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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의 미소'로 단번에 유명해지신 최은영 작가님, 이름은 많이 들었지만 실제로 작품을 읽어본 건 젊은작가상 작품집에서를 제외하면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작품 하나하나 천천히 읽어내렸는데, 마음에 남는 부분이 많았어요. 좋았던 부분들을 소개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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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저는 그 사람을 위로했고, 그 사람도 저를 위로했죠. 어떻게 우리가 두 사람일 수 있는지 의아할 때도 있었어요. 네가 아픈 걸 내가 고스란히 느낄 수 있고, 내가 아프면 네가 우는데 어떻게 우리가 다른 사람일 수 있는 거지? 그 착각이 지금의 우리를 이렇게 형편없는 사람들로 만들었는지도 몰라요. "
- '그 여름' 중 *
저는 이런 사랑을 아직 해본 적 없어서, 이 구절은 마음에 남으면서도 크게 공감이 되지는 않았어요. 다만 언젠가 정말 사랑을 할 거라면 저도 서로를 저렇게 자신만큼 아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착각이 지금의 우리를 이렇게 형편없는 사람들로 만들었는지도 몰라요' 라는 인물의 말처럼, 서로가 타인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는 상태까지 이어져버린 사랑은 건강한 사랑일 수 없다고 생각해요. 사랑만이 아니라 과한 의존이 크게 작용한 결과라는 생각이 들어서예요. 서로가 다른 존재임을 인지하며, 그럼에도 그 차이를 좁히고 뛰어넘으면서 지켜나가는 사랑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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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은 은지가 자신의 마음을 읽어내리라는 걸 알았다. 이토록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말하지 않고서도 순간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도. 둘은 마주서서 서로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 '그 여름' 중 *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해도 우리는 흐르는 공기로, 스치는 눈빛으로, 침묵의 무게로 함께하는 그 순간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어요. 서로가 그 상황에 진심으로, 제대로 집중하고 있다면 자주 느낄 수 있는 일인 것 같아요. 이경과 은지도 그런 마음이었겠죠. 차마 말로 꺼낼 수 없는 것들을 눈동자를 통해 들여다보는 일. 모호하고 불확실할지도 모르지만, 느껴진 감정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저에게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일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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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로움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겼다. 사람에게 연연하기 시작하면 마음이 상하고 망가지고 비뚤어진다고 생각했으니까. 구질구질하고 비뚤어진 인간이 되느니 차라리 초연하고 외로운 인간이 되는 편을 선택하고 싶었다.
- '모래로 지은 집' 중 *
저도 이렇게 생각할 때가 종종 있어요. 사람에게 연연하다가 실망할 바엔, 차라리 아예 한발짝 멀리에 계속 서서 외롭지만 비참하지 않은 인간이 되는 편이 낫다고. '모래로 지은 집'을 읽으면서 나비와 저와 닮은 점들이 꽤 많다고 생각했어요. 가능한 혼자 결정하고, 의지하지 않고, 구질구질해질 바엔 차라리 영원히 혼자인 편이 나은 사람. 하지만 사실은 나비도 저도 그냥 외면당하고 싶지 않은 겁쟁이일 뿐인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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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른이 되고 나서도 누군가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마다 나는 그런 노력이 어떤 덕성도 아니며 그저 덜 상처받고 싶어 택한 비겁함은 아닐지 의심했다. 어린 시절, 어떻게든 생존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이 습관이자 관성이 되어 계속 작동하는 것 아닐까. 속이 깊다거나 어른스럽다는 말은 적당하지 않았다. 이해라는 것, 그건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택한 방법이었으니까. ....
- '모래로 지은 집' 중 *
저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너무 많은 사람이지만, 제게도 어떤 '덜 상처받고 싶어 택한 비겁함'이 있다고 생각해요. 큰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상처를 최소화하기 위해 택한 방어기제. 나비에게는 그것이 이해의 노력이었을 것이고, 아마 저는 망각과 외면인 것 같아요. 우리 모두 생존하기 위해 사용해온 습관이 마음 한켠에 존재하지 않을까요? 사람이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런 것들도 필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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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밤엔가는 너에게 화가 나는 거야. 나를 돌아보지도 않는 너의 냉정함에 화가 났어. 그날 밤에 잠들지 못하고 뜬눈으로 누워서 생각했지. 네가 밉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그날 밤, 나는 내가 평생을 속으로 다른 사람들을 책망하며 살았다는 걸 알아차렸어. 그리고 그 책망의 무게만큼 그 사람들에게 의존했다는 것도.
- '모래로 지은 집' 중 *
책에서 가장 마음이 꽂힌 구절이었어요. 꾹꾹 누른 모래의 마음이 담긴 편지에서 일순 제 모습이 겹쳐 보였거든요. 나를 더 많이 소중히 대해주지 않는 친구들을, 가족을 마음속으로 줄곧 탓해 왔던 나는 결국 그 책망의 무게만큼 그들에게 의존하고 있었던 걸까, 하고요. 그렇게도 의존을 버리고 싶어했는데, 반복해서 실망하고 또 체념한다는 사실은 그럼에도 그 사람들을 의존하고 있다는 의미일까요. 하지만 사람이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의존하지 않고서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 저는 회의적입니다.
