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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게 배우며 살아가는 꿈 (꿈의 학교, 헬레네 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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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게 배우며 살아가는 꿈 [사랑하는 배움책 11] 에냐 리겔, 《꿈의 학교, 헬레네 랑에》(착한책가게,2012)   - 책이름 : 꿈의 학교, 헬레네 랑에- 글 : 에냐 리겔- 옮긴이 : 송순재- 펴낸곳 : 착한책가게 (2012.2.20.)- 책값 : 15000원     ㄱ. 교사는 배우는 사람   2012년 가을, 전라남도 고흥군 주민들은 고흥군에 화력발전소가 못 들어오게 막았습니다. 전라남도 해남군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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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답게 배우며 살아가는 꿈
 [사랑하는 배움책 11] 에냐 리겔, 《꿈의 학교, 헬레네 랑에》(착한책가게,2012)

 


- 책이름 : 꿈의 학교, 헬레네 랑에
- 글 : 에냐 리겔
- 옮긴이 : 송순재
- 펴낸곳 : 착한책가게 (2012.2.20.)
- 책값 : 15000원

 


  ㄱ. 교사는 배우는 사람


  2012년 가을, 전라남도 고흥군 주민들은 고흥군에 화력발전소가 못 들어오게 막았습니다. 전라남도 해남군 주민들도 해남군에 화력발전소가 못 들어오게 막았어요. 몇 해 앞서는, 고흥군과 해남군에 핵발전소를 끌어들이려고 여러 권력자와 기업자가 똘똘 뭉쳤지만, 이때에도 주민들이 막아내어 고흥과 해남이 정갈한 시골로 이어가도록 지켰습니다.


  그 어느 곳도 아닌 시골이기에, 시골에 발전소 하나 들어서는 일이란 아주 끔찍합니다. 사람들 먹을 곡식과 열매와 푸성귀를 거두는 들이요, 사람들 먹을 물고기와 김과 파래와 미역과 매생이를 얻는 바다입니다. 들판 한쪽에 공장이 있으면, 곡식이 어떻게 될까요. 양식장이나 갯벌 곁에 발전소가 있으면, 양식장이나 갯벌은 어떻게 될까요.


  돼지우리나 소우리 곁에 공항이 있으면, 돼지와 소는 시끄러워서 죽습니다. 사람도 비행기 끔찍한 소리에 귀가 찢어지거나 머리가 어지럽습니다. 그러나, 자꾸자꾸 커지는 도시인 탓에 공항을 새로 짓고, 고속도로와 고속철도를 자꾸 놓으며, 공장은 끝없이 늘어납니다.


  무엇이 삶일까요. 어떻게 살아갈 때에 즐거울까요. 사람으로 살아가는 보람은 무엇일까요. 학교는 사람들한테 무엇을 가르치는가요. 학교는 아이와 어른한테 무엇을 보여주는가요. 학교는 이 나라 이 땅 이 마을에 어떤 구실을 하는가요.


.. 아이들이 집에서 읽기와 쓰기가 정말 중요하고 쓸모있으며 심지어 달콤한 것이라는 사실을 경험하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스스로 배우려 한다 … ‘읽기’와 ‘쓰기’는 죽은 사회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 끊임없이 정확하게 비판적으로 ‘읽는 것’을 배운 사람은 혼잡스러운 텔레비전 영상이나 심지어 이른바 ‘진실’을 말한다고 하는 인쇄 매체를 안심하고 대할 수 있다 … 학생들의 사회적 책임감을 키우는 교육을 행하고 있는 학교가 너무도 적다 ..  (19, 30, 77쪽)


  2013년에 접어들면서, 중앙정부는 이 나라에 새 화력발전소를 열여덟 곳 짓겠다고 외칩니다. 전기가 모자라 화력발전소가 더 있어야 한다고 밝힙니다. 핵발전소는 너무 아슬아슬하니까 더 안 지을 듯하고, 핵발전소만큼 아슬아슬하지 않다고 하면서 화력발전소를 짓는다고 합니다.


  화력발전소가 들어선다는 곳을 들여다보면, 일찌감치 다른 화력발전소가 깃든 곳이요, 또는 ‘발전소 지으며 시나 군에 준다는 돈’을 노리는 곳입니다. 삶에 따라 어떤 일을 하지 않고, 돈에 따라 어떤 일을 꾀한달까요. 더군다나, 발전소에서 나오는 매연과 공해와 전자파를 끊거나 줄일 길이 없는데, 화력발전소를 자꾸 더 지으려는 움직임을 제대로 깨닫는 사람이 얼마 안 보입니다.


