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지와 제목에 대한 느낌>
일본책을 지독하게도 기피하던 시절(편견을 깬게 2년여 남짓...)에 제목이 왠지 달콤하다거나 사랑스럽게 이뻐서 보면 일본책인 경우가 있었다. 아마도 같은 저자의 책들인지라 그랬다는...저자의 인지도도 모르면서 좋아하는 딸기가 들어가서... 표지의 고양이랑 보이는 물건들이 다 에폭시 기법이다. 만져보면 그 부분이 맨질맨질하면서 약간은 앰보싱 느낌. <이책은> 리뷰어클럽 서평단 모집 당첨 도서다. <저자는>
<책내용 맛보기>
<책읽은 소감> 저자의 인지도나 인기도도 알지 못하면서 딸기를 으깨는 심리가 알고파 서평단 모집 대열에 줄을 섰다. 도전댓글들이 전작을 이미 맛본 분들인지라 왠지 나보다 더 앞서가는 느낌과 이미 아는 작가의 글맛을 만나고픈 마음에 당첨되기를 얼마나 바랬을까...연애소설의 여왕이라는 찬사답게 남녀의 심리묘사가 매우 탁월하다. 상황상황에서의 표현력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면서도 매우 공감하게 써내려간 글. 생각부분이 많은데, 그게 지루하지 않고 수다스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섬세한 감정을 그리 묘사할 수 있음이 얼마나 부럽던지...상황묘사의 마술사다. 어쩜 그리도 사랑스럽게 표현하며 달달하게 그릴 수 있는지 감탄을 연신 자아내게 한다.
딸기를 으깨어 우유의 바다 속에서 건져먹는 것으로 시작하는 아침. 노리코는 결혼생활 3년여를 자신의 의지로 이혼하기에 이르는데 왠일인지 남편 고가 순순히 응낙을 해준게 믿기지 않는다. 자신의 표현대로라면 결혼생활을 형무소에서 형기를 살았다고 말하는데 간수장이 고. 그건 지긋지긋함과 무서움을 대변하는게 아닌 어떤 체제나 규율에 따라 움직여야만 하는데서 형무소라 칭한거다. 부자 아들인 고는 참으로 오만한데다 인간관계를 부의 정도나 직책 등 그네들만이 향유하거나 누려온 방식대로 평가하는데 그게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 오만하지만 정직하고 감정표현이 서툴러 장황한 말도 늘어놓지 않지만 차안(=밀실)에서 둘 만이 되었을땐 오사카 사투리로 비교적 감정 표출을 잘한다. 여기서 오사카 사투리를 경상도버전으로 풀이하는데 영 거슬렸으나 차츰 조금씩 적응은 되나...
고가 사준 값진 물건들을 다 놔두고 나왔을만치 물질에 큰 욕심이 없던 새댁 노리코는 서른다섯. 생각지 못한 생일선물였던 회중시계가 가방 속에서 우연히 나오는 바람에 그거 한개만 챙긴 꼴이 된다. 노리코가 싱글이 되어 회상하는 고는 찰떡궁합이었다. 악수를 해본 적이 없는건 고의 손이 가슴을 먼저 찾았고 그런 행동이 싫지 않은 노리코였고...부자집에 적응하려니 풍부한 감성을 가진 노리코는 제약이 많았다.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생활은 그녀에게 염증을...고의 고자세도 이해하기는 하나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기 보다는 늘 고의 기분에 맞춰줌도 지겨워지고...이런 생활을 못견뎌했기에 찾은 혼자인 생활은 축복 그 자체다. 형무소 출소는 그녀에게 결혼생활을 '저세상'으로 불리게 한다. 우리네가 생각하는 '저세상'의 의미를 다시 곱씹게 했다.
초반엔 솔로예찬이 늘어지는데...그것도 애당초 혼기를 놓쳤다거나...그런게 아닌 돌싱 예찬이다보니...허나 노리코의 긍정적인 면은 생의 활력으로 자리하고, 그녀의 좋게 생각하는 자세는 긍정적 결과를 낳는 경우가 태반. 혼자여서 좋은 것들의 나열(메모지 여기저기 놔두기...)은 유치하기도 하고...공감도 가고... 그렇게 해보고 싶다도...사람은 성향이 다르기에 같은 상황에 처해도 대처방법은 저마다 다르다. 물론 그 대처방법이 생각한대로의 대개의 결과일테니, 어떤 마인드로 임하느냐가 중요한지. 이렇게 낙천적이고 풍부한 감정을 가진 이 이다보니 인형 작업에서의 섬세함이 꾸준한 매출과...이어졌지 싶다.
또 솔로이면서 알게 되는 친구들. 형무소 복역중에는 알던 사람들도 단절을 요하는 간수장(=고) 때문에, 간수장과의 사이가 좋아서 상관없었는데, 생계가 걸리다보니 사업상 알게 되고...수많은 관계와 관계속에서 어느새 그녀는 더욱 둥그런 사고를 갖게 된다. 그녀가 가졌던 편견이 조금씩 진화하여 좋고나쁘고의 경계가 허물어져, 이거는 이래서 좋고 저거는 저래서 좋구나로 변화함이 매우 공감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결정력 결여라고만 생각했던 -나의 경우,가령 이젠 웬만한 색이 다 좋다. 딱히 어떤색을 뽑을 수가 없다-인간관계의 진화는 노리코처럼 되기가 아직은 멀다만 적어도 블로그 상에서는 조금씩 되는데 말이다 아하하하.
중략
연애소설의 거장이라는 저자의 전작을 읽어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기꺼히 읽을 준비가 되었다는건 그만큼 호감도가 깊다는 얘기. 여기에서도 이미 남남인 노리코와 고지만 우연히 만나지고 뻣뻣하기만 했던 고가 조금은 변한 모습을 보여주고...아무렇지 않게 솔로의 행복과 여유를 맛보던 노리코에게도 돌싱2년은 차츰 신선함을 조금은 잃어갈때 고가 사랑보다는 우정으로 다가서기에 이른다. 무엇보다 이 소설에서 좋은건 조금씩 긍정적인 모습으로 변화한 걸 알게 해주는 행동이나 말. 어디서 그리도 핵심을 콕 찌르는 어휘 구사를 하는지....그 순간에 그런 표현을 해낼까...경직된 사람을 말랑말랑하게 풀어주는데 당사자가 느낄 새도 없이 웃게 만든다고나 할까. 그 기분좋음 속으로 퐁당하는 시간들이 웃음을 선사하기에 '반짝반짝 빛나는' 시간이었다.