* 나는 모래가 내게 의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 눈에 모래는 타인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허약한 사람이었다. 관계에 대한 그애의 성실함이 때때로 비굴해 보이기도 했다. 사람에게 치명적으로 상처받지 않았으므로 마음껏 다정할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내 마음속, 그 모든 확신이 적힌 카드들을 들춰 보면서 나는 그 카드의 뒷면에 쓰인 말들을 읽었다. 나는 다그치는 사람, 이해하지 않으려는 사람, 오해하고 단죄하는 사람, 누구보다도 모래에게 마음을 기댔던 사람, 이 모든 사실을 부정했던 사람.....
- '모래로 지은 집' 중 *
나비에게 많이 이입된 부분이었어요. 나도 그녀와 비슷한 건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카드의 뒷면에 쓰인 말, '이해하지 않으려는 사람', '오해하고 단죄하는 사람'. 저는 저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잘 모르겠어요. 속 깊은 곳을 찔린 것처럼 어딘가가 쓰렸고, 혼란스러워진 구절이었습니다.
'내게 무해한 사람' 리뷰는 이만 마치겠습니다. 마음에 성큼성큼 다가와 깃발을 꽂아넣는 듯한 소설집이었습니다. 곧 읽게 될 쇼코의 미소가 기대되어요. 최은영 작가님의 행보를 열심히 지켜보게 될 것 같습니다. 복잡한 사람의 감정을 글로써 명확하게 짚어보고 싶으시다면 이 책을 추천드립니다! 좋았던 구절 두어 개를 더 적으며 마칩니다. 총총.
* 언니, 어두운 쪽에서는 밝은 쪽이 잘 보이잖아. 그런데 왜 밝은 쪽에서는 어두운 쪽이 잘 보이지 않을까. 차라리 모두 어둡다면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서로를 볼 수 있을 텐데.
- '손길' 중 *
나는 언제나 사람들이 내게 실망을 줬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보다 고통스러운 건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실망을 준 나 자신이었다. 나를 사랑할 준비가 된 사람조차 등을 돌리게 한 나의 메마름이었다. 사랑해. 나는 속삭였다. 사랑해, 모래야.
- '모래로 된 집'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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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 작가의 소설집. 책 소개를 제대로 보지 않아 막연히 사랑에 대한 소설집인 줄 알고 구매했었다. '사랑'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사랑'이 주제도 아니었던 소설들을 모아놓은 책. 여러 단편들이 섞여 있어서 하나하나 짚어가며 이야기하면 글이 길어질 것 같으니 소설들이 공통적으로 담고 있는 것들만 언급하도록 하겠다. 먼저 '약자 여성'이다. 모든 단편에는 약자 혹은 피해자 혹은 소심한 사람으로 '여성'이 등장한다. 그 여성들을 그렇게 만드는 것은 남자, 혹은 사회, 혹은 같은 여자. 즉, 페미니즘 소설이었다. 또 하나는 모두 주인공이 과거를 회상하는 내용이라는 점이다. 과거에 겪었던 불합리함이나 사회적 소외감 등을 주로 다뤘다. 물론 소설이니까 남자 혹은 사회 혹은 여자가 다른 여자를 대상으로 '가해 행위'를 할 수는 있다. 그런 것을 소설의 소재로 사용하지 못하게 막는다면 한국은 문학에서마저 자유를 침해받는 국가로 낙인찍힐 테니까. 근데 문제는 이 소설에서 나오는 불합리함이나 가해 행위들이 현재 사회에서 빈번하게 일어나지 않는 이야기들이라는 게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물론 동성애에 관한 이야기는 현재도 많이 불편해함으로 예외다). 빈번하게 일어나지 않으니까 소설의 소재로 쓰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문학은 사회에서 발행하는 불편함을 고발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그랬다면 제목을 이렇게 지어서는 안되었다. '내게 무해한 사람'. 네가 하는 행동들이 내게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기 때문에, 너는 내게 무해한 사람이라고 표현되는 문구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정말로 무해한 사람들이었을까. 나는 읽는 내내 불편했다. 특정 인물이 특정 인물에게 무해한 사람이 되었다고 해서 그것을 사회적으로 무해한 사람인 것처럼 적어 놓은 것 자체가 불편하게 느껴졌다. 지금 한국 여성 작가들에게는 '페미니즘'이 엄청나게 유행인 듯하다. 이런 저런 이유들이 있겠지만 내가 봤을 땐 '돈'이 되니까 자꾸 글로 언급하는 것 같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일방적으로 '여성은 사회와 규범과 남성들, 심지어 같은 여성들에게까지 가해를 당한 피해자'였다고 말한다. 물론 이 책에서 말하듯이 과거에는 그런 일들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언제부터 '페미니즘'이 여성들의 '피해자 코스프레'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페미니즘 소설에 해답은 없다. 물론 사회적으로도 당장에 해답이 나올 문제는 아니지만,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여주인공만 내세운다고 달라질 것도 없다. 공감을 얻었으면 다음 발걸음을 내딛어야 한다. 페미니즘은 여성 피해자들의 하소연 운동이 아니다. 제발 여성 작가들이 '페미니즘 소설'을 쓰면서 그 점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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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에서야 오래전의 기억들이 못내 부끄러운 경우가 있다. 나이가 들수록 과거의 기억들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가 있는데, 지금의 나는 초등학교때, 혹은 더 이전의 기억들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또한 이십대 초반에 경험했던 이야기들. 다시 돌아간다면 기억들을 다르게 바꾸고만 싶은 일들. 그러한 기억들이 선명하게 떠오를때면 나도 몰래 고개를 흔든다. 여자이기 때문에 거쳐야 했던 나쁜 기억들, 혹은 여자만이 갖는 경험들이 못내 아파 다시 현재의 나로 돌아오고마는 기억 조각들. 이런 생각들 때문에 과거의 나 보다는 지금이 좋다고 말할 수 있는 모양이다.
