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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by 어니스트 헤밍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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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미국 현대 문학의 개척자이자 20세기 미국 문단의 거장이다. 격정적인 삶을 살다 간 행동주의 작가였고 그러한 그의 삶은 작품 속에서도 그대로 녹아있다. 『노인과 바다』는 퓰리처상 수상작이자 헤밍웨이의 마지막 소설로 절제된 문장이 강인하게 떠오르는 헤밍웨이 문학의 결정판이다. 5일 동안 벌어진 이 소설의 주제는 포기하지 않는 한 인간의 정신에 있다. 치
"『노인과 바다』 by 어니스트 헤밍웨이" 내용보기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미국 현대 문학의 개척자이자 20세기 미국 문단의 거장이다. 격정적인 삶을 살다 간 행동주의 작가였고 그러한 그의 삶은 작품 속에서도 그대로 녹아있다. 『노인과 바다』는 퓰리처상 수상작이자 헤밍웨이의 마지막 소설로 절제된 문장이 강인하게 떠오르는 헤밍웨이 문학의 결정판이다. 5일 동안 벌어진 이 소설의 주제는 포기하지 않는 한 인간의 정신에 있다. 치열한 싸움 이면에 존재하는 노인의 외로움과 나약함은 인간적인 시선이 느껴져서 감동을 준다.

 

어부 산티아고는 멕시코 만류에 조각배를 띄우고 혼자 고기잡이를 하는 노인이다. 팔십사 일 내내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했던 그는 살라오(운이 없는 사람)에 빠지고 말았지만 85일째 접어든 날을 행운의 숫자로 보고 또다시 물고기를 낚으러 나간다. 보이는 것은 오직 하늘과 바다 뿐. 가끔 보이는 새를 벗삼기도 하고 자신의 손으로 잡은 거대한 청새치에게 '형제'라고 부를 만큼 그는 살아있는 존재들, 특히 자신을 유일하게 믿고 따르던 '소년'을 그리워한다.

 

비극적일 정도로 가난한 늙은 어부는 꼬박 이틀 밤낮의 사투를 거쳐 자신의 배보다 더큰 청새치를 향해 작살을 꽂는다. 하지만 배 옆에 묶어둔 청새치의 죽음은 난폭한 상어떼를 불러들였고 노인은 청새치에 이어 상어떼들과의 고독한 싸움을 시작한다. 항구에 도착했을 때는 뭄고기의 앙상하게 텅 빈 뼈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코에서 꼬리까지 무려 550cm에 달하는 텅 빈 물고기는 마을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노인은 낡은 판잣집에서 만신창이가 된 몸을 누인다. 소년은 잠든 노인의 손을 잡고서 하염없이 운다.

 

노인은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고 그 투쟁을 통해 고난을 견디는 능력을 증명한다. 노인이 고통을 극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잔인하고도 자애로운 바다에 대한 그의 깊은 사랑과 지식에 있었다. 거대한 청새치와 힘겨루기 끝에 승리하고, 끊임없이 청새치의 피냄새를 맡고 달려드는 상어떼들에 의해 손을 몇 번이나 다치면서 육신은 피로로 얼룩지고 칼도 몽둥이도 모두 부러졌다. 오직 정신만이 명료하게 빛났을 뿐이다. 헤밍웨이를 평생 따라다닌 문학적 주제는 어떤 자세로 죽음을 맞느냐에 있었고 그러한 그의 주제는 이 작품과도 맥을 같이 한다. 그런 의미에서 산티아고는 헤밍웨이가 일평생 추구한 남성상이자 작가 자신의 페르소나다.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어도 패하지는 않지." -p124

d******7 2015.12.19. 신고 공감 11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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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소년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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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빌어먹을 독서 패턴.       항상 내 자신이 어렸을 적, 책을 읽어왔던 경험들을 되새겨볼때 아쉬운 것이 하나 있다.       여기 이른바, 고전이나 명저라고 불리는 작품이 있다고 하자.    이런 작품들은 그 명성으로 인해 제 2, 제 3 의 텍스트나     다른 장르의 작품으로 가공되거나 변형된다.    그런데 이러한 변형 중, 특히 그 내용이 어린이들에게 보다 쉽게 읽히도록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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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빌어먹을 독서 패턴.

 

    항상 내 자신이 어렸을 적, 책을 읽어왔던 경험들을 되새겨볼때 아쉬운 것이 하나 있다.

 

    여기 이른바, 고전이나 명저라고 불리는 작품이 있다고 하자.
    이런 작품들은 그 명성으로 인해 제 2, 제 3 의 텍스트나

    다른 장르의 작품으로 가공되거나 변형된다.
    그런데 이러한 변형 중, 특히 그 내용이 어린이들에게 보다 쉽게 읽히도록 가공이 되었을 경우
    그리고 바로 그렇게 변형된 텍스트를 어떤 어린이가 접했을 경우...

 

    불행하게도 그 어떤 어린이 중 하나가 나였고,
    이 빌어먹을 독서 패턴에 의해 나는 고전의 참 맛을 느끼는 기회를 박탈당했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읽을 거리들이 있고, 이에 반해 한 사람의 수명은 너무나 짧기만 하다.

    그러다보니 작품 하나하나를 선택할 때, 이미 줄거리를 아는 내용을 선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전체 줄거리보다는 묘사 하나하나에 충분히 감응할 수 있다면

    줄거리를 미리 알고 있다 하더라도 충분히 그 작품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고전이나 명저라는 작품은 대부분 이런 경우에 속하므로

    더더욱 다시 따져 읽어보아야 할 작품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묘사 하나하나에 감응하는 감수성을 갖춘다는 것도

    사실 그렇게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가급적 명저나, 고전들은 함부로 제 2, 제 3 의 텍스트를 접할게 아니라
    대략 중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생 기간에 제 1 텍스트를 직접 접하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간을 돌릴수만 있다면 나 역시 그런 독서 패턴을 갖추고 싶다.

