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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우리 땅이다! - 너무도 명백하게
"독도는 우리 땅이다! - 너무도 명백하게" 내용보기
어제(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외교부 정례브리핑에서 한 일본 기자가 외교부 대변인을 향해 다음과 같이 질문했다. "모레(10일)가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한지 1년째 되는 날이다. 이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계기로 한일관계가 악화되는 전환점을 맞이했다는 지적이 있다"        일본(일부 극우파)이 생각하기에 독도는 본인의 영토인데 한국 대통령이 방문했기
"독도는 우리 땅이다! - 너무도 명백하게" 내용보기

       어제(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외교부 정례브리핑에서 한 일본 기자가 외교부 대변인을 향해 다음과 같이 질문했다. "모레(10일)가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한지 1년째 되는 날이다. 이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계기로 한일관계가 악화되는 전환점을 맞이했다는 지적이 있다" 


       일본(일부 극우파)이 생각하기에 독도는 본인의 영토인데 한국 대통령이 방문했기 때문에 외교적으로 마찰이 빚어진것 아니냐는 질문이었던 것이다. 

       이에 앞서, 일본 내각부는 지난 6월, 독도에 대한 국민 여론조사를 실시, 이달 1일에 '독도가 일본 영토' 라며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도발행위를 서슴치 않았다. 일본 내각부가 실시한 여론조사는 성인 3000명을 대상으로 '독도가 역사적, 국제법상으로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생각하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에서 응답자의 60.7%가 독도가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대답했다. 심지어 '한국이 경비대원을 상주시키는 등 불법 점거를 계속하고 있다'며 63%의 일본 국민이 대답한다고 한다.  

참고: 일본정부의 독도 설문조사 
http://www8.cao.go.jp/survey/tokubetu/h25/h25-takeshima.pdf

       그런데, 일본 정부가 1일 발표한 독도에 대한 국민 여론조사가 허술하기 짝이 없는 조사라는 사실이 한 언론인을 통해 밝혀졌다. 일본의 독도 설문조사는 객관성이 확보되어야 하는 여론조사의 보편적인 기준에서도 완전히 벗어나 있었고 '일반적인 사전설명'을 진행한 후 답을 묻는 형식의, 즉, 이미 알려주고 대답을 묻는 형태의 조사였다는 사실이다. 8월 15일 일본의 패전일, 한국의 광복기념일을 앞두고 계획적으로 진행한 아주 '후안무치'한 행동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일본의 이런 조사 결과 발표에 한국 정부는 물론, 관련 단체와, 애국심을 품고 있는 일반 시민들이 즉각적으로 항의하며 맞섰다. 외교부는 일본 공사를 불러 강력하게 항의했고, 일종의 '도발'이라며 우리의 입장을 강하게 주장했다. 이런 적이 도대체 몇 번 인가? 정치적으로 중요한 시기가 다가오고, 일본의 극우 세력은 정치적 목적에서 독도, 위안부 문제를 건드린다. 그리고 한국 정부와 관련 단체 국민들은 강하게 항의하고 감정적으로 분을 참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제는 감정적으로 반응해서 무조건 '독도는 우리땅!' 이라고 외칠 것만이 아니라, 냉정한 분석과 상황 파악을 통해 주도면밀한 대응책을 세워나가야 하지 않을까? 이슈가 될 때에만 반짝 관심을 갖았다가 또 잠잠해지면 기억에서 잊혀지는 반복적인 행동이 이어져서는 안되겠다. 왜냐하면 바로 그런 태도에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의 빌미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1868년 도쿠가와막부 정권이 붕괴되고 메이지 유신정권이 수립됨과 동시에 '정한론'과 대외 팽창이 적극 고취되자, 도쿠가와막부시대 말까지 국경을 넘어 울릉도,독도에 건너가지 못했던 일본인들이 국경을 넘어 울릉도에 몰래 들어와서 목재를 베어 가고 고기잡이를 하는 무리들이 점차 증가하게 되었다.
       1868년 메이지 유신정권시대에 일본인들이 울릉도로 몰래 들어오게 된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선왕조 초기로부터 살펴보아야 할 역사적 사실들이 있다. 

       태종의 재위시절(1400~1418) 왜구가 울릉도를 침략하여 주민을 학살하는 일이 빈번이 발생하자 울릉도 주민을 본토로 불러들여 울릉도를 비워두는 '쇄환공도정책' 을 시행하게 되는데 그 이후로 울릉도는 정부의 관심에서 벗어난 채 오랜세월 방치되게 되고, 조선인 뿐만 아니라 일본인들도 건너와 어획활동과 목재를 도벌하는 일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결코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통치권을 행사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우산도(독도)와 울릉도를 강원도 울진현에 속한 섬으로 기록한 것은 조선왕조의 독도영유를 명확히 기록한 명백한 증거인 것이다. 조선왕조 정부는 1481년에 조선왕국의 영토 해설서로 [동국여지승람]을 편찬 발간하였다. 이어 50년 후인 1531년에는 이 책을 증보하여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발간했는데......[동국여지승람]과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독도(우산도)와 울릉도는 조선 강원도 울진현에 속한 동해 가운데 2개 섬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이 책으로 조선왕조 정부는 독도가 조선영토이며 강원도 울진현에 속한 섬임을 당신의 한자문화권 세계에 재천명 공포한 것이다.

