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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시인의 『뿔을 적시며』라는 시집을 읽었다. 1946년 강원도 양양 출생의 이력을 보며 시로 평생을 살아온 분이니 뭐가 달라도 다르겠지 하는 마음으로 시집을 읽고 또 읽었다. 1부에서는 시인의 사소한 일상이 음표처럼 놓여있다. 옥상에 올라가 메밀베갯속을 널며 가을을 만끽한다든지(「옥상의 가을」), 버스매표소 구석에 처박힌 히터를 보며 용량이 되지 않은 자신을 돌아보기도 한다. 나는「용량」이라는 시를 읽으며 ‘용량이 어디 있나, 될 때까지 하면 되지, 고목에서도 싹이 트고 바위도 언젠가는 모래알 되더라’ 하며 혼자 어깃장을 부려본다. 이런 것도 시를 읽는 재미다. 터미널 포장마차에서 먹는 이천 원짜리 국수 한 그릇을 힘 삼아 서울에서 고향으로 내려오는 시인은(「국수공양」) 삶의 고단함과 외로움에 지치고 힘들지만 자신이 기댈 데라고는 자신의 마음 밖에 없다(「마음에게)」. 이런 시인에게 그늘이 되어주고 있는 것이 바로 시다. 그늘 누가 기뻐서 시를 쓰랴 새들도 갈 데가 있어 가지를 떠나고 때로는 횡재처럼 눈이 내려도 사는 일은 대부분 상처이고 또 조잔하다 그걸 혼자 버려두면 가엾으니까 누가 뭐라든 그의 편이 되어주는 것이다 나의 시는 나의 그늘이다 2부에서는 자신에게서 조금 더 나가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페이스 북으로 이름만 알던 여자가 자신을 찾아와 함께 라면을 끓여 먹고(「라면 먹는 저녁」), 낡은 밥상 하나를 버리면서 자신 역시 점차 쓸모없어지리라는 것을 깨달아 가는 시인의 세월(「밥상을 버리며」).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곡을 하다가도 배고프면 먹어야하고, 먹으면서 어머니를 보내드리는 어떻게 보면 기막힌 우리 삶의 이야기(「폭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시인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심중에 깊이 새겨져 있을 터인데 시인은 그것을 산그늘로 표현하면서 불침번 쓰듯 자신을 지켜주던 어머니를 그리워한다. 어머니란 가장 힘들 때 생각나는 존재가 아니던가. 산그늘 장에서 돌아온 어머니가 나에게 젖을 물리고 산그늘을 바라본다 가도 가도 그곳인데 나는 냇물처럼 멀리 왔다 해 지고 어두우면 큰 소리로 부르던 나의 노래들 나는 늘 다른 세상으로 가고자 했으나 닿을 수 없는 내 안의 어느 곳에서 기러기처럼 살았다 살다가 외로우면 산그늘을 바라보았다 3부에서는 가장의 쓸쓸함이 짙다. 하루 종일 물속을 들여다보는 백로에게 너도 술 생각이 나느냐고 물으며 (「그도 저녁이면」) 한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의 무거운 책무에 대해 이리저리 궁리하다보면 저물녘과 함께 따라오는 술 생각. 모든 것이 스치듯 지나가고 이제 남은 것은 쓸쓸한 세월, 아직 그럴 수 있으면 자신을 적셔줄 시의 비가 오기를 기다리는 시인의 마음에서 점차 흐릿해지는 젊음이 보인다. 4부까지 시인 자신과 주변의 이야기를 적었다면 5부에서는 시선을 좀 더 넓게 잡는다. 싸마르칸트, 왕들이 잠든 사원계단에서 구걸하는 소녀를 보니 공연히 마음이 미안하고, 누구보다 각박한 사람들 사이에 틈이 좀 있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틈」). 아무 것도 해준 게 없더라도 나이 들면 조국이 절실해지는 법일까? 신검 받은 아들이 자랑스럽고, 분단된 우리나라의 현실이 안타깝고 골목을 함께 걷는 동네 주민들이 정겹다. 시인은 자신의 마음을 데리고 아주 멀리 가고 싶었지만 결국 내 나라, 내 골목, 내 가정 안에서 맴돈다. 