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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는 있다 없다"의 범주를 넘어서야 한다.
""십일조는 있다 없다"의 범주를 넘어서야 한다." 내용보기
"십일조는 없다." 있다 혹은 없다의 차원의 논의는 도발적이지만 매우 파괴적이기 쉽다. 이 책은 십일조의 폐지를 이야기하면서 성서와 교회 전통을 자세히 설명하는 점에서는 읽어볼 가치가 있다. 그러나 저자가 깔고 있는 기본 전제에는 동의할 수가 없다. 그 기본 전제는 물적 자원이 교회나 신앙생활에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교회가 역사를 통해서 악행을 저질러 온 것은 거부할
""십일조는 있다 없다"의 범주를 넘어서야 한다." 내용보기

   "십일조는 없다." 있다 혹은 없다의 차원의 논의는 도발적이지만 매우 파괴적이기 쉽다. 이 책은 십일조의 폐지를 이야기하면서 성서와 교회 전통을 자세히 설명하는 점에서는 읽어볼 가치가 있다. 그러나 저자가 깔고 있는 기본 전제에는 동의할 수가 없다. 그 기본 전제는 물적 자원이 교회나 신앙생활에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교회가 역사를 통해서 악행을 저질러 온 것은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이다. 소중한 십일조나 헌금들이 악용되어온 사례들도 물론 부지기수이다. 그러나 십일조가 악용되어 왔다고 해서 십일조를 폐지해야 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셨기 때문에 십일조가 폐지되었다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다. 예수는 십일조의 폐지 여부를 말한 적이 없다.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십일조의 폐지로 연결시키는 것은 십자가 사건에 심한 오해이다. 십일조가 구체적 인간 신앙생활에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십일조의 의미를 밝히기 위해서 인간이 만들어가는 조직을 살펴보고자 한다.

   인간의 모든 조직은 물적 자원이 필요하다. 물적 자원 없이 운영되는 조직이 있다면 아마도 그것은 인간 조직의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일 것이다. 국가를 보자. 국가는 세금이 없으면 운영될 수가 없다. 각 나라의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10%보다는 훨씬 많이 세금을 개인으로부터 거둔다.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서이다. 

   혹자는 이런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국가가 개인을 위해서 필수불가결한 존재인가? 간단히 말해서, 국가없는 개인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름없다는 취지로 한나 아렌트가 홀로코스트를 경험하면서 이야기했다. 국가없는 개인, 사회에서 유리된 인간은 우리의 상상속에서는 존재하지만 실재하기는 어렵다. 인간은 언어와 문화 없이 인간으로서 생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가의 존립, 혹은 국가가 아니더라도 공동체의 존립은 인간 개인에게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며, 그 국가나 공동체는 물질적 자원없이는 꾸려나가기 어렵다.

  교회는 어떠한가? 교회 없이도 신앙생활은 가능한가? 무교회주의자들은 개인과 하나님의 직접적, 단독자적 관계를 강조할 것이다. 그러나 착각이다. 교회나 공동체 없이 인간은 신앙생활하기 어렵다. 좀더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불가능하다. 그 어떤 개인도 종교공동체에 의해 전수받은 신앙과 문화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게 되어 있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절대적 신은 결코 나 혼자서 발견하게 된 신이 아니라 인류 역사에서 형성된 신이다. 그 신을 예배하는 방법도 공동체를 통해서, 인류 역사를 통해서 형성되어 왔다. 그리고 함께 모여서 예배하는 일은 예배의 대상 만큼이나 예배에서 중요한 점이다 .공동체 없이 가능한 신앙생활은, 단정적으로 말하면, 불가능하다.

   신은 돈이 필요없다. 그러나 그 신을 따르는 인간들은 돈이 필요하며, 그 공동체를 이룰 때 역시 물질적 자원이 필요하다. 십일조는 그런 차원에서 교회의 존립에 필요한 물질적 자원이다. 만약 십일조를 폐지하면 어떻게 되는가? 그것은 교회 조직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게 될 것이다. 국가를 보라. 세계화, 사유화, 규제완화로 인해서 국가의 세금이 줄어든다. 그 세금은 주로 복지로 사용되던 것이다. 세금이 줄어들면서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약자에게로 돌아간다. 공동체의 물적 자원이 감소되면 그 공동체의 약자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마련이다. 경제적 효율성을 강조한 결과, 극소수에게로 부가 집중된 반면, 다수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국가는 재정부족으로 방관할 수밖에 없다.

