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스크바의 신사』는 아마존과 뉴욕타임스의 베스트셀러 리스트에서 꽤 오랫동안 보았던 책인데, 이번에 현대문학 출판사에서 번역되어 나와 드디어 읽게 되었습니다. 읽기 전에 책에 대한 어떠한 배경지식도 없었던 데다 러시아가 배경이라서 좀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고, 종이책으로 700쪽이 넘을 정도로 분량까지 많아서 겁을 좀 먹은 채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책장은 술술 넘어가고 읽다 보면 어느새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으며, 나중에는 줄어드는 페이지에 한숨이 절로 나올 정도로 재미있는 소설이었습니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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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면서 로스토프 백작은 구시대의 인물로서 사형을 당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혁명 전 그가 썼던 < 그것은 지금 어디 있는가?> 라는 시와, 고위직 사람 중에서 혁명 이전 단계에 영웅의 범주에 넣는 사람이 있어 사형을 시키는 대신 메트로폴 호텔에서의 '종신연금형'에 처해졌다. 그는 메트로폴 호텔 스위트룸에 머무르고 있었지만, 이 판결 이후에 하인용 다락방으로 쫒겨났다.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몇 가지 물건만을 챙겨서 방으로 갔을 때 창 밖에 있는 비둘기와 애꾸눈 고양이와 인사를 나누는 장면을 보면서 이 백작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사람이 좋은 위치에 있다가 바닥이라는 곳으로 떨어졌을때 나타내는 반응은 술에 빠지거나 폭력을 행사하거나 하면서 인생을 망치기 십상일텐데 로스토프 백작은 달랐다.
인간은 자신의 환경을 지배해야 하며 그러지 않으면 그 환경에 지배당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한편으로 백작은 평생을 연금 상태로 지내야 하는 형을 선고받은 사람이 이 목표를 이루려면 어떻게 하는 게 가장 가능성이 높은지 궁리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 p 52
갇혀있는 상황을 견디는 힘으로 에드몽 당테스는 복수를 ,해적들에게 잡혀 노예가 되었던 세르반테스는 쓰이지 않은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나폴레옹은 싸움에 이기고 파리에 돌아가는 환상을 선택했다면, 백작은 로빈슨 크루소처럼 실질적인 일에 헌신함으로써 자신의 결의를 유지해나가겠다는 다짐을 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자살을 하고자 마음먹은 적도 있었지만 고향의 냄새, 고향의 맛이 다시 그를 살게하는 힘이 되었다. 처음 생명을 얻은 곳, 두 번째 삶을 살게 한 곳, 그리고 ······
아버지는 시골 아버지가 태어났던 곳, 내가 태어났던 곳에서 1년 중 몇 달을 보내신다. 힘드실텐데 왜 그리 자주 가시는지 솔직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많은 작품을 만났을 때도. 한 살 더 먹어서일까? 고향이란 누군가에게는 삶에 대한 이유, 목적이 될 수도 있는 것이라는 것을,고향이 가지는 의미를 이 책을 읽으면서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모험심 많고 열정적인 아홉 살 꼬마 숙녀 니나와 친구가 되었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마스터 키를 이용해 호텔 곳곳을 돌아다니기도 하고, 호텔 직원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공산당 당원에게 외국 문물에 대한 교습을 해주기도 하면서 호텔 생활을 해나갔다. 가장 큰 사건은 성인이 된 니나가 사정이 생겨 여섯 살 딸 소피아를 백작에게 맡긴 것이었다. 소피아가 그의 삶으로 들어오면서 결국 백작의 삶은 하나의 점으로 수렴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한 사람의 인생을 탁 탁 끊어서 얘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순간과 순간이 모이고, 선택과 선택이 모여 한 사람의 인생은 완성이 될 것이다.
"돌이켜보면 역사의 모든 전기마다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하지만 그 말이 역사의 흐름을 뒤바꿔놓은 나폴레옹 같은 사람들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야,여기서 내가 말하는 사람은 예술이나 상업, 또는 사고의 진화 과정에서 중요한 갈림길마다 매번 등장하는 남자와 여자들이야. 마치 '삶'이란 것이 그 자체의 목적을 수행하는 데 도움을 받을 요량으로 때때로 그들을 불러낸 것처럼 말이지. 소피야, 내가 세상에 태어난 후 이제까지 인생이 나로 하여금 특별한 시간에 특별한 장소에 있게 한 것은 딱 한 번뿐이었어. 바로 네 엄마가 너를 이 호텔 로비로 데려온 날이란다. 그 시간에 내가 이 호텔에 있었던 것 대신에 러시아 전체를 통치하는 차르 자리를 내게 준다 해도 난 절대 그걸 받아들이지 않을 거다." - p 657
이렇듯 소피야가 그의 삶의 거의 모든 부분을 차지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가 사랑했던 친구 미시카, 그의 연인이었던 배우 안나 우르바노바, 호텔에서 식당 웨이터로 일하면서 만났던 미국 기자, 삼인조라 말하며 우정을 돈족히 했던 식당 주방장 에밀과 식당 지배인 안드레이, 재봉사 마리아등 그가 만났던 많은 사람들도 그의 인생에 빛과 같은 존재였다. 진심으로 대한다면 상대도 진심으로 화답할 것이고, 누군가를 도왔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그것은 자신을 위한 것이 되어 돌아온다는 그 단순한 진리를 우리는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것 아닐까?
