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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는 차이점에 대해서는 다양한 주장들이 있다. 그 중에는 생각을 할 수 있다거나, 도구를 사용한다는 것 등 딱히 정답이라고 이야기하기 모호한 주장도 있고, 이성적 판단을 한다거나, 본능을 억제할 수 있다는 것 등 제법 보편적으로 수긍할 수 있는 주장도 존재한다.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철학자인 매슬로우(Abraham H. Maslow) 는 인간의 욕구를 5-7가지 단계로 구분하고, 상위 단계의 욕구일수록 인간을 다른 동물과 다른 존재로 만드는 동기가 된다고 보았다. (5단계론에서는 다섯번째 단계인 '자아실현의 욕구'를 최상위에 놓지만, 7단계론에서는 이 위에 지적 욕구(6th)와 심미적 욕구(7th)를 놓기도 한다) 이 매슬로우의 욕구단계설은 <경영학 원론> 책 등의 맨 처음에도 등장할 만큼 다양한 학문체계에서 널리 수용하는 이론이기도 하다.
이 관점에서 보면 아마도 인간을 다른 동물들과 다르게 만드는 욕구는 네번째 단계 이상인 존경(Esteem)의 욕구와 자아실현의 욕구 등이 될 것이다. 생리학적인 욕구는 물론, 안전하고 싶은 욕구나, 소속감 및 사랑받고싶은 욕구 등은 집단생활을 하는 동물들에게도 유사하게 관찰할 수 있는 욕구니까. 합리적으로 사고할 수 있다는 것을 인간의 차별화된 능력으로 꼽기도 한다. 많은 경제이론이 인간은 개인의 효용을 극대화하는 합리적 의사결정을 한다는 전제 하 정립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인간은 그다지 합리적이지 않은데, 이는 경제학에서 진행한 '최후통헙 게임(Ultimatum Game)' 실험을 통해서도 증명되었다.
이 게임은 아주 간단하다. 두 명의 서로 면식이 없는 참가자를 칸막이 양쪽에 놓고 서로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은 채, 그 둘 중 한 명에게 돈을 건넨 뒤 옆의 사람과 알아서 나누어 가지라고 한다. 두 사람은 모두 얼마의 금액이 한 참가자에게 주어졌는지 아는 상태이며, 돈을 나누는 결정권한은 상의과정 없이 받은 한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주어진다. 돈을 건네받는 이는 두 가지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다. 상대가 넘겨주는 돈을 받는지, 거부하는 것이다. 받는 이가 돈 받기를 거부하게 되면 돈은 회수되고 둘 다 한 푼도 받을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돈이 주어진 사람은 어느 정도를 옆자리에 앉은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건네게 될까.. 또 돈을 건네받는 사람은 얼마를 상대가 건넬 경우 그 제안을 수용할까.. 실험결과는 아주 재미있다. 최빈수로 50%의 돈을 제안하는 경우가 가장 많았으며, 평균적으로는 45% 수준이었다. 더 재미있는 결과는 대개의 사람들이 20% 이하의 돈을 제안받을 경우 거부의사를 표명했다는 점이다. 20%를 받을 수 있는, 즉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할 수 있는 선택을 포기하고 타인이 80%를 갖지 못하게 하는 선택을 했다는 것은 인간이 그다지 합리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침팬지라면 아마도 같은 실험에서 훨씬 합리적인 선택을 했을 것이다.
이와같이 개인적으로 손해를 볼 지언정 타인의 부당함을 응징하겠다는 인간의 욕구를 '이타적 처벌(Altrustic Punishment)'이라고 부른다. 일견 불합리하게 보이지만, 바로 이런 인간만이 가진 특유한 정서 때문에 협동이 생기고 무임승차(Free Rider)가 예방되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인류가 다른 동물들과 차별적으로 문명을 이루고 발전할 수 있는 이유였다고도 볼 수 있다.
합리적이지 않은 인간의 모습은 과시적 소비(Conspicious Comsumption)와 금전적 경쟁(Pecuniary Emulation), 시기적 비교(Invidious Comparision) 등을 통해서도 나타난다. <여가 계급 이론(Theory of The Leisure Class)>의 저자 베를런(Vebren)은 사람들이 '유용성 보다 사회적 가치에 따라 재화를 선택한다'는 이론을 폈다. 흔히 '베블런 효과(Veblen Effct)'라고 불리는 이 이론은 가격이 오를수록 없어서 못판다는 명품에 대한 선호현상이나, 실용성이 아닌 주로 과시욕에 의해 구매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자동차 수요 등에서 흔히 확인된다. 타인의 눈에 더 잘 띄는, 더 쉽게 보여지고 찾아질 수 있는 물건일수록 이런 현상이 강하게 나타난다. 이 말은 결국 과소비라는 것은 개인의 이기심과 물질적 욕망을 기반으로 하는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님을 시사한다. 그 소비행태의 연원에는 사회적 동기가 뿌리깊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둘 다 인간의 비합리성에서 출발하였지만, '이타적 처벌'은 협업을 유발하고 무임승차를 예방하는 등 긍정적 기능을 수행하는데 반해, '베블런 효과'의 경우 한정된 자원의 비효율적 투하 및 소비를 조장한다는 차원에서 다소 부정적인 기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둘은 모두, 이제부터 이야기하려는 '불평등'을 보는 관점에서는 동전의 양면 처럼 한가지 목소리를 갖는다.
불평등한 사회란 결국, 이타적 처벌행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사회를 말한다. 이타적 처벌이 비합리적이며 시기심어린 단견적 돌출행동으로 치부될 경우, 사회는 현명한 자, 머리좋은 자, 약삭빠른 자, 운이 좋은 자, 기회주의자들에 의해 주도되어 계층구조가 고착화되고 협업보다는 복종과 체념이 강요되며, 그 사이에서 수 많은 무임승차자가 생겨나게 된다. '분배보다는 성장'이라는 모토 하 항상 재벌기업의 손을 들어주는 정부의 경제정책하 우리나라가 그랬고, 신자유주의 논리로 무장된 레이건-부시-부시2 행정부로 이어지는 공화당의 집권 하 미국이 또한 그랬다. 이런 사회는 당연히 계층간 격차를 심화시킨다. 즉 불평등이 점점 커진다. 양극화니 중산층의 붕괴니 하는 문제는 지나치게 합리주의를 강조, 개인차와 출신차가 만들어내는 차이를 지극히 효율적인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 결과다.
불평등이 심화되면 베블런 효과는 극대화된다. 사회적 계층의 격차가 가시적으로 심화된 사회 속에선, 구성원 개개인이 개인적으로 상류사회로 진입하고자 하는 욕망 또한 커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좋은 학벌과 스펙을 위해 부모의 소득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사교육비가 투자되고, 은행융자를 한도껏 받아서라도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차를 몰게 된다. 그래야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존중받을 수 있다고 믿고, 또 실제로도 그렇기 때문이다. 명품을 열광적으로 선호하는 현상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백화점이나 고급 의류매장에 들어가면 종업원이 위아래를 훝어본 후 입은 옷과 든 가방에 따라 대하는 태도를 달리한다는 말을 많은 이들은 명품이 필요한 이유 중 하나로 꼽는다.
