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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내가 보기에 마초는 아냐. 마지막에 로셸을 때려치웠잖아. 단지 ‘마지막 한 번’이란 게 좀 걸리긴 하지. 하지만 심지어 강간하거나 강간당하거나 핥거나 치마를 추어올리는 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거다. 문제는 솔직함을 덮고 점잖은 체할 수 있냐는 건데, 그렇게 못해서 이건 마스터피스, 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 신춘문예에『여자들』을 냈다간 바로 아웃이다. 사실 어딘들 그럴 테지. 나는 섹스를 통해 신과 합일하는 느낌을 얻을 수 있고, 섹스를 하고 나면 편두통이 사라지며, 다른 애들의 부러움을 사려고 인기 있는 남자와 섹스를 하고, 뭔가 하고 싶은 게 있는데 남편이 반대할 것 같으면 섹스를 해준다는 여자를 수백 명은 알고 있다. 물론 이런 얘기는 대체 왜 여자들이 섹스를 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늘어놓은 어떤 책에 나와 있기도 하다. 냄새, 얼굴, 태도, 유머 면에서 치나스키는 합격이다. 특히 침대 위에서. 섹스는 교환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하고 단순한 희열 때문에 이루어지기도 하며 의무감으로 인해 인간을 구석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 물론 나는 건강상의 이로움도 있다고 여기고 싶은데, 여기서 자꾸 섹스 얘기만 한다고 색정광으로 몰리는 것 또한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정말이지 이 책에 대해서는 이것밖에 얘기할 게 없다! ‘옮긴이의 말’의 ‘이 소설에서 치나스키가 하는 일이라고는 여자들에게 사정(事情)하고 사정(射精)하는 것뿐이다’라는 대목은 그래서 재미있다……. 나는, 극에 달하면 다시 반대로 돌아온다고, 그러니까, 여기에 낭만이 있는 거라고 본다. 더치는 상처를 피하기 위해 처음부터 ‘씹할’ 소리가 튀어나가고, 배척당하기 위해 배척하며, 무엇보다 여자들의 속내를 기가 막히게 알아낸다. 그리고 치나스키는 적어도 여자를 속이진 않는다. 뭐, 그의 삶에서 굉장히 중요했던 리디아에겐 뻔히 보이는 거짓말도 하긴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대놓고 들킬 것을 상정하고 있다. 그럼 이제 뭐가 남았을까. 튼실한 보라색 물건밖에 없나? 과거 에드워드 애비가 그의 작품으로, 거세해서 영원히 감금시켜야 한다는 평을 들었던 게 기억난다. 그는『몽키 스패너를 든 강도들』에서 아주 ‘점잖은’ 환경운동가들을 그렸지만 거세당해야 한다는 혹평을 들었다. 부코스키야 어련하시겠어. 그건 그렇고, 치나스키가 그러길, 친절한 사람이 섹스를 더 잘한다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나는 꽤 친절하다고…… 라는 건 반쯤은 농담이고,『여자들』을 읽기 전에『우체국』을 먼저 읽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그 편이 충격이 덜 할 테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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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 살이고, 여자와 잠을 같이 잔 지 4년도 넘었을 때였다. 친구처럼 지내는 여자들도 없었다. 거리건 어디가 되었건 여자를 볼 수 있는 곳에서 마주칠 때면 그 여자들을 쳐다보기는 했지만 갈망하는 마음도 없었고 뭘 해도 헛되다는 느낌만 있었다. 정기적으로 자위를 하기는 했지만 여자와 관계를 맺을 생각은 (성적인 관계가 아니라 해도) 꿈에도 없었다. 이전에 같이 살던 여자와의 사이에서 낳은 여섯 살 난 딸이 있었다. 그 애는 걔 엄마랑 살고 나는 양육비를 댄다. 결혼은 오래전, 서른다섯 살 때 한 적이 있었다. 그 결혼은 2년 반 갔다. 이혼하자고 한 건 아내였다. 사랑에 빠진 건 딱 한 번이었다. 그 여자는 중증 알코올 중독으로 죽었다. 내가 서른여덟 살 때 마흔여덟 살이던 여자다. 아내는 나보다 열두 살 어렸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내도 지금은 죽은 것 같다. 이혼 후 6년 동안 크리스마스가 되면 아내는 내게 긴 편지를 보내곤 했다. 한 번도 답장하지 않았다.....”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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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케루악의 <길 위에서>를 읽으면서 비트세대의 자유로운 광기(?)에서 삶의 에너지를 느껴서인지 찰스 부코스키(1920-91)의 글에 관심이 갔다. <팩토텀>, <일상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등의 책이 출간된 것 같은데 그의 책을 만나는 건 처음이다. 1978년작이지만 <여자들>이 비트 세대의 기성가치에 대한 도전과 획일성에 대한 반항, 히피적인 자유로움을 담고 있을지 궁금했다. 선정적일 내용일 거라는 건 예상했지만 50여 페이지 정도 읽었으려나. '무슨 이런 책이 다 있나'란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 헨리 치나스키는 저자의 분신격인 인물로 쉰살에 들어선 이름있는 작가다. 그는 강연회나 시 낭송으로 여기 저기를 여행하면서 여자들에게 집적대고 끊임없이 찾아오는 여인들을 만나 사랑을 나누는 인물이다. 걸려오는 전화나 대화내용으로 짐작하건대 전작들은 자유로운 연애, 노골적인 성애의 장면, 애정연시가 주를 이루었던 모양이다.
