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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횡성 한누리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다. 횡성에서 가장 큰 농어촌버스승강장인 만세공원 옆에 있는 이곳은 비록 작은 도서관이지만 이용하기에는 가장 편리한 도서관인 듯하다. 횡성군은 공공도서관마다 서로 연계가 되어 있으므로, 어느 지역에서 책을 빌렸던 다른 지역의 공공도서관에 반납할 수가 있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이곳에서 책을 읽을 수도 있고, 좀 더 읽고 싶으면 빌린 뒤에 자신이 사는 지역의 도서관에 반납하면 되니……, 정말 세상이 좋아졌다는 것이 느껴진다.
한누리 도서관에는 여러 번 들려서 책을 읽었으나 빌리기는 처음이다. 내가 사는 강림이나 안흥에도 도서관이 있으니 굳이 이곳에서 빌릴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는 강림이나 안흥에서 보지 못한 책이기에 빌린 것이다. 그런 인연으로 만난 책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몇 가지만 적어 보겠다.
첫째, 십자군에 대한 실망이 더욱 커지는 씁쓸함을 느꼈다. 내가 십자군에 대해서 처음으로 읽은 책은 초등학교 때 학원사에서 청소년 문고로 나온 『십자군의 기사』였다. 벌써 많은 세월이 흘렀으므로 내용은 거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십자군에 지원한 소년 기사가 주인공이었다. 영국의 사자왕으로 알려진 리처드 1세가 나왔던 듯하다.
가톨릭 신자인 나는 십자군을 성원했고, 결말에서 십자군의 승리를 기대했는데 휴전 상태로 끝났던 듯하다. 십자군과 싸운 동방 군대들은 사악한 이교도 집단일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오히려 인간적인 면이 보여서 곤혹스러웠다. 그 후 중고교에 진학하면서 세계사 시간에 십자군 전쟁에 대해서 단편적으로 배웠다. 8회의 원정 중에서 성공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은 1회뿐이라는 것을 알고 실망을 하기도 했다. 그 후 단편적으로 십자군을 다룬 글을 통해 십자군의 만행이 극심했고, 오히려 이슬람 군이 관대했다는 기록도 읽었다.
그래도 십자군의 동기는 순수했을 것이라고 믿었으나 이 책을 통해 십자군은 신앙심과는 큰 관계가 없는 정치적인 영향 때문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십자군을 통해서 성지 탈환을 주창한 교황 우르바노 2세 역시 그리 존경할 만은 인물이 아님도 알게 되었다. 책장을 넘길수록 십자군은 신성할 것이 전혀 없는 가톨릭이 세상에 남긴 가장 큰 해악이라는 것이 느껴지면서 새삼스럽게 씁쓸했다.
둘째, 군중 십자군과 은자 피에르의 정체를 파악하면서 신앙의 독소를 느꼈다. 십자군 전쟁은 교회와 서방 각국의 왕들의 여러 정치적인 이해타산의 합집합이지만, 그 계기는 은자 피에르의 꿈이었다. 한때 잘나가는 지식인이었으며, 고위 정치인의 밀사를 맡기도 하는 등 성공한 인생을 누리던 피에르는 예루살렘에 여행을 갔다가 꿈을 꾸었다고 한다. 베드로 성인이 나타나서 예루살렘 성지를 탈환하라는 전쟁을 명했다는 것이다. 피에르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초기에는 그를 미치광이로 취급했으나 각국의 왕들로부터 교회의 기득권을 지키려던 교황 우르바누스 2세와 측근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성지 탈환의 전쟁이 시작되면 그 주체는 당연히 교회가 될 것이고, 교회의 영향력은 증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서방 각국의 이해관계가 얽히고, 맹목적인 신앙심에 들뜬 군중들에 의해 십자군 전쟁이 계획되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신앙심의 발로라고 이해할 수 있다. 십자군이 조직되기도 전에 공명심이 들뜬 피에르는 군중 십자군을 이끌고 동방으로 진군했는데, 그들은 예루살렘이 어디인지도 몰랐다. 가는 곳마다 이곳이 예루살렘이냐고 물었다니, 이런 코미디가 어디 있단 말인가? 뿐만 아니라 멀쩡히 기독교를 믿는 나라들까지 침공을 하고 약탈을 했으며, 잔인한 살육을 감행했다. 아마도 2천 년 기독교의 역사에서 신구교의 갈등이나 마녀재판 등 종교로 인해 죽은 사람보다 십자군 전쟁에서 희생된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서구인들의 유태인에 대한 거부감은 십자군 전쟁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 이전까지 기독교와 유태교와 이슬람교가 지금과 같은 대립은 없었다는 것이다. 피에르의 광신을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 부시의 이라크 침공 등과 연계한 작가의 재치(작가는 피에를 따라다니는 나귀의 얼굴을 부시로 그림)가 놀라웠다.
