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37)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43%
  • 리뷰 총점8 51%
  • 리뷰 총점6 5%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7.0
  • 40대 8.0
  • 50대 8.0

포토/동영상 (3)

리뷰 총점 종이책
불량하지만 매력 있다. 『우체국』
"불량하지만 매력 있다. 『우체국』" 내용보기
씹할! 젠장 맞게 재밌다!   읽는 내내 이 문장이 내 머릿속을 부유했다. 소설 속 화자 헨리 치나스키의 표현을 빌려 서두를 열어 보았는데 조금 강한가?. 그는 '씹할'을 달고 사는 인생이다. 저 한 단어만큼 그를 잘 드러내는 함축적인 표현도 없다. 그러니 조금 거북스럽더라도 이해해주시길 바란다. 이 작가, 아니 이 양반 진정 골 때리는 사람이다. 골 때리게 유머와 위트를 다
"불량하지만 매력 있다. 『우체국』" 내용보기

 

씹할! 젠장 맞게 재밌다!

 

읽는 내내 이 문장이 내 머릿속을 부유했다. 소설 속 화자 헨리 치나스키의 표현을 빌려 서두를 열어 보았는데 조금 강한가?. 그는 '씹할'을 달고 사는 인생이다. 저 한 단어만큼 그를 잘 드러내는 함축적인 표현도 없다. 그러니 조금 거북스럽더라도 이해해주시길 바란다. 이 작가, 아니 이 양반 진정 골 때리는 사람이다. 골 때리게 유머와 위트를 다 갖추고 있는 이 양반, 맘에 들어버렸다. 이 책은 나에게 일종의 모험이었다. 어떤 책이든 모험이라는 요소는 전제하게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국내 초역이라는 것과 더불어 아주 생소한 작가이기에 더욱 호기심을 자극했고(표지는 솔직히... 내 스타일이 아니다. 이마가 너무 넓으셔, 이 작가님.) ‘우체국’이라는 친근한 장소의 제목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우연하게도 소설을 이끌어가는 소재인 ‘우체국’과 ‘경마장’이 내 거주지 근처에 다 자리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우체국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우체국이 아니라 그 지역 전체의 우편물을 관할하는 ‘우편집중국’이란 곳이다. 어느 시간대든 버스 정류장에 서 있으면 우체국 소속 대형 트럭들을 지겹도록 볼 수 있는 곳이 내가 사는 이 동네이다. 그렇다 보니 읽는 내내 좀 더 친근하게 다가오기도 했고 그 곳의 놀랍도록 팍팍하게(물론 이는 1950~60년대의 미국의 시대적 상황 하에 그렇다는 것이다.) 돌아가는 삶을 상상해 보기도 했다.

 

사실 줄거리는 크게 이렇다 할 뭔가는 없다. 그저 헨리 치나스키라는 술고래 한 남자가 12년간 우체국에서 집배원으로, 사무원으로 근무하는 와중에 경마 도박과 스쳐 가는 여자들과의 관계에 대해 토로하는 게 다이고, 지겹도록 반복되는 쉴 틈 없는 노동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반反 노동자의 하소연? 푸념 같은 글이다. 매일 마셔야 하는 술값 때문에 옷 살 돈이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구제불능처럼 보이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말로만 들으면 정말 뻔하고 지겨운 스토리가 아닌가 생각이 들 것이다. 그렇다. 뻔한 스토리다. 그런데 이 뻔한 스토리가 저자 찰스 부코스키의 자전적인 경험을 풀어냈다는 것과 너무나도 사실적인 서술 방식이라는 데에 주목해야 한다. 여기서 사실적인 이라는 것은 현실을 그대로 반영했다는 그뿐만이 아니라, 상당히 적나라하게 까발렸다는 데에 중점을 둬야 한다. 그 어떤 문학적 치장이나 의도적 장치 없이 좋게 말하면 순수 그 자체이고 나쁘게 말하면 이런 것도 문학이라고 할 수 있어? 같은, 문법적으로도 문제가 많고 소설이 주는 주제 역시 명확하게 드러나지도 않는다. '이렇고 이래서 그렇게 되었다.' 같은 기승전결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그냥 다이렉트로 질주한다. 난 또 그게 재밌어서 ‘이 앙큼한 괴짜 양반!’이라고 부르며 시종일관 깔깔거리기에 바빴다. 이 작가의 가치관,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게 소설에서 물씬 느껴져 왔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이 작품은 허구이며 아무에게도 바치지 않는다.’ (『우체국』 헌사) 외국 작품들 대부분은 헌사가 인쇄되어 있다. 부코스키의 작품 역시 예외는 아니었고, 첫 장부터 이렇게 허를 찌르니 내 관심은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이 작품은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뉠 작품이다. 그 이유는 소설이 주는 재미보다 표현방식에서 오는 부분 때문이다. 치나스키라는 인물은 반노동자를 자처하며 날마다 술에 절어 있고 여자를 보는 시선 역시 성적인 대상으로서가 다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까, 여자의 앞모습에서는 가슴만 보이고 뒷모습에서는 엉덩이만 보이는 식이다. 난 그나마 좀 순화한 표현이고 실제로는 그렇게나~ 적나라하게 표현되어 있다. 하하~

 

아주 가끔 어떤 글을 볼 때면(작가의 글이든, 블로거의 글이든) ‘글발이 살아있군!’ 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부코스키가 그런 글을 쓰는 작가이다. 아직 한 작품 밖에 읽어 본 건 아니지만, 이 작품만큼은 충분히 그러했다. 그렇기에 좋은 글, 혹은 마음을 움직이는 글이라는 게 굳이 기교가 다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순수하게든 악하게든, 감정의 동요를 충분히 불러일으키는 글, 그런 글이 진정 감동을 주는 것이라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 아저씨, 이마는 훌러덩 까졌지만 살아온 궤적을 글로 표현하는 건 기막히게 사실적이고 가식이 없어서 좋다. 하지만 부코스키 그는 주류 문단에서 외면당한 작가이다. 대신 전 세계의 ‘독자’들이 열광하는 작가 중의 한 사람이긴 하다. 그러니까 독자가 사랑하는 작가~ 아마, 학식 있고 점잔 빼는 이들에게 그의 글은 경마, 술, 여자에 빠진 별 볼 일 없는 한 남자가 등장하는 그저 그런 저속하고 지저분한 소설로밖에 비추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문학 작품이 꼭 고상할 필요는 없잖아? 그런 의미에서 파격적인 고전 소설이 궁금한 사람들에게는 아주 신선한 작품이 바로 『우체국』이 될 것이다. 불량하지만 매력있는 소설로써.

 

 

아침이 되자 아침이었고 여전히 살아 있었다.

아마 소설을 쓸 것 같군, 생각했다.

그래서 소설을 썼다. - 찰스 부코스키-

 

씹할! 이 양반 생각 자체가 너무 멋지다! 가식 없고 꾸밈 없는.

 



w*****8 2012.04.09. 신고 공감 24 댓글 44
리뷰 총점 종이책
그는 무엇으로 사는가
"그는 무엇으로 사는가" 내용보기
찰스 부코스키의 작품을 읽으면 왠지 사는 게 조금 가벼워지곤 한다. 그가 쓴 글들이 처음부터 욕심이나 집착이 없어서일 수도 있고, 세상의 부조리와 삶의 허무를 소설 속의 한 문장 한 문장에 밀어넣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그의 시선은 조금 삐딱하게 기운 채 세상을 경멸하거나 비웃는다. 소설의 탄생이 애초에 그렇다는 걸 말해주려는 듯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는 무엇으로 사는가" 내용보기

찰스 부코스키의 작품을 읽으면 왠지 사는 게 조금 가벼워지곤 한다. 그가 쓴 글들이 처음부터 욕심이나 집착이 없어서일 수도 있고, 세상의 부조리와 삶의 허무를 소설 속의 한 문장 한 문장에 밀어넣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그의 시선은 조금 삐딱하게 기운 채 세상을 경멸하거나 비웃는다. 소설의 탄생이 애초에 그렇다는 걸 말해주려는 듯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개 도덕이나 규칙의 굴레에서 벗어난 노골적이면서도 직설적인 말과 행동을 보여준다.

