롱 받아주듯 늘 데리고 다니며 재미난 세상맛이란 맛은 다 들여 주던 친형 같던 대복이, 동네 허드렛일이란 일은 다 제일처럼 해대면서도 정작 제 실속은 못 챙기던 돌쟁이 석공- 이들은 대부분 어지간히 오지랖만 넓고 정만 흥청망청 써대던 인사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그런 넉넉한 품속은 스산하고 질퍽거리기만 하는 세상을 단단히 굳혀간다.
진탕 술 마시고 온 동네를 휘저으며 아무리 깽판을 부려도 관촌민의 귀엔 그건 늘 노래였으리라. 창가고 판소리였으리라. 목이 쉬어 터질 대로 불러대야 제 맛이라던 그들이 간직한 사람과 마을과 세상은 이문구의 눈과 가슴과 연필을 피해갈 수 없었을 것이다. 하여 당신들이여! 말맛나는 노래 한 가락 뽑아보려거든 이 문구의 관촌수필이란 악보를 필히 펼쳐보라. 그 사이 나는 항아리 뚜껑을 열어보리. 도대체 그 속에 무엇이 들어있어 저 아린 속을 풀어주는지... 얼쑤! 접동새 한 마리 노래 물고 튀어 오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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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떠나서 사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가
고향에 대한 향수가 있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어린 시절을 그곳에서 보냈다면, 고향은 단지 기억 속의 고향만으로 머무르는 것이 아니고, 언젠가는
반드시 돌아가야 할 귀향의 장소가 되어간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지금은 가까운 일가친척 모두가 고향을 떠나 살고 있기에, 명절날 고속도로를 메우는 귀성객들을
바라보면서 한편으로는 안도의 숨을 쉬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부럽다는 마음을 감추기가 어렵다. 명절을 피해 조부모의 산소가 있는 고향마을에 갈라치면, 예전에는
도청소재지에서 백리길 밖에 안되지만 고개를 쉼 없이 넘다 보면 1시간이 훌쩍 지나는데, 지금은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10분이면 다다른다. 그러다 보니 기억 속에 있던 풍경과 눈에 보이는 풍경이 사뭇 달라 때로는 어리둥절하게 만들지만, 고향마을 깊숙이 들어가다 보면 아직도 눈에 익은 모습에 반가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 책
[관촌수필]은 저자의 자전적 소설이라 할 수 있다.
1972년부터 1977년까지 여러 매체에 나누어 발표된 중,단편 8편으로 이루어진 연작소설이다.
이 소설이 쓰여진 1970년대는 우리사회가 본격적으로 산업화, 근대화, 도시화의 길을 걷고 있던 시기이다.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도시로 몰려들던 시대에, 자신이 유년시절을
영위한 농촌공동체의 삶을 회고하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충남 대천의 관촌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저자는 고향사람들이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또 산업화시기에 어떻게
살아내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연작소설의 첫 편인 일락서산(日落西山)에서 저자는 고향마을을 찾아 옛 고향집 부근을 돌아 보며 기억을 더듬고,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회고하며 자신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고 있다. 엄한
조부 밑에서 보낸 유년시절을 회고하는 그의 글에서, 나 역시 어린 시절 조부와 함께 보낸 시간 속으로
빠져든다. 영락없이 조선시대의 선비였던 조부에게 저자가 받은 사랑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내가 조부에게 받은 사랑과 별반 차이가 없음을 느끼면서, 나 또한
고향마을인 평지 넓은 뜰을 떠올린다. 지금 그곳은 어떻게 변했는지를 상상해보는 내 마음이 영락없이 일락서산이다.
저자는 첫 편에서 대략적인 자신의 가족사를
언급한 다음, 다음 편부터는 고향에서 같이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사연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 각 편마다 등장하는 사람들은 저자의 친근한 이웃이자, 한국전쟁과 60년대의 곤궁했던 시기, 그리고
70년대의 산업화 시기를 살아냈던 이 땅의 민중들이기도 하다. 화무십일(花無十日)에서는 한국전쟁 때 동네로 들어와 살던 윤영감에 대한 이야기가, 행운유수(行雲流水)는
저자의 집에서 부엌데기였던 옹점이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리고 녹수청산(綠水靑山)은 행랑채에 살던 대복이와,
공산토월(空山吐月)은 석공 신씨와 저자와의 얽혔던
이야기로, 난리와 가난 속에서 소용돌이쳤던 힘없는 농민들의 이야기가 당시의 곤궁했던 삶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이어서 관산추정(關山芻丁)과, 여요주서(與謠註序), 그리고 월곡후야(月谷後夜)에서는
옛 고향친구를 만나 무분별한 근대화와 도시화가 일으키는 문제, 점점 영악해져 가는 세태, 그럼에도 그 곳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여과 없는 사투리와 토속어의 사용은 시공을