    어쨌든 시간은 흘러버렸고, 이제라도 이런 작품 하나하나를 되새겨볼 수 있는 것 역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역시 고전이나 명저의 제1텍스트를 접한다는 것은 가슴뿌듯한 경험임에는 틀림 없는 일이다.
 

 

2. 그 아이가 여기 있다면 정말 좋으련만...
  
   그런 측면에서 나의 뇌리에 박혀 들어오는 문구는
   바로 여러 번 반복되는 '그 아이가 여기 있다면 정말 좋으련만...'이라는 문구이다.
  
   이 문구는 인간의 삶이 '결핍'이라는 원초적인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마치 물리계가 자연상태에서 밀도의 불균형을 허용하지 않으며

   이 불균형이 균질을 향한 움직임을 촉발시키듯이
   결핍은 인간에게 욕구를 추동시키는 원인이 된다.
 
   결핍은 삶이 가지는 본성중 하나이기 때문에 삶을 살아가는 인간은 그 '결핍'에 승리할 수 없다.
   다만 그 '결핍'에도 불구하고 그 '결핍'을 우회하거나 관통하여 '결핍'이 가로막고 있는 너머의
   목표에는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 60억의 인구는 60억개의 결핍을 지고 산다.
   즉 인간은 저마다 자신만이 지고가야 하는 '결핍'이 있는 것이다.
   그 '결핍'너머로 얼마만큼 접근해 보느냐, '결핍'을 얼마나 관통해보았는가가

   결국 인간 하나하나가 어떤 삶을 살아가는냐를 결정짓는 요소가 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처음 이 문구를 읽었을 때 이 문구가 내 심장을 찌르고

   내 인생의 시작점까지 관통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게도 늘상 선택의 순간이 있었다.

   어떤 순간에 나는 성공이라는 경험을 했고, 반대로 어떤 순간에는 실패라는 경험을 했다.
   하지만 그것이 성공이든, 실패든 공통된 점이 하나 있다면 매 순간마다

   내가 가용가능했던 자원중 어떤 것들은 결핍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예를 들어서 '시간'과 같은 요소일 때도 있었고
   내가 충분히 더 노력했다면 가능했던, 예를 들어서 '나의 노력'과 같은 요소일 때도 있었다.
  
   때로는 그것 때문에 자책을 한적도, 반성을 한적도 있었고,
   어떤 때는 선천적으로 취득하지 못한 조건에 대해 비관한적도 있었지만
   그것은 결국 내가 살아가는 삶이 가진 본질의 한 측면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3. 허무주의로 귀결되어야 하는가.


   '결핍'이 삶의 본질 중 하나이고, 나 역시 나의 '결핍'을 지고가야 한다면 
    결국 나는 이 '결핍'을 이겨낼 수 없고, 다만 인생의 종료와 함께 링에서 떠나는게

    전부인게 된다.
    되돌아본 삶에서 내가 무언가 부족했던 것이 삶의 본질적 측면 중 하나라면
    앞으로의 삶에서 역시 내가 어떤 노력을 하든간에

    뭔가 부족한 상황을 극복하지 못한다는 얘기가 된다.
    그렇다면 결국 내 앞에 남는 것은 '허무주의' 이상, 이하도 아니게 될 것이다.


    사실 이 부분은 '노인과 바다'를 읽으면서 대단히 민감하게 받아들여졌던 부분 중 하나였다.
  
    노인은 '소년'의 결핍을 딛고, 거대한 물고기를 잡는데 성공했지만,

    그 물고기의 살점은 상어떼의 공격에 의해 완전히 없어지고 만다.
    상어떼는 삶에서 인간이 어쩌지 못하는 불확실성을 상징한다.

    그것은 아마 개개인의 운명일수도 있고, 좀더 적나라하게 '팔자'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에 저항은 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결과가 달라지는 것은 없고
    저항의 결과로 남겨진 꼬리뼈가, 저항하지 않은 결과로 남겨진 꼬리뼈보다 아름답다라고

    누구든 얘기할 수 없을 것이다.
  
    과연 노인은 무엇을 한 것일까? 큰 물고기를 낚았다는 경험?,

    소년이 말한대로 큰 물고기에게는 지지 않았다는 경험?
    과연 나는 어떻게 내 삶을 살아갈 것인가? 내게도 성공했던 적이 있다는 긍정적인 경험?
    내가 어찌하지 못하는 요소로 인해 기복은 있었을지 몰라도 '그때 그건 정말 잘했지'라는

    그런 경험에 대한 기억이 내가 삶에서 얻을 수 있는 전부인 걸까?
  
    마치 이카루스의 날개처럼 이 부분은 내겐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해설서나 이곳저곳에서 보이는 불굴의 인간상이라는 교훈을 그대로 받아들이자니
    무엇이든지 교훈으로 귀결하기를 좋아하는 고매한 척하는 호사가들의 말장난에 속는듯한

    느낌이 들고, 운명지어진 운명의 굴레라는 생각으로 남겨놓으려니 허무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4. 내게 소년은 있는가?


    그런 측면에서 이 소설을 통해 결국 내가 자문하고 싶은 것은
    "내게 과연 노인을 산티아고 할아버지라고 불러주던 그와 같은 소년이 있는가?" 라는 것이다.
  
