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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마지막 한 ~~'과 같은 문구를 좋아하지 않는다. 같은 차원에서 '사는 동안 해야 할 ~~'라든가 '죽기 전에 가 봐야 할 ~~' 이런 말들도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하지 않으니 생각도 안 한다. 이 책은 앞서 읽은 같은 제목의 책과 같이 우리 사는 주변에 근사한 공간이 어디 있으려나 기대하면서 본 것이다. 책의 메시지처럼 마지막 공간을 찾으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비슷했다, 앞에 읽은 책이랑. 편집도 인상도 그리고 실망감까지도. 작가들은 달랐으나 전해 오는 바는 같았다. 장엄하게 말하고 있어도 과장되어 보였고 절절하게 말하고 있어도 겉도는 것처럼 느껴졌다. 뭘 이렇게까지 여기는가 하는 느낌, 다들 아직 살 날도 살 공간도 많이 남아 있을 것 같은데 섣불리 말해 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조급한 느낌까지, 때이른 단정처럼 보이는 게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좋아하는 책을 통해 내가 어떤 성향인지 알아내는 것도 흥미롭지만 좋아하지 않는 책으로 내 취향을 알게 되는 것도 도움이 된다. 특히 내가 감추어 놓고 사는 내 속의 거짓된 모습이나 위선 따위들을 책을 읽다가 들키게 되면, 퍽 민망하고 부끄럽다. 이 책을 통해 확인한 내 약점은 그럴 듯한 모습으로 포장하고 싶은 나의 가짜 얼굴 챙기기였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잘 안 된다. 나는 아직도 멀었다.
멀리 있는 곳을 향한 환상이나 기대보다 가까운 곳을 소중하게 느끼는 태도와 이곳에서의 설레는 마음을 가지도록 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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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혼자서 홍대를 찾았다. 몇 주 전부터 보고 싶었던 [범죄소년]도 보고, 늘 그리운... 까페, 꼼마에 들러 카카오 100%의 초콜렛 케잌과 깊고 부드러운 아메리카노도 1(일!)잔 하고-^ㅋ
비가 너무 많이 오고 바람도 많이 불어서 영화 예매한 걸 취소할까~하다가 취소 시간이 지나서 못하고서 그렇게 홍대를 찾았는데... 정말 가길 잘한 것 같다. 오늘처럼 비바람 불어서 사람이 얼마 없는 날엔 더욱이!!ㅋ 늘 가던 경로를 슬쩍 외면하고 골목으로 들어가 헤매듯이 골목과 거리를 탐닉하는 게 짜릿했다. 요즘 사람들이 입에 많이 올리는 그노무~ '힐링'!! 그걸 한 것 같았다.
살짝~ 비 그친 거리는.. 뭔가 좀 차분하고, 뭔가 좀 청량한 느낌이 드는.. 거기에 길 양 옆으로 아기자기하게 이쁜 가게들이 즐비하시고~ 콧노래가 나도 몰래 흥얼거려졌다.
좋아하는 누군가와 함께였다면 무척 좋았겠지만, 혼자여도 무지 좋은.. 오늘.. 그 거리.. 지금 <소울 플레이스 Soul Place>를 읽고 있는데.. 오늘의 그 거리가, 32살 내가 꼽을 수 있는 소울플레이스가 아닐까~싶다.
이런 거리에서 살고 싶다.^ㅋ
p.25 배낭여행을 하던 시절, 나는 파리의 지하철에서 지갑을 잃어버린 덕분에 가난이 주는 참맛을 느낄 수 있었다. 빈털터리 거지가 되어 기차역이나 공원에서 잠들고 거리의 화장실에서 세수를 했다. 돈이 있을 때는 호텔이나 게스트하우스만이 유일한 안식처이지만, 빈털터리가 되면 온 세상이 나의 거처가 된다. 샹젤리제 거리의 미국 대사관 앞에서 미군 병사들이 보초를 서는 동안 나는 벤치에 누워 안전하게 잠들 수 있었다. 가진 것 없는 노숙자 신세가 되어 이국의 밤하늘을 바라볼 때면 별들이 말을 거는 것만 같았다. 배가 고프면 배낭에서 마른 빵을 꺼내 먹고 심심하면 다른 배낭족들과 어울려 한바탕 웃으면 그만이었다.
p.38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물음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과 같다. 그렇다면 죽음의 형태와 사후의 처리 역시 삶의 방식을 닮아야 마땅하다. 나는 유머야말로 삶이 가지는 최고의 미덕이라고 믿기에 내 죽음 앞에서 누구도 울지 않길 바란다. 나를 만나는 사람들이 유쾌한 기분을 느끼길 원하기에 장례식장도 쓸데없이 경건해지거나 침울해지지 않길 바란다. 언젠가 조문객들에게 술을 한 방울도 대접하지 않는 금욕적인 장례식장에 다녀온 후, 미래의 상주인 아들아이에게 나의 장례식장에선 술을 종류별로 무한정 방출(?)하라는 유언을 하기도 했다. 술에 취해 웃어도 좋고 울어도 좋고 누가 죽었는지조차 깜빡 잊고 싸워도 좋다. 장례식의 주인공은 죽은 내가 아니라 살아생전 그들과 내가 함께 나누었던 추억이다. 그 추억이 다양하고 다채로운 만큼 내 장례식장은 떠들썩하고 시끌벅적하리라.
