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는 이 책을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정조의 죽음을 매우 안타깝게 여기며 오늘날처럼 혼란스러운 시대에 정조 같은 인물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이 책을 읽은 대부분의 독자들이 이런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그것이 이 매우 대중적이고 재미있는 추리소설의 궁극적인 힘이다. 게다가 이 소설은 ‘교양’ 이라는 것을 빼놓지 않았다. 읽고나서 뭔가 똑똑해진 느낌. 그것을 매우 기교적으로 책 전반에 융화시켰다. 이 소설이 대중적으로 매우 잘 쓰인 작품이란 점은 나도 동의하며, 여기서 소설의 기교적인 면을 논하지는 않겠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 소설을 읽고 느낀 사람들의 ‘정조에 대한 그리움’ 이 현재 한국 사회에 매우 위험한 메시지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이다. 거칠게 단순화시켜보자. 위 A가 느낀 감동에서 ‘정조’를 ‘박정희’ 로 바꾸어 보자. 작금의 박정희 향수를 자극하는 영남정서와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회마다 꾸준히, 선거 때마다 되살아나는 독재자, 힘에 대한 향수 곧 박정희에 대한 그리움에 이 소설은 매우 은밀하게 영합하고 있다. 이는 작가 이인화가 개인적으로 지독한 박정희, 국가숭배자란 점에서 보다 명확해진다. 그는 이후에 출간한 소설 ‘인간의 길’ 에서 노골적으로 반민족군사독재자를 미화, 찬양함으로써 지식인의 최소한의 양심마저 저버린 행태를 보였다. 문제는 “박정희같이 위대한 지도자의 영도아래 영원한 제국을 건설해가자(이것은 북한의 주체사상과도 일견 유사함이 엿보인다. 하기야 주체사상과 유신체제는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라는 지독히 반민주주의적인 국가주의, 미래에 대한 비전, 대안 제시 없는 막무가내격인 수구회귀에 대한 기득권의 얄팍한 술수가 왜 이렇게 소설로 현실화 되고 대중들은 베스트셀러로 응답하는 피드백 현상이 끊임없이 지속되는가에 있다. 결국 끊임없는 민주화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 안의 국가주의’ 를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문제로 귀결될 것이다. 개인이 최우선의 주체로 부각되지 못하고 국가를 위한 개체, 국익, 나라발전의 도구라는 명제 들이 아직도 한국인의 정서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현실에서 개인의 복지, 너와 내가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진정한 근대화는 아직도 요원하다. 더하여 그런 것들이 해소되지 않는 한 ‘영원한 제국’ 을 부르짖는 이와 같은 소설은 지속적으로 나올 것이며 국가주의, 민족주의, 국민이 횡행했던 그때를 그리워하는 기득권층과 ‘국민’ 들은 식지 않는 호응을 보내는 불행이 계속될 것이다. |
| 좋은 소설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한다. 또한 팔리는 소설은 무엇인가. 소설이란, 본질적으로 팔려야 한다. 소설은 태생부터가 팔기 위한 책이었다. 소설의 발달은 언제나 인쇄술의 발달을 전제로 했다. 활자매체의 대중화가 소설의 탄생 기반이었다. 종이가 귀하고, 책을 일일이 베껴 써야 하던 시대, 책이란 경전일 따름이었다. 기껏해야 민족의 시원을 다룬 서사시 또는 역사책일 뿐이다. 돈푼 깨나 있는 사람에게는 개인적인 문집 정도가 허용됐을 테지만, 이를 소설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소설은 대중에게 읽히기 위한 글이고, 그러자면 제작비를 건질만큼 팔려야 했다. 요는 재미다. 의미를 담는 건 그 다음의 일이다. 다만 그 재미의 초점을 어디에 두느냐가 좋은 소설과 나쁜 소설의 차이점이 아닐까. 정조 연간이라는 참으로 매력적인 시대를 배경으로, 시대를 관통하는 사상의 흐름을 짚어내면서, 그 흐름의 갈등을 살인사건이라는 장치에 얹어 풀어낸다면, 여기에 정조 독살설이라는 음모론까지 이는 좋은 재미를 품은 소설이다. 적어도 역사에 관심을 갖고 있는 내게는. 논란은 그 재미에 담긴 의미 때문에 벌어진듯 하다. 마치 왕정보고를 주장하는듯한 강렬한 왕구너중심주의에 대한 향수, 나아가 유신(維新)이라는 단어의 잦은 사용이 문제다. 물론 유신을 박정희의 10월 유신과 연결짓는데 대해서는 저자 자신이 방어선을 쳐두고 있다. "'유신'이란 이인몽의 시대에만 가능한 사상이다. 