최은영의 소설을 『쇼코의 미소』로 처음 만났고, 소설 속 이야기에 한동안 빠져 있었다. 단편의 이야기들이 이렇게 마음속 깊이 다가와도 되는가. 못내 뭉클해지기까지 하는 감정들 때문에 숨고르기를 해야 했던 순간들이었다. 최은영의 소설을 읽는 것은. 이번 작품 『내게 무해한 사람』도 그 비슷하게 읽혔다. 그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임에도 가슴속 깊이 들어오는 스토리들 때문에 한 편을 읽고 짧은 메모지에 느낌을 남기기를 여러 번. 최은영의 소설을 읽는 것은 내게 마음을 충만하게 하는 도구였다.
총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이 모든 이야기들에서 여성을 이야기했다. 여성과 여성만이 가지는 고유한 느낌들. 관계와 관계, 그 관계에서는 친구와 친구라는 것도 있었고, 마치 이성처럼 사랑이 관계되는 것도 있었다. 또한 숙모와 조카라는 입장에서 바라 본 이야기까지. 현재의 30대 초반에서 과거를 더듬어 보는 이야기들이었다.
최근의 소설들 중에서 눈에 띄는게 전에는 금기시했던 레즈비언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점이다. 그런 이야기들이 자주 노출되어서인지 이제 뜻밖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는다. 최은영은 소설집 중 두 편에서 레즈비언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 첫번째 「그 여름」에서는 같은 고등학교 2학년의 이경이 여자 축구부에 속해있던 수아를 만나 사랑하고 헤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많은 순간들을 함께 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사이라고 여기지만 사람의 관계란 게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실제 여자고등학교였던 우리 반에서도 같은 반의 여자 아이(남자처럼 생긴)를 좋아하던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를 보면 설레고 두근거린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동경의 눈으로 바라보았던 그 아이와 다르게 이경과 수아는 확실히 레즈비언이라고 못박는다.
그 다른 이야기 「그 여름」은 수사 서약을 하기 전 마지막 여자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미주, 주나 진희 세 명의 친구들은 서로에게 엮여 있었다. 어느 날 진희가 어렵게 고백을 하게 되는데 사실은 여자를 좋아한다는 이야기였다. 역겹다고 말하는 주나 보다 경멸의 표정으로 바라보는 미주 때문이었을 진희의 자살 소식. 오랫동안 감춰두었을 고백과 그것에 대처하는 두 사람의 말과 표정은 우리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상반된 이야기처럼 보인다. 직접적인 레즈비언 이야기와 레즈비언이라고 밝힌 친구를 바라보는 감정은 마치 거울처럼 우리의 시선들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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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젊은 층들은 긴 글을 읽지 않는다고 한다. 아마 트위터나 인스타그램등의 짧은 글을 주로 읽고 쓰는 이들에게 긴 글은 선호의 대상이 아닐지 모른다. 단편 소설 또한 이와 다르지 않아서 제법 페이지가 있는 단편 보다는 짧은 글의 단편이 나오고 있는 추세다. 반면 이 작품은 여느 단편소설집 보다는 꽤 두껍다. 속해 있는 단편들 조차 중편에 가까울만큼 페이지 수가 퍽 많다. 그 중 특히 「모래로 지은 집」이라는 단편은 80페이지에 달했다. 마치 장편처럼 여겨질만큼 긴 중편이었다.