  교회는 어떠한가? 교회 자체를 운영하는데 물론 많은 비용이 든다. 그러나 다른 조직들과 비교해 볼 때, 교회는 사회적 약자들을 돕는 일에 힘을 더 쓴다. 교회의 물적자원이 감소되면 결국 약자들을 돕는 교회 운신의 폭이 줄게 된다. 신은 돈이 필요없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돈이 필요하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인간세상에서 가난한 자들이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한다. 그 가난한 자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개개인의 자선에 의지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교회 공동체를 통한 부조가 훨씬 효과적이고, 국가를 통한 재분배가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큰 역할을 한다. 교회에서 십일조를 강조하니 그나마 개인적인 욕망이 제한을 받게 되는 것이다. 사유화가 적하효과를 통해서 다수가 경제적 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고 학자들은 주장해 왔지만, 실제는 어떤가? 적하효과는 미미할 뿐이다. 개인의 자선에 큰 기대를 거는 것은 인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강제성을 띤 십일조는 이기적 인간의 브레이크 역할을 하기도 한다.

   십일조의 폐지가 화끈해 보이긴 하지만, 늘 이상과 현실은 간극이 있는 법이다. 십일조 폐지를 교회 개혁과 연결시키고 있는데, 교회 개혁은 교회가 필요로 하는 물적 자원을 폐지하는데 있지 않다. 물적자원 없는 교회는 유령밖에 되지 않는다. 교회개혁은 교회를 무력한 공동체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공동체로 만드는 것이다. 좀 더 투명한 재정의 운용이 중요하고, 약자들을 돕는 일에 더 힘을 쓰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십일조를 어떤 의미에서 내는지 새롭게 정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저자의 견해와 달리 미국 연합감리교회만 해도 십일조가 폐지되지 않았다. 물론 수입의 1/10을 내야하는 것은 아니지만, 형편에 따라서 그 이상도 할 수 있고, 그보다 덜 할 수도 있다.

   "십일조는 없다"는 이야기는 돈이 신앙생활과 무관한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것은 심각한 오해이다. 예수님도 재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고 하시지 않았는가? 재물은 신앙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신앙은 무형적인 것이 아니라 유형적인 것이며, 신앙 생활은 우리가 먹고 마시며 문화를 만들고 사회를 형성하며 하는 행위이다. 교회공동체는 또한 다음 세대를 준비하기위해서 물적, 인적 자원이 필요하다. 하나님 나라가 이 세상을 넘어선 저 세상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것임을 생각하며, 물질적 자원의 필요성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있다, 없다"가 아니라, 어떻게 오용을 방지하고 신앙을 더 깊게 넓게 하도록 사용할 것인지를 깊이 고민하는데 있다. 하나님은 돈이 필요 없지만, 하나님은 물질 세계를 창조하시고 잘 돌보라고 하셨다. 십일조는 그 청지기 정신의 일부이다. 

l*****y 2012.04.13. 신고 공감 27 댓글 3
리뷰 총점 종이책
'십일조는 없다' loveany님의 리뷰에 대한 저자의 반론
"'십일조는 없다' loveany님의 리뷰에 대한 저자의 반론" 내용보기
오랜만에 예스24에 들어와보니 제 책에 대한 리뷰가 하나 있군요. 단 한 사람이 평가한 별점 두 개가  전체 평균 별점처럼 표시되어 있고 리뷰의 내용도 제 책을 오해하기 쉽게 되어 있어서 저자의 입장에서 몇 마디 적고 넘어가려 합니다.   우선 <"십일조는 있다 없다"의 범주를 넘어서야 한다>는 제목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입니다. 제 책의 내용 중에도 바로 그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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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예스24에 들어와보니 제 책에 대한 리뷰가 하나 있군요. 단 한 사람이 평가한 별점 두 개가  전체 평균 별점처럼 표시되어 있고 리뷰의 내용도 제 책을 오해하기 쉽게 되어 있어서 저자의 입장에서 몇 마디 적고 넘어가려 합니다.

 

우선 <"십일조는 있다 없다"의 범주를 넘어서야 한다>는 제목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입니다. 제 책의 내용 중에도 바로 그러한 대목이 나옵니다. 그리고 리뷰를 쓴 loveany님의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과 몇몇 대목들에 대해서도 크게 격려를 보내는 바입니다.

'십일조는 없다'는 많은 한국교회에서 말라기 3:10 등을 근거로 주장해온 그런 율법적인 십일조는 없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예수 부활 이후 사도들의 행적과 교회 개척역사를 기록해놓은 신약성경에는 '십일조'라는 용어 자체가  없다는 말입니다.

 

loveany님의 글에 이런 대목이 있군요.