관계소설이라는 단어를 접했다. 노리코가 돌싱녀가 되어 어쨌든 어울리게 되는 사람들. 그게 남녀를 가리지 않아도 자연스레 접촉을 가지는 사람들은 한정되기도...전혀 달라서 그 안에서 매력을 찾기도 하고...인간적이라 정이 가고...빌딩을 가진 부자인데도 바겐세일 빵집을 찾아가는 소박함에 반하고...연하남 킬러인 괴팍해 보이는 여인에게도 미쳐 발견하지 못했던 면을 찾고...그렇게 관계와 관계속에서 사람들이 더 나은 방향으로의 행진은 부럽기까지 했다. 다만 한사람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저세상 사람이 되는 것에서 혼자일때의 막막함이나 고적감을 발견한다. 자기연민에 빠져서 눈물짓는데 그 누구도 비켜갈 수 없는 저세상에 대한 대비하는 마음이랄까, 누구나 저세상과는 무관하다 여기며 사는 삶에 경종을 울려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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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이혼이란 주제는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처럼 아이가 있는 주부에게 이혼은 나만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에 쉽지 않고 무거운 주제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요즈음엔 이런 생각을 한다. 결혼이 인생의 한 가지 선택이듯 이혼도 결국.. 인생이라는 긴 마라톤으로 본다면 그것 역시도 선택이다. 여기 이혼을 한 여자가 있다. 그녀는 결혼을 수감생활이었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출소(이혼)하고 난 뒤 여자는 유쾌하고 행복해 진다. 결혼기간동안 불행했던 것도 아니고, 남편이 못된 사람도 아니었다. 재벌남이어서 돈도 많다. 다만 지독한 질투남 이었다는 것? 친구와의 연락도 끊어지고 일을 하는 것도 싫어했던 남편. 이제 이혼 한지 3년이 되어 가는 여자에게 전 남편은... 어떤 의미일까?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유쾌하고 발랄하다. 적당히 남자 친구들을 만나고, 내 일을 가지고 있으며, 여자 친구들도 있다. 재벌남과 살 때 형식적인 파티에 참석하고, 시어른들과의 관계에 힘들었다면 혼자인 지금은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다. 작은 평수의 내 집에서 내 마음대로, 내키는 대로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결혼이란 것은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 궁합이 잘 맞으니까 하는 것이지 결혼하면 궁합이 좋아지겠거니 희망적인 관측을 하는 것은 어리석다. 결혼 뒤에는 몇 백 년의 전통이란 게 떡 버티고 있는데 그것과 싸우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기 때문에 잘 생각하고 궁합이 맞는다고 확신이 섰을 때 해야 한다. 혼자 힘으로 전통과 맞서 싸운다는 건 웬만한 에너지 가지고는 안 될 일이니까 (24-25) 결혼은... 남자에게도 여자에게도 희생과 배려가 있어야만 유지 될 수 있다. 그 과정은 엄청난 에너지와 정신적 피곤함을 수반한다. 특히나 상대는 배려하지 않는데 나 혼자만 희생한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부터 결혼은.. 싸움과 힘겨움의 연속이 된다. 나도 자유를 꿈 꾼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결혼은 현실이고, 혼자 일 때와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시댁식구들과의 심리 싸움이란 소리를 들었음에도 결혼은 늘 상상 그 이상이었다. 이 책의 주인공처럼 혼자된 지금을 행복하게 생각하고 즐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전 남편과 친구처럼 아기자기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면 또한 얼마나 좋을까? 현실에서.. 우리나라라는 현실에서 가능할지는... 잘 모르겠다. 독신생활의 즐거움은 이 고독의 공포와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했던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고, 그 부분을 충분히 납득하고 있다는 전제하에 독신생활을 즐기고 있다고 믿고 싶었다. (318) 인생은 양손에 떡을 움켜쥐고 모두 다 갖기는 힘들다. 결혼이라는 것을 선택했을 때 내가 가질 수 있는 이익과 갖지 못하는 이익도 고려해야 하고 이혼이라는 것을 선택했을 때도 마찬가지가 된다. 인생은 늘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으니까.. 이혼한 여자의 유쾌하고 발랄한 이야기. 어느 인생을 선택하든 내가 선택한 인생이라면 그 자리에서 행복하게 살면 되는 것 아닐까? 마지막에 이런 말이 있다. “관은 역시 남자들 손에 맡기고 싶다. 우정의 기계를 가지고 있는 남자들에게” 음... 그 의미는... 생각해 보고 싶다. 누가 들고 가든.. 나와는 좋은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면... 더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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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나베 세이코의 『딸기를 으깨며』는, 노리코가 화자가 되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이다. 이야기의 시작 부분과 끝 부분에서, 으깬 딸기에 우유를 듬뿍 부어 마시는 노리코의 행위는 '일상의 여유와 자유'를 상징한다. 혼자 살 때는 혼자 사는 것이 공허해서 결혼으로 결핍감을 채웠지만, 결혼생활을 통해 여러 굴곡을 경험한 그녀는 결국 결혼으로부터 해방된 지금을 아낌없이 사랑한다. 자신감과 활력이 넘치는 노리코의 기쁨을 나타내는 말은, '저 세상에 가더라도 이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 같아'다. 그러나 곁에 아무도 없이 혼자서 죽어가는 코즈에의 죽음을 바라보면서, 혼자인 자신에게도 찾아올 죽음때문에 자기연민의 눈물을 쏟아내고, '혼자'라는 즐거움은 '외톨이'라는 견디기 힘든 '고독의 공포'와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했음을 자각하게 된다. 작가는 노리코를 통해 투영된 혼자였을 때와, 부부로 살아갈 때, 그리고 이혼 후의 생활까지를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어떤 삶을 추구해야 할지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선택은 독자의 몫이다.