이 소설은 1889년에 태어나 1922년부터 1954년까지 호텔에서 감금되었던 백작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긴 세월을 한 장소에서 보내는 한 남자의 이야기 지루하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놀랍게도 한 순간도 지루하지 않았다. 배경이 볼셰비키 혁명 후의 러시아이기 때문에 그 당시 러시아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가 없었다. 구시대 인물로서 분명 좋은 상황에 있다고는 할 수 없는 그. 하지만, 그의 의연함, 긍정적인 성격을 알 수 있는 대사가 있었다. 각하라고 부르는 직원이 있다는 것이 맘에 들지 않는 지배인의 말에 이렇게 답했다.
"시대가 해야 할 일은 변화하는 것입니다. 할레키씨, 그리고 신사가 해야 할 일은 시대와 함께 변화하는 것이지요." - p 122
귀족이면서 신사인 로스토프 백작의 유쾌한 언변, 문학, 예술에 대한 깊은 지식, 인간에 대한 존중과 사랑을 만날 때마다 존경스러운 맘이 들었다. 백작을 통해 듣는 톨스토이, 안톤 체호프, 도스토 옙스키등의 작가와 화가 일리야 레핀의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로움 그 자체였다. 백작이 스위트룸에서 다락방으로 가지고 올라갔던 물건들이 품고 있는 이야기들 하나 하나도 재미있었는데, 그 물건들이 이야기의 흐름에 중요한 요소였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엔 작가가 미리 적재적소에 배치해뒀던 것들에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이 사람이 결코 불행하게 삶을 마무리하지 않도록 해주세요' 라고 어느 순간 바라고 있었다. 작가는 어떤 결말을 끌어낼까? 생각지도 못한 결말이었다. 결말을 보고 다시 되짚기를 해야했다. 인과관계가 분명치 않은 부분이 있어서 그냥 읽어나갔던 부분들이 있었는데, 결말을 보고 나니 모든 것이 맞아떨어졌다. 이럴 수가! 이런 수를 염두에 두었던거구나.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그리고, 가슴 찡한 감동도 있었다. 슬픈 장면들도 있었지만 너무 아프지 않게 그려주어서 좋았다. 인간의 삶이 이루어지는 공간과 삶의 깊이는 정비례 관계일까? 환경을 지배하지 않으면 그 환경에 지배당할 수 밖에 없다는데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할까? 인간이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참 많은 생각들이 오가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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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혁명 이후 격변의 도시 모스크바. 성 안드레이 훈장 수훈자이자 경마 클럽 회원, 사냥의 명인인 알렉산드르 일리치 로스토프 백작은 러시아 내무 인민위원회 소속 긴급 위원회에 출두했다. 1913년에 쓴 '그것은 지금 어디 있는가?' 라는 시를 썼다는 이유로 죽음을 면하고 평생 가택 연금에 처해졌다. 백작이 머물고 있던 메트로폴 호텔의 스위트룸에서 하녀들의 숙소로 제공되었던 다락방으로 옮기게 되었다. 백작이 쓰던 무거운 책상과 커피 탁자, 등받이가 높은 의자, 도자기 접시, 여동생 옐레나의 초상화가 다였다. 그가 여태 지내본 곳 중 가장 작은 방이었다.
그가 호텔밖으로 나옴과 동시에 총살형에 처해지므로 호텔 안에서 모든 생활을 해야 했다. 자살을 하려고 올라갔던 곳에서 고향의 사과나무 꽃향기를 맡았던 그는 점차 가택 연금의 생활을 즐기기 시작했다. 노란 색을 좋아하는 어린 소녀인 니나와 함께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함께 놀고, 유명한 영화 배우의 연인이 되었다. 또한 당의 지도부에 있던 당원의 프랑스, 영어 개인교사가 되어 그와 친분을 나눴다. 그리고 주방장과 식당의 지배인과 함께 주방에서 비밀 회담을 가졌다.
모든 사람에게 시중을 듣던 그는 이제 다른 사람의 식사 시중을 드는 호텔의 웨이터가 되었다. 웨이터를 하는 중에도 그는 품격을 잃지 않는다. 근무 시간에 음식을 먹는 사람들을 살피고 문제점을 파악해 자리 배치에도 능하다. 휴무일이 되면 평소대로 그는 좋은 와인을 선별해 즐기는 생활을 영위한다. 한 어린 소녀가 그에게로 오게 되는데, 이 소녀는 니나의 딸로 그의 삶을 통째로 바꿀 아이였다. 오로지 자신의 삶을 사는 것에만 맞춰져 있던 그가 새롭게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아이를 살피고 아이와 함께 놀아줘야했다.