그런데, 이런 문제는 개인의 노후대비를 불충케 하거나, 과소비를 조장 개별 가계경제를 위기로 몰아넣는 (결국은 당사가자 책임을 지는 거라는) 차원을 넘어 더 심각한 사태를 야기한다. 사회적 리소스가 그런 수요에 맞추어 리스트럭처링(Restructuring)되게되면, 사회발전을 위한 적절한 자원의 배분방식과는 다른 방식의 자원수요가 이루어지는 비효율이 야기되는 것이다. 즉, 모두가 잘 팔려 수익을 두둑히 챙길 수 있다는 이유로 에너지 효율이 낮은 고급 자동차만을 생산하게되고, 생필품의 공급가를 낮추는데 쓰여야 할 기술개발 리소스(비용/시간/인력 등)가 명품가방의 디자인 개발로 전용되게 되는 것. 이렇게되면 이는 당사자들이 책임져야할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구성원 모두가 분담해야할 (사회적 자원배분의 실패에 기인한) 공공의 손실이 되어버린다.
이 책은 불평등한 사회와 상대적으로 비교적 평등한 사회를 비교, 평등한 사회가 개인의 정신건강이나 삶의 만족도 차원을 넘어 질병, 범죄, 수명, 복지 등 다양한 차원에서 불평등한 사회보다 우월한 성과를 거두고 있음을 통계자료를 통해 제시한다. 절대적인 소득수준에 따른 편이(Bias)를 제거하기 위해 가장 부유한 23개 선진국과 미국의 50개주 만을 대상으로 했지만, 평균적으로 먹고 사는 걱정이 절대과제인 사회만 아니라면 거의 모든 사회에 비슷하게 적용할 수 있을 정도로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분석기법과 해석을 적용했다. 이 책은 평등하지 않은 사회가 치뤄야 할 사회적 비용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또한 정치적, 문화적, 지정학적, 인종적 차이를 넘어 평등이 사회구성원에게 주는 효용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이 책은 주장한다. 그것은 '큰 정부'가 맞느냐, '작은 정부'가 맞느냐는 정부의 역할 및 기능차원의 이슈와도 무관하다.
평등한 사회가 불평등한 사회보다 다방면에서 더 좋은 삶의 질을 제공할 것이라는 것은 구태여 이런 통계자료를 통하지 않더라도 직관적 사고를 통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지만, 기대수명, 교육성취도, 비만, 정신질환 등 얼핏 생각하기에 평등의 정도와 크게 연관이 없어보이는 다양한 사회문제까지도 또렷한 상관관계를 보여준다는 사실은 무척 흥미롭다. 이 책은 왜 평등이 중요한지, 사회구성원으로서 평등을 요구해야 하는 것이 왜 당연한 일인지 다시금 깨닫게 해 준다.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전국적인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대다수의 미국인들이 부와 물질적 소득에 대해 매우 이중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한다. 대다수의 이들이 '탐욕과 과잉에서 가치의 공동체, 그리고 가족을 중시하는 삶으로의 회귀'를 원하면서도 실제로 세상은 이런 가치들이 점차 사라지며 '점점 개인화되고 이기적이며, 무책임해진다'고 판단했다. 개개인 모두가 이타적이고 인간적이며 책임감있는 삶을 원하면서도 사실은 이기적이고 무책임하며 비인간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를 못난 인간의 태생적 한계로 보아선 안된다. 인간의 이런 이중성은, 누구나 이상적 사회를 꿈꾸지만, 그렇지 않은 현실 속에서 자신이 발붙이는 방법은 그 이상을 실천하는 것과는 확연히 다른 문제라는 판단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에게 필요한 건 본인이 생각하는 이상이 사실은 대다수 구성원이 꿈꾸는 그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 꿈을 공유하는 것이다. 그런 전제(결국은 사회적 신뢰)가 선행되지 않고서는 누구도 쉽게 자신의 이상을 구현하는 삶을 섣불리 선택하려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불평등이 얼마나 막대한 비용을 초래하는지, 평등이 얼마나 구성원 전반의 삶을 질을 제고시키는지를 보여주었다. 그럼 어떻게 더 평등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가의 문제는 여전히 우리들에게 남은 숙제다. 그 시작은 아마도 개개인의 마음 속에 간직된 이 사회의 'To-Be Model'을 공유하는데서 시작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구성원 서로간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쌓일 때, 누군가는 먼저, 누군가는 그를 따라서 작은 것부터 구현하려는 노력을 시작할테니.
P.S. 이 리뷰는 특정 정치시스템이나 경제시스템에 대한 일방적 비판이나 옹호의 관점에서 쓰여진 리뷰가 아닙니다. 따라서 그런 관점에서의 태클 역시 정중히 사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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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교육에서 처음으로 사회를 배울 때부터 평등이라는 개념은 민주주의에서 무척 중요한 개념이라고 배웠다. 교육을 받는 시간이 길어지는 동안 평등이라는 개념이 단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평등을 추구하는 방법도 기회면과 결과면으로 나누는 것을 포함해 여러 방법이 있음을 알게 되었지만, 지식이 깊어지는 동안에도 변하지 않는 것은 여전히 평등이라는 개념이 매우 중요한 개념이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과연 평등한가? 어린 시절이라면 아무 것도 모른 채 평등한 사회라고 대답했을 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른의 눈으로 본 사회는 결코 평등한 곳이 아니다. 경제면에서의 격차는 물론이고 여러 가지 기회의 면에서도 결코 평등을 보장해 주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불평등한 사회를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시장 경제 체제 속에 살고 있으므로 체제 안에서 최소한의 평등만 보장된다면 그 외의 불평등은 당연히 감수해야 할 조건이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여기 그런 우리의 생각에 반기를 들고 있는 책이 있다. 책에서는 불평등한 사회가 어떤 문제점을 가져오고 있는 지 보여준다.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행복 지수부터 건강, 교육, 복지 이런 사회 전반의 문제에 대해 평등과 불평등이 얼마나 중요한 기준 척도가 되는 지를 조사하고 검증 하고 있는 책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매우 유의미한 지표가 되었다.
경제 성장이 최고의 목표이던 시대는 이미 오래 전에 지났다. 경제 성장이 충분히 진행된 국가에서는 기대 수명이 평균 소득과 큰 상관 관계를 지니지 못했으며, 오히려 사회 내 소득 차이가 클 수록 저소득층과 고소득층의 사망률의 차이가 커졌다. 또한 부유한 국가의 경우 건강 문제와 사회 문제 역시 국가 평균 소득보다 소득 불평등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으며, 더불어 어려운 다른 국가를 돕는 자선 활동에 임하는 정도도 부유한 국가일수록 더 열심히 참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소득불평등의 차이가 적은 나라일수록 참여 정도가 높았다. 우리가 부유함의 정도의 영향을 받을 것이라 생각해 온 많은 문제들이 실제로는 부유함이 아니라 소득 불균형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회적 불평등은 심리적인 면에서도 영향을 많이 미친다. 소득불균형의 차이가 커진 현재 과거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과 근심에 시달리고 있다. 소득불균형의 차이가 커지던 1970년대에서 1990년대 사이에 이런 증상을 겪는 사람의 수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는 것은 간과하기 힘든 수치이다. 과거에 비해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높은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허세에 가까운 불안정한 자아도취가 많아졌고, 공동체의 붕괴로 사회적 지위에 민감해졌으며, 정신적인 불안정이 드러난다. 이런 정신적인 불안정 역시 불평등 사회일수록 두드러진다.
또한 불평등이 증가할 수록 신뢰도가 떨어졌다. 신뢰가 낮은 사회는 타인을 믿을 수 없기에 쉽게 집을 비울 수 없고 차도 SUV차량이 선호되고, 이는 차량의 이름이 터프해지는데도 영향을 미친다. 양성평등의 면에서도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낮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결과가 나타난다.