 

"그럭저럭 괜찮은 여자, 같이 자기 좋은 여자였지만 그런 여자들이 다 그렇듯이 서너 밤 자고 나자 재미도 시들해져 다시 가진 않았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떨칠 수는 없었다. 세상에, 집배원들은 편지를 넣고 다니면서 여자들하고 같이 눕기도 하는구나. 이거 나한테 딱 맞는 일인데. 오, 이거야, 이거. 이거라고."    (p.12)

 

찰스 부코스키의 소설 <우체국>에 나오는 '헨리 치나스키'는 크리스마스 즈음 '거기 가면 개나 소나 다 써준다'는 얘기를 듣고 임시 집배원으로 일하던 중 한 여자와 밤을 보낸 후 집배원이 되기로 결심한다. '편지를 넣고 다니면서 여자들하고 같이 눕기도 하는' 집배원이라는 직업이 천직처럼 여겨졌던 것이다. 그러나 보결 집배원으로 시작된 그의 일과는 만만치 않았고, 여자랑 같이 누울 수 있는 기회를 은근히 기대했었지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게다가 현장 주임이었던 존 스톤의 눈 밖에 난 까닭에 그의 순로는 항상 가장 힘들고 어려운 곳을 배정받았다.

 

3년간의 힘든 보결 집배원 생활을 마친 그는 마침내 '정규 집배원'이 되었으나 늘 술과 도박 여자에 빠져 살던 그는 여전히 현장 주임의 감시 대상 일순위였다. 어느 날 규정 위반으로 여러 장의 경고장을 받은 그는 결국 3년 반만에 사직서를 제출한다. 백수가 된 헨리는 경마를 하며 소일한다. 같이 동거하던 여자 베티가 타자수로 취직하면서 그와 헤어지고 그는 텍사스 출신의 젊은 여자 조이스를 만나 결혼했다. 그러나 다시 빈털털이가 된 그는 조이스와 함께 텍사스로 향하지만 조이스의 부모와 조부모는 그가 혹시 그들의 재산을 보고 조이스와 결혼하지 않았는가 의심한다. 조이스의 권유에 따라 그는 결국 우편 사무원으로 다시 취직하지만 그들은 결국 이혼한다.

 

스툴에 앉아 우편물을 분류하는 일을 하면서 그는 현장 주임의 감시하에 정해진 시간 내에 분류를 마쳐야 하는 표준화 된 노동생산성의 노예가 된다. 이 때의 미국은 빈틈없는 작업방식의 구축과 기계적 반복작업의 실행을 바탕으로 노동생산성을 극대화하는 '포드주의'가 지배하던 시기였다. 비인간적인 작업환경 속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주변 사람들. 그러나 헨리는 이러한 체제에 견디지 못하고 반항한다. 그가 반항하는 방식은 주로 섹스와 술이었다.

 

"우체국 업무는 하룻밤 열두 시간 근무에다가, 현장 주임을 더하고, 우편 사무원들을 더하고, 살덩이들 틈에서 제대로 숨도 쉴 수 없는 분위기를 더하고도, 거기에 <비영리> 식당에서 만든 쉰 음식까지 참아야 하는 일이었다."    (p.126~p.127)

 

헨리가 마지막에 만난 여자는 페이였다.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언제나 검은 옷을 입고 다니는' 반전 운동을 하는 페이는 전남편에게서 받는 생활비 수표로 근근이 살았다. 페이는 이따금 워크숍에 참석하고 글을 쓰기도 했다. 페이가 임신을 하고 딸을 낳았다. 그럼에도 헨리는 기계의 부속품처럼 반복되는 고된 일로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페이는 결국 딸을 데리고 집을 나간다.

 

"지나간 11년이 머리를 뚫고 지났다. 이 일이 사람을 갉아 먹는 것을 봐왔다. 사람들은 흐늘흐늘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도지 우체국에 지미 포츠라는 직원이 있었다. 내가 처음 왔을 때 지미는 흰 티셔츠를 입은 건장한 사내였다. 이제 그때 그 사람은 사라졌다. 그는 바닥에 가능한 한 가까이 붙어 앉아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로 버티고 있었다. 너무 피곤해서 이발도 못 했고 3년 동안 똑같은 바지를 입었다. 일주일에 두 번 셔츠를 갈아입었고, 아주 천천히 걸었다. 우체국이 그를 살해한 것이다. 그는 쉰다섯 살이었다. 퇴직까지는 7년이 남아 있었다."    (p.219~p.220)

 

헨리는 결국 사표를 내고 다시 고주망태로 변한다. 그는 술에 취해 쓰러졌다가 다시 깨어 자신이 살아 있음을 확인한다. 그리고 자신이 소설을 쓸 것 같다고 생각하였고, 소설을 썼다.

 

"2층이었다. 문을 열었더니 사람들이 있었다. 우정 사업 본부 직원들. 한 여자는 불쌍하게도 팔이 하나밖에 없었다. 거기 영원히 있겠지. 나처럼 늙은 주정뱅이가 되는 거나 다름없다. 뭐, 다른 동료들이 말하듯이 어디에서라도 일은 해야 하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였다. 그게 노예의 지혜였다."    (p.232)

 

찰스 부코스키의 책이 대개 그렇듯 <우체국> 역시 그의 경험에 바탕을 둔 자전적인 소설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헨리 치나스키는 반복되는 일상과 부속품으로 전락한 자신의 모습에 끝없이 절망한다. 절망의 나락에 빠진 자신을 건져내기 위해 그는 술을 마시고, 섹스를 한다. 그리고 마침내 소설을 씀으로써 자신을 구제한다. 자신을 돌보는 마지막 방법으로 소설 쓰기를 선택한 것은 찰스 부코스키답다.그는 언젠가 이렇게 말했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멋있게 들리는 건 내가 도박하듯 글을 쓰기 때문이다. 너무 신중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들은 연구하고, 가르치고, 그리곤 망친다."

이달의 사락 s*****l 2015.12.22. 신고 공감 5 댓글 6
리뷰 총점 종이책
우체국의 반항아 치나스키!
"우체국의 반항아 치나스키!" 내용보기
가끔은 오래 전 친구들을 만날 때가 있다. 항상 어디로 튈지 몰라서 주변 사람들을 긴장시키고, 엉뚱한 농담으로 상대를 혹케 하던 이들이 지금은 너무나 뻔한 모습으로 살고 있다. 모두들 아침부터 저녁까지 회사에 매여있고, 눈에는 생기가 없어지고, 배는 나오기 시작한다. 꿈이이나 미래와 같은 이야기는 없어지고 오직 하루 하루 사는 이야기가 전부이다. 누가 사람을
"우체국의 반항아 치나스키!" 내용보기

 

 

가끔은 오래 전 친구들을 만날 때가 있다.

항상 어디로 튈지 몰라서 주변 사람들을 긴장시키고, 엉뚱한 농담으로 상대를 혹케 하던 이들이 지금은 너무나 뻔한 모습으로 살고 있다.

모두들 아침부터 저녁까지 회사에 매여있고, 눈에는 생기가 없어지고, 배는 나오기 시작한다.

꿈이이나 미래와 같은 이야기는 없어지고 오직 하루 하루 사는 이야기가 전부이다.

누가 사람을 이렇게 변하게 하는 것일까?

무엇이 사람을 이렇게 변하게 하는 것일까?

가끔은 조직사회라는 것이 무섭게 느껴질 때가 있다.

 

여기 현대사회의 관점에서 보면 실패자라고 부를만한 한 남자의 이야기가 있다.

찰스 부코스키가 쓴 [우체국]이란 소설에 나오는 ''치나스키'라는 인물이다.

작가의 분신이기도 한 '치나스키'는 우리의 시각에서 보면 '한량'이자 사회 부적응자이다.

직장을 다니기는 하지만 대부분 지각과 결석이다.

상관에게 항상 대들고, 조직의 규율에 반항한다.

항상 여자를 만나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거나 경마장에서 시간을 보내고, 아침이면 술에 덜 깬 모습으로 출근을 한다.

그나마 그런 직장 역시 오래 다니지를 못한다.

 

이 책은 작가인 찰스 부코스키가 우체국에서 일한 경험을 토대로 '치나스키'라는 인물이 2년간 우체국에서 배달원으로 일하고, 다시 11년간 우체국 사무직으로 일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이야기 하고 있다.

말이 좋아 우체국 사무직이지 하루를 소포나 편지를 분류하는 작업을 하는 일이다.

그리고 당시 미국의 근무조건은 매우 억압적이고 열악했다.

그 조직 속에서 인간은 마치 기계처럼 정해진 일들을 한다.

이 책은 그런 조직사회가 어떻게 사람들을 무너뜨리는지를 잘 묘사한다.