    소년은 인생의 동반자와 같은 단순한 개념이 아니다.
    비록 노인은 4일동안 바다에서 혼자 고독한 사투를 계속했고, 
    이것은 노인 이외 누구도 알지 못하는 경험이 됐지만,

    노인에게는 그러한 과정을 공감하고 승리했다고 말해주는 소년이라는 존재가 있었다.

    노인은 그로인해 승리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즉, 삶에서 승리란, 실제 맞닥드린 사건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승리라고 평가해 줄 때 취득되는 것이다.
    바로 그 평가에 따라 물리적으로는 동일한 결과도 전혀 다른 결과로 분별이 되는 것이다.


    아마 이 작품에 노벨문학상 수여를 결정한 스웨덴 한림원에서
    "폭력과 죽음으로 가득한 현실세계에서 의로운 투쟁을 전개한 모든 사람에게

    의당한 존경심"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노벨상을 수여한다고 밝힌것은 그와 같은 측면이

    아니었을까?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 승리의 스토리를 써내려가지만

    상당부분은 개인의 스토리로 역사 뒤편으로 사라지고 만다.
    아마 그렇게 주목받지 못하고 사라져간 스토리중 어떤 것들은 재평가받고 존경받아야 마땅한

    스토리일 것이다.
    이 책 '노인과 바다'는 그리고 이 작품에 수여된 노벨상은 그렇게 사그라져간

    수많은 스토리에 함께 수여된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나 역시 내 스토리를 써내려가고 있다.
    지금까지의 내 삶을 돌아봤을 때, 독특한 구석이 없진 않지만 지금까지의 궤적은

    '평범함'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내 삶이 헛되지 않았다고 평가해 주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나는 충분히 성공한 삶을 산 것이 될 것이다. 

w*****f 2012.08.11.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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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 인간은 어떻게 위대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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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산티아고는 84일씩이나 물고기 한마리 잡지 못한다. 그와 함께 낚시를 하던 소년의 부모는 40일째 까지 고기를 잡지 못하자 스페인어로 살라오에 빠졌다며, 산티아고의 배에 타지 못하게 한다. 85일째 되는 날, 노인의 인생을 통틀어 가장 큰 물고기가 낚시바늘에 걸린다. 그리곤 5일 간에 사투 끝에 청새치를 잡는다. 그러나 아바나 항으로 돌아오던 중에 상어의 공격에 청새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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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산티아고는 84일씩이나 물고기 한마리 잡지 못한다. 그와 함께 낚시를 하던 소년의 부모는 40일째 까지 고기를 잡지 못하자 스페인어로 살라오에 빠졌다며, 산티아고의 배에 타지 못하게 한다. 85일째 되는 날, 노인의 인생을 통틀어 가장 큰 물고기가 낚시바늘에 걸린다. 그리곤 5일 간에 사투 끝에 청새치를 잡는다. 그러나 아바나 항으로 돌아오던 중에 상어의 공격에 청새치는 뼈만 남게된다. 바다에서 돌아온 산티아고는 지친 몸을 이끌고 침대에서 사자 꿈을 꾸며 잠이 든다.


신문기사로 치면, 기사거리도 안 될만한 이야기이다. <인생에서 가장 큰 청새치를 낚다 실패한 노인> 이라고 기사제목을 뽑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고전으로 남는 이유는 기삿거리도 안되는 이야기를 너무나 우아하게 바다에서 육지로 낚아왔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산티아고는 아바나의 늙은 어부다. 고기를 낚지 못하는 늙은 어부에게 소년을 제외하고는 관심을 가질리 없다. 야윈 몸과 수십년간 타들어간 피부는 이제 더 이상 이 노인네는 고기를 잡을수 없다는 암시 쯤으로 보인다.  그래도 그는 출항한다. 소설이 끝난 뒤에도 노인은 바다에 나갔을 것이다.


매일 나가는 바다가 참 지겨웠으련만. 먹여 살릴 자식이 있는 것도, 빚이 있는 것도 누군가의 기대가 있는 것도 아닌데 노인은 출항한다. 젊은시절 산티아고에게는 바다에 나가야 하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먹을 것이 없어 나가기도 했을 것이고, 큰 물고기를 잡겠다는 욕망, 때론 가족의 잔소리에 떠밀리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늙어버린 산티아고에게는? 물고기에 대한 욕망이나 배고픔은 시간의 풍화작용에 오래전에 퇴색되어 버렸을 터 . 미풍 부는 멕시코만의 어딘가에서 그가 낚으려던 것은 물고기가 아니라 자신의 꿈이었을 것이다.


노인은 낚시줄이 팽팽해지다 끊어지기 직전에 줄을 풀고, 멀리가는 듯하면 다시 낚시줄을 감는다. 낚시줄 위에서 긴장은 줄타기를 한다. 뛰어 오르다 착지하고, 가라앉는 듯 하다가 다시 뛰어오른다. 노인과 청새치의 힘겨루기는 사냥이라기 보다는 춤처럼 보였다.  노인이 오른손과 어깨에 힘을 줬다 빼니, 낚시줄은 긴장과 이완을 했다. 노인과 청새치는 출렁이는 낚시줄을 통해 서로의  무게감과 균형감을 본능적으로 느낀다. 서로를 튕겨내지 않고 간격을 적절하게 유지하는 우아하고 격렬한  춤과 같았다.  4일 밤낮의 춤사위가 끝나 마침내 청새치가 가까이 왔을때 노인은 작살을 꽂는다. 작살이 청새치의 피부를 파고 들었다. 노인은 작살이 청새치의 피부를 꿰뚫은것을 느끼고 다시한번 전력을 다해 작살을 심장으로 밀어 넣는다.  노인은  무의식에 가까웠다. 잠을 못자고, 여기저기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무의식중에 작살이라니. 여위몸과  피부암을 가진 늙은 어부의 작살은 본능이었다. 출항의 본능. 낚시의 본능.