수명의 측면에서도 불평등은 영향을 미친다. 선진국일수록 오래 살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고, 부유할수록 생존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정답이라고 보기 어렵다. 삶이 잔인하면 수명이 짧은 것은 맞지만 어느 정도 부유한 국가일 경우 부의 정도보다 평등의 여부가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 불평등은 높은 유아사망률, 에이즈, 우울증, 기대 수명 등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외에도 비만의 유형, 교육의 성취률, 십대의 출산에도 불평등은 영향을 미쳤는데, 먹을 때만 행복할 수 있는 저소득층의 모습과 자신의 경제적 요소나 사회적 지위에 의해 자신의 교육 성취에 대한 기대가 낮은 모습, 그리고 십대의 출산으로 인한 빈곤의 재생산까지 불평등은 사회의 여러 분야에게 유의미한 결과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결론은 평등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평등할수록 교육 성취도가 높아 교육을 통한 희망을 꿈꿀 수 있고 그 희망이 현실적이다. 평등할 수록 폭력으로 존경 받으려는 욕구가 낮아져서 무의미한 폭력이 적어진다. 평등할 수록 국민들의 사회 이동성이 높다.
평등은 개인이 만들 수 없다. 정치의 영향을 받아야 하고 사회 전방의 분위기가 조정되어야 한다. 올해는 두 번의 큰 선거가 있다. 그 선거들이 조금이나마 평등한 우리나라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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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국가들중 자살률 1위인 나라가 한국이다. 그런데 '우울한' 희소식이 있다. 그것은 바로 한국이 소득 평등 사회라는 것이고, 평등한 사회에서 더 흔하게 나타나는 유일한 사회문제가 바로 '자살'이라는 점이다. "뭐, 한국이 소득 평등 국가라고?" "한국이 언제 스칸디나비아 반도국이 되었는가?" 빗발치는 질의의 아우성이 벌써 내 귓가를 아프게 한다. 나 또한 의심스러웠다. 내가 한국이 소득 평등 사회라는 희소식을 '우울하다'고 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나를 포함한 '99%'의 불평등 체감지수에서 나온 당혹감과 괴리감을 반영하고 싶어서다. 그런데 지니계수를 들여다보면 한국이 일본보다 소득이 평등한 사회라는 점이 드러난다. 지니계수는 소득분배의 불평등 상태를 보여주는 객관적인 수치인데 한국의 지니계수는 2011년 기준으로 0.311이었다. 지니계수 0은 완전평등을 나타내고, 1은 완전불평등 상태를 말하는데 보통 0.4를 넘으면 불평등이 심각한 수준으로 간주한다. 2012년 OECD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지니계수는 0.3이고 일본은 0.323, 미국은 0.37이었는데 OECD 34개국의 불평등지수 평균은 0.311로 재밌게도 한국의 작년 수치와 같다.
내가 계속 지니계수를 언급하는 이유는 지니계수가 클수록 소득불평등이 심하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득불평등이 건강문제와 범죄와 비만과 같은 사회문제와 직결된다는 사회역학분야의 연구결과 때문이다. 《평등이 답이다》(이후, 2012)의 저자인 리처드 윌킨슨과 케이트 피킷은 부유한 국가 23개국과 미국 50개주를 대상으로 소득 불평등이 건강 불평등과 사회문제에 미치는 다양한 영향을 역학조사했다. 역학조사는 원래 질병 발생의 원인과 변화추이를 연구하는 의학적 방법인데 저자들은 이를 사회문제를 연구하는 사회과학 방법론에다 접목시켰다. 이를 그래프에 나타내면 가로축(x축)은 소득불평등을, 세로축(y축)은 건강과 사회문제를 나타낸다. 그래프가 좌하우상의 모양새라면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건강문제나 사회문제가 더 널리 퍼져있다는 소리다. 저자들은 건강문제와 사회문제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사회심리적 요인들 가운데 소득 불평등과 사회적 격차가 가장 주요한 '원인'이라고 강조한다.
책에서 자주 언급하는 대표적인 불평등 국가는 미국, 영국, 포르투갈, 호주이고, 평등 국가는 일본, 스웨덴, 핀란드, 벨기에다. 국제간 비교를 위한 국가선택 기준은 <세계은행>에서 2004년 4월에 발표한 세계 발전 지표에 근거하고 있다. 일인당 국민총소득을 공개한 국가 중 가장 부유한 50개 국가들의 명단에서 23개 국가가 최종 선별되었다. 한국은 아쉽게도 이 명단에 들지 못했지만 한국의 지니계수는 대략 일본과 비슷한 수준이라 보면 된다. 따라서 한국은 저자의 시각으로 본다면 소득 평등 사회다. 이런 사실이 위안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서울 강북에 살고 있어서일까? 강남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이 나의 불평등 체감지수를 급하게 올려놓은 탓일까?
저자의 말대로 "경제성장이 정답이던 시대는 끝났다". 그리고 경제성장과 더불어 평안과 행복이 증대하던 시대도 끝이 났다. 빈곤국가에서는 경제발전의 초기단계에서는 객관적인 기대수명과 주관적인 행복감이 빠르게 증가하지만 중진국 수준에 다다르면 증가속도가 감소한다. 국가들이 부유해질수록 평균적인 삶의 질이 건강수준과 행복수준에 공헌하는 비중은 점점 줄어든다. 문제는 소득격차와 지위격차가 우리 모두의 심리적 복지와 사회적 실행능력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가장 불평등한 사회에서 전체 인구 중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의 비율은 가장 평등한 사회보다 다섯 배나 더 높았다. 이와 비슷하게,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사람들이 수감될 확률은 다섯 배, 비만일 가능성은 여섯 배, 그리고 살인율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치솟았다. 차이가 이렇게 큰 이유는 간단히 말해서 불평등이 가장 가난한 층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불평등은 인구 대다수에 영향을 미친다."(218쪽)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 별 셋 나 셋, 별 넷……." 학자와 정치인들이 보다 일찍 이 노래에 깃들어 있는 '평등의 힘'에 대해 눈치를 챘다면 좋았을텐데. 오늘날 우리는 99%의 보통계층과 1%의 최고소득층을 비교하는 '양극화사회론'에 익숙하다. 양극화사회는 소득 불평등이 극단에 이른 사회인데 계니지수만을 보자면 한국은 양극화사회 운운하기는 아직인 것 같다. 그런데 이 지니계수가 왠지 믿어지지 않는다. 그럼 다른 지표들을 살펴보자. 지니계수외에도 피부에 와닿는 불평등지수를 손쉽게 확인하는 방법은 꽤 여러가지다. 가령 한 사회의 전반적인 우울증 비율이나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SUV)의 판매율을 보면 된다. 한국은 우울증 비율과 SUV 판매율이 꽤 높은 편에 든다고 생각되는데 과연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아닐 것이다. 굳이 학교 왕따까진 언급하지 않겠다.
우리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강력한 스트레스의 근원으로 낮은 사회적 지위, 친구의 부재, 어린 시절 받은 스트레스가 꼽힌다. 우울증의 확산은 근본적으로 불평등의 만연을 알려주는데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사회적 지위를 둘러싼 경쟁이 격화되고 사회적 평가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낮은 사회적 지위는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을 부르기가 쉽다. 가령 영국의 화이트 홀연구에 따르면 직장에서 지위가 낮을수록 심장병뿐만 아니라 암, 만성 폐질환, 위장병, 우울증 등을 더 많이 호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SUV의 인기도는 사람들간의 불신감이 고조되고 있음을 알려준다. 조시 루어는 SUV가 인기를 끄는 경향은 단호한 개인주의를 숭상하고 타인과 아예 접촉하지 않으려는 불신의 징표라고 강조한다.