"쉰 살이고, 여자와 잠을 같이 잔 지 4년도 넘었을 때였다. 친구처럼 지내는 여자들도 없었다. 거리건 어디가 되었건 여자를 볼 수 있는 곳에서 마주칠 때면 그 여자들을 쳐다보기는 했지만 갈망하는 마음도 없었고 뭘 해도 헛되다는 느낌만 있었다."
서른 다섯 살에 결혼한 적이 있으나 이혼하고 사랑에 빠진 건 서른 여덟살때 만난 마흔 여덟살 여자, 딱 한번 뿐이었다는 헨리 치나스키. 어쩌면 그에게 경건하거나 책임있는 사랑은 '딴 세상 얘기'로 밖에 여겨지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시 낭송회에서 몸매좋은 리디아 밴스란 여자가 눈에 들어왔고 연애를 시작한다. 두 아이를 둔 그녀는 시와 조각, 파티에 관심이 있었고 치나스키는 술을 끼고 경마, 여자들에게 눈길을 두고 기회만 닿으면 만나 관계를 가졌으니 이들이 헤어지는 건 당연한지도... 시 낭독회는 보통 성공적이었고 그에게 여성을 이어주는 스폰서가 있었고 파티나 공항, 길거리 등에서 추파를 날리는 경우도 많았으며 전부터 연락하던 여성, 그의 글을 보고 찾아오는 여자들 또한 상당했다. 이 책에는 많은 여자들이 나오는데 거의 대부분과 관계를 가진다. 드라마로 본다면 베드신이 2/3 이상으로 원색적이고 자극적인 음담패설이 많다.
"디디는 좀 더 큰 묘지 구역 밖에 주차했다. 디디가 내 손을 잡고 구석으로 끌고 갔다. 거기 그가 있었다. 루돌프 발렌티노가. 1926년 사망. 오래 살지 못했다. 나는 여든 살까지 살겠다고 결심했다. 여든 살에 열여덟 살짜리 여자애랑 한다고 생각해 보라. 죽음의 게임에 속임수를 쓸 수 있다면 바로 그런 것 아니겠는가."
"세실리아는 앉아서 우리가 술 마시는 것을 구경했다. 그녀가 나에게 혐오감을 느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고기를 먹는다. 종교도 없다. 섹스를 좋아한다. 자연 따위에는 관심 없다. 투표를 해본 적도 없다. 전쟁을 좋아한다. 외부 세계는 지겹다. 야구도 지겹다. 역사도 지루하다. 동물원도 지루하다."