떠나 내가 마치 그곳에 있는 것처럼, 내가 살던 동네에서 일어난 일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보고, 읽기에 따라서는 전통시대의 삶을 그리워하는 것 같지만, 그것은 산업화와 함께 사라져가는 고향과 어려웠지만 순박했던 삶에 대한 동경이 아닐까 싶다. 지금은 아무리 시골이라 할지라도 도시화의 잔영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저자의
작품을 읽으면서 내 기억 속에 있는 고향마을을 새삼스레 떠올려본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 감흥은, 새마을운동 이후 변모한 농촌의 삶을 그렸다는 저자의 또 다른 연작소설, [우리동네]도 찾아서 읽어봐야겠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게 만든다. |
| 관촌수필은 처음 고교시절 국어 참고서에서 접한 것 같다. 극히 일부분만이 소개되었을 뿐인데, 호기심이 대번에 생겼다. 그래서 언젠간 읽어보리라 내심 결심이 섰고. 이제야 '문학과 지성 소설 명작선'을 통해 접하게 되었다. 관촌수필을 읽으며 나는 그 특이한 구성에 강한 인상을 받았는데, '관촌'을 공통된 배경으로 한 각기 다른 인물과 사건을 작은 단편으로 묶고 있었다. 내가 처음 교과서에서 본 부분은 "화무십일"이란 글이었다. 6.25동란 중 기울어져 가는 필자의 집에 얹혀 살게된 윤영감네의 몰락을 그린 부분이었는데, 간결하면서도 빠른 사건의 진행과, 구수한 사투리의 구사 등 나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글을 읽으면서 '관촌'이란 곳이 지금의 보령즉 과거에 '대천'이라는 것을 알고 매우 놀랐는데, 나의 외가가 그곳이기 때문이었다. 어릴 적 '대천 해수욕장'에서 놀다가 길을 잃기도 했으며, 집안의 대소사가 있을 때마다 방문했던 곳이라서 나에게는 낯익은 고장이었기 때문이었다. 혹시 우리의 일가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반 흥분 반으로 글을 읽었는데 나오지는 않았다. ^^ 이 글은 단연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관촌'이라는 공통된 배경, '작가시점'이라는 일관된 관점, 그리고 작가가 서울로 떠나기 전 즉 50-60년대의 시간을 공통으로 갖고 있지만, 각 단락마다 등장하는 인물은 다르다. 총 8개의 주제를 가지고 있는 이 글은 작가가 잊지 못해하는 인물들을 중심으로 사라져 가는 옛 풍경과 더불어 더 빠르게 변해 가는 인심을 안타까워하는 작가의 그리움의 산물이라 하겠다. 8개의 글 중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화무십일(花無十日)"과 "행운유수(行雲流水), 공산토월(空山吐月)"이었다. '화무십일'은 아마도 교과서에서 접한 까닭이었으리라. 하지만 너무나도 어이없게 몰락해 버린 일가의 이야기는 읽을 때마다 삶의 허무함을 다시금 느끼게 한다. 작가는 당시 기울어져 가는 (경제적으로), 하지만 정신만은 꼿꼿한 토정비결의 저자 '이토정'의 자손이다. '행운유수'는 당시 하녀로 있었던 '옹점'이에 대한 이야기다. 어릴 적 누구나 자기의 비밀을 숨겨주고 자신의 세계 안에 함께 함이 허락된 어른이 한두 명은 있다. 나에게도 그랬으니깐... 옹점이는 작가에게 그런 인물이 아니었나 한다. 옹점이와 함께 한 추억과 옹점이의 결혼, 그리고 몰락, 결국 시장 복판에서 약을 팔며 좋아하는 창가를 부르는 변질된 그녀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작가는 그녀의 기억을 접고 있다. '공산토월'은 사람의 정이란 것이 이리 질기고 두텁구나 하는 것을 보여준 '석공'이란 인물의 이야기이다. 요즘과 같은 시대에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우리 옛사람들의 전형적이었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8개의 이야기가 어느 하나 정겹고 애잔하지 않은 것이 없다. 가족, 친구, 이웃 간의 관계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는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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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지난 것을 말하지 않는다. 다만 새로 이룬 것을 보여줄 뿐이다. 우린 날로 새로워진 것을 볼 때마다 내가 그만큼 낡아졌음을 깨닫고 서글퍼하기도 한다. 가끔씩 고향을 찾게 되면 그런 느낌이 강하게 밀려온다. 어릴 적 뛰어 놀던 동네는 고속도로가 지나가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서 그곳이 내 고향이었음을 확신하는 법이다. 내 고향에는 어릴적 다니던 초등학교가 폐허가 된 채로 어릴적 나의 추억을 되세기게 해준다.
이문구의 <관촌수필>도 1950∼1970년대 산업화시기에 자신이 살아왔던 농촌 고향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현재의 황폐한 삶에 대비시켜 강하게 환기시켜 주는 작품이다. 작가 이문구 개인의 체험을 바탕으로 쓰여진 소설이다. 난삽할 정도로 무리져 나오는 강한 충청도 사투리와 한학에 기초를 둔 박학한 어휘 때문에 초반에 이야기에 빠지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거기에 익숙해지는 순간 구수한 고향이야기가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空山吐月, 綠水靑山, 行雲流水, 花無十日, 日落西山... 4자성어로 이루어진 문단 제목들이 정겹다. 이야기는 전통적 유교사상과 반상의식에 묻혀 있던 지방 토호가 시대변천에 따라 서서히 몰락해 가는 과정을 그린 <일락서산>에서 시작된다. 상주목사의 아들이며 강릉대도호부사의 손자로 소개되는 작가의 할아버지는 몰락해가는 양반층의 마지막 모습이기도 하다. 6.25 한국전쟁 이전까지 양반의 옛 모습을 할아버지를 통해 보여주는 부분이다.