노리코는 일러스트이자 화가이며, '논짱 시리즈' 캐릭터 상품을 만드는 아티스트다. 3년간의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2년 전에 이혼한 그녀는 혼자 사는 기쁨에 흠뻑 젖은 자유로운 영혼, 서른다섯의 나이다. 자신이 부자라는 사실을 하루종일 의식하고 있는 고가 노리코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헤어지면서 그녀는 위자료도 청구하지 않았고, 선물받은 모든 물건을 고의 집에 그대로 두고 나왔다. 생일 때 고가 사준 '황금색 여자용 회중시계'가 우연히 짐 속에 섞여 온 게 전부다. 고는 노리코가 나름 프로의식을 가지고 인형 개인전과 그림 개인전을 열어 모두 다 절판될 만큼의 근성을 보여주는데도 그녀의 작품을 누더기 천과 낙서라 폄하할 만큼 까칠하고 거만하다. 고가 연출하는 깜짝쇼의 꼭두각시 인형 같은 귀찮은 역할이 이젠 싫다.
그녀의 남자친구들은, 그림쟁이 후쿠다 케이, 아동복 회사를 경영하는 카나이 테츠, 화랑에서 만난 거구의 화가 세키구치 토무, 스물여섯 살의 방송작가 니이후지 마모루, 단 한 번의 만병통치약으로 쓰인 징 같은 남자 등이 있다. 여자친구로는, 피아노 학원을 경영하고 있는 중년 여성의 하라 코즈에로, 성공여부도 미지수인 예술가 지망생인 나이 어린 젊은 남자를 좋아하고 투자하지만 모두 떠나고 없다. 레즈비언 같은 데가 있는 메리는, 남자 다루는 솜씨가 뛰어나고 커다란 상가를 두 채나 가진 큰 부자지만 "나란 사람은 영 글렀고 재주라곤 눈곱만큼도 없어."라는 겸손을 떤다. 메리 역시 돌싱이며, 여자란 양치식물과도 같다며 햇빛받는 것을 싫어한다.
남존여비사상이 팽배하고 모든 남자들을 질투할 정도의 소유욕이 강한 노리코의 전남편 고는 서른세살의 재벌가 도련님으로 상류층 의식을 폴폴 풍기는 섹시하고 정력적인 남성이다. 전형적인 우리나라의 경상도 남자처럼 지나치게 보수적이고 권위적이며 다혈질인 그는 사람을 경멸하거나 사랑하거나 둘 중 하나다. 고는 노리코에게 사치에 마음껏 익숙해지라고 해놓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증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장부를 꺼내 들고 지출내역을 줄줄이 읊어댄다. 자신이 생각한대로 안 된 적이 없기 때문에 확신하고 안달내고 고압적이며, 손부터 올라가는 불쾌한 버릇이 있다. 사준거라고 해놓곤 소유권을 주장하듯 따지고 들고, 근거도 없는 차별의식과 경멸을 가지고 있는 남자다.
주인공 노리코는 프랑스의 여배우 브리지트 바르도(BB)의 골수팬이어서 BB의 말을 일상에서 인용하는 것을 즐긴다. BB의 영화를 좋아하기 시작하면서부터 10년 넘게 골수팬을 고집해왔고, 버스 갈아타듯 갈아탄 애인과 남편, 세계를 거침없이 휘젓고 다니면서 좋아하는 동물이 '남자와 고래', 좋아하는 장소는 '우리 집'이라고 거침없이 떠드는 그녀를 더할 수 없이 고독한 여자로 보여서 좋아한다. 본문 여기저기에 어록처럼 박혀있는 BB의 말은, 인생에서 차용해 쓸만한 가치는 사실 별로 없어보인다. 동물애호가라는 그녀가, 개 고기를 먹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보고, 야만족이라 줄기차게 비판한 점과,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요리는 거위 간이라고 했던 최상급 이기심은, 결코 그녀를 고운 시선으로 볼 수 없게 한다.
늙는 것이 특별히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마음이 황폐하게 늙는 것은 좋지 않다. 늙는다는 것은 메리처럼 상아조각이 '세월의 안개에 싸여서 소리 없이 고요하게 바래가는 것' 같아야만 한다. 안절부절못하고 마음이 황폐해지는 늙음, 그것은 '늙음'이 아니라 그저 '노인이 된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P28
여자가 동성에게 우월감을 느낄 때, 자기가 안정되었다고 믿거나 한 남자에게 정착한 경우가 많은 것은 왜일까? -P86
이혼으로 다투는 사람들 중에는 경제나 물질적 조건의 타협을 보지 못해 애를 먹는 사람이 종종 있는데, 나에게 그들은 예컨대 항아리 속의 알사탕을 잔뜩 쥐고 항아리의 좁다란 주둥이로 손을 빼내려는 사람처럼 보인다. 알사탕을 손에서 놓지 않는 이상 항아리에서 손을 뺄 수 없다면 미련 없이 놓아버려야 한다. -P258
다나베 세이코, 그녀에게 늘상 따라다니는 타이틀은 연애의 거장이라는 수식어다. 작가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장르가 연애에 있고, 그러다보니 이 작품은 남자와 여자의 미묘한 심리를 잘 담아낸 레시피와도 같다. 주인공 노리코와 그녀의 전남편 고는, 이미 이혼한 상태로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우연한 만남을 통해 여전히 서로가 서로를 그리워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분방하고 호탕해 보이는 유부남 토무에게 끌리는 노리코. 이혼해서 좋은 점은, "하기 싫을 때 안 해도 되는 거"라고 거침없이 쏟아내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이 책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발생하는 사랑과 이별, 그리고 만남을 통해 사소한 일상에서부터 소란한 어느 순간까지를 달콤한 문체를 실어 말랑말랑한 남녀의 심리를 파헤치고 있다. 겉으로 쿨하게 헤어졌다고 생각하지만, 그리움이 남고 그 사람이 없어 괴롭다면 끈질기게 품어온 미련은 결코 쿨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오사카 사투리를 우리나라의 경상도 식으로 의역해낸 번역가의 센스가 돋보인다. "아입니꺼." "우짭니까." "쪼매" 등 요란스러운 경상도 사투리와 말투를 구현해내고 있다. 노리코는, '나중에' 또는 '다음에'라는 편리한 표현으로, 거절과 승낙의 중간쯤으로 미꾸라지 빠져나가듯 순간을 모면하지만, 상대 남성에게 일종의 여지를 남겨두어 희망을 품게 하는 우유부단함을 가지고 있다. 정말 아니라면 단칼에 거절해야 하지 않나? 쓸데없는 감정소모에 휩쓸리지 않고 혼동되지 않게 말이다. 또한, 애완동물을 길러보라고 권하듯 아이란 것이 누구의 씨든 똑같다는 식의 해석을 하는 너무 프리한 토무 씨의 자유분방함도 맘에 들지 않는다. 내가 너무 고리타분한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밌게 술술 읽혔던 책이다. 소설이라는 건 다른 사람의 세계를 보는 것이지 내 관념을 들여다 보는 것은 아니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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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읽기 시작하고 꽤 많은 페이지를 넘기고서 이 작가의 나이가 궁금해졌다. 표지도 그렇고 연애소설이라고 말하는 것도 그렇고 웬지 40대의 작가의 작품일 것 같다고 속단하고 나서 읽었는 데 이건 아무리봐도 사오십대의 작가들이 쓴 글이 아니라고 느껴지는 것이다. 이 여유로움과 관대함, 호기심은 세월이 만들어주지 않고서야 절대 만들어질 수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로마인 이야기'로 유명한 시오노 나나미의 수필중에 남자의 목덜미의 섹시함에 대한 글을 본 적이 있다. 나는 민망해 하다가 시오노 나나미가 이미 할머니 소리를 들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나이라는 것을 상기하고는 이 할매가 못하는 소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혼자 킥킥 웃어댔다. 여자끼리나 할 이야기를 너무 당당하게 글로 써서 책으로 내는 그 뻔뻔함은 세월이 만들어주신 것이다. 마치 할머니가 손자 고추를 만져보면서 흐뭇해하는 것 같은 이런 느낌은 야하다거나 관능적인 시선이 아니라 순수하게 사람이 사람을 보는 시선이었다. 마치 예쁜 강아지를 보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과 다름없어 보였다.
