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금 오래된 소설. 하지만 최근에야 읽었다. 冠村은 이 작가가 태어난 고향으로 자신의 어린 시절의 추억담들을 회고하는 형식의 연작으로 되어 있다. 예스럽고 수더분하고, 그러면서도 정취있는 분위기가 일품. 우리 말과 충청도 사투리를 이 작품만큼 맛깔스러우면서도 품위있게 재현한 작품을 본적 없는 것 같다. 태백 산맥에서의 전라도 사투리도 매력적이지만, 관촌이라는 이름이 나타내는 것 처럼 충청도 양반 문화 특유의 느릿하면서도 모나지 않은 어투는 생전 서울을 떠나 본적 없는 내게도 일종의 '향수'를 느끼게 할 정도. 이 책을 읽으면 퇴락하지만 고고한 구십구간 기와집이 떠오른다. 혹자는 이런 이미지에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작가의 여성관이 꼭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작가는 이 면에선 분명 보수적인 편이다.) 작품의 리얼리티는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면모가 충분. 자신의 고향에 바치는 한 작가의 최고의 찬사. |
| 아름다운 노래는 노랫말인 가사가 그 노래가 갖는 정취나 감정을 더욱 짙게 해주듯, 본 작품과 같은 수필류는 여느 문학 장르보다는 수필이라는 단어가 던지는 쟝르의 가벼움에도 결코 가볍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는, 일상적인 용어나 평범한 단어의 구사만으로 수필이라는 쟝르의 가벼움을 커버를 해서인지 결코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 수필만이 갖는 특질이 아닌가 생각된다. 특히, 자신의 사상이나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주는 작품에 있어서는 그런 생각이 더하다. 수필 작품이 우리의 어린 시절이나 아스라히 멀어져간 추억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형언할 수 없는 그리움과 아름다움이, 비 개인뒤 호수가 저편에 걸리는 무지개처럼 영롱하게 비취지며 삶에 찌든, 현실적 삶의 무게로 상처난 우리들의 가슴을 어루만져 주고 또 잃었던 꿈을 고향의 뒷동산 처럼 포근히 감싸준다. 이런 작품을 읽으며, 근대화와 잘 살아보겠다는 몸부림이 극에 달하며 우리의 한시대를 도전과 격정의 세월로 점철시켰던 60, 70년대에 소년기를 보냈던 나에게 작가만큼의 추억의 편린은 없지만은 나름대로의 추억은 있으며 회상케 해준다. 작품속에서 작가가 언급하고 주인공의 기억인 할아버지의 벽장속 조청을 훔쳐먹던 이야기, 엿치기, 염소에 물먹이기, 약장수와 광대 이야기와 나의 어린 시절 추억속에 자리 잡고 있는 엿장수 가락에 춤추기, 동네 골목에서 뽑기하기, 한 알의 눈깔사탕을 바라보며 어서 명절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기, 껌종이 주워 따먹기 놀이하던 시절이 작가의 그것만큼이나 나에게도 소중한 추억이었으며 내가 살고 있는, 내가 살아 있음을 되새기게 해 준 추억으로 꾸며져 있었다. 이 작품은 연작소설 형식을 띤 수필이면서 한 폭의 그림이라 말하고 싶다. 자기 인생에서 거쳐갔던 기억의 편린들을 수필 형식으로 써 내려간 작품으로, 어린 시절의 사실적 사건을 소재로 이야기를 전개시키고 있으나, 작품 속에 나타나고 있는 모든 이야기는 작가의 막내 동생 뻘쯤 되는 내가 작가와 이질적인 공간에서 살아왔음에도 공감이 가는 이유는 아마도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리라. 어린이(10세미만으로 추정됨)의 눈을 통해 기억속에 각인된 추억을 글자라는 도구를 통해 음악적 -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 으로 펼쳐지고 있다. 이것을 더욱 아름답게 승화시키는 것은 작품 전체에 넘쳐나고 있는 구수한 지방 사투리이다. 한 줄을 몇번이고 되풀이해서 읽어도 그맛이 새로웠으며 더욱이 그런 대목을 소리내어 읽을 경우 그 맛이란 겨울날 아랫목에서 군불을 받으며 익어가는 향긋한 청국장 냄새와도 같은 깊은 맛이 우러났으며, 속독의 버릇이 있는 나였지만 이 번 작품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게 한 작품은 처음이었다. 또 작품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어린시절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모든 사건을 축으로 해서 8개의 소제목으로 작품이 전개되고 있어 단순한 시각으로는 어린시절의 이야기로 치부될 수 있겠으나, 재미 이전에 우리 민족에게 씻지 못할 상흔인 6.25라는 역사적 사실을 축으로 인간 군상들이 어떻게 변해 가는 가를 보여주고 있다. 6.25전의 인간다운, 삶의 정취가 묻어나오는 이야기 중심에서 가장 인간답지 못하며 인간의 원초적 자극을 기본으로 수행된 6.25를 겪으면서 변화된 인간군상들의 이야기 를 하고 있다. 전쟁이 주는 인간성의 황폐화를 작품의 가장 핵심적인 복선으로 깔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말해서 6.25를 축으로 역사의 굴레바퀴에 얽힌 우리들의 인간 군상들이 어떻게 변해 가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얼토당토 않은 주장일지는 모르겠으나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이야기한 작품이라 말하고 싶다. 