제2편인 <화무십일>은 6.25 동란의 발발과 함께 폐쇠사회가 허물어져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윤영감네 가족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한다. 소설의 제3편과 제4편은 <행운유수>, <녹수청산>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주인공이 어렷을 적부터 마음이 벗이 되어 주었던 인물들을 소개한다. 앞편은 식모역할을 한 옹점이의 이야기이며, 뒷편은 대복이라는 사내 이야기이다. 전통사회라면 결코 친구가 될 수 없었던 비양반층 아이들이지만 마음의 친구가 된 것은 이들 주인공들이 지닌 따뜻한 마음과 인정을 가졌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리라.
<공산토월>이라는 호방한 제목을 붙은 5편의 이야기는 감동적이다. 이 편의 주인공으로 소개되는 석공 신씨와 작가와의 인간적 관계가 그려진다. 처음에는 양반대 상민이라는 차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둘 사이가 인간적으로 가까와지면서 대등한 관계로 전환된다. 마을은 궂은 일이라고는 도맡아 해 주던 신씨는 모든 마을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존재요, 성실한 농군의 표상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마지막 부분에서 백혈병으로 죽어간다. 생사의 경계를 헤매는 마지막 일주일을 함께 한 주인공은 이 죽음 앞에서 마침내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왜 착한 사람이 몹쓸 병에 걸려 일찍 세상을 떠야 하는 것일까? 요즘 세월호 침몰로 가슴 아픈 상황이라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게 된다.
이 밖에 이문구의 <관촌수필>에는 <관산추정>, <여유주서>, <월곡후야>의 세편이 더 소개된다. 이야기 하나하나마다 주된 인물 한명이 등장한다. 결국 어린 시절의 추억의 중심은 친구요 이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소개된 총 8편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공통점은 농촌사회의 동질성과 전통적인 삶의 미덕에 대한 작가의 그리움이다. 비록 가진 것 없이 힘들게 살아왔지만 거기에는 공동체 일원으로서 느끼는 삶의 맛과 멋, 등장인물들의 성실성이 숨겨져 있다. 어릴적 친구와 추억이 깃든 충남 대천의 관촌마을은 저자에게 결코 잊을 수 없는 마음의 고향일 수 밖에 없을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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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배우 고 이은주씨의 죽음으로 거의 일주일 동안 온 나라가 패닉 상태에 빠져 있었던 듯 합니다. 상당히 쇼킹한 소식이었기에, 자연스럽게 묻히기는 했지만 2월 22일 신문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도 실렸었답니다.
문인들은 22일 종로구 혜화동 한 식당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명천 이문구 기념사업회(위원장 김주영)'의 출범을 알렸다. 소설가 명천 이문구((鳴川 李文求·1941∼2003)의 2주기를 맞아 기념사업회가 발족돼 문학관 건립, 문학제 개최 등 다양한 기념사업을 벌여 나간다.
여러 분들은 어떤 소설가를 좋아하십니까? 누군가가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면, 저는 성석제씨와 김소진씨라고 대답을 합니다.
이문구 선생님의 경우 백과사전에도 나와 있는 소설가 중 한 분입니다. 우선은 '한국의 소설가'라는 점이구요... 주요 작품에는 오늘 소개해 드리려는 <관촌 수필>과 <우리 동네>가 있습니다.
이문구 선생님의 작품들의 가장 큰 특징은 우리말의 묘미를 매우 잘 살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아래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소개하겠지만, 농촌이나 농민들에 대한 묘사나 서술이 매우 사실적이면서도 질박해서 자연스럽게 작품에 빠져들게 합니다.
자,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이문구 선생님의 작품들 중 <관촌수필>과 <우리 동네>, <장곡이 고욤나무>를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관촌수필>은 1950년대부터 시작해서 1970년대까지의 농촌의 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소설'의 형식을 띄고는 있지만, 작품의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지은이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 <관촌 수필>은 작가의 고향인 '관촌'의 이야기입니다. <태백산맥>이나 <아리랑> 등의 대하 소설을 읽으면서 느끼는 갈증 중 하나는 '대하' 소설답게, 커다란 흐름은 매우 잘 잡고 있기는 하지만, 미시적이고 세부적인 것들까지는 일일이 다루고 있지 못한다는 아쉬움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 동네> 시리즈는 새마을운동 이후 '발전'되는 농민들과 농촌의 현실을 다루고 있습니다. 작가의 농촌에 대한 애착이나 진지함은 그의 또 다른 작품들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는데, 그 대표적 작품 중 하나로 저는 <장곡리 고욤나무>(1991)를 꼽고 싶습니다. 농활을 한 번 가보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잘 살아 보세'로 대표되는 새마을운동으로 농촌이 많이 살기 좋아졌다는 것이 교과서를 통해 배워온 지식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농촌의 현실을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장곡리 고욤나무>는 장곡리에 사는 이기출씨의 자살을 통해, '왜 장곡리의 이기출씨는 고욤 나무에 목을 메고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는가?'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즉, 한 농부의 자살을 통해서 농촌의 현실과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 역시 무겁고 진지하기 보다는 맛깔스럽고 순박한 충청도 사투리를 통해서 순박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여담입니다만... 책을 읽다 보면 몇 가지 새로운 사실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관촌수필>의 배경이 되는 '관촌'이라는 곳이 바다 구경하러 자주 가는 '대천 해수욕장'이 있는 부근이라는 곳이지요. 그리고 책을 읽다 보면 '대천 해수욕장'이 한국전쟁 당시 미군들에 의해 조성된 유흥지라는 것도 알 수 있게 됩니다.
