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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도 희망은 있는가? -- “자유가 치료다”를 읽은 촛불 배정규의 독후감
"우리에게도 희망은 있는가? -- “자유가 치료다”를 읽은 촛불 배정규의 독후감" 내용보기
2018. 8. 1. 발행된 책입니다. 돌처럼님께서 출판소식을 알려주시어 읽게 되었습니다. 출판소식을 알려주신 돌처럼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처음에 번역서일 것이라고 짐작했습니다. 하지만 백재중님의 저서라는 점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20여년 전부터 학술대회 등을 통해 이탈리아의 정신보건개혁과 바살리아법에 대해서 얼핏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
"우리에게도 희망은 있는가? -- “자유가 치료다”를 읽은 촛불 배정규의 독후감" 내용보기

2018. 8. 1. 발행된 책입니다. 돌처럼님께서 출판소식을 알려주시어 읽게 되었습니다. 출판소식을 알려주신 돌처럼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처음에 번역서일 것이라고 짐작했습니다. 하지만 백재중님의 저서라는 점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20여년 전부터 학술대회 등을 통해 이탈리아의 정신보건개혁과 바살리아법에 대해서 얼핏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제 자신이 그 내용을 검색하여 따로 공부해 볼 생각은 하지 못했었습니다. 이탈리아 전역에서의 정신병원 폐쇄라는 엄청난 소식이 우리나라 현실에는 맞지 않는 너무나 이상적인 이야기라고 지레짐작한 탓입니다. 자세히 알아볼 생각도 않고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한, 그저 먼 나라 이야기 정도로 생각하고 지나쳐버린 것이지요. 아마도 저 뿐만 아니라 개혁을 꿈꾸고 얘기하는 많은 의사와 전문가들이 비슷한 과오를 범했지 않았나 싶습니다. 내놓으라 하는 전문가들조차도 “카더라~” 방송 정도의 수준으로만 전해 듣고 자세히 알아볼 생각을 않고 지냈던 것 같습니다.

 

다행히 백재중님께서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혼자 연구하시고 공부하셔서 저서를 내놓으셨네요. 누구도 하지 않았던 일을 해주신 백재중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백재중님은 내과의사입니다. 책의 저자 소개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원진레이온 직업병 투쟁의 결과로 설립된 녹색병원에서 내과의사로 일하고 있다. 차별과 혐오가 없는 건강한 세상을 꿈꾸고 있으며 인권의학연구소 이사이기도 하다. 쓴 책으로 『의료협동조합을 그리다』와『삼성과 의료민영화』(건강미디어협동조합)가 있다."

 

책을 읽고 알게된 이탈리아 정신보건의 역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탈리아의 감금치료의 역사는 1800년대부터 시작되었는데 1904년에 정신보건에 관한 포괄적 법령이 처음 제정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끔찍하네요.

 

“최초의 입원은 법원 판사가 결정하도록 하였고 1개월 동안의 평가 기간을 거쳐 퇴원 또는 영구 수용 여부가 결정되는 것으로 제 1조에 명시되어 있다. 정신병원의 입원 기록은 범죄 기록에 남았으며 결국 이것은 시민권의 상실을 의미하였다. 이 법에 따르면 정신질환 치료를 위한 자의 입원은 불가능했다. 1904년 법률안은 환자의 치료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정신질환에 의한 입원은 곧 범죄자 수용의 의미였다. 일반 범죄보다도 오히려 더 가혹하게 적용되었다. 응급상황의 입원은 경찰이 담당했다. 입원은 강제적이었고 입원기간도 무제한이었으며 입원은 곧 시민권과 정치적 권리의 박탈을 의미했다.”

 

“이탈리아에서 1970년대 이전까지는 정신보건에 대한 투자는 미미했고 1904년 법률이 1968년 개정될 때까지도 자의에 의한 입원은 허용되지 않았다.”

 

“이탈리아에서는 1968년 현대적 의미의 정신보건법이 개정되었는데 이를 법률 481호라고 이름 지었다. 1904년 이후 처음 변화를 맞게 된 것이다. 법률 481호에는 1. 자발적 입원의 허용, 2.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사실이 범죄 기록에 기록되는 조항의 폐지, 3. 병원과 병동의 규모 및 환자 대비 인력 기준 명시, 4. 추후 관리와 예방을 위한 정신병원 밖 외부시설의 설립, 5. 각각의 서비스가 정신병원과 연결되어 진료, 예방, 재활의 연속성을 보장 같은 내용이 담기게 되었다. 이 법은 완전히 집행되지는 못했으나 정신보건에 헌신하는 인력들이 지역사회에서 일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주었다.”