'일엽지추'라는 말이 있다. 나뭇잎 하나 떨어지는 것을 보고도 가을이 왔음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이처럼 불평등 지수도 한 사회의 다양한 문제와 현상들을 단번에 간파할 수 있는 '일엽'에 해당한다. 예컨대 신뢰 수준, 범죄율, 수감률, 십대 출산, 비만, 정신질환 등 대부분의 사회문제는 그 사회의 경제수준이 아니라 불평등 수준에 의해서 정해진다. 우리 사회가 평등하지 않을 때 우리의 건강과 사회문제는 근본적으로 개선될 수 없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소득불평등의 원인으로는 증여와 상속의 차이, 교육 및 훈련 기회의 차이, 개인의 능력과 노력의 차이, 질병과 사고 등의 우연적 요인의 차이 등을 꼽는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불평등한 사회는 평등한 사회보다 건강문제나 사회문제가 세 배 내지는 심지어 여섯 배 넘게 열악한 경우가 발생한다.
"일례로 한 국가의 건강 수준이 낮다면 그 국가가 더 많은 사람들을 감옥에 가두고, 십대 출산율이 높으며, 읽기 점수가 낮고, 비만율은 높으며 정신 건강이 나쁘다는 것을 어느 정도 확신할 수 있다. 불평등은 다양한 분야에 걸쳐 국가가 사회적으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215쪽)
저자는 더 나은 삶, 더 평등한 사회를 구현할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고 말하면서 오히려 정치인의 정치적 의지 부족을 크게 우려한다. 저자는 평등에 이르는 두 가지 현실 노선을 비교하고 있는데, 하나는 스웨덴처럼 소득재분배를 지향하는 세금과 보조금 등 사회보장서비스를 통한 길이고, 다른 하나는 일본처럼 세금이나 보조금 이전의 소득이나 시장 수입을 평준화하여 재분배 필요성을 더는 길이다. 스웨덴과 일본으로 대표되는 이 두 노선은 상호배타적이거나 상반되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더 큰 평등을 위해서는 이 두 전략을 모두 사용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회문제에 잘 대처하는 국가들이 더 포괄적인 복지정책을 실시하고는 있지만 국가별 공공 사회 지출 규모의 차이는 불평등과 건강과 사회문제 지수 사이의 관계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고 있음을 강조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그 사회가 얼마나 평등한가이지, 어떻게 평등에 이르는가 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4·11총선을 앞둔 정치인과 시민 모두 이 책을 필독하고 더 많은 평등을 구현하기 위한 정치적 의지를 다함께 불태웠으면 합니다.
※오식 정정
310쪽 "『포춘』 선정 선정 500대 기업을 보면"→"『포춘』 선정 500대 기업을 보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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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읽었던 책 중에 새사연(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소)에서 펴낸 <분노의 숫자>라는 책을 기억합니다. 우리나라의 온갖 불평등한 상황을 수치로 보여주고 있어서, 읽을수록 마음이 불편해지면서도 의문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분노하지 않는 것일까?' 라고 말입니다. 불평등의 정도가 이미 임계치를 넘어섰음에도 분노하지 않는 사회, 그저 불행은 개인이 감내해야 할 몫이고, 지금의 불행은 과거 내 잘못에서부터 기인한다는 자책을 하도록 만드는 시스템에 어느덧 세뇌되어버린 사람들. 그럼에도 대중이 각성하는 순간, 새로운 세상이 열릴 수 있을 거란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습니다. 언제까지 그 작은 '희망'을 품고 살아야 하는지...
이 책의 가치는, 누구나 인정하는 권위를 지닌 세계은행, 세계무역기구[WTO], 유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의 공식 보고서를 근간으로 해서 상대적으로 평등한 사회(국가)와 불평등한 사회에서 신뢰정도, 정신질환, 기대수명과 유아사망률, 비만, 아이들의 교육성취도, 십대 출산, 살인, 감옥 수감률, 사회계층 이동 등이 어떤 차이를 보이는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원하는 답을 만들기 위해 새롭게 조사를 하거나 통계를 다소 억지스럽게 만든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료가 불평등이 얼마나 해로운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기대수명과 1인당 GDP와의 관계를 나타낸 그래프를 보면, 2만 달러부터는 상관관계가 거의 사라지고 완만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작년도 우리 나라 1인당 GDP는 2만8천달러입니다. 우리나라의 기대수명도 다른 나라 못지 않게 높은 수준입니다. 하지만, 소득이 많으면 다른 모든 여건들도 소득이 낮은 나라보다 좋을 것이란 일반적인 예상은, 위에서 언급된 '신뢰정도', '정신질환' 등의 요소를 소득과 비교해 놓은 자료를 접하는 순간 순식간에 무너지고 맙니다. 이 모든 요소들이 소득이 높고 낮음과 거의 관계가 없음을, 오히려 그 사회가 평등한가 불평등한가 하는 것에 더 영향을 받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OECD 선진국들을 비교한 자료에서도, 미국의 50개 주를 비교한 자료에서도 불평등은 사회를 좀먹는 악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득의 평등함이 더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가 처한 수출부진과 내수진작을 위한 가장 좋은 처방은,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일정수준의 소득이 보장되는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 해법이 될 수 있음에도 정부의 정책은 그와 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마치 전 국민의 비정규직화, 노예화를 원하는 듯한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위기를 자초하는 꼴입니다. 소수는 행복할지언정 대다수는 불행의 늪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책에서 주장하는 해법 중 하나가 종업원지주제입니다. 노동자가 직접 경영에 참여할 수 있다면 소득의 불평등한 분배를 어느 정도 완화시킬 수 있겠습니다만, 우리나라 여건에서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경영간섭이라며 노동조합의 경영참여 요구 자체를 불허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성공한 사례를 보자면(몬드라곤 처럼 말입니다), 분명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고, 소득의 불평등을 완화시키는 일이 경제민주주의와 직결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회사의 지분을 전 노동자들이 골고루 나누어 가지고, 회사 정책과 의사결정이 민주적으로 진행되는 회사를 꿈꾸는 건 너무 이른 생각일까요? 적어도 평등한 사회에서, 행복하게 살아보고 싶다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한 걸음 내디뎠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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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부유한 선직국과 미국 50개주를 대상으로 불평등과 건강과 사회문제 사이의 관계를 여러가지 실증적인 데이터(소득 불평등과 사회적 지위, 정신질환, 폭력, 수감자 수, 사회 이동성 등과의 관계)를 근거로 평등한 사회의 중요성을 조명한다. 저자는 "많은 선진국들이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사회적으로 실패하고 있다. 성장이 정답이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평등이다."라고 말한다.
저자는 부유한 23개 국가와 미국 50개주를 대상으로 불평등한 사회와 평등한 사회를 비교했다. 결과적으로 각종 데이터 수치에 따르면 일본과 북유럽 국가들이 미국보다 더 평등한 사회라고 말한다. 사회의 신뢰 수준과 건강, 교육, 범죄율, 복지 등 선진국이 직면한 '건강과 사회문제'를 망라해 본 결과, 평등한 사회만이 늘 바람직하고 모두에게 좋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온갖 문제들의 공통된 원인은 단 하나, 바로 불평등이다. 평등하지 않은 사회가 치러야 하는 유,무형의 사회적 비용은 상당하다. 다시말해 우리가 사회를 평등하게 만든다면 높은 사회적 비용을 치르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더 많은 평등을 요구해야 할 강력한 근거들을 제시하고 있다. 더 높은 물질적 삶의 기준이 우리에게 제공할 수 있는 것이 한계에 다다른 지금, 우리는 건강한 삶의 질을 향상시킬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바로 평등한 사회가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더 큰 평등, 구성원 전체의 더 큰 복지는 국가의 성취도와 성과를 증진시킨다고 한다.