헨리는 숙취로 아침에 일어나 속이 좋지 않아 구역질을 해대면서도 술을 마셔 대고 복잡한 여성 편력으로 다투기도 하지만 '열 여자 마다할 남자 없다'식의 삶을 계속 이어나간다. 그에게 '왜 그렇게 사느냐'며 절제와 책임을 말한다면 험악한 욕설을 들을 각오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를 휘어잡을 수 있는 여자가 나타날지 궁금하다. 서두에서 소설 속 등장 인물이 실제 인물을 본뜨지 않았다고 적어 놓았으나 옮긴이는 친절하게 매칭되는 인물과 비교해 준다. 사실 이 책을 추천하기엔 머뭇거려지지만 틀에 박힌 일상의 권태스러움에 환기가 필요하고 저속하고 음탕하지만 솔직한 글에 흥미있다면 한번 감상해볼만 하다. 당위에 앞서 삶이 자신의 맘대로 되지 않고 엇물린 톱니바퀴처럼 덜거럭거리며 돌아갈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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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부코스키의 작품 중 우리나라에 가장 먼저 출간된 번역본으로는 <펙토텀>이라는 작품으로 선보였다. 올해 열린책들에서 <우체국><여자들>을 통해 본격적으로 찰스 부코스키를 만났다. 그 중에서도 저자의 얼굴이 들어간 붉으스름한 표지는 제목과 더불어 궁금증을 자아냈다. 시간나는 틈틈히 지하철 안에서 책을 읽곤 했는데 읽는 페이지마다 지뢰밭이 가득했다. 옆사람과 앞사람을 흘끔거리며 읽어나갔지만 얼굴이 홧홧할 만큼 <여자들>은 그와 만났던 여자들과 스쳐지나갔던 여자들의 이야기다. 그의 글은 아무 것도 거르지 않은채 헨리 치나스키의 본능만으로 그 길을 찾은 듯 했다.
오가는 내내 홧홧함 때문에 책을 덮고 싶었지만 그의 책은 다소 설명하기도 민망하지만 손을 뗄 수 없는 마력을 갖는 이상한(?) 책이기도 했다. 그의 마력 중 가장 큰 부분은 작가의 분신인 헨리 치나스키와 리디아의 이야기를 시트콤에 붙여 놓아도 하나도 손색없을 것 같은 유머러스함 때문이다. 내용이 다소 가벼운 책을 좋아하지 않는데 이 책은 가벼움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색다른 생존방식으로 살아가는 유머가 시선을 사로 잡는다. 책 중간 중간 키득거리게 만드는 그의 유머 때문에 책을 읽지 않는 순간에도 다음 이야기가 궁금했다.
사랑에 빠져 있지 않다는 것이, 이 세상에 만족하지 않는다는 것이 기뻤다. 모든 것과 사이가 나쁘다는게 마음에 들었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종종 날카롭고 위험하다. 자기만의 관점을 잃어버린다. 유머 감각을 잃어버린다. 초조해지고 정신병적으로 지루해진다. 심지어 살인자가 되기도 한다. - p.84-85
자칫 본능만으로 여자와 술을 접하는 그의 모습은 다소 게걸스럽스럽기도 하고 있는 그대로 풍류를 즐기는 시인 같았다. 본능과 자유만을 원하는 남자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지만 '사랑'에 대해서는 다소 차가운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예전이라면 그의 글에 반감을 갖곤 했을텐데 그의 필치는 줄거리가 없어도 매료되는 매력이 많은 책이다. 자전적인 소설 <우체국> 또한 작가 찰스 부코스키의 작품을 접하고 싶다. 미국 문단의 이단아로 잘 알려진 그의 책을 접할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웠다. 뚜렷한 이야기가 없어도 이야기를 트루는 과정이나 자신의 분신 헨리 치나스키를 통해 느끼는 통찰력은 자유분방하게 삶을 살아가면서도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것은 지켜가는 사람이었기에 그의 책을 더 신뢰하며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경험담과 여자들에 얽혀 웃지못한 에피소드를 만드는 작가, 계속해서 그의 작품이 너무 궁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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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가 찰스 부코스키는 호불호가 갈리는 작가입니다. 소설 내용이 야동 같고, 그 기반에는 여성혐오주의가 깔려 있다는게 그 이유죠. 그래서 부코스키의 작품 리뷰를 쓰기가 좀 거시기 했습니다. 그래도 리뷰를 쓸수 밖에 없는 건 그걸 상쇄할 만큼의 뭔가가 있기 때문이죠. 실은 찰스 부코스키의 작품을 세 개나 읽었습니다. <우체국>, <여자들>, <호밀빵 햄 샌드위치>이고, 나열한대로 작품이 출간됐습니다. 2, 소설의 주인공은 헨리 치나스키라는 작가입니다. 찰스 부코스키의 분신같은 존재죠. 