 

현장 주임은 양철 분류함 앞에서 서서 나를 가리켰다. 사무원들은 아주 빨리 우편물을 꽂고 있었다. 그들이 미친 듯이 오른팔을 휘두르는 것을 바라보았다. 심지어 통통한 여자애도 우편물을 제자리에 쑤셔 놓고 있었다.

"이 분류함 끝에 쓰여 있는 숫자들이 보이나?"

"네"

"1분당 꽂아야 하는 개수를 가리키는 거야. 60센티미터 트레이라면 23분 안에 마쳐야 해. 자넨 5분이 늦었어."

현장 주임은 분류함에 써 있는 숫자 23을 가리켰다. "23분이 표준이라고."

"저 23은 아무 의미도 없어요." 내가 말햇다.

"무슨 뜻이야?"

"제말은 어떤 남자가 페인트 통을 들고 와서 저기다 23이라는 숫자를 써놓았을 뿐이라는 거죠."

"아니야, 아지지. 이 시간은 몇 년 동안 검증된 거고 재확인 된 거야."(P221)

 

지나간 11년이 머리를 뚫고 지나갔다. 이 일이 사람을 갉아 먹는 것을 봐왔다. 사람들은 흐늘흐늘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도지 우체국에 지미 포츠라는 직원이 있었다. 내가 처음 왔을 때 지미는 흰 티셔츠를 입은 건장한 사내였다. 이제 그 때 그 사람은 사라졌다. 그는 바닥에 가능한 한 가까이 붙어 앉아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로 버티고 있었다. 너무 피곤해서 이발도 못했고 3년 동안 똑같은 바지를 입었다. 일주일에 두 번 셔츠를 갈아 입었고, 아주 천천이 걸었다. 우체국이 그를 살해한 것이다. 그는 쉰다섯 살이었다. 퇴직까지는 7년이 남아 있었다. (P220)

 

이런 상황 속에서도 치나스키는 끊임없이 상사에게 대들고, 새로운 여자를 만나고, 경마장에 간다.

그 사이 그는 베티, 조이스, 페티라는 세 명의 여성과 결혼하거나 동거하고 페티에게서는 마리나 루이즈라는 딸까지 낳는다.

저자는 여자와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 딸이 태어나고 헤어지는 과정을 너무나 담담한 필치로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치나스키는 우체국 사무직을 11년째 되던 해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다.

자신이 더 이상 있을 곳이 아님을 깨닫고......

 

 

이 책을 읽으면서 그냥 먹고 노는 것이 꿈이 치나스키의 삶이 한심하게 느껴지다가도, 우체국이라는 규격화된 조직사회가 숨이 막히게 느껴졌다.

그리고 마지막에 치나스키가 그 곳을 나올 때 나조차 자유를 경험하는 것 같았다.

 

과연 치나스키와 같은 인물은 우리는 부적응자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것일까?

저자의 표현대로 조직사회에서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사람이 진정 착실한 인간일까?

사회는 그런 사람을 성실하고 바른 인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말 그렇게 일평생을 사는 것이 성실하고 바른 삶일까?

아직 인생을 조금밖에 살지 못해 어떤 삶이 정답인지 알지는 못하겠다.

다만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이 조직사회에서 흐물흐물 녹아지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때로는 치나스키처럼 그런 조직사회를 마음껏 비웃으며 자신의 멋대로 사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다.

i*******3 2015.12.06. 신고 공감 5 댓글 5
리뷰 총점 종이책
규율은 생산최적화 사회구조 창조 도구일뿐
"규율은 생산최적화 사회구조 창조 도구일뿐" 내용보기
- 규율사회의 온순한 신체이기를 거부하는우편 배달원 ‘치나스키’에게 갈채를 보내며!   질서, 규범, 법과 제도 등 무수한 이름의 규제 장치들에 익숙해 진 우리들의 몸은 이것들에 순응한다. 이 사회적 장치들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소설의 첫 장은 미합중국 우정사업본부‘복무윤리강령’이 장식하고 있다. 우체국 직원의 행동 규범 수칙이다. 우체국 직원을 위한 것일
"규율은 생산최적화 사회구조 창조 도구일뿐" 내용보기

- 규율사회의 온순한 신체이기를 거부하는우편 배달원 ‘치나스키’에게 갈채를 보내며!

 

질서, 규범, 법과 제도 등 무수한 이름의 규제 장치들에 익숙해 진 우리들의 몸은 이것들에 순응한다. 이 사회적 장치들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소설의 첫 장은 미합중국 우정사업본부‘복무윤리강령’이 장식하고 있다. 우체국 직원의 행동 규범 수칙이다. 우체국 직원을 위한 것일까? 결코 아니다. 우정사업본부라는 조직을 위한 것이고, 이 조직은 상층부의 권력을 가진 자들에 의해 운영된다. 사회의 규제 장치들이란 개인인 약자들을 감시하고 처벌하는 기능을 갖는다.

 

이 소설을 이렇게 규범 등 사회 규제 장치의 기능이라는 획일적 주제로 몰아감으로써 소설이 발산하는 더 많은 언어들을 사장시키는 편협이 있겠지만, ‘미셸 푸코’에 앞서 이미 ‘찰스 부코스키’가 문학작품으로 개인의 신체와 정신을 억압하는 이들 기능을 통찰하고 있다는 점에서 관용될 수 있지 않을까? 부코스키가 만들어낸 현대인의 신체에 새겨진 규범의 감시와 처벌 기능을 거부하는 ‘헨리 치나스키’라는 중년남자, 그의 속물적 여과정치 없이 내뱉는 말, 얽매이거나 애걸하지 않는 행동이 매혹적으로 보이는 까닭은 바로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순응한 몸과 정신, 혹여 보잘것없는 내 것들을 잃게 될까 쩨쩨하고 비루해진 나의 억눌려진 정신이 그로인해 해소되기에.

 

치나스키는 우편 배달원이다. 물론 예기치 않게 수년 후에 우편물 분류 사무원이 되지만, 그의 노동력을 무참히 착취한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정규직원이 결근하면 일종의 땡빵용으로 새벽부터 기다리다 집배 순로를 배정받는 ‘보결 배달원’으로 우체국에 입사한다. 게다가 현장 주임의 부당한 처우에 대한 시정을 상부에 요구했다가 오히려 일자리의 위협과 더욱 혹독한 처사에 내물리는 등 시련을 겪은 끝에 정규직 집배원이 되지만, 정년퇴직을 눈앞에 둔 성실한 선배 배달원이 오랜 그의 인고의 삶을 허물어뜨리는 누명으로 고통스러워함에도 우체국과 동료들은 외면하기만 한다. 조직이 그 구성원을 지켜주지 않는다. 자신들의 그 하찮은 이익과 명예를 위해서. 그래서 치나스키는 어렵사리 오른 정규직 우편 배달원을 사직(辭職)한다.

우편 배달원은‘사람을 죽이는 노동’의 대명사로 불릴 정도로 그 육체적, 정신적 혹사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더구나 보결 배달원이란 위치는 생계의 위협이라는 불안함을 내재하고 있기에 비굴함을 요구한다. 설혹 감당할 수 없는 배달물량을 배정받더라도, 폭우가 쏟아져 통행이 가능치 않더라도, 근무시간이 아무리 연장되더라도 감수하지 않으면 곧 불이익이 되어 일자리를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도달한 정규직 자리를 과감하게 내던질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치나스키이다. 인간성이 배제된, 오직 노동자라는 수단으로만 여겨지는 조직을 인내하는 것은 자신을 속이는 것이기에.

 

몇몇 비평은 이러한 치나스키를‘반(反)노동’의 상징적 인물정도로 묘사한다. 이건 타인의 노동을 이용하여 이익을 향유하기만 하는 자들, 결코 노동을 하지 않거나 아예 모르는 자들의 이야기에 불과하지 않을까? 치나스키가 경마에 빠져 몇 푼의 배당액으로 술과 무노동을 향유하기는 하지만, 그는 항상 강도 높은 노동에 종사하고 있으며,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요구에도 그 요구의 달성을 위해 시도하고, 또한 완수하는 미덕을 외면하지 않는다. 다만, 획일적으로 설정된 표준작업량의 일회적 측정으로 불이익의 감수를 종용하고, 끊임없이 연장되는 작업시간으로 사람을 단지 노동하는 기계로 인식하며, 어떠한 노동의 부당성에 대한 이의도 허용치 않으려는 무참한 조직에 저항 할 뿐이다. 이것을 반노동이라고 부른다면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일 수 없게 되는 것이 아닌가?