  이 나라에 왜 전기가 모자랄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을 찾기 어렵습니다. 도시는 자꾸 커지며 전기를 더 쓰려고 합니다. 시골은 더 작아지며 전기 쓸 일이 자꾸 줄어듭니다. 전기가 모자라다면 도시에서 전기가 모자라지만, 도시 한복판에 발전소를 지어 송전탑 갯수라도 줄이려는 움직임조차 없습니다. 전기가 모자란 까닭을 캐내어, 전기를 안 쓰거나 덜 쓰려는 움직임마저 없습니다. 무한동력 에너지를 빚어서 공해도 매연도 없이, 아름답고 알차게 전기를 쓰려는 움직임 또한 없습니다.


  화력발전소 사업은 어마어마한 돈덩이 사업입니다. 건설회사는 건설회사대로 발전소를 짓고 전기를 (중앙정부한테) 팔면서 돈덩이를 거머쥐고, 중앙정부는 중앙정부대로 세금을 거두고 전기를 (사람들한테) 팔면서 돈덩이를 거머쥐는 사업입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얼거리를 교과서에서는 안 다룹니다. 제도권교육 울타리 안쪽에서는 발전소 사업 밑뿌리를 캐거나 밝히지 않습니다. 교과서로서는 ‘발전소 반대’를 ‘지역 이기주의’로 몰아세울 뿐이요, 전기와 도시와 산업 문제를 슬기롭게 바라보도록 이끌지 않습니다.


.. 단지 말로 듣기만 할 때보다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이 훨씬 더 기억에 오래 남는다는 사실은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그런데 왜 유독 학교 수업에서는 무언가를 실제로 경험하게 하기를 마다하는가 … 수업시간에 말을 해도 되는 것, 나아가 말을 해야만 하는 것은 사실 당연한 일이다. 침묵해야 하는 상황이야말로 오히려 낯설고 이상한 것이다 … 어떤 학교에서는 음악을 모두 함께 즐기고 우리의 영혼을 쓰다듬어 주는 좋은 것으로 여긴다. 그런가 하면 어떤 학교에서는 그저 배운 것을 누가 몇 주 후에 더 잘 기억하고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어떻게 점수를 매길 것인가에 온 정신을 쏟기도 한다 ..  (43, 48, 62∼63쪽)


  오늘날 학교교육에서 교사는 교과서 지식을 한 해에 걸쳐 아이들한테 물려주는 구실을 맡습니다. 오늘날 학교교육에서 학생은 교과서 지식을 한 해에 걸쳐 교사한테서 물려받는 몫을 맡습니다. 교과서에서 다루는 지식을 제대로 외워야 시험문제를 잘 풉니다. 시험문제를 잘 풀어야 대학입시에서 더 높은 점수를 얻습니다. 대학입시에서 더 높은 점수를 얻어야, 더 등급 높은 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더 등급 높은 대학교에 들어가야 더 연봉 높은 공공기관이나 큰회사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국어국문학과를 나오거나 문예창작학과를 나와야 시를 쓰거나 소설을 쓰거나 문학을 할 수 있지 않습니다. 사진학과를 나와야 사진을 찍을 수 있지 않습니다. 미술대학을 나와야 그림을 그리거나 도자기를 구울 수 있지 않습니다.


  삶을 배우고 싶은 사람은 삶을 배우면 됩니다. 시를 쓰고 싶은 사람은 시를 쓰면 됩니다. 그림을 그리고 싶은 사람은 그림을 그리면 될 테지요. 시를 쓰는 자격증은 없어요. 그림을 그리는 졸업장은 없어요.


  그러면, 학교란 무엇일까요. 학교는 왜 있어야 할까요. 아이들은 학교를 왜 다녀야 하나요. 어른들은 왜 교사가 되어 아이들한테 무엇을 가르쳐야 하나요.


  아이를 낳아 돌보는 길을 가르치는 학교는 없습니다. 아이를 어떻게 사랑하고 보살펴야 즐거운가 하는 삶을 가르치는 교사는 없습니다. 나무를 아끼는 사랑을 가르치는 교과서는 없습니다. 풀을 어루만지고 멧새와 노래를 즐기는 삶을 이야기하는 교사는 없어요.


  교과서에는 개구리 울음소리가 안 실립니다. 교과서에는 바람이 나뭇잎 간질이는 소리가 안 실립니다. 교과서에는 훤한 달밤에 빛나는 구름 이야기가 안 실립니다. 교과서에는 함박눈 펑펑 내리며 고요한 시골마을 한켠에서 붉은 꽃망울 어여쁜 동백꽃 이야기가 안 실립니다.