로스토프 백작은 어느 날 자신이 썼던 스위트룸에 마스터키를 열고 갔다가 그가 누리지 못한 생활에 대한 안타까움을 비쳤다. 다락방에 올라간 후 옷장 문을 유심히 살피고 옷장의 경계에 있던 다른 방을 망치로 두드려 그곳에 자신의 다른 공간인 서재를 만들었다. 그가 가택 연금의 상태에서도 질 좋은 와인을 즐기는 이유는 다리가 세 개인 할머니의 책상 때문이었다는 것을 독자들은 쉽게 알 수 있다. 호텔 안에서만 생활하는 그에게 웨이터 역할은 지루한 삶의 하나의 활력소였을 것이다. 직업을 가지는 것은 신사의 일이 아니라고 여겼지만 말이다.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박수 갈채를 받느냐 못 받느냐가 아니야. 중요한 건 우리가 환호를 받게 될 것인지의 여부가 불확실함에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지니고 있느냐, 하는 점이란다. (609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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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역사의 모든 전기마다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하지만 그 말이 역사의 흐름을 뒤바꿔놓은 나폴레옹 같은 사람들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야. 여기서 내가 말하는 사람은 예술이나 상업, 또는 사고의 진화 과정에서 중요한 갈림길마다 매번 등장하는 남자와 여자들이야. 마치 '삶'이란 것이 그 자체의 목적을 수행하는 데 도움을받을 요량으로 때때로 그들을 불러낸 것처럼 말이지. (657페이지)
혹시 구 시대의 귀족이었던 로스토프 백작의 이야기가 꽤 무거운 정치적 흐름을 따라가리라는 생각을 했다면 오산이다. 소설은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처럼 블랙 유머가 가득하다. 신사의 품격을 잃지 않은 로스토프 백작의 행동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호텔의 근무자들은 여전히 그를 백작처럼 대우한다.
여기에서 보면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해답이 보인다. 그가 종신 연금 상태에 좌절해 죽고 말았다면 그는 이런 삶을 살수 없었으리라. 소피야라는 한 소녀의 출연이 그를 좀더 사람답게 살게 했을 것이고, 소피야와 함께 제길 게임을 했던 것들도 살아가는 즐거움을 알았기 때문이다. 소피야를 가르치는 즐거움, 소피야가 커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뿌듯함이 그를 살게 했던 이유였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긍정적인 마인드가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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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로스토프 백작을 따라 호텔에서만 생활했던 소피야가 파리로 연주 여행을 떠나게 되었을 때 로스토프 백작은 아버지로서 두 가지 충고를 하게 된다. 여기에서 그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삶을 살았는지 우리는 알 수 있다.
첫째는 '인간이 자신의 환경을 지배하지 못하면 그 환경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둘째는 '가장 현명한 지혜는 늘 긍정적인 자세를 잃지 않는 것'이라는 몽테뉴의 격언이었다. (654페이지)
스스로 몽테뉴의 격언을 생각하며 그는 주어진 환경에 적응을 하게 되었다. 딸에게 건넨 충고처럼 적응을 하기 보다는 오히려 그 환경을 지배하는 자가 되었다는 뜻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호텔 안이라는 공간에서 친구와 연인을 만들었으며,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추진할 수 있도록 했다.
러시아의 구 시대 귀족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이라 고전적일 것이라는 우리의 예상을 뒤엎는다. 꽤 두꺼운 페이지지만 로스토프 백작의 행보를 파악하다보면 금세 책장이 넘어가 있다. 유머스럽고 한편으로는 통쾌하다. 그리고 감동적이다. 재미도 있다. 암울한 시대, 진정한 삶에 대한 통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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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상황을 겪고 아는 것과 배워서 아는 것은 다르다. 1922년에서 1954년까지의 러시아를 이렇게 낭만적으로 그릴 수 있는 것은 작가가 미국인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가령 솔제니친에게 <모스크바의 신사>를 기대할 수 없지 않을까? 그 시기를 직접 겪은 사람에게는 기대할 수 없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시기를 직접 살아내야 했던 사람에게는 어쩌면 <모스크바의 신사>는 한 낱 꿈같은 작품일 것 같다. 1922년 6월 21일 내무 인민위원회에서 총살 당하지 않고 목숨을 건진 것은 [그것은 지금 어디 있는가]라는 시를 쓴 덕분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 보면 알게 되겠지만 주인공 알렉산드르 일리치 로스토프 백작이 쓴 것이 아니다. 그 시는 로스토프 백작의 친구 미하일 표도로비치 민디흐(미시카)가 쓴 것이었다. 혁명 전에 쓰여진 이 시는 미시카가 비밀경찰을 피하기 위해 로스토프 백작의 이름으로 발표한 것이었다. 그런 시가 로스토프 백작의 목숨을 살렸다. 목숨은 구했지만 묵고 있는 메트로폴 호텔에 감금 된다. 한 걸음이라도 바깥으로 나간다면 총살이다. 