부코스키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소설의 스토리를 간추리자면, 작가로 어느정도 성공가도를 달리게된 치나스키의 일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전작 <우체국>에서는 지긋지긋한 우체국일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치는 것이 주된 스토리인 반면, <여자들>작품에서는 작가로서 성공한 후, 여러 여자들과 만나고 다니는 내용이 주입니다. 보통의 연인처럼 만나고 사귀고 그런게 아니라, 야동쯤에나 나올만한 관계를 맺고 이것 저것 뿌리고 다니는 내용입니다 3. 부코스키의 소설은 온통 술, 여자로 도배 되어 있는게 특징이지만. <여자들>은 그 강도가 더 셉니다. 솔까말야설(?) 같아요. 노골적이고. 약간은 변태스럽습니다(?). 전작<우체국>에서 치나스키는 좀 진따 같은 면이 있었어요. 우체국에서 겨우 벌어 먹고 살고, 여자들한테 상처도 받았었죠. 반면, <여자들>에서는 치나스키에게 사방에서 편지들이 날아듭니다. 여자들이 한번 보고싶다는 거죠. 4. 편지 보낸 여자들을 죄다 만납니다. 그리곤 거의 모든 여자와 관계를 맺습니다. 이 여자를 만나는 도중에도 저 여자를 만나요. 그러면서 죄책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본능에 충실해요. 이게 참 마초스러운 측면이 있고 그래요. 그리고 여성이 가진 성(性)적 매력에 대해서 날것 그대로 보여줍니다. 만나는 여자들은 육감적입니다. 그렇다고 육감적이기만 하내? 그건 아니예요. 말이나 행동이 다 개성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캐릭터가 다들 독특합니다. 매력있어요. 5. 하~ 부코스키의 작품을 읽으면서 매번 느끼는건 글을 참 쉽게 쓴다는 거예요. 뇌와 글이 그대로 연결되어 있는거 같아요. 글을 보면 부코스키가 마치 생각하고 있는걸 그대로 보여준다는 느낌이 빡 옵니다. 그게 참 대단하고 부러워요. 나같은 사람은 글을 쓰려면 생각하고 타자를 치고, 소리내 읽어보고, 고치고 하는데. 부코스키는 생각만 하면 글이 자동으로 써지는 것 같단 말이죠. 6. 글은 일기를 빼고서는 남들한테 보여지기 위해 쓰는 거잖아요. 남들이 보니까 남을 의식하면서 글을 쓰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부코스키는 남 의식하면서 글을 쓰는 것 같지가 않아요. 있는 그대로의 날 것을 꺼내 보여주죠. 날 것 그대로를 보여주는게 진짜 엄청 어려운 일인데 말이죠. 하물며 지금 이 리뷰를 쓰는 것도 날것 그대로를 보여주지 못하는데. 소설은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아무튼 살아있는 것 그대로 글을 쓰는데에 있어서는 부코스키를 따라갈만한 작가가 없는것 같습니다. 7. 마지막으로 부코스키의 작품을 번역하신 박현주 번역가님을 얘기를 안할 수가 없네요. 박현주 번역가님은 부코스키의 열렬한 팬입니다. 부코스키의 많은 작품을 번역하셨죠. 책의 문장이 입과 뇌에 착 달라붙는건 부코스키의 작가적인 역량과 함께 박현주님의 번역이 큰 역할을 했다고 봐요. 번역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또 느꼈습니다 책 마지막 부분에 박현주님이 <여자들>소설에 대한 이야기중 남성중심주의의 역설에 대해 언급합니다. "이런 관계로 부터 가장 크게 고통 받는 사람도 치나스키 곧 남성이라는 것이다." 남성이 여성과 관계가 끝났을때, 여성이 고통을 받는다 거나, 손해를 본다는 것 자체가 고정관념이고 남성우월주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여성을 성적으로 보호해 줘야 한다는 것 또한 마찬가지구요. 남녀사이의 역학관계를 따진다는 게 참 어려운 일이지만, 아무튼 이런 해석은 나름 생각해 볼만한 주제였다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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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체국 하급 직원과 시급 노동자, 때로는 부랑자 생활을 전전하며 언제나 술과 도박에 빠져 산 부코스키의 소설은 주류 문단으로부터 통속성과 저급함을 지적당하고 쓰레기 취급을 받았지만, 유럽 등지에서 그는 이미 살아생전에 전설이 되어버린 작가다. 현재에는 미국 현대문학의 가장 위대한 아웃사이더로 불린다. 부코스키의 일생은 술과 섹스, 도박, 사회의 가진 자들에 대한 조롱, 미국이라는 거대 자본주의에 대한 냉소, 가족이나 부나 명예, 노동에 대한 부정으로 점철되어 있었으며, 이 소설에도 이러한 삶이 가감 없이 드러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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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찰스 부코스키(1920-1994)의 <여자들>을 읽었다. 부코스키 본인임에 틀림없는 '헨리 치나스키'라는 50세를 넘긴 방탕한 남자가 술에 취하고, 경마를 하고, 글을 쓴다. 그런 와중에도 여자들로부터는 인기가 끊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엮은 반 자전적인 소설.
