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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수 최후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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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빅토르 위고옮긴이 : 한택수  이 이야기의 목적은 인물의 완벽에 가까운 보편화이다. 이것은 매우 일차적인 목적이다. 근본적인 도달점은 모든 독자들에 대한 절대적인 투영이었을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문제를 뛰어넘은 일종의 시도였으며 문학적 결과로 남을것이다. 이렇게 확신할 수 있는것은 저자 빅토르 위고가 짧은 소설속에서 펼쳐 보이는 섬세한 심리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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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빅토르 위고

옮긴이 : 한택수



  이 이야기의 목적은 인물의 완벽에 가까운 보편화이다. 이것은 매우 일차적인 목적이다. 근본적인 도달점은 모든 독자들에 대한 절대적인 투영이었을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문제를 뛰어넘은 일종의 시도였으며 문학적 결과로 남을것이다. 이렇게 확신할 수 있는것은 저자 빅토르 위고가 짧은 소설속에서 펼쳐 보이는 섬세한 심리묘사와 인물설정의 파급력때문이다. 사형수라는 특수한 입장이자 삶을 갈구하는 모든 인간들의 대변성은 매우 양가적이면서 특별하다. 그러나 이러한 설정에는 반드시 이 인물에 모든 독자들을 투영시키리라 다짐했을 작가적 결의가 묻어난다. 사형 집행이 얼마 남지 않은 사형수, 결국 절대적으로 생에 집착하던 그는 언젠가 죽음을 마주할 우리들의 모습이었다.
  