책 내용중에 생각나는 것이 있다.

그는 뱃전에 몸을 기대어 이물 쪽으로 젖혀서 그냥 줄을 잡고 앉아 있는 것보다는 배가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도록, 즉 고기가 끌기 힘들도록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이렇게 해서 또 새로운 방법을 하나 배우는구나. 어떻게든지 상황에 따라 써먹을 수 있는 방도가 생기게 마련이지. (p.83)


늙은어부는 인생후배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수십년간 해오던 짓에도 새로이 배울것이 있다는 것을 몸으로 체험하고 알려준다. 노인이 위대한 것은 매일 출항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지만, 매일 출항이라는 권태 속에서도, 새롭고 살아있는 배움이 있다는 것을 몸소 알려주는 데에 있지 않나 싶다. 늙은 어부 산티아고는 이렇게 나를 깨운다. 노인이 존경스럽다.

s*****s 2016.06.20.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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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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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다. 어렸을 때, 이 책을 읽고 세상에서 제일 재미없는 책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랬던 내가 이 책을 읽고 다른 책들보다 더 감명깊게 읽다니... 나이를 먹으면서 어릴 때 맛이 없던 나물반찬이 맛있어지고, 강렬한 맛의 과자들이 너무 짜고 자극적으로 느껴지더니, 책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취향은 나이가 들면 바뀌나보다. 아무튼 그렇게 재미없게 읽었던 책을 다시 잡은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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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다.

어렸을 때, 이 책을 읽고 세상에서 제일 재미없는 책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랬던 내가 이 책을 읽고 다른 책들보다 더 감명깊게 읽다니... 나이를 먹으면서 어릴 때 맛이 없던 나물반찬이 맛있어지고, 강렬한 맛의 과자들이 너무 짜고 자극적으로 느껴지더니, 책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취향은 나이가 들면 바뀌나보다. 아무튼 그렇게 재미없게 읽었던 책을 다시 잡은 이유는 바로 최근 인기리에 종영된 "삼시세끼 어촌편" 때문이었다. 그 중에서도 참바다 유해진씨의 낚시 고행때문이다. 나는 삼시세끼 어촌편이 재미있다는 말을 듣고 뒤늦게 보기 시작했는데, 유해진이 낚시에 성공하는 것을 한 번도 못봤다. 마지막 나가는 날까지 낚시에 성공하지 못한 유해진은 빈 배로 돌아오면서 지금 자신의 모습이 '노인과 바다'같다는 얘기를 했다.  

 

 예전에 도서정가제가 시행되기 전에 나중을 기약하며 산 책 중에 '노인과 바다'가 있었는데 유해진이 낚시로 고생하는 장면들을 떠올리며 오랫만에 이 책을 다시 읽어보기로 했다.


어부로 살아온 노인이 태어나 가장 크고 아름다운 물고기를 낚았을 때의 희열, 그것을 온전한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한 피나는 노력과 그것을 얻기까지의 고단함과 외로움을 어렸을 때의 나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나는 결과가 중요했다. 결국 상어떼에게 다 빼앗겨버린 그의 반짝 성공이 어리석어보였다. 어차피 다 잃을 것을 뭐하러 며칠씩 있는 힘을 다 썼단 말인가. 하지만 지금와 보니 그 노인이 너무나 대단하게 느껴진다. 모든 것이 절망으로 느껴질만한 순간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던 노인이 너무나 멋있었다. 젊은 나는 과연 그보다 더욱 큰 투지와 열정을 갖고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확실히 노인에게 질 것 같다.

그리고 아이와 노인의 신뢰와 우정이 참 부러웠다. 나는  이 정도로 끈끈한 관계의 사람을 갖고 있을까. 과연...​

그리고 허밍웨이... 정말 딱 그 순간 노인이 할 만한 생각들, 감정들을 어쩜 이렇게 콕콕 집어내는지...



P.74-75

"그동안 아이에게 내가 이상한 노인이라고 말하곤 했었지. 지금이야말로 그 말을 증명할 때다." 

그는 중얼거렸다.

지금까지 수천 번이나 그것을 증명했지만, 지금 와서는 그게 다 무의미한 것 같았다. 그래서 노인은 지금 또다시 새롭게 증명해 보이려는 것이다. 증명은 늘 처음 하는 일 같았고, 그럴 때 과거의 일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P.83

이렇게 해서 또 새로운 방법을 하나 배우는구나. 어떻게든지 상황에 따라 써먹을 수 있는 방도가 생기게 마련이지.


P.85-86

그런데 사람들이 과연 저 고기를 먹을 자격이 있을까? 아니지, 물론 자격이 없다. 물고기의 저 침착한 태도라든지 저 당당한 위엄을 생각해 보면 틀림없이 보통 물고기는 아닐 것이다. 따라서 아무도 먹을 자격이 없다.

그러나 나는 이런 어려운 것은 잘 모른다. 그렇더라도 우리가 해나 달이나 별을 죽일 필요가 없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저 바다에 살면서, 우리의 참다운 형제를 죽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P.118

"인간은 패배하는 존재로 만들어진 게 아니야."

노인은 말했다.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어도 패하지는 않지."


P.119

"상어가 나타나면 그때 상대할 일이지, 벌써부터 걱정은 왜 하고 있담."

하지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어, 노인은 생각했다. 남은 것이라고는 그것밖에 없으니.


P.120

희망 없이 산다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심지어 그것은 죄다.


