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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에 나온 책을 2003년에 읽고 있다. 개인적으로 소설을 읽을만큼의 여유가 없었던 탓도 있겠지만, 때늦게 책을 읽는 것도 상당히 재미난 일이다. 굳이 예를 든다면 이런 기분이다. 오래된 영화를 보고 있다가, 지금은 한참 상종가를 달리고 있는 영화배우의 데뷔적 모습을 보게 될 때의 그런 신선함이랄까? 기대하지 않았던 행운을 거머쥔 듯한, 약간은 짜릿하기까지 한 그런 기분... 그러니까... 꼭 늦었다는 게 나쁜 것은 아니다. 유행이라는 것도 그렇고... 꼭 첨단이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암튼... 이 책의 작가는 나와 동갑이다. 1999년도였다면 만으로 스물 다섯이었을텐데... 아주 부럽다. 예전에 역시 동갑인 김지호가 한참 뜰 때도 약간의 비애감 같은 걸 느꼈다. 쟤는 열심히(?),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데, 나는 뭔가, 뭐 그런 생각이었던 것 같다. 각설하고... 이 작품의 주인공은 두 명의 여성이다. 호출기 회사에서 일하면서 포르노 영화 더빙 일을 아르바이트로 하는 스물 다섯 살 처녀 은해와 비행기 사고로 딸을 잃은 50대의 윤자. 이것저것 빼면 채 190쪽이 안 되는 작품인데, 솔직히 잘 읽혀지지는 않는다. 뭐라고 할까? 신경숙의 책을 읽을 때의 그런 느낌. 개인적으로는 신경숙의 <깊은 슬픔>을 읽고 정말 깊은 슬픔에 빠져서 한동안 허우적거렸던 기억이 있다. 그 뒤로는 신경숙의 작품은 절대로 읽지 않는다. 모르겠다. 또 언제 맘이 바뀌어 신경숙의 작품들만 읽게 될지도... 그런데 이신조의 이 작품 역시 신경숙의 작품을 대했을 때의 그런 느낌이다. 아주 무겁고, 아주 무겁다. 물론 이것은 가치가 개입된 평가는 아니다. 좋다, 나쁘다로 평가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무겁다. 그래서 부담스럽지만, 그래서 안쓰럽고, 그래서 더 신경이 쓰이고, 그래서 계속 읽게 된다. 왜냐하면 은해나 윤자나...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아픈 과거로 인한 은해의 상처와, 딸을 잃은 윤자의 상실감... 책을 읽으면서 그런 것들을 조금씩 조금씩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누군가 대화할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힘들 때, 내가 슬플 때, 마음이 너무 아플 때, 그냥 같이 이야기하고 함께 위로해주고, 격려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 어쩌면 은해나 윤자도 은연중에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소통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 같은 아파트, 옆 집에 살면서도 백화점에서나 우연히 만날 수밖에 없는 이 두 사람처럼... 나 역시, 충분히 나의 친구와 위로자가 되어줄 수 있는 사람들을 곁에 놔두고도 끊임없이 헤매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 누구나 다 상처를 가지고 있고, 상실의 경험을 안고 살아간다. 하지만 스스로 소외되었다고 생각하고, 고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만났을 때 그들은 스스로를 조금은 보듬어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해본다. 그리고 나도... 상처와 상실을 치유할 수 있는 만남이 고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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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자와 해자.. 두여자의 행적을 따라 소설의 스토리는 흘러가고 있다.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의 타이틀을 보고 고른 이책은 약 15년전에 쓰여진 책이다.. 지금 읽어도 시대상을 느끼지 않고 읽을수 있는 이유는 아마도 감성을 전하고자 하는 부분에서 맞기 떄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50대 중년의 윤자와 2~30대 의 해자간 의 연결고리는 딸아이를 잃은 윤자의 마음이 해자를 밝아가고 있기 때문이었을까 ? 소설의 주인공들은 사연을 갖고있는 사람들이고, 그속에 그들이 그렇게 살수밖에 없는 상황들을 나역시 몰입되어 보게 된다. 글을 읽게 되면 글에 맛이라는 걸 느끼는데 그래도 상황의 묘사와 주인공의 각각의 케릭터 그리고 각 장의 편집 과장도 좋았다. 