피에르를 보면서 역사가 되풀이됨을 느꼈다. 1950~1954년 미국을 휩쓴 일련의 반공산주의 선풍인 매카시즘이 생각났다. 매카시는 1950년 2월 “국무성 안에는 205명의 공산주의자가 있다”는 폭탄적인 연설을 하면서 좌익을 악마로 표현하며 동서 진영의 냉전을 더욱 부추겼다. 그의 말은 아무 근거도 없었지만, 공산당을 탄압하려는 미국의 우익에 좋은 먹잇감이 된 것이다.
어찌 미국뿐일까? 6.25전쟁 이후 집권을 한 한국의 우익진영에서는 반대파들을 제거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종북좌익'이었다. 70년대 어느 대학 총장이었던 A 신부도 떠올랐다. 그는 분신자살한 김기설 씨의 배후가 강기훈 씨라느니, 북한의 지령을 받고 움직이는 정치인이 수십 명이라느니 등의 말로 공안 정국 조성을 부추겼지만,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신의 말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보여주지 못했다. 작가는 피에르의 후예들로 히틀러, 매카시, 부시 등을 거론했지만, 나는 A 신부도 포함시키고 싶었다.
셋째, 십자군 전쟁에 대한 환멸로 2편을 읽고 싶지 않았다. 지금까지 십자군에 대한 나의 상식은 8차례의 십자군 원정이 대부분 실패했고, 그중에는 신앙과 관계없는 탐욕으로 인한 범죄로 볼 수 있는 것도 있었지만, 최소한 1회 십자군 전쟁은 성공했고, 신앙의 승리라고 보았다. 그러나 1회 전쟁의 결과는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 어느 시점에서 바라봐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만행이었다. 그래도 성공적이라고 평가를 받는 1차 원정이 이 정도였다면, 2차 이후가 그려질 다음 권에서는 수치스러운 장면이 얼마나 많이 등장할 것인가? 그것을 확인하는 것도 괴로운 일이 아닐까 싶었다.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할까? 십자군 원정뿐만 아니라 당시 유럽의 역사와 서구인들의 생각을 알기 쉽고 표현한 걸작이다. 일반인들의 교양이나 흥미는 물론이고 학생들의 세계사 이해에도 큰 도움이 되는 책이라고 본다. 중학생 이상의 독자라면 흥미 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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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판이 새로 나왔다. 먼저 서운한 점부터 말하련다. 좋은 책이라는 사실은 두 말 하면 입이 아플 지경이니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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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언급할 때 십자군의 이야기를 빼고는 중세 시대를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십자군에 대한 이야기를 할때 종교적 요인을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와의 싸움이라고 먼저 답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간단히 종교운동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습니다. 십자군에 가담한 기사와 상인 농민들은 각각의 욕구가 다릅니다. 기사들은 새로운 영토지배에 대한 야망, 상인들은 경제적인 이익을 위해 그리고 농민들은 봉건 사회의 중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또한, 십자군을 떠올리면 기사도 정신이 따라 연상됩니다. 하지만 역사의 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용감하고 자기 희생적이고, 타인을 배려하고, 정의를 위한 용기를 가진..등등 십자군을 두고 연상되는 단어가 있다면 이 책을 읽고 나서 상당히 바뀔 것이라 생각합니다.
