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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야화>는 처음에는 환상을 한없이 훈련시키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이 미로를 탐허하다 보면 다른 미로들처럼 출구 없는 단순한 혼란이 아니라 상상력의 대향연임을 알게 된다.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 <아라비안 나이트> 혹은 <천일야화>로 불리우는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책은 물론이거니와 영화 및 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되어 우리의 꿈과 상상력을 자극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들 작품에 대하여 진지하게 읽어본 기억은 나지 않는다. 제목처럼 정말로 1천 1밤 동안 세헤라자데가 이야기를 한 것이기에 다수의 작품이 실린 방대한 양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밧드의 모험>, <알라딘과 요술램프>와 같이 각각의 단편으로 우리는 읽어본 것이 전부일 것이다. 또한 우리가 읽을 수 있는 <천일야화>는 아랍어 원본이 아닌 앙투안 갈랑 또는 R.F 버턴에 의한 것이다. 앙투안 갈랑은 당시 유럽의 상황에 맞게 번안하여 <천일야화>를 불어로 번역하였다면, R.F 버턴은 영어로 <아라비안 나이트>를 번역하였다. 대중적으로 널리 읽히는 것은 R.F 버턴의 것이라고 하지만, 원본에 잔인하고 성적인 내용을 다수 첨가하여 너무나 자극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오히려 앙투안 갈랑의 불역본은 버턴과 달리 그러한 자극적인 표현을 최소화함으로써 유럽의 대문호들의 찬사를 받았다. 또한 앙투안 갈랑은 루이 14세 시절 당시 오스만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에서 외교관 생활을 하였고, <천일야화>를 번안하는데 무려 14년이 걸린 점을 감안한다면 우리가 손쉽게 <천일야화>를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그의 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보르헤스는 그의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 23번째의 작가로서 바로 이 앙투안 갈랑을 선정하였는데, 그의 갈랑에 대한 평을 읽어보면 곧바로 수긍하게 된다. 이러한 수긍은 바로 이 책에 실린 2편의 작품 <알라딘과 요술램프>, <장님 바바 압달라 이야기>를 통하여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게 된다. 너무나 잘 알려져 있던 터라 <알라딘과 요술램프>의 내용이 새롭지 않을 것 같았지만, 처음부터 그러한 편견이 여지없이 무너지게 된다. 아랍의 이야기라 생각한 그 배경이 바로 중국이라는 점이 그 시작이다. 그런데, 공간적인 요소는 중국이지만, 지도자는 술탄으로 표현되고 있어서 동양의 모든 것들이 혼합된 느낌이 든다. 알라딘을 위협하는 마술사는 아프리카 출신으로 등장하고, 노예 중에서 흑인은 물론이거니와 백인도 등장하고 있으니 <알라딘과 요술램프>는 지금의 표현으로는 글로벌적인 요소가 곳곳에서 묻어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천일야화>의 배경을 페르시아라고 생각하였기에 아랍의 느낌이 강했지만, 실제 <천일야화>는 아랍은 물론 중국, 일본, 인도의 각 설화적인 요소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기에 이는 유럽인이었던 앙투안 갈랑에게 있어서 <천일야화>가 동방의 모든 것이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렇기에 그가 무려 14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하여 완성할 수 있지 않았을까? 여기에 더하여 더욱 놀라운 사실은 <알라딘과 요술램프>는 원래 <아라비안 나이트>에 포함된 작품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책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지만,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 역시 그렇다고 한다. 우리가 <천일야화> 또는 <아라비안 나이트>의 대표작이라 생각하는 이 두 작품은 앙투안 갈랑이 직접 창작을 한 것인지 아니면 구전되는 것을 번역하여 추가한 것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아라비안 나이트>에는 존재하지 않던 이야기를 앙투안 갈랑이 추가한 것은 확실하다고 한다. 창작을 하였든 아니면 원전에 없는 내용을 따로 추가한 그의 업적은 그가 당시 아랍의 이야기에 얼마나 정통하였는지를 새삼 실감하게 해준다. 심지어 이 작품들이 오늘날까지 <천일야화>의 대표작이라고 인식되고 있으니 말이다. <장님 바바 압달라 이야기>는 앙투안 갈랑과 R.F 버턴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 아닌가 생각된다. 