  교과서에는 젖을 어떻게 물리는가 하는 몸가짐, 젖을 아기한테 물리는 기쁨, 젖을 먹는 아기가 얼마나 좋아하면서 무럭무럭 자라는가 하는 이야기도 안 실립니다. 교과서에는 제비가 찾아드는 시골집 처마 밑 이야기 또한 안 실립니다. 교과서에는 씨앗을 갈무리해서 이듬해에 밝은 웃음빛 지으며 뿌리는 이야기 또한 안 실려요.


.. 우리의 경험에 따르면 예술은 폭력에 대응할 수 있는 좋은 예방책이다 … 사람들은 아름답고 정돈된, 정성껏 만들어진 공간에 있을 때는 황량하고 볼품없고 애정 없이 대충 만들어진 공간에서와는 다르게 행동하는 것 같다 … 많은 학교 공간은 여전히 사람이 사는 공간 같지 않고 그저 어떤 기관 같은 느낌을 줄 따름이며 … 아이들이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 아이들이 교실에 앉아 그저 인간애에 대해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자신의 손으로 어르신들을 씻겨 드리고 아기의 기저귀를 갈아 주고 아픈 친구를 병원에 데려가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러한 경험들이야말로 수업을 몇 시간 빼먹어도 좋을 만큼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도 남는 일이다 ..  (88, 89, 95쪽)


  교사가 되려면 대학교를 나와야 한답니다. 교육대학교이든지 사범대학이든지 마치면서 교사자격증을 거머쥐어야 교사가 될 수 있다고 해요. 그러면, 대학교에서는 아이들한테 무엇을 가르쳐 교사가 되도록 키우는가요. 교사자격증 따도록 하는 시험제도는 어떤 이야기를 물어 보면서 교사가 되도록 북돋우는가요. 아이들 앞에 서는 교사는 교사로서 어떤 넋·마음·얼·사랑을 품으며 활짝 웃는 어른인가요. 교사가 되고 난 다음에는 교사 스스로 무엇을 꾸준하게 익히거나 배우면서 이녁 삶을 아름답게 갈고닦을는지요.


.. 청소년들은 어려운 과제를 해결할 만한 충분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아이들을 끝없이 보호하고 지키려고 하면서 사실은 아이들의 인생에 우리가 책임지지 못할 짐을 지워 주며 방관하고 있다 … 하루에 단어 스무 개 외우고 공식 몇 개 외우고 묻는 말에 대답하는 일은 청소년들의 입장에서조차 아무것도 아니다. 만일 이러한 것들이 학교가 아이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전부라면 아이들이 학교에서 미쳐 가는 것을 보고 놀랄 까닭이 전혀 없다 … 학교 스스로가 수없는 규범과 규칙에 얽매여서 스스로의 자유를 차단하고 이해할 수 없는 교육의 길을 택하는 현실에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상상력과 도전정신 그리고 학교운영자들의 연대 없이 이 같은 학교구조가 변화하기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  (100∼101, 107쪽)


  흔히, 교사는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일컫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교사가 가르치는 사람이기만 할 때에는 참교사하고는 동떨어지리라 느껴요. 교사는 가르치는 사람이기 앞서 배우는 사람이기에 교사라고 느껴요. 아이들을 가르친대서 교사가 아니라, 삶을 먼저 즐겁게 배운 다음, 이녁 스스로 즐겁게 배운 삶을 아이들한테 너그러이 나눌 수 있기에 교사로구나 싶어요. 아이들한테 온갖 지식 베푼대서 교사가 아니라, 사랑을 늘 흐드러지게 빛내면서, 이녁 스스로 빛내는 사랑을 아이들과 어깨동무하면서 새롭게 꽃피울 때에 바야흐로 교사로구나 싶습니다.


  배우는 사람이기에 가르칩니다. 배울 줄 아는 사람이기에 가르칠 줄 압니다. 배우는 마음이기에 가르치는 마음이 돼요. 배우는 즐거움을 누리기에 가르치는 즐거움을 나눠요.

  배우는 사람은, 지식을 머리에 집어넣지 않습니다. 배우는 사람은, 배운 모두를 삶으로 녹입니다. 배우는 사람은, 늘 새 삶으로 거듭나면서 날마다 새 이야기를 길어올립니다.


  똑같은 지식을 똑같은 틀에 맞추어 똑같은 목소리로 똑같은 모습을 한 아이들한테 똑같은 시간에 맞추어 줄줄 외는 사람은 교사가 아니겠지요. 새로운 이야기를 새로운 웃음으로 들려주면서, 새로운 얼굴빛을 짓는 아이들하고 언제나 새로운 노래를 부르듯 어깨동무하면서 새로운 삶을 북돋우는 새로운 사랑을 속삭일 때에 비로소 교사라 하겠지요.

