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3)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0%
  • 리뷰 총점8 67%
  • 리뷰 총점6 33%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0.0
  • 50대 7.0
리뷰 총점 종이책
으슬으슬 흐르는 긴장감이 절묘!
"으슬으슬 흐르는 긴장감이 절묘!" 내용보기
예전에 가수 이현우를 괴롭히던 여자 스토커에 대한 이야기가 방송에서 다뤄졌었다. TV에서도, 콘서트장에서도 이현우가 보내는 은밀한 메세지 때문에 이현우를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다고 그 여자는 말했었다. 이현우도 자기를 사랑하는데 왜 그렇게 부정하는지 알 수 없다며. 이 여자의 직업은 학원 강사였다. 평범하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여자가 이현우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으슬으슬 흐르는 긴장감이 절묘!" 내용보기
예전에 가수 이현우를 괴롭히던 여자 스토커에 대한 이야기가 방송에서 다뤄졌었다. TV에서도, 콘서트장에서도 이현우가 보내는 은밀한 메세지 때문에 이현우를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다고 그 여자는 말했었다. 이현우도 자기를 사랑하는데 왜 그렇게 부정하는지 알 수 없다며. 이 여자의 직업은 학원 강사였다. 평범하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여자가 이현우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망상에서 벗어나지 못한것. 매스컴에서는 '스토킹'이라 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드 클레랑보 신드롬'. 처음 이 현상에 이름을 붙인 사람은 영국의 국왕 헨리 5세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고백한 프랑스의 어떤 여자를 진찰한 의사 '드 클레랑보'다. 왕궁의 창에 비춰진 커튼의 미묘한 움직임에서 어떤 '신호'를 읽어내고, 호텔 방이 없어서 호텔에 투숙하지 못하게 되자 헨리 5세의 명령에 의해서 영국에 발을 붙일 수 없게 되었다고 믿는 그 여자의 병이 이'드 클레랑보 신드롬'의 시초이다. 이 소설에서는 저명한 과학 저술자를 사랑하는 부유한 청년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 청년 -제드- 의 사랑이 너무나 절절해서 대체 이 인간이 제정신인가 어떻게 이렇게까지 착각을 하게 되나. 의아할정도. 주인공 조와 그의 내연의 부인 클라리스와의 관계에 대한 서술도 굉장히 섬세하다. 아름답거나 감성적이지 않은 대신 꼼꼼한 심리 묘사와 긴장감을 놓지 않는 서사가 매력적인 소설. 이 소설은 굉장히 흥미로운 심리적 서술과 상황으로 가득하다. 게다가 작가가 손수 붙여놓은 미묘한 부록 두가지에 대한 옮긴이의 착각을 눈치 챈다면 더욱 더 재미있는 책읽기가 될 듯하다.

[인상깊은구절]
그러나 사고 후 당신은 지나친 죄의식을 느꼈어요. 패리가 그런 죄의식의 탈출구로 등장했다는 것도 가능한 이야기가 아닐까요? 당신은 혼란된 마음을 새로운 상황 속에 던져넣으려는 것처럼 보였어요. 당신이 그토록 자부하는 이성적 분석의 힘을 발휘해야 할 바로 그 순간에, 고뇌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그저 두 손으로 귀를 막고 새로운 상황 속으로 뛰어들듯이 말이에요. ---p.307
h*******g 2005.09.14.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영원한 사랑을 두려워하라
"영원한 사랑을 두려워하라" 내용보기
이 소설의 원제는 [The Enduring Love]이다. 성서 고린도전서의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성내지 아니하며....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에서 따온 제목인 듯한데, 저자는 우리가 일상에서 가꿔 가는 사랑이 사실은 얼마나 지속되기 어려운지, 반대로 일상을 넘어서는 절대적이고 영원한 사랑은 얼마나 두렵고 가까이하기 힘든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 부부는 이상적인
"영원한 사랑을 두려워하라" 내용보기