원전을 그대로 해석했다고 하는 R.F 버턴의 번역은 다소 자극적인 표현으로 관심을 끌었다면, 앙투안 갈랑은 아라비안 나이트의 상상과 더불어 그 안에서 인간애를 발견하는데 주력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괜한 욕심을 부려서 장님이 된 바바 압달라가 나중에 속죄하고 참회하여 구원받는 과정은 권선징악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환상적인 내용과 더불어 이러한 방향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장님 바바 압달라 이야기>는 짧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앙투안 갈랑이 지향하는 바를 잘 나타내고 있기에 보르헤스가 수록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앙투안 갈랑의 <천일야화>의 내용은 상당히 방대하다. 그렇기에 이 책에 수록된 2개의 작품을 통하여 <천일야화>를 또는 앙투안 갈랑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하여 <천일야화>가 오늘날까지 존재할 수 있도록 기역한 앙투안 갈랑에 대하여 새롭게 알게 되었다는 사실과 더불어 그의 완역본에 대한 기대와 독서 계획을 세워볼 수 있다는 점은 나름의 수확이라 생각된다. '상상력의 대향연' 속에서 인간의 근본적인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에서 <천일야화>는 한번쯤 읽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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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난 <아라비안 나이트>를 읽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라딘과 요술램프', '신밧드의 모험',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 등등 적지 않은 이야기를 어릴 적부터 읽어 왔지만, 정작 [1001일 밤의 이야기]라는 뜻의 '천일야화'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더구나 원작이 '외설'에 가까울 정도로 낯뜨거운 묘사로 가득하다는데, 내가 기억하는 <아라비안 나이트>는 '교훈 가득한 옛날옛적 전래이야기'로 기억하기에 의문은 점점 의구심으로 물들어 갔다. 그런 까닭에 관련 도서를 뒤적거려보니 새삼스런 이야기꺼리가 참 많은 책이란 들어 본격적으로 읽어볼 '작심'이 생겼다. 그 첫 번째 책으로 이 책을 골랐다. 굳이 이 책으로 시작한 까닭은 '얇고 가벼워' 들고 다니기 편할 것 같았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책의 위아래보다 양옆의 폭이 좁아 '읽는 속도'가 빠를 것 같아서였다.
이 책에는 짤막한 '서문'에 이어서 2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그 2편의 이야기 가운데 하나는 익숙히 알려진 <알라딘과 요술램프>이었고, 다른 하나는 덜 익숙한 <장님 바바 압달라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 책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서문'과 '알라딘 이야기'에서 느낄 수 있었던 '새삼스러움'이었다.
먼저 '알라딘 이야기'를 풀어보면, 어릴 적에 읽었던 [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 속에서 읽었던(어느 출판사였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린이용 <아라비안 나이트>에서도 읽을 적이 없고, 디즈니 만화영화에서 봤던 익숙한 '알라딘의 모습'도 연상되지 않는 독특하고 생소한 알라딘의 이야기였다. 어린이 책과 만화영화에서 보여주었던 '알라딘'은 장난꾸러기에 말썽쟁이이지만, 그래도 해맑고 순수하기 그지 없고 성실하고 착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어서 온갖 복을 받는다는 '천진난만'한 캐릭터였다면, 이 책에서 볼 수 있었던 '알라딘'은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도 집안살림은커녕 하나뿐인 어머님을 부양할 생각도 없는 무능하기 짝이 없고 아무 대책도 없는 철부지에 천방지축 얼뜨기였던 그가 우연한 계기로 얻은 요술램프의 도움으로 나쁜 마법사가 몰고온 위기를 극복하고 엄청난 부와 어여뿐 공주를 얻는 '행운아'로 그려져 있다.
어찌 보면, 이 둘의 차이점은 그닥 크지 않아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린이용 책 속의 '알라딘의 모습'과 이 책 속의 '알라딘'은 사뭇 다른 점이 먼저 눈에 띤다. 예를 들어, 알라딘이 요술램프를 얻게 되는 과정을 비교해보면 그냥 우연히 '선택' 되어졌다는 점이 유독 강조되어 있는 부분이다. 어린이용 책에서는 알라딘이 요술램프를 얻게 된 까닭이 분명히 '가난하지만 선한 마음씨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는데 반해, 이 책에서는 나쁜 마법사가 요술램프를 손에 넣기 위해 '세상물정 모르는 철부지' 필요했고, 또,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알라딘이 죽을 수밖에 없는데 '착한 어린이'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면 세상의 눈에 널리 띨 수 있기에 하루아침에 사라져도 '아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나쁜(?) 어린이가 필요했던 것이었다.