  주인공이 왜 사형수가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애초에 사형 판결을 받은 직후부터 이야기가 시작되기 때문에 연유는 드러나지 않는다. 더욱이 주인공의 회상에서 조차 이 부분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사실 소설의 제47장에 해당하는 '나의 이야기' 부분에서 이 부분이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책에 기록되어 있는대로 이 부분의 원고를 발견하지 못했기에 독자들은 사형판결 그 직전의 이야기에 대해 원천봉쇄 당해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독자들에게 아쉬움만 남길뿐, 완성도에 있어서는 더욱 완벽함으로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이처럼 독자들은 그가 왜 사형수가 되었는지에 대해 전혀 알 수 가 없다. 즉 사형수의 신분과 삶, 그리고 범죄 발생의 동기와 현장에 대한 묘사가 전혀 없는것이다. 이것은 어찌보면 범죄 사실에 대한 사실 관계 여부는 소설에 있어서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중요한것은 지금 죽음을 기다리는 사형수가 있다는 현재뿐이다.
  소설은 사형수 대한 자세한 묘사를 거세시키면서 죽음을 기다리며 누구보다 삶에 대한 강렬한 욕구를 느끼는 보편적인 인물을 창조하였다. 이 인물이 인간이라면 당연히 지니고 있는 생에 대한 열망과 집착만으로 뭉쳐있기에 결국 죽음에 직면하게될 모든 인간들의 심리를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빅토르 위고는 사형수의 이야기는 아마 의도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만약 그에게 어떠한 사연이 존재 하였다면 인물의 특수성이 생겨나고 독자가 투영시킬 일반적인 보편성을 잃고 만다. 그래서 독자는 범죄를 저지른 사형수를 보기보다는 죽음을 기다리는 인간을 통해 스스로를 투영시키며 현실에 가까운 인간적 감정과 사고를 읽게 되는것이다. 그런점에서 사형수라 하는 신분은 독자들이 가장 강렬하게 생의 감각을 느낄수 있는 단순한 수단적 가치에 해당한다. 이야기에 대한 참여적 수단인 셈이다.
  독자들은 이 사형수를 통해 죽음에 가까울때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정상태와 사고관을 간접적으로 체함하게 될 것이다. 처음 판결을 받을 때만하여도 죄에 대해 인정하고 죽음 수용하는 담담한 심정을 표현하면서 점차적으로 삶에 집착하는 이중성을 보게 된다. 이러한 이중성은 매우 현실적인 심리 묘사다. 이미 삶에 대해 체념한듯 주인공이 묘사하는 주변은 지나치게 객관적이기에 비극적 처지가 부여하는 감정을 더욱 실감나게 드러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죽음에 가까워지면서 주인공은 죽음 자체를 체감으로 느껴간다. 초연할 수 없는 생에 대한 본능. 초연한듯 초연하지 못한 이중성이 오히려 삶에 대한 집착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중반 이후에 해당하는 처형 당일에는 이 이중성 마져 흐릿해져 오로지 삶을 갈구하는 모습을 드러낸다.
  이렇듯 심리적 변화가 체념과 초연에서 집착과 강박으로 변해감에 따라 주인공의 시선 역시 외부에서 내면으로 움크러든다. 그는 초반 자신을 죄인 만든 요소들과 존재들을 매우 객관적으로 묘사한다. 이 객관화는 매우 특별하다. 있는 그대로 현상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현상을 전달하면서 해당 인물들의 내면을 드러내고 있다. 그를 죄인으로 판결한 이들과 그 장소에서 자신을 비난하거나 동정하는 사람들을 매우 일상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 이렇듯 주인공에게는 죽음이라는 일생일대의 결정이 난 순간에도 누군가에게 이것은 업무이며, 생활이고 심지어 소일거리가 되기도 하다. 이것은 누군가의 죽음이 자신의 것이 아닌 이상 일종의 헤프닝일수 밖에 없는 매우 현실적인 몰인간성을 표현한다.
  그리고 이 객관성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매우 주관적이고 충동적인 시선으로 변화 되어진다. 그는 결국 자신의 죄의 판결이 부당함을 직접적이지는 않으나 매우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스스로가 죄인이 된것은 어쩌면 어쩔수 없었음에 기인했으며 죄인의 기준은 무엇인지 그 모호성을 드러낸다. 자신 이전의 사형수들이 머물렀던 공간에서 그는 다향한 인물의 사형수들을 만난다. 그 중에서는 정말 사형을 언도받아야 마땅한 죄인들도 있었고, 어떤 이들은 본인이 지니는 정의적 가치를 위해 목숨을 내던진 인물들도 있었다. 죄인은 무엇이냐며, 그것은 누가 만드는것이냐며 간접적으로 부당함을 밝힌다. 그러나 독자들이 여기서 유의해야할점은 이 사형수가 지니는 보편성을 유의해야 한다. 사실 그가 어떤 죄인이냐는 중요한것이 아니라고 하였지만, 독자들은 그가 정말 어떤 죄를 저질렀는지 모르기 때문에 죄인이라는 신분에 근거하여 비난하여서도 아니되며 반대로 그를 섣불리 변호하는 입장이 되어서도 안되는것이다. 결국 이러한 부당성을 간접적으로 느끼고 표현하는 주인공은 점차적으로 죽음에 대한 거부를 표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죽음에 한층더 가까워 졌을때 그는 다시 한번 주변을 객관화시킨다. 그러나 이것은 초반의 객관화와는 전혀 다른 무게의 객관화 이다. 이것은 단지 부정적 상황을 드러내는것이 아닌 스스로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한다. 앞에서도 밝혔지만 자신의 죽음이 일상인자들을 통해 그는 자신의 죽음이 진정으로 위로받지 못함에 슬픔을 느낀다. 타인이 자신의 죽음에 동정하고 연민을 느낀다면 당사자는 타인에게 삶을 호소할 기회를 얻는다. 이런점에서 주인공은 이미 죽음을 강렬히 거부하며 삶을 희구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최후 변론을 요구하는 그의 처절함은 누구나 느끼게 될 삶에 대한 집착을 보이며 종지부를 찍는다.
  독자들의 입장에서 길지 않은 시간 사형수의 심리적 변화를 통해 죽음에 대한 간접적 두려움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더불어 삶에 대한 비굴한 연명의식은 쉽게 씻어지지 않는 진중함마저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느낌 마저 우리가 살아있는 인간임을 인식케 하는 진정한 생의 감각이 될 것이다.  어쩌면 작가는 이 짧은 작품안에 인간의 보편적 가치로 독자가 투영됨 이 외에도 좀 더 뜻있는 메세지들을 담아냈을 것이다. 인간이 인간을 판결하여 죽음까지 결정하는 사형제도의 모순성이라던가, 그 당시 죄의 기준이 과연 공정하였는지, 인간이 인간엑 느낄 측은지심의 결여성 등에 해당하는 에피소드들이 중간중간 보인다. 물론 이것들을 표현했으리라 확신할수는 없지만 적어도 독자들은 이 소설을 통해 이 주제들에 대한 문제 인식을 겪었을 것이다. 결국 이러한 문제들까지 인간의 삶과 죽음에 연결되는 가치관의 의제들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삶을 갈구하며 비굴함과 연민에 호소하였으나, 그는 어디서부터 죽음으로 밀려났으며, 우리는 죽음과 대면하였을때 어떠한 이야기를 이어나갈것인가. 독자는 그 누구도 아니었으며, 우리 모두 였던 사형수를 통해 이러한 화두들에 대해 답을 찾고자 눈을 감게될 것이다.