호텔이라고는 하지만 6층짜리 건물에 감금된 로스토프 백작에 감정이 이입되어 숨이 막히는 듯한 기분이 읽는 동안 잠깐 들기도 했다. 32살의 로스토프 백작의 좁은 세계를 확장시켜 준 것은 9살 소녀 니나 쿨리코바였다. 메트로폴 호텔의 마스터키를 목에 걸고 다니는 니나는 메트로폴 호텔에서 못가는 곳이 없고 안 가는 곳이 없다. 니나와 동행하는 로스토프 백작은 구시대에서 새로운 시대로 발을 들여놓는다. 니나가 있었지만, 동생의 10주기 기일에 로스토프 백작은 메트로폴 호텔의 연금생활을 끝내기 위해 지붕 위로 올라간다. 여기서 그를 잡아 세우는 것은 아브람이 치는 꿀벌이다. 로스토프 백작의 고향 니즈니노브고로드의 사과나무 벌꿀을 만든 것이다. 살기로 결정한 로스토프 백작은 메트로폴의 레스토랑 보야르스키의 웨이터 주임으로 일을 한다. 그리고 로스토프 백작의 삶에 다시 등장한 니나는 5살의 딸 소피야를 로스토프 백작에게 떠맡기고 남펴의 구금지로 떠나버린 후 연락이 두절된다. 로스토프 백작을 아빠라고 부르게 되는 소피야와 함께 생활하게 된 백작의 삶은 한 번 더 확장된다. 소피야가 머리를 다쳤을 때는 총살이고 뭐고 앞뒤 가리지 않고 메트로폴 호텔 밖으로 소피야를 안고 뛰쳐나간다. 이야기의 마지막 메트로폴 호텔을 완전히 떠나게 되기 전에 단 한 번 있었던 외출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야기가 너무 낭만적이고 사랑스럽다. 솔제니친의 <암 병동>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의 암흑을 떠올리게 하지 않는다. 1922년에서 1954년의 러시아를 다루고 있지만 너무도 미국적인 이야기! "그리고 인간은 자신의 환경을 비재하지 않으면 그 환경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다고 말해주었다."(35쪽) "시대가 해야 할 일은 변화하는 것입니다, 할레키 씨. 그리고 신사가 해야 할 일은 시대와 함게 변화하는 것이지요."(122쪽) "왜냐하면 친구란 모름지기 서로의 능력을 과대평가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친구는 우리의 도덕적 강인함에 대해, 미적 감각에 대해, 지적 시야에 대해 과장된 견해를 가져야 한다."(217쪽) "어떤 상황에 내몰리는 것과 상황을 잘 감수해내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려 합니다."(338쪽) "어른들과 달리 애들은 행복하기를 원한다는 것만 기억하세요. 애들은 가장 단순한 것에서 가장 큰 즐거움을 찾아내는 능력이 있으니까요."(400쪽) "하지만 사실은 말이야,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도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들은 결코 우리에게서 완전히 사라지진 않아."(517쪽) "삶의 상황이 우리 자신의 꿈을 추구하지 못하게 할 경우,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그 꿈을 추구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할 것이기 때문이다."(529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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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리뷰어클럽 당첨 도서.
<저자는>
<책읽고 느낀 바> 책을 덮으면서 두 영화가 떠올랐다. 본 적 없지만 자유를 외치던 빠삐용. 탈옥 같은 건 꿈에서라도 생각한 적 없는 듯 무심히 순응하며 지내던 그들이 탈옥을 감행한 쇼생크 탈출. 성공해 하늘을 쳐다보며 미소짓던 그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백작이 작정하고 찾아간 고향은 그 모습을 많이 상실했다. 그렇다해도 유년의 정서가 풍요로운 이에겐 하등의 관계가 없었다.
나는 아주 잘 기억한다
그것이 걸어서 손님처럼 찾아와 야생 고양이 같은 기운찬 가락으로 잠시 우리 곁에 머물렀던 때를.
그런데 지금 우리의 목적은 어디 있는가?
많은 질문과 마찬가지로 나는 눈길을 피한 채 배를 깎으며 이 질문에 대답한다.
나는 고개 숙여 잘 자라고 말한 다음 테라스 문을 지나 또 하나의 온화한 봄날의 해사하게 아름다운 봄빛 속으로 들어선다.
하지만 나도 이건 안다.
페트롭스카야 광장의 가을 단풍 속에 그걸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아테나움 납골당 유골함 속에 그걸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멋진 중국풍의 파란색 탑 안에 그걸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브론스키의 안장 주머니 속에 그걸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소네트 30.1 연에서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스물일곱 붉은 ......
「그것은 지금 어디 있는가? 」(1~19행) 알렉산드르 일리치 로스토프 백작 1913
책은 위 시를 먼저 싣고 그 다음 페이지는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비신스키 [작은 책을 들고] 당신이 1913년에 발표된 「그것은 지금 어디 있는가? 」라는 이 긴 시를 쓴 사람인가요? 로스토프 내가 썼다고들 하더군요. 비신스키 ...그 시가 나왔을 때-1905년의 봉기가 실패한 뒤로 오랫동안 잠잠하던 시기에 그게 발표되었을때- 많은 사람들은 그 시가 행동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소. 당신, 그 평가에 동의하나요? ...... 이그나토프 알렉산드르 일리치 로스토프, 당신의 증언을 모두 고려해보면 우린 그 시 「그것은 지금 어디 있는가? 」를 썼던......위원회의 의견은, 당신은 당신이 그리도 좋아하는 그 호텔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오. 하지만 절대 착각하지 마시오. 만약 당신이 한 걸음이라도 메트로폴 호텔 바깥으로 나간다면 당신은 총살될 테니까. 다음 사건.