P.127

가지고 왔어야 했던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군. 다른 것들도 모두 가지고 나왔어야 했어, 노인은 생각했다. 하지만 늙은이야. 그런 생각을 하면 뭣해. 자네는 가지고 오지 않았는데! 지금은 없는 것을 생각할 떄가 아니야. 있는 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라고.


P.134

"죽을 때까지 싸울 거야."


P.144

"그동안 네가 얼마나 그리웠는지 몰라."

o*****3 2015.05.07.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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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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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인가 헤밍웨이 사후 50년이 지나 저작권 보호기간이 완료되고 새로운 번역서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온적이 있었다."노인과 바다"는 더 이상 말의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대중적으로도 유명하고 누구나 거의 스토리 라인도 기억하고 있을 듯 하다, 옛날 영화지만 안소니 퀸이 늙은 어부 산티아고로 열열한 영화를 본 사람이면 그 인상은 더 남아있을 듯 하다.별 특별한 이유없이 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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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인가 헤밍웨이 사후 50년이 지나 저작권 보호기간이 완료되고 새로운 번역서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온적이 있었다.


"노인과 바다"는 더 이상 말의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대중적으로도 유명하고 누구나 거의 스토리 라인도 기억하고 있을 듯 하다, 옛날 영화지만 안소니 퀸이 늙은 어부 산티아고로 열열한 영화를 본 사람이면 그 인상은 더 남아있을 듯 하다.


별 특별한 이유없이 최근에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 대한 해설은 인터넷만 쳐도 엄청 찾을 수 있기에 거기에 덧붙이는건 스팸만 될 듯 하다. "불굴의 의지", "파멸될 수는 있지만 패배할 수는 없다" 등등 많은 수식어를 찾을 수 있다. 물론 끝까지 투쟁하는 늙은 어부 산티아고의 모습은 삶의 무게에 찌들어 지친듯도 하지만 아직은 얃잡아 볼 수 없는 노련함, 그리고 왠지 눈빛은 살아있을 것 같은 모습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 난 왠지 이 소설을 읽으면 서글프고 짠하다.


가난한 환경, 맨발, 노인이 되어가면서 사라져 가는 기력과 명석함... 노인이 된다는 건 사회의 주류가 아닌 비주류의 약자가 되어가는 과정이고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어부의 사회에서도 별반 차이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계속해서 계획을 세우고 꿈을 꾸고, 엄청난 크기의 청새치를 잡아 잠시 꿈은 이루어지는 듯 하지만, 노인의 삶에 대한 지혜가 말하듯, "좋은 일은 오래가지 않는다"처럼 상어에게 빼앗기고...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이 장면들이 머리속에서 그려지며 내 상상력을 자극해서 동일한 장면이 머리속에 떠오르게 한다. 밧줄이 빨려나갈때 손이 데인듯이 쓰라린 그 느낌도 왠지 느껴진다. 상어에 뜯어먹힐대로 먹힌 잔해를 쳐다보고 싶지 않은 심정은 책을 읽고 있는 나도 동일하게 동화된다.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집으로, 그리고 침대로... 다음날 아침 소년이 노인의 손을 보고 우는 장면에서는 내 눈시울도 왠지 뜨겁다...인생은 무겁고 힘들지만 노인을 사랑하는 소년이 있고 따뜻한 카리브해의 햇살과 바람이 이 둘을 위로해줄 것만 같다. 남들은 불굴의 의지를 느낀다는데 난 왜 센치해지는지 모르겠다.


최근에 번역된 책이라 어감도 현대적인 감각에 맞게 번역된 듯 하다.


6/8/2013

a***k 2013.06.08.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바다.... &고독한 내면과의 치열한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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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해는 다시 떠오른다........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까마득하지만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여전히 잊혀지지 않은 낯익은 제목들이다. 간략하고 분명한 제목이 아닌 문장의 통사적 구조의 틀이 잡힌 제목들이다. 바로 헤밍웨이의 그 유명한 작품들이다. 비교적 주제가 분명한 작품들은 헤밍웨이의 군인과 기자, 작가의 신분으로 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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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해는 다시 떠오른다........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까마득하지만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여전히 잊혀지지 않은 낯익은

제목들이다. 간략하고 분명한 제목이 아닌 문장의 통사적 구조의 틀이 잡힌 제목들이다.

바로 헤밍웨이의 그 유명한 작품들이다.

비교적 주제가 분명한 작품들은 헤밍웨이의 군인과 기자, 작가의 신분으로 활동한 경험과 전혀 무관치

않으리라. 특히 이 작품 <노인과 바다>는 1954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작이자 20세기 불후의 명작으로

높이 평가받는 작품이다. 그러나 줄거리와 구성은 아주 단순했다.

 

 

주인공 산티아고 노인은 84일동안 한 마리의 물고기도 잡지 못했다.

85일째 되는 날 산티아고 노인은 좀 더 먼 바다로 나아갔다.

그리고 기다림의 인내끝에 청새치란 아주 큰 물고기를 낚게 되었다.

물고기와 노인의 밀고 당기는 지루한 사투가 한치의 양보도 없이 몇일동안 계속 되었다.

결국 이 게임은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긴 산티아고 노인의 승리로 이어졌다.

청새치는 결국 노인의 창살에 꽂혀 바다에 피투성이 냄새를 남긴채 배가 이끄는대로 가고 있었다.

끝인 줄 알았다. 뭍에서의 평안하고 달콤한 휴식이 기다릴 줄 알았다.

하지만 청새치의 피는 다른 방훼꾼들을 불러모아 피곤에 지친 노인과의 2차접전을 암시했으며,

이 큰 청새치가 결코 노인에게 찾아 든 운에 걸림돌이 된 것이었다.

그저 큰 물고기를 잡아 자신을 언제 어디서나 믿어주는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었을뿐이었는데....