 

이처럼 소설은 비정규직의 고통, 노동의 비인간화라는 노동현실을 통해 규범이라는 감시와 처벌의 장치가 인간을 어떻게 길들여 한낱 생산성을 위해 도구화하는지를 거침없이 보여주고 있다. 생활의 달인 어쩌구하는 어느 TV프로를 우연히 본적이 있다. 엄청난 높이로 쌓인 박스더미를 순식간에 옮기는 묘기를 하는 창고 노동자를 비추면서 달인이라 추켜세우는 것이었고, 컨베이어벨트를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제품에서 불량품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선별해내거나, 연말연시에 폭주하는 우편물을 분류하는 우체국 직원의 쉴 새 없는 손놀림을 포착하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는 뻔뻔함이었다. 그들이 순응할 수밖에 없었던 오랜 노동의 강도를 읽는 것이 아니라, 생산성이라는 산출물량에 초점을 맞춘 자본가의 탐욕에 기승하는 것이리라. 광고주를 기쁘게 하려는 방송사의 취향이야 이해하지만 노동자들의 노동을 단지 기예(技藝)로 취급하여 눈요깃감으로 둔갑시키는 한국의 주류의식에 이맛살이 찌푸려졌던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이다. 그래, 기예로 보이는 그네들의 숙련된 동작에 가해졌던 감시와 처벌의 규정이 얼마나 오랜 시간 가해졌던 것인지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일까?

 

소설 『우체국』에서 사회적 규제 장치인 온갖 규범들이 감시와 처벌이라는 기능을 통해 사람을 어떻게 길들이고, 현대 자본주의의 효과적인 이익 도구로 사용하는지를 이와 같이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매혹적인 문제의식과 달리 치나스키라는 남자의 여성관은 여성을 남자의 성적 대상 이상으로 인식하지 않는 여성 편력으로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른다는 점은 허물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소설 속에 그의 사실 혼 관계의 첫 번째 아내에서부터 두 번째의 어린 아내, 그의 딸을 나아주는 세 번째 동거 여인을 비롯한 주변의 여자들은 오직 섹스라는 성적 파트너로 등장할 뿐이다. 그녀들과 그의 이상이 진지하게 논의 되지도 않을 뿐 아니라, 부부로서의 관계를 지속시키는 데 인내라는 어떠한 수고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이를 사회적 규범에 얽매이거나 순응하지 않으려는 인간으로서 치나스키를 창조해내려는 작가의 결벽(潔癖)한 의도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결혼이라는 사회장치 역시 인간을 속박하는 자유의 흠결중 하나라고 말이다.

 

결국 치나스키는 11년여에 걸친 우편물 분류 사무원이라는 육체노동을 그만두고 소설을 쓰기로 한다. 이것은 다름 아닌 자기의 발견, 즉 주체를 찾았다는 것이다. 현대의‘규율사회’가 “인간을 복잡하고 규율화하는 복잡한 생산구조 내에서 기능하는 신체 상태로 환원시켜 개인을 모두 유사하거나 혹은 적어도 비교 가능하고 양립 가능한 존재”로 바꾸었다는 푸코의 말처럼 자신들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사이에 질서에 예속되어 다양성이 배제되고 차이가 제거되어 같아지기를 요구하는 사회에 대한 멋진 저항인 것이다. 오늘의 노동이 동일한 인간으로 변형시키려는 규율사회의 권력에 침식되어 차이를 제거하고, 일탈을 금지하여 시민을 ‘온순한 신체’를 가진 부품화 하는 것이라는 소설 속 치나스키의 외침은 사실 감동적이기까지 한 것이다.


리뷰 총점 종이책
찰스 부코스키 『우체국』
"찰스 부코스키 『우체국』" 내용보기
나의 독서 패턴은 대부분 직구다. 무슨 의미냐 하면, 도서관이든 서점에서든 책 제목과 저자를 보고 집은 뒤 읽어 나간다. 아주 간간이, 다른 사람 추천에 의지하기도 하고 신문 서평을 참조하기도 하지만 워낙 대인 관계가 협소하고 신문은 거의 보지 않기에 그런 일은 많지 않다.그에 비해서 찰스 부코스키(독일계라는 점을 감안하면 부코브스키라고 읽어야겠지만 부코스키가 일반적이
"찰스 부코스키 『우체국』" 내용보기

나의 독서 패턴은 대부분 직구다. 무슨 의미냐 하면, 도서관이든 서점에서든 책 제목과 저자를 보고 집은 뒤 읽어 나간다. 아주 간간이, 다른 사람 추천에 의지하기도 하고 신문 서평을 참조하기도 하지만 워낙 대인 관계가 협소하고 신문은 거의 보지 않기에 그런 일은 많지 않다.


그에 비해서 찰스 부코스키(독일계라는 점을 감안하면 부코브스키라고 읽어야겠지만 부코스키가 일반적이니 그냥 부코스키라 하기로 하자.)는 다소 특이하다. 부코스키를 알게 된 첫 계기는 한재호 장편소설인 『부코스키가 간다』였다. 당시에 나도 소설가가 되어보겠다는 일념으로 여러 문학상을 섭렵하던 와중이라 자연스레 읽은 작품인데, 매혹적인 제목과는 달리 소설은 별로 감흥이 없었던 기억. 책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으나, '부코스키'라는 소설가가 있다는 사실은 깨달았다.


그 사람의 존재를 잊고 지내다 작년에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를 발견했다. 책 제목도 매혹적이었지만, 로버트 크럼이 그린 삽화 몇 컷에 매료되고 말았다. 그가 죽음을 앞두고 남긴 에세이를 모은 책인데,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죽음 따위 엿이나 먹으라고 해."


였다. 적재적소에 등장하는 비속어와 욕설에 통쾌해하며 책 읽는 내내 즐거웠다.


그의 창작물을 봐야겠다는 결심이 선 건 당연지사. 아쉽게도 한국에는 부코스키의 작품이 그리 많이 번역되진 않았다. 열림책들에서 나온 『우체국』, 『여자들』이 다인데 지금 검색해 보니 최근에 『호밀빵 햄 샌드위치』가 나왔네? 신간을 보니 열린책들에서는 부코스키 작품을 계속 내려나 보다. 이런, 전작주의 기질이 슬슬 발동하려 하는데... 여하튼 처음으로 선택한 책은 『우체국』이다. 


『우체국』은 그의 다른 소설이 그러하듯 자전적인 이야기다. 실제로 그는 소설가로 이름을 날리기 전 우체국에서 집배원 생활도 하고, 사무직으로도 일했다. 짧은 세월이 아니라 무려 10여년! 다른 일도 그러하지만, 직장인으로 산다는 게 딱히 재밌을 리 없다. 게다가 우체국과 같이 대규모 관료제로 움직이는 조직이라면, 그 지루함과 고됨은 더할 터. 뻘짓하면서 느낀 솔직함을 소설인 양, 에세이인 양 표현한 이야기가 바로 『우체국』이다.


음악에 비유하자면, 펑크? FUNK 아니라 PUNK 말이다. 펑크록은 간결한 코드, 직설적인 가사, 경쾌함이 특징인데 『우체국』 역시 구조적으로 단순하고, 표현은 직설적이며, 주인공 헨리 치나스키의 행동은 경박하다고까지 할 만큼 대책 없다. 우체국 입사한 이유가, 우연히 우편물 배달하다 다른 여성과 잠자리를 할 수 있어서라고 밝히는 첫 장면은 역사상 존재한 그 어떤 소설보다 대책 없는 시작이다. 아, 그 전에 '이 작품은 허구이며 아무에게도 바치지 않는다'는 첫장에서도 뿜었다. 


주인공은은 자주 결근하고, 업무 중에도 자리 비우기가 일쑤고, 상사가 주는 경고장을 그가 보는 앞에서 쓰레기장에 버리는 관심 직원이다. 술에 절어 살고, 여성과 자는 게 인생 목적인 양 보이며, 좋아하는 장소는 경마장... 특히 여성을 향한 시선이나 행동은 보기에 따라 마초적이라 할 만한데, 굳이 저자를 대신해 변명하자면 실제 지구에서 벌어지는 일이기도 하고 저자가 그에 대해 도덕적으로 판단을 내리지는 않았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희망을 볼 수 있는 대목이 있기도 하다. 개판 오분 전의 삶을 사는 헨리 치나스키는 성실한 직원인 G.G가 오해로 잘리는 순간에 유일하게 그를 변호했던 인물이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누구보다 자격 미달인 그만이 오로지 불의에 항거했다는 대목은 내가 『우체국』에서 꼽는 최고의 장면이다. 실제 사회가 그러하다. 누구보다 도덕적인 양, 똑똑한 양 굴던 사람들이 거대한 차원에서 진행되는 부조리에 얼마나 취약하던가... 