경쟁이 싫어 사회에 등 돌리고 앉은 치나스키라는 주인공을 통해서 무언가를 호소하거나 하려는 시도는 없고, 그저 몹시 취해서 이 여자 저 여자 바꾸어가며 잠을 자고 다음 날 숙취로 토하는 1970년 대의 그의 하루하루를 그리고 있을 뿐이다. 여기에 후회나 슬픔은 따라붙지 않는다. 중년의 호색가에 어울리는 와일드하고 뻔뻔한 날들이 이어진다.
투박하고 적나라한 묘사에 기분이 상쾌해질 리는 없다. 동시에, 이런 나날을 보내는 치나스키에게는 깨달음도 없고, 성장도 없고,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애정이란 것도 없다. 자책의 감정이나 후회가 이따금씩 얼굴을 내밀지만 그럴 때조차 그의 곁에는 새로운 여자들이 뚜벅뚜벅 다가온다. 치나스키 자신에게도 여자라는 존재는 영원한 수수께끼다. 그렇다고 해도 그의 이런 편력에 혐오감 같은 걸 느끼지는 않는다. 젊었을 때에 얻을 수 없었던 애정을 지금에 와서 만회하련다는 당당함은(당당함이든 뻔뻔함이든) 교활한 위선보다는 낫다. 어찌되었든 타인의 삶을 편협한 잣대로 단칼에 매도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어느 분류에도 속하지 않고 그 틈새 어딘가를 헤매고 있는 중년 남자의 모습은 요염하지만 우스꽝스럽다. 성실한 시민이라면 뒷걸음질 치게 될 것이 틀림없다. 그래도 그건 그것대로 좋다. 어쩐 일인지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치나스키야말로 진정으로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임을 부지불식간에 깨닫게 되니까.
그런데 그는 시인이다. 이러한 방탕한 사생활을 가감없이 문학의 형태로 발표하고 이것이 또 여자를 부르는 연쇄반응이 이어져 왔을 그의 삶이, 실은 그에게 있어서는 문학적 영감의 원천이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 것이라면 술, 담배, 여자의 생활을 꾸역꾸역 반복할 뿐인 이런 인생도 매혹적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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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 살이 될 때까지 무의미하고 저급한 직업을 전전하며 뼈 빠지게 일하다가 갑자기 전국을 날아다니게 되다니. 손에 술을 들고 이것저것 따지고 재는 귀찮은 인간이 되다니.” -330p-
찰스 부코스키의 3부작 중 마지막 이야기라고 알려진 <여자들>에서는 쉰 살까지 이어진 노동에서 벗어나 전업 작가의 길을 걷는 헨리 치나스키의 삶을 조명한다. 실제로 찰스 부코스키는 노동을 그만두고 집필활동을 하는 대가로 출판사로부터 매달 100달러를 받는 종신계약을 맺었다고 전해진다.
“당신의 글쓰기는 날것 그대로예요. 마치 쇠망치 같아요. 하지만 그 안에 유머와 상냥함이 있죠.” -94p-
치나스키가 늦은 나이에 얻게 된 부와 명예는 욕설과 비속어로 가득한 쇠망치 같은 문장 속에 담겨진 특유의 유머와 상냥함 때문에 얻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 특이한 이력을 소유한 작가의 유들유들하면서 마초스러운 문체는 일상 속에서 쉽게 접하지 못한 맛이었기 때문에 많은 편지가 치나스키 집 앞의 우편함에 도착하고, 낯선 여성들이 그의 집 초인종을 누르게 한다.