유신이란 주인에게 국가의 전제적인 권력을 되돌려 주어 체제를 일신하는 것을 말한다. 민주주의 시대에는 유신이 있을 수 없다." 이게 과연 진심일까? "홍재유신(정조의 절대왕정)이 실패함으로써 우리 민족사는 160년이나 후퇴했다. 우리의 불행은 정조의 홍재유신 대신, 박정희의 10월 유신을 경험해야 했다는 사실이다. 그야말로 권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받은 것으로, 현명한 왕법이 지배하는 절대왕정대신, 조야하고 참혹한 개발독재를 겪은 것이다" 이인화가 <영원한 제국> 이후에 내놓은 <인간의 길>이 박정희를 다루고 있음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이인화의 진의가 과연 어느 쪽에 있는지 심증을 굳혔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소설은 재미가 우선이요 의미는 그 다음이다. 비록 좋은 재미를 품은 이 구조 자체가 (작가 자신이 밝히고 있듯)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서 차용한 것이라 하더라고, 성공적인 차용은 그 자체로 이미 작가의 공이다. 갑자기 왜 <영원한 제국>을 떠올렸는지 모를 노릇이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뒤늦은 숙제를 하고자 했음인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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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문학사에서 밀리언 셀러를 기록한 소설이 몇 작품 안되는 걸로 아는데, 그 작품 중에는 90년대 초반에 출간된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이 들어 있다. 이인화하면 80년대 후반에는 류철균이라는 이름으로 평론으로, 90년대 초반에는 이인화란 필명으로 소설을 써, 문명을 떨친 인물로 기억하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나만 해도 80년대 후반 혜성처럼 등장한 그의 평론을 지면을 통해 읽으면서 이제 평론계에 젊은 피가 본격적으로 수혈되는구나 싶었다. 사진을 통해 앳된 얼굴을 한, 그것도 아주 모범생 혹은 백면서생같은 이인화의 얼굴을 보고난 뒤라 그의 활약상을 더욱 기대하게 됐다. 그런데 평론가로 기억하고 있던 그가 언제 소설가 변신을 한건지,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로 문학상 수상자가 되는 기염을 토해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약관의 청년이 평론과 소설 이 두 분야에서 모두 두각을 나타내는 것을 보고는 천재인가? 다른 작품들 평가하는 눈이었다가 자신이 평가받은 입장에선 어떻게 작품을 쓸까? 평론에서 창작으로 영역을 바꿔 글을 쓰는 것이 마냥 신기해 보였다. 그래서 더욱 관심을 갖게 됐는데, 그만큼 당시에는 평론가 겸 작가 이인화는 화제와 관심의 대상이었다.
'영원한 제국'은 정조의 독살설을 처음으로 다룬 작품으로 알려져있는데, 역사저술가 이덕일의 책으로 정종 독살설이 대중들에게 널리 퍼졌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작가의 말에 보니 이인화가 열한살 때 친척에게 정조 독살설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는 걸 보면 이미 일부 지역에서는 설화처럼 정조 독살설이 민간에 유포돼 있었나 보다. 그 때 들은 이야기가 작가의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주었고,'영원한 제국'이라는 작품으로 탄생하는게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이었다.
규장각 서고에서 영조대왕의 글을 정리하던 검서관이 의문의 시체로 발견되는 것으로 시작하는 '영원한 제국'은 읽기 편한 작품은 아니었다. 좋은 말로 하면 학구적이고, 부정적으로 말하자면 심하게 먹물냄새 나고 현학적이라는 평을 들을 만한 작품이었다. 스릴러, 추리기법이 활용돼 단서를 좇아가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정조 당대뿐 아니라 그 윗대의 당색을 기반으로 학맥과 당시 논쟁이 됐던 철학적 이론 등이 언급되고 있어서 어렵기도 하고,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상당한 집중을 요하는 작품이었다. 약관의 작가였지만 작품의 전체적 흐름은 젊은 분위기가 아니었다.
