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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쟁을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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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바쟁은 사르트르, 메를로 퐁티, 그 중에서도 특히 후자의 '애매성의 철학'에 심취했던 흔적을 그의 리얼리즘 영화론으로부터 충분히 엿볼 수 있다. 그가 현실에 대한 애매성의 의식을 영화에 되돌려 주려고 한 까닭은 적어도 우리가 사람들에 관해 내리는 판단의 의미에서 볼 때, 실재는 궁극적으로 애매하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애매성은 몽따주에서는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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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바쟁은 사르트르, 메를로 퐁티, 그 중에서도 특히 후자의 '애매성의 철학'에 심취했던 흔적을 그의 리얼리즘 영화론으로부터 충분히 엿볼 수 있다. 그가 현실에 대한 애매성의 의식을 영화에 되돌려 주려고 한 까닭은 적어도 우리가 사람들에 관해 내리는 판단의 의미에서 볼 때, 실재는 궁극적으로 애매하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런 종류의 애매성은 몽따주에서는 불가능한, 롱테이크(혹은 미디엄 롱테이크) 숏 스타일에서만 오직 가능한 만큼, 몽따쥬보다도 롱테이크 스타일이 보다 더 진실되게 현실을 반영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인간 심정의 궁극적인 신비'를 꿰뚫어, 적어도 타자를 판단하고 해석함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깨닫게 하는 실존적 현상학의 태도가 영화 기법에서 '편집'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비도덕적인 해석 형태인가 하는 회의로 연결되고 있다. 바쟁은 무성영화 시대의 거장들, 이를 테면, 스트로하임, 무르나우, 플래허티 등도 역시 몽따쥬가 아니라 롱테이크 구성의 활용을 통한 '현실' 공간의 연속성을 긍정한 공간적 리얼리즘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러한 바쟁의 실존적이고 윤리적인 태도는 오늘날 속칭 예술영화라고 불리우는 카테고리에 자주 적용되어 왔다. 그래서 무엇이든 무섭도록 상투화시켜 버리는 문화아이콘 수입국인 한국에서 '롱테이크=예술=거장'이라는 등식으로 천연덕스럽게 적용되기도 했었다. 때때로 어떤 영화학자는 이런 판에 염증을 느끼고 모든 롱테이크에 침을 뱉는 짓도 서슴치 않았다. 하지만 잘못은 깊은 성찰없이 껍데기만 차용하는 수입업자들과 허영심많은 소비자들에게 있는 것이지 롱테이크와 바쟁의 에토스에 잘못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그런 의미에서 바쟁의 글을 한 번 진지하게 읽어 보자.

[인상깊은구절]
이러한 견지에서 볼 때 영화는 사진의 객관성을 시간 속에서 완성시킨 것처럼 보인다. 필름은 더 이상, 우리를 위해 사물을 마치 호박 속에 가두어진 과거 시대의 곤충이 손상되지 않는 몸체처럼, 말하자면 순간 속에 포장된 채 보존하는데 만족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바로크 예술을 그것의 경련적 강경증으로부터 해방한다. 이제야 비로소 여러 사물의 상은 동시에 그것들의 지속성의 상이 되며 말하자면 변화의 미이라, 미이라화된 변화가 되는 것이다. --- p.23 사진적 영상의 존재론 중에서 카메라는 동시에 모든 것을 볼 수는 없지만 그것은 적어도 스스로가 보려고 택한 것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바다표범을 잡는 나누크를 눈 앞에 하고 플래허티에 있어 문제가 되는 것은 나누크와 바다표범과의 관계, 즉 기다리는 시간의 실제 길이인 것이다. 몽타주를 사용해서도 시간을 암시할 수야 있다. 허나 플래허티는 그 기다리는 시간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만으로 그친다. 잡는 시간의 길이야말로 영상의 실질 그 자체요, 영상의 참된 목표인 것이다. --- p. 92 영화언어의 진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