<관촌수필>이 오래 동안 애착을 가지게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고향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고향은... 사랑하던 사람들의 기억이 있는 곳입니다. 우리에게 어떤 장소가 기억에 남는다면, 그건 그 장소를 공유한 누군가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무튼... 역사 읽기이든, 혹은 고향에 대한 향수 때문이든, 아니면 이문구 선생님을 기념하기 위해서이든, 아니면 고향이 충청도라서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가 그리웠기 때문이든... 이번 가을에는 이문구 선생님의 작품을 읽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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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촌수필이란 책은 내게 그리 크지는 않지만 작지도 않은 의미를 지니는 책이다. 우선 이 책은 내가 아주 좋아했던 선배가 선물해 준 책이라는 점. 그때까지는 이문구라는 작가와 관촌이라는 지방에 대해서 그렇게 잘 알고 있지는 못했었다. 그런데 몇 해가 지난 후에 알게된 것은 외할머니의 산소가 있는 그 조용한 고장이 관촌이라는 사실. 그때 나는 이 책을 다시 볼 수 있었다. 언제인가 TV에서도 방송했던 대로의 이 책은 우리 나라의 수십 년전 농촌의 소박한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때도 시청률은 그리 높지 않았다고 하지만 '전원일기'의 그것과는 다른 모습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향토적인 문학을 논하려면 이문구의 작품을 읽지 않고서는 안된다. 일단 그의 문체는 여간한 국어사전에는 실리지도 않는 등의 정말 우리말을 그대로 사용하며 그가 그리는 풍경은 비단 그 생활을 체험하지 않더라도 우리 나라 사람이면 이해할 수 있는 그런 내용이다. 그리고 그 중에 "우리 동네" 연작과 "관촌수필" 연작은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인상깊은구절] 시골을 다녀오되 성묘가 목적이기는 근년으로 드문 일이었다. 더욱이 양력 정초에 몸소 그런 예모를 찾고 스스로 치름은 낳고 첫 겪음이기도 했다. 물론 귀성 열차를 끊어 앉고부터 "숭헌... 뉘라 양력슬두 슬이라 이른다더냐, 상것들이나 왜놈 세력을 아는 벱여..." 세모가 되면 한두 군데서 들어오던 세찬을 놓고 으레껀 꾸중이시던 할아버지 말씀이 자주 되살아나 마음 하켠이 결리지 않은 바도 아니었지만, 시절이 이러매 신청 연휴를 빌미할 수 밖에 없음을 달리 어쩌랴 하며 견딘 거였다. 그러나 할아버지한테 결례(불효)를 저지르고 있다는 느낌을 나 자신에게까지 속일 수는 없었다. 아주 어려서부터 이렇게 되기까지, 우리 가문을 지킨 모든 선인 조상들의 심상은 오로지 단 한 분, 할아버지 그 분의 인상밖에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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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과지성사 : 이문구 : 관촌수필 * "잘들 사는 걸 보고 죽으야 옳을 텐디, 이대루 죽어서 미안하네…… 부디 잘들 살어……" 하며 움직여지지 않는 손으로 악수를 청했다. 나는 울었다. * 아아, 석고오오옹- * 읽는 분에게 참고가 될까 하여 대강 잡기하면, 내가 이 나이 먹도록 벗어나지 못하는 것의 하나가 이미 유년 시절부터 몸에 밴 조부의 훈육이기도 하지만, 이야기를 늘어놓기 전에 먼저 나부터 소개함이 바른 순서 같아 말머리를 삼은 것이 「일락서산」이다. 책 속에는 실화를 그대로 필기한 「화무십일」 같은 것도 있고, 「여요주서」「월곡후야」처럼 지금도 그 자리에 살고 있는 동창생이나 친척의 이야기도 있으며, 후제 내 자식이나 조카들에게 읽히기 위해 소설이니 문학이니를 떠나 눈물을 지어가며 쓴 고인에 대한 추도문 「공산토월」같은 글도 있다. 금년(1977) 연초 「공산토월」의 정희 엄마를 찾아갔다가 벌써 중학교 졸업반이 된 고인의 유복녀를 보고 나는 또 울었다. 대개 조부 다음으로 내게 영향을 끼친 이는 한마당에서 자란 동네 아이들이었다. 30년이나 세월한 지금은 반 이상이 죽었거나 행방불명이 되었지만 그들이야말로 여로모로 나를 키운 사람들이다. ...........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차례로 쓰자면 아직도 멀었지만, 그러나 이제는 그만 묻어두려고 한다. 묵은 이야기보다 앞일이 더 복잡하겠기 때문이다. 소식 모르는 옛친구들의 행운을 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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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충청도 사람이어서, 그리고 한국사람이어서 농촌생활을 이해할수 있는 소설입니다. 책속에 있는 이야기들을 완전하게 고스란히 느낄수는 없지만 어렴풋이 어렸을적 할머니네집의 시골생활의 추억이 돋아났어요. 주변의 자기 얘기만 하기에 바쁜 요즘 생활에 남의 얘기를 한가롭게 듣는듯한 기분이 들게 하는 관촌수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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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구의 소설 관촌수필을 처음알게 된 것은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를 통해서였다. 한 두사람이 아니라 여러사람이 이 소설을 한국문학의 백미로 소개하고 있었는데, 과연 어떤 책이길래 그럴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었다.