이런 연유로 인해 백작은 메트로폴 호텔에서 지내게 된다. 책은 724페이지의 장정을 가는데 1권, 2권, 3권, 4권, 5권, 그후 로 나뉘는데 지루하지 않은 흥미로움이다. 스위트룸에 머물던 백작의 거처가 종탑으로 옮겨가는 데는 금방이었다. 물건들을 가져갈 것만 챙겼으되 그것들을 조화롭게 배치하기도 옹색한 방, 백작이 지냈던 가장 작은 방이었다. 어느날 발견한 옆방을 옷장으로 문을 삼아 서재를 꾸몄고 백작은 비밀 아지트를 가진게 행복했다. 피할 수 없다면 적응해야 하는 법. 자고로 머리좋은 사람이 적응력이 뛰어나다고 했던가. 백작의 위치는 웨이터였다.
웨이터인 백작은 다루기 힘든 손님을 도맡았고, 요리와 와인에 관해서도 이런 전문가가 없다. 타고난데다 단련된 미각과 해박한 와인 지식은 그저 부러움뿐. 미식가에게 기꺼이 인정받는 기쁨을 아는 에밀과 안드레이와의 우정이 30여 년을 지내게 했다. 하루 시작을 다섯 번의 쪼그려 앉기, 다섯 번의 스트레칭, 다섯 번의 심호흡으로 시작하며 아침은 커피와 비스킷 그리고 과일로 했다. (나도 이런 아침을 해볼까 싶었다)시계추처럼 정해진 일정을 소화하고 승강기가 아닌 계단 걷기를 한다.
니나는 아홉 살 소녀로 자신의 의견을 잘 피력하고 적당히 타협하는 건 없다. 자신이 믿고 생각한 대로 행동하는 소녀. 그녀와 친구가 되면서 호텔의 알 수 없었던 뒷골목 같은 곳을 가본다. 그녀의 만능열쇠로 말이다. 어린 친구와의 그런 시간들이 우연으로 시작해 필연이 되는 인연이었다. 결혼도 하지 않았고 여배우 안나와의 로맨스가 있지만 책임이 따르지 않는 연애일뿐. 느닷없이 여섯 살난 소피야를 맡게 되면서 웨이터이자 아버지라는 직위를 갖게 된다.
발레, 문학, 미술, 요리, 음악, 철학 등 다재다능함을 겸비한 백작은 또 관계에 뛰어났다. 사람들을 예우하되 비굴하지 않고 존중하되 결코 넘치지 않는 우아한 매력이 있었다. 진정 모스크바의 신사라 불릴 자격이자 요건을 갖춘 품격 있는 남자였다. 미시카와 여전한 친구였음도 백작의 인성이 좋아서였다. 미시카의 시를 자신이 썼다고 독박을 썼는데 결과적으로는 그게 자신을 살린 거라는 것.
로스토프 가문의 귀공자였건만 혁명이 일어나고 조실부모한다. 할머니의 영향력 아래 여동생과 지내니 그 우애는 말로 할 수 없었다. 여동생이 실연을 하고 병으로 죽고. 자신의 대부라 할 수 있는 멘토를 만나면서 삶을 긍정적으로 본다. 어쩜 흠을 잡을래야 잡을 게 없는 백작인지. 아, 아버지가 보시던 책을 읽으려, 읽으려 노력했지만 끝까지 못보고 그 두꺼운 책이 어떤 용도로 사용된다. 소피야를 사랑으로 양육한 건 그가 받은 사랑의 결실을 그대로 전수한거라 봤다.
30년 여의 호텔 연금 상태에서 지나간 시절의 이야기가 쉴새없이 나오고 현실이 나온다. 연대를 서술하며 역사적 사실들도 나오는데 거칠지 않다. 저자의 시선이 따뜻하고 배려 있다고 생각되었다. 지휘를 받아야하는 위치에 있지만 순응하는 듯 자신만의 길을 가는 백작. 무소의 뿔처럼 묵묵히 아무 생각없는 사람처럼 보여지지만 내면에 열망이 싹트고 있었음이라. 부모는 자식을 위해 목숨이라도 건다는 걸, 백작도 아버지기에 할 수 있었던 걸까.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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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우리 주변에는 실제로 이런 사람이 있다. 상반되어 보이는 양 극단의 장점을 모두 포용하고 있는 성격의 사람들. 재치있으면서도 항상 누군가를 배려하고, 가을이 뚝뚝 묻어날 것 같은 감성적 표정을 지으면서도 날카로운 이성을 잃지 않는 사람. 모두에게 친절해서 모두가 좋아하지만, 일생을 통해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친밀하고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 로스토프 백작은 그런 사람이었다. 내 일생을 통해 그런 사람을 두세명 정도 알고 지내는 것 같다. 그 중 한 사람은 내 삼촌이다. 어릴 때 대학생이었던 삼촌은 지금은 퇴직해서 전원생활을 하고 있지만, 언제나 내게 특별했는데, 그런 특별한 느낌을 누구에게나 갖도록 하는 삶을 살아왔다는 사실은 우연히 삼촌과 같은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지인을 통해서였다. 지인이 대기업의 특성상 이리 저리 치이고 채이는 나이였을 때, 삼촌은 어떤 인상 만으로도 그의 힘겨운 삶에 어떤 이유가 되어 주고 힘이 되어 주었다고 했다. 어릴 때 책을 읽은 이유는, 책 속의 어떤 이상화된 가상의 인물과의 만남이 설레임과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영원히 삶을 지배할 것 같은 그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적성에도 안맞고 즐겁지도 않은 학업이라는 억압과 굴레 속을 지나가고 있을 때, 문득 문득 불빛처럼 책 속의 인물들과 교감하고 있었다. 