반면에 불평등은 매우 강력하게 사회를 분열시킬 수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사회 문제 중에 하나인 저출산(현재까지 정부에서 약 100조 투입) 문제의 해결책에 대하여 뚜렷한 효과가 없는 것은 사회 곳곳에 뿌리 잡고 있는 불평등 때문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정책적 투자 효과가 나오리라 생각한다.
영국이나 미국에서 1980년대와 1990년 SUV차량의 인기가 급상승한 것은 사회관계가 무너지고 신뢰가 부족하다는 또 다른 증거라고 말한다. 불안감과 서로에 대한 두려움이 팽배하여 자기 보호 본능 불러일으 켰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SUV차들의 이름이 터프한 이름이 많은 것 같다. 현재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그렇지 않나 싶다. 주택의 보안 시스템 증가도 이를 뒷받침한다고 한다.
평등한 사회일 수록 여성의 지위가 더 높고, 육체적으로도 더 건강하다고 한다. 부가 공평하게 분배된 사회가 더 건강하다고 말한다. 불평등한 사회는 상대적으로 부정의 비용이 높아지고 평균 기대수명이 단축된다고 한다. 소득 수준에 상관없이 더 평등한 곳에 사는 편이 좋다고 한다. 부와 권력이 평등하게 재분배되고 평등한 경제가 건설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그 사회가 올바르게 발전하고 행복한 사회가 되기 위한 세 가지 요소로 정책 입안의 중요성, 기회 균등, 평등이라고 생각해 본다. 기회 균등이란 자신의 장점을 발휘하거나 노력을 한다면 누구라도 자신과 가족을 위해 더 나은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획득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기회 균등 만으로는 이 사회가 절대적으로 평등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사회의 정책을 입안하는 사회 지도층에서 그들의 기득권을 버리고 대의를 위해 정책적 불평등을 먼저 해소해야 할 것이다. 평등 그 자체를 확대하기에 앞서 기회의 균등을 주장하고 기회 균등에 앞서 그 기회를 제공하는 정책 출발선을 제대로 그어야 할 것이다. 소득 불평등이 건강과 사회문제와 연관되어 있는 이유는 불평등 자체가 아니라, 애초에 사회를 더 혹은 덜 불평등하게 이끄는 정책적 요소가 있었지 않나 싶다. 따라서 공정한 정책을 추진해야 소득 격차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고 부유한 부모가 부유한 자식을 갖고, 가난한 부모가 계속 가난한 자녀를 갖게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 사회의 변혁이 필요하다.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사회 이동성이 낮다는 것은 소득의 사다리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은 부와 지위를 유지하기 쉽지만, 바닥에 있는 사람들은 그 사다리를 오르기 어렵다는 뜻이다. 더 큰 불평등이 사회구조를 경직시키고 사회적 사다리의 상,하향 이동을 더 어렵게한다고 이 책은 말한다.
여러 사회에서 인종적 소수자와 지배적인 다수 인종이 있듯이 우리 직장에서도 소수직렬과 다수직렬이 있는데, 어느 한 쪽이 편견과 차별을 받거나 상대적 박탈감이 생기지 않도록, 낙인의 심리적 효과가 발생하지 않도록 세심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한 것 같다.
끝으로 이 책은 조언한다.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평등해지려는 정치적 의지가 중요하고, 정치인과 사회 지도층과 기득권층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경쟁 사회 즉 얻기위해 싸워야 하는 사회에서 공감과 호혜성, 협업에 의존하는 사회로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헌신적이고 지속적인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정책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겠다는 목표 아래 수십 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변해야 하며, 사회는 자신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명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 기억하고 싶은 몇 개의 인용글 - <존 F.케네디> 교육이 발전해야 국가가 발전한다. 인간 정신이야 말로 국가의 근본 자원이다. / 교육에 관한 특별 연설 / 1961.2.20. < >'자전거 반응'이란 사람들이 자기보다 우월한 사람들에게는 고개를 숙이고 열등한 사람을 짓밝는 행동이 자전거를 타는 모양과 비슷해서 붙은 이름이다. <존 스타인벡> 슬픈 영혼은 세균보다 빨리 당신을 죽일 수 있다. / 찰리와 함께한 여행에서 <실과 그레이엄> 음식은 가장 원초적인 형태의 위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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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이란 단어만 등장하면 시장자본주의에서는 거부감을 드러내고, 혹여 가진 것을 빼앗기기나 할까하며 어떤 숨겨진 저의(底意)는 없는가하고 경계의 사시(斜視)를 치뜬다. 이것은 이 어휘 자체가 내재하고 있는 동등함의 가치 때문에 평균이상의 것을 가진 자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이 말하려는‘평등성’의 지향은 완전 평등과 같은 이상적 가치나, 유토피아의 공상적 가치를 말하려는 것도 아니요, 정치적, 도덕적 이데올로기 중심의 그 흔한 편협성의 이야기가 아님은 물론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이론적 접근 또한 아니다. 단지 책의 서문에서 저자들이 선언하고 있듯이 “평등의 혜택을 인식하는 사회”, 즉 “사회를 바라보는 방법을 바꿀 수”있기를 기대하며 경험적이고 실증적이며 구체성을 띤 인류애라는 보편적 의지에 의해 써진 시장민주주의에서 발생하고 있는 사실의 문제적 현상들을 분석, 규명한 것일 뿐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소득 상류계층인 부자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써진 것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오늘 우리가 사는 사회는 인류 역사이래 그 어느 시대보다 물질적 성공을 이루고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의 사회를 성공사회라고 말하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물질적 성공만큼이나 사회적 실패의 증가로 더 많은 사회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제아무리 경제성장이란 것을 진행해도 삶의 질, 즉 행복과 같은 가치가 올라가지 않는다. 외려 세계 최고의 부자나라인 미국의 1952~1993년에 이르는 40년 동안 미국인들의 근심수준이 꾸준히 증가했음을 보여 줄 뿐이다. 삶에 대한 불안이 거의 사람들을 정신질환의 상태에 몰아댈 정도로 개인적 행복지수는 곤두박질치고 있다. 왜 사회의 평균적 부는 지구촌 최고의 수준에 이르렀는데 구성원들은 삶의 안락함을 잃어가고만 있는 것일까? 그래서 저자들은 시장민주주의 선진 25개국을 대상으로 1인당 국민소득수준과 소득격차를 나타내는 소득불평등 지표를 분석해 보았으며, 여기서 그들은 의미심장한 관계성을 발견한다. 소득 상위 20% 대비 하위 20%에 대한 소득비율인 국가별 소득 불평등도(度)를 보았더니 미국, 영국, 싱가폴, 포르투칼, 호주는 소득하위계층에 비해 상위계층이 8~10배의 수준을 보였으며, 일본, 핀란드,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는 4배 전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일본 등 5개국에 비해 미국 등 5개국은 소득불평도가 월등히 심화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이를 기초로 하여 기대수명, 사망률 등 각종 삶의 지표, 그리고 범죄율, 십대출산율, 사회 신뢰수준, 수감자비율 등 사회문제들의 통계수치와 25개국의 소득 불평등지표와의 관계를 분석하고 있다. 