 


  ㄴ. 학생은 가르치는 사람


  배우는 사람이기에 학생이라고 느끼지 않아요. 배운 대서 학생이 아니라, 무엇을 배우고 싶은가를 말할 줄 알기에 학생이라고 느껴요. 곧, 학생은 가르치는 사람이에요. 학생한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어른한테 ‘당신이 나한테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가’를 가르치는 사람이 학생이로구나 싶어요. 그러니까, 교사는 늘 배우는 사람이지요. 학생이 무슨 이야기를 듣고 싶은가 하는 대목은 늘 배워야 하니까 교사는 늘 배울밖에 없어요. 학생은 늘 가르칠밖에 없고요.


.. 교사에게 모자란 지식을 습득하고 새로운 과목을 연구하고자 하는 호기심과 동기부여만 있다면, 이는 학생들에게 굉장한 이득이 되어 돌아온다 … 아이가 가진 능력에 대해 학교는 그저 잘해야 ‘기특한 재능’ 정도로 여길 뿐 졸업성적을 평가할 때 이런 것은 하나도 반영되지 않는다 … 학교는 학과목과 직접 관련되지 않은 학생들의 재능을 정식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  (144, 167쪽)


  아이들은 어른들을 끊임없이 가르칩니다. 아이들은 어른들한테 사랑을 끊임없이 가르칩니다. 아이들은 어른들한테 꿈을 끊임없이 가르칩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어떤 밥을 지어 아이들한테 차려 주어야 할는지 가르칩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어떤 옷을 지어 아이들한테 입혀야 할는지 가르칩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어떤 집을 지어 아이들과 함게 살아야 할는지 가르칩니다.


  어버이는 아이를 낳으며 비로소 어른이 된다고 하는 말을 까닭이 있어요. 아이를 낳으면, 아이가 늘 곁에 있기에, 이 아이가 어버이를 늘 새롭게 가르쳐요. 어버이가 된 사람은 아기가 옹알거리는 목소리와 몸짓을 알아들어야 합니다. 어버이는 자꾸자꾸 배워야 합니다. 아기 똥오줌 흥건한 옷가지를 빨래하면서 빨래를 새로 배웁니다. 아기 똥오줌을 가리게 하면서, 아기한테 젖과 죽과 미음과 밥을 먹이면서, 아기한테 말을 가르치면서, 아기한테 마을과 이웃과 숲과 새와 짐승을 가르치면서, 아기한테 풀과 나무와 들과 바다를 가르치면서, 어버이 된 사람은 이녁 스스로 온누리를 모두 새롭게 바라보고 새롭게 깨달으며 새롭게 배웁니다. 아이를 낳는 어버이는 아이와 언제나 함께 지내면서 언제나 새로운 삶을 배웁니다.


  교사는 어버이와 같아요. 어버이는 갓 태어난 아기들을 한결같이 보살피면서 삶과 사랑과 꿈을 배운다면, 교사는 제법 자란 아이들을 하루 내내 보살피면서 삶과 사랑과 꿈을 배웁니다. 지식을 가르칠 때는 교사가 아니라 독재자나 폭압자나 권력자 굴레에 갇힙니다. 아이들한테서 삶과 사랑과 꿈을 배울 때에, 비로소 교사가 됩니다. 교과서 진도를 나가며 대학입시에 걸맞을 학생으로 길들일 때에는 교사가 아니라 바보나 멍청이나 얼간이가 됩니다. 아니, 노예가 되겠지요. 기계처럼 되고 말겠지요. 아이들하고 삶과 사랑과 꿈을 나누는 길동무가 될 때에, 비로소 교사가 돼요.


.. 학생들은 이 시간(수다 떨기)을 통하여 자신이 단지 영어나 수학을 배우는 학생으로서만 가치 있는 존재가 아니며, 하나의 인간으로서 하는 모든 경험이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 학교가 그곳에 속한 이들이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공부만 하기 위해 임의로 모여 있는 곳이어서는 안 된다 … 학생들이 학교라는 곳에 대해 “나는 여기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있고 싶어서’ 있는다.” 하고 느끼기를 바란다 ..  (195, 208, 230쪽)


  독일사람 에냐 리겔 님이 쓰고, 한국사람 송순재 님이 옮긴 《꿈의 학교, 헬레네 랑에》(착한책가게,2012)라고 하는 책은 ‘교사’와 ‘학생’과 ‘학교’와 ‘마을’이 무엇인가 하는 대목을 차근차근 짚습니다. ‘가르침’과 ‘배움’과 ‘삶’과 ‘사랑’이 무엇인가 하는 대목을 조곤조곤 다룹니다.