컴퓨터가 처음 나온 시절, 천리안이라는 게 유행이었다. 윈도우 보다는 도스로 홈페이지를 구축하던 때였는데, 천리안의 동호회에 가입되었던 모래와 나비, 공무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인터넷 특성상 예명을 사용하던 세 사람이 처음이자 마지막 정모를 이유로 스무 살 시절부터 십 년의 시간을 이야기한 내용이었다. 각자가 가진 아픔때문에 너는 아닐거라는 위안과 무언가를 기대한다는 것의 외로움. 외로움의 감정들을 숨기기 급급해 진정한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던 그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곧 지나고 말 청춘의 시기를 치열하게 살아 온 우리, 시간이 지나서야 그 시절의 우리가 가장 아름다웠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람이란 신기하지. 서로를 쓰다듬을 수 있는 손과 키스할 수 있는 입술이 있는데도, 그 손으로 상대를 때리고 그 입술로 가슴을 무너뜨리는 말을 주고받아. 난 인간이라면 모든 걸 다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하는 어른이 되지 않을 거야. (179페이지, 「모래로 지은 집」 중에서)
집안 사정 때문에 스물두 살의 숙모에게 4년 동안 맡겨졌다가 다시 만나 과거를 돌아보는 「손길」와 외로운 시간을 함께해 온 자매가 오랜시간 말도 하지 않고 떨어져 지내다 만나 하룻밤을 보내며 사무치게 외로웠던 밤 서로를 떠올릴 수 밖에 없었던 순간들을 그렸다.
최은영의 『내게 무해한 사람』에서는 소설 속 주인공들의 짙은 외로움을 나타냈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지만 각자의 방식대로 외로움을 이겨나가는 것 같다. 사무치게 외로운 순간들에서 떠올릴 수 있는 사람. 가장 중요한 순간들을 함께해 왔던 일들이기에 우리는 오래도록 기억속에서 지우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기억 저편의 지난 날들.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표정에 드러나는 감정들. 그 감정들때문에 오래도록 외로운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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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한국소설, 특히 단편소설은 읽을 때마다 이해하기 난해하다고 투덜거리는 내가 한 작가의 작품을 얼마되지 않는 시간을 두고
연달아 읽었다. 최은영 작가의 첫 소설집인 [쇼코의 미소]를 읽은 지 몇 달 되지 않아 두번째 작품집을 읽었으니 말이다. 내가
생각해도 신기하다. 그래서인지 갑자기 최은영 작가에게 푹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쇼코의 미소]는 이제부터라도 소설을 자주 읽어보겠다는 생각에 충동적으로
구매해 읽었다면, 이 책은 주위사람들의 리뷰를 보다가 선택한 책이다.
아마 전작인 [쇼코의 미소]를 읽은 느낌이 과히
나쁘지 않았다는 뜻 일 게다.
작가는 [쇼코의 미소]에서 관계사이의 이별과 갈등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 책 [내게 무해한 사람]에서는
오해와 착각으로 멀어졌던 관계에 대한 성찰이 담겨있다. 한 때는 가까이 자리했던 관계들이 이제는 희미하게
빛 바랜 과거의 흑백사진 속 한 컷으로 남아있다. 오해와 무지와 독선으로 인해 멀어져야만 했던 친구, 연인, 혹은 가족들에 대한 연민과 그 시절은 물론 지금까지 마음
속에 요동치는 감정의 흔들림을 묘사하고 있다. 과거를 회상하며 그 시절의 기억과 마주하는 것은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 마음이 흔들리는 불편함을 감내할 수 있어야만 가능하다.
소설집의 제목인 [내게 무해한 사람]도 한 편의 작품인 줄 알았다. 그러나 목차를 찾아보아도 없다. 어디서 나온 말일까 궁금해하며 읽어가다
[고백]에서 그 말과 마주친다. 고등학교 친구인 미주와 주나와 진희, 타인의 감정에 예민한 진희는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으려 한다. 그런 진희를 보며 미주는 ‘넌
내게 무해한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하며 안도한다. 진희가 어떤
고통을 받고 있는지 알지 못했기에 오히려 그런 생각을 하며 행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열여덟 생일 날
진희는 친구들에게 자신이 레즈비언이라 고백을 한다. 친구들은 경악을 하며 비난하고 돌연 진희가 자살을
택한다. 진희의 죽음을 놓고서 책임소재를 가리며 미주와 주나의 관계는 엇나간다. 그리고 그 시절 행복할 수 있었던 것은 진희의 고통을 몰랐기 때문이었다는 자각이 아프게 뒤따라온다.
책에는 [고통]을 포함하여 일곱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레즈비언 커플의 이야기를 다룬 [그 여름]에서 은지는 사랑에 빠지기 전의 생활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수이에게 몰두하지만 자신의 욕심과 위선으로
이별을 하게 된 지난시절을 뼈아프게 회상한다. [601, 602]에서 화자는 매일같이 오빠에게 폭행을
당하는 친구 효진이와 아들을 낳지 못해 구박을 받는 엄마를 통해 가부장적 가족관계를 그리고 있다. [지나가는
밤]에서는 어려서 성격차이로 헤어진 두 자매가 하룻밤을 같이 묵으며 서로에게 마음속으로만 하던 이야기를, [모래로 지은 집]은 고등학교때 만난 모래와 공무와 나비 사이의
우정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한편 [손길]은 자신을 돌보아주었던 숙모가 삼촌이 죽으면서 자취를 감추자 이해하지 못했던 화자가 숙모의 나이가 되어 숙모를
다시 만나는 과정을, [아치디에서]는 우연히 아치디에서 만난
랄도와 하민의 사랑을 그리고 있다.