       그렇게 조정의 무관심 속에서 조선인과 일본인이 울릉도와 독도를 몰래 왕래하며 어업을 하는 일들이 있던 가운데, 1696년(숙종 22년)에 안용복이라는 조선인이 울릉도에 해산물이 풍부하므로 장사꾼들과 함께 울릉도로 들어간 일이 있었다. 당시까지도 '쇄환공도정책'으로 인해 울릉도에는 아무도 살고 있지 않았다. '비어있는 섬'이었던 것이다. 

       울릉도로 건너간 안용복 일행은 다수의 일본 배들이 울릉도에 정박해 있는 것을 보고 "울릉도는 본래 우리 영토인데 어찌 감히 국경을 넘어 침범하는가. 너희들은 모두 묶어 마땅하다"며 꾸짖고 송도(독도, 우산도)에 살고 있는 일본인들까지 모두 그들의 본국으로 돌려보낸 일이 있었다. 안용복은 이에 멈추지 않고 백기주(지금의 시네마현)의 태수를 만나 일본 어부들이 울릉도와 우산도(독도)를 침범하지 못하게 함은 물론, 침범했을시 처벌하리라는 약속을 받아내게 된다. 안용복의 공으로 도쿠가와 막부가 무너지기 전까지 일본은 독도가 대한 조선의 영토,영해임을 인정하고 잘 존중했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메이지 유신정권이 들어서면서 정한론의 야욕을 품은 정권은 1905년 2월 22일자로 다케시마(독도)를 일본의 영토로 편입한다는 내각회의를 열게 된다. 하지만 당시에도 독도가 대한 제국의 영토라는 것을 일본인들이 인식했음은 명백한데, 일본 내무성은 최초 독도편입에 대한 청원을 받았을 시점(1903년)에는 러일전쟁이 진행되고 있던 때였으므로, 한국병탄의 야심이 국제사회에 알려질까 두려워 반대했던 반면, 일본 외무성의 '무주지'(아무도 살고있지 않는 땅)영토 선점론에 의해 영통편입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독도를 일본영토로 편입한다는 사실을 대한제국 정부도 알 수 없도록 시네마현 [현보]에 조그맣게 기재하고 만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제의 독도침탈에 대응하여 국제사회에 외교문서를 보낼 통로와 기구가 없었으므로  35년간 광복에 이르기까지 침탈의 역사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일제 강점시기의 일본 육군참모본부가 발행한 [지도구역일람도]에서도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의 영역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고대 신라시대부터 우리의 영토였던 땅이 쉽사리 일본으로 넘어갈 수 없음을 변증해주는 사실이다. 이외에도 무수히 많은 증거자료들이 독도가 한국의 명백한 영토였고 영토이며, 영토일 것이라는 사실을 입증해 주고 있다. 그에 반해 독도가 일본의 영토였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국제적인 실증자료는 단 한 건도 없다. 

       그러나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무조건 항복에 의한 제2차 세계대전 종결 후 일본이 약탈했던 한반도와 '독도'는 연합국에 의해 한국에 반환된다. 

SCAPIN 제677호 제3조에서 '독도'는 일본영토에서 분리 제외되었는데 그 부분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이 지령의 목적을위하여 일본은 일본의 4개 본도와 약 1천 개의 더 작은 인접 섬들을 호함한다고 정의된다.(1천 개의 작은 인접 섬들에) 포함되는 것은 대마도 및 북위 30도 이북의 남서자도이다. 그리고 제외되는 것은 독도, 북위 30도 이남의 ........(생략)
       연합국최고사령관이 수개월간 조사한 후 공표한 결과 명백히 독도는 한국의 영토로 귀환된 것이다. 그러나 1950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 '독도'의 명칭이 없는 것을 놓고, 일본이 포기하는 섬에 독도 명칭이 누락 된 것은 연합국이 독도를 '일본영토'로 승인한 것이라고 집요하게 주장하기에 이른다.

       이제는 일본의 도발적인 행동에 맞서 감정적으로 대응해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국제사법재판소에 판결을 의뢰하는 등 로비활동을 펼치는 일본의 적극적인 행보에 맞게 우리도 대책을 강구해 나가야 한다. 그 시작은 우리가 역사적 사실과 진실을 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속에서 무관심 속에 독도가 일본의 침략에 넘어갔듯이, 다시 그런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지금의 독도영유권 분쟁의 진행사항을 파악하고 국민적인 대응이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일본 정부는 수천년동안 이어온 침략행위를 중단해야 한다. 여전히 제국주의적 망상에 사로잡힌 일부 극우파 정치인들의 농간에 휘둘릴 것이 아니라 국제적으로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독도영유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우리 정부도 국민들이 독도영유권에 대한 진실을 바로 알고 국제사회가 이 사건을 올바로 인식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으로 독도를 고수하는 노력을 이어가야 함을 절실히 느끼는 바다. 






s********8 2013.08.09. 신고 공감 1 댓글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