  교사가 할 몫은 배움이요 학생이 할 몫은 가르침이라면, 학교가 할 몫은 교사와 학생이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이웃으로 만날 수 있는 쉼터요 숲이 될 일입니다.


  학교는 쉼터가 되어야 합니다. 마음을 쉬고 생각을 쉬며 몸을 쉬는 터전이 되어야 합니다. 학교는 숲이 되어야 합니다. 마음을 살찌우고 생각을 북돋우며 몸을 일으키는 숲이 되어야 합니다.


  쉼터에서 쉬면서 일을 합니다. 쉼터에서 쉬면서 즐겁게 뛰놉니다. 쉼터에서 쉬면서 서로 까르르 웃고 떠듭니다. 쉼터에서 쉬면서 노래와 춤과 문학과 예술을 누립니다. 쉼터에서 쉬면서 사랑을 속삭이고 꿈을 키웁니다.


  숲에서 하늘바라기를 합니다. 숲에서 나무바라기를 합니다. 숲에서 새바라기를 합니다. 숲에서 벌레바라기를 합니다. 숲에서 구름과 바람과 흙과 풀과 짐승과 냇물과 어우러집니다.


.. 아이 방에 텔레비전을 들여놓는 것에 아무런 문제의식도 가지지 않은 부모라면 아이를 우리 학교에 등록시키지 말아 달라는 것을 하나의 기본원칙으로 세웠다. 자기 아이에게 어떤 능력을 키워 주고 이를 계발하도록 이끌어 줄지는 부모가 직접 결정할 문제라 생각했다 … 그나마 건강한 식생활에 대한 의식을 갖고 있는 학부모도 드물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부모들 사이에서는 아이에게 군것질을 못 하게 했을 때 생길 난리법석을 감당하느니 하루 종일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젤리와 크림과자가 우리 아이들을 행복하고 건강하게 만들어 준다는 광고를 믿어 버리고 말자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  (263, 265쪽)


  도시에 짓는 학교를 보면 어디에서나 감옥이 떠오릅니다. 똑같은 칸, 똑같은 골마루, 똑같은 차림새, 똑같은 말투, 똑같은 시간표, 똑같은 목소리, 똑같은 몸가짐, 똑같은 신분과 계급과 서열, …… 오늘날 학교에서는 폭력과 따돌림이 춤출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이 없는 학교인걸요. 꿈이 없는 학교인데요. 삶이 없는 학교에 폭력과 따돌림이 감돌밖에요.


  학교에는 칸이 있을 까닭이 없습니다. 학교는 건물이 될 까닭이 없습니다. 학교는 운동장이 따로 없어도 됩니다. 학교는 풀과 나무가 마음껏 자라는 숲이면 되고, 냇물이 흐르고 골짜기가 이루어지는 멧자락이면 됩니다. 밥을 얻고 옷을 기우며 집을 짓는 삶터가 학교입니다. 이야기보따리를 꾸리고, 이야기꽃을 피우며, 이야기샘이 흐르는 데가 학교입니다.


  학교라고 하는 시설이 없던 지난날, 사람들은 누구나 모든 풀이름과 나무이름을 아이들한테 물려주었습니다. 학교라고 하는 제도가 없던 지난날, 사람들은 누구나 집짓기·옷짓기·밥짓기를 아이들한테 물려주었습니다. 학교라고 하는 교육이나 복지가 없던 지난날, 사람들은 누구나 사랑이랑 꿈이랑 믿음을 아이들한테 물려주었습니다. 학교라고 하는 울타리가 없던 지난날, 사람들은 누구나 춤과 노래와 이야기를 아이들한테 물려주었습니다.


  이제 학교가 서면서 아이도 어른도 풀이름과 나무이름을 하나도 모릅니다. 이제 학교가 생기면서 사람들은 집도 옷도 밥도 지을 줄 모릅니다. 이제 학교가 나타나면서 사람들은 사랑도 꿈도 믿음도 속삭이지 않습니다. 이제 학교가 퍼지면서 사람들은 춤도 노래도 이야기도 스스로 빚지 않습니다.


  아름답게 배우며 살아갈 때에 교육입니다. 아름답게 가르치며 어깨동무할 때에 교육입니다. 교육은 아주 쉬워요. 삶이면 교육이에요. 삶을 나누기에 교육이고, 삶을 즐기기에 교육입니다. 삶이 아니라면 모두 거짓입니다. 삶하고 동떨어지면 모두 껍데기입니다. 삶을 말할 때에 교육을 말할 수 있고, 삶을 나눌 때에 참배움이 이루어집니다. 4346.1.25.쇠.ㅎㄲㅅㄱ

 

(최종규 . 2013)

 

h*******e 2013.01.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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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는 자기 아이를 전혀 다른 눈으로 바라본다.