다양한 상어떼의 청새치를 향한 살점 포획하기 공격은 계속 되었다.

노인은 결국 상어떼에게서 잡은 청새치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벽은 계속 이어졌지만 몸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어 청새치의 뼈 부분만 고스란히 전리품으로 남긴채 허망하게 돌아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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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어떼의 수많은 공격에도 끄떡하지 않는 산티아고 노인의 불굴의 강인함과 의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그 역동적인 힘.... 놀라울뿐이었다.

눈에 보이는 상어떼와의 치열한 사투보다 자신과의 싸움에 절대 굴복하지 않는 인간의 또다른 모습을

엿보았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황망한 바다에서의 고독은 물고기를 잡았느냐 잡지 않았느냐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었을까 싶다.

자신을 향한 독백조의 문체는 더욱 인간 마음 속 두려움의 근원인 '외로움'을 비껴나갈 수

없음을 시사해준다. 허한 마음 속 사람의 빈 자리는 결국 사람의 온기로 채워야 되는 것.....

산티아고 노인은 소년이 있었다면.... 고백을 여러번 되뇌였다.

아울러 자신뿐 아니라 자연물에게까지 자신과 동격의 인격을 부여하는 소통은 얼마나 그가 사람과

사람 사이 정서적 교감을 원하는지 알게된다.

 

 

아무것도 수확이 없는 바다 위 힘겨운 여정은 끝이 났다.

문득 노인의 청새치가 피 냄새 맡고 온 상어떼의 먹잇감이 될 줄 알면서도 왜 노인은 상어떼와의

그 소모적인 싸움을 계속 했을까? 의문이 들었다.

청새치를 포기하고 항구로 되돌아와 다친 몸과 마음을 추스리며 다음을 기약하면 될진대.....

갑작스레 스친 84일간의 고기를 잡지 못했던 시간적 의미가 베테랑 늙은 어부에겐 용납되지 않았던

자존심이었을까? 아니면 그것이 자신의 삶에 돌이킬 수 없는 첫 패배라고 낙인찍히는게 하는 민감한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이 두가지 마음의 동요를 다 감당하기엔 노인의 어깨가 너무 무거워보인다.

그리고 이런 의문들을 상쇄시킬 산티아고 노인의 명대사가 크게 다가온다.

 

"인간은 패배하는 존재로 만들어진 게 아니야. 인간은 파괴될 수 있어도 패하지는 않지"

 

이 명대사 속에 인간의 나약함과 불굴의 의지가 다 들어있기 때문이다.

바다를 닮은 산티아고 노인이 주는 이미지 자체만으로도 인간 승리이기 때문이다.

 

 

그저 물 흐르듯 지루한 듯한 이야기 전개가 바다로 배경이 바뀌면서 분위기 전환이 된다.

노인의 바다는 길고 긴 인내의 지루함을 견디는 현장이며 치열한 자신의 삶의 현장이었다.

노인의 바다를 통해 자연과 인간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아울러...

그리운 것은 마음속에 동경하는 대상속에 모두 투영되어 있음을 <노인과 바다>를 통해 옅게나마

알게된다^^

 

l*****5 2013.10.1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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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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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어렸을때 읽었다면 난 틀림없이 무척이나 재미없는 책으로 치부해 버렸을것이다. 조금은 나이가 들어버린 지금 나에게 [노인과 바다]는 [은교]이상으로 나의 미래를 점치게 하는 중요한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노인과 바다는 분명 어른이 된 후에야 읽어야 그 참 맛을 느낄수 있다. 남은 인생에 대한 두려움과 고독, 숨어버린 열정을 다시 찾아 보고픈 그런 열망이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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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어렸을때 읽었다면

난 틀림없이 무척이나 재미없는 책으로 치부해 버렸을것이다.

조금은 나이가 들어버린 지금 나에게

[노인과 바다]는 [은교]이상으로 나의 미래를 점치게 하는 중요한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노인과 바다는 분명 어른이 된 후에야 읽어야 그 참 맛을 느낄수 있다.

남은 인생에 대한 두려움과 고독,

숨어버린 열정을 다시 찾아 보고픈 그런 열망이 조합되어

[노인과 바다]는 나에게 깊은 감동으로 남아있다.

 

요즘 나이가 든다는 것에 참으로 소중함을 느낀다.

나이를 빨리 먹고 싶어서가 아니다.

지나간 나의 젊음이 아쉽기도 하지만

내 젊음과 그 사람과의 연륜의 간극을 어떻게든 줄이고 싶은 마음으로

그 분 옆을 지키고 싶기에

내가 나이가 든다는 것에 별로 두렵거나 화가 나지 않는다.

커다란 청새치를 잡았지만 결국 뼈만 남겨 돌아온 노인에게

그래도 그를 전적으로 믿고 우상으로 여기고 있는 소년이 있는 것처럼

나도 그분의 소년이 되고 싶다.

 

젊음이 지나가 버린  노인의 삶.

[은교]의 선생님은 사랑으로 젊음을 다시 되돌리고 싶어했고

[노인과 바다]의 어부는 커다란 청새치를 잡는 것으로 젊음을 과시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결국 세월과 젊음은 되돌릴수 없는 것

자신이 졌다는 것은 의식하는 순간, 그때가 바로 노년이겠지

나의 노년의 삶은 어떠할까?

 

*** 인상깊은 구절 ***

"너는 지난날 분명히 온전한 물고기였는데,

내가 너무 멀리 나가는 바람에 이렇게 되었구나

정말 미안하다. 내가 우리 둘을 망쳤다.

하지만 우리는 여러 마리의 상어를 죽였어.