이 소설의 원제는 [The Enduring Love]이다. 성서 고린도전서의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성내지 아니하며....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에서 따온 제목인 듯한데, 저자는 우리가 일상에서 가꿔 가는 사랑이 사실은 얼마나 지속되기 어려운지, 반대로 일상을 넘어서는 절대적이고 영원한 사랑은 얼마나 두렵고 가까이하기 힘든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 부부는 이상적인 중산층 부부라고 할 수 있다. 남편은 고도로 논리적인 과학 저널리스트, 부인은 풍부한 감성을 세련되게 표현할 줄 아는 영문학과 교수. 이들은 천재는 아니지만 남부럽지 않은 지성과 명성을 갖고 있고, 금전적 여유도 충분하며, 금실도 더할 나위가 없다. 둘 사이에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점만 빼면 완벽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완전해 보이던 사랑과 행복은 어느 날 고장난 기구에서 아이를 구하려는 사건에 우연히 개입되면서 덧없이 허물어져 내린다. 남편은 자신을 병적으로 사랑하는 청년의 스토킹으로 숨이 막힐 것 같이 되는데, 아내는 남편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가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믿는다. 어느새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리고 타인이 되어가는 자신들을 발견하게 된다. 이처럼 일상의 사랑이 어떤 계기로 거짓말처럼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은 '기구 사건'에서 끝까지 소년을 포기하지 않은 댓가로 목숨을 잃은 남자의 부인에게서도 드러난다.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는 고통보다, 당시 그가 어떤 여자와 함께 있었는지 모른다는 의심에서 비롯된 분노를 더 절절하게 느낀다. 한편 주인공을 세상 끝까지라도 따르려 하고, 끝내는 죽이려고까지 하는 청년, 그의 사랑은 상대방이 어떤 냉담함을 보이더라도 결코 식지도 바뀌지도 않는 불멸의 사랑이다. 그러나 그 사랑으로 그는 상대방과 자신, 상대방의 소중한 사람들을 파멸 직전에까지 몰아간다. [파우스트]의 메피스토펠레스와는 반대로, 그는 선을 행한다는 확신 하에서 악을 자행한다. 저자는 "보이지 않는 상대에 대한 맹목적 사랑을 추구하는, 신앙이라는 것도 어쩌면 이런 병리적 사랑이 아닐까?"라는 의문을 조심스럽게 제기한다. 저자는 한편으로 재미있는 알레고리를 슬쩍 숨겨두고 있다. 맹목적 사랑을 낳는, '드 클레랑보 신드롬'이라는 정신병을 소개하면서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은 경험이 그 발병에 큰 작용을 했다는 말이 나온다. 한편 주인공은 결코 아버지가 될 수 없는 처지다. 두 사람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은 논리적이고 건전하되 다음 세대를 위한 배려를 해줄 수 없는 현대 영국의 기성 세대, 그리고 절대적이고 온정적인 사랑을 아버지로부터 갈구하지만 결코 얻을 수 없음에 절망하여 극단주의로 치닫는 신세대. 이들 사이의 알력을 상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편 이 소설의 부주인공들이라 할 수 있는, 기구 사건으로 죽은 남자의 아내와 아이들, 그 아이들도 아버지를 잃었다. 그들은 장차 또다른 드 클레랑보 신드롬의 주역이 되지는 않을까? 사소설(私小說)도 이쯤 되면 시대와 사회가 갖는 문제를 제시하고 고민하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이 소설에는 그 외에도 현대과학의 딜레마, 6-70년대 저항운동의 말로 등 흥미로운 주제들이 많이 다루어져 있다. 이안 맥완의 [시멘트 가든]에 만족했던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그 이상의 만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병적인 사랑이 있으려면 그 이면에는 건강한 사랑의 개념이 숨어 있어야 했다. 드 클레랑보 신드롬은 어둡고 왜곡된 거울이었다. 그 거울은 목적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는 사랑이 건전한 것이라고 믿는 연인들의 밝은 세계를 반영하고 패러디한다.
b******b 2001.04.04.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모든 사랑은 신드롬이 아닐까...
