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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재능을 가진 건축가 중에서 글 솜씨 또한 대단한 사람들이 몇 있다. 아니, 생각 이상으로 많다. 신은 공평하게 재능을 나눠주진 않는 것 같다.
안도 다다오
안도 다다오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건축이 아닌 책을 통해서 먼저 알게 됐다. 표지부터 눈길을 끄는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는 내용도 무척 흥미로웠고 글을 통해서 그의 건축도 어느 정도 알 수 있게 된, 그리고 글과 건축이 어쩐지 닮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권투선수 출신이라는 독특한 이력 때문인지 항상 도전하려는 의욕이 넘쳐 보이는 그고 그의 건축인데, 이번에 읽은 ‘건축을 꿈꾸다’는 ‘나...’에 비해서 좀 더 진솔하게 건축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풀어내고 있다. 조금은 부드럽게 그리고 새로운 다짐을 하려는 듯이. 그러다가도 어떤 결기나 긴장감도 느껴진다. 건축에 대한 깊은 애정과 존경을 느낄 수 있고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려는 그의 생각을 들려주며 어떤 건축이 되어야 할 것인지 자신의 입장을 잘 정리해내고 있다.
“안도 다다오가 지금까지 만난 건축과 도시를 소개하고 그곳에 어떤 꿈이 담겨 있는지 또 지금 우리들의 생활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펼친다. 무엇보다 그는 건축 세계가 얼마나 크고 심오한지 들려주고자 한다. 우리 모두가 모여 사는 이 환경과 공간에 대한 꿈과 가능성에 관한 글이다. 이 책에서는 근대 이후부터 20세기에 이르는 동안 지어진 건축과 도시의 여러 사례를 소개한다. 그것들은 20세기의 기술적, 사회적 진보의 찬란한 성과가 아로새겨진 이른바 시대가 그려 낸 꿈의 계보이다. 거기에 담긴, 풍요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사회와 씨름했던 사람들의 마음이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을 강렬하게 흔든다. 우리에게 남아 있는, 또 우리가 해결해 나아가야 할 과제인 도시 문제와 환경 파괴. 이 과제까지 보듬고 다음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지구라는 제한된 장소에서 사는 인간들이 어떻게 하면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는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며 하나의 공동체로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위와 같은 소개하는 글이 책 내용을 너무 잘 요약해주고 있어서 따로 더할 말은 없다. 살림집이라는 가장 최소한의 공간에서 시작해 마을-광장-도시로 공간과 영역을 서서히 넓혀나간 다음 어떤 공간-영역이어야 할 것인지 고민을 옮기며 자신의 생각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고 있어 건축을 알든 모르든 쉽게 읽히게 해준다.
건축이 무엇인지 조금은 관심이 가는 사람이 읽으면 아주 좋을 것 같다. 당연히 안도 다다오에 관심이 있는 사람도 읽길 권하고. “무엇보다 그는 건축 세계가 얼마나 크고 심오한지 들려주고” 있다.
“우리는 모여 살기 위해 건물을 지어 도시를 만든다. 그래서 건축을 사회를 짓는 것이라고들 한다. 건축은 그저 돌과 콘크리트로 아름답게 마들면 되는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다. 이러한 생각을 뛰어넘어 인간에게 실존적인 터를 만들어 주고 공동체를 엮어 주며 역사와 풍토를 담아낸다. 인간이 만드는 것들 가운데 건축처럼 여러 가능성을 사회로 되돌려 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건축을 만든다는 것은 살아가고 있음을 표현하는 것이며, 자기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다. 건축은 우리 삶의 다른 표현이며, 그래서 역사와 풍토라는 이름으로 미래에 전해진다.
건축이자 도시의 본질을 아무리 자세히 말한다 해도, 그 모든 논의는 ‘모여 산다’는 사실에 뿌리를 두고 있다. 모여 살기 때문에 건축물이 있고, 길과 골목과 광장이 생기고, 주택, 상점, 미술관, 공원이 있다. ‘모여 산다’는 말에는 무엇이 개체이며, 이것이 전체와 어떤 관계로 이어지는 것인가 하는 커다란 물음이 들어 있다. 이렇게 보면 건축은 사회와 문화의 가장 깊은 곳에 작용해 당연히 보이는 수많은 가능성을 마련해 주는 구조물이요, 예술작품이다.”