소설집에 실린 작품들 모두는 과거의 이야기를
현재에 회상하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스무살 전후의 어렸을 때 이야기들을 서른을 넘기고서 돌아보고 있다. 이처럼 화자들이 과거를 소환하는 것은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그 시절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제대로 아물지 않은 상처들이 곳곳에서 살아나고, 그것은
어설펐던 지난날들에 대한 성찰의 시간을 주기도 한다. 단지 어렸기 때문이었다는 말로는 위로가 되지 않는다. 상처가 아물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그 시절을 대면한다는 것은 내
욕망, 내 무지에 대한 깨달음이 전제되어야 하기에 감정의 흔들림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
7편의 단편을 읽고서 나의 그 시절을 꺼내 보았다. 지금은 대부분 희미해진 기억들이지만, 나 역시도 오해와 무지로 인해 멀어져야 했던 관계들이 자리하고 있다. 너무나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 관계를 생각하면 불편한 마음부터 든다. 작가가 단편들의 화자를 통해 어떤 말을 하고 싶었는지를 생각하며 나 또한 그(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생각해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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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연히 느껴지는 작가의 성장이 놀랍다 전작보다 세련되고 밀도도 단단해졌다 마음을 뒤흔드는 솜씨는 여전하고- 저릿저릿한 마음을 쉼없이 다독이며 읽어야했다
* 걔랑 같이 밥을 먹어도, 같이 길을 걷고 이야기하고 웃어도 괴로웠어. 우리의 마음이 너무 달라서 외로웠어. 마음이라는 게 사그라지기를 바라면서도 막상 얼굴을 마주보고 있으면 그 마음이 사라질까봐 겁이 났어. 아무리 나를 괴롭게 하더라도 소중한 것이었으니까. 그 마음을 잃은 나는 어떤 사람이 될지 알 수 없었으니까. 단지 혼자가 되고 싶지 않아서, 외로워지기 싫어서, 남들 사는 것처럼 살고 싶어서 진짜 마음 하나 없이 함께하는 사람들처럼 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그게 나에게 가장 무서운 것이었는데. 나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가 될까.
* 사람이란 신기하지. 서로를 쓰다듬을 수 있는 손과 키스할 수 있는 입술이 있는데도, 그 손으로 상대를 때리고 그 입술로 가슴을 무너뜨리는 말을 주고받아. 난 인간이라면 모든 걸 다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하는 어른이 되지 않을 거야.
* 엉엉하고 몇 번이나 울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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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 소설을 읽었다. 단편보다는 장편을 좋아하는데 어찌하다 보니 또 단편을 만났다. 심지어 다른 책에서 읽은 단편이 두 개나 있다. 그럼에도 열심히 읽은 것은 불편한 부분도 있지만 외면할 수 없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그 여름과 601, 602는 다른 책에서 읽었기에 패스하고 ‘지나가는 밤’은 어느 집에나 있을 법한 자매들의 이야기다. 악착같이 싸우고 그러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조금은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자매들의 이야기. ‘모래로 지은 집’은 공무, 모래, 그리고 화자 나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가난한 두 남녀와 가난을 잘 모르는 여자 하나. 사랑에 빠질 것 같으면서도 빠지지 않게 젊은 시절을 보내는 그들은 결국 모두 헤어지게 된다. ‘고백’은 절친 미주, 주나, 진희의 이야기다. 셋은 누구보다 친했지만 어느 날 진희가 고백한다. 자신은 여자를 사랑하는 레즈비언 이라고. 이 고백은 세 사람의 우정을 갈라놓는다. ‘손길’은 어린 시절 숙모 밑에서 자란 이야기다. 어른이 되어 우연히 만나게 된 숙모. 하지만 삼촌과 헤어지고 나서 사라졌던 숙모는 자신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는다. ‘아치다에서’는 간호사로 일했지만 환자를 대하는 자신의 모습에 비릿한 마음이 든 하민의 이야기를 담았다.
작가가 말하는 바를 이해는 할 수 있지만 이걸 글로 표현하는 게 쉽지 않다.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사는 것처럼. 그래서 가장 쉽게 주제를 알 수 있었던 ‘고백’이 인상적이었는지 모르겠다. 만약 내 가장 친한 절친이 자신은 레즈비언이라고 고백한다면 나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그 친구를 대할 수 있을까? 미주, 주나, 진희는 그 고백 앞에 자신의 생각이 얼굴에 드러나게 된다. 자신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지만, 모든 생각이 얼굴에 그대로 투영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한 친구는 말한다. 정말 역겹다고. 나에게 이런 상황이 연출되지 않았으니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관계를 이어갈 수 있다고.. 하지만 이제는 그들의 성향에 대해서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닐까? 암튼 생각이 많아지는 단편이었다.
