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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가 1972년 10월 유신 쿠데타를 전후로 대학가와 언론, 야당에 대한 무차별 탄압과 테러를 자행했음에도 그에 반발하는 민주화 운동을 근원적으로 막을 수는 없었다. 1972년 12월 고려대 학생들이 정문에 걸려 있던 '한국적 민주주의 이 땅에 뿌리박자'는 현수막을 불태운 것을 기점으로 이듬해 <민우>라는 지하신문을 만드는 등 다양한 형태로 저항했으며 전남대에서 지하신문 <함성>을 배포하며 저항운동을 펼쳤고 1973년 4월 22일 기독교 세력들은 남산 부활절 연합 에배를 열며 저항 운동에 동참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박정희 유신체제의 성격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은 '김대중 납치 사건'이다. 1971년 대선 당시 박정희의 경쟁자였던 김대중의 납치 사건은 국내외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후 발생한 민청학련과 인혁당 사건도 유신체제를 뿌리부터 뒤흔드는 역할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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