안도 다다오의 건축에 대한 깊은 애정과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 그리고 근심과 다짐을 느낄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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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 다다오는 『건축을 꿈꾸다』를 통해 지금까지 만난 건축과 도시를 소개하고 그곳에 어떤 꿈이 담겨 있는지 또 지금 우리들의 생활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펼친다. 무엇보다 그는 건축 세계가 얼마나 크고 심오한지 들려주고자 한다. 근대 이후부터 20세기에 이르는
동안 지어진 건축과 도시의 여러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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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27일 초판 발행
1장. 살림집 건축의 시작점은 살림집에 있다고 생각한다.
마을의 발견 여행이 인간을 만든다. 건축이란 실제로 현장을 찾아가 그 공간을 오감으로 체험해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근대 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도 그의 나이 스물 넷에 6개월에 걸친 긴 여행을 했다. 말년에 발간한 그의 여행기 <동방여행>을 보면 그가 여행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얻었는지 알 수 있다.
서양 건축사의 대부분은 그리스 시대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서양 건축의 원점이라 일컬어지는 파르테논신전. 파르테논 못지않게 ~ 매혹~산토리니 섬과 미코노스 섬에 있는 토착 마을 이었다. (섬 급경사면 비탈에 매달리듯 지어진 집이 전부 석회로 하얗게 칠해져 있고 골목은 미로 같은 마을)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자재로 자기 생활에 맞게끔 제 손으로 지은 살림집. 그것은 자연스럽게 그 지역 공동체 고유의 모습을 지니게 된다. 그 밖에도 ~ 다양한 형태의 집이 있다.
지역 풍토에 뿌리내린 살림집을 이렇게 획일화된 주거 환경으로 바꿔 놓은 것은 바로 17세기 서구에서 탄생한 '근대'라는 이념이다. 근대의 뿌리는 합리성과 논리성으로 세계를 재해석하고 논리적인 질서를 부여하고자 하는 정신이었다. 그 모델이 된 것이 바로 기능, 구조, 보편성을 상징하는 '기계'이다. 이에 따라 살림집은 그저 먹고 자는 곳으로서 효율적으로 기능할 것만을 요구받게 되면서 '독립 전용 주거'라는 새로운 형식이 탄생한다.
르 코르뷔지에 "주택은 주거를 위한 기계이다." ~ '기계=보편성' 20세기 시대 정신 정확히 포착. 철근콘크리트조를 발전시킨 도미노 시스템(1914년) 철근콘코르트조 자체는 르 코르뷔지에 이전에도 오귀스트 페레에 의해 이미 기본 스타일이 확립되어 있었다. 그러나 페레는 어디까지나 고전주의적 구조 감각의 연장선상에서 콘크리트를 실험적으로 다룬 데 그친 반면, 르 코르뷔지에는 그 가능성을 더 밀고 나가 새로운 공간 구조의 기본 원리를 추구한 끝에 도미노에 도달했다. 도미노 시스템에 따른 건축의 새로운 구성을 신건축의 5원칙, 즉 필로티, 옥상정원, 자유로운 평면 구성, 수평 연속창, 자유로운 파사드로 제시했는데, 사보아주택(1931년 완성)에 이 원칙이 그대로 체현되었다. 1952년 유니테다비타시옹 마르세유: 고층 집합 주택을 핵심 요소로 하는 도시 속의 도시.
임스자택이 완성도리 즈음, 근대 건축의 합리성 및 보편성을 추구하는 환원적 경향의 마지막 지점이 미스 반데어 로에에 의해 제시. 1920년대부터 시행착오를 거쳐 형성된 이념을 1950년 판스워스주택으로 실현했다. "적을 수록 좋다 Less is more"라는 로에의 말대로 철과 유리로 소재를 한정하고 기둥을 외부로 끄집어냈으며, 기둥 없는 내부 공간은 장식성을 일체 배제한 순수한 공간 그 자체였다.