문제는 자꾸 다른 작품이 연상된다는 것이었는데, 그 다른 작품은 다름아닌 바로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였다. 작가의 말에서도 '장미의 이름'를 비롯한 몇몇 작품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밝히고는 있지만, 작가의 전작인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에서도 표절시비에 오른 전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처음 그에게 가졌던 평론과 소설, 양분야에서 탁월한 실력자라는 생각이 흐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인화는 전작의 경우에는 당시 불고 있던 '포스트 모더니즘'의 패티지 혹은 혼성 모방 기법을 보호막으로 내세웠다. 그것으로 표절시비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문단의 시선은 그렇게 관대하지 않았다. 사실 나부터도 그를 다시 보게 됐었다. 여기저기에서 비슷한 모티프를 차용해서 작품을 쓴다는 것, 아무리 좋게 봐도 짜깁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쓰면 편하기야 하겠지만 단 한 줄의 문장때문에 혹은 내용 때문에 피땀을 쏟아부을 각오가 서 있지 않는 작가라면? 혼성 모방에 혹은 다른 작품의 모티프를 수시로 차용하는 작가라면? 우선 나부터도 곱게 봐주진 않을 것이다.
'영원한 제국'에서 발생하는 연쇄살인 사건은 영조가 남긴 책 '금등지사'와 이어지고, 그 책을 탈취하려는 움직임으로 진행되는데 작가의 이력에 너무 신경을 써서 그랬는지, 더러더러 책의 내용을 놓쳤더니 책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고 이해하고 있는건지 자신이 없었다. 그럼에도 '영원한 제국'은 정조시대를 배경으로 한 수 많은 팩션들이 탄생하게 된 데에 지대한 역할을 한 작품이라는 것, 그리고 영화로 만들어질만큼 흥미로웠던 것은 분명했다.
*'영원한 제국'은 2006년 같은 출판사에서 개정판이 나왔지만 이 리뷰는 초판 42쇄 본을 읽고 쓴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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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정 하룻밤에 이토록 많은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인가.... 그동안 이름만 많이 듣고 있던 책을 학교 수업으로 인해 읽게 되었다. 어떤 이야기인지 전혀 모른채, 겉표지에 조선시대라고 나와있는 말로 미루어 지루한 역사책이겠거니 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왠걸... 읽기 시작하면 그 뒷 이야기가 궁금해 손을 뗄수 없을만큼 흥미진진한 추리소설이었다. 물론 이 책이 실화가 아닌 작가가 알고 있는 설화를 바탕으로 한 추리소설이라는 것은 이야기가 다 끝난 후 작가의 말을 읽고 나서였다. 그 전까지는 생생한 역사의 인물들과 상황들로 인해 난 이 이야기가 진정 실화인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들이 그동안 낱낱이 공개되지 못했음에 얼마나 마음아파 했던지... 어제 저녁 이 책의 뒷부분을 읽으면서는 그 조마조마함과 가슴졸임에 의해 섬짓해서 차마 방문을 열수도 없었으며 꿈에 나올까 무서워 잠자는 것도 두려웠으니--;; 내가 이 책에 얼마나 빠져들었는지 더이상 표현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이 책을 다 읽은 지금에서야 생각나는데.. 이 책은 오폐라의 유령같은 서양의 추리소설 못지 않은 우리나라의 정말 잘 쓰여진 추리소설이 아닐까 싶다.. 정말 재밌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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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수학선생님의 추천으로 읽게 된 책이다. 하루의 일을 장편소설로 엮어놓았다길래 궁금하기도 하고, 정조와 관련되었다길래 평소 역사소설을 좋아하던 나는 망설임 없이 책을 사게 되었다. 책을 검색했을 때 나오는 표지 이미지를 보고 조금 실망한 감도 있었지만, 책이 도착해 읽게 되는 순간 그런 실망감들을 싹 씻어버릴 수 있었다. 학교 자습시간에 첫 장을 펼치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조금만 읽다가 공부를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도저히 책을 덮어버릴 수 없었다. 결국 자습 시간이 다 끝날 때까지 읽다가, 집에 가서 밤을 새워 그 다음날까지 다 읽어버리고 말았다. 흥미진진하고 나를 소설 속으로 끌어당겨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이 책을 도저히 놓을 수가 없었다. 조금의 아쉬움이 있다면 읽는 내내 긴장감을 늦출 수 없게 만들다가 마지막 결말에서는 그 긴장을 끝까지 이어가지 못한 것이 그 아쉬운 점이다. 