p.117 살아가는 동안 무엇을 '내가' 꼭 이루려는 마음에서 '내가'를 빼기 위해 지금 지리산에 살고 있다. 도시에서 지리산으로 내려올 때는 몰랐다. 물안개 피어나는 섬진강가에서 조약돌을 손에 쥐고 걸으며 시간의 흐름을 읽기도 하고, 숲의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빛을 등에 업고 솔밭 길을 걸으며 너머의 세계로 빠지기도 하고, 짙은 먹구름을 깨트리는 아침 빛을 큰 숨으로 받아내며 '내가''나를' 잊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갔다. 도시에 있을 때는 감히 생각할 수 없던 생각이다. 지리산이었기에 가능했다. 그렇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몸짓이 바로 '지리산'이다. 지리산에 살면서 수없이 많은 순간들이 쌓이고 쌓인 것이 지금의 나다. 지리산이 고맙다. 살아가는 과정이 곧 죽음에 이르는 길이고 나를 지우는 길이다. 누구도 비켜갈 수 없는 당연한 길이다. 그 길을 자유로이 가고 싶다. 나를 지우며 그 길을 걸을 수 있다면 지금의 '지리산'이건, 앞으로의 '히말라야'건 마지막 순간의 '장소'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저 마지막 순간의 '직전'까지 그 곳이 어디건, 두 발을 디디고 선 그곳에서 자유로이 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p.140 레드와 앤디가 그러했듯, 나도 먼 훗날, 우도의 태평양과 마주하고 싶다. 멕시코인들의 말대로 추억이 없는 바다라면, 그 망각의 바다에 나를 던져도 좋을 것 같다. 아직은 세상을 향해 하고 싶은 말도, 그 말을 대신해 찍고 싶은 영화도 너무 많지만, 나는 생각한다. 죽음은 생각했던 것보다 가까이 있다는 사이드미러의 메세지를. 그래서 더욱 갈 길이 바쁘지만 그것 역시 온전히 내 뜻일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다행인 것은 바이칼 호수도 태평양도, 그리고 우도도 죽음보다 더 깊은 영원으로 나를 기다려줄 것이라는 점이다.
p.147 죽음이 많이 두렵다. 당당하게 죽음을 맞이할 용기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죽음과 삶을 구분하고, 죽음을 준비한다는 생각이 아무래도 낯설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죽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연속되는 평범한 일상의 일부분으로 맞이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나 보다. 그냥 저절로 사라지는 상황을 꿈꾸고 있다고나 할까? 나에게 '어떤 죽음을 바라는가'라는 질문은, 곧 '어떤 삶을 바라는가'라는 질문과 다름이 없다. '어떤 곳에서 죽기를 바라는가'라는 주제 또한 결국은 '어떤 곳에서 살고 싶은가'라는 조금은 싱거운 화두로 환원된다.
p.??ㅋ 나에게 휴식을 주는 곳, 어머니의 품과 같이 포근한 쉼이 있는 곳에서 내 삶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곳은 내 고향 나라얀간지이다. 나를 방글라데시에서 떠나게 한 것도, 다시 돌아오게 하는 것도 결국 어머니인 셈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품 안은 참으로 신비로웠다.평화로운 온기를 머금은 그 작은 공간은 온 우주보다도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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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도 좋을 만큼'이라는 카피는 그저 비유인 줄 알았다. 책장을 넘기자마자 '죽음'이 냄새를 확 끼치며 달려들 줄은.. 바쁜 일정으로 피로해진 몸과 마음을 환기하고자 고른 이 책에서 내가 원한 건 말랑한 봄바람 같은 여행 에세이였다. 내가 원하던 종류의 책은 아니었지만, 잘 모르는 필자도 많고 각각의 글들은 느낌도 높낮이도 다 달랐지만, 낯선 여행지에서 의외의 도움을 받은 느낌이랄까. 죽음에 대해, 인생의 마무리에 대해, 내가 살아가는 공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다. 첫 장 이기웅 한의사의 글은 자못 충격적이었다. 정말 죽음과 대면했던 경험, 그것은 처음엔 두려움으로만 다가왔다. 칼끝에 선 사람처럼, 죽음을 온몸으로 체감한 후에야 다시 온몸으로 살아갈 기운이 생긴다는 말.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마붑 알엄이라는 사람을 알게 된 것도 (유명인인데 나만 몰랐던 듯;;;) 이 책을 통해 얻은 수확이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줄곧 이방인으로만 살아온 그에게 고향 방글라데시는 수상한 관심의 눈길에서 벗어나 고요와 평안을 찾을 수 있는 곳이라는 사실이 또 새삼 다가왔다. 왜 이 나라는 그가 '죽어도 좋을 만한' 곳이 아닌지. 앞으로도 될 수 없는 것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어느 선배님이 유언장을 미리 써놓고 고등학생 아들에게 주며, 아들에게도 작성해보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만의 소울플레이스를 생각한다는 것, 어쩌면 유언장을 미리 써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내 생의 마지막을 맡겨도 좋을 장소, 이제부터 나도 생각해보아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