창조된 인간의 내면과 상상적 교감이 기성 세대가 기대하는 ‘꿈’과 ‘미래’에 어떤 부정적인 역할을 했을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어른이 보기에는 달갑지 않은 책읽는 모습과 공부하는 모습이 겉으로는 거의 비슷해 보인다는 점 때문에, 공부하지 않으면서 압력을 피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기도 했다. 외우지 않아 받은 불이익은 곧바로 성적표에 나타났지만, 읽는 대신 외웠다면 한없이 더 궁핍했을 가장 활발할 나이의 정신적 활동을 책이라는 매체가 풍요롭게 해준 건 분명했다. 최근에 책을 읽는 이유는 좀 다르다. 아마도 예전에 받았던 그런 느낌, 책 한 권을 끝내고 나서도 인물들은 계속해서 마음속에 살아서 나와 함께 밥을 먹고 돌아다니고, 말을 걸고 하던 무엇인가가 가슴을 가득 메우고 풍부했던 시절에 대한 노스탤지어 때문은 아니다. 하지만 가끔은 그런 책을 만날 때가 있다. 책 속의 인물이 너무나 생생해서 책을 덮고도 한동안 나를 떠나지 않는 인물이 만든 책.모스크바의 신사 로스토브 백작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이 한 사람에 대한 나의 감정을 설명하기 위해 이토록 서론이 길었다. 그런데 사실 그것을 뺀다면 내용은 크게 설명할 게 없다. 2천만명이라고 했던가 2백만명이라고 했던가 아직도 믿기지 않는 수의 목숨이 스탈린 치하에서 전쟁과 숙청으로 학살 되고 있을 때 구시대 인물(귀족)의 자택감금은, 그 이후 백작의 수십년간 감금 기간 백작의 지인들에게 일어난 일에 비하면 오히려 사치에 가까운 처벌이었다. 그의 대저택은 이미 인민의 이름으로 접수했을 테고, 4년째 스위트룸에 묶고 있던 백작의 거처는 종탑의 작은 다락방으로 옮겨진다. 다행인건가. 그가 묵던 메트로폴 호텔은 모스크바 최고의 호화 호텔로, 최고급 식당과 대중적 식당, 바, 세탁소 상점 등의 편의 시설들이 입점해 있어 남의 도움이 없어도 생활에 그닥 어려움이 없어보인다. 하지만 호텔 문을 한 발작만 나가도 그는 바로 총살된다. 소설의 제목에 신사라는 말이 쓰였는데, 신사와 영국신사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면서 신사라는 이미지가 속을 알 수 없는 이중적 모습이 연상되었지만 로스토프 백작의 신사다운 면모는 신사의 정의를 새롭게 원위치시킨다. (자신도 동의했던) 시대의 요구에 의해 새롭게 태어나는 러시아와 시대의 배반을 종신구금형이라는 결과로 받아들이는 태도만으로도 소설의 도입은 독자를 로스토프 백작의 정신세계로 깊이 이입시킨다. 니나와의 만남과 자연스런 이별, 우연히 돕게 된 여배우와의 하룻밤 정사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의 재회와 사랑, 최고급 식당의 웨이터로 일하게 되고, 식당 삼총사들과 맺는 작고 충직한 관계들, 재봉사를 비롯한 호텔 직원들과의 자잘한 관계들. 이런 이야기들이 잔잔하게 흘러가는 와중에, 일생 일대의 가장 큰 사건이 생긴다. 호텔 감금이 시작된 초창기에 열세살 소녀였던 니나가 청년당원을 만나 결혼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됨과 동시에, 그 남편이 체포되어 행방을 찾기 위해, 6살 소피아를 잠시 맡기기 위해 찾아왔다는 점이다. 조용하고 착한 아이지만, 아이는 아이. 가뜩이나 좁은 방에 어린 아이 한 명이 차지하는 공간은 예상을 넘어서고, 그동안 만들었던 고요한 생활의 질서는 깨어지고, 아이를 다룰 줄 모르는 백작은 쩔쩔맨다. 한 달 후에 찾으러 온다던 니나의 행방은 묘연해지고, 감금 초기 그를 늘 찾아던 둘도 없는 친구 미시카는 시베리아 유형에서 돌아와 몰래 그를 만나러 오는데, 그가 하는 말이 가슴을 친다. 알고 보니 자네가 가장 운이 좋았다는 것. 잔잔하게 이어지지만 지루할 새 없이 자잘한 사건들이 벌어지는 와중에, 미시카의 죽음과 함께 밝혀지는 비밀이 있고, 백작에게 사실상 딸이 되어 훌륭히 자란 소피아가 피아니스트가 되는 과정, 오랜 시간 감금을 운명으로 받아들인듯했던 백작이 드디어, 딸의 장래를 위해 위험하고도 대담한 결심을 하고 실행에 옮기는 장면 등의 클라이맥스와 안도감으로 맺는 결말이 찾아온다. 몇몇 장면은 영화에서 본 것처럼, 혹은 현실에서 만난 것처럼 생생하고 또 몇몇 장면은 잊지 못할만큼 감동적이다. 니나가 마스터 키를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던 장면, 백작이 처음으로 자신의 낡은 바지를 세탁소에 가져가 재봉사에게 바느질을 배우면서 둘이 주고받는 정겨운 대화들, 자살하려고 종탑 지붕에 올라갔다가, 우연히 만난 직원과의 해프닝, 두 마리 개를 컨트롤 하지 못해 쩔쩔매는 여배우와를 돕던 첫 만남, 그렇지만 백작의 인생에 가장 큰 변화를 주는 사건은 니나가 아이를 데려와 맡기는 장면인데, 이 장면은 러시아의 설원에서 러시아 혁명을 비판적 시각으로 보여준 서구 영화, <닥터지바고>적 비애를 연상시킨다. 