1964년, MOMA에서 버나드 루도프스키라는 건축가에 의해 '건축가 없는 건축전'이라는 이름의 전시가 개최되었다. 세계의 토속 건축, 마을 등의 사진을 모은 이 전람회는 당시 주류였던 국제주의 양식에 정면으로 이의를 제기해 전 세계 건축가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무엇보다 의미가 있는 것은 루도프스키가 결코 비주류 건축가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내가 건축을 시작한 것은 1960년대 말로, 근대주의에 대한 불신이 세계적으로 만연해 있을 무렵이었다. 몇 건의 주택 설계를 거치고 나서 1976년에 스미요시나가야를 짓게 되었다. 스미요시나가야는 도시 주거에 대한 나의 생각이 가장 뚜렷한 형태로 드러난 주택으로 내게는 데뷔작이나 다름없다.
2장. 모여살다 스위스 수도 베른 근교의 풍부한 삼림 속에 지어진 지들룽할렌 아파트는 경사면에 짓는 집합 주택의 선구적 사례가 되었다.
일본에 집합 주택이라는 형식이 도입되고 건설되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 중반 이후이다. 초기에 집합 주택 건설의 선구가 된 것은 관동 대지진 뒤에 건립된 도준카이의 시도였다.
내가 1978년부터 관여해 온 집합 주택 프로젝트 '롯코 주택'은 고베 롯코산 산자락의 비탈면에 자리해 있다.
3.장. 광장 베네치아의 빛과 그림자 - 산마르코광장과 미궁 광장이 '빛'이라면, 작은 운하, 다리, 터널, 작은 광장 같은 다채로운 요소가 자아내는 공간은 '그림자'라고 할 수 있다.
도시 정비는 로마에서 이루어졌으며 그 시기는 르네상스 시대이다. 우리가 아는 나보나광장, 산피에트로광장, 포폴로광장 같은 아름다아운 광장은 대개 이 시기에 정비되었다. 스페인광장에서 계단은 서로 다른 높이를 연결한다는 본래의 기능을 뛰어넘어 광장의 배경이라는 역할을 해내고 있다. 즉 이 계단은 사람들의 온갖 행위를 품어 내는 극장이나 다름없다.
극장 같은 광장 공간을 꼽자면 피렌체 근처 시에나에 있는 캄포광장을 빼놓을 수 없다. 이 광장은 이탈리아의 유수한 역사적 광장 가운데에서도 특히 단정한 미를 보여준다.
광장을 에워싼다는 의식이 바로 서구 광장의 본질이며, 이는 또한 일본의 도시가 서구적 의미의 광장을 가질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서구인에게 광장이란 곧 '실외 거실'이다.
4장. 도시Ⅰ- 20세기의 꿈 아르데코 양식이 농염한 클라이슬러빌딩부터 미스 반 데어 로에(시그램빌딩: 모더니즘 마천루), 발터 그로피우스, SOM(1950년대 레버하우스: 광장까지 새로운 고층 건축상 제시한 모더니즘 마천루) 같은 근대 건축의 거장들이 남긴 철과 유리의 고층빌딩까지 대략 100년 사이에 지어진 건물 하나하나가 참으로 다양한 표정을 짓고 서로 겨루듯 총총히 서 있었다.
유수한 마천루 가운데 사람들에게 특히 친숙하면서도 상징적인 것이 1931년에 건설된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102층에 381미터라는, 당시의 기술적 한계를 극한까지 추구한 이 높이는 준공 이후 약40년 동안이나 세계 최고라는 칭호를 독차지했다.(1930년 1월 착공 ~ 1931년 5월 준공. 공사기간 16개월 소요)
5장. 도시Ⅱ - 도시에 살다 도시는 도시계획가의 이념대로 모든 것이 계획적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늘 변화와 성장을 거듭하는 생물 같은 것, 그것이 도시이다.