최근에 쓰여진 소설이 있으면 다시 찾아서 봐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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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조의 <기대어 앉은="" 오후="">는 일견 평범하달 수 있는 두 여자의 이야기가 중심 축에 있다. 용기를 내 수영을 배우기 시작한 평범한 중년의 주부 윤자와 호출기 메신저이면서 포르노 음성더빙을 하는 은해는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주변에서 쉽게 부닥칠 수 있는 익숙해 보이는 인물들이다. 하지만 소설 속 두 여자는 공통적으로 허무의 무게를 인식하고 살아간다. 그들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이면의 새삼스런 진실이 보이고, 그래서 무겁다. 백화점의 깨끗한 유리를 보면서 그 유리를 윤이 나도록 닦을 누군가를 생각하거나 늦은 출근길의 버스 안에서 후줄근한 남자의 양복에 새겨진 지친 일상의 회초리같은 매서움을 본다. 둘 모두 일정량의 냉소와 허무에 사로잡혀 있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 일까?
비행기 사고로 딸이 죽은 후 습관적 도벽이 생긴 중년의 윤자와 누군가에 의해 평범함과 무난함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의 무참함을 겪은 은해는 같은 공간에서 자기 몫의 고독을 감당하고 있다. 일견 서술의 형태는 건조하지만, 일상에는 돌연한 사건들이 스며있다. 사소하지만 파괴적인 그런 "사건"들이 우리의 주변을 맴돌다가 커다랗게 틈입하여 생을 지탱하는 힘을 앗아가곤 한다. 그렇게 습관처럼 살아가고 짐짓 힘겨움을 외면하고 사는 우리의 모습은 참 새삼스럽고 익숙하다. 윤자의 죽은 딸 역시 은해와 아주 다르지만은 않다. 둘 다 획일적인 일상가운데 특별함의 함정에 빠진 친근한 인물들이다. 소설을 읽고 씁쓸함을 느끼는 독자 자신의 일상이 어쩜 이와 비슷할 지 모르겠다.
현대인의 수렵생활의 장인 백화점이라는 공간과 그 속을 헤짚고 다니는 캐릭터들은 현대의 물질적인 풍족함 이면에 필연적이기까지 한 정신적 허무를 썩 잘 담아내고 있다. 그 모순의 현실 속에서 주인공 은해와 윤자의 죽은 딸은 특별한 존재가 되기를 갈망했다. 하지만, 그들이 특별한 의미부여를 했었던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거나 무참해지기 일수이다. 자신의 인생 안에서 발생하는 소소한 일들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이 겪을 짧은 절망의 단편이 잘 느껴지는 죽은 딸의 일기부분은 상당히 인상적으로 읽힌다. 한편 조금 비참하게 느껴지는 그네들의 일상이 울림이 큰 편이라면, 결말 부분의 윤자와 은해가 경험하는 공감과 소통은 좀 허허롭다. 이 부분에서 소설의 버거운 의무감이 느껴지는 건 현실에 대한 나 자신의 냉소가 크기 때문일까. 소설은 꼭 실낱같은 낙관이라도 담아야 하는 것일까. 아직 다음 작품이 묶여나오질 않아서 딱히 무어라 말할 순 없지만, 등단의 터널을 지났으니, 작가자신의 세계관에 솔직한, 충분히 냉소적인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인상깊은구절] 비브르 사 비>라는 영화를 보았죠.흑백의 고다르. 난 영화 속 그녀처럼 머리칼을 자르고 싶어졌어요. 그녀의 이름은 나나, 스물두 살. 난 책임에 대해 생각해. 담배 피우는 건 내 자유, 내 책임. 오른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것도 자유, 내 책임.눈을 감는 것도 내 자유, 내 책임. 책임을 잊고 있을 때도 책임은 남아있으니.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도망치고 싶다는 거야. 그녀의 이름은 나나. 영화배우가 되고 싶은 그녀, 특별해 지고 싶은 그녀, 포주에게 편지를 쓰는 그녀. 말하지 않고 산다는 건 멋진 일일 거예요. 책 읽어주는 남자, 다시 사랑해게 된 그녀. 룩셈부르크 공원에 가고 싶었던 그녀, 갈 수도 있었던 그녀. 그러나 그녀의 마지막 말은 안 돼, 쏘지 마... 삶을 생각한 순간 죽음이 시작된다는 걸 쓸쓸하게 쓸쓸하게 보여주는 고다르. 그녀는 충분히 특별할 수 있었는데 말이죠기대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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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은 메인에 앉힐 것인가, 리뷰에 앉힐 것인가를 두고 적잖이 고민했던 것 같다. 그게 뭐랄까 좀 갈팡 질팡 하달까. 어쨌든 왜 그랬는지 읽었을 당시로 필름을 되돌려 볼란다.