내가 생각하는 바대로 되지 않아 결말이 조금 아쉬울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현실적인 결말이었을런지도 모른다. 책 표지 디자인 때문에 상태평점에서 별을 한개 뺐지만, 전체적으로 작품내용도 좋고, 책 자체도 좋고 추천할 만한 책이다. 내가 친구들에게까지 광고를 하고 다니며 읽어보라고 했을 정도이다. 독자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가 이 책을 읽었을 때의 느낌을 그러했다. 다른 이에게 꼭 추천해주고 싶은... 내가 이 책을 빌려준 친구도 다 읽은 후에 내게 책을 돌려주며 정말 재미있다고, 잘 울지않는 자신이 울었다고 하면서(슬픈멜로내용은아니지만.) 고맙다고 하더라. 역사소설을 좋아한다면 한번쯤 읽어봐도 괜찮은 책이다. [인상깊은구절] 시 ''올빼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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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신문에서 한 일본인 학자의 책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그 일본학자의 말에 의하면 한국정치의 가장 문제점은 정치인들이 관념속에서만 머무는 정치를 하기 때문이란 것이다.
현실속에서 구체적으로 강한 실현성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머리속에서만 머무는 관념의 정치에만 매달려 현실을 개선할 강한 힘을 모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가장 현실 개선의지를 가진 한국의 정치인으로 박정희를 들었다. 그리고 다시 6년만에 꺼내든 이 책을 읽는동안 내내 그 기사가 머리에 맴돌았다.
정조의 홍재유신과 박정희의 10월 유신! 저자는 홍재유신이 실패함으로써 우리 민족사는 160년이나 후퇴했으며 우리의 불행은 정조의 홍재 유신대신, 박정희의 10월 유신을 경험해야 했다고 적는다. "권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받은 격, 현명한 왕법이 지배하는 절대왕정 대신, 조야하고 참혹한 개발 독재를 겪은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 내내 정조의 현실적 의지와 박정희의 한마디로 평가하기 힘든 역사적 의미들이 오버랩 되었는데 책의 말미에 이렇듯 저자는 직격으로 두 정치인을 비교하는 것이다.
역사는 그 결과만으로 평가되는 것인가! 결과를 위해서라면 절대주의와 배타주의가 용납되는 것인지 알 수는 없다. 사극 열풍이 일고 있는 요즘, 다시 꺼내 보거나 새로이 읽어 본다면 많은 생각을 갖게 하는 책이라 생각된다.
우리는 관념의 정치였다........ 허나 어쩌랴~ 우리가 신봉한 성리학이라는 것이 관념의 극치에 달한 학문이고 관념체계인 것을...... 덤으로 이 책을 쓴 것은 저자의 나이 불과 28세 때란것을 감안하고 읽는다면 역사에 해박하고 우리것에 탐닉하는 한 재능있는 젊은이를 만나는 즐거움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그날 이후 세상은 마치 곁눈질로나 볼 수 있는 위협적인 어떤 것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사람의 소망이 대부분 다른 사람과의 경쟁속에서, 다른 사람을 좌절시키고 다른 사람의 자존심에 상처를 냄으로써 달성된다는 무서운 이치를 처음으로 가르쳐준 이야기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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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한하게 생긴 돋보기를 귀에 걸치던 안성기의 정조가 생각난다. 많이 어둡던 영화 속 화면들과 어떤 위협 속에도 굴하지 않고 뚱~하게 고집스럽던 김명곤의 정약용도 기억이 난다. 어렴풋하게 그들의 모습과 유난히 어둡던 영화의 이미지가 기억에 남아 있던 어느 날, 드라마 [응답하라 1994]를 보다가 주인공 쓰레기 손에 쥐어진 <영원한 제국>을 보았다. 드라마에 나왔던 것과 같은 표지의 책을 사려다 보니 중고샵까지 이용하게 되었다.________^ㅋ 정조의 좀 무모하다 싶은 개혁 정치와 결단력, 그 이상을 따라가려 했던 이인몽, 가진 것이 많아 지킬 것도 많았던 심환지의 노론들.. 그리고 그들의 중심에 있었던 영조의 금등지사. 정조의 유신 정치가 영조의 금등지사로 인해 제대로 이뤄졌다면.. 우리의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쉽사리.. 이랬을 것이다~고 말은 못하겠다. 모든 일이 의도된 대로 흘러가지 않을 뿐더러, '의도'만큼이나 '타이밍'이 무지무지하게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조의 실패에 내내 아쉬움이 큰 것은 그의 개혁에 기대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어.쩌.면.. 이런 말을 내뱉게 만드는 그런 기대감이..