그 중 영화 감독 박찬욱의 추천은 아래와 같다. ----------------------------------------애착 가는 작가, 으뜸으로 꼽고 싶은 책![]() 한국 사람 중에는 ‘이문구’ 선생님을 좋아합니다. 특히 ‘관촌 수필’은 대학생시절에 읽으면서 감탄도 많이 하고 울기도 많이 울었던 작품이고요. 한국 외에서는 커트 보네거트를 좋아합니다. -------------------------------------------------------
그렇게 해서 읽게된 책이 바로 이 책 관촌수필이다.
책은 1977년쯤? 초판이 발간되었고, 작가의 고향인 관촌(보령)과 관련된 자신의 기억을 총 8편의 중단편 글로 몇년간 잡지같은 곳에 발표한 것을 한데 엮어 낸 것으로, 작가가 후기에 밝혔듯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소설이지만, 수필이라는 이름으로 출간한 것 같다.
목차는 아래와 같다. ---------------------------------- 1. 일락서산 -----------------------------------
이야기의 배경은 작가가 7살 정도일 때인 1947년 경부터인데, 양반의 법도를 지키고 살아가는 당시 90세 정도 되신 할아버지와 (약 1860년 경 출생으로 추정) 좌익운동을 하다가 할아보지 보다 먼저 목숨을 거둔 아버지와 두 형, 그리고 이로 인해 망해버린 집안. 이 모두를 겪어낸 작가의 눈으로 본 혼란했던 한국 현대사의 질곡들을 보고 느낄 수 있다.
그 한국 현대사의 질곡들이란. 조선사람들은 어떤식으로 살았으며 또 조선의 전통적 반상 구조가 어떻게 변화하고 해체되가는지, 광복 이후 미국과 소련의 군정에 따른 이념간의 대립이 그 전까지 그런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던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오는지, 미군정 체제로 인한 미군과 미국 물자의 유입이 사람들의 눈에 어떻게 비치는지, 6.25 사변과 그 전세에따른 남측과 북측의 통치 및 그때마다 휘몰아치는 피바람과 삶의 질곡등이다.
내가 부모님이나 할머니께 여쭙지 못했던 것들, 우리집이 양반집인지 상놈집인지... 할아버지나 그 이전 세대는 어떻게 살았는지... 사실 너무 어리기도 했고, 관심을 가질 생각도 못했던 것 같다. 아마 대다수의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그렇게 그냥 우리나라는 늘 지금처럼인줄 지레 생각하며 살아가는 줄로 안다.
우리는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왔는가, 지금 우리가 사는 모습은 우리네 할배 할매들이 살았던 모습들과 비슷할까? 소설을 펼치고 바로 느껴지는 점이 단절이다. 우선 언어에서부터 오는 단절. 얼마전 '유년의 뜰'포스트에서도 썼지만, 이책은 더 하다. 사전을 찾지 않고는 한페이지는 커녕 한 문장도 읽기 힘들정도로 우리 글이 낯설다.
예를들면 이런 식인데....... ------------------------------------ 우리가 쥐불놀이할 때 어레미처럼 몽글게 구멍 뚫은 깡통에 관솔불을 담아 돌리듯이 그것들이 불방망이로 상모를 돌릴 적이면, 웬 사내가 무디게 두런거리는 틈을 여투어 앳된 목통으로 짜글짜글 다툼질하는 소리도 자우룩한 골안개에 빠진 참새들마냥 멀리서 들려오곤 하였다 그것은 말할 나위 없이 신작로가의 송방 앞 마실꾼이나 서낭당 쪽의 도린곁에 외오 서 있던 왕소나무 밑의 마실마당이었다 ...... 그것은 그것들이 여름내 왕대뫼 자드락이나 갯가에 나와 불놀이를 하다가도, 기러기 그림자에 논두렁 콩노굿이 지고 오려논에 자마구가 일며부터는 아무도 모르게 간 곳 없이 사라지던 것을 보아 믿을 만한 말이라고 우길 따름이었다. --------------------------------------
더 슬픈것은, 사전을 찾을 때 그 단어가 사전에 없는 경우도 많지만, 사전에 있는 경우라도 사전에 (북한어)라고 표기 된 경우가 굉장히 많은 것이다.
앞서 말했다 시피 저자는 충청도 출신이며, 이야기의 배경도 충청도 관촌부락인데다가, 저자가 구사하는 아름다운 우리말과 충청도 방언을 연구한 '이문구 소설어 사전'이란 책까지 나와있는데(역시 이 말들이 다른사람들도 어렵긴 했나보다 이런 책까지 나와있는걸 보면),
이 아름다운 우리의 말들을 북한어라고 치부해버리다니... 사실 북한에서 새로 만든 신조어가 아닌 이상 북한어가 어디에 있는가? 다 우리말이지. 사전을 찾으면서도 우리의 이런 현실이 많이 서글펐다.