책 소갯글의 한 문장이 눈길을 끕니다.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는 모두 전 6권으로 구성될 예정입니다. 2003년 처음 <십자군 이야기>를 펴낼 때는 '반전'과 '평화'를 주축으로 이야기를 펼쳤다면 이번 개정판에서는 '관용'과 '공존'의 개념을 추가했다고 합니다.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는 작가의 상당히 해박한 역사 지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사실 역사를 이해하기란 참 어렵습니다. 한국사든 세계사든 역사는 사실 어렵습니다. 당시의 사건과 정치의 세계, 관습과 문화의 인식까지 이해하는 것은 당연히 어렵죠. 시간과 공간의 공존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무래도 더 쉽게 씌여진 역사서를 찾게 되는데요~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는 이런 면에서 아주 정확한 사실을 흥미롭고 위트있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1권 군중십자군과 은자 피에르>입니다.
중세 유럽의 한 광신도로 은둔자 피에르라고도 불리는 한 사람이 나타납니다. 그의 일과는 당나귀를 타고 꿈에서 성 베드로가 그의 꿈에 나타나 이슬람과 전쟁을 하라고 했다고 주장을 합니다. 그를 지켜보고 있던 교황 우르바노 2세는 교묘히 선동하여 십자군 전쟁을 일으키려 하지만 피에르는 군중을 모아 정식 십자군보다 먼저 출발을 합니다. 이들이 바로 군중십자군이죠. 이들은 예루살렘을 탈환하러 떠납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 바로 예루살렘이 어디에 있는지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현대인의 머리로는 도무지 말도 안 되는, 상상도 안 되는 줄거리입니다만 당시 중세는 이것이 통했습니다.
무지와 편견은 어떻게 전쟁으로 이어지는가? 바로 1권의 주제입니다.
동쪽에 있다는 예루살렘을 향해 군중십자군은 출정합니다. 대략 동쪽이라는 점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정확한 지점이 아닌 대략으로 움직였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들은 도착하는 도시마다 '이곳이 예루살렘인가'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군중십자군은 예루살렘을 찾으러 가는 길에 거치는 도시에서 온갖 만행을 저지릅니다. 학살과 약탈이 일상화 되어버립니다.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 1권 군중 십자군과 은자 피에르>는 피에르의 등장을 시작으로 십자군이 학살의 시작이 되어버린 과정, 군중 십자군 때문에 위기에 처한 제국의 이야기와 온갖 만행을 저지른 군중십자군의 최후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십자군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군중십자군에 대해서는 잘 몰랐던 편입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십자군=기사도정신 정도만 알고 있었다고 하죠.
하지만 이번 1권을 읽으면서 상당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간혹 인터넷의 정보로 얻게 되는 십자군의 내용도 사실 이해가 어려웠는데 위트있는 저자의 이야기 전개는 좀 더 쉽게 군중십자군과 당시의 시대상에 대해 잘 알게 됩니다.
1권에서 주목해야 하는 부분 고전 읽기가 있습니다.
사실 군중십자군에 참여한 사람들은 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누구보다 더 용맹하거나 더 잔악하거나 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이 저지른 일은 아마 공포물의 소재로 충분히 사용할만한 행동을 저지릅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왜 사람들이 군중십자군에 휩쓸려 끔찍한 살인을 저지르는가에 대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나 고전을 통해 독자들에게 해박한 지식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극히 평범했던 아돌프 아이히만은 유대인 대학살 당시 희생자들을 수용소로 이동시킨 담당자였는데요, 이 사람을 재판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아이히만의 본모습은 생각과 너무 다른 대조적인 모습이라 오히려 더 경악했답니다.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 1권 군중 십자군과 은자 피에르>는 여기까지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작가는 왜 십자군 이야기를 펴냈을까요? 이는 책 소갯글을 발췌합니다. 우리가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떤 점을 주목해야 하는지 독자들에게 일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세만을 이해하고, 그 뒤에 이어질 유럽국가의 상생관계만을 이해하기 위해 십자군을 바라보면 안 되겠습니다. 그때에도 무지함 때문에 살육이 난무하는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가 우위라는 생각(십자군 측면에서 본다면)은 아주 아주 왜곡된 사실이라는 점 저 역시도 이번에 제대로 알았습니다.
