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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일
[여주주암분교]에 갔다 돌아온 후, 난 한가지 모습이 가끔 떠오르곤 한다. 건네준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다, 방향을 바꾸어 '짝짓기' 놀이를 할 때다. 언제나 그렇듯 사람들이 모여 함께 뛰다 보면 작은 부딪힘이 있게 마련, 한 아이가 다른 아이에게 주먹을 들며 "이게 죽을려구!" 했다. 주먹을 들었던 녀석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만 나로선, 어려서 주먹으로 아이들을 눌렀던 친구들에게 들었던 그 말이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씁쓸한 기억으로 떠오르곤 한다. 주먹아래 머리가 있던 주암분교의 어느 학생기분처럼 씁쓸하게.
언젠가 내 학창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죽은 시인의 사회'의 캡틴같은 선생님네 집에 친구들과 찾아갔을 때 나는 우선 그 분의 서재부터 훑어봤다. 분명 중학교 2학년 시절 <섬머힐>에서 한 구석 따다 적용시킨 벌금제도며 학급운영방침들이었다는 생각을 되짚으며 서재를 훑어봤지만 결혼 후, 책은 모두 치우신 건지, 그런 교육에 관한 책들은 좀체 찾아볼 수 없었다. 체육선생님이긴 하지만, 중학교 시절 선생님께 건전하게는 등산과 연극관람을 따가운 시선아래 좀더 끄적여본다면 '정신건강을 위한 1일 1 자위행동'을 남자아이들은 지도 받기도 하고, 'Go-Stop 7명도 칠 수 있다'를 사사 받기도 하는 둥, 정말 멋진 나날들이었다. 단지 그런 선생님께 그다지 관심을 못 받은 것이 여지껏 두고두고 가슴아프긴 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성석선생의 <사랑으로 매긴="" 성적표="">를 읽는 중 '촌지'에 관한 선생의 치부를 읽으며, 선생 초임시절 학생을 '선생이라는 권위'로 심하게 두들겨 팬 이야기를 읽으며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간혹 욕설대상이 되는 지난 날 내 선생님들에 대한 아픈 상처들을 위로 받을 수 있었다. (맞을짓 해서 맞는 건 그렇다 치지만, 아무리 그래도 강목으로 두들길 건 뭐고, 교과서 옮겨다 그대로 읽고 배끼면서 툭하면 매질인지. 부모님 다녀가시면 얼굴 빛 달라지고 아버지 바쁘시다며 안 만나신다고 그 화풀이를 내게 할건 뭐야. 더러븐..) 그리고 중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처럼 이분 역시 '아이들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 교육의 근본이자 무엇보자 학생들과 서로 신뢰할 수 있는 길이라는 걸 자신의 살아온 교단 일기를 통해 보여주었다.
그리고, 중.고등학교를 다니며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아이들의 글을 읽으며, 지금은 지나와 다시 돌이켜질 수 없는 시간들이긴 하지만, 그 때문에 괴롭기도 했던 시간들을 쉬이 잊고 학생들의 고생을 모른척 얼굴돌리고 사는 건 아닌가 하는 반성도 해보게 되었다. 다소 길긴 하지만 맘에 들었던 중학생의 시 한편과 이상석 선생의 시 한편을 옮기며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아버지의 주름살이="" 늘어="" 갈="" 때면="">
아버지의 얼굴에 살이 없어진 지 오래다.
나 하나 잘 되는 거 보기 위해
50대에 접어들어 가시면서도
기름옷 입으시고
도방일 하시는 아버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높은 뱃전을
오르내리시는 아버지
흔들리는 뱃속에서 주무시며
배멀미도 하셨겠지
이젠 아버지의 손에 장갑이
벗겨질 날이 없다.
어젠 아버지를 보았으나
얼굴을 들어 바라보지 못하겠다
주르말은 하나 둘 늘어만 가고
나이는 들어 힘을 못쓰시는 아버지.
눈치없는 아들 덕에
친척집에선 욕만 들으시는 아버지
그래도 아버진
전부 애비탓이지 하고 돌려버리신다.
아버지의 등뼈는 점점 휘어져가고
생활은 자꾸 빚에 쪼들리는데
용기를 잃지 않으시는 아버질 볼 땐
내가 어떻게 잊어버릴까
생각도 많이 했다.
아버지의 주름살은 늘어만 가고
세월은 멈춰지지 않는데
이대로 세월이 흐른다면
결코 아버진 오래 못 사실 분이다.
50대에 접어드신 아버지는
힘을 못 쓰시는데 뱃전에 올라가다
실수라도 하시면 큰일이다.
어떻게 할까, 가버린 세월
발로 칵 차버려도 저렇게 가진 못할진데
손 하나 까딱 않고
벌써 15년이란 긴 머리를 달린
세월을 어떻게 할까.
아버지의 주름살은 늘어만 가고
이젠 생길 자리도 없을 정도로
늘어버린 아버지 주름살은
내 생각, 살 걱정에
주름살은 펴지지 않는다.
p158,159 [인상깊은구절] <외할매 생각=""> 할매야 할매만 생각하면 눈물부터 먼저 나노 초라한 상여 뒤 따라 보리가 이글이글 누렇게 타오르던 산비탈 지나 소나무 우거진 산모롱이 생전에 못 잊던 손수 지은 낮은 기와집 내려다 보이던 곳 마른 땅 파내어 할매를 묻을 때 할매야 그때의 숨막히는 애통함을 할매는 알제 할매를 묻고 돌아내려올 때 참 이상케도 보리밭 두렁에 앉아 보리댕궁이 꺾어 나는 또 보리피리 불어 보았데이 온 세상 파란 하늘 할매의 나라 하늘을 보며 눈물도 없이 삘리리 보리피리는 혼자 울었데이 방학이면 감 삭혀 두고 난수밭에 강냉이 심어 날 기다리던 할매야 아이구 내 새끼 옥골선풍 내 새끼 엉뎅이 토닥거려 잠 재우던 울 할매 자식 많던 그 시절 애오라지 딸 하나 두고 가뭄 든 여름날 물꼬를 지키느라 늑대 우는 들판에 밤 새운 억척으로 한 세상 버티어 내면서도 동네 혼사 때면 새벽에 정좌하고 사돈지 써주던 울할매야 참으로 나는 할매의 사랑으로 이만큼이라도 더운 가슴 지닐 수 있었제 저승꽃 핀 손으로 선생질 잘 하라고 얼굴 싸안아 주던 울 할매야 아이들을 볼 때마다 나는 할매의 삶을 얘기해 준다 '하늘의외할매>아버지의>사랑으로>섬머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