앞 표지에서 찾아본 다나베 세이코의 나이는 시오노 나나미보다 많았다. 1928년 생 이었던 것이다. 이 할머니는 시종일관 호기심으로 사람을 본다. 뾰족하지 않고 둥글둥글해 보여서 좋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뾰족한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서 뾰족한 주사바늘만 봐도 무서운 것이다. 그래서 정색하고 뾰족한 모습을 보이는 상대는 호감도가 확떨어져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이 둥글둥글함이란 굉장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웬지 더 웃음이 나는 건 '브리짓 바르도'가 한 말을 계속 인용하고 있다는 것인 데 이 '브리짓 바르도'는 한 때 우리나라의 개고기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가 국민의 공분을 산 그 분이다. 이 분도 그 후에 괴짜스러운 행동을 많이 해서 인종차별로 벌금도 받고 이런 저런 말들로 시끄러워지면서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져간 사람이다. 한 때 잘나갔다고는 하지만 나이가 들고 채워야 할 것들을 엉뚱하게 채워가면서 보면 실소가 나는 사람으로 변해버렸다.
이 '브리짓 바르도'가 한 말을 계속 인용하면서 이야기하는 데 왜 이렇게 웃음이 나는지 모르겠다. 혹시 브리짓 바르도가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지어서 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확인할 수 없으니 조금 각색과 편집은 알 수가 없는 것 아닌가? 난 어제 내가 한 말도 기억이 안나는 데 말이다. 이 너그러움과 호기심과 일본 소설 특유의 괴짜 조연들과 괴짜 조언자의 조합은 생각보다 유쾌한 느낌을 준다.
이 책의 주인공은 재벌집 며느리로 들어가 3년간 결혼생활을 하다가 이혼하고 혼자 살기 시작한 여자다. 주인공은 '형무소에서 나왔다.' 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데 처음 시작할 때 딸기를 으깨서 우유에 넣어서 먹는 걸로 시작하고 마지막 장면도 딸기를 으깨는 걸로 끝난다. 이 장면도 괜히 너무 재밋어서 곳곳에서 보이는 이 작가의 인생에 대한 달관은 정말 너무 좋았다. 이런 할머니가 있으면 만날 놀러가서 말 한 번 붙여보려고 안달을 낼 텐데 싶을 정도다.
중간에 나오는 조연들의 입을 통한 젊은 남자가 좋다던가 남자에 관한 이야기 성에 관한 이야기는 이건 정말 어르신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이야기다. 주인공은 혼자 살고 이런 저런 일을 겪고 친구의 죽음을 겪으며 혼자사는 법을 터득하는 것 같다. 혼자와 여럿을 구분하지 않고 자신으로써 사는 방법을 깨닫게 된것이다. 혼자사는 법을 터득하게 되는 혼자있으면 혼자 있어서 즐겁고 다른 사람과 있으면 다른 사람과 있어서 즐거울 수 있는 방법을 깨닫는다. 뭐랄까...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꼭 잡고 있던 집착과 두려움을 조금 느슨하게 잡고 있을 수 있다고나 할까...
어르신이 이런 솔직하고 재치가 넘치는 글을 쓰다니 오랜만에 아주 웃음이 나는 소설 한 편을 읽었다. 별 웃기지 않은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시종일관 미소를 짓고 읽었다. 그래도 할매는 주책바가지다...ㅋㅋ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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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계절 봄이 오고 있다. 기억의 파편은 연애가 달달하지만은 않음을 증명하지만 봄이 되면 사람들은 다시 사랑을 꿈꾼다. 이번에는 실수하지 않기를, 이번에는 실패하지 않기를 바라며. 영화로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을 만났고 조제의 매력에 반해 다나베 세이코가 쓴 원작소설을 찾아 읽었던 기억이 있다. 계속 무거운, 혹은 우울한 이야기 속에서 허우적대다보니 상큼한, 혹은 풋풋한 사랑을 만나고 싶었다. 이젠 더 이상 상큼한 사랑은 할 수 없는 나이가 돼 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다나베 세이코가 쓴 『딸기를 으깨며』의 주인공은 노리코로, 노리코식 표현에 의하면 ‘여자로 태어나 행복했어, 행복했어, 행복했어!’라고 말할 수 있는 나이 서른다섯으로 재벌가 도련님 나카야 고와 이혼한지 2년 된, 일러스트 일을 하며 살고 있는 여자이다. 그녀에게 결혼 생활은 형무소 생활이었기에 이혼은 곧 출소였다. 신데렐라는 왕자님과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지 못했다.