이 작품이 세상에 나왔을 당시, 작가의 나이가 스물 다섯이었단다. 그걸 보고 속으로 우와, 그랬던것 같다. 왜냐하면 꽤나 늙수구레한 느낌이 드는 글이었기 때문이다. 음...왜 그런 느낌이었냐면...음...이런 젠장, 생각이 잘 안난다. 아무튼 그랬다니까.
별 넷이냐 다섯이냐 에서 갈등을 때렸던 가장 첫번째 이유가 의미없는 의식의 흐름이란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의식의 흐름이라는 소설 기법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저, 책을 보다 보니 여기저기서 말하는 얘기들 중에 의식의 흐름이란 무시기가 있다는 것 정도 아는 것인데 뭐, 이 책도 버지니아 울프라든가, 헨리 제임스라든가, 또 뭐냐 그 원조 아저씨. 응, 그래, 푸르스트 뭐 그런 식의 흐름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내 필에는 이런 게 의식에 흐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님 마는 거고. 그런데 그게 뭐랄까 좀 같이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 거였으면 더 재미있었을 거 같은데, 왠지 그냥 별로 의미없는 생각들을 늘어 놓은 것 같아서 지루했다. 그러다면, 지루했다면 지루한 거지 갈등은 왜 하고 앉았나. 그게 또 그런 게 그 '의미없는' 이란게 나여서 라든가, 또는 내 기분에 따라서 받아들여질 여지가 다를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뭔 말이냐고? 아 놔, 그러니까 나도 뭔말인지 잘 모르겠다는 거지.
일단, 여성용 소설이란 느낌이 매우 강하다. 소설에 여성용, 남성용이 따로 있어? 라고 인상을 쓰고 되묻는다면 아니 없어. 라고 말할 것이고 몰라서 묻는 것처럼 물어본다면 응, 있어. 라고 말할 것 같다. 그러니까 그게 뭐냐면 역대적으로 여성 소설중에 왜 그런 거 있잖은 가 말이다. 엄청 섬세해서 그 뭐랄까, 계속 섬세한 거. 그다지 이야기의 진행은 없다손 치더라도, 날아가는 파리 하나로 뭔가 생각의 연결고리를 지어서 몇 페이지를 잡아먹는 형식 말이다. 그러니 당근 빳다 지루해야 당연한 것임에도 그렇지가 않다는 게 바로 갈등의 주요 요소였다. 왜 지루하지 않았을 까를 곰곰히 생각해 보면 이렇다. 일단, 이 책이 장편이라고는 해도 단락 단락이 끊어져 있는 느낌이다. 그러니까 마치 연작 소설 같은 느낌도 들고, 하나의 단락이 조금 만 더 길어졌으면 분명히 지루해! 라고 소리를 질렀을텐데 교묘하게 딱 지루하기 직전에 얘기가 끝난다. 그러니까 뭐랄까 자꾸만 약을 바짝 바짝 올린다고 해야하나. 아줌마와 아가씨가 번갈아 가며 화자로 등장하는 데 그들이 사물을 관찰하는 맛이 조금 독특한 부분이 있다는 것도 갈등의 요소였다. 그게 그런데 완전 독특하면 좋아! 라고 나도 쿨하게 말할 수 있을텐데 독특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좀 그렇다. 같기도의 후예라고나 할까. 음...그리구...군데 군데 아주 멋진 표현들이 있구....또...아무튼 결정적으로 지금의 분량에서 50페이지만 더 늘어났어도 분명히 지루했다라고 딱 집어서 말할 수 있다. 근데 그게 또 뭐냐, 딱 그 시점에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단 말이지...아 놔. 그리구 또, 그래, 문장이 묘사하는 장면이 뭐랄까 상상하기 쉬운 장면들로 이루어져있다. 그러면 좋지 않겠느냐, 뭔가 리얼하게 느껴지지 않겠느냐 하겠지만 그게 또 안 그런 게 상상이 쉽기는 한데 그 상상이 우리 주변에서 늘 보는 평이한 장면들인지라 뭐랄까, 다소 임팩트한 맛이 없다. 그러나 또 그런 상상이 쉬운 장면들마저 없었다면 이건 완전 지루해! 가 되어버렸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아, 그러니까 나도 뭔가 쿨하게 결정을 내리고 싶은 데 그게 그게 아니라니까!