작가의 아버지는 6.25전 좌익사상에 심취하셨던 인물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6.25직전 돌아가시는 것으로 묘사되면서 아버지에 대한 묘사나 추억을 거의 들추지 않고 있으며 어린시절이나 커서도 작품속에서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는 것으로 보아 내 이야기는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 하겠다. 이 작품을 어찌보면 창작적인 요소가 짙게 묻어나는 작품이라 여겨지기도 하겠으나, 사건속에 수반되는 각종 민간요법, 놀이, 사건을 구성하는 우연성이 마치 한편의 영화같이 펼쳐지고 있어 작가의 어린시절 사실적인 작품이라 인정하고 싶다. 우리는 누구나 작가와 같은 어린시절 기억의 조각들을 반짝이는 밤하늘의 별들만큼 많이 가지고 있으나 그 기억들이 개인적인 차이에 따라 누구는 은하수처럼 항상 반짝이기도 하겠지만 누구에게는 스산한 가을 바람처럼 생각하기도 싫게도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좋았던 기억이든 싫었던 기억이든 그 모든 것을 가슴속에 묻어두지 않고 활자화하여 수필이라는 아름다운 문학적 도구를 통해 빛을 발하게 하고 있다. 누구나 자기의 과거나 추억을 이야기할 때면 즐겁고도 유쾌한 일이 있는 반면에 괴롭고도 기억속에 떠올리기에는 애처러운 사건이 한 두개씩은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시간이 지난 싯점에서 바라보면 모든것이 추억이요, 그리움이 될 수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나는 서울에서 자라 작품 세계와 같은 세상을 살아보지는 않았으나 보름날 개천 쥐잡기, 초인종 누르고 도망가기, 막다른 골목에 개 몰아넣고 연탄재 집어던지기, 사과 괘짝을 썰매로 비탈길에서 놀기, 만화방끼리 싸움붙이기(10원에 마음대로라고 이동네, 저동네 다니면서 주인끼리 싸움시키는 일),김장철에 시장에서 무우훔쳐먹기(우리집은 시장근처였다), 뒷산에 올라 쥐불놓다 산불내고 도망가기, 껌종이 주우러 다니기, 라면이 사먹고 싶어 공병을 만들어 팔아 라면을 사먹으려고 참기름 담은 소주병을 일부러 버리던일, 미원이 설탕인줄 알고 미원에 밥비벼 먹던일, 초가집을 기와집으로 고치는데 가서 일도와주다 되지게 혼난 일(어머니에게), 개천가 닭집에서 장작패주다 장작에 맞아 눈탱이가 밤탱이 된 일(장작을 패주면 닭 내장을 공짜로 주었는데 닭내장이 무지하게 맛있다.)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개구장이적 추억이 있다. 내가 문학적 소양이 갖추어지는 날 이 모든 것을 작가처럼 그려내고 싶다. 관촌수필이 아닌‘보문동 수필’을 말이다. |
| 소설이란 것의 근본은 이야기이고, 그 이야기 중에서도 사람들이 살아가던 이야기라는 것이 가장 큰 가치와 설득력을 갖기 마련이다. 이 소설은 "수필"이라는 제목처럼 작가 스스로가 어린시절을 보냈던 관촌마을에서의 기억들 - 특히 여러 평범한고도 독특한 사람들과의 - 을 연작 소설로 엮어낸 것이다. 시간의 흐름을 따른 것이 아니라 인물 한명 한명을 추억하며 써나간 그런 작품이다. 성석제의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를 읽으면서 뒤집어지며 웃었던 것과는 달리, 비슷한 배경과 소재를 갖고 썼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는 가슴이 따뜻해 지는 느낌과 미어지는 슬픔을 느꼈다. 한사람 한사람의 목숨이 작지 않기에, 그 삶이 작은 느낌이 아니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 페이지를 정신없이 넘기며 한명 한명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다소 읽기 어려운 만연체이고 주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잡히지 않은 "수필"같은 소설이기에 가끔 지루하기도 했지만 일단 이야기의 맥락이 잡히고 인물이 머리속에 그려지기 시작하면 이웃집 사랑에서 밤새워 이야기를 듣듯이 그렇게 읽을 수 있었다.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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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우리는 앞만 보며 서구화에 여념이 없이 달렸었다. 서구화가 근대화이며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는 신념으로 말이다. 그 덕분에 이제 우리는 풍족한 새활을 누리게 되었지만 되려 우리는우리 자신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조차 알 수 없는 무국적인이 되버렸다. 한국인을 한국인 답게 하는 그런 전통과 우리들만의 개성을 깡그리 잊어버리고 만 것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들의 전통을 보고서도 생소한 느낌과 마치 외국 풍물을 보는 듯이 신기한 눈길을 거둘 수가 없게 되었다. 오지의 시골에서조차도 슬레이트 지붕이 떡 하니 자리잡은 현실을 버려둔 채 말로만 한국을 외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과연 우리가 한국인이라고 외칠 수 있는지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다.