파리 시민의 살림집을 보면, 대부분의 시민이 아파르트망이라 불리는 집합 주택에 모여 살고 있는데, 1층에는 관리인이 살고, 2~3층에는 비교적 부유한 중산 계층이 살고, 4~5층에는 학생이나 노동자 같은 이른바 낮은 계층이 사는 식으로 서로 다른 계층이 한 건물에서 생활한다. 필요 이상으로 땅에 집착하고 집을 통해 어떻게든 차별화를 꾀하려고 하는 일본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근대를 대표하는 건축사가 지그프리트 기디온은 저서 <공간,시간,건축1941년>에서 오스만의 사업이 불철저했다고 비판하며, '획일적인 대로 뒤쪽에는 흡사 장롱 속처럼 지독히 난잡함이 숨어 있다.'고 썼다. 기디온뿐만 아니라 오스만의 도시 개조에 대한 평가는 지금도 판반양론이 갈린다. 그렇지만 ~ 나는 그 명암과 신구의 공존이야말로 파리라는 도시를 웅숭깊게 만든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크리스토퍼 알렉산더의 1965년 논문 <도시는 나무가 아니다> ~ '세미라티스(복잡한 양상)와 나무 구조(단순한 사고 형태)' ~도시 계획도 세미라티스 구조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요 논지였다.
6장. 도시Ⅲ - 도시의 기억 홀라인은 그 뒤에도 <모든 것이 건축이다>라는 논문에서 기성 건축 개념 자체를 해체하자고 주장하는 등 폭녋은 활동을 전개하며 건축계 전위로 확고한 지위를 쌓아 나갔다.
7장. 함께 일하다 작가가 다양한 분야와 대화를 거듭하고 다양한 영향을 받을수록 작품에는 두께랄까, 깊이 같은 것이 생겨나게 마련이다.
1920년대는 마르셀 뒤샹의 등장으로 지금의 현대미술로 연결되는 기성 미술의 해체 과정이 시작된 시기이기도 하다. 가장 유명한 것이 뒤샹이 1917년 <샘>이라는 제목을 붙여 발표한 기성품 소변기인데, 레디메이드라 명명된 그의 기법은 일상용품도 어디에 놓고 바라보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 주려는 시도였다. 가장 극적이었던 것은 잭슨 폴락으로 대표되는 추상표현주의의 등장이다.(페인팅 기법) 전후 미국에서 대량 소비 사회가 도래하면서 팝아트(1960년대 뉴욕 중심 발흥)가 등장했다. 팝아트가 주목한 것은 표현 기법 자체였다.
협업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가능성을 넓혀 준다.
8장. 터를 만들다 1973년 완공된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 1956년 국제공모에 덴마크 출신 건축가 요른 웃존 1등. 가장 큰 특징은 콘크리트 쉘 구조의 조합으로 만든 대형 지붕. 문제가 된 것은 ~ 그런 지붕이 과연 실현 가능한 것이냐 하는 점이었다. 사실 당시 기술 수준에서는 웃존의 안은 구조로 보나 시공 기술로 보나 실현이 불가능했다. 그 구조 설계에 정면으로 도전해서 멋지게 해결책을 끌어낸 것이 금세기를 대표하는 영국의 기술자집단 오브아럽앤드파트너즈였다.
알토와 마찬가지로 근대 건축의 조형 기법을 이용하면서도 거기에 지역의 전통을 융합시키려고 한 건축가로 멕시코의 루이스 바라간이 있다.(1947년 멕시코시티 근교 바라간 하우스)
9장. 사람을 키우다 바우하우스(뜻-건축의 집):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가 구상하고 실현한 조형예술학교 중세 도제제도 모방한 듯한 체제 취함.
라이트 건축 기법은 지나치게 강한 개성 탓에 아무나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 그러나 라이트의 건축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삶의 태도는 자연에서 배우는 그의 자세이다.