예전에 읽었던 <정조의 비밀 편지>와 요근래 읽은 <영원한 제국>에서의 정조가 많이 일치하는 면이 보여, 정조는 조선의 다른 어떤 왕들보다도 자신을 잘 드러내던 왕이 아니였을까~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p.39 싸울 때마다 이기는 것은 좋은 것이 아니다(百戰百勝 非善之善者也)는 것이 전하의 지론이었다. 50번 쏘아 50번 다 명중시킨다는 것은 왕의 관점에선 지나친 것이었다. 전하는 지나친 재주를 자랑하여 남을 자극하고 스스로 교만해지는 자를 가장 싫어하셨다. 더구나 만인의 위에 선 군부로서 그런 바보짓을한단 말이냐? 전하의 침묵엔 그런 훈시가 숨어 있는 것이다.
p.84 인생에는 피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아무리 빌고 몸을 굽히고 피해도 나는 내가 존재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을 피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당당하게 서서 당해 주어야 한다. 주공의 『서경』처럼 어딘가에 나의 결백을 담은 책이 있으리라. 아니, 그런 책을 내가 쓸 수도 있으리라. 그래, 운명은 앞서서 뜻 있는 자를 인도하는 것이지 뜻 있는 자의 멱살을 잡아 끄는 것은 아니다.
p.145 <피 묻은 상복이여, 피 묻은 상복이여 / 삭장(削杖) 지팡이여 삭장 지팡이여 그 누구의 것이었더뇨 / 이 일을 금등에 담아 천년을 간직한다 해도 / 나는 이 세상 제사지낸 자리마다 뉘우치리라 (血衫血衫 桐兮桐兮孰是 / 金藏千秋 / 子悔望祠之臺)> -「혈삼동혜사」
p.251 물론 인몽이 박지원의 생각에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인몽은 박지원으로부터 비롯된 경박하고 저질스러운 문풍에 대한 혐오감을 죽을 때까지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인몽은 누구도 자신의 시대를 선택해서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죽어진 시대를 최선을 다해서 살 뿐이다. 박지원이 안으로 자신의 신념을 간직하면서도 겉으로는 <나는 못된 백성이요 문단의 쓰레기>라고 못난이 소리를 하며 살아남으려는 것처럼. 그렇다면 인몽도 그들의 생각을 어느 정도는 인정해 줘야 하지 않을까. 그들도 인몽에게 주어진 시대의 일부인 것이다. |
| 음,,이책을 처음 알게 된건 우리 교육심리학 교수님의 추천이었다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 감명받고 쓴것이라 했는데 이 책도 추천한다고 하셨고 나는 무조건 이름을 핸드폰 메모란에 저장해 두었다 방학이 되고,방학동한 30권의 책을 읽으려고 했던 나는 한달이 지나도록 몇권 읽지 못했고, 내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도서관을 찾았다 도서관에서 읽을 책을 고르던중 읽고 싶었던 리스트가 저장된 휴대폰 메모를 뒤적였고 장미의 이름은 이미 대여중이었기에 영원한 제국을 빌리게 되었다 책을 읽는 그 순간부터 나는 이인몽에게 빠져들었고 영원한 제국 전에 읽었던 조선 왕 독살사건의 22대 왕 정조의 독살사건과 관련한 내용이라 손을 놓을수가 없었다 책을 다 읽은 순간 나는 <취성록>이 실제의 책이라고 착각하게 되어 흥분하게 되었고, 나중에야 소설을 실제 있었던 이야기처럼 의도해서 독자를 속여 넘기는, 이인화의 의도대로 빠져버렸다 ...ㅋㅋ 이 책을 보고 정조와 박정희를 동일시 한다, 홍재유신과 독재정권을 비교함으로써 박정희를 미화시킨다 말들이 많지만.. 그래도 정조는 위대한 왕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정말 <영원한 제국>이나 <조선 왕 독살사건>에서처럼 정조가 독살이었든 아니면 자연사였든,, 노론에게 왕은 눈엣가시였으며 그의 이른 죽음으로 우리나라가 세도정치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건 자명한 일일것이다 .. |