 

제 느낌으로는 1995년에 제정된 우리나라의 정신보건법(현재의 정신건강복지법)이 이탈리아에서 1968년에 제정된 법률과 비슷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차이점도 있습니다. 이탈리아는 이 법률을 제정한 이후 탈시설화가 가속되어 병상수가 이전에 9만 7천병상 정도이던 것이 10여년 뒤에는 7만 병상 정도로 감소하였고, 평균 입원기간도 209일에서 142일로 감소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1995년도에 법 제정 당시에 3만 병상 정도이던 병상수가 2018년 현재는 10만 병상 정도로 증가하였습니다. 우리나라의 정신보건법(현재의 정신건강복지법)은 표면적으로는 지역사회정신보건을 표방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그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더욱이 탈시설화의 경우에는 애초에 그에 관한 조항 자체가 없습니다. 우리나라 정신건강복지법의 특이점은 탈시설화는 애초에 언급하지 않고 지역사회정신보건 시설의 설치만 언급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에 따라 일어나는 현상이 지역사회정신보건 시설들이 입원을 감소시켜주거나 대체하는 기능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정신병원의 이익에 종속되어 입원자 수를 증가시켜주는 기능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특히 각 구와 군에 설치된 정신건강복지센터를 병원에 위탁운영하는 방식이 문제입니다. 이 방식은 정신건강복지센터가 병원에 종속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즉 입원환자수를 줄이는 기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신규입원 환자를 발굴하여 입원환자수를 증가시키는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원래부터 일하던 정신건강복지센터 직원은 늘 말단직원으로 일해야 하고 신규위탁받은 병원의 의사와 간호사가 의사결정구조의 최상부층을 점한다는 모순을 안고 있습니다. 그 결과 지역사회기관이 지역사회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의료기관의 하부기관으로서 기능하게 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아무튼 이탈리아의 경우 1904년에 제정된 법률의 결과로 1960년대까지 끔찍한 감금수용의 역사가 이어집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1960년대에 정신보건개혁운동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프랑코 바살리아(Franco Basaglia, 1924~1980)라는 정신과의사가 있습니다. 그는 1961년에 고리찌아병원 원장으로 부임하면서 병원개혁 작업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1960년대 후반에 이르러 병원개혁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확신하고 병원폐쇄를 주장하게 됩니다. 1968년에 출판한 그의 저서 『시설의 부정』에 그의 생각이 잘 드러나 있는데, 이 책은 당시에 이탈리아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 부분에서 저는 부러움을 느꼈습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책이 있는가? 정신과 문제를 고발하고 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 책이 있는가? 그리고 정신과 문제를 다룬 책이 전국민의 관심을 받아서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는가?

 

이 무렵에 이탈리아에서는 정신과 문제, 특히 그들에 대한 감금수용의 문제가 국민적 관심사로 떠올랐습니다. 1968년에 출판된 프랑코 바살리아의 『시설의 부정』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데 이어서, 1969년에는 정신병원 입원환자들의 고통스러운 실상을 알리는『아벨의 정원』이라는 텔레비전 다큐 프로그램이 전국민적 관심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1969년에는 정신병원의 내부 풍경과 환자 모습을 담은 사진집『계급으로 인한 죽음』이 국민적 관심을 받았습니다.

 

역사가들은 1960년대 후반 이탈리아 정신보건 개혁 운동을 상징하는 3대 주요 예술 작품으로 바살리아의 저서 『시설의 부정』, 다큐멘터리 필름 『아벨의 정원』, 사진집 『계급으로 인한 죽음』을 꼽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세 작품 모두에 프랑코 바살리아가 관여되어 있습니다. 이 무렵에 프랑코 바살리아는 전국민적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습니다.