 

물 위에 떠다니는 교실을 상상해 본적이 있는가? 3주간 물이란 주제를 가지고 수업을 하는 학교가 헬레네 랑에다. 모두가 똑같이 따라야 하는 일관적인 계획하에 모두가 똑같은 교육육 받기 때문에 물 위에 떠나니는 교실을 받아들이기가 힘 들 것이다. 교사의 역할은 학생들의 관심사를 파악하고 그에 따라 수업을 진행하기 위해 필요한 받침돌, 교사는 그저 가르치는 사람이 아닌, 배움을 위한 조언자의 역할, 학생들을 수준별로 분반하지 않고,학생들의 다양한 수준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종합학교, 헬레네 랑에는 우리 교육의 현실을 냉정하게 갈 길을 제시해준다.

 

학교는 학생이 무언가를 혼자 하도록 내버려두기를 꺼린다. 행여 그르칠까 두 배, 세 배의 안전장치를 마련해 학생을 보호하고자 한다. 홀로 낯선 환경 가운데 서는 경험을 절대적으로 할 수 없다. 초등학교야 그렇다 치고  중학교에 접어들면서 상상력을 서서히 단절되고 고등학생이 될 수록 학교에서 갇힌 한을 풀듯이 탈 학교화를 하교시간에 맞추어 탈 사회화에 맞춰 일탈한다. 우리 선생님과 학부모 어른들은 소위 이들 학생들은 불량청소년,가정교육의 잘못됐다느니, 가시 돋힌 눈으로 삐둘어지게 방관한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은 자연스러움 그 자체다. 똑같은 제도 똑같은 교육방식, 똑같은 통제속에서 억눌린 자아를 발산할 뿐이다.

 

학교에서 싸움이나 논쟁이 붙었을 때, 상황을 조절하고 해결해야할 몫이 교사의 간섭이 아닌 아이들 스스로 해결하고, 한 달에 2주정도는 어른들이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학교, 바깥세상에서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는 것을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학교, 다양한 학생들이 한 반에서 함께 공부하며 기본과정과 심화과정 두 단계로 분리하여 학급회의에서 결정되어 교사는 난이도가 다른  두 종류의 시험문제를 만든다. 다른 아이들에게 인정을 받거나 서로 도와가며 공부함으로써 얻게되는 만족감과 성취감등 다양한 형태의 보상이 점수로 받는 성적보다 값지다는 인식을 아이들에게 심어준다.

 

우리 학교는 어떤가? 앞으로 자신의 인생을  잘 살아나가기위해 필요한 능력을 계발하고 중요한 것을 깨쳐가는 곳이 아니라,끊임없이 시험을 그 업으로 삼는 기관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열린학습 시스템, 아이들은 자기들을 단계별로 이끌어주는 사람이나 다른 이의 도움 없이 많은 부분을 스스로 수행해봐야 한다. 교사는 학생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때 교과서에 나와 있는 것과 전혀 다른 방법을 택하더라도 이를 감당할 수 있어햐 한다. 또 어떤 아이는 학습 속도가 다른 아이들보다 눈에 띄게 느리다. 이런 경우 아이들이 시간을 낭비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누가 증명하겠는가? 중학생이되면서 부터 수행평가라는 것이 도입된다. 학교는 교육부지시대로 일관되게 모든 학생들에게 똑같은 수행평가를 실시한다. 대다수의 아이들은 그 수행을 인텃창에서 그대로 복사하거나 빼껴서 과제물을 제출한다.

 

아이들은 특정과목의 범주를 넘어서는 질문이 초등학교때부터 닫히기 시작한다. 새로운 수업에 대한 새로운 교육방식은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하지만 교육개정이 있을때 마다 특별한게 없다. 물론 교과부에서 제시하는 기본적으로 아이들에게 필요한 지식을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학습도 꼭 필요하다. 아이들은 모든 걸 스스로 이해하고 맥락을 알아내고 자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추론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자기가 배운 내용을 실제 경험과 연관시키지 못한다면 배움은 큰 의미가 없다. 그건 그저 주입에 지나지 않는다. 시험을 보려고 얻은 지식은 금방 잊혀지고 만다.