| 올빼미야 올빼미야 내 자식을 잡아먹었거든 내 둥우린 헐지 마라. 알뜰살뜰 길러낸 어린 자식 불쌍하다 하늘 흐려 비 오기 전 뽕뿌리를 멋겨다가 창과 문을 엮었더니 이제 너희 낮은 백성이 감히 나를 모욕하느냐 이 두 손을 바삐 놀려 갈대 이삭 뽑아다가 하루 모으고 이틀 모으고 입부리도 병들었네 내가 쉴 곳 없었기에 내 날개는 늘어지고 내 꼬리는 맥빠졌네 내 둥우리 위태롭게 비바람이 흔드나니 슬픈 울음 절로 나네 --- pp.239-240 가장 기억에 남는 ...영조가 그의 아들 사도세자를 죽이고 후회하며 강력한 노론의 세력을 두려하며 지었다는 ''올빼미'' 라는 시이다.(이것도 아마 허구일지도.......) 장원선배가 빌려준 책 영원한 제국 예전에 OST 뮤직 비됴 본 기억이 나서 냉큼 받아 읽었다. 정조의 죽음에 얽힌 비화들... 작가의 상상력과 떠돌던 풍문을 종합하여 사실적으로 그려낸 책.. 안타깝고 또 안타까워 속이 상하지만.. 어찌하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휩쓸린 영웅을........ 그렇게 뒤틀린 역사의 대가는 우리 후손들이 받고 있는건 아닌가...... 제발 악습하지 말았으면 소망하는데....... 계속 반복되고 있는듯한 느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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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 이인화는 그의 대학원 학위논문을 바탕으로 이 소설을 엮었다. 그만큼 책을 구성하고 있는 사상적 조류, 그리고 시대관에 대한 분석또한 탁월하기 그지 없으며, 작자가 뛰어난 소설가중 한사람인 만큼 소설적 재미 또한 상당하다. 이책을 본인은 3번 보았는데 볼때마다 새로운 감동을 준다. 역사물을 좋아하고 역사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새삼 우리 문화, 조선시대 선비들의 중후한 매력을 다시 느끼게 만든 책이었다. 선비가 가져야할 덕 그리고 그 엄밀한 사상적 토대. 붕당정치라 하지만, 붕당정치는 사실 성리학의 이상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당을 구성하는 사상적 논의 또한 얼마나 활발했었던가! 현재 우리의 통치자들은 이런 전통에 기반을 둔 권위있는 정치철학을 가지고 있기나 한가?
과거 유교적 이상국가를 건설하려던 우리의 꿈은 현재엔 어디에도 찾을수 없다. 도덕을 강조하던 정열이 경제로 옮아가면서 우리의 도덕국가에 대한 열정은 '사대주의'라는 낙인을 찍힌채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재의 정치판과 과거를 비교해 보자. 차라리 그 편이 낮지 않은가? 어느 누구나 뚜렷한 사관을 가지고 이야기 한다. 모두가 철학자며 지성인이다. 현재 우리의 정치가중 어느 누가 사상계를 주름잡을 만한 최고의 지덕을 소유하고 있는가? 정치담론을 펼치려면 차라리 이렇게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은 사람이라 한다. 사람이 바로 시대를 이끌어가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시대든 우리 시대와 같은 문제들은 늘상 안고 있기 마련이다. 어느 시대나 같을 것이다. '이상'이란건 언제나 '이상'일 뿐이다. 그러나 그 '이상'이 모든것 이었던 시대. 모두가 그 '이상'을 두고 논했던 시대. 당파싸움이라? 어느누가 욕할수 있을 것인가!? [인상깊은구절] "우리가 알수 있는 것은 희미한 저자의 관념, 그리고 그 관념이 역사와 맺어온 상직적인 관계뿐이오. 말하자면 옛시대의 완벽함에 대한 환상과 존중이란 말이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