"모든 사랑은 신드롬이 아닐까..." 내용보기
제드 페리가 이 소설에 등장하기 전부터 동성애자였는지 어쨌는지는 알 수 없다. 그는 스물 여덟살의 종교적 믿음이 강한 독신남이고 '드 클레랑보 신드롬'이라는 희귀하기 짝이 없는 정신질환자이며 그 병의 증세로 인하여 조 로스라는 중년의 성공한 과학저술가를 사랑한다. 문제는 조 로스가 남자이고 사랑하는 아내까지 있으며 제드 페리의 상식을 벗어난 사랑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
"모든 사랑은 신드롬이 아닐까..." 내용보기
제드 페리가 이 소설에 등장하기 전부터 동성애자였는지 어쨌는지는 알 수 없다. 그는 스물 여덟살의 종교적 믿음이 강한 독신남이고 '드 클레랑보 신드롬'이라는 희귀하기 짝이 없는 정신질환자이며 그 병의 증세로 인하여 조 로스라는 중년의 성공한 과학저술가를 사랑한다. 문제는 조 로스가 남자이고 사랑하는 아내까지 있으며 제드 페리의 상식을 벗어난 사랑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결국 제드 페리는 조 로스의 집에 무단침입하여 자해위협을 하다가 정신병동에 감금되는 것으로 이야기의 끝을 맺는다. '드 클레랑보 신드롬'은 타인과 사랑의 교제 관계에 있다는 망상적 확신인데 타인은 사회적 신분이 월등히 높은 사람으로서 그가 먼저 사랑에 빠졌고 먼저 구애를 했다고 확신하며 그 시작이 갑작스럽고 사랑한다는 망상의 대상은 불변하며 환자는 대상의 행동을 역설적으로 이해하고, 그 경과가 만성적이며, 환각현상은 나타나지 않고 인식능력상 결함이 없다고 한다. 일견 짝사랑이나 스토킹과 유사하지만 상대방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확신을 갖기 때문에 스스로에게는 완전한 사랑이기도 하다. 사랑의 신드롬(원제 enduring love, 이안맥완, 현대문학 1997)은 이처럼 동성애자를 정신질환자로 묘사하고 있다. 그 외에 이 소설에서 동성애자=정신질환자 라는 공식은 특별히 들어맞지는 않는다. 노골적인 호모포비아도 찾아 볼 수는 없다. 따라서 동성애자가 반동인물이라는 점만 들어 지레 거부감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작가의 손을 떠나기 시작한 순간부터 소설은 이미 독자와 공유하는 것이니까. 편견없이 소설을 읽다보면 오히려 제드 페리의 입장을 옹호하게 되는 독자도 적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사실 드 클레랑보 신드롬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어떤지도 확실히 알 수 없다. 정신의학계에서 보고된 몇 사례들만으로 작가가 성급하게 추론해서 만든 소설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학의 사회적 역할이라는 부분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정도가 약하기는 하지만 모든 사랑은 '드 클레랑보 신드롬'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상대방이 자기를 사랑한다는 믿음 없이 어떤 사랑이 가능할까. 또한 사랑에 빠진 사람은 누구나 상대방이 '드 클레랑보 신드롬'을 가져줬으면 하고 은근히 바라는 것이 아닌가. 특히 역자는 마지막 해설에서 어쩌면 모든 종교 혹은 신에 대한 사랑은 '드 클레랑보 신드롬'이 아닐까하는 조심스런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일리가 있는 이야기인 것 같다. 아무튼 이 소설은 '상식을 거부하는 사랑이야기, 어긋난 사랑이 몰고 온 광기어린 살인극!이라는 표지의 광고문안처럼 썩 재미있지는 않지만 우리가 사랑이라고 이름 붙인 것에 대해서 흥미로운 관점들을 이야기하고 있기는 하다.

[인상깊은구절]
혹시 인간의 신앙 행위도 드 클레랑보 신드롬의 일종이 아닐까? (중략) 유일신을 믿는 사람은 그 신이 자기를 사랑한다고 확신한다. 자기가 신을 믿기 전에도 신은 자기를 사랑했다. 물론 갑작스럽지 않게 서서히 신을 믿게 되는 경우도 많지만 간증을 들어보면 분명 갑작스러운 요소가 있다. 가족적인 배경 때문에 어려서부터 신앙을 생활화해온 사람이 아닌 순수한 형태의 신앙인들 상당수는 어느 순간 갑자기 신의 존재 혹은 신의 사랑을 확신하게 되었다고 간증하다. 대상이 불변하며 역설적으로 이해한다. 예컨대 고난이 닥치면 그 고난이야말로 신의 사랑을 증거하는 것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그 경과가 만성적이다.
j******n 2000.10.1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