 

학교는 모든 학생과 나이대를 아우를 만한 유일한 배움의 장소가 아니다. 어쩌면 열네 살 청소년들 가운데 상당수는 아예 일 년 동안 학교에 다니지 않는 게 더 유익할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받는 건 그만하고 어른이 되고 싶어하는 청소년들이 원하는 것은 바로 현실의 삶이다. 이러한 아이들은 배를 타고 나가 세상을 보고,절벽에 매달려 붙잡을 곳을 찾고,자신을 필요로 하는 상황을 경험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이 시기의 청소년들은 생존훈련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들은 선생님의 지시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스스로 결정하여 처한 상황에서 닥치게 되는 실제 문제들을 헤쳐나가기를 원한다. 이러한 아이들에게 제 갈 길을 가게 해주자. 그리고 스스로 삶의 문제와 대면하도록 놓아두자! 그러지 않으면 아이들은 결코 자기 발로 서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 이렇게 해야만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진짜라고 느낄 만한 삶의 장벽 앞에서 설 수 있다. 어쩌면 아이들은 그 앞에서 두려움을 느낄 수 있지만, 자신의 행동이 그러한 상황에서 실제로 어떤 결과를 낳는지 보면서 이 모든 과정을 진지하게 마주하게 된다.(P101)

 

" 헬레네 랑에 학교에서 진학한 학생들은 스스로 주체가 되어 학습하고,학습의 결과물을 학급과 평가단 등에게 발표하며,외부 전문가의 지식을 맥락에 맞게 끌어다 쓰고,사회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몸소 탁월하게 체득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이들 대부분이 자기 계발과 잠재력에 대해 높은 성취욕구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P286)

 

우리 학교 아이들 처럼 우등생,열등생,문제아들이 입학해서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주체성을 확립하며 놀라운 학업성취도를 이루어내는 보통학교, 그러나 변화지 않은 주변의 학교모델에 금을 가게한다.헬레네 랑에 학교에서는 열등생과 문제아들도 우등생 못지 않게 자신감을 어떻게 충전해 나갔을까? 현직교사나 과외선생님 학원선생,학부모,그리고 교장선생님께 일독을 권합니다.

 

부모의 눈이 전혀 다른 눈에서 아이들 눈으로 봐라보는 계기의 동기부여가 됐으면 하네요.

 

 



YES마니아 : 로얄 c*********o 2012.04.14.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혁신학교가 궁금하신 분들께 일독을 권합니다.
"혁신학교가 궁금하신 분들께 일독을 권합니다." 내용보기
아이가 행복한 학교, 부모인 내가 꿈꾸는 학교다. 흔히들 선생님을 잘 만나야 1년이 편하다고 하는데, 이는 그만큼 선생님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증거임을 단적으로 드러내 주는 말인 것 같다. 나는 아이가 행복하려면 먼저 교사가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저 월급을 버는 직장인으로 교사 일을 하고, 가르치는 일이 행복하지 않은 교사 밑에서 배우는 아이들이 행복할 수는 없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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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행복한 학교, 부모인 내가 꿈꾸는 학교다. 흔히들 선생님을 잘 만나야 1년이 편하다고 하는데, 이는 그만큼 선생님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증거임을 단적으로 드러내 주는 말인 것 같다. 나는 아이가 행복하려면 먼저 교사가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저 월급을 버는 직장인으로 교사 일을 하고, 가르치는 일이 행복하지 않은 교사 밑에서 배우는 아이들이 행복할 수는 없을 거라 믿기 때문이다.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할 수 있는 이치와 같다. 혁신학교가 어떤 학교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아이를 혁신학교에 보낸 지 일 년이 넘은 요즘, 다시 학교가 어떠해야 하고, 혁신학교는 무엇을 향해 움직이고 있는지 궁금증이 일었다. 이 책은 마침 혁신학교의 모범적인 사례로 소개되고 있는 독일 헬레네 랑에 학교의 20년 역사를 이야기로 다루고 있어, 나의 궁금증을 거의 해소시켜 주었다. 그야말로 우리 아이 초등학교가 가야할 길, 그리고 우리나라 학교들이 가야 할 길을 꿈처럼 그려 주는 책이다. 혁신학교가 궁금하신 분들에겐 꼭 일독을 권하고 싶다.

k****g 2012.02.20.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우리도 할 수 있다, 학교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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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학교, 헬레네랑에에냐 리겔17-317핀란드 교육, 서유럽 교육 등 그들의 선진교육 시스템을 보면 과연 우리도 할 수 있을까? 내 자식까지는 아니어도 내 손주들은 그런 세상에서 공부할 수 있을까? 부럽기도 하고 질투도 났다. 우리도 3만 달러 시대에 진입하려면 최우선 과제가 교육이라고 한다. 과거의 교육 방식과 다른, 교육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외친다. 그에 발 맞춰 최근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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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학교, 헬레네랑에

에냐 리겔

17-317

핀란드 교육, 서유럽 교육 등 그들의 선진교육 시스템을 보면 과연 우리도 할 수 있을까? 내 자식까지는 아니어도 내 손주들은 그런 세상에서 공부할 수 있을까? 부럽기도 하고 질투도 났다.