삶은 그게 어느 세대든 힘든 것 같다. 학생은 학생대로, 청춘은 청춘대로, 중년은 중년대로, 노년은 노년대로. 다 자기가 힘들다고 말한다. 자기 스타일대로 고민하고, 치열하게 싸우고, 미친 듯이 삶에 매진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힘든 청춘들을 보는 건 안타깝다. 그 모습이 조만간 내 아이들의 모습 같아서. 남자든 여자든 젊은 친구든 중년인 우리든, 더 나이 든 어르신이든 모두 행복하게 살면 좋겠다. 이렇게 어두운 책을 가능하면 읽고 싶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외면할 수 없는 우리네 현실. 보다 좋은 세상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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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이라는 이름은 익숙할 수밖에 없다. '쇼코의 미소'가 많이 팔린 덕분에 내 눈에도 들어온 이름이다. 하지만 나는 그 책을 읽지 않았었다. 이유는 분명하고 다양했다. 소문은 많았지만 주변에 읽은 사람이 없었다. 아마 누군가 읽었다면 적극 추천해줬을 텐데 그 기회가 없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한국 문학이 무서워서 피했다. 소설을 읽을 때부터 늘상 국내 작품이었다. 외국 소설은 이름부터 피하게 되는 요인이었다. 그렇게 한번 한국 소설에 빠져들면 막막할 정도로 많이 읽게 되니까. 그래서 피했다.
그런데 하필, 이 책을 읽고 말았고 몇 권의 한국 소설을 더 사게 되었다. 좋은 일이지만 다양한 책을 접하지 못한 내 독서 이력을 생각하면 기쁜 일이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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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에서 수이와 이경의 사랑은 특별하지 않다. 그저 여자와 여자였고 사귀었고 헤어졌다. 하지만 그 안에 나열되어 있는 이경의 마음과 수이의 행동은 왜 그렇게 누구 같고, 나 같고, 우리 같은지 모른다. 하지만, 그 여름 소녀와 소녀가, 햇볕에 몸을 맡긴 채, 서로의 채 자라지 않은 몸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눈이 보였다. 어떻게 남들과 같을 수가 있는가.
만난다는 건 헤어진다는 말이다. 그리고 서로가 어려워지기로 약속한 사이다. 적어도 내 머릿속에서의 연애는 이 정도의 결론은 분명하다. 그리고 결국 이들도 헤어졌다. 다른 글 속의 랄도와 하민도 그랬고 공무와 모래도 그랬다. 각자 같은 사람을 사랑하지 않아도 사랑하는 사람은 눈앞에서 흐려진다.
그 어떤 이야기라도, 작가가 바깥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에 따라 글은 달라진다. 작가는 적어도 사랑을 나와 같이 생각하지 않는다. 멀어져도 멀어진 채로 서로의 방향을 응시한다고 믿는 사람 같다. 그리고 그 속에서 여전히 가까히 다가설 수 없는 무게와 그리움을 문장으로 쏟아내는 사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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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는 어린 시절을 함께한 자매와 여자아이 둘이 있다. "무료하고 긴 하루하루로 이어진 시간, 아무리 노래를 부르고 그네를 타도, 공상에 빠져 이야기를 지어내도, 자신들이 작가이고 감독이고 배우이고 관객인 연극을 해도, 갈 수 있는 한 가장 먼 거리까지 달려간다고 해도 메워지지 않았던 커다랗고 텅 빈, 그 무용한 시절을 함께했다는 이유만으로." 97p, 지나가는 밤에서
그런 이유로, 이어진. 겨우 보이는 거미줄로 이어진 그들의 시간은 끝내 끊어지지 않는다.
"그때 나는 공무와 포옹하고 싶었다. 만약 내 옆에 모래가 있었더라도 나는 똑같은 충동을 느꼈을 것이다. 그애를 껴안아 책의 귀퉁이를 접듯이 시간의 한 부분을 접고 싶었다. 언젠가 펴볼 수 있도록, 기억할 수 있도록. 그러나 스물둘의 나는 공무를 포옹하지 않았다." 158p, 모래로 지은 집에서
이 문장은 결국 포옹하지 않았다로 끝난다. 언젠가 펴볼 수 있는 사람을 만들 수 있었지만 끝끝내 그를 안지 않았다. 그 누구가 있더라도 안고 싶었지만, 그 추억이 얼마나 오래 마음에 머무를지 알았지만 말이다. 추억을 갖고 공유하고- 그렇게 차츰차츰 누군가를 새기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을까. 그리고 그때만이 할 수 있는 선택의 갈래길, 그 안에서 나비는 홀로 기억을 짓고 있었다.