YES마니아 : 로얄 k***4 2012.03.1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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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수 최후의 날] 사형수, 죽음을 앞두고 그가 남긴 이야기는?
"[사형수 최후의 날] 사형수, 죽음을 앞두고 그가 남긴 이야기는?" 내용보기
빅토르 위고. 우리에게 익숙한 작가이다. 특히 레미제라블은 세대를 이어 두고 두고 읽히는 명작으로 기억된다. 그런 그가 남긴 책에는 우리에게 조금은 낯선 사형수에 관한 책이 있다. 바로 이 책이다. 사형수 최후의 날. 제목만 봐도 좀 섬뜩하다 싶다. 그리고 생각해 보았다. 사형수가 보내는 최후의 날은 어떨까하고.   언젠가 인터넷에서 미국 사형수들이 먹는 최후의 만찬
"[사형수 최후의 날] 사형수, 죽음을 앞두고 그가 남긴 이야기는?" 내용보기

빅토르 위고. 우리에게 익숙한 작가이다. 특히 레미제라블은 세대를 이어 두고 두고 읽히는 명작으로 기억된다. 그런 그가 남긴 책에는 우리에게 조금은 낯선 사형수에 관한 책이 있다. 바로 이 책이다. 사형수 최후의 날.

제목만 봐도 좀 섬뜩하다 싶다. 그리고 생각해 보았다. 사형수가 보내는 최후의 날은 어떨까하고.

 

언젠가 인터넷에서 미국 사형수들이 먹는 최후의 만찬이라는 제목으로 사진들이 올라온 적이 있었다. 그들이 요구하는 식사는 다양하고 맛있어 보이기는 하지만, 죽음을 앞둔 상태에서 맛보는 마지막 음식은 과연 어떤 맛일지 정말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최고의 맛일까? 아니면 맛조차 못 느끼는 극한의 공포와 두려움이 엄습해올까? 책에서는 다음과 같이 묘사된다.

 

“먹을 것을 방금 전에 가져왔다.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세심하게 잘 차린 식탁이었고, 닭고기와 또 다른 것이 있었던 것 같다. 기왕 차린 것! 먹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처음 입에 넣은 모든 것이 도로 밖으로 나왔다. 그처럼 모든 것이 나에게는 쓰고 역한 냄새를 풍기는 듯했다.”

본문 중>

 

사실 이 책은 1829년에 빅토르 위고가 익명으로 발표한 작품이다. 그리고 많은 판매부수를 기록했다고 알려진다. 작은 감방에서 하루 하루를 견뎌내는 사형수의 죽음에 대한 공포, 삶에 대한 미련, 고독감과 피폐해지는 정신력이 날카롭게 묘사되어 있었다. 이와 함께 이 소설이 더욱 매력적이게 느껴지는 건 독자들에게 던져준 ‘궁금증’이다.

책 속 주인공인 사형수는 현재 감방에 갇혀있는 자신의 신세와 느낌, 외로움을 적나라하게 표출하고 사랑하는 가족, 특히 딸을 무척이나 그리워한다. 그리고 어쩌면 단두대의 날카로운 목이 내려치기 바로 직전, 영화처럼 사형이 중지되는 극적인 생존을 기대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교도관과 옷을 바꿔 입고 도망칠 궁리를 하기도 하고...

 

그러나, 정작 그가 왜 사형수가 되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은 채 이야기가 전개되어 독자들은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 그의 과거와 죄를 만들어본다. 빅토리 위고는 초판이 출판되고 3주 후가 돼서야 자신의 이름을 밝혔고 저자를 알게 된 이상 많은 사람들이 살인사건의 경위를 첨부해달라고 요청하지만 그는 거부한다. 독자의 상상력에 맡기는 즐거움일수도 있고 작품 속에 좀 더 빠져 들기를 바라는 의도일수도 있다. 역자는 독자들이 이 작품 속 주인공처럼 느끼고 보다 적극적으로 사형수의 이야기에 동참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글쎄.. 책을 다 읽은 지금, 나는 그의 의도대로 적극적으로 사형수에 공감하며 이해하게 된 것인지는 확신이 서지 않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죽음은 분명 살아있는 사람에게 공포, 극한의 공포 그 자체라는 사실!

 

 

s*****m 2012.05.3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