대부분의 가장들처럼 자신이 가진 뿔을 적시며 자신의 삶 속 동그라미, 가족 안에 머물 밖에 없다. 전체적으로 제목과 잘 맞는 시집이다. 아버지들은 달팽이처럼 집을 등에 지고 간다. 벗어나고 싶지만, 그리고 벗어나려고 몸부림도 조금 쳐보지만 결국 부처님 손바닥 안처럼 가정이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민달팽이는 집을 가진 달팽이를 부러워하지 않을까? 돌아다닐 때는 가벼워서 자유롭지만, 저녁이 되면 민달팽이는 어디서 쉬어야하나?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결국 한 평생 집을 지고 가는 달팽이의 마음으로 쓴 이 시집을 읽으며 가장의 애환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보았다. 가정을 굴레가 아닌 울타리로 생각하며 살자 라고 스스로에게 타이르는 시집 같았다. |
4차 산업혁명을 운운하는 지금도 우리 할아버지는 꿋꿋이 봄이면 흙 묻은 감자를 캐고 가을이면 잘 익은 고추를 딴다. 해가 지고 눈이 오면 소 축사를 한 바퀴 도는 일 외엔 할 일이 없는 시골에서 할아버지의 유일한 취미는 아궁이에 집어 넣고 남은 나무를 다듬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내가 어릴 적엔 나무 가지를 잘라내 만든 연필 꽂이를 만들어주고 마당 한 가운데 그네도 매달아주셨다. 지금은 감자를 캐고 고추를 따고 소 축사를 한 바퀴 돌고나면 몸이 고되다며 드러눕기 바빠 마당 한 켠에 자르다 만 나무 밑둥과 녹슨 톱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할아버지에게 여전히 자랑거리로 남아 있는 것은 작은 등받이가 있고 다리가 짧은 나무 의자다. 지붕 아래 놓여 있어 비가 올 때 가만히 앉아 빗소리를 듣기도 좋고 따가운 볕을 피해 매미 소리를 듣기도 좋다. 엉덩이를 붙이면 남는 부분 하나 없이 자그마한 의자라 먼지가 묻어도 툴툴 털어내고 털썩 앉기도 좋다. 다리가 짧아 앉으면 두 다리를 쭉 펼 수밖에 없는 것도 좋다. 벌써 10년도 넘게 이 사람 저 사람의 무게를 떠받들고 있었더니 맨들맨들하게 칠한 것도 벗겨지고 나뭇결이 버석버석 일어나버린 것도 좋다. 이 시는 그 의자를 떠오르게 했다. 나뭇결이 버석버석하게 일어나 까끄러운 나무 의자처럼 투박하고 애잔한 느낌이 닮았다.
낯선 단어로 일상에 이질감을 주는 강렬한 시도 좋지만, 밥 먹으라 깨우는 엄마의 목소리처럼, 지나가며 이유 없이 머리를 쿡 쥐어박는 아빠의 따뜻하고 투박한 주먹처럼, 찰싹 달라 붙으면 퉁명스럽게 왜 이래하며 떨쳐내는 할아버지의 웃는 입꼬리처럼 덤덤하고 따뜻한 시도 좋다. 따뜻함에 방심하다 웃음이 터질 수도 있다.
시골을 가면 늘 과식하게 된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소화제를 삼키며 다음엔 적당히 먹어야지 하면서도 밥상 앞에 앉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또 배를 빵빵하게 불린다. 늘 무언가 타는 냄새를 맡고 젖은 흙 냄새를 맡고 달음질치는 길고양이를 따라 뛰고 소가 눈을 꿈뻑이는 걸 보다보면 어느새 밥 먹을 시간이다. 밥을 먹고나면 길 가에 따라 핀 풀을 따라 노래를 흥얼거리며 걷다가 밥 짓는 냄새에 온 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온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시골에서 나는 어린애처럼 시간을 보낸다. 어릴 적엔 그토록 단단하던 나무 울타리가 군데군데 썩고 무너졌음에도 여전히 튼튼하다는 듯, 문제없다는 듯 어린애처럼 시간을 보낸다. 이 시집은 그런 시로 가득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