"그들은 삼촌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제대로 바라보려고 하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혜인이 아는 한 그런 말을 했던 사람 중에 삼촌보다 더 행복한 이는 없었으니까. 겪어보지 못한 일을 상상할 수 없는 무능력으로, 그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삶에 기대어 삼촌의 불행을 어림짐작했다." 222p,손길에서
어린시절과 어린 아이의 눈, 이제 막 스물을 넘기는 사람들의 시선이 많았다. 여물지 않아서 그래서 더 숨김이 없는 말들이 이 책을 더 가슴으로 끌어당기는 힘으로 남았다. 미숙했고 잘 모른다는 말로 당시를 견뎌내고 보냈지만, 조금 더 큰 다음에는 그 마음을 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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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덮고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했다. 왜? 라는 질문에는 명확하게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조금 울었고 조금 빨리 읽을 수 있었다는 말. 이정도면 충분하리라 생각한다. 덕분에 '쇼코의 미소'도 읽을 수 있었다.
감각적인 소설은 그저 이야기만으로 오지 않는다. 작가의 시선이 인물의 시선과 마주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될 때, 비로소 나는 참 좋았다는 말을 뱉게 된다. 충분히 좋았고, 그만큼 다시 펼쳐볼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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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코의 미소를 한 달 전에서야 읽어봤다. 읽는 동안 마음이 참 많이 울렁거렸다. 간만에 느끼는 감정의 소용돌이였다. 최은영 작가님의 두 번째 소설은 바로 읽고 싶었다. 오늘 오후부터 한 자리에서 다 읽고 있다. 나의 학창시절이. 나의 친구들이 나의 가족들이 구절구절에 있다. 너무 좋아서 오늘 다 읽고 싶은 마음과, 너무 좋아서 두고두고 아껴가면서 읽고 싶은 마음이 계속 내 속에서 요공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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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 그 간격의 어색함을 현대의 우리는 추억이라 부른다. 익숙해져 있지만 깊이 생각해보면 낯선 감정인 그것을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최은영의 '내게 무해한 사람' 속 '모래로 만든 집'은 그에 대한 고뇌이자 애상이며 위로이다.
소설 속 나비는 모래와 공무라는 통신 친구를 오프라인에서 만난다. 단순한 정모나 다름이 없었지만 그 후로도 세 사람은 종종 모임을 가지며 연락을 한다. 그리고 그저 나비의 작은 날갯짓 같던 순간은 회오리가 되듯, 점점 커져간다. 그 순간 속에서 나비는 모래와 공무의 사이가 자신이 미처 보지 못한 사진이 있는 것처럼 다른 무언가가 자리하고 있는 것을 느끼지만 모래는 "난 공무만큼 널 좋아해"(118쪽)라는 말로 자신의 마음이 나비의 생각과는 다름을 밝힌다. 나비는 그 말에 "얼굴이 온통 붉어지고 어깨까지 따끔거릴 정도의 부끄러움"(119쪽)을 느낀다. 이해가 반강제적인 생존방법인 나비에게 두 사람은 처음으로 진심을 다해 이해하고 싶은 존재가 된다. 그러나 모래와 공무의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하고, 나비는 자신에게도 둘의 갈등이 영향이 오는 것을 느낀다. 그러던 와중에 공무의 형에게 사고가 나고, 나비는 공무의 아버지와 공무의 형을 "가장 괴로운 사람들"(126쪽)이라 말하는 모래와 갈등을 겪는다. 모래에게는 아픈 자들을 향한 당연한 위로일 뿐이지만, 나비에게는 두 사람이 공무에게 가한 폭력을 외면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갈등 속에서 미성년과 성년 사이 어중간한 시간은 세 사람의 닉네임처럼 한없이 위태롭고 약한 것이다. 그러나 공무의 "손을 잡아줄 사람"(128쪽)이 자신들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나비와 모래는 쉽게 흩어지지 않는다. 공무가 군대를 가고, 모래에게 남자친구가 생기고, 나비가 학원 보조강사로 들어가며 시간은 계속 흐른다. 셋은 공무가 휴가를 나오면 만나기도 하고 계속 연락을 주고 받지만, 아직까지 서로에 대한 마음을 확신하지 못한다. 사랑이라는 것은 세 사람에게 확정지을 수 없는, "늘 생각하고 걱정한다고 해서"(141쪽) 되는 것이 아니었고, "사람이 사랑한다는 것"(156쪽)을 알지 못했으니까. 그리고 모래는 이제 자신과 공무의 만남이 그저 "예전의 모방(159쪽)"일 뿐이라고 말한다. 어른, 남자친구, 가족 등 각자에게 몰아치는 폭력의 순간을 함께 또 따로 버텨내면서, 오독하고 이해하면서 서로 더욱 단단해질 것이라는 믿음과는 달리 세 사람의 인연은 "메모리 카드의 마지막 사진"(170쪽)처럼 결국 희미해지다 결국 사라져버린다. 그것이 시간이고 삶이기에. "마음을 말로 표현하는 사람(140쪽)"이 부럽다던 모래는 끝내 마지막 진심마저 편지 속 문자를 통해 밝힌다. . 프리챌에 밀린 천리안처럼, 이제는 하는 사람을 찾기 힘든 미니홈피처럼, 스마트폰으로 대체된 물건들처럼, 서로를 스치며 만들어낸 모든 감정은 서른 살의 허들(175쪽)을 넘은 나비에게는 어린 날의 유약한 감성(175쪽)일 뿐이다. 그러나 물질은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존재한다"는(162쪽) 과학적 사실처럼 세 사람의 시간은 변형되었을 뿐, 나비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 버스 속 모래의 모습으로.