 

프랑코 바살리아는 1971년에 트리에스테 정신병원 원장으로 부임하여 병원개혁 작업을 계속하였고 마침내 1978년에 이탈리아 전역의 공립정신병원 폐쇄를 명시한 법률 180호(이 법률을 흔히 바살리아법이라고도 한다.)를 국회에서 통과시키는 업적을 이루었습니다. 트리에스테시는 이탈리아 북부에 있는 인구 35만명의 소도시입니다. 이 곳의 시장이 정신병원 개혁을 원했기 때문에 당시에 정신보건개혁 이미지로 이미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던 바살리아를 시립정신병원 원장으로 초빙했습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저는 또 한 번 부러움을 느꼈습니다. 우리나라의 정치인들 중에 과연 정신보건 개혁에 관심을 갖는 정치인이 있는가?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에서 관내의 정신병원 문제와 정신보건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특정인사를 정신보건개혁 책임자로 초빙하는 경우가 있는가?

 

이탈리아와 우리나라 간에는 여러 가지 정치적, 문화적 배경의 차이가 있습니다. 정신보건 분야와 관련하여 가장 큰 차이점은 정부주도인가 민간주도인가 하는 점입니다. 이탈리아의 경우에는 전체 정신병원의 90% 이상이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공립정신병원이었습니다. 따라서 지방자치단체로서는 그 예산을 절감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지방정부의 보건예산의 25% 정도가 정신보건예산이기에 각 지역의 정치인들에게 있어서 정신보건 예산을 어떻게 절감할 것인지가 관심사였습니다.

 

1978년에 바살리아법이 통과된 이후 이탈리아는 전국의 모든 공립정신병원의 단계적 폐쇄에 착수하여 20년 후인 2008년에 마침내 그 작업을 완료하였습니다. 지금은 이탈리아 전역에 공립정신병원은 없습니다. 대신에 종합병원에 14~16병상 규모의 정신병상을 둘 수 있도록 되어 있고, 민간사립병원이 남아 있는데, 그 입원환자수가 모두 합하여 6,000명 정도입니다.

 

이탈리아는 전국의 모든 공립정신병원을 없애는 대신에 인구 24만명당 1개소의 정신보건센터를 설치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의 구 또는 군 단위의 규모에 해당합니다.

 

지역정신보건센터의 인력은 1개소당 전체 인력 30~40명으로 구성되는데 정신과 의사 2~4명, 간호사 20여명, 사회복지사 2~4명, 심리학자 2~4명입니다. 간호사를 제외한 인력은 주로 지역 내 병원과 센터의 업무에 관여하게 되고 전체 간호사 중 약 10명 내외는 방문사업을 집중적으로 수행합니다. 각각의 센터들은 해당 지역을 다시 구역별로 나누어 담당 지역을 정하고 가정방문 등 최일선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지역정신보건팀을 두는데 1개의 지역정신보건센터에는 보통 지역정신보건팀 3~4개를 두게 됩니다.

 

이탈리아는 인구 1,500명당 1명의 정신보건 종사자를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2006년도에 이탈리아 공공부문에 고용된 인력은 30,711명인데, 이 중에서 정신과의사는 5,561명, 심리학자 1,860명, 간호사 14,780명입니다. 참고로 이탈리아 인구는 6,100만명으로 5,100만명인 우리나라 인구보다 조금 많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 약 5만명의 인력이 정신보건 분야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간호사와 간호조무사의 인력비중이 가장 높습니다. 간호사와 간호조무사의 인력비중이 높은 이유는 우리나라 정신보건 분야의 특징이 입원시설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정신과의사의 수련내용도 우리와는 차이가 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약물치료 위주의 교육인데 비해, 이탈리아는 4년간의 수련기간 중에 총 80명 치료 중 20명을 정신치료해야 하고, 재활프로그램도 10개를 이수하도록 되어 있다고 합니다.

 

아무튼 이탈리아는 공립정신병원을 폐쇄하고 대신에 지역정신보건센터를 설치하여 운영한 결과 각 지방정부의 정신보건예산을 약 50% 정도 절감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예산은 더 적게 들이고, 환자들의 만족도와 삶의 질은 더 높아진 것입니다.