이하는 재밌는 구절


---



자기, 그건 초등학생 같은 생각이야. 어떤 바보 멍청이라도 구걸하면 일은 얻을 수 있어. 일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지혜로운 거지. 세상에서는 이런 사람을 요령 있다고 하지. 나는 요령 있는 훌륭한 백수가 되고 싶어.」 (77쪽)


좀도둑질에는 별로 취미가 없었다. 천하를 가지든가, 아무것도 가지지 말든가였다. (79쪽) 


「자, 그럼 이제 여러분은 훌륭한 직업을 갖게 되었습니다. 항상 깔끔하게 행동하기만 하면 앞으로 남은 일생 동안 안전 장치가 생기는 겁니다.」

안전장치라니? 감옥에 가도 안전장치는 있다. 27제곱미터 넓이의 공간을 쓰면서 집세나 각종 공과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소득세도 없고 양육비도 낼 필요 없다. 자동차 번호판 요금도 내지 않고 교통 범칙금도 내지 않고 음주 운전으로 체포되지도 않는다. 의료 진료는 무료. 비슷한 취미를 가진 친구들끼리 동료애도 쌓고. 교회도 다니고. 호모들도 만나고. 죽으면 장례도 공짜. (83쪽)


빨간 새는 훨씬 더 오래 망설였다. 새는 초조하게 새장 바닥을 거닐었다. 결정하려니 머리 터지겠지. 인간이건 새건 모든 것은 이런 결정을 해야 한다. 어려운 게임이다. (103쪽)


「똥구멍이 뭐가 나쁘냐고! 당신한테도 똥구멍은 있잖아. 나도 똥구멍이 있다고! 가게에 가서 큼지막한 쇠고기 스테이크를 하나 사봐. 거기도 똥구멍은 달렸어! 지구상에는 똥구멍이 널렸단 말이야! 어떤 면에서는 나무들도 똥구멍이 달렸는데 못 찾는 것뿐이야. 나무들도 이파리를 싸잖아. 당신 똥구멍, 내 똥구멍, 세상에는 수십억 개의 똥구멍으로 가득 찼어. 대통령도 똥구멍이 있고, 세차장 직원들도 똥구멍이 있어. 판사들도 살인자들도 똥구멍이 있다고. 심지어 자주색 넥타이핀 남자도 똥구멍은 있어!」(109쪽)


「어떻게 하면 하룻밤 열두 시간을 일하고, 자고, 먹고, 씻고, 출퇴근하고, 빨래하고, 가스비와 집세를 내고 타이어 갈고, 온갖 자질구레한 일을 다 하고서도 배달 구분표를 외울 수 있는 겁니까?」나는 배달 구분실에 있는 강사에게 물었다.

「자지 말고 해요.」그가 대답했다.

그를 쳐다보았다. 웃자고 한 말이 아니었다. (127쪽)


조물주인지 누군지가 계속 여자들을 만들어서 거리에 던져 놓는 바람에 이 여자 엉덩이는 너무 크고 저 여자 가슴은 너무 작고 이 여자는 미쳤고 저 여자는 정신이 나갔고 저 여자는 종교인이고 저 여자는 찻잎으로 점을 치고 이 여자는 방귀를 뿡뿡 뀌고 저 여자는 코가 크고 저 여자는 다리에 뼈밖에 없고......

하지만 이따금 활짝 피어서 드레스에서 막 튀어나올 듯한 여자가 걸어온다. 섹스를 위한 존재, 모든 것의 끝. 고개를 들어보니 그런 여자가 있었다.(173쪽)


> 아무리 문학에는 표현의 자유가 있느니 없느니 해도, 그저 남자의 무의식적 욕망을 날것 그대로 옮겼다고 해도 이런 대목은 참... 부코브스키를 커버 치기가 어렵게 하는 구절이다.


「바다 좀 봐.」나는 말했다. 「저기서 철썩이며 올라왔다 내려가는 것 좀 봐. 그 밑에는 물고기들, 불쌍한 물고기들이 서로 싸우고 서로 잡아먹지. 우리도 그 물고기들과 같아. 단지 뭍에 있다는 것만이 다를 뿐. 발을 잘못 디디면 끝장이야. 챔피언이 되는 게 좋지. 어디에 발을 디뎌야 할지 알아두는 게 좋다고.」 (175~176쪽)


간호사에게 아이를 내려놓으라고 손짓하고 두 사람 모두에게 손을 흔들어 작별 인사를 했다. 좋은 간호사였다. 다리도 예쁘고, 엉덩이도 예쁘고, 가슴도 괜찮았다. (195쪽)


> 이 대목도 참... 문학 작품 중 가장 경박한 출산 장면.


잠수병에 걸렸다. 술을 더 많이 마셨고 줄곧 고주망태로 지냈다. 어느 날 밤은 부엌에서 목에 식칼을 대기까지 했다. 그때 생각했다. 정신 차려, 친구. 네 딸이 아빠랑 동물원에 가고 싶어 할지도 모르잖아. 아이스크림 바, 침팬지, 호랑이, 초록과 빨강색 새들, 딸아이의 머리 위에 떨어지는 햇살, 너의 겨드랑이 털에 떨어져 기어 다니는 햇살, 정신 차리라고, 친구. (237쪽)

YES마니아 : 플래티넘 l****i 2016.04.19. 신고 공감 3 댓글 2
리뷰 총점 종이책
찰스 부코스키의 데뷔작
"찰스 부코스키의 데뷔작" 내용보기
<우체국>을 몇 장 읽다가 '도대체 이 책을 읽어야 할까? 지금이라도 덮어 버려야 할까? '하는 갈등에 시달리게 된다. 마치 '닉 케이브'의 <버니 먼로의 죽음>을 읽을 때처럼 당황스럽고 불편하다. 이 소설 속에서 먼로의 뇌구조는 온통 섹스로 연결된 듯하다. 이런 먼로의 행동에 지친 아내는 자살을 하고, 아들을 돌보아야 하는 먼로는 화장품 외판을 하는데 아들을 데리고 다닌
"찰스 부코스키의 데뷔작" 내용보기

<우체국>을 몇 장 읽다가 '도대체 이 책을 읽어야 할까? 지금이라도 덮어 버려야 할까? '하는 갈등에 시달리게 된다.

마치 '닉 케이브'의 <버니 먼로의 죽음을 읽을 때처럼 당황스럽고 불편하다. 이 소설 속에서 먼로의 뇌구조는 온통 섹스로 연결된 듯하다. 이런 먼로의 행동에 지친 아내는 자살을 하고, 아들을 돌보아야 하는 먼로는 화장품 외판을 하는데 아들을 데리고 다닌다. 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들이 있건만, 먼로는 처음 보는 여성들과 관계를 맺을 정도이다. 외설적인 행동과 욕설이 난무하는 소설이다.

또 한 작품 생각나는 소설로는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새엄마 찬양>인데, 이 소설은 포스트 모더니즘 경향의 에로티시즘 소설이라는 거창한 수식어를 달고 다닌다.

새엄마와 아들의 사랑 행각이 그려지는데, 읽는내내 불편한 마음을 가지게 하는 소설이다.

그런데, <우체국>도 그와 다르지 않으니, 이래서 소설이란 장르는 책 선택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이 소설의 내용은 소설가인 '찰스 부코스키'의 자전적 소설이다. (1952년부터 1969년까지의 소설가의 삶)

그의 다른 5편의 작품들도 자신의 경험을 그대로 성장기별로 다루었다.

<우체국> 역시 작가가 우체국에 근무했고, 책 속의 여자들과 같은 만남이 있었고, 생활도 그와 같았다고 한다.

이 작품은 '찰스 부코스키'의 분신인 헨리 치나스키가 우체국의 보결 우체부로 3년 일한 후에 그만두었다가 다시 우체국 사무원이 되어 12년간 근무하다 사직을 하면서 소설을 쓰게 되는데, 작가의 삶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찰스 부코스키'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리기에 미국 문단에서는 도외시하는 반면에 그의 소설을 열렬히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2002년에 <북 매거진>에서 1900 년 이후 서양 문학사의 위대한 주인공 100인을 뽑았는데, <우체국>의 주인공인 '헨리 치나스키'가 82위에 선정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이 소설을 읽은 독자들은 반신반의할 것이다. 왜냐하면, 치나스키는 술, 경마, 여자로 점철되는 인생을 사는 인물로, 우체국에서 일을 하기는 하지만, 즐겁게 일하기 보다는 마지못해서 '목구멍이 포도청'이니까 일을 하는 불성실한 인물이다.