다 지나간 추억을 감싸는 부드러운 힘, 그것은 그리움일 수도, 미련일 수도, 외로움일 수도 있다. 다만 그 힘은 우리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언제나 과거를 미화시키고 따뜻한 온기를 만들어낸다. 더 사랑하는 사람과 덜 사랑하는 사람(181쪽)이 존재하는 사랑의 모양과 달리 추억 속에서 태어나는 감정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우리는 그것을 자연히 잊되 문득 생각날 때는 한없이, 또 끝없이 붙잡아야 한다. 그건 가장 선하고 무엇보다 강하기에. "인간이라면 모든 걸 다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하는 어른"(179쪽)이 되지 않기 위해.
* Y2K의 시대를 지나 낭만보다 편리를 중시하게 된 지금을 살아가고 있을, 그 수많았던 기대 속에서 하루를 보내던, 나비, 모래, 공부라고 불리던, 어느덧 서른의 중반을 맞이한 선미, 은아, 현우가 어디서든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들의 모습은 그 시절을 살아가고 사랑한 우리들의 모습과 다름이 없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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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열 권을 읽으면 한두 권 읽을까 하는 소설이기 때문에 비교적 젊은 작가인 최은영을 잘 몰랐다. 내가 아는 작가라고 하면, 박완서나 박경리, 김훈, 한강과 같은 누가 들어도 알 것 같은 분들과 크게 손해 본 바 없는 독자 추천과 베스트셀러 목록에 기대어 읽은 천명관, 김중혁, 정유정 작가 정도 되겠다. 최근에 <일의 기쁨>을 쓴 장류진 작가의 단편도 인상 깊게 읽었다.
최은영 작가의 글은 '예스 24'에 온라인으로 연재되는 단편으로 처음 만났다. 시간을 따로 재보지는 않았지만, 점심 식사 후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읽을 수 있는 초단편이었다. 작가란 이런 것인가? 특별히 기대하지 않고 글을 읽기 시작했는데, 채 열 줄이 지나지 않아 느꼈다. 별다른 장치나 암시를 심어놓지 않았는데도 몹시 끌려들어 가는 글이란 걸 말이다.
그 이후 연재된 글을 몇 편 더 읽었고, 검색을 통해 이 책 <내게 무해한 사람>을 읽게 되었다. 총 일곱 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책을 다 읽고 나자 '여성'에 대해서, 그들의 상처, 고통에 대해서 좀더 들여다본 느낌이 들었다. 책은 실제 여성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우리 시대에 전형적인 관계 구도라 할 수 있는 단순하고 약간은 유해한 '남성'들이 등장하고 그 반대되는 곳에서 '여성'은 아픔을 겪는다.
작가의 글이 가지고 있는 섬세함과 조심스러움은 읽는 것 자체로 위안을 준다. 이런 글을 쓰는 작가의 심성과 삶에 대한 태도를 짐작하게 한다. 타인의 개별성을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헤아려주는 글을 쓰는 작가임을 잘 알겠다. 그러다 보니, 약간의 동떨어진 마음이 느껴지기도 한다. 가능성은 있지만, 좀처럼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감정의 과잉이 아닐까 하는...
<고백>에서 자살한 친구인 진희와 그의 고백을 들었던 미주와 주나, 자신의 다른 성 정체성을 힘들게 고백했던 진희와 그에 대한 친구들의 반응, 그로 인한 자살, 그 이후의 다툼과 이어지는 감정의 과잉. 이런 것들이 실제로 일어나려면 수많은 오해와 우연이 겹쳐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개별적인 것의 스펙트럼은 크고 넓기 때문에 나의 경험과 생각이 주는 한계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최은영의 글이 내게는 특히 더 읽을만한 배움의 보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지만, 또렷이 생각해 내거나 표현하지 못하는 편린의 보다 깊은 해석을 제안하고 있기 때문이다. 책 뒷편의 해설에서 처럼 "짧은 호흡의 재치 있는 문구나 감각적인 사진으로 압축하고 대체하는 것에 익숙해진 사회 속에서 이 시대가 망각해가는 감정의 결을 섬세한 손으로 발굴해 내는 최은영이" 내게도 매혹적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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