바로 너하고 나하고 말이야"

l***1 2012.11.1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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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노인과 바다
"[도서] 노인과 바다" 내용보기
재방송을 많이 하는 프로그램들이 있다. 굳이 찾아보지는 않지만 우연히 방영하는 것을 보게 되면 재밌어서 끝까지 보게 되는데 제일 처음부터 끝까지 한자리에서 다 본 적은 없어서 오프닝이나 몇몇 장면들은 내내 놓치고 만다. 허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가 그런 책이었다.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이나 김만중의 [구운몽]이 생각나지만 [운수 좋은 날] 보다는 흐름이 길고 [구운몽]보다
"[도서] 노인과 바다" 내용보기

재방송을 많이 하는 프로그램들이 있다. 굳이 찾아보지는 않지만 우연히 방영하는 것을 보게 되면 재밌어서 끝까지 보게 되는데 제일 처음부터 끝까지 한자리에서 다 본 적은 없어서 오프닝이나 몇몇 장면들은 내내 놓치고 만다. 허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가 그런 책이었다.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이나 김만중의 [구운몽]이 생각나지만 [운수 좋은 날] 보다는 흐름이 길고 [구운몽]보다는 현실적이다. 쿠바의 한 어부가 큰 청새치를 잡았지만 상어에게 다 빼앗기고 거의 실신 상태로 돌아왔다는 꿈 같은 실제 사연을 바탕으로 쓰여져서인 것 같다. 

 

외로움과 고독

같은 책이어도 읽는 시점의 나이와 상황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고 하더니 [노인과 바다]를 보며 고독사를 떠올릴 줄이야. 주인공 산티아고 할아버지는 자주 혼잣말을 하며 이렇게 되뇌인다.

"그 아이가 지금 여기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아이가 있다면 오죽이나 좋아."

"그 아이가 여기 있다면 정말 좋으련만."

열정적인 젊은이의 사랑에 대한 미련이 뚝뚝 남은 말이라면 잠깐 가슴이 저릿하고 말 것인데, 연세 지긋하신 노인이 사람의 온기를 그리워하고 있다 생각하니 가슴에 물이 꽉 찬 듯 먹먹하고 코 끝이 찡해온다. 그 아이의 밝은 미래를 운이 다한 자신이 발목 잡지 않도록 다른 운 좋은 배로 밀어 내보낸 후에야 혼잣말로 아쉬움을 달래는 모습이 집에 계신 부모님을 생각나게 한다. "나는 괜찮다", "네가 좋으면 됐다", "우리는 걱정하지 말고 네 일 봐라", "더 많이 못해줘서 미안하다". 숱하게 들어온 많은 말들이 "보고 싶다", "사랑한다"라고 반복적으로 들리는 건 바르게 이해한 것이겠지.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온 할아버지를 제일 먼저 발견하고 고단함과 상처를 보며 엉엉 소리내어 우는 아이가 있어줘서 대신 고마웠다. 마을 사람 모두가 걱정하지만 그래도 바로 곁에서 피부를 닿으며 커피를 건네주고 함께 할 내일을 약속해주는 아이가 있어 마음이 탁 놓였다. 아이에게도 이토록 의지가 되고 기대게 되는 것을 보면 외로움이란 생명의 불씨를 꺼버릴 수 있는 무시무시한 것이 맞나보다. 

 

끈기와 투지

소설의 과장된 표현이라고 느껴지는 부분이 있는데 바로 하루 내내 팔씨름을 하다가 마지막까지 집중한 할아버지가 이겼다는 부분이다. 일요일 아침에 시작해서 월요일 아침에 승패가 났다는데 지면 죽음을 당하는 경우가 아니고서야 24시간 가까이 손을 맞잡고 힘을 쏟아내야 할 이유도 부족하고 실제 가능한지도 의문이다. 그래도 할아버지의 포기하지 않는 끈기와 집중력을 잘 보여준 대목이었기에 후에 며칠씩 낚싯대를 붙잡고 있을 때나 키 손잡이가 부러지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오는 과정이 납득이 갔다. 

"내게 노와 짧은 몽둥이 그리고 키 손잡이가 있는 한 끝까지 싸워볼 것이다."

이순신의 "신에게는 아직 열두척의 배가 있사옵니다."를 연상케 하는 구절이다. 전쟁 영화에서나 느껴지는 비장함인데 생과 사의 기로에 처해있다는 상황적 유사성 때문일까. 제 1,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작가의 투지가 투영한 것일까. 그저 상어밥이 되는 것이 더 무섭고 표류한 채 아사하는 것이 더 두려웠기 때문일까. 아니면 당연한 듯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서였을까.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끈을 놓지 않고 싸워나가는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금방 포기하고 마는 나를 반성하게 된다. 마코상어, 삽살코상어, 신락상어, 갈라노상어, 마지막엔 상어 떼까지. 돌아오는 길이 긴 만큼 참 많이도 찾아온다 싶었다. 이제 할아버지 쉬실 수 있게 헤밍웨이야 상어 좀 그만 보내라 원망했건만 결국 잡은 물고기 다 뜯어먹히고 창날부리, 머리, 꼬리만 남은 채 돌아와서 너무 아쉽고 서운했다. 그래도 상어가 할아버지를 직접 공격하지 않았고 뼈대가 남았기에 이웃 사람들이 할아버지가 550cm에 달하는 거대한 상어를 잡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도록 온정을 베풀어준 작가에게 고마움마저 느껴졌다.