또 다른 점들도 간략히 소개하면, 우선 램프의 요정이 들어주는 소원의 개수에 '제한'이 없다. '세 가지 소원'이라는 코드는 원래는 다른 이야기 속의 '코드'였는데, 나중에 '차용'이 되어 전해진 것인지, 아니면 '각색' 과정에서 덧붙여진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아무튼 이 책에서는 알라딘을 비롯한 '램프의 소유주'가 빌 수 있는 '소원의 개수'가 꽤나 디테일하고 빈번히 이루어지는 바람에 엄청나게 많아졌다는 점이 특이했다. 그리고 알라딘이 '나쁜 마법사' 때문에 겪게 되는 위기와 갈등이 상당히 길고 꼼꼼하다는 점이 색달랐다. 이렇게 생각 이상으로 길었던 <알라딘과 요술램프> 덕분에 두 번째 이야기의 길이는 사뭇 짧았다. 그리고 대단히 '교훈적'이기 때문에 언급 안 할란다.
마지막으로, '서문'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었던 점은 우리가 알고 있는 '천일야화'의 원작을 그대로 접해볼 수 없다는 안타까운 사실이었다. 짐작컨데, '원작'에 해당하는 부분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입에서 입으로 전래되어 오면서 잃어버리고 변형되었을 것이고, 또, 프랑스인이었던 '앙투안 갈랑'이 손수 모은 그 원작을 가지고 돌아오는 여정에서 잃어버리고, 또, 프랑스어로 뒤치는(번역하는) 과정에서 또 다시 변형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며, 훗날 이것을 '보완'했다던 미국사람 '리처드 버튼'도 역시 미국어로 뒤치는 과정을 거쳤을 것이며, 어느 쪽을 '원본'으로 삼았든지간에 한국사람이 '한국어'로 뒤치는 과정에서 또 한 번 '변형'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이다. 어찌 되었든 간에 현재로써는 '원작의 깊은 맛'을 직접적으로 느껴보기는 힘들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뒤치는 문제'는 또 다른 문제를 낳으니, 그건 바로 '누구를 독자로 삼아 뒤치느냐?' 하는 문제로 <아라비안 나이트>가 어린이용이 되기도 하고, 성인용이 되기도 하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내가 읽은 <천일야화>가 어느 '판본'이냐에 따라 느낌적인 그 '느낌'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아직 이 책에 문외한 수준인 나로서는 골치 아픈 문제이고, 어느 책 하나 [완역본]이라고 볼 수 없기에 일단은 무작정 읽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흥미를 더욱 끌었다.
어쨌든, 수많은 판본과...'앙투안 갈랑'과 '리처드 버튼'이라는 두 사람, 그리고 어린이용과 성인용 책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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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턴보다 앞서 서양에 가장 먼저 《천일야화》를 알린 것은 바로 앙투안 갈랑이다. 루이 14세의 대사 비서관으로 콘스탄티노플에서 터키어와 아랍어를 익힌 앙투안 갈랑은 이때 수집한 《천일야화》아랍어본 그리고 한나라는 이름의 조수와 함께 고국으로 돌아온 이후 1704년에서 1717년까지 12권의 판본으로 이루어진 《천일야화》를 출간하였다. 당시 동양에 대한 서양인들의 인상은 대부분 이 책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하겠다. 감각적이면서도 신비로운 동양이라는 환상은 《천일야화》에 포함되어 있는 무수한 이야기의 성찬과 그 궤를 같이 한다. 후에 나온 버턴의 《천일야화》에 비하여 오히려 다듬어져 있는 탓에, 보르헤스는 버턴의 버전을 더 좋아하는 것 같지만, 무엇이든 그 시작에 붙는 프리미엄이 있는 것이니 앙투안 갈랑 버전의 《천일야화》를 무시할 수는 없다. 게다가 앙투안 갈랑은 ‘알라딘’이 등장하는 요술 램프의 이야기와 ‘알리바바’가 등장하는 도적떼의 이야기를 직접 창작한 것으로도 알려지고 있다. 《천일야화》의 아랍어 버전 자체가 여러 사람들에 입에서 입을 통하여 전해지며 새로이 창작되고 윤색된 이야기들의 모음이라면, 보르헤스의 따르자면 앙투안 갈랑은 이 ‘기나긴 서술자의 가계도에서 맨 마지막 고리를 차지’한다고 할 수 있으니 이 또한 의미가 깊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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