관촌수필은 우리의 뿌리를 공부하고 절절히 느낄수 있음과 동시에, 문학적으로 읽기에 굉장히 재미있다. 군데군데 묘사된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 대화를 읽을때 정말 바로 옆에서 내가 그 대화를 듣는듯 생생하고 즐거운데, 일부를 발췌하자면 이런것들이다.
----------------------------------- "그런디 복산 엄니는 보기두 용케 보네유. 워치기 넘 가진 두 눈 가지구 한꺼번에 여러 개를 챚어낸대유?" 옹점이는 그렇게 시작하여 끝을 보려고 했다. "새끼들허구 살라니 허는 노릇인디 요만두 못 해서야 죽이나 쒀 먹겄남." 묵집도 심심한데 잘됐다는 눈치였다. "복산 아버지는 워디가 워때서 꼼짝 않고 식구들만 부린데유?" "부리기만? 들들 볶지나 말었으면 활인적덕허겄어." "요새두 장 시난고난허남유?" "고록고록허구 오늘 니열 허는 게 벌써 원제버텀인디......" 하면서 묵집은 소매끝으로 눈자위를 찍었으나 옹점이는 못 본 보양이었다. "지긋지긋허구 징글징글혀서......" "속쎅여싸서 그런지 벌써 새치가 히끔거려유." "서방을 웬수삼은 년 팔자가 솎어 낸다구 검은 터럭 나겄남. 인저 다 틀린 신세여." "어채피 이리 된 것, 애들이 불쌍해서라두 맘 독허게 먹구 젼디시야지유." "젤루 친정 식구 뵈기 챙피시러 못살겄더먼. 울 엄니가 갈러서라 헐 때 진작 말을 들었으면 시방 이 고상은 안 헐 텐디......" "친정엄니두 연태 생전허신개뷰?" "나 땜이 다 늙었지." "참 워디서 주막 헌다구 했지유?" "울 엄니가 나를 웬수로 알어. 저이(남편) 죽기 전에는 에미라구 부르지두 말라는 게거던." "......" "밤이 되니 사내 구실을 허나, 낮이 되니 새끼들 애비 노릇을 허나...... 전생에 무슨 업으로 불구대천의 웬수를 만나 신세를 잡었는지. 이년두 복은 참 드럽게두 웂는 년이어." "돌어댕기는 근력 있으면 드러눠서두 근력을 쓸 텐디 워째서 밤에 남자 노릇을 못 헌데유?" "어매- 즈ㅐ는 츠녀가 헐 소리 안 헐 소리 웂이......" ----------------------------------- (마지막 문장 즈ㅐ 오타 아님)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아름다운 문장들.
또한, 우리네 조상눈에 비친 미군을 통해 요즈음 우리네 삶을 지배하고 있는 서구 문물및 그네들의 양식이 어떻게 우리에게 영향을 주기 시작했는지도 알 수 있는데 힘없이 식민지가 되고 광복후 군정을 겪으며 살아가는 우리네 조선사람들을 보면서 너무 슬펐다. 그들이 나쁘다는게 아니라, 사실 우리끼리도 물고 뜯고 싸우는데 쌩판 모르는 남한테 천사같은 마음만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히 무리가 아닐까 싶다. 사실 이러한 것은 그들이 나쁜것이 아니라, 우리가 남의 나라 특히 후진국에 갔을때의 행동들로 미루어 생각해 보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들이다. 특히 그 상황이 전쟁이거나할땐 그들도 여유가 없고 짜증나니 더하겠지. 우리가 베트남전에 참전했을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존중하고, 왜 가야하는지 알고 갔을까 생각해보면.......
----------------------------------- 나잇살이나 먹은 옹점이도 지나가는 기차 쳐다보는 것을 취미로 하고 있었다. 논밭에서 하던 일도 멈추고 연장 자루를 쥔 채 허리 세워 지나가는 열차에 넋이 빠지는 아낙네들은 지금도 기차 여행에서 흔히 보지만, 옹점이는 그 중에서도 유별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인저 온다!" 철로 위에 올려놓은 쇠붙이도 없으면서 진현인가 준배든가, 둘 중의 하나가 반색을 하며 말했다. 이윽고 시커멓고 우람한 화통이 서낭당 모퉁이로 돌아오며 언제나처럼 긴 허리를 뒤로 잡아빼기 시작하자, 우리들은 곧 손을 흔들어줄 채비를 하고 있었다. "어 어?" "얼라- 얼라-" 화통이 지나가자 우리들은 저마다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 그것은 우리가 늘 보던 기차가 아니었다. 울긋불긋 희끗뉘끗한 사람들로 미어지던 보통 기차가 아니었다. 국방색, 그리고 카키색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가득차 있었지만, 창문마다 내다보고 있던 군인들은 우리 국방군이 아니었다. 모두 뇌리끼해 보이는 미군들이었다. 그러나 우리들의 놀라움은 그래서 그랬던 것도 아니었다. 그 미군들은 우리에게 뭔가를 던져주며 히엿히엿하게 웃고 연방 고갯짓을 했는데, 그네들이 내던지던 것은 버린 것이 아니라 우리들더러 가져가라고 하는 시늉이었으며, 던져준 물건마다 먹는 것이어서도 아니었다. 그것들은 모두 한두 번씩 베어 먹은 것들이었는데, 그래서 그랬다기보다도 여러 가지로 놀라운 것들을 한눈으로 한꺼번에 보았기 때문이었다. 난리가 났나? 미군들이 읍내로 쳐들어오는 것인가? 곧 싸움이 벌어질 건가? 