똑똑하고 철두철미한 공산당원으로 성장한 니나는, 당에 충성하고 열성적인 모습으로 비처지는데, 결과는 결국 남편의 숙청으로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상태로 전락하고 만다. 니시카의 말이 옳았다. 백작이 살아남은 것은 스탈린의 광기가 아닉 광범위한 처형과 학살을 낳기 전 단계에서 감금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감금이 처형이 아닌 감금으로 끝난 데에는 더욱 아이러니한 진실이 숨어져 있다. (이것은 스포라 여기까지만).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출처 : 트립어드바이저 메트로폴 호텔, 모스크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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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캉스를 나름 열심히 즐기고 있다. 9일이라는 기간동안 읽어야 할 책이 더 필요했다. 두번째 구매한 책은 바로 현대문학에서 출간한 '모스크바의 신사'이다. 현대문학은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을 통해서 알게되었고 나름 인지도도 있고 좋은 작품도 많이 출간하는 출판사이다. 모스크바의 신사는 사회주의 혁명을 시점으로 공산국가화 되어가는 러시아의 시대상을 아주 적나라하게 날것으로 보여주고 있다. 책을 덮고 난 후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여운이 오래 머물렀다. 한번 쯤 읽어보기를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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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의 신사>는 러시아 혁명 시기, 귀족이라는 이유로 모스크바의 메트로폴 호텔에 종신 연금에 처한 알렉산드르 로스토프 백작의 1922년부터 1954년까지 일대기를 그린 소설이다. <모스크바의 신사>는 7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한 번 잡으면 놓기 어려울 정도로 재밌다. 메트로폴 호텔이라는 협소한 장소가 배경의 전부이지만 백작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다양하고 흥미롭다. 혁명의 상황은 어둡고 무겁지만, 재판장에서 보여준 백작의 유머만큼이나 소설의 필체는 경쾌하고 가볍다. 선과 악의 뚜렷한 대립도 없다. 비숍이라는 캐릭터 역시 악으로 규정된다기보다 다소 얄미운 캐릭터 정도로 다뤄진다. 빌 게이츠가 왜 휴양지에서 읽기 좋은 책으로 선정했는지 이해가 된다. 인간적 고뇌가 심각하지 않다는 점에서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처럼 머리 싸매고 읽을 필요도 없다. <모스크바의 신사>는 그저 기분 좋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작품 덕분에 사랑받는 도시는 많다. 런던은 <셜록 홈즈> 덕분에 수많은 관광객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다. 영화 <로마의 휴일>을 보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스페인 계단에서 아이스크림을 떨어트렸던가. <미드나잇 인 파리>는 파리의 밤거리를 더욱 낭만적으로 만들었다.
<모스크바의 신사> 역시 읽고 나면 당장 모스크바 행 비행기 티켓을 끊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호텔 문을 열고 프런트의 '아르카디'에게 백작이 머물렀던 스위트룸 317호를 체크인하고, 러시아 최고의 식당인 보야르스키에서 지배인 안드레이의 추천에 따라 음식을 주문하고 최고의 주방장 에밀의 요리를 맛보고 싶다. 물론 식당에 앉아 식사 시간을 즐기는 여배우 '안나 우르바노바'의 우아함을 힐끔거리며, 귀여운 '니나 쿨리코바'의 호기심에 대해 상상할 것이다. 식사를 마치면 호텔에 있는 이발소에서 야로슬라블에게 이발과 면도를 부탁할 것이다. 밤에는 지붕에 올라가 도시를 감상하며 아브람과 '꿀벌의 습성'에 대해 대화를 나눌 것이다. 내려오는 길에 백작이 감금됐던 다락방에 들려 드로셀마이어 선생(애꾸눈 고양이)과 함께 의자에 앉아 백작처럼 몽테뉴의 <수상록>을 한 없이 읽고 싶다.