세계사를 배울 때 그리스도인의 사명감이 우선으로 깔린 배경이었다는 것이 떠오르는데 말입니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것과 중세 십자군의 무지막지함과의 관련성에 대한 주장은 2권, 3권을 읽고 제대로 알고, 좀 더 이해하고 논해봐야겠습니다.
2권을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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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글에서 문화평론가 진중권씨는 ≪십자군 이야기≫는 중세에 일어났던 당시 지배층의 정치적 야욕, 기사계급의 물질적 욕구, 순진한 민중들의 헛된 기대가 한데 모여 일어난, '역사만담꾼 김태권'의 또 다른 매력으로 로마네스크 양식의 그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위트가 넘친다는 '김태권'식 유머에는
각 권마다 책의 구성은 도입부에 십자군 원정이 일어난 중심부에 십자군 이야기, 마지막에 ‘고전’소개로 이루어져있다.
도입부는 1권은 ‘로마에서 십자군까지’로 로마제국의 흥망과 2권은 7세기쯤 나타난 이슬람 이전의 ‘중동’의 패자, 3권은 이슬람 세계의 탄생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후반부의 ‘고전’읽기는 1권에서는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브라우닝의 『보통 사람들』, 이삼성 『20세기의 문명과 야만』, 짐바르도 『루시퍼 이펙트』를 통해 평범한 사람들이 군중십자군에 휩쓸려 학살자가 되는 것을 설명한다. 히틀러의 명을 충실히 수행해 수백만 명을 아돌프 아이히만도 정신과 판정 결과 지극히 정상인 평범한 사람이었다 한다. 여러 실험을 통해 상황과 군중심리에 의해 특별한 누군가가 아니라
2권에서는 투키디데스의 『필로폰네소스 전쟁사』, 플라톤의 『국가』를 통해 계속 벼르기만 했던 『국가』를 조만간 읽어봐야겠다. 아,, 하지만 결심하는 순간 조차도 망설이게 되는 무게는 여전하구나.
3권은 저자가 방문한 프랑스 파리, 뱅센 숲 입구의 ‘포르트 도레’ 역에 이민자에 가장 관대하기로 유명한 국가 중 하나인 프랑스도 최근에는 ‘이민과 국가정체성 부’라는 부서를 만들어 이민자들에게 강요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음을 고발했다. 여전히 우리나라의 상황을 잊지 않게끔하는 작가의 캐리커쳐가 등장한다.
십자군 전쟁이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종교와 문화를 하지만 반대의 이화(異化)정책도 주의하기를 당부한다. 나치 독일의 유대인 정책이 이 이화(異化)정책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다양성을 인정하며 공존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화두였다. ≪십자군 이야기≫는 1095년부터 1291년에 걸쳐 200년에 걸친 군중 십자군(1096년) 제1차 십자군 원정 (1096년~1099년) 제2차 십자군 원정 (1147년~1148년) 제3차 십자군 원정 (1189년~1192년) 제4차 십자군 원정 (1202년~1204년) 알비 십자군 (1208년) 제5차 십자군 원정 (1218년~1221년) 제6차 십자군 원정 (1228년~1229년) 제7차 십자군 원정 (1248년~1249년) 제8차 십자군 원정 (1270년) 어린이 십자군 본격적으로 1권에서 언급하는 내용은 은자 피에르가 이끄는 군중 십자군 (1096년)의 출정과 전멸에 대한
은자 피에르는 당시 잘나가던 지식인이었는데 어느 날 예루살렘에 순례 여행을 갔다가 꿈에 성인베드로의 성지탈환 전쟁을 명하는 계시를 받고
[은자 피에르가 십자군에게 예루살렘으로 가는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문헌에 의하면 그는 항상 당나귀를 탔는데 저자는 그림에서 피에르의 당나귀 모델로 이라크를 침공한 낮에는 자신의 꿈을 근거로 전쟁을 호소하고 밤에는 아무데나 쓰러져
당시 권력의 정점에 있던 교황 우르바누스 2세와 그 측근들은 동쪽으로 사람들을 선동하는 역할로 이용하기에 적합한 인물로 계획은 성공적이었고 나눠먹을 것이 적었던 하층 기사계급과 성지탈환은 곧 부와 연결되었기 때문에 모두들 장미빛으로 물들었다.