" 새장에 갇혀 살다가 문이 열리자 날아 올랐던 것이다. 마치 천국으로 쏘아 올린 총알처럼. 그런데 빠져 나간들 천국일까?" (p. 236)

그의 눈에 들어오는 여자는 엉덩이가 먼저 보일 정도이고, 잠을 같이 자는 것만을 떠올리는 사람인 것이다. 단적으로 형편없는 인간, 저급하고 음란한 인물이다.

그래서 치나스키를 미국 소설사에서 안티 히어로라고 불리기도 하는 것이다.

이 소설에는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모호할 정도로 부코스키의 그당시의 일상이 그대로 나타난다.

우체국에서의 생활도, 사생활도 하층민들의 꿈도, 열정도, 도전도 없는 그저 그렇게 흘러가는 날들을 죽이면서 사는듯한 날들이 전개된다.

우체국이란 조직에서 팀장이 내두르는 횡포에 맞서기 보다는 그럭저럭 피하는 입장이기도 하고, 경마 도박으로 돈을 벌면 일을 하지 우체국에 나가지 않고, 돈이 필요하면 나가는 그런 반노동적 사고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소설 속에는 동성애자, 소수 인종에 대한 불건전한 표현이 쓰여지기도 하고, 거친 말투도 걸려지지 않고 그대로 표현된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불편하기만 한 것이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1950년대에서 1960년대의 군상들의 생각과 행동을 읽을 수도 있는 것이다.

조직에서 조금 위에 있다고, 편협하게 일을 시키고, 무분별한 경고장을 날리기도 하는 등의 미성숙한 사회의 단면도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첫 장을 펼치면 이런 문구가 나온다.

" 이 작품은 허구이며

아무에게도 바치지 않는다"

그리고 맨 뒷장에는,

'옮긴이의 말로 찰스 부코스키의 시 <친절해져라>의 일부분이 소개된다.

... 나이는 죄가 아니다

하지만

일부러

흥청망청 살았던

수많은 삶 중에

일부러

흥청망청

살았던

부끄러운 삶은

죄이다. "

그리고 옮긴이는 이 시의 윗부분에 '사과할 필요 없는 소설'이라는 명제를 달아 두었다.

하기야, 이렇게 불편한 소설을 쓰고 그 누구에게 바치겠는가,

그러나, 흥청망청 살았던 삶은 부끄러운 삶이라는 것이다.

마치 소설의 주인공 '치나스키'의 삶을 비꼬는 듯하다.

그러나, 이 소설의 부정적인 면은 이러하나, 긍정적인 면으로는 당시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급이 가지는 권위 의식에는 도전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것이다.

우체국 팀장 존 스톤의 행동에 무심한듯, 날카로운 펀치를 날리는 것으로....

이 서평의 마지막은 옮긴이의 말을 인용하고자 한다.

" 단문과 평이한 언어들로 이루어진 문체는 문학이라는 경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운율도 없으며 일상의 감상과 성적 체험들을 기술한 시는 운문 장르에 대한 도전이며 기승전결의 명확한 구조가 없고 허구라고 하기엔 현실을 그저 옮겨 놓은 듯한 소설은 픽션의 기본 요소들을 무시한다. 그의 소설은 어느 지점에서는 포르노그래피와 궤를 같이하고 있으며 인종주의와 반여성주의 등 정치적 불공정한 사상들도 가감없이 드러낸다. 형식과 내용 양쪽 모두에서 고상함이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하지만 척박한 땅에서 아름다운 꽃이 피듯이 노골적인 음란함과 비천함 속에서 가장 성스러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 " (p.p. 244~245)
옮긴이의 글은 다소 미화시킨 감이 없지 않아 있다. 그러니, 이 책이 궁금하다면 읽어 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n******5 2013.02.12. 신고 공감 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우체국] 아직 살아있기에
"[우체국] 아직 살아있기에" 내용보기
ㆍ읽은 이유: 1.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2. 표지가 특이해서   ㆍ키워드(소설인 경우, 책을 읽고 사흘 후까지 내 머릿속에 남은 단어): 헨리 치나스키, 헨리, 행크, 치나스키, 임시 집배원, 보결 집배원, 존 스톤, 순로, 배정, 사무원, 순로, 숙취, 엉덩이, 조이스, 제라늄, 피카소, 파리 떼, 새, 경고장, 집세, 경마, 경마장, 페이, 딸, 휴식 시간, 야간 근무,
"[우체국] 아직 살아있기에" 내용보기

ㆍ읽은 이유: 1.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2. 표지가 특이해서

 

ㆍ키워드(소설인 경우, 책을 읽고 사흘 후까지 내 머릿속에 남은 단어): 헨리 치나스키, 헨리, 행크, 치나스키, 임시 집배원, 보결 집배원, 존 스톤, 순로, 배정, 사무원, 순로, 숙취, 엉덩이, 조이스, 제라늄, 피카소, 파리 떼, 새, 경고장, 집세, 경마, 경마장, 페이, 딸, 휴식 시간, 야간 근무, 어지럼증, 부자 동네, 착한 아저씨 G.G.

 

ㆍ저자: 찰스 부코스키(Charles Bukowski, 1920년 독일 안더나흐에서 태어났고, 어릴 적 미국으로 건너가 로스엔젤레스에서 살았다. ...그는 평생 60권이 넘는 시집과 산문집을 펴냈으며, 마지막 장편소설 『펄프』(1994)를 완성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1994년 3월 백혈병으로 삶을 마감한다.)

 

ㆍ원서: 『POST OFFICE』1971

 

ㆍ옮긴이: 박현주(197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옮긴 책으로 제드 리벤펠드의 『살인의 해석』과 『죽음의 본능』, 페터 회의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 다수가 있다.)

 

 

 

- 리뷰

 

강렬하다. 가식이 없다. 돈도 없다. 먹고 사는데 필요한 돈은 노동으로 번다.

경마장에 간다. 경마장에선 돈을 따기도 하고 잃기도 한다. 당연하다.

 

우체국에 간다. 3년 후, 정규 집배원이 된다. 3년 동안 매일 모자를 벗어두었던 곳(분류함)에 모자를 두지 말라는 공고문이 붙는다. 치나스키는 당연히 3년 동안 해왔던 대로 분류함에 모자를 벗어둔다. 경고장을 받는다. 깜빡한다. 또 경고장을 받는다.

 

다음날 아침 스톤(현장 주임)이 아예 미리 만들어가지고 온 경고장을 들고 서서 치나스키가 모자를 분류함에 두는지 어쩌는지 지켜 보고 서 있다. 모자를 벗어 분류함 위에 둔다. 스톤이 경고장을 들고 뛰어온다. 읽지 않는다. 휴지통에 던져 버린다. 모자를 그대로 둔 채 일을 한다. 스톤이 타자기로 다시 경고장을 작성한다. 두 번째 경고장도 휴지통에 던져 버린다. 세 번째도 마찬가지.

 

다음 날 치나스키는 출근을 하지 않았다. 정오까지 잔 다음에 곧장 연방 우정 사업 본부로 간다. 사직한다. 결국 치나스키는 3년 동안 보결 집배원으로 일한 뒤에 정규 집배원이 되는데 얼마 안 가 모자를 계속 분류함 위에 얹어 놓지 못하게 하는 우체국에 사직서를 낸다. 치나스키로서는 당연하다.

 

그런데 그가 사직한 건 우편 분류함 위에 모자를 벗어두지 말라는 새로운 규정 때문인가, 아니면 집배원들이 새로운 규정을 지키도록 하는데 온 힘을 기울인 스톤 때문인가. 반복 업무, 인간성 상실 업무를 벗어던지기로 한 건, 그래, 치나스키로서는 당연하다.

 

2년 후 다시 우체국에 간다. 이번에는 사무원이다. 12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후, 처음 150명인지 2백 명인지 중에서 오직 두 사람만이 남는다. 그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헨리 치나스키다. 일자리가 필요한 치나스키가 다시 우체국 사무원으로 돌아간 건 그럴 수 있다 치자. 그런데 우리의 헨리 치나스키가 우체국 사무원으로 11년 넘게, 12년 가까운 세월을 보냈단 말이지. 당연한가? 당연하냔 말이다. 아니지. 당연하지 않다. 안 당연하다고!