<그러나 저자가 깔고 있는 기본 전제에는 동의할 수가 없다. 그 기본 전제는 물적 자원이 교회나 신앙생활에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저자가 그런 기본 전제를 깔고 책을 쓰지 않았음은 '바울의 연보원칙'을 설명한 대목만 보아도 금방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흉년이 든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해 바울은 십일조라는 말은 한마디 꺼내지 않고  연보의 원칙만으로도 거액의 연보를 모아 어려운 교우들을 도울 수 있었습니다.  

 

또한 loveany님은 이런 글을 쓰고 있군요.

<그러나 십일조가 악용되어 왔다고 해서 십일조를 폐지해야 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셨기 때문에 십일조가 폐지되었다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다. 예수는 십일조의 폐지 여부를 말한 적이 없다.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십일조의 폐지로 연결시키는 것은 십자가 사건에 심한 오해이다.>

 

저자는 십일조가 악용되었다고 해서 십일조를 폐지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셨기 때문에 십일조가 폐지되었다고 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라고 했는데, 저자는 그런 식으로 접근하기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부활한 이후에는 왜 '십일조'라는 용어가 신약성경에서 사라졌을까 의문을 제기하면서 십일조와 관련하여 예수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를 되새겨보았기 때문에 논리의 비약이라 단정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예수 부활 이후에는 왜 '십일조'라는 용어가 신약성경에서 사라졌을까 하는 의문은 성경을 사랑하는 신자라면 당연히 제기할 수 있는 의문이고 따져보아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이레니우스와 오리겐 같은 훌륭한 초대교회 교부들이 '십일조는 할례만큼이나 그리스도인과 무관하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분들이 십자가 사건을 오해해서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분들이 그런 말씀을 하게 된 배경과 이유를 살펴보는 것이 논리의 비약일 수 없지요.

 

저자는 예수 십자가 사건을 십일조 폐지와 막바로 연결시킨 것이 아니라 신약성경에 있는 유일한 십일조 근거 말씀 '이것도 버리지 말고 저것도 버리지 말라'는 말씀의 본뜻을 새겨봄으로써 십일조주의자들의 주장에 반론을 제기한 것이지요.

그 말씀은 십일조 정신을 상실한 채 십일조만을 형식적으로 드리는 바리새인들을 무섭게 책망하면서 덧붙인 말씀으로 기록되어 있지요.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을 비롯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십일조를 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고 예수님이 십일조를 내지 말라고 하실 리도 없지요. 다만 십일조를 내되 십일조 정신을 잃지 말라고 하신 것이지요.

좀더 문맥에 맞게 풀이해보면 이런 내용이지요. '너희가 십일조를 낼 때 십일조 정신을 버리지 않았어야 했다'

이 말씀은 그 당시 당연히 십일조 의무가 있는 바리새인들에게 주신 한시적인 말씀이지, 교회 십일조의 근거로 제시할 수 있는 말씀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예루살렘 성전이 건재하던 시절의 초대교회는 당연히 십일조를 거두었을 리가 없지요. 성전으로 돌아갈 십일조를 교회가 거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교회에는 십일조라는 명목 자체가 없었다는 말입니다.  

바울이 개척한 이방인 중심의 교회들도 마찬가지지요.

예수 부활 이후에 '십일조'라는 용어가 신약성경에서 사라진 이유가 바로 이것이지요. 예수 십자가와 부활로 예루살렘 성전 제도가 폐지되고 이제 그리스도인 자신이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이 됨으로써 십일조라는 용어는 더욱 발 붙일 여지가 없게 되었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예수께서 버리지 말라고 한 그 십일조가 과연 현재 많은 교회에서 말하는 그런 십일조인가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는 점도 성경을 통하여 밝혀지게 되지요.

 

loveany님은 이런 글도 쓰고 있군요.

<저자의 견해와 달리 미국 연합감리교회만 해도 십일조가 폐지되지 않았다. 물론 수입의 1/10을 내야하는 것은 아니지만, 형편에 따라서 그 이상도 할 수 있고, 그보다 덜 할 수도 있다.>

 

미국 연합감리교회만 해도 십일조가 폐지되지 않았다는 것이 저자의 견해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군요. 저자는 유럽을 비롯한 세계의 많은 교회들이 십일조라는 명목으로 헌금을 거두지 않고 있는 너무나 분명한 사실을 지적했을 뿐이지요. 그리고 그런 교회들이 건물 짓는 데 돈을 쓰기보다 오히려 더 많은 구제사업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요.