이런 현실에서 "관촌 수필"은 서구화의 광풍 속에서도 우뚝 솟아서 길을 잃고 헤매는 이에게 방향을 알려주는 거목과도 같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전통,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지도 못한 채 사라져가는 그런 전통이 얼마나 귀중하고 값질 수 있는지 이 소설은 바로 그것을 말하고 있다.
고색 창연한 이조인인 할아버지의 모습, 사회 운동에 투신한 아버지, 그리고 고난의 역사에 정점에 있었던 많은 사람들. 모진 역사를 이겨내고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는 평범한 사람들. 역사책에 이름 한자 올리지 못하는 민생들이지만 이들이야말로 우리의 모습이며 우리가 잊어가고 있는 전통의 모습이 아닐까?
그러기에 우리는 아직 전통을 잃은 것이 아니고 단지 잠시 잊고 있을 뿐이다. 이 "관촌 수필"의 추억의 인물들은 우리의 망각을 일깨워 주고 있는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물은 부드러우나 추운 겨울에 얼면 굳어져 부러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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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촌수필
흔히들 청소년 성장기는 인생에 있어서 가장 기초적인 기반을 닦고 자아를 형성해나가는 중요한 시기라고들 한다. 낙엽하나 굴러가는 것만 봐도 꺄르르 웃어대다가도 떨어져 사람들 발에 치이는 낙엽을 보며 눈물짓기도 하는 사춘기 소녀들처럼 감성이 넘쳐 흐르는 시기. 순수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도 불의에 대해선 왠지 모를 정의감에 불타오를 시기. 겉으로는 누구보다 더 크게 웃고 더 빨리 달리고 더 세게 부딪쳐보지만 마음의 상처도 가장 쉽게 입게되는 시기. 이러한 성장기를 작가 또한 겪었고 그 과정속에서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자신만의 자아 세계를 구축해나간다. 자신이 나고 자란 관촌마을에서의 행보는 단순한 추억거리를 넘어서 작가를 하나의 인격체로 성장시키는 것이다. ‘관촌수필’ 책의 처음부분에서부터 말했듯이 작가의 할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존경은 대단하다. 그에게 할아버지란 인자하시고 높은 존재였으며 동시에 굉장히 가까운 존재였다. 실제 책에서 그의 할아버지에 대한 묘사는 종종 등장한다. 하지만 반대로 작가는 ‘아버지’에 대해선 잘 언급하지 않는다. 오로지 간접적인 언급을 에피소드 곳곳에서 하는데 이러한 면이 아버지에 대해 멀은 존재같이 느끼지만 누구보다 아버지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글쓴이의 마음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머니에 대한 묘사 또한 직접적으로 이루어지기 보단 곳곳에서 성품이 따뜻하고 인자하신 모습을 그려냄으로써 간접적으로 표현한다. 이러한 글쓴이의 표현 방식이 에피소드 하나를 할애하여 부모님에 대해 너무 세부적으로 표현하는 것보다 오히려 더 깊고 아련한 마음을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부모님에 대한 감정과 더불어 글쓴이는 집에서 하녀로 일을 했던 옹점이, 친구 대복이, 복산이 등과 같이 자신의 삶의 큰 부분을 차지했던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한 인간의 삶이 어떻게 형성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 한다. 몇 개의 소설로 나누어져 있는 책의 내용 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았던 화는 1973년 2월 월간중앙지에 실렸던 ‘행운유수’이다. 이 소설에서는 글쓴이의 집에서 하녀로 일을 했던 옹점이의 대한 내용으로 이루어져있다. 많은 내용들 중에 특히 이 에피소드가 끌렸던 이유는 옹점이라는 인물 그 자체 때문이었다. 억척스럽게 일을 잘하고 남자다운 강인한 면이 있으면서도 정이 많은 옹점이는 나와 굉장히 반대되는 인물이다. 