아주 쉽게 말해서, 이야기 만땅을 좋아하는 내 친구녀석이 이 책을 보면 이런 빌어먹을! 이라고 말했을 거고, 뭔가 조곤히 곱씹으며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다지 나쁘다고 여겨지지 않았을 것 같다. 아니, 어떤 면에서 좋다고 느낄수도 있을 것 같다. 결정적으로 나는, 아주 재미있지는 않았지만 그리고 분명히 지루할 만큼 이야기 없는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별로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일단 높은 점수를 줬다. 그리고 또 나른한 오후와 걸 맞는 듯한 작품의 느낌은 이 작품의 [기대어 앉은 오후]라는 제목과 기가막히게 딱 들어 맞는다. 정말, 저 제목 하나로도 이 작품의 분위기가 물씬 연상되는 그런 거다. 솔직히 까놓고 보자면 그냥 그 구성과 탄탄한 문장,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솜씨만으로도 훌륭하지 않나 싶다. 스물다섯의 꽃다운 처녀에게 진행하는 이야기가 없으니 삶의 깊이라도 담뿍 담긴 얘기들을 풀어나가라고 하는 것은 요청 자체가 무리라고 생각된다. 아참, 오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난 처음에 현재는 "~한다"로 표현하고, 회상은 "~했다"로 표현하는 건지 알았는데 작품이 진행됨에 따라서 그 경계가 모호한 것이다. 그러니까 현재로 갈라면 주욱 현재로 가든가, 아니면 과거로 가든가 그런 게 아니라, 왔다 간다 한다는 얘기이다. 제대로 프로 작가가 된다면 그런 실수는 하지 않겠지. 뭐 사실, 난 그런 건 중요시 하는 편이 아니니까. 일단 작품을 이해하는데 그렇게 걸림돌이 되는 상황은 아니었으니까. 그러니 뭐랄까, 10년전이 아니라 요즘에 이 작가 쓴 작품을 한 번 찾아봐야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없으면 실망해버릴거야! 미술이나, 음악, 문학이나 자고로 작가란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줘야, 그 뭐시냐. 좀 거시기가 아니겠는가. |
| 정말 암울한 여성들의 삶이다. 대학을 나오지 않아서일까....요즘은 여성들도 남성들 못지않게 교육의 기회가 많이 주어지고 있다. 그래서 많은 여성들이 대학을 나오고 전문직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여성들도 많았다. 이 책에 나오는 말 그래도 우리는 빽도 없고 대학을 나오기를 했나..그렇고 그렇게 통신회사나 전전하다가 결혼을 해서 푹퍼진 아줌마가 되는거지..라는 말이 너무 아프게 다가온다. 하나하나 말이 모두 찌르는 말투이고 그 말투에는 외로움이 묻어난다. 이 외로움은 나이가 든 여자이거나 젊은 여자이거나 가릴 것이 없다. 여자들은 모두 외로운 것 같다. 그 누가 그렇게 만들어서도 아니고...그냥 천성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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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면은 비행기 추락사고로 시작된다. 왜 뜬금없이 비행기 추락 사고? 그럼 이때 등장한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과거지사, 즉 비행기 추락 사고 직전까지의 이야기가 이 소설의 큰 줄거리일까. 