 

이탈리아가 정신보건개혁에 착수하게 된 배경에는 이와 같이 정신보건예산을 절감하려는 정치인들의 관심이 있었습니다. 아울러 시민들의 지지가 있었습니다. 감금수용의 문제점을 고발한 미셸 푸코와 같은 프랑스 철학자들의 주장과 그에 대한 이탈리아 국민들의 공감, 프랑스에서 시작된 68운동의 확산, 그리고 사회 각 분야에서 일어난 아우토노미아(Autonomia)라고 하는 자율성 시민운동 등이 그 배경입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 프랑코 바살리아와 같은 개혁적인 전문가들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바살리아법의 통과에는 특히 1973년에 결성된 민주정신의학회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이 단체는 주로 이탈리아 북부 지역 정신병원에서 정신병원 해체작업에 참여하던 의사, 심리학자, 간호사 등 정신보건 활동가들이 모여서 결성한 정치적 조직이었는데 주로 좌파성향을 띠었습니다. 이 단체는 1977년에 인권에 관심이 많았던 급진당(The Radical Party)과 협력하여 1968년도에 제정되었던 정신보건법을 폐지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백만인 서명운동을 벌여서 4분의 3 정도의 서명을 받았습니다. 이 때문에 정부는 행정부 사퇴까지 이를지도 모르는 국민투표를 피하려고 1978년에 바살리아 법을 제정하게 되었습니다.

 

이 부분도 우리나라와는 다른 부분입니다. 우리나라에는 민주정신의학회와 같은 개혁적인 전문가 단체가 없습니다. 또한 국민들의 서명으로 법안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는 국민청원권도 없습니다.

 

책의 저자인 백재중님은 책의 말미에 다음과 같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합니다. “이탈리아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준다. 무엇보다 대규모 정신병원이 없어도 정신질환 관리가 가능하다는 것, 병원중심이 아닌 지역사회 중심의 정신보건체계가 우리가 지향해야 할 미래라는 점, 정신장애인들은 병원에 격리되어 수용되어야 할 존재들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같이 부대끼면서 살아가야 할 존재라는 사실 등이다.”

 

그리고 백재중님은 다음의 문장으로 책을 마무리합니다. “이제 우리나라 정신보건에서 새로운 체제가 구축되어야 한다. 이 작업은 1995년 정신보건법의 해체와 이탈리아 바살리아 법에 준하는 새로운 법 제정을 통해서 가능할 것이다. 새로운 길에 들어서며 주저하지 말자. 이탈리아를 비롯한 많은 국가에서 이미 문제 없음이 판정되었으니 그저 그들의 경험을 인정하고 적극 따르면 되리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감정이 교차했습니다. 많은 자료들과 통계치들이 일목요연하게 머리에 들어오지 않아서 산만한 느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고난 지금의 소감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

 

바꿔야 합니다. 그것도 크게 바꿔야 합니다.

 

우리나라 정신보건의 가장 큰 특징은 “민간 정신병원 주도”라는 점입니다. 즉 정신병원이 영리목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거의 대다수 전문가들이 그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정신보건분야 내부에서 개혁적인 목소리가 나오기 힘든 구조입니다. 현재의 구조는 전문가들 자신의 직장유지와 수익유지에 부합합니다. 달리 말해서 정신병원 운영자와 종사자는 자신들의 이익 즉 돈을 사이에 두고 서로 공생관계에 있습니다. 현재의 구조는 정신병원 운영자와 종사자들에게 수익을 창출하기에 수월하고 유리한 구조입니다.

 

특히 입원은 그들의 이익창출에 가장 적당한 방법입니다. 따라서 정신병원 병상수는 계속해서 증가합니다. 정신병원 병상수가 증가하면 건강보험공단의 지출은 증가합니다. 하지만 국가, 특히 지방자치단체가 감당해야 할 예산부담은 별로 증가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정치인이나 행정가들 입장에서는 이 문제의 심각성을 체감하기 어렵습니다.

 