우리도 3만 달러 시대에 진입하려면 최우선 과제가 교육이라고 한다. 과거의 교육 방식과 다른, 교육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외친다. 그에 발 맞춰 최근 혁신학교가 곳곳에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막상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저 현장학습, 축제들만 늘여 교사의 부담만 늘어나는 게 아닌가 의문이었다. 이렇게 열심히 활동만 하다보면 언제 공부한담???

그래서 과연 진정한 혁신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여러 책을 읽었다. 그 책들이 모두 칭찬 일색이라 가식으로 느껴졌다. 유럽에서는 부모들이 모두 부모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나? 공부에 관심도 없고 학습능력이 부족한 것은 제외하더라도 폭력적이고 부적응 학생은 전혀 없나? 요즘 독일과 영국에 이민자가 많아서 문제라는데, 책에 나오는 학교들은 이민자를 받아들이지 않나?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러한 궁금증들이 모두 해소되었다.

일단 20년 동안 헬레네랑에 교장직을 수행한 저자가 대단하다. 그녀는 중요한 교육 철학 위에 모든 활동을 벌여왔다. , 이점에서 우리나라 학교와 유럽 학교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교사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스펙을 쌓으면 교장으로 승진한다. 그리고 그 교장도 8년을 하면 내려와야 한다. 그러니 교장이 바뀔 때마다 학교 정책도 바뀐다. 교사도 그에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20년 동안 같은 교장이 자리를 유지한다면 안 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시간이 충분하고 그 의지가 충만하니 성과가 좋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헬레네랑에는 우리식으로 하면 중등 종합학교다. 독일은 초등학교 졸업 이후 진로를 결정한다. 그래서 중학교 진학 시 누구는 직업학교로, 누구는 대학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교로 흩어진다. 그런데 헬레네랑에는 이 모든 게 이루어지는 학교다. 그러나 우리가 이해하기에 중등 대안학교로 여기는 것이 더욱 쉽게 다가온다.

교장이 20년 동안 학교를 경영하면서 새 학년이 시작할 때 학부모와 함께 학교 운영 방침을 엄격하게 수립한다. 그리고 그 방침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 학생이나 부모에게는 강력하게 학교를 떠날 것을 통보한다. 문제 학생을 상담해보니 가정문제로 어려워하고 있다. 그러면 교장은 그 부모에게 전화해서 가정일 까지도 조언해 준다. 부모가 사생활이니 간섭하지 말라고 항의하면 교장은 우리가 보호하고 있는 학생에 관한 일이니 간섭이 필요하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이러한 교장의 태도가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가능한 일일까? 아마 교육청에 민원 들어갈까 봐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또 교과 이외의 다양한 활동을 학교에 도입한다. 특히 종합예술인 연극 수업을 가장 중요시 한다. 비전문가인 교사가 프로젝트로 연극 수업을 이끄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헬레네랑에 에서는 외부전문가를 초빙한다. 겨우 주 1시간이 아니라 3개월, 또는 6개월 정도 프로젝트로 진행된다. 누구나 연극배우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인생을 사는데 큰 장점이 될 것이다. 학원에 쫓기느라 자기 파악도 할 여유가 없는 우리 학생들에게도 필요한 기회다.

그러나 이런 훌륭한 교장도 처음 부임할 당시에는 환영받지 못했다. 모든 교사들이 거부의 표시로 취임식 당일 장례식을 상징하는 검은 정장을 입고 왔을 정도였다. 뭐든지 새로운 것을 시도할 때는 반대에 부딪힌다. 그러나 저자는 그 고개를 잘 넘었고 영광스러운 은퇴를 맞이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교육의 혁신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내가 교장이든 교사이든 제일 중요한 것을 철학을 정립하는 것이다.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있다면 내가 어느 자리에 있거나 상관없이 일관된 교육을 행할 수 있을 것이다. 학생 지도하기 싫어서, 학부모 상대하기 귀찮아서 승진하려는 것이 아니다. 남들 앞에 보여줄 수 있는 철학이 바로 섰을 때 교감, 교장과 같은 자리로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야 교육 혁신을 이끌 수 있고 바른 학풍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j*****7 2016.10.1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