난 적어도 그렇게 짐작했었다. 그러나 곧 그게 아니란 걸 알았다. 이 소설은 20대 여자와 50대여자가 중심 인물로, 평행선을 달리듯 각자의 삶을 살던 두 여자가 어떠한 접점을 갖게 되고, 나란히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가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20대 중반의 은해는 포르노 영화 더빙을 하는 성우이다. 은해의 엄마는 후처로 위로는 이복 오빠가 두 명있다. 그런 탓인지, 은해는 엄마의 사랑이라고는 받아 보지도 못했고, 그것은 어떤 결핍으로 그녀의 마음속에 남아 있다. 50대의 윤자는 평범한 삶을 살아 온 주부다. 그러나 어느 날 자신의 교수와 불륜 관계에 있던 딸이 비행기 추락사고로 숨지게 된다. 집안의 자랑이었던 딸은 임신한 상태였다. 그후 윤자의 삶은 180도 바뀌게 되었다. 남편과 아들과 소원한 관계가 된 그녀는 작은 물건을 훔치는 행위로 자신의 상실감을 보상받고자 하나, 그건 결코 치유가 되지 못했다. 은해와 윤자가 만난 것은 한 스포츠 클럽 수영 교실에 등록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처음엔 데면데면한 사이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에게 호기심을 갖게 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어찌보면 딸을 잃었다는 상실감을 가진 윤자와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상처를 가진 은해가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은해는 윤자에게서 자신이 바라던 어머니의 모습을, 윤자는 은해에게서 죽어버린 딸의 모습을 필사적으로 찾고 있었던 게 아닐까. 물흐르듯 잔잔히 진행되는 스토리이지만, 세부 묘사는 여성 작가답게 섬세하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머릿속에 그 장면장면이 새겨질 정도로. <기대어 앉은 오후>는 제목 그대로 상처와 상실이란 고통을 나누며 서로르 품어주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주는 두 사람의 이야기는 따사로운 오후 햇살이 내리쬐는 벤치에 두 여자가 기대어 앉은 모습을 떠올리게 해 준 그런 소설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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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날로 치밀해지고 있다. 그 철저히 훈련된 치밀함에서 느껴지는 고단한 서글픔.
- 정확한 것은 늘 정확하지 않은 것을 견제하고 비난한다. 그러나 정확한 것보다 정확하지 않은 것이 있어 훨씬 결정적이라는 것을 은해는 알고 있다. 그러므로 정확한 것은 정확하지 않은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 원치 않는 무언가에 얽히고 싶지 않다는 강한 거부감이 드는 것은 이미 그 무언가에 얽히고 있다는 반증일 수 있다. - 독선적인 것을 제법 사려 깊은 자신감으로 보이게 하는 처세술.
- 사실 별자리라는 거 참 인위적인 거죠. 감히 거대한 항성들을 줄 세우고 잇고 자르다니. 그런 어림없는 일이 어디 있겠어요. 게다가 그럴싸한 전설까지. 하지만 고대 희랍의 무지하고 순박한 양치기 목동이 그걸 해낸 거예요. 몇천 년 동안 그 누구도 - 과학자도 지식인도 권력자도 예술가도 - 그 목동이 부여한 질서에 감히 시비를 걸지 못했어요. 무지하고 순박한 질서였기 때문일까요.