 

loveany님의 말에 따르면 미국 연합감리교회 역시 <물론 수입의 1/10을 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형편에 따라서 그 이상도 할수 있고 그보다 덜할 수도 있다>고 했군요. 그럼  미국 연합감리교회는 한국교회에서 주로 말하는 그런 십일조가 아니라 저자가 책에서 강조한 '바울의 연보원칙'을 따라  헌금을 하는 셈이군요.

 

또 loveany님의 글에 이런 대목이 있군요.

<교회 공동체를 통한 부조가 훨씬 효과적이고, 국가를 통한 재분배가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큰 역할을 한다. 교회에서 십일조를 강조하니 그나마 개인적인 욕망이 제한을 받게 되는 것이다. 사유화가 적하효과를 통해서 다수가 경제적 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고 학자들은 주장해 왔지만, 실제는 어떤가? 적하효과는 미미할 뿐이다. 개인의 자선에 큰 기대를 거는 것은 인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강제성을 띤 십일조는 이기적 인간의 브레이크 역할을 하기도 한다.>

 

교회 공동체를 통한 부조가 효과적이기 때문에 강제성을 띤 십일조로 이기적인 인간의 브레이크 역할을 해야 한다는 논지는 그야말로 논리의 비약이라 아니할 수 없군요.

저자가 강조한 바울의 연보원칙이 무엇입니까? 개인적인 자선만을 강조한 것이 아니지요. 바울도 교회 공동체를 통해 거둔 거액의 연보로 어려움에 처한 예루살렘 교회를 도왔지요. 강제성을 띤 십일조를 들먹인 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말이죠.

 

loveany님은 이런 말도 하고 있군요.

<십일조 폐지를 교회 개혁과 연결시키고 있는데, 교회 개혁은 교회가 필요로 하는 물적 자원을 폐지하는데 있지 않다. 물적자원 없는 교회는 유령밖에 되지 않는다. 교회개혁은 교회를 무력한 공동체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공동체로 만드는 것이다.>

 

저자는 앞에서도 말했지만 교회가 필요로 하는 물적 지원을 폐지하는 데 교회 개혁이 있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바울의 연보원칙을 크게 오해하고 있군요. 오히려 바울은 연보를 통하여 교회의 물적 지원을 든든히 해주었지요.

 

lovwany님은 결론적으로 이런 말을 하고 있군요.

< "십일조는 없다"는 이야기는 돈이 신앙생활과 무관한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것은 심각한 오해이다. 예수님도 재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고 하시지 않았는가? 재물은 신앙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신앙은 무형적인 것이 아니라 유형적인 것이며, 신앙 생활은 우리가 먹고 마시며 문화를 만들고 사회를 형성하며 하는 행위이다. 교회공동체는 또한 다음 세대를 준비하기위해서 물적, 인적 자원이 필요하다.>

 

그야말로 loveany님이 심각한 오해를 하고 있거나 오독을 하고 있군요. 저자는 책 전체를 통해 누가복음 6:38을 되풀이 제시하면서 주는 생활이야말로 신앙생활의 핵심 요소임을 강조하고 있지요. 주는 생활이 무엇입니까. 마음을 주는 것뿐 아니라 돈과 재물을 나누는 것이지요. 여기서 loveany님이 말한 '돈'은 결국 '헌금'을 뜻하는 것이군요.

1. 좋은 글귀, 마음에 드는 가사 인상 깊은 영화 대사 등을 메모해 주세요.
2. 출처를 넣어주세요. ex) 234page, 4번 트랙<사랑해>, <브리짓존스의 다이어리>에서 브리짓의 대사

저자는 헌금이라는 용어를 '연보'로 대체할 뿐 돈이 신앙생활과 무관하다는 내용은 그 어디서도 쓰고 있지 않군요. 다만 하나님께 물질을 바친다는 관념은 버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재물을 나누는 일에 마음과 뜻을 다하라고 강조하고 있지요. 교회 공동체를 통하여 나눌 수도 있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나눌 수도 있지요. 많은 학자들이 개인적인 차원에서 나눌 때 더 큰 보람을 느끼게 된다고 말하고 있지요.

그렇다고 교회 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물질이나 교회 공동체를 통해 나누는 생활을 도외시할 수는 없지요. 다만 한국교회가 개인적으로 나누는 삶을 강조하지 않고 있는 점을 지적한 것이지요.

 

loveany님은  주로 현실논리에 입각하여 교회가 구제사업을 하고 뜻있는 사업을 하는 데 돈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식으로 말하면서 마치 <십일조는 없다>가 '돈 없는 유령 같은 교회'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는 듯이 논지를 펴고 있군요.