‘딸기’와 ‘으깨며’는 이질적인 단어의 조합이다. 딸기를 먹으면 입안에 번지는 달큼한 맛으로 인해 행복한 느낌이 드는데 으깨며 의도적인 힘이 개입된 느낌이 든다. 내가 기대하는 상큼한 사랑 이야기는 아닐지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 예감은 적중했다.
평범한 여자가 재벌가의 며느리로 살려면 자신의 삶과 작별해야 한다. 작별하지 않고는 새로운 생을 사는 일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자신의 삶과 작별한 생은 가짜 생이지 진짜 생이 아니다. 이 말은 여자의 애인에게도 해당된다. 각기 다른 삶의 기반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는 일이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무척 어려운 일이다. ‘나’가 사랑하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가 아니라 무조건 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너’이기에.
노리코는 으깬 딸기에 우유를 잔뜩 부어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제목이기도 한 ‘딸기를 으깨며’는 노리코의 자유로움을 상징한다. 소설의 시작도 끝도 딸기를 으깨며 생각하는 노리코의 모습이다. 그녀는 구속보다는 자유를 선택했다. 둘이 사는 즐거움을 누리려면 둘이 사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혼자 사는 즐거움을 만끽하려면 혼자 사는 두려움을 감수해야 한다. 노리코는 열락한 삶을 살고 있다고 믿은 친구 하라 코즈에가 교통사고로 죽자 눈물을 흘린다. 그녀의 눈물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었다. 하나는 당연히 친구에 대한 슬픔이지만 또 하나는 그녀처럼 자신의 곁에도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이제는 좋은 친구가 된 고와 재회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녀는 혼자 사는 두려움을 어찌 극복할까, 궁금했다. 소설의 결론은 혼자 사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이상적인 결론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생각대로, 희망대로 주변의 사람들이 그대로 있어줄지 불확실하다는 것이 걸린다. 그들은 내 인형이 아니기에. 그들에게도 바람이 불 테니까. 그동안 읽은 다나베 세이코의 작품은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뿐이었다. 소설가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실천으로 옮겨지진 않았다. 『딸기를 으깨며』를 읽는데 새삼 작가의 나이가 궁금해서 살펴보니 1928년생이었다. 이 소설을 언제 창작했는지 모르지만 사랑과 이별을 포함한 인생의 많은 경험을 겪은 자의 달관 같은 것이 느껴졌다. 고와 노리코는 기대가 없기에 함께 살 순 없지만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가 되었다. 삶에 대한 더 이상의 기대는 없지만 그동안의 노력으로 만든 환경과 관계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이의 모습이 보였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그것은 인생이다. 정말 인생이다. 그것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인생은 여러 가지 일에 도움이 된다. 특히 살아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다시 태어나 있다. 단 하루도 같은 날이 없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나는 살아 있지 않을 것이고, 기계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 나의 하루하루는 나를 향해 불어오는 바람 같은 것이다.”(120쪽) 연애의 끝은 이별과 결혼이다. 그럼 결혼의 끝은? 이별에는 이 세상과 결별하고 저세상으로 가는 죽음도 포함한다. 그러니까 모든 연애의 끝은 결국 이별이다. 삶의 정답은 없다. 노리코처럼 살 수도 있고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어떤 생이든 자신이 행복한 삶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나의 하루하루는 나를 향해 불어오는 바람 같은 것이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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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하게 탄 커피를 잘근잘근 씹으며, 나는 생각에 잠겨 있다. 이렇게 괴로워도 되는 걸까? 리뷰 쓰는 것, 이것이야말로 내가 매번 겪으면서도 익숙해지지 않는 갈등의 최고조가 아닐까? 나의 이런 괴로움을 아랑곳하지 않고,
주인공 노리코는 야무지게 딸기를 으깨면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의 극치가 바로 혼자 사는 것이 아닐까? 라며 그 예찬을 첫 장부터 주욱 늘어놓는다. 그 다짜고짜 쏟아내는 자랑질이 뭔가 생뚱스럽다고 나는 퉁퉁 부은 얼굴로 몇 번을 그냥 무심하게 다시 읽기를 반복했었는데, 그럼 그렇지! 노리코가 갑부인 고와 결혼을 통해 부자들의 세계를 경험하는 '아주 사적인 시간'이란 책에 이어서, 이 소설 '딸기를 으깨며'는 결혼이란 수감생활에서 분리되어 나온 이혼 후의 노리코 생활이 담겨져 있다. 그런 고로 첫 장에서 시작되는 불친절한 솔로예찬은 전작과 연결되는 다리였던 셈있다. 쨌든,
돌싱, 체크무늬 바스타월을 몸에 두르고 빛이 나는 서른다섯살의 몸을 보며 혼자 감탄하는 소녀 같은 주인공 노리코는 전남편 고와 헤어진 지 3년째, 다시 찾은 자신의 작업을 통해 경제적으로 안정기에 돌입한 시점이기도 하고, 그래서 이제 자유의 바람을 마음껏 만끽하며 쾌재를 부르는 현재를 노리코는 '저세상에 간대도 이보다 좋을 수는 없을 것 같아'로 표현할 정도다. 그녀가 즐겨찾는 브리지트 바르도의 어록에 따르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그것은 인생이다. 정말 인생이다. 그것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인생은 여러 가지 일에 도움이 된다. 특히 살아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다시 태어나 있다. 단 하루도 같은 날이 없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나는 살아 있지 않을 것이고, 기계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 나의 하루하루는 나를 향해 불어오는 바람 같은 것이다"(p.120)