- 별은 그냥 있는 거예요. 줄을 잇대어 짝을 이뤄주지 않아도 처음부터 그냥 있었던 거예요. |
| 여름이다..무더운 여름이 사람들은 빨리 가기만을 바란다. 나도 더운 여름을 보내면서 대부분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보낸다. 이 더운 여름이 빨리 가기를...하지만 때로는 이 더운 여름이 더욱 더 더웠으면...더욱 더 햇살이 뜨겁게 내려쬐었으면...하는 생각도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가을이 오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낙엽이 지고...스산해지는...늙어가는 것...죽어가는 것...이런 가을이 오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소설 속의 두주인공은 지금 여름의 막바지이지 가을이 시작되는 입구에 서 있다. 그래서 모든 일이 혼란스럽기만 한 것이다. 왜냐하면 가을을 맞이하는 것이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혼란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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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조의 <기대어 앉은="" 오후="">는 평범한 두 여자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수영을 배우는 평범한 50대 주부, 윤자와 아르바이트로 포르노 더빙을 하는 은해는 소설 속에서 현대를 살고 있는, 지금이라도 길에서 만나 지나칠 수 있는 캐릭터들이다. 하지만 소설 속 두 여자는 공통적으로 허무의 무게를 인식하고 사는 사람들이다. 비행기 사고로 딸이 죽자 그 상실감으로 도벽이 생긴 볼품없는 아줌마, 윤자와 은해는 같은 공간에서 각자 고독해 한다. 그러다가 그 둘의 고독은 교감하게 된다. 세대를 넘어서... 공.감.한.다. 백화점이라는 공간 설정과 맞물려 인물들의 캐릭터가 현대의 물질적인 풍족함 이면에 정신적인 빈곤함을 잘 드러내 주고 있는 것 같다. 모두가 평범한, 획일적인 삶을 강요받는 현실... 그 안에서 주인공 은해는 특별한 존재가 되기를 갈망한다. 같은 회사 직원 (최 대리)이 은해를 은혜가 아닌 은해로 인식한 것이 특별함으로 다가오지만 결국 그 특별함마저 평범한, 아니 사소한 일이었던 것이다. 여성 작가답게 여성의 심리를 감각적으로 잘 드러낸 듯 하고 글분위기도 주제와 어울리게 잘 형상화된 작품이다. [인상깊은구절] 은해가 최 대리의 미묘한 콤플렉스를 정확히 알아본 것처럼, 최 대리도 은해가 은혜가 아닌 은해임을 정확히 알아본 것이다. 은해는 그 사소한 '알아봄'에 왠지 가슴이 벅차다. 그것은 뚜렷하고 분명하고 특별한 일이라 여겨진다.기대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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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두 여인. 50대 중반과 20대 중반. 20대 중반은 50대 중반을 비웃는다. 50대 중반은 20대 중반을 부러워하면서 약간은 시기한다. 오늘을 살아가는 여성의 한 모습들이다. 기대어 앉은 오후 역시 그런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은해와 윤자는 같은 아파트에 서는 여성이다. 그들은 서로를 알지 못하지만 느낌으로 알고, 느낌을 더 하면서 서로를 알게 된다. 50대 여성 윤자는 손을 한 번씩 다른 방향에 둔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남편과 아들의 아침상을 통하여 반역을 꿈꾸지만 남편과 아들의 반응을 신통치 않다. 은해는 최대리에 대한 감정을 가진다. 최대라의 콤프렉스를 알아 차린 결과다. 최대리도 반격을 하여. 그의 이름을 은혜가 아닌 은해라 한다. 한 밤에 꿈을 꾸었지만 은해는 결국 최대리를 갖지 못한다.왜 그럴까 결국 그는 아버지의 가죽장갑과 수영강사를 통하여.
요즘 소설이 다 그렇지만 자기 혼자만의 세상을 이야기 한다. 남을 대하는 성격이 영 불만이다. 과연 수영강사는 은해를 어떻게 보았을까? 최대리는 은해를 어떻게 보았을까? 남편과 아들은 윤자를 어떻게 보았을까? 윤자와 은해가 가졌던 생각을 그대로 가졌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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