10장. 부흥의 방향 일본인은 어찌나 파괴를 좋아하는 민족인지, 뭔가를 짓고자하면 일단 먼저 백지로 돌려놓고 나서 시작하고 싶어 한다. ~ 역사적 건물들이 가차 없이 철거되어 버리는 것은 ~ 공적 의식이 결여 되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이래서는 도시의 자산이란 것은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축적될 수 없다.
11장. 정원 정원? 사람들 마음에 있는 낙원의 이미지가 구현된 것. ex) 스페인 남부 그라나다 알함브라궁전(이슬람) - 오아시스 동경 이슬람 건축의 특징을 표현하는 말 가운데 '겉이 속이고 속이 겉'이라는 말이 있다. 알함브라궁전의 본질 역시 무뚝뚝한 외관과 대조를 이루는 아름다운 안뜰, 건축의 미가 내부에 집약된 소우주에 있다.
이탈리아 계단식 테라스를 쌓는 르네상스식 정원. 르 노르트의 축의 기하학 - 프랑스식 정원(평지) ex) 루이 르보 설계한 보르비콩트저택의 정원.
와츠타워는 지금으로부터 반세기 전에 건설현장 노동자 사이먼 로디아가 1921년부터 1954년까지 무려 33년이란 세월을 들여 만들어 낸 아무런 용도도 없는 탑이다. ~ 와츠타워와 마찬가지로 현대 사회에 대한 비평이라고도 할 수 있는 건조물로 프랑스식의 오트리브 마을에 있는 슈발궁전이 있다. 이 궁전은 1912년부터 묘하게도 와츠타워처럼 33년 동안 우체부 슈발이 길에서 주워 모은 물건으로 혼자 지은 것이다.
모두가 생각을 공유하고 최선을 다해야만 건축은 비로소 생명을 얻는다. 계속 긍지를 품을 수 있는 한, 건축에 계속 최선을 다하고 싶다. 그렇게 간절히, 생각한다.
*사진에는 잘 나오지 않았지만 표지가 회갈색에 약간은 재생지와 한지의 중간 재질처럼 질감이 느껴진다. 아무런 디자인 없는 책 표지가 오히려 심플하다 못해 호기심을 자극한다. 어떤 건축의 꿈을 꾸는 건지... 더구나 회색 콘크리트의 대가 안도 다다오가 아닌가. 책장을 넘겨 봐도 컬러가 없다. 오로지 회갈색빛이다. 장의 시작마다 검정 바탕에 햐얀선으로 건축의 시작을 알리는 듯한 네모. 그 안에 선분할은 간략하면서도 인상적이다. 마치 건물을 지을 집터에 공간을 나누듯이. 책 내용은 다 좋다. 다만, 그래도 건물은 컬러로 보고 싶었다. 아쉽다. 롯코주택 같은 경우 컬러로 봤을 때 예뻤었는데 드로잉만 보여준다. 아쉽다.
르 코르뷔지에를 접한건 첫 시각이 좋지 못했었다. 그 사람의 건물보다 하자를 먼저 접했다. 우연히 읽은 책에서 사보아 주택이 나왔고 지금 시각으로 보자면 너무나 평이한 건물이었고 무엇보다 건축을 의뢰한 집주인들은 하자로 시달렸다고 하고 일반 결로 현상도 아닌 천장에서 물이 떨어져 생활이 어렵다는 편지를 수차레 했다는 얘기에 아무리 좋은 건물도 하자가 그것도 천장에서 물이 세면 안 좋다라는 인식때문에 그 분의 건물을 유심히 보지 않았었다가 롱샹 성당을 접하고 다시 생각하게 되었었다. 그리고 이 책에서 다시 사보아 주택이 나왔고 또 다른 시각을 접했고 왜 항상 사보아 주택인지 이해가 갔다. 같은 일, 같은 내용이라도 사람들의 시각에 따라 접근 방법에 따라 다른 해석, 다른 생각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책의 최대 장점이라고 생각된다.