그러니까 노리코의 현재, '혼자 사는 행복'을 느끼는 지금이 정말 인생인 셈이다. 살랑살랑 부는 하루 바람 속에 독특한 친구들과의 수다가 숨어있고, 그들과 함께한 식사가 포함되어 있고, 별거 없는 쇼핑들이 있지만 모두가 사랑스럽다. 마치 노리코가 '행복하다 행복하다' 하니 행복해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전남편 고와의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되는 팽팽한 만담과 3년 만에 처음 누린 호사였던 여행에서의 여러 사건들을 통해 독신생활의 이면(행복 뒤에 고독)을 깨닫게 된 계기가 되지만,
노리코는 씨익 웃으며 혁명하는 여자니까, 거만한 전남편 고와의 두근두근 친구관계를 지속할 것이다. 한때 일상이었고 인생이었던 사람과 생각은 과거에서 출발하지만 만남은 현재부터 다시 쓰는 이야기들을 말이다. '뭐니 뭐니 해도 우정의 기계를 가지고 있는 남자들과 친구가 최고니까.'라고 야무지게 딸기를 으깨며 생각하는 노리코다.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에서도 그랬지만, 작가 다나베 세이코는 이별을 전제로 사랑을 쓰는 작가 같다. 꼭 이별을 하게 될 것 같은 간극의 설정해 놓고, 축복 같은 사랑을 그들에게 아낌없이 베푼 후, 그 간극을 좁히지 못해 결국 슬프지만 쿨하게 헤어진다. 그리고 그제야 주인공들은 뒤돌아보며 일상에 감사한다. 두근두근 하는 '사랑'을 해봐야 매일 다르게 부는 바람을 느낄 수 있고, 그 바람에서 생동감을 감지할 수 있고, 그 생동감에서 하루하루의 소중함을 알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이 책은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처럼 강한 중독성이 있지는 않지만, 노리코를 따라가다 보면 별거 없는 일상에 팔짝팔짝 뛰며 '행복해'를 남발할 수 있을 것 같고 야릇한 상황에서 헤실헤실 웃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여튼 혼자 사는 행복이 살짝 권태롭지만 신선하고 여전하지만 재미있다. 나는 뭐, 사실 사랑의 감정 따위에 푹 빠져 보려고 집어든 책인데(봄이잖아), 혼자 살아보라고 부채질을 한다. ㅠㅠ 하긴 노리코는 두근두근 사랑을 실컷 한 후에는 혼자 살아도 행복할 수 있단 말이겠지... 아하~봄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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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치며..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희한하게 낯이 익다..는 생각을 했다. 워낙 저질 기억력이라.. 바로 바로 떠오르질 못하고서 1/3 가량을 다 읽고서야.. 이 작가의 전작이 떠올랐다. <아주 사적인 시간> 그래.. 노리코와 고의 결혼생활과 아주 아주 사적인 시간이 담겨 있던 그 책.. 그런데 이번 <딸기를 으깨며>는 노리코와 고의 이혼 후 이야기다. 이혼하고 나서도 1년이 지난 후의 이야기..
나는 사람을 만나서 사랑하다 헤어지고 나면.. 혼자였을 때의 씩씩함과 당당함은 사라지고, 그의 부재와 허전함에 어쩔 줄 모르게 된다. 그래서 한동안은 많이 헤매고.. 또 다시 혼자일 때의 당당함과 씩씩함을 되찾게 될 때쯤에는 언제 둘이였던 적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까마득한 느낌이 들곤 했다. 뭐.. 대충 그런 게 아닐까??^;;ㅋ
책을 덮으며.. 나는 독신론자는 아니지만, 결혼을 그닥~!이라 생각했던 마음이 조금 흔들거렸다. 나의 관을 들어줄 친구들을 나의 삶의 끝까지 내가 같이 갈 수 있을까? 워낙 변덕이 심한 나인지라~ 그들이 날 그때까지 버텨내줄 수 있을까?? 그게 어려울 바엔.. 말년에 차라리 관 들어줄 남자 하나 열심히 꼬득여보는 게 낫지 않을까~??...^;;ㅋ
p.27 늙는 것이 특별히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이 황폐하게 늙는 것은 좋지 않다. 늙는다는 것은 메리처럼 상아조각이 '세월의 안개에 싸여서 소리 없이 고요하게 바래가는 것' 같아야만 한다.
p.49 "그러야 노리코한테 달렸지. 이 세상을 소홀히 하는 사람한테 저 세상이라고 별 볼 일 있겠어?"
p.86 그래서 나는 하라 코즈에를 황량한 인생을 사는 여자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녀를 처음 알았을 때, 나는 고와 한참 '붙어 다니던 때'로 행복했기 때문에, 얼마간의 우월감을 가지고 코즈에를 대했다. 여자가 동성에게 우월감을 느낄 때, 자기가 안정되었다고 믿거나 한 남자에게 정착한 경우가 많은 것은 왜일까?
p.145 중요한 일 관련의 꾸러미만 잊어버리지 않았으면 됐다. 하지만 나는 왠지 고의 차 안에 내 마음을 놓고 온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작은, 아주 작은 마음이다. 핸드백은 그야말로 두 손바닥을 합쳐놓은 정도의 크기였기 때문에.
p.231 "난 지금 저 사람들을 탓하자는 기 아이고, 잘됐다, 잘됐다, 잘됐다~ 축복해주는 거거든요. 남녀가 서로 좋아서 자는 거, 사람이 평생을 살면서 한 번이라도 더 많아야 행복한 거 아이겠습니까? 핫 핫."
p.281 "우와, 별장이란 게 이런 거예요!" 나는 맨발로 마루 위를 통통 굴렀다. 만평호텔에서 메리와 우아한 만찬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맨발로 나무 마루 위를 밟고 서서 얼굴까지 새파래질 정도로 초록에 물들어 있는 것이 훨씬, 훨~씬 좋았다. 오두막 안까지도 오데코롱을 쑤욱! 뿌린 것처럼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p.328 딸기를 으깨며 생각한다. 난 메리와 달라서, 관은 역시 남자들 손에 맡기고 싶다. 우정의 기계를 가지고 있는 남자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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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그러니까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이 제법 유명했었을 때 친구와 다나베 세이코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가 농담삼아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다나베 세이코를 읽으면 왠지 말이야. 연애를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왜?" "여자의 심리가 아주 세밀하게 그려져 있잖아." "그건 세이코만 그런 건 아닌 것 같은데... 헨리 제임스도 있고..." "하지만 세이코는 일상의 어떤 특정 상황 같은 것에서 여성의 심리가 어떻게 되는 지 자세히 보여주잖아? 대부분 연애라는 것도 그렇단 말이지. 특정 상황에서 여성의 심리가 어떤 프로세스를 거치는 지를 아는게 무엇보다 중요하단 말이지. 난 다나베 세이코를 읽으면 왠지 '아! 이런 때는 여성들이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더 잘 느껴지더라구." "흐음... 뭐, 그런가?