여성을 거부할 까닭이 전혀 없어 보이는 마초남 치나스키와 팬이라고 자처하는 여인들의 포르노그라피. <여인들>은 이렇게 해서 이루어진다. 다만, 조심해야 할 것은 <여인들>에서 그려지는 포르노의 수위다. 까놓고 말해서 그냥 포르노다. 그리고 이 포르노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진다. 끝날 것 같으면 신기하게 다른 여성과의 포르노가 시작된다. 쉴 틈이 없다.
"당신은 창녀를 원하는 거야. 사랑을 두려워하니까." -90p-
어째서 항상 더 많은 여자를 원하는 건가? 뭘 하고자 하는 거지? 새로운 연애를 하면 흥분이 되지만 힘들기도 했다. 첫 키스, 첫 섹스는 언제나 극적이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재미있다. 그다음에는 천천히, 그렇지만 반드시 모든 결점과 광기를 드러내게 된다. 그들에게 나는 점점 더 하잘것없어진다. 그들도 내게 점점 더 하찮아진다. -105p-
천한 여자일수록 더 좋다. 그렇지만 여자들, 좋은 여자들만 보면 겁이 났다. 그들은 결국에는 내 영혼과 내게 남아 있는 부분, 내가 지키고 싶은 부분을 원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나는 창녀들, 천한 여자들을 원했는데 그들은 치명적이며 냉정해서 개인적 요구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떠나도 잃어버릴 게 없다. 그렇지만 동시에 아무리 어마어마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해도 상냥하고 착한 여자를 원했다. 어느 쪽이든 나는 잃게 된다. 강한 남자라면 둘 다 포기하리라. 나는 강하지 않았다. 그래서 여자들, 여자들이라는 이상과 계속해서 힘겹게 씨름했다. -109p-
그런데 누가 봐도 이런 비정상적인 이성 관계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 문제의 답은 치나스키의 피해의식이다. 사회 하층민의 삶에 익숙한 그에게 달려드는 여성들의 모습은 너무나도 생경한 풍경이고, 치나스키는 이 상황을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그녀들이 삶이 아니라 허구에 반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항상 술을 옆에 끼고, 환각제 같은 약물에 의존하면서 그녀들과의 관계를 지속하는 것을 거부한다. 작가가 묘사하는 성행위는 마초스러워 보이나 전혀 마초라는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는 무책임한 치나스키의 남성은 만나는 여성들이 바뀜에도 요지부동이다.
한 남자가 많은 여자를 필요로 할 때는 그 여자들이 다 쓸모가 없을 때뿐이다. 이 여자 저 여자랑 붙어먹으면서 너무 많이 돌아다니다 보면 남자는 정체성을 잃게 된다. -417p-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치나스키의 비정상적 사랑은 사라를 만나게 되면서,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게 되고, 정리된다. 그런데 이 과정이 포르노에 비하면 너무 약하다. 더 큰 문제는 해결방식이 전혀 평등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라는 모든 것을 참고 다 받아줘야 했다. 그게 어쩌면 사랑이라고 말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여자들>의 모든 것을 근본적인 사회적 구조로 인한 주인공의 자존감 하락으로 해석하고, 그사실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점이라고 확대하기에도 좀 껄끄럽다. 워낙에 방탕하고 퇴폐적인 쾌락을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문제가 클수록 그에 수반해서 나타나는 부작용도 크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쉽사리 인정하기에도 좀 미안한 심정이다. 그렇지만, 분명한 사실은 읽을 가치가 충분한 문학작품이라는 것이다. 무엇을 발견하든 말이다.
[네이버 북카페 서평이벤트를 통해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하였음을 알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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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헨리치나스키는 작가의 분신으로 나온다.
작가의 이력을 살펴보자면 우체국 직원으로 일한 전력, 노동자로 일한 전력답게 이 소설은 작가의 자신을 나타내주는 헨리란 남성을 통해서 그려본 여성에 대한 생각을 드러낸 책이다.
시 낭독회나 강연회에서 자신의 글을 좋아하거나 전화를 걸거나 편지를 통해서 만나길 희망하는 여성들이라면 모두 만나는 헨리는 여성의 다리를 보면 흥분을 감출 수 없는 남성으로 나온다.