정말 한 참 건물이 좋아져서 이 책, 저 책 읽기 시작할 때 <건축가 없는 건축>이라는 책을 접했다. 그때의 그 신선함이란... 생각의 폭을 넓혀준 정말 고맙고 소중한 책이었었던 기억이 난다. 좋아하기는 하지만 건축계열이 아니기에 이 책을 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그다지 관심있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 책을 읽은 후 건축이 어려운게 아니구나. 그리고 또한 어려운게 건축이구나 싶었었다. 안도 다다오라는 이름을 알고 있는 건축가의 입으로 말하는 버나드 루도프스키는 어떤 건축가였는지 더 알고 싶었지만 여기에는 더이상 언급이 없어서 약간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나중에 찾아 볼 수 밖에 없을 듯 하다.
일본인은 어찌나 파괴를 좋아하는 민족인지, 뭔가를 짓고자하면 일단 먼저 백지로 돌려놓고 나서 시작하고 싶어 한다. 라고 말하는데 과연 일본만의 일일까 싶다. 우선 우리나라도 빠른 경제 발전과 전쟁의 수습을 이유로 복원보다는 생성에 치우쳤고 그 결과 보존된 것이 거의 없다. 유물이 발견되도 아파트가 지어지고 정말 어느 분의 말처럼 먼 훗날 우리의 아이들은 아마도 지금의 우리가 알고 있는 전통의 집이 한옥이듯이 전통의 집으로 아파트를 꼽으며 전시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계속 긍지를 품을 수 있는 한, 건축에 계속 최선을 다하고 싶다. 그렇게 간절히, 생각한다. 라고 말하는 작가가 나라를 떠나 그사람의 다른 부분에 대한 생각을 배제하고 건축으로만 본다면 멋지다고 생각한다. 아는 얘기보다 모르는 건축가 모르는 얘기들이 많아서 흥미로우면서도 모든게 컬러없는 회갈색이기에 내용에 만 순수하게 시선을 줄 수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처음엔 그저 컬러 없음이 아쉽고 아쉬웠으나 이제는 내용이 눈에 밟히고 자꾸만 시선을 빼앗는 그 묘한 힘이 있어서 오로지 순수하게 작가의 생각을 접할 수 있었다. 좋은 책 좋은 작가의 생각을 볼 수 있어서 이번주도 감사한 하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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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건축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단지 저 건물이 특이하다.. 멋있다.... 정도의 평만 하고 지냈던 것 같다. 안도 다다오의 팬임을 자처하는 친구로부터 강력 추천 받아 낯선 분야의 책을 읽게 되었다.
이 글은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세계 각지의 건축과 도시를 둘러보며 느낀바와 건축에 대한 생각을 편안하게 풀어내고 있다. 특히 각 지역에서 생산되는 자재로 자기 생활에 맞게끔 지어진 살림집에 큰 의의를 두는 것에 안도 다다오의 건축적 소신을 느낄 수 있었다. 건축의 시작점은 "주거"에 두고, 광장, 테라스 같은 공공 공간을 통해 공동체를 엮어 "모여사는" 모습... 그런 흔적들이 저자가 소개하는 지역에 남아 있었다.
사람들이 살아갈 살림집과 터를 만들고, 공동체를 엮어주며 지역의 역사와 풍토를 담아내는 것이 건축이라면 건축을 "꿈꾸다"라고 표현하며 건축이 살아 움직이는 생물체와 같다고 한 안도 다다오의 의견에 동의한다.
이제 도시나 여러 건축물을 둘러보는 나의 마음이 조금은 달라질 듯 하다. 도시는 건축으로 표현된 사람들의 꿈의 집합체이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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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완성은 성장의 끝을 뜻한다. 건축은 정지한 오브제가 아니다. 사회 속에서 사람들이 계속 이용해 주는 한 늘 변화하고 성장하는 '생물'이다.
북 디자인의 힘을 처음으로 알게 해준 고마운 책이다 책 표지의 거친 촉감, 색감, 활자들이 마치 안도 의 작품들을 마주 할 때의 감동이지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통해서 안도 다다오라는 건축가가 더 궁금해지고 그의 작품들 또한 보고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어떤 분야에 있던 성공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누구나가 공감할 수있는 철학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서 스스로에게 응원을 보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