'돈 많은 유령 같은 교회'들이 많은 이 시대에 <십일조는 없다>는 '돈이 복음의 본질을 대체하지 않는 건강한 교회'를 세우기 위해 쓴 책이며, 말라기 3:10만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누가복음 6:38을 강조하고 실천함으로써 더욱 성숙한 전적 헌신의 신앙생활로 들어가자고 권면하고 있지요.  

저자도 부족하기 그지없지만 개인적으로나 신앙공동체적으로나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지요.

loveany님이 과연 책의 논지를 잘 파악하고 리뷰를 썼는지 의심스럽고 십일조주의자로서의 선입견에 따라 자신의 평소 소신을 써내려간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또한 loveany님의 리뷰를 먼저 읽은 사람들은 저자의 책에 대해 크게 오해하게끔 글을 쓰지 않았나 우려됩니다.

 

 

 

 

 

 

 

 

 

 

 

 

 

t****l 2012.07.05. 신고 공감 17 댓글 1
리뷰 총점 종이책
모든 소득이 십일조의 대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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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책에서 시종일관 한국 교회가 강조하는 '십일조'의 개념이 변질되었다고 강조한다. 많은 목회자와 성경 학자들도 동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십일조'가 계속해서 강조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교회가 확장되고 커지면서 교회에 많은 재정이 필요하게 되었고, 그 재정을 충당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편으로 구약시대의 십일조를 끌어온 것이다. 교회는 성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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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책에서 시종일관 한국 교회가 강조하는 '십일조'의 개념이 변질되었다고 강조한다. 많은 목회자와 성경 학자들도 동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십일조'가 계속해서 강조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교회가 확장되고 커지면서 교회에 많은 재정이 필요하게 되었고, 그 재정을 충당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편으로 구약시대의 십일조를 끌어온 것이다. 교회는 성전이요, 목회자는 제사장이요 하는 식으로 <성경>을 알레고리 비유 해석법으로 풀어서 말이다"

 

원래 구약에서 말하는 십일조는 토지소산의 10분의 1이었다. 오늘날 처럼 화폐 소득을 중심으로 한 '모든' 소득이 십일조의 대상이 아니었다. 나눔의 양식이었던 십일조가 시간이 지날수록 제상들과 대제사장들의 치부 수단으로 전락되었고 결국 오늘날 교회가 맘몬을 숭배하는 모양새로 세상의 지탄을 받게 된 게 '십일조'의 잘못된 적용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십일조의 대상에 화폐를 끌어들인 사람은 바리새인이었다고 한다. 그들은 십일조를 잘 내면 악한 작가 지옥에서 받는 열두 달 동안의 형벌에서 면제 된다고 강조했다. 중세 시대 면죄부를 떠올리게 한다.  십일조하면 <말라기>3장 10절 구절을 예로 든다. 근데 그 구절은 일반 백성들에게 들으라고 한 것이 아니라 불행히도 백성이 바친 십일조를 빼돌리는 제사장들에게 경고한 구절이라는 점이다. 백성들이 토지소산과 가축의 10분의 1을 바친 것을 빼돌린 욕심 많은 제사장에게 한 말씀이라는 점이다.

 

바리새인처럼 철저하게 소득의 십일조를 계산하며 그렇지 못했을 경우 정죄하며 죄책감을 심어주는 십일조라면 결코 성경적일 수가 없다. 십일조의 정신은 이웃 사랑임을 부인할 수 없다. 저자는 현대 교회에서 가장 많은 헌금을 차지하는 것이 십일조며, 돈 때문에 교회의 여러가지 분란이 생기는 예를 들고 있다. 그래서 교회를 개혁하자는 취지에서 몇 가지 대안을 들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헌금이라는 용어대신에 서로 돕고 나눈다는 연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신자들은 신앙양심에 따라 각자 기준을 정해 드린다. 모두 무기명으로 드린다. 무건물, 자비량 목회를 원칙으로 한다"

 

갑자기 교회가  헌금 시스템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십일조의 정신' 만큼은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하나님은 돈이 없어 구걸하는 신이 아니다. 교회가 돈 장사하라고 신자를 모으는 곳도 아니다. 정의와 공의의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이다.교회는 예수보다 물질을 탐해서는 안 되며 신자는 복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 십일조를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저자는 아마도 이 책을 시중에 내 놓고 기존 교회, 교단으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성경에서 말하는 헌금의 정신을 파헤치려는 용기의 결과물인 이 책을 헌금 때문에 상처받은 신자들과 올바른 교회 운영을 위해 고민하는 목회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c*******9 2017.10.3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