더욱이 이 문제의 심각성을 고발하는 목소리도 거의 없습니다. 개혁적인 마인드를 가진 전문가나 가족, 당사자들이 소수 있기는 하지만 그들이 정치세력으로 조직화되어 있지 못하며 그들 간의 연대도 매우 약합니다. 합의된 개혁의 방향도 없습니다. 몇몇 단체들이 단편적인 이슈를 제기하며 나름의 주장을 펼칠 뿐입니다. 국가도, 지방자치단체도, 전문가들도, 가족들도, 당사자들도, 그 누구도 현재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큰 개혁방향의 그림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큰 그림이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과 국민들의 관심과 지지를 받을 수 있는 큰 그림이 필요합니다. 현재의 구조 속에서 정신장애인들과 가족들이 당하고 있는 불이익을 국민들의 입장에서 타인의 불이익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의 불이익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해주는 그림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정작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 당사자와 가족들이 자신이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는 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가족들 중 상당수는 현재의 구조가 자신들의 이익과 편리에도 부합한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즉 별다른 불만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가 추진해야 할 과업을 크게 두 단계로 나누어 생각해 봅니다. 첫 번째 단계는 당사자와 가족들에 대한 정보제공입니다. 즉 그들에게 현재의 구조가 자신들이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 구조라는 점을 알려주는 일입니다. 좀 더 분명하게 표현하자면 시장경제 속에서 자신들이 착취당하고 있는 구조라는 점을 알려주는 일입니다. 지금 현재 자신들이 부담하는 비용의 절반만으로도 지금보다 몇 배나 더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일입니다.

 

당사자와 가족들의 인식이 개선되어 강력한 당사자단체와 가족단체가 결성된다면 그 다음 작업에 착수해야 합니다. 그 다음 단계의 최종목표는 분명합니다. 그것은 현재의 부당한 구조를 해체하고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내는 작업입니다. 무엇을 해체해야 하는가? 그 답은 분명합니다. 그것은 민간정신병원을 해체하는 일입니다. 그래야만 현재의 착취구조가 종식됩니다. 현재와 같이 시장경제에 정신보건업무를 맡겨두는 방식은 당사자와 가족들이 누군가의 이익창출의 희생자가 되도록 스스로를 방치하는 방식입니다.

 

이익창출과 착취라는 관점에서 생각할 때, 민간정신병원에 지방자치단체의 정신건강증진센터를 위탁하여 운영하는 현재의 우리나라 지역사회정신보건 시스템은 그야말로 코미디입니다.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다.”는 우리 속담에 딱 맞는 코미디입니다.

 

민간정신병원을 어떻게 해체할 것인가? 만만치 않은 작업입니다. 매년 5조원의 수익이 발생되는 시장입니다. 이 시장이 순순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국민들의 관심과지지, 여론의 지지가 필요한 대목입니다.

 

그들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그들의 관심사와 이익에 부합하는 이슈 제기가 필요합니다.

 

저는 한 가지 예를 생각해 봤는데 그것은 가정방문진료입니다. 정신과 서비스는 가정방문진료를 수행하기 매우 적합한 서비스 영역입니다. 우리가 대형병원을 방문하는 이유는 검사와 치료에 필요한 각종 의료장비가 대형병원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신과 서비스는 아무런 의료장비도 필요로 하지 않는 서비스입니다. 그런데 그 서비스가 왜 대형병원에서 이루어져야 하는지 의문입니다. 의사도 간호사도 가정방문을 하여 투약하면 됩니다. 정신과의사, 간호사, 심리학자, 사회복지사 등을 정신보건센터에 배치하든 보건소에 배치하든 배치해두고 그들로 하여금 가정방문을 하도록 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렇게 한다면 좀 더 많은 국민들이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를 보다 수월하게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정신과 진료를 먼 곳의 이야기로, 남의 이야기로 여기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로 여기게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이러한 서비스를 시작하도록 하고 그것이 기존의 민간정신병원 입원을 대체하도록 하면 되지 않을까요?

 

백재중님의 저서 “자유가 치료다”라는 책은 입원시설 없이도 정신과 환자의 치료가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이탈리아가 그렇게 했다면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입원이 필수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 우리의 정신과 치료방식도 바꿔볼 수 있지 않을까요? 조현병이나 조울증이 발병했을 때 병원에 입원할 필요없이 전화 한 통만 하면 전문가들이 달려와서 집에서 상담해주고 집에서 투약해주고, 일주일 정도 전문가들이 매일처럼 집으로 찾아와서 환자를 상담해주고 안정시켜주는 방식, 그러한 방식이 더 멋진 방식이지 않은가요? 그러한 서비스를 민간에 맡기지 않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맡아서 해주면 안 되나요? 이탈리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그렇게 해주고 있는데 우리나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왜 그렇게 해주지 않나요? 과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자신들이 해줄 바를 해주지 않고 민간에 맡기고 있는 이 방식이 정당한가요?