 

희극과 비극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이 있다. 어부라는 생업에 종사하는 할아버지에게는 5일간의 목숨을 건 사투의 말로가 하루 놀러온 관광객에게는 멋있고 아름다운 꼬리로 비춰지는 아이러니라니. 살짝 화가나는 씁쓸함에 헛웃음이 새어나온다. 없는 것을 생각하기보다는 지금 있는 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라던 산티아고 할아버지의 말씀을 받들어 관점을 전환해보자면, 무사히 살아돌아온 지난 5일간의 경험은 다른 사람들이 하지 못한 할아버지만의 놀랍고 굉장한 경험이고 젊은 사람들도 잡지 못한 큰 상어를 마을에서 할아버지 혼자 잡아봤으며 두고 두고 회자될만한 모험기를 아이에게 들려줄 수 있게 되었다. 먼 훗날 아이가 위기에 처했을 때 할아버지의 투쟁기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고 또 수일간 공선으로 돌아오더라도 예전처럼 할아버지를 비웃지는 못할 것이다. 

 

1954년 스웨덴 한림원은 "폭력과 죽음으로 가득한 현실세계에서 의로운 투쟁을 전개한 모든 사람에게 의당한 존경심"을 표현한 이 작품에게 노벨문학상을 수여한다고 밝혔다. 한창 세계가 혼란스럽고 무력으로 서로를 죽이던 시절 끝까지 굴하지 않고 맞서 싸우다 끝끝내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이들이 추구하는 정의와 삶의 방향이 아니었을까. 할아버지가 보고 싶은 아이와 편안한 침대가 있는 집으로 무사히 귀환하셨듯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이들이 잘 이겨내서 사랑과 안정을 느낄 수 있는 생활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y****a 2023.10.3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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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필요없는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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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피나는 악전고투 끝에 실로 오랫만에 청새치를 잡았는데, 그걸 뜯어먹으러 오는 상어들과 또 싸우며 집으로 돌아오는 노인. 그가 돌아온 오두막엔 어린 친구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심오한 메시지를 담은 간결한 문장. 헤밍웨이를 많은 작가들이 감탄하고 질투할 수 밖에 없는 이유지요. 인생은 끝없는 투쟁이며, 이것을 끝내고 오는 자에게는 오두막의 친구가 기다리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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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피나는 악전고투 끝에 실로 오랫만에 청새치를 잡았는데, 그걸 뜯어먹으러 오는 상어들과 또 싸우며 집으로 돌아오는 노인. 그가 돌아온 오두막엔 어린 친구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심오한 메시지를 담은 간결한 문장. 헤밍웨이를 많은 작가들이 감탄하고 질투할 수 밖에 없는 이유지요. 인생은 끝없는 투쟁이며, 이것을 끝내고 오는 자에게는 오두막의 친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산티아고 노인은 푹 자고 내일이면 또 초라한 보트를 몰고 물고기를 잡으러 나갈 것입니다. 그것이 인생이고, 위대한 인생입니다.

d*****6 2018.07.1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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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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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많이 거론되고 많이 접하던 ‘노인과 바다’라는 제목...처음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이걸 읽어야 하나? 그런데 너무 언급이 되다보니 호기심이 생겼다. 읽고싶다는 호기심 말이다. 그래서 그 길로 바로 구매하여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노인과 바다’라는 제목이 너무 재미없게 느껴졌다. 에이 뭐 그냥 대충 노인이야기 조금 쓰고 바다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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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많이 거론되고 많이 접하던 노인과 바다라는 제목...

처음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이걸 읽어야 하나? 그런데 너무 언급이 되다보니 호기심이 생겼다.

읽고싶다는 호기심 말이다.

그래서 그 길로 바로 구매하여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노인과 바다라는 제목이 너무 재미없게 느껴졌다.

에이 뭐 그냥 대충 노인이야기 조금 쓰고 바다에 대한 이야기 조금 쓴거? 아니겠어? 라고 생각까지 했었다.

 

본격적으로 책의 내용으로 빠져들어 가자

그 처음에 생각했던 생각이 정말 오만하고 바보 같다는 생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체적인 내용은

한 노인이 소년과 함께 고기를 잡다가

고기를 못 잡아 소년과 떨어지고

혼자서 고기를 잡기 위해 바다에 나갔다가

정말 말도 안될 만큼의 크기의 물고기를 몇 날 몇일의 사투 끝에 잡아 돌아오던 중에

바다의 적들과 만나게 되어

 

결국 집으로 돌아 왔을 때는 물고기의 뼈만 남고

노인은 지칠 대로 지치며

 

마무리가 되는 단순한 구조이다.

 

그렇지만 읽어보아야지만 느낄 수 있는 작가의 섬세한 표현이 나를 감탄하게 했다.

읽는 동안 동작 하나하나가 너무 자세하게 표현이 되어 있어, 마치 바로 옆에서 노인이 물고기를 잡고 싸우고 있는 것과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이러한 경험은 이전에 읽었던 소설에서는 느낄 수 없는 느낌이었다.

 

정말 수도 없이 고치고 고쳤다는 헤밍웨이의 고통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만날 노인과 바다라는 제목 접하는 사람이 있다면

꼭 한번 읽어보라고 권해주고 싶다. 읽으면서 그 매력에 빠져보라고도 말이다.

 

잡담. 이 책을 읽었다고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너는 노인이니? 바다니?”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 답을 곰곰이 생각해보았더니

노인이다 바다이다라고 단답형으로 답을 할 수는 없었지만,

무언가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달성하지만 마지막에 그 목표는 읽지만 말로 표현 못할 깨달음을 느끼는 노인보다는 노인에게는 나쁘게 작용했지만 미지의 세계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것이 나오는 바다가 더 좋다고 답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왠지 모르지만 노인보다는 바다가 더 끌린다는 말이다....

 

 





d*******9 2013.07.2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