 

『우체국』에서 가장 믿을 수 없는 게 바로 이거다. 나로서는.. 헨리 치나스키가 우체국 사무원으로 11년 넘게, 12년 가까운 세월을 보냈다는 사실. 그는 오른팔만 움직이는 우체국 사무원 일을 12년 가까이 했다. 덕분에 84킬로그램이었던 몸무게는 101킬로그램이 되었고, 딸이 태어났고, 어지럼증이 생겼고, 계속 술을 마셨다. 그리고 결국 다시 사직한다. 사직 이유는, ‘희망 직업을 추구하기 위해서’다.

 

- 어째서 사직하시는지 이유를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제재 처분 절차 때문인가요?

- 아닙니다.

- 그러면 사직 이유가 무엇이죠?

- 희망 직업을 추구하기 위해서요.

- 희망 직업을 추구해요?

남자는 나를 보았다. 나는 이제 8개월만 있으면 쉰 살이 되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 무슨 직업인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가?

- 음, 말씀드리죠. 강 후미 지역의 덫사냥은 오직 12월부터 2월까지만 합니다. 나는 벌써 한 달을 낭비했어요.

- 한 달요? 하지만 여기 11년이나 있지 않았나요?

- 맞아요. 그러니까 11년을 낭비한 거죠. 루이지애나 주 라푸르슈 만 지역에서 덫사냥을 하면 3개월에 1~2만 달러를 벌 수 있답니다.

- 뭘 하시려고요?

- 덫을 놓아서 사향쥐, 뉴트리아, 밍크, 수달....... 너구리를 잡아야죠. (......)(235p.)

 

헨리 치나스키는 우체국을 나왔다.

아직 살아있었다.

기적이다.

 

 

p.s『우체국』을 읽으며 4월을 맞았다. 지난 3월 한달 동안 내가 가장 자주 만난(만났다기보다는 그저 잠깐 마주쳤다는 표현이 정확하지만..) 사람은 바로 택배 기사 분들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적어도 일주일에 세 번 이상은 마주쳤는데 얼굴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물론 택배 회사마다 다른 분이 오시니까 그렇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생각해보면 일주일에 한 번씩, 3월 한 달만 해도 서 너 번은 마주친 얼굴인데도 기억이 안난다. 다만 어떤 분은 목소리가 아주 우렁차고, 어떤 분은 항상 수줍어 하며, 또 어떤 분은 늘 서두른다는 느낌을 준다는 정도... 그러나 누가 알겠나. 그 분 들 중에 전 세계 독자들에게 열광적인 추종을 받는 찰스 보코스키 같은 작가가 나오지 말란 법도 없지 않겠나!

 

 

 

- 밑줄

 

그만두기로 결정하자마자 기분이 훨씬 좋아졌다.(28p.)

 

아주 진한 블랙커피였다. 이미 썼던 커피 찌꺼기로 다시 만든 것 같았다. 이제까지 마셔 본 커피 중 가장 형편없었지만 뜨겁기는 했다. 세 잔을 마시고 한 시간 동안 앉아 있노라니 몸이 완전히 말랐다.(28p.)

 

이전에 고참 집배원이 자기 심장을 가리키며 해주었던 말을 기억한다. <치나스키, 언젠가 여기 생길거야. 바로 여기 생길 거라고!>

<심장마비요?>

<봉사에 대한 헌신 말이야. 자네도 알게 될 거야. 집배원인 것을 자랑스럽게 여길 테지.>

<니미럴!>

하지만 그 남자는 진지했다.(41p.)

 

어느 날 아침 일찍 G.G. 옆에서 우편물을 분류하고 있을 때였다. 사람들이 그를 그렇게 불렀다. G.G. 그의 실제 이름은 조지 그린이었다. 하짐나 몇 년 동안 G.G.라고만 불렸고 얼마 지나자 정말 G.G.처럼 보이게 되었다. 그는 20대부터 집배원이었고 이제는 60대 후반이었다. 목소리도 맛이 갔다. 그는 말을 하지 않았다. 단지 깍깍거릴 뿐이었다. 깍깍거리게 되자 별로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는 그렇게 인기가 있지도 않았지만 미움을 받지도 않았따. 그저 거기 있을 뿐이었다. 주름이 잔뜩 진 얼굴을 이상한 골이 생기고 흉하게 처졌다. 얼굴에선 더 이상 빛이 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자기 일을 다 해버린 꼬장꼬장한 늙은이일 뿐이었다.(50p.)

 

아침 동안 몇 번이나 그가 멈칫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일을 하다 멈추고 환각 상태에 빠져 있다가 퍼뜩 깨어나서 편지를 좀 더 쑤셔 넣었다. 내가 그 사람을 딱히 좋아한 건 아니었다. 그의 인생은 그리 멋지지 않았지만 이제는 아예 똥 덩어리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가 멈칫할 때마다 뭔가 마음에 걸렸다. 그는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수 없는 우직한 말 같았다. 아니면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멈춰 버린 낡은 차 같거나.(53p.)

 

그래서 할아버지는 조이스에게 큰 액수의 수표를 써주었고 우리는 결국 이렇게 됐다. 언덕 위에 작은 집을 하나 빌렸고 조이스는 멍청하기 짝이 없는 도덕주의를 주장했다.

「우리 둘 다 직업을 얻어야 해요.」조이스가 말했다.「아버지랑 할아버지에게 당신이 돈을 노릴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려면 우리가 자립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해야 해요.」

「자기, 그건 초등학생 같은 생각이야. 어떤 바보 멍청이라도 구걸하면 일은 얻을 수 있어. 일하지 않고 사는 사람이 지혜로운 거지. 세상에서는 이런 사람을 요령 있다고 하지. 나는 요령 있는 훌륭한 백수가 되고 싶어.」

조이스는 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래서 타고 다닐 차 없이는 일자리를 구할 수 없다고 우겨 보았다. 조이스는 전화를 걸었고 할아버지가 돈을 보내주었다. 그렇게 어쩌다 보니 새 플리머스를 타게 되었다. 조이스는 새로 산 고급 양복을 입히고 40달러짜리 신발을 신겨 나를 거리로 내보냈다. 젠장, 용이라도 써봐야 할 텐데. 배송 사무원. 내가 할 만한 일은 그뿐이었다. 제대로 된 기술 하나 없으면 나이 서른여덟에 이렇게 된다. 배송 사무원, 접수 사무원, 창고 정리. 구인 광고에서 본 두 회사에 가봤는데 둘 다 나를 채용했다. 첫 번째 회사는 너무 일터 같은 냄새가 나서 두 번쨰 회사에 취직했다.(78p.)

 

저녁인지 점심인지 먹은 후(열두 시간씩 근무를 한 후에는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된다) 나는 말했다. 「이봐, 자기. 미안하지만, 이 일 때문에 내가 미쳐 가고 있다는 거 모르겠어? 저기, 그냥 포기하자. 그저 빈둥빈둥 누워서 섹스나 하고 산책이나 하고 얘기는 조금만 하자. 동물원에 가는 거야. 동물을 구경하자. 차를 타고 내려가서 바다를 구경하는 거야. 45분밖에 안 걸려. 오락실에 가서게임도 하고. 경마장이나 미술관, 권투 경기에 가자. 친구도 사귀고. 웃자고. 이렇게 살면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사는 거야. 이러다 죽는다고.」

「안 돼, 행크. 우리는 보여 줘야만 해. 아빠랑 할아버지에게 보여 줘야만 한다고.....」

텍사스 시골 천년이 할 만한 말이었다.

나는 포기해 버렸다.(93p.)

 

더는 못 참겠다. 새장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피카소가 따라왔다. 파리 1만 마리가 허공에서 똑바로 솟아올랐다. 새장을 땅바닥에 놓고 새장 문을 연 다음 계단에 앉았다.

새 두 마리가 새장 문을 보았다. 저것들이 무슨 뜻인지 이해를 할까, 못 할까. 저 조그만 머리들이 돌아가는 게 느껴졌다. 음식과 물이 여기 있긴 한데, 저 열린 공간은 뭘까?