책에서도 나오는 모든 부분들이 사람과 사람간의 감정 교류라든가 이성간의 어떤 사랑의 감정이 아닌 날 것 그대로 오로지 말 그대로 섹스로 시작해서 섹스로 끝난다.
술과 마약, 경마에 찌들은 헨리는 이와 함께 자신에게 오는 여자 막지않고 가는 여자 붙잡지도 않으며 연령대도 자신과 비슷한 나이가 아닌 20대에서 심지어는 10대 후반까지 관계를 맺으며 표현의 수위방식도 날 것 그대로 보인다.
남녀간의 성 행위의 묘사는 읽으면서도 붉어지게 만들고, 책 소개처럼 말 그대로 포르노그래피 일색이다. 처음 리디아 밴스를 만날 때도 시 낭독회인 것처럼 세 명의 여성들을 만나도 차례대로 관계를 가지고 또 그러다가 서로 헤어지고, 여성들 또한 그런 면에서 아주 성이란 면에 대해선 자유로운 생각을 가진 여성들이 등장하지만 그런 여성들을 만나면서 자신의 솔직한 말투와 행동은 읽는동안 헨리의 이런 솔직한 면 때문에 여자들이 그야말로 소설가로서 시인으로서 흠모를 하다가 빠지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만든다.
모든 만나는 여성들마다 자유분방하다 못해 대놓고 욕설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그러다가 다시 만나 섹스를 하다가 사라란 여성을 만나면서 헨리는 기존의 다른 여성들이 보여줬던 행동과는 다른가치관을 가진 점을 발견하고 그녀와 만남을 갖지만 그러면서도 또 다른 여성을 만나고 사라에게 솔직하게 말하기도 하면서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도 하는 인물이다.
그러다가 로셸이란 여성이 걸어온 전화를 끊어버림으로서 기존의 자신이 가진 여자들에 대한 취향을 버림으로서 비로소 진정한 사랑의 대상인 사라만을 생각하는 헨리로 거듭나는 과정이 이 책의 주요 골자이다.
그렇다고 일관되게 자신의 감성을 타 소설처럼 감성의 기류에 힘 입어 이렇게 반성하고 저렇게 구구절절 표현하기 보단 한마디로 화끈한 남성이다.
어느 날 문득 일어나 보니 이런 생각이든 헨리다.
....... 이제는 내 삶을 바로 잡아야 해. 한 남자가 많은 여자를 필요로 할 때는 그 여자들이 다 쓸모가 없을 때뿐이다. 이 여자 저 여자랑 붙어먹으면서 너무 많이 돌아다니다 보면 남자는 정체성을 잃게된다. 사라는 내가 이제까지 했던 것보다 훨씬 더 좋은 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여자였다. 그건 이제 내게 달렸다. ....
어떻게 보면 이성간이 처음 서로간을 볼 때 느끼는 감정을 이리재고 저리재보고 결정 한 후에 만남을 지속하기보단 이 소설속의 작가 분신인 헨리는 일단 자신을 좋아하는 여자들은 무조건 만나고 섹스를 하고 헤어지고 경마장에 같이 가보고, 배팅도 해보고 마약도 같이 하고, 그러다가 진정으로 만난 사라란 여인을 통해서 깨달은 바가 있어서 이제는 눈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지 않겠단 생각을 가진 철든 헨리로 거듭나는 이야기라고도 할 수있겠으나, 다른 면에서 보자면 아주 솔직하다 못해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이런 소설도 나올 수있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한 소설이었다.
아마도 번역하시는 분(많은 책에서 이미 이름이 익숙한 분이지마)도 한국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어떻게 날 것 그대로의 작가의 느낌을 전달하는가에 따른 많은 생각이 교차했을 성 싶다.
그 만큼 적나라한 표현수위와 자신의 자유분방함속에 점차 나도 모르게 빨려들어가 그의 행보에 같이 동행하게 되어지는, 그래서 그의 소설이 여전히 사랑을 받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한 책이기도하다.
읽으면서 위안을 삼자면 헨리의 정신차기기쯤 되지 않을까 싶은데, 사라란 여인(실제론 두 번째 부인의 모델이란다. )을 만나면서 로셸이란 여인의 전화를 거부한 것으로 헨리의 방황하기는 종지부를 찍었단 점에서 숱한 여자들을 만나면서 한 남성이 겪은 이야기를 여지없이 생생한 묘사로 독자들을 이끈 작품이라고 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