하잘것 없는 객담이지만 솔직히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이번에 나온 신작 '딸기를 으깨며'를 읽은 지금으로써는 더더욱! 정말로 다나베 세이코의 소설을 읽으면 일상에서는 그토록 오리무중인 여성들의 마음이 마치 그대로 내 손 안에 있는 것 처럼 여겨진다. 그게 어느정도냐 하면 해부대의 개구리 처럼 관찰 가능할 정도다. 뭐, 물론 여기에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는 위험이 언제나 상존하고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보편화에 따르는 약간의 위험만 무릎쓴다면 여성들이 정말은 무엇을 원하고 특정한 경우 어떤 생각들을 하는지 짐작하게는 만든다. 예를 들자면 이 소설 '딸기를 으깨며'에서의 노리코 처럼 이혼을 통해서 홀로 되는 게 '홀로 남겨짐'에서 공포를 느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홀로 있다'는 것에서 더 자유로움을 느끼게 될 것이라는 사실 같은 것 말이다. 물론 이 경우 노리코는 경제적 기반이 확실하다는 전제가 있기는 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여성들이 이혼을 두려워하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당장의 경제적 기반이 상실되기 때문이라는 통계 자료도 있긴 하니까 사실 이 같은 전제는 여성의 독립에 있어 무시하지 못할 필수적인 전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세이코가 이 같은 필수적인 전제를 아예 상비시켜 놓고 여성의 독립을 운운하는 것은 이 소설이 가진 한계라고 볼 수도 있겠다. 정작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과감히 독립할 수 없는 여성들 앞에서 경제적으로 안정된 노리코의 독립은 마치 날지 못해서 우리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는 동물들에게 홀연히 새가 날아와 마음껏 자유로움을 뽐내며 "너희들은 왜 새가 아니니?"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구태여 허심탄회하게 이 소설의 한계를 말하라면 이런 걸 지적할 수 있겠으나 그것을 제외하고 본다면 이 소설은 여성의 독립을 다룬 아주 솔직하고 그러면서도 진지한 작품이다. 게다가 제목인 '딸기를 으깨며'에서도 바로 드러나듯 나오는 문장이나 표현들이 독특하면서도 감각적이다.
'내가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이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목욕 후 거울 앞에 서서 몸을 닦고 있을 때다. 서른다섯의 내 몸, 빛이 나는 서른 다섯. 너무너무 아름답기 때문이다. 나는 마치 위스키를 마신 것 처럼 나르시시즘을 마시고 만취해버린 것인지도 모르지만 (...) 결혼이라는 것은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궁합이 잘 맞으니까 하는 것이지, 결혼하면 궁합이 좋아지겠거니 희망적 관측을 하는 것은 어리석다. 그렇게 얕잡아 볼 일이 아니다. 정신은 몰라도 육체는 정직한 것이라서 속일 수도 둘러댈 수도 없다. 그렇게 육체도 정신의 일부, 정신도 육체의 일부라고 믿는 것이 여자이기 때문에 특히 여자 쪽에서 결혼 전에 반드시 시운전을 해봐야 한다. 메리는 "이혼한 후로 나는 줄곧 시운전의 연속이야"하고 웃지만. (p. 23 ~ 25 )'
때문에 라틴 댄스 풍의 음악 속에 흐느적 거리며 몸을 실어 보내듯 '그루브'하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기도 하다. 이야기 자체는 전작 '아주 사적인 시간'에서 이어진다. 재벌가의 자제와 결혼했지만 꽉막힌 재벌가에서의 결혼이 문자 그대로 '형무소' 생활로만 여겨졌던 노리코가 마침내 남편 '고'와 이별한 뒤 '홀로서기'하는 과정을 '딸기를 으깨며'는 그리고 있다. '딸기를 으깨며'는 소설의 처음과 마지막에 똑같이 등장하는데 여기서 처음에 등장하는 '으깬 딸기'는 그렇게 이혼으로 으깨어져 버린 노리코의 결혼을 의미한다. 이 소설에서 무엇보다 가슴으로 들어오는 것은 '노리코의 당당한 홀로서기'이다. 그녀는 홀로 된다는 것에 전혀 두려움을 가지지 않으며 그렇게 무한의 자유 속으로 삶이 변화되어도 주저없이 받아들인다. 그렇게 마지막의 '으깬 딸기'는 그녀의 삶에 있어 고정된 것은 하나도 없으며 그렇게 받아들인 변화들로 삶이 충만할 것임을 암시한다.
'알사탕을 손에서 놓지 않는 이상 항아리에서 손을 뺄 수 없다면 미련 없이 놓아버려야 한다. 만일 나도 그 때 손에 쥐고 놓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싸웠을지 모를 일이다. 욕심을 부리지 않고 포기했기 때문에 그야말로 술술 일이 풀렸는지 모른다. 잘은 모르지만. (p. 258)'
말하자면 이 '딸기를 으깨며'는 여성의 홀로서기에 대한 찬가이며 혹시나 혼자 된다는 것에 겁먹거나 주저하고 있을 여성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 쓰여진 작품이라 단적으로 말할 수 있다. 이제 곧 봄 기운이 완연해지면 곳곳에서 들려올 결혼 소식으로 인해 내 주위로 싱숭생숭해지는 여성들이 많아질 것이다. 그 때 왠지 이 소설을 그녀들에게 마구 뿌리고 싶어진다. 뭐, '일단 결혼해서 시운전이라도 해 보고 후회해도 후회하겠다.'고 말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서두... 하지만 홀로라고 해서 굳이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는 진심만은 전해지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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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셋 정도까지는 나도 연기력이 제법 뛰어났지만, 지금 이 나이가 되고 보니...... . 지금은 서른다섯, 황금의 서른다섯, 한창때인 서른다섯, 뭐든지 알고 있는-그렇다고 믿는- 서른다섯, 건강미 넘치고 터질 듯 속이 꽉 찬 서른다섯, 맛있는 것 좋은 것을 제일 잘 아는 서른다섯, 인생의 참맛, 여자로 태어나 행복했어, 행복했어, 행복했어! 라고 말할 수 있는 서른다섯, 남자의 참맛, 남자의 사랑스러움, 남자의 매력, 남자의 훌륭함, 남자에 대한 욕구를 너무나 잘 아는 서른다섯이다. 지금 나는. ...... 속이기 위한 연기력 같은 건 더 이상 발휘할 수 없게 되었다.” - 다나베 세이코 [딸기를 으깨며] 10쪽