나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다리가 후들거려 어쩔 바를 몰라하고 있었다. "고, 록구, 시찌......" 옹점이는 열차 차량 수를 세어보고 있었다. "야, 옹젬아." 나는 옹점이 손목을 부여잡으며 떨리는 소리로 말했다. "......" 옹점이는 내 말에 대답할 겨를이 없었다. 어디서 어떻게 알고 모여들었는지, 마을 조무래기들이 쏟아져나와 미군들이 던져준 것들을 한아름씩 주워댔던 것이다. "어이구 저런...... 저런 그지떼......" 한참 만에야 옹점이는 그런 욕지거리를 내뱉았다. 아니, 아이들만 꾀어든 것도 아니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여들어 북새를 피우고 있었다. 두서너 사람이 엉겨붙어 서로 밀고 당기는 실랑이가 벌어진 곳도 있었다. 먼저 줍기 위해서, 주운 사람이 임자라 우기느라고, 그렇지만 먼저 발견한 사람이 주인이라고, 또는 반반씩 나누어 갖자고, 조금만 주면 맛이나 알고 말겠다고, 무엇인지 보게 만져만 보마고...... 남볼썽은 아예 아랑곳없이 온갖 악다구니를 다 떨며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주워온 것들을 아귀가 미어지게 하발대신하며 먹어대고 있었다. 모두가 하나같이 한두 번씩은 입이 갔던 것들이었다. 뿐만 아니라 녀석들은 어느새 빈 병 빈 깡통 등속도 한아름씩 모아놓고 있었다. "너는 뭣뭣 줏었데?" 옹점이가 물었다. "빠다, 빵, 끔, 미루꾸......" 창인이는 들고 있던 빵조각을 우겨넣고 찔룩거리며 대꾸했다. "개살구를 줏어먹었나 너는 왜 쇠똥 밟은 상판이냐?" "풰풰...... 되게 쓴디 뭔지 모르겄어. 풰풰......" 장식이는 세모난 구멍이 두 개 뚫린 깡통을 입에 기울이더니 연방 침만 뱉았다. 지금 생각하면 녀석은 한 모금쯤 남기고 던져준 맥주를 맛본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내가 가장 놀랐던 것은 그 다음에 목격한 일이었다. "저런...... 저러니......" 놀란 것은 옹점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다시 그 사나운 입을 열었다. "어매...... 그런 빌어를 먹다 급살맞어 뎌질 것들 봐......" 내가 보기에도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창인이는 이내 먹던 빵조각을 내팽개쳤지만, 손에는 누런 가랫덩이가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빵에다 가래침을 뱉아 던져주다니. "생각만 해두 끔찍스럽다. 너는 절대루 저러면 못쓴다. 맛 못 보던 게라구 저런 것 줏어먹으면 큰일날 중 알어." 그날 옹점이는 나에게 몇 번이나 신신당부를 했는지 모른다. "그것들이 조선 사람은 죄다 그지라구 여북이나 숭보면서 비웃었겠네. 개헌티두 그렇게는 안 던져주겄더라. 너는 누가 주더라두 받아먹지 말으야여." 그녀가 거듭거듭 되풀이 타이른 것은, 내가 아이들의 먹는 입을 쳐다보며 침을 삼켰기 때문이었다고 뒷날 들었다. "대관절 조선 사람이 뭘루 뵜글래 처먹던 것을 던져줬으까나......" 그녀는 몹시 분개하고 있었다. "너두 그런 거 줏어먹으면 서방님께 당장 일러바칠 텡께." 나는 그녀에게 굳게 약속했다. 그녀 말이 모두 옳게 여겨지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할아버지한테 배운 바에 충실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할아버지로부터 배운 것이면 무조건 순종하고 지키던 터였으니 낯선 것이라 하여 함부로 얻어먹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나는 그 후로도 아이들 틈에 섞여 놓되, 하루에 기차가 몇 번씩 지나가며 무엇을 떨어뜨리고 가든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것은 그 무렵의 내가 생각하기에도 여간 대견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이튿날부터 마을 사람들은 차 시간을 기다려 철로 양켠 둑에 줄을 서고 있었다. 미군들은 언제나처럼 먹던 것만을 던져주었고, 사람들은 서로 싸우며 주워먹었다. 나는 밭마당가에 나앉아 그러는 꼴들을 구경했다. 매일같이 일과처럼 지켜앉아 있었다. 미군들은 젊은 부인네나 처녀한테는 먹다 버리지 않고 새것으로 던져 주었다. 사이다병에 대가리가 터진 어른도 있었고, 깡통에 맞아 눈이 빠질 뻔한 노인도 있었다. 이틀 사흘 나흘, 철로가에 사람들이 없어진 것은 닷새나 지난 뒤였던가. 빵이나 버터, 초콜릿이며 비스킷에다 침을 발라서 던진다더라는 소문이 모를 사람 없도록 파다해진 뒤였으니까. 그와 함께 들려온 소문은 군두리에 해수욕장이 선다는 것이었다. 조개껍질 가루가 10리도 넘게 백사장을 이룬 물때 좋은 터를 영영 아주 그네들 손에 잃게 됐다던 거였다. 군두리는 미군들 천지가 되어 그네들을 상대로 닭 채소 과일 계란장사를 해서 한밑천 뭉쳐둔 사람도 있다고 하였다. 정부가 군두리 모래장벌을 미군에게 아주 떼어 팔아먹었다는 소문도 있었다. 