옹점이가 남의 집에 얹혀살면서도 기죽지 않고 맡은일을 꿋꿋히 나 해나가는면에서 굉장히 독립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마지막에는 자신이 그렇게 좋아하던 노래를 부르며 전국 곳곳을 떠돌아 다니는 유랑단원으로 사는 모습이 나오는 데 그 모습을 조금 충격적이고 슬프게 표현했던 글쓴이와는 달리 누구보다도 자유로워보이고 행복해보였다. 어쩌면 그러한 옹점이의 모습에서 내 자신이 동경해왔던 모습을 봤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특히 기억에 남는 모습 중 하나가 아이들 어른들 할 것없이 동네사람들 모두 미군이 먹다가 버린 음식들을 받아먹거나 주워먹을 때 글쓴이에게 조선인으로써 자긍심을 가지고 그런 것들은 입에 대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하는 모습이다. 당시 미군이라고 하면 굉장히 커보이고 모든 것이 마냥 좋게만 보였던 마을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 우리나라 국민으로써의 자부심을 지키도록 붙잡아준 것이 옹점이였다고 글쓴이는 책에서 밝히고 있다. 옹점이의 이런 모습은 오히려 지금 현대 여성의 모습과 굉장히 닮았다고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6.25사변 이후까지의 시대배경 속에서 펼쳐지는 관촌마을의 이야기들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사람들의 심리상태를 글쓴이의 경험을 확대시켜 보여주고 있다. 당시 농촌사회의 모습과 함께 전쟁과 근대화가 그들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를 잘 보여주는 관촌수필은 이제는 잃어버린 세계를 아련히 추억하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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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촌수필이라는 제목은 나와 같은 N세대의 흥미를 유도하기에는 분명 고리타분한 것이었다. 그러나 실로, 그 내용 속으로 들어간 나는 제목 따윈 금새 잊어버렸다. 삶의 진솔함이 묻어나는 소설집이라고나 할까. 특히,공산토월에서의 화자의 어린 시절 고향의 정경들하며 실명으로 소설가들을 소개한 내용은 나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다.
석공의 결혼식날, 으례 사람들이 신랑에게 가하는 장난을 어린화자가 석공에 대한 음모로 알고 밤새 그들을 감시하며 화장실까지도 따라 갔을 때에는 순진한 아이의 모습을 통해 정겨움을 느꼈으며 6.25로 인해 집안이 풍지박살이 나 남에 집에 얹혀 살 적에 개를 먹일 양으로 만든 밥풀하나 섞이지 않은 밀기울밥을 부엌 한 켠에서 그거라도 허기져 낼름 먹는 모습과 주인집에서 밤중에 몰래 저희들끼리 동치미를 쪼개어 먹는 모습이 교차되어 그려질 때는 안타까운 마음에 눈물이 날 뻔했었다.
관촌수필을 통해 나는 이문구라는 소설가를 처음으로 접하고 또한 그의 소설에 매료되었기에 필히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우리 것에 대한 작은 관심의 선상에서 이 책을 통해 토속적 언어의 아름다움을 듬뿍 느끼길 바라며 글을 접을까 한다. [인상깊은구절] 사모를 쓰고 가지색 단령을 입은 수즙음에 움츠려든 석공의 얼굴이 조무래기들한테 에워싸인 채 떼밀려오듯 하고 있었다.콧잔등엔 맑은 땀방울이 돋아 있었고 목화를 신어 무척 뒤퉁스런 걸음을 걷고 있었다.석공의 두 어깨 너머로 훨씬 치켜 올려진 채 뒤따라오던 청사초롱도 나는 보았다.이어 청사초롱 뒤로가마 지붕이 보이자 나도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가마 곁에 달라붙으며 각시 구경을 하려 했지만, 가마 앞에 오던 폐백물 든 사람과 감주단지를 든 부인네 그리고 함진아비 영감이 소리를 질러가며 말리고, 가마를 멘 두 교군꾼의 걸음이 가마 발을 제껴볼 틈도 없을 만큼 잽싸서 뜻을 이뤘던가는 기억이 없다. 그들과 기질이 상통할 뿐 아니라 여러모로 닮은 서울 시인으로는, 나무 때어 눌린 무쇠솥 숭늉 같은 박재삼 씨가 있다.누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한잔헐까요?" 하고 물으면, 고은 씨나 이호철 씨 못잖은 미소를 보이며, "안 헐 수 있습니까?" 하고 입술부터 핥는 이 낮술의 대가는, 설령 박성룡 씨가 없는 자리더라도 반드시 한가락 뽑아야 배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