아주 달달할 것만 같았던 책의 시작은 노리코의 이혼 얘기로 시작한다. 뭐, 그렇다고 칙칙한 이혼 얘기가 아니라, 결혼이란 감옥에서 출소해 마주한 일상에, 정말, 아주, 대단히, 매우, 무지하게 행복감을 느끼고 있는 노리코의 붕~ 떠다니는 일상에 얘기가 주저리주저리 나열돼 있다. (음,,, 이래서 결혼한 이들이 노처녀에게 모두 혼자살 수 있음 웬만하면 혼자 살라고 하나? 난 그 소리가 젤 듣기 싫던데,,, 자기들은 해보고 나는 하지 말란 거잖아. - -;;; 뭐, 어찌됐든,,,) <딸기를 으깨며>는 다나베 세이코의 전작인 <아주 사적인 시간>의 후속편 정도라 보면된다는데,,, 전작에서는 부유한 집안 고와 결혼생활이 담겨있다면 <딸기를 으깨며>는 누가 봐도 행복할 것 같은 그녀의 결혼생활이 3년으로 마감, 둘이 아닌 혼자를 선택하면서, 혼자만의 자유로운 서른다섯을 만끽하는 그녀만의 소소한 즐거움이 담겨있다. 자기 여자에 대한 소유욕이 강했던 고와의 결혼이란 감옥에서 탈출한 노리코는 자신 만의 공간에서, 자신의 생각을 표출하고, 친구들과의 자유로운 교류를 통해, 일러스트레이터로 혼자 사는 기쁨의 맛에 감미로움을 느끼며 살아간다. 사실,,, 갑부 집 마나님이었던 매력적인 여자가 돈과 남편의 울타리를 벗어나 자신의 일을 즐기며 혼자만의 즐거움을 만끽한다는 설정은,,, 음,,, 부러울지언정, 다소 공감하긴 힘듦이 있다. 몇 년 집에서 남편의 굴레 속에서만 있던 여자가 사회생활, 그것도 프리랜서로 이렇게 활동하며 자유롭게 지내다니,,, 으깬 딸기에 우유를 듬뿍 부어 마시고, 혼자 사는 맨션에 친구들을 부르고, 이런저런 잡동사니를 방에 어질러놓고 치우지 않는 자유로운 생활을 만끽하기엔 현실은 너무나 버거운 일들이 많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연애소설의 여왕 다나베 세이코가 이런 소소한 얘기로 이야기를 마무리 짓진 않았지? 이혼이라는 소재를 통해 행복한 인생에 대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누구에게 보여 지는 삶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진짜 행복이라는 걸 확인하게 됨과 동시에 노리코 역시 혼자 산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온몸으로 절실하게 느끼며 살아가지만 그녀의 절친인 독신 친구가 곁에 아무도 없이 혼자서 죽는 사건을 겪으며, 혼자 살고 있는 자신의 죽음도 틀림없이 그럴 것이라는데 생각이 미치게 된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며 전 남편인 고와 수다 친구인 테츠, 그리고 토무와 새로운 관계를 정립해 간다. (음,,, 매력녀이다보니 주변엔 남자친구가 즐비하군. 역쉬 인생을 즐기고 있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그것은 인생이다. 정말 인생이다. 그것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인생은 여러 가지 일에 도움이 된다. 특히 살아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다시 태어나 있다. 단 하루도 같은 날이 없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나는 살아 있지 않을 것이고, 기계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 나의 하루하루는 나를 향해 불어오는 바람 같은 것이다.” 120쪽 영화배우 브리지트 바르도를 숭배하는 노리코,,, 단 하루도 같은 날은 없는 인생, 원하는 대로 사랑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서른다섯, 오늘도 그녀는 으깬 딸기에 차가운 우유를 부어 마시며 앙증맞은 딸기의 겉면보다는 딸기 속살과 우유와 과즙의 어우러진 참맛을 제대로 느끼며 살아가고 있을 그녀가,,, 비록 현실은 무참할지언정,,, 이리 누리고 있는 노리코가 참 부럽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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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기를 으깨면서, 나는 생각에 잠겨 있다.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
노리코는 잘사는 부자 남편 고와 헤어져 혼자 생활을 하고 있다. 지방 사투리를 쓰면서 잘난 척을 하던 고. 노리코가 다른 친구들을 만나는 것을 지극히 싫어했던 고.. 그래서 결혼 3년 동안 자신이 좋아하던 일도 하지 못하고, 집에서 갇혀 생활을 했던 노리코가 이혼을 결심심한다. 수감생활을 마치고 출소한 듯한 기분을 느끼는 노리코는 그런대로 잘 지내고 있다. 자신의 했던 일을 다시 시작하고, 친구들을 다시 만나고.. 혼자만의 오롯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물론 여자의 힘으로 살아가는 게 쉽지는 않지만 노리코는 천천히 자신의 자리를 찾아간다. 노리코 주변의 인물들을 통하여 노리코는 자신의 잃어버린 3년의 시간을 회복한다. 좀 엉뚱하지만 유쾌한 친구, 남자의 대한 편력이 있는 친구, 자유를 맘껏 누리는 친구..
이 책을 처음 읽었을때는 고에 대한 인물의 편견이 있었지만.. 고를 미워할 수 만은 없었다. 무뚝뚝함 속에 숨어 있는 노리코를 향한 고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노리코와 고는 좋은 사람이였지만.. 서로에게는 잘 맞지 않은 것이 아니였나 싶다.
이혼을 수감생활을 마치고 출소한 기분이라고 말하는 노리코.. 그런 그녀가 너무나 귀여웠다. 결혼을 한 입장에서 보면 노리코의 발언을 살짝 이해할 수도 있을 듯.. 사실 이혼을 한 여자가 혼자 세상에서 자립을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고 힘든 일이다. 그리고 아직 사람들의 눈은 남자의 이혼보다 여자의 이혼을 더 엄한 잣대로 보기 때문에 사실 노리코가 체감하는 시선은 더 따갑지 않았을까? 물론 일본과 우리나라라는 장소의 차이가 있긴 하겠지만 말이다.
가볍지만은 않은 이야기를 주변 인물들을 통하여 풀어가는 이 책.. 생각보다 신파적이지도, 자극적이지도 않아서 좋았다. 혹시 주변에 노리코와 같은 상황에 처한 여자분이 있다고 읽어보라고 권해주고 싶다. 조금은 불편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내는 그 담백함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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