 

이제 우리 당사자와 가족, 나아가 국민들에게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집단최면에 걸려 있었습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자신들이 감당해야 할 책임을 기피하고, 그 책임을 민간에 떠넘겼습니다. 그리고 민간이 이를 수익창출의 수단으로 삼도록 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수익창출의 구조 속에 종속되었습니다. 민간의 수익창출 시장은 연간 5조원이 걸려 있는 시장입니다. 병원의 경영진과 종사자가 치료에는 관심이 없고 수익창출에만 관심을 두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를 지적하거나 문제시 삼는 견제집단이 없기 때문입니다.

 

당사자와 가족들은 자신들이 착취당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의 말만 믿으면 치료될 거라는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정치인과 행정가, 그리고 여론기관들은 이러한 착취구조 속에서 자신들의 이익창출에 일차적 관심을 두고 있는 병원경영진과 정신과의사들을 신뢰하며 그들에게 사회문제의 해결과 국가정신보건정책의 입안과 집행을 맡기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지금까지 집단최면에 빠져 있었습니다. 국가의 무책임과 전문가들의 착취 속에서 인생이 무너지고 망가져갔지만, 이를 병 탓이려니 숙명이려니 하고 그저 묵묵히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선진외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많은 것들을 달리해왔지만 우리사회에서는 전문가도 언론도, 그 누구도 그 소식을 제대로 전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반가운 소식을 접했습니다. 백재중님의 “자유가 치료다.”라는 이 책입니다. 책의 제목이 말해주듯 감금(수용, 입원)과 치료는 양립불가능입니다. 절대로 함께 갈 수가 없습니다. 어떠한 이유로도 감금(수용, 입원)은 치료의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정신보건 분야는 이 대원칙을 위반하고 있습니다. 돈 때문입니다. 발병만 하면 무조건 감금(수용, 입원)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치료를 위해서라고 둘러댑니다. 실은 치료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게 돈벌이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부도덕이 뻔히 자행되는데도 우리나라 전문가들은 그것을 너무나 당연히 여기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이익과 편리에 부합하기 때문입니다.

 

이탈리아를 비롯해서 선진외국은 모두 이미 감금(수용, 입원)없이 치료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속도에 차이가 있을 뿐 모든 선진외국은 감금(수용, 입원)을 없애는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역주행하고 있습니다. 입원병상은 계속 늘어만 갑니다.

 

이 문제를 백재중님이 자신의 저서를 통해 고발하고 있습니다. 백재중님은 내과의사입니다. 이 점에서 우리나라의 모든 정신과의사들은 부끄러움을 느껴야 합니다. 또한 저를 포함한 모든 정신보건전문가들도 부끄러움을 느껴야 합니다. 이 문제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고 누구보다 가장 앞서서 이 문제를 고발해야 할 사람이 바로 정신과의사, 그리고 정신보건분야 전문가들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침묵하고 있었습니다.

 

제 생각에 우리나라 정신보건분야는 자체 개혁이 불가능합니다. 상당수 전문가들이 자신들이 어떤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 문제의식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제의식을 느끼는 소수의 전문가들도 기득권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문제제기를 하지 않거나 또는 전문가 집단 내에서 매장당하고 싶지 않아서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제가 있을 때 스스로 자체 개혁을 해내지 못하면 외부에서 칼을 들이대어 개혁을 해야 합니다. 누가 칼을 들이대야 할까요? 제 생각으로는 당연히 정신보건 분야의 당사자와 가족들입니다. 왜냐하면 직접적인 이해관계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구조 속에서 직접적으로 피해를 당하고 있고, 만일 개혁을 해낸다면 직접적으로 그 이득을 누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사자와 가족들이 이 분야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하셔야 합니다. 특히 선진외국의 정신보건정책에 대해 공부를 많이 하셔야 합니다. 그러한 지식에 바탕을 두고 우리나라 정신보건정책의 개혁방향을 구상하셔야 합니다. 많을 분들이 뜻을 합해 나가셔야 합니다. 건강하고 강력한 당사자단체와 가족단체를 출범시키셔야 합니다. 국가와 국민을 설득하고 현재의 정신보건구조를 개혁하고 전문가집단의 업무방식을 바꿔내셔야 합니다.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을 읽으신 모든 분들이 개혁의 주체가 되어주실 것을 희망합니다.

 

자료출처 : http://cafe.daum.net/saraskey/dCj4/111

YES마니아 : 로얄 i*********d 2018.08.12.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