결과는 예외 없이 소득 불평등이 심화된 국가들이 이들 사회문제의 발생빈도와 삶의 지표에서 최악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고등학교 자퇴율, 십대여성 출산율, 10만 명 당 수감자수에서 미국, 영국, 포르투칼, 싱가폴 등이 단연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으며, 이 수치들은 일본 등 불평등도가 낮은 국가들보다 수십, 수백 배에 이르는 끔찍한 상황이라는 점이다. 그렇다고 사망률, 신생아 사망률, 정신질환자율과 같은 건강지표는 나은가 하면 그것도 역시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이들 불평등심화 국가들이 단연 높은 수치를 보인다. 게다가 대외원조비율, 사회신뢰지수, 기대수명, 유니세프 아동복지지수 등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형편없이 낮음을 나타낼 뿐이다. 즉 소득 불평등과 각종 사회문제는 강력한 상관관계를 지니고 있다는 의미이다. 물론 상관관계가 매우 높다고 인과관계까지 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인과관계마저 결정적인 관계성, 부인 할 수 없는 연관성을 인정하게 된다. 이 책의 대부분이 바로 이 불평등과 사회문제들의 인관관계를 증명하는데 할애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례로 불평등이 폭력과 십대출산율, 기대수명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는가 보자. 사회적 지위가 부(富)의 능력에 따라 인간을 서열화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인 곳, 한국사회를 생각하면 될 것이다. 책에 통계대상이 된 25개국과 같이 우리도 시장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으니 인정하지 못할 것도 없지 않은가? 이런 곳에서는 “드러나는 성공이나 실패의 징후”, 즉 더 나은 직장, 더 높은 소득, 더 많은 교육, 더 넓고 좋은 집, 더 좋은 차와 옷 등이 사람들의 위계적 차이를 평가하는 척도가 된다. 왜 그렇지 않은가? 우린 수 초 만에 상대방의 아래위를 훑어보며 사회적 서열의 판단을 끝내지 않는가 말이다. 그 때 이런 징표들을 활용하는 것이 우리에게 내면화되어 있기 때문에 별 정신적 부담 없이 이러한 판단을 가볍게 내릴 수 있게 된다. 물론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의 정도는 나라마다 다르다. (상대적으로 평등화된 - 불평등이 심화된 미국, 영국 등에 비해서 - 북유럽 및 일본은 분명 사람을 계급적으로 판단하는 데 이들처럼 극단적으로 노출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면 이 물질적 서열화 현상이 어떻기에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일까? 최상층의 소득계층인 자들도 그렇겠지만 서열이 낮은 사람들 역시“사회적 평가에 대한 반응”에 민감하게 행동한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고 그래서 사회적 비교에 감수성이 자극된다. 더구나 계급적 편견에 사로잡힌 사회(부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의 사회적 거리가 커지고 강남과 강북이란 지리적 격리로까지 전환되어 사회계층을 나누는 한국사회이기에 이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에서는 ‘사회적 평가 위협’이 모든 삶에 작동하고 있어 지위경쟁이 격화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수치와 모멸, 위축과 열등감을 벗어나기 위해서 지위의 성공적인 차지라는 방법이외에는 없다. 그런데 소득 하위계층은 이 지위경쟁에 뛰어들 자원이 없거나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위를 드러내는 것을 모두 박탈당한 상황에서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폭력적 반응을 표출하는 것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사회 바닥계층의 아이들은 어떨까? 이들 역시 자기존중과 지위달성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학교에서 배운다. 극단적인 승자독식의 사회이며 사람을 구분하고‘사회이동성’이 차단되다시피 한 사회임을 터득한 아이들은 공격적, 착취적, 단기성과에 몰두하는 경향을 보일 수밖에 없게 된다. 아마 한국 사회의 급증하는 학교폭력이 이러한 현상의 적절한 사례일 것이다. 여자 아이들 또한 질적 경쟁에서 승산이 없다는 것을 이해한다. 따라서 이들이 채택하는 것은 양적 승부이다. 그 양적 승부가 자신의 아이를 갖는 것이다. 자신의 우호자, 자아를 확인시켜 줄 수 있는 존재에 집착하는 것이다. 이러한 모든 행동패턴이 상대적인 박탈감, 바로 불평등에 기초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과관계에 대한 사례가 개별 사회문제마다 빼곡하다. 타인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 그리고 공동체의 붕괴와 사회분열, 복지 교육예산은 벌벌 떨면서 형벌제도와 사법체계의 확충이라는 사회적 약자를 처벌하는 데는 예산을 아까워하지 않는 것, 살인율과 자살율이 증가하는 것, 이 모두가 어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만연한 불평등 국가일수록 악화되고 불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을 목격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그렇다면 불평등이 이들 하위계층, 사회적 서열이 낮은 사람들에게만 문제가 되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최근의 보수 언론지의 보도가 있었지만 강남 3개구의 기대수명이 타 지역 보다 길다는 통계가 있었다. 그들의 건강이 다른 지역의 사람들보다 양호하다는 의미이다. 바른 자료일 것이라 믿는다. 그러나 같은 소득수준의 훨씬 평등화된 국가의 사람들보다 더 건강하고 수명이 긴 것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한국은 이 책의 통계자료 대상국인 25개국에 끼지 못했다. 아마 신뢰할만한 국제적 기준의 소득 불평등 지표를 가지고 있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 건강자료 분석에서 불평등이 심한 미국의 부자들보다 평등화된 나라들의 부자들 수명이 훨씬 길고 사망률도 낮다는 것이다. 불평등 사회는 이같이 부자들의 삶의 질도 동반적으로 떨어뜨리고 있음이 수많은 사회문제들의 발생율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불평등은 빈자와 부자 할 것 없이 사회의 총체적 질을 후퇴시킨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는 자명해졌다, 경제성장이 더 이상 인간의 삶을 개선시키지 못하는 것이라면 불평등 정도를 조금만 완화시켜도 그것이 사회전체의 행복지수를 제고시키고, 신뢰를 회복하며, 사회통합을 통한 호혜성, 상조성, 공동체적 안락을 증진시킬 것이다. 그러나 얼마 전 보수 언론의 종합편성채널 TV 인터뷰에 나온 D그룹 재벌 총수의 말처럼 99개를 가져도 1개를 가진 자의 것을 빼앗아 100개를 채우고 싶다는 욕망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주장하듯이 현대의 소비주의, 물질주의, 개인주의는 별도리 없는 것 아닌가하고, “불멸의 인간 본성”에 반한다고 반론을 펼 수도 있을 것이다. 과연 그럴까? 동일한 소득수준에도 불구하고 불평등 정도가 일본에 비해 3배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 것은 인간 본성에 대한 가정을 달리하게 하지 않는가? 더구나 ‘평등’은 ‘동일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소득 상위 20%에게 하위 20%가 같아지자고 하는 것이 평등이 아니다. 실제 “법 앞에 평등원칙이 있다고 사람들이 동일해 지지 않듯이” 동일성의 지향은 낭만적 공상일 뿐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25개 선진국의 소득 불평등 정도를 보더라도 가장 낮은 일본도 대략 4배의 격차를 보이고 있다. 