백작은 애국자이고 자신만의 원칙이 있지만 <오베라는 남자>와 같은 꼰대는 아니다. 소설에서는 로빈슨 크루소와 비교하고 있지만, 오히려 그의 기질은 사람들과 관계 속에서 긍정성을 발휘하는 <빨간 머리 앤>과 닮았다. 물론 앤 셜리는 말괄량이고, 백작은 신사라는 점은 다르다. 백작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는다. 자신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질 수도 있는 재판장에서조차 유머를 잃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발소에서 과격한 손님에게 수염이 잘려도 지구의 자전과 우주의 바퀴를 상상하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듯 극복, 아니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이다.
도스토옙스키라면 무너져가는 귀족의 정신과 심연에 대해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겠지만, 작가 에이미 토올스는 '그래도 이렇게 하면 재밌겠는 걸' 하는 식으로 그저 유쾌하게 퉁 쳐버린다. 감옥 같은 작은 방에 갇히자 그동안 두껍고 어려워서 엄두도 못 냈던 아버지의 책 <수상록>을 드디어 읽을 수 있음에 감사하는 것처럼, 백작은 시궁창에서도 꽃을 심는 사람이며, 짓밟는 군홧발 아래서도 박자를 맞춰 춤을 출 수 있는 인간이다. 신사의 품격을 잃지 않으며 언제나 올곧고 유쾌한 삶을 살아가는, 성 안드레이 훈장 수훈자이자 경마클럽 회원이며 사냥의 명인인 모스크바의 신사 알렉산드르 일리치 로스토프 백작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러시아 혁명도 결국 인간의 행위라는 것을 깊이 깨닫게 된다. 혁명의 원인이나 동기는 거대하게 포장되지만, 가끔 역사는 사소한 동기로부터 비롯되는 경우가 많으며, 그렇게 촉발된 역사의 흐름이 어떻게 개인의 사소한 삶에 침투하고 변화시키는지 보여준다.
작가는 러시아 혁명이 어리석은 것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물 하나하나는 모두 그만한 이유와 치열함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작가는 공산주의 속 인물들도 모두 똑같은 사람이라는 인식을 이끌어냄으로써, 모스크바를 사랑스럽고 친근한 도시로 만들었다.
백작의 일생을 함께 하는 독자는 온몸으로 그를 지지하고 응원하게 된다. 어느 누구도 완벽한 인물은 없듯이, 어떤 환경도 완벽할 수 없다. 우리가 환경을 받아들이고 긍정적으로 살아가려는 의지를 드러낼 때 삶은 놀라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소설은 이야기한다. 메트로폴 호텔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백작과 함께 세계를 이해해가는 경험은 삶의 깊은 혜안과 통찰을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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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읽은 책중에 단연 으뜸입니다 무엇보다 책의 흐름이 너무 좋네요 잔잔함 속에서 다가오는 묵직함이 작은감동을 더 크게 느끼게 해 주네요 작가의 필력이 참 대단하다 느꼈습니다 이책을 읽으며 가장 놀라웠던건 공산화된 러시아에 답답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아름답다 느꼈다는 겁니다 이책의 배경을 따라 꼭 한 번 러시아에 가보고 싶네요 좋은책이 었어요~~ 책읽고 여기저기 찾아보는 이기분 너무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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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이면서도 유연하고, 매너까지 겸비한 백작은 너무나 매력적인 사람이다. 이 매력적인 주인공이 주어진 환경에 단지 순응하는 게 아니라 보통 사람들은 생각하기 힘든 처세술로 절망적일 수 있는 상황 속에서도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고 생각지 못한 깨달음을 얻게 해준다. 주변 인물들과의 에피소드는 그 자체로 흥미롭고 재미있지만, 당시 러시아의 배경상황을 고려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작가의 천재성을 느낄 수 있다. 드라마로 제작되고 있다는데 꼭 보고 싶다. 머리 속에 생생하게 장면이 떠오를 만큼 묘사가 뛰어난 소설인데 이를 화면으로 볼 수 있다면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P151 “우린 지금 지평에 대해 얘기하고 있어요. 그렇죠? 시야의 끝에 있는 지평선 말이에요. 그걸 얻기 위해선 학교에서 가지런하게 줄을 맞춰 앉아 있는 것보다 실제 지평선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요? 지평선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지 직접 볼 수 있도록 말이에요. 마르코 폴로가 중국을 여행했을 때 한 일이 바로 그거였잖아요.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했을 때 한 일이 그거였고요. 표트르 대제가 신분을 숨기고 유럽을 여행했을 때 그분이 한 일이 바로 그거였다고요!”
P153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사교 범위가 점점 줄어드는 것은 슬프지만, 피할 수 없는 인생의 현실이지.” 그가 말했다. “습관에 의존하는 경향이 늘거나 아니면 활력이 주는 탓에 우리는 갑자기 몇몇 익숙한 사람들과만 사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단다. 그래서 나는 인생의 지금 단계에서 너처럼 멋진 새 친구를 만나게 된 것을 굉장한 행운으로 여겨.”
P176 아무튼 주의력은 분단위로 측정해야 하고 절제력은 시간 단위로 측정해야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불굴의 정신은 연 단위로 측정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P194 인간은 우리가 가능한 한 많은 상황에서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겪어보기 전에는 그 사람에 관한 견해를 보류하겠다는 확고한 결심이 필요한 존재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