별장은 또 얼마나 들어찼는지 가서 직접 본 사람이 아니고는 자세히 알 수 없다던 이야기도 있었다. 미군들은 한국인을 얼마나 무시하는지 우물물도 더럽다고 안 마신다는 말까지 들렸다. 따라서 그네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려고 덤빈 사람치고 망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도 했다. 한밑천 장만했단느 말도 말짱 헛소문이라던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인이 파는 물건은 더럽다는 이유로 거들떠보지도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계란 외에는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과일 채소 생선 닭 따위, 그들을 상대로 돈 좀 만져볼까 생각했던 사람은 한결같이 버렁이 빠졌으리라는 공론이었다. 우리집에 그런 말들을 귀동냥해들인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장에 다녀오는 옹점이었다. "흰됭이건 껌됭이건 순 숭악헌 상것들이던디유. 허연 노인네 앞이서 맞담배질을 예사 허구유, 끔을 쩍쩍 씹어쌋구 그러유." 그녀는 그때마다 흥분된 표정이었다. 그녀는 쉬지 않고 연달아 말했다. "월매나 드런 것들인지 가이(개)허구 밥을 하냥 처먹구유 잠두 하냥 잔대유." "오줌두 질바닥에서 함부루 내뻗지르구 누더래유. 조선 사람 뒷간은 드럽다구유." "말두 못 헐 작것들인개뷰. 여자만 보면 졑에 서방이 있거나 말거나 손구락을 이렇게 까불까불허메 시비시비 오케이 헌다는규." "아씨는 그것들을 한번두 안 보셨으니께 모르시지만유, 암만 봐두 즘생 같유. 그런디 그런 것들찌리두 뇌랑대가리는 뇌랑대가리찌리, 껌됭이는 껌됭이들찌리 따루 놀더라는디유." "졑이 가봉께유, 누린내가 워찌 독허게 쏘는지 똑 비 맞은 가이 냄새 같데유, 워떤 것은 염생이 내장 삶는 내 나는 것두 있구유." 그녀는 그외에도 별의별 잡된 소문까지 묻혀들였고, 밖에서는 사랑 마을꾼들이 또한 그녀에게 뒤질세라 귀동냥을 해들였다. 아무데서나 바지를 열고 히쭉거린다거나, 성기를 주물러주고 돈 받은 녀석도 있다는 등...... ----------------------
작가는 돌아가셨다.
나는 우리 사회의 단절과 변화, 서구 문물의 지배 및 지리하게 계속되는 이념논쟁과 요즈음 중장년 층 뿐 아니라 10대들까지도 전체주의적 사고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에 가슴 한켠이 먹먹한 서글픔을 느낀다.
우리는 우리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나를 비롯한 젊은 사람들이 공부 많이 해야한다. 남이 나와 다를 때 쉽게쉽게 판단하고 욕하고 싸잡아 적대시하기보다 더 신중히 공부하고 받아들이고 유연해져야 한다.
이 작품을 읽고 우리 문학의 아름다움과 온몸에 전해지는 전율을 느꼈다. 너무나 위대하고 귀한 작품이다. 일독을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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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부끄럽지만, 이 유명한 소설을 이제사 읽었다.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도 인연이 잘 닿지 않았다. 또 한가지 부끄러운 점은 책을 다 읽을때까지 수필인줄 알았다. ^^ 읽어가면서 수필이 소설 같네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
이 소설은 지은이의 고향에 대한 깊은 애정과 그 고향이 근대화에 의해 무너져 가는 모습을 아쉬움으로 그렸다. 비판적으로는 옛 봉건질서를 그리워하는것이라 비판할수 있지만, 오히려 그것보다는 근대화에의해 사라져가는 인간적인 것을 그리워하고 아쉬워하는 것으로 보는게 옳겠다.
이소설은 하나의 주제로 여러개의 단편 소설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단편은 다음과 같다.
<일락서산>은 그 묘사가 참 치밀하고 정감가고 구성지게 묘사해 놓았다. 그 감정이 고스란히 읽는이로 하여금 느끼게 한다. 누구나 한쪽 가슴에 묻고 있던 고향에 대한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나는 이 소설의 백미를 여기에서 찾겠다.
<공산토월>은 인간에 대한 절절한 감정이 묻어나는 글이다. 누군가와 항상 관계하고 나누고 싶어하지만, 그런 이를 찾을수 없는, 그리고 찾아서도 다가가지 못하는 현대인의 감정을 마구 휘저어 놓는다. 이성간의 사랑만이 아닌 이런 관계가 그리워진다.
이 두편 외에도 다른 편들도 다 좋다. 마지막 두편 <여요주서>, <월곡후야>는 조금 그 맛이 떨어지지만.
어째든 참 좋은 소설을 읽었다. 한 며칠은 훈훈한 마음으로 지내게 될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