잘 알려진 ‘최후통첩 게임(Ultimate Game)'은 인간의 ’평등 본능‘을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또한 우리가 협동의 힘을 발휘할 때 뇌의 보상센터가 활성화되어 이기적 행동욕구를 억제하고 있음이 밝혀진 것이나, 사회적 지위와 정반대에 있는 우정처럼 반(反)지배전략을 통해 긴장을 완화하는 것은 인간이 얼마나 공감과 동일시라는 집단적‘우리’의 형성을 필요로 하는 존재인지를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다. 물론 이를 실천하는 데에는 현실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지위와 위계에 의해 덜 분리된 사회, 공동체 의식이 회복된 사회를 향한“정치적 의지”가 절대로 요구된다. 사실 부와 결합된 현재의 정치권력이 이를 스스로 이행할 것을 바라는 것은 죽은 고목에서 새 잎이 돋아나기를 기대하는 것만큼이나 요원한 일이다. 이 책은 몇 가지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고 있는데, 조세 정책과 복지혜택을 통한 소득 분배 규칙을 교정하는 것이지만 이보다 앞서 일본처럼 아예 소득 자체의 불평등 격차를 줄이는 것이다. 오늘의 불평등은 경제영역에서 민주주의가 배제되어 야기된 것이니 만큼 노동 임금의 왜곡된 불평등 구조를 시정하는 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소득 불평등 격차를 줄일 때 인구 전체에 미치는 심리적 복지 증진은 그 어떠한 정책보다 커다란 효과를 보이고 있음이 증명되고 있는 이상 “정상상태 경제”로의 이행을 위한, 평등의 가치로의 이행은 포기할 수 없는 인류의 가치라 할 것이다. 이 책은 이와 같이 공상적 완전 평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심화된 불평등을 줄여보자는 것이다. 평등성이 지니는 궁극의 미덕을 향해서 말이다. 평등이란‘공정함’이야말로 인간의 본성이다. ‘마이클 샌델’이 ‘정의(Justice)’를 통해 공정함의 고귀한 가치를 말했듯이 저자들의 ‘평등’또한 공정함의 인류적 가치를 실물경제사회를 통해 명쾌하게 설명한 노작(勞作)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많은 이들이 저자들의 바람처럼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에 작은 변화가 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대해 보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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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평등이 답이다]는 평등한 사회가 불평등한 사회보다 신체적 정신적 건강, 범죄 등으로부터 자유로우며, 사회 구성원들이 보다 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임을 말하고자 하는 책이다. 사람들 앞에서 열등감을 느끼고 싶지 않은 인간의 심리, 누군가에게 비웃음 사고싶지 않고 자기가 속한 사회 안에 인정받는 구성원으로서 존재하고 싶지 않은 심리란 굳이 어떤 수치적 결과나 계량분석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사회에 속해본 사람이라면 의식적으로나 본능적으로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처음 유치원에 가서 친구들과 섞여 놀며 소사회를 경험하는 다섯 살 꼬마아이까지도 말이다. 단지, 모두가 그렇다고 느낀다는 것을 섣불리 인정하기엔 이 '평등심리'가 요구하는 '이권'이 너무도 크다는 게 문제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왜 평등한 사회는 늘 바람직한가?라는 문제에 대해 저자들은 다양한 국가의 사례를 참고, 데이터를 확보, 분석함으로써 이를 가시적으로 증명하고자 했다. 책의 후기에서 저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분석하려는 시도의 대부분이 극히 미시적이며, 임시방편적이었음을 이야기하며 그들의 비판을 어떤 방식으로 반박하였는지를 보여준다. 통계학의 오류, 문제 취사 선택의 오류 등등 다양한 이유로 그들의 입장에 대한 반박이 있었지만, 평등한 사회가 항상 좋다는 것에 대한 본질적인 비판이 될 수는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독자로서의 나 역시, 책400쪽에 달하는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던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고 까지 느꼈던 인간의 본성적인 부분을 꼬박꼬박 그래프 및 데이터 분석을 통해 설명한다는 게 도리어 우스워 보였다. 저자들의 시도가 아닌, 이러한 분석을 요구하는 현실 자체가 말이다. 오히려 저자들의 견해에서 더 나아가 개인적으로 나는 평등이 답이다,에서 말하는 내용이 적용될 수 있는 부분은 빈부격차의 문제에 그치지 않다고 본다.
어떤 사회에든지 속해 본 사람은 작은 주부들의 차茶 모임이랄지, 학교 혹은 학원에서, 미팅 자리나 처음만난 사람들과 점심을 먹는 자리라도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소외받아본 사람, 혹은 소외받는다는 일말의 느낌을 가져본 사람이 품어보았을 절망이나 좌절, 분노나 무기력함을 한 번 쯤을 느껴 보았고,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랬다면 책에서 말하는 불평등한 사회에서 자존감을 잃은 가난한 계층의 수행능력 하락이나, 비정상적인 야망심, 패스트 푸드를 먹음으로써 현실을 도피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행동, 음식 중독, 폭력심리 같은 것들을 응당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많이 공감한 부분은 두 가지의 자존감에 대한 부분이었다. 인간의 자존감이 건강한 방향과 부정적인 방향으로 흐를 수 있으며, 후자의 경우 오히려 타인보다 자신이 열등하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은 방어기제에서 발생한 자존감이라는 내용이다. 저자는 현 시대의 젊은이들이 후자의 자기 방어적인 자아도취에 빠져있다고 비판하며 이는 불평등한 사회에서 열등감을 감추기 위해 주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좀 더 어린 시절 이런 종류의 자기 방어를 겪어 본 사람으로서도 이 부분에 대해 공감하지만, 싸이월드나 블로그에 도배된 나와 비슷한 연령대, 혹은 그보다 좀 더 어린 연령대의 사람들을 보면 방어적 도취에 빠져봤거나 빠져있는 이가 비단 나 하나만은 아님을 실감케 한다. 결국 방어적 도취는 자기가 생각한 자신을 자신이 생각하는 금전적으로 여유롭고, 시각적으로 모든 게 완벽하고, 경력상에도 흠집없는 비틀린 사회상에 자신이 완벽히 합치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때문에 정신적인 도피법으로 삼는... 그런 거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그 사회에 완벽히 합치된다는 것을 비틀린 방법으로 증명해 보이거나, 아니면 스스로 어설픈 아웃사이더질을 하거나.
사실 불평등한 시대에 사람들이 지쳤다는 것은 이미 참선이니 요가니 하는 마음 수행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깊어지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요구하며 가르치는 책들이 자주 출판되며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등의 현상으로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불평등이라는 것은 무한 경쟁을 의미하는 걸테니.
결국 저자들은 평등주의자들이 나서서 새로운 민주주의를 실행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어떻게[HOW]의 문제는 저자들의 몫은 아니다. 저자들은 증거를 대보라는 사람들에게 당연한 것들을 증명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몫을 했으니 말이다.
+++ 1.이러니 저러니 해도 이런 종류의 책들이 더 자주 보이고 자주 나오는 걸 보니 확실히 서브프라임 이후 미국도 먹고살기 힘들어지긴 힘들어졌나 보다.
2.사실 한국이 미국보다는 평등한 사회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평등한 사회는 아니지. 평등한 사회가 행복하다는 가치아래 파이를 나누기 싫어하는 쪽은 한국만큼 평등한 사회가 없다고 외치지만, 확실히 무의식적 계급이 존재하는 사회는 평등한 사회가 될 순 없다고 본다.