노란 가슴 초록 깃털이 먼저 나왔다. 새는 가로대에서 열린 문을 향해 풀쩍 뛰어내렸다. 그러고는 철사를 꽉붙들고 앉아 있었다. 새는 파리 떼를 내려다보았다. 마음의 결정을 내리려는지 15초 정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그때 놈의 자은 머리에서 뭔가 딸각거렸다. 아니, 년이라고 해야 하나. 새는 날지 않았다. 하늘 속으로 똑바로 솟구쳤다. 위로, 위로, 위로, 위로, 곧장 위로! 화살처럼 똑바로! 피카소와 나는 그 자리에 앉아서 쳐다보았다. 빌어먹을 것이 사라졌다.

이제 초록 가슴 빨간 깃털의 차례가 되었다.

빨간 새는 훨씬 더 오래 망설였다. 새는 초조하게 새장  바닥을 거닐었다. 결정하려니 머리 터지겠지. 인간이건 새건 모든 것은 이런 결정을 해야 한다. 어려운 게임이다.

그래서 이 빨간 새는 서성거리며 골똘히 생각했다. 노란 햇빛. 윙윙 나는 파리 떼. 쳐다보고 있는 남자와 개. 무엇보다 하늘, 그 모든 하늘.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다. 빨간 새는 철사 쪽으로 풀쩍 뛰어 올랐다. 3초.

휙!

새는 사라졌다.

피카소와 나는 빈 새장을 들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102~103p.)

 

 

 



n*******0 2012.04.02. 신고 공감 2 댓글 4
리뷰 총점 종이책
세상에.
"세상에." 내용보기
표지를 넘기고, 첫장. 이 작품은 허구이며 아무에게도 바치지 않는다. 그 문장에 매료되어 집어들었다.   실제로 우연히 우체국에 취직해서 우편물을 분류하는 일을 했다는 작가의 자전적이고 허구적인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자유분방한 성향을 지닌 노동자의 어디로 튈지 예측할 수 없는 이야기, 때론 직설적이고 지나치게 솔직하며 그럼에도 관료주의적인 사회 속에서 반노동을
"세상에." 내용보기

표지를 넘기고, 첫장.

이 작품은 허구이며 아무에게도 바치지 않는다.

그 문장에 매료되어 집어들었다.

 

실제로 우연히 우체국에 취직해서 우편물을 분류하는 일을 했다는 작가의

자전적이고 허구적인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자유분방한 성향을 지닌 노동자의 어디로 튈지 예측할 수 없는 이야기,

때론 직설적이고 지나치게 솔직하며 그럼에도 관료주의적인 사회 속에서 반노동을 꿈 꾸는 그는

내게 있어 로맨티스트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물론 술과 도박 여자에 빠져

마치 그것이 자신 인생의 전부인 양 살아가는 모습에서는

지친 기색이 역력하고 온갖 풍파에 찌들어 보이기도 하지만,

적어도 그에겐 체계화 된 우체국 속에서 자신만의 체계와 인생을 꾸려나가는 자부심이 엿보였다.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는지 모르겠다.

 

책에 빠져든 시간은 순간이었고,

끝까지 다 읽는다면 꽤 복잡한 심경이 되어 마지막 장을 덮을 것 같은 예감이 들지만,

더불어 지친 내 인생에 활력소가 생기리라 희망하고 있다.

 

 

h******3 2013.02.01.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우체국
"우체국" 내용보기
0. 우체국   책 표지의 얼굴은 작가 찰스 부코스키다. 이 사람 미국 문단으로 부터 왕따를 당했다는데 이 소설을 읽어 보니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전통적인 방식을 가진 소설은 이렇게 써야 한다는 고집쟁이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뭐, 이건 순전히 내 개인 느낌일 뿐이다.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이 소설은 작가의 자전적인 내용이라고
"우체국" 내용보기

0.

우체국

 

책 표지의 얼굴은 작가 찰스 부코스키다.

이 사람 미국 문단으로 부터 왕따를 당했다는데

이 소설을 읽어 보니

보수적인 성향을 가진 전통적인 방식을 가진

소설은 이렇게 써야 한다는 고집쟁이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뭐, 이건 순전히 내 개인 느낌일 뿐이다.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이 소설은 작가의 자전적인 내용이라고 한다.

또한 소설이 갖추어야 할 요소들

기승전결이 없으며 갈등이나 묘사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쓰고 싶을때로 쓴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뭐랄까.

여성으로 표현하자면 생얼이라고 할까?

그냥 생얼도 아니고

밤새도록 술을 마신 후에

겨우 잠에서 깨어난 푸시시한 얼굴의 생얼일 것이다.

 

그 정도로 소설에는 미사여구가 없고

빙빙 돌아가는 것도 없구

정밀한 묘사라든지 아름다운 묘사라든지

인물의 심리 묘사라든지

뭐, 하여튼 그런거 없다.

 

그냥 있는 그대로 하고 싶은 말을 대놓고 하고 있다.

언뜻 보면 이렇게 써도 되냐 할 정도로 자유분방하다고 할까?

 

문체는 단문이다.

그런데 일반적인 단문으로 치부하기에는 리듬감이 느껴졌다.

아마도 작가가 시인의 이력이 있어서 그런것 같기도 하다.

 

소설에서 반복법이 자주 나온다.

가령 이런 것이다.

나는 오늘 밥을 먹었다.먹었다. 먹었다.

재밌게 느껴졌다.

 

어떤 소설가는 같은 단어를 쓰지 않기도 하고

어떤 소설가는 구성에 신경쓰기도 하고

어떤 소설가는 묘사에 집착하는데

 

이 소설의 작가 부코스티는 그딴 거 필요없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저 소설은 있는 그대로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이 낫다고 하는 것 같다.

 

1.

주인공은 우체국 직원은 헨리 치나스키다.

그의 취미는 섹스와 경마 도박이다.

 

우체국에서 그를 갈구는 상사 존스톤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만 크게 신경쓰지는 않는다.

 

그는 조이스라는 여성과 결혼한다.

조이스는 섹스광이다.

하지만 그녀와 헤어진다.

 

소설의 내용은 별다른게 없이

섹스하고 경마하고 우체국에서 일하고

배달 갔다가 일어나는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소설 말미에 우체국에서 받은 경고장을 보여준다.

보여주었을까?

 

작가의 의도가 있으리라.

우체국이라는 하나의 회사가 인간을 어떻게 지지고 볶는지 보여주고 있다.

그 속에서 한 인간이 겪는 스트레스를 보여준다고 하겠다.

우리는 어쩔수 없이 돈을 위해 일을 하는 하나의 기계.

 

시종 주인공은 자유분방한것처럼 보이지만

그는 우체국이라는 조직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생계때문이다.

 

아마도 작가가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삶이란 것이 얼마나 나태해 질수 있고 타락할 수 있는지가 아닌

이런 인간들 조차도 사회의 규범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그 억압을 보여준 것이 아닐까?

 

p 243

사과할 필요 없는 소설

 

......나이는 죄가 아니다

 

하지만

일부러

흥청망청 살았던

수많은 삶 중에

 

일부러

흥청망청

살았던

부끄러운 삶은

 

죄이다.

 

- 찰스 부코스키의 시 [친절해려자 중에서]

 

소설을 자주 읽는 독자들이라면

그의 소설을 어떻게 볼까?

 

개인적인 생각은 아마도 여성 독자들은 그의 소설을 싫어할 거 같다는 예감이다.

남자 주인공이 여성을 섹스의 상대로 밖에는 보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여성들이 좋아할만한 소설의 재미가 없다.

아기자기 한 맛이 없다.

묘사라든지 멋진 주인공이라든지 갈등이라든지 그런것이 없다.

 

허나

방탕한 삶을 동경하는 남자라면 그의 소설이 재밌을 것이다.

난 무척이나 재밌게 읽었다.

푸하하하하하하

 

[출판사에서 제공 받은 도서를 읽고, 저의 주관적인 생각으로 서평이 작성되었습니다]

m******m 2012.03.31. 신고 공감 1 댓글 4
리뷰 총점 종이책
『우체국』
"『우체국』" 내용보기
아아하하하하하하오오오아아아아아악!덧)송구하다. 이게 내 감상이다. 영원한 임시 비정규직 보결 사무원 치나스키.그러니 (치나스키식으로 말하자면) 이 좆같은 책을 당장 읽지 않으면 좆될 줄 알아.읽기 싫으면…… 그냥 그러든가.
"『우체국』" 내용보기




악!






덧)

송구하다. 이게 내 감상이다. 영원한 임시 비정규직 보결 사무원 치나스키.

그러니 (치나스키식으로 말하자면) 이 좆같은 책을 당장 읽지 않으면 좆될 줄 알아.

읽기 싫으면…… 그냥 그러든가.

u******o 2012.02.26.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