3. 이 책을 보면서 웃겼던 건, 한국의 무상급식 논란... 무상급식이란 게 결국은 위 책이 말하던 사회적 소외감을 덜어주기 위한게 주 목적인데, 우습게 전도되어버렸었다. 사실 인문논리와 경제논리가 싸워서 이기면 백프로 경제 논리가 이기게 마련이다. 왜냐면 저자들도 지적했듯이 불평등한 사회에서는 호혜적인 개념이 상당히 적은 편인데, 그런 불평등한 사회에서 자기주머니에 있는 돈으로 어린아이들의 밥값을 책임지라니 다들 싫은 거다. 그러니까 들키지 않게 소외계층만, 이라는 것이라는 논리 자체가 경제논리라는 거. 문제는 다른 아이들이 가난한 아이가 무상급식을 먹는 걸 모르게 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무상급식을 받는 아이가 무상급식을 받는다는 걸 몰라야 한다는 건데, 경제 논리로 치환하니 저게 저렇게 우스운 방식으로 바뀌었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어차피 애들한테 그리 양질의 밥을 먹는주는 것도 아니고 무상급식정도야... 했었던 편이었는데. 어린 학생들에게는 나만 공짜밥을 먹는다, 혹은 다같이 먹는다,로 다가올 상황이 정치적 이권이 걸리면서 무상급식을 한다, 하지 않는다 들키지 않게 소외계층만한다,라는 주장으로 변모했던 게 좀 안타까웠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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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불평등의 사회적 함의를 이보다 더 자세하게 짚어준 책을 찾아보기도 어려울 것이다. 금융위기 이후 우리나라도 개천에서 용나기 힘든 사회구조로 되어가고 있고 세계적으로도 20대80의 사회로 착착 진행되어 살아가기가 점점 수월치 않다. 그러한 사회구조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이 책은 통계자료를 통해 실증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왜 우리는 그러한 사회구조를 바꾸기 위해 정치인들에게 뭔가를 요구해야 하는지도 함께 말이다. 개인적으로 글만 가득 실려 있는 책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생각했던 것보다 책이 좀 두꺼웠지만 그래프가 많이 실려 있어서 그 그래프들을 보면서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 여러나라의 사회구조는 이렇구나 하고 이해해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다만 정작 우리나라에 대한 자료가 없고 아시아 국가 중에는 일본과 싱가포르밖에 안들어 있던 점은 매우 아쉽다. 전하려는 메시지는 비교적 익숙한 것이지만 자료를 많이 동원하고 있는 점에서 큰 점수를 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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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해야 건강하다'의 후속편이라고 할 수 있다. 분배의 평등을 통해 많은 사회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을 꽤 다양한 리서치를 가지고 설득력 있게 전개하고 있다. 그리고 저자의 주장을 받아 들이는 데 크게 무리가 없다. 그러나 현실을 알아도 개선할 여지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제러미 리프킨이 이야기 하고 있는 수평적 구조의 권력 이야기도 진보주의자라고 자칭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름 설득력 있지만, 현실적으로 누가 그렇게 나설 수 있겠는가? 롤스도 제안하고 실행하는 방법을 이야기 했고, 제프리 밀러도 소비세라는 것을 들어 분배의 정의를 이야기 했지만, 누구, 혹은 어떤 국가가 이러한 아이디어를 현실에 반영할 수 있을까? 노암 촘 스키가 이야기 한 소수의 사람들이 모이면 힘들겠지만, 많은 무리의 수가 모이면 가능하다라는 긍정적인 가능성은 결국, 가능성에 불과한 것이다. 저자의 메세지는 분명 설득력 있었지만, 현실을 타계할 가능성에 있어서 분명히 한계가 있다. 그 모습이 어떤 문제 보다도 '경제'에 방점을 찍고 있는 전 세계적 흐름이 그러하다. 실패한 공산주의와 저자들이 주장하는 평등은 다른데, 적어도 한국에서는 빨갱이로 몰릴 수 있다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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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라는 분야가 사회나 과학의 수많은 현상을 해석하고 입증하는 방법으로서 많이 사용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역시 단점과 오류를 지니고 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논문을 위한 통계작업을 해 보았던 경험을 복기해봐도, 어떤 결과를 위해 요소들과 변수들을 이리저리 굴려댔던 일은 처음 내세웠던 가설과 전제를 뚝심있게 밀고 나가지 못했음을 반증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수많은 통계자료를 통해 하나의 전제가 일관되게 드러나고 있고, 해석이나 자료의 오류가능성에 대한 수많은 반박에 대해 조목조목 답변을 해 내놓고 있는 이 책의 내용은 결과를 신뢰할 수 밖에 없는 객관적 힘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 신뢰할 수 밖에 없는 결과는 '불평등은 인간 개인과 사회를 아우르는 모든 영역에서 수많은 문제를 야기한다.'는 내용이었다. 저자는 수많은 통계자료를 인용하여 위와 같은 하나의 강력한 결론을 내리고 있지만, 기실은 이전부터 제기되어 왔던 인간사회의 근본적 문제를 연역적 방법으로 재증명해낸 작업이라 볼 수도 있다. 인간사회의 불평등은 자본주의 체제가 도래하면서 나타난 자연적인 현상이라 볼 수 있고, 그것이 신자유주의 체제를 통해 더욱 극단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해석한다면, 불평등의 문제는 자본주의 자체의 문제라 볼 수 있다. 자본주의 자체의 문제는 다른 표현으로 하자면 분배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인간은 이윤을 위해 지구환경을 파괴해 온 나머지, 이제 생존을 위한 환경문제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개발과 자원소모를 해대었지만, 동시에 심각한 분배의 불균형을 유발해 여전히 기본적인 생존의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가난한 이들을 존재케 했다. 지구상의 인간은, 동시에 국가라는 어떤 테두리로 구분되어 이들을 각각 대표하는 위정자들은, 그들의 이익과 우월감을 위해 기본적인 생존의 문제가 걸린 이들을 위한 어떤 구제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고, 동시에 차고 넘칠 정도의 물질을 소유한 인간들이나 국가들은 너무 많아서 문제가 되는 개인적 사회적 부작용을 겪고 있다. 사실 이 책이 말하는 불평등의 문제를 자본주의와 분배의 문제로 치환하여 설명하기엔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있어 다시 말하기가 번거로울 정도이다. 이를 해결하는 대안의 문제는 참 간단하면서도 어렵다. 사람들은 편리의 문제 앞에서 타인의 어려움을 애써 망각하려 한다. 자신의 물질적 부유함이 주는 편리 앞에서 타인의 가난과 굶주림은 양심적 측면에서 기부나 적선의 방식을 택하고 말지만, 사실 그것이 답이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너무 많이 가진 자가 스스로 가진 것을 포기하는 것, 그러니까 적당한 수준의 자발적 가난이 분배의 문제를 긍정적으로 해결하고 생존의 위협수준이 된 지구를 구하며, 기본적인 삶의 요구마저도 위협당하는 이들을 끌어올려 인간적 존엄을 유지케 할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생리상 그것은 자연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인간사회가 자본주의를 포기하고 대안적 체제로 나서지 않는 한, 국가통제나 국제적 합의에 의한 규제에 동의하지 않고서는 이루어질 수가 없다. 그것은 이제는 언급하기 조차 지리해진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포기하는 일과 일맥상통할 것이다. 쉽게 말하여 착한 자본주의, 이것으로의 회귀와 긍정적 조율이 어쩌면 현재로서는 가장 쉬운 공존의 방법이자 합리적인 처치일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근본적인 대안과 주류경제학의 입김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수많은 대안경제체제의 존재를 굳이 여기서 언급하지 않고서 말하자면 말이다. 이렇게 따져들어가다보면, 이 책은 다시말해 읽기 어렵지가 않다. 연역적 해석의 장점과 통계 그래프가 주는 간편함이 이 책을 쉽게 읽을 수 있게 한다. 이를 바탕으로 설명하는 내용들은 조금의 사회적 이해가 있다면 상식선의 설명이기에 쉽게 받아들여진다. 굳이 독특함을 이야기하자면, 서양의 연구들이 보여주는 연역적 추론과 논리의 어떤 힘이 유독 강렬하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