1차 십자군 출정일을 앞두고 토사구팽(兎死狗烹) 당한 피에르가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가는 방향도 몰랐고 엉뚱한 곳으로 가는 곳마다 불시에 일격을 받은 무고한 시민들을 군사의 태반을 잃었으며, 우여곡절 끝에 동로마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폴리스에 도착은 했다. 군중 십자군은 결국 셀주크 투르크군을 만나 전멸당했고, 기사 레이날도는 항복하고 은자 피에르는
여기서 한 가지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해진 것은 전쟁을 치른다는 사람들이 또 은자 피에르는 예루살렘에 순례 여행 갔다가 계시를 받은 것이므로 작가는 이에 대한 설명으로 당시에 쓰였던 ‘TO지도’를 들었다. 지도를 보니 이해도 갔다.
그 시대는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만이 존재한다고 믿었고, 이 때문에 나중에 동쪽에 어마어마하게 넓은 아시아가 있다는 사실이 ‘소(小)아시아 Asia Minor’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니 이 또한 재미있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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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세계사를 통해서 십자군 전쟁에 대해서 알게 되었지만, 특별히 관심을 갖지는 않았다. 개인적인 흥미를 갖기 시작한 것은 성인이 되어 감상하게 된 몇 편의 영화를 통해서였다. 시각적인 영상으로 흥미롭게 접하며 다시금 알게 되었던 십자군 전쟁의 진실과 참상은 인간의 탐욕이 얼마나 잔인하고 무모한지를 일깨웠고, 소통의 부재가 전쟁으로 얼마나 쉽게 번질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언젠가 책으로 좀 더 진지하게 접해보려 했는데, 마침 선호하는 만화로 엮은 책으로 접하게 되어서 개인적인 기대감이 더욱 커졌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전쟁이 마치 십자군 전쟁을 닮아 있듯, 그해 김태권 작가는 십자군 전쟁 이야기를 통해서 반전과 평화의 메시지를 담아 만화로 그려냈다. 이후 여러 해가 지나 관용과 공존의 메시지를 더해 초판의 몇 몇 부분을 수정하여 ‘십자군 이야기’ 개정판 1권이 나왔다. 1, 2권은 이전에 출간되었던 십자군 이야기를 개정하였고, 앞으로 6권까지 시리즈로 출간될 예정이다.
자신의 종교만이 올바르다는 편견아래 신이 허락한 전쟁이라는 명분으로 십자군 전쟁은 시작된다. 정계와 종교계의 권력 집단이 자신들의 기득권과 권력을 보호하기 위해서 왜곡된 명분을 내세워 시작되었고, 결국 전쟁의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참혹한 결과를 가져왔다.
역사 이야기가 개인적으로는 흥미롭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지루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상세한 역사 지식과 함께 만화로 재치 있게 구성되었기에 장점이 많다. 짧은 시간에 흥미롭게 역사를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반인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교육적인 면에서도 추천할만한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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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3』 김태권 오랜 시간 걸렸다.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3권이 나왔다. 1권 출간 후 8년, 2권 출간 후 6년 만이다. 전 6권으로 기획된 이야기의 딱 절반이 나왔다. 물론, 11세기 말에서 13세기 말까지 200여 년,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랜 시간 치러진 십자군 전쟁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만큼 십자군을 다룬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가보다. 2003년 처음 나오면서 부시 전 미국대통령의 뻘짓으로 야기된 이라크전쟁을 비판하며 제대로 된 십자군 전쟁을 보여주겠다는 취지로 나온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다. 만화로 풀었지만, 그 내공은 만만치 않다. 김태권 작가는 서구 중심의 십자군 사관(史觀) 대신, 역사적 진실을 추적하면서 현재의 사회상을 빗대 우리에게 ‘전쟁’이라는 폭력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신의 계시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결국은 인간이 일으켰던 전쟁이었던 십자군 전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각인시킨다.
그래서 3권 역시 답을 내기보다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것을 권한다. “과연 정의로운 전쟁은 가능한가?” 최근 시오노 나나미도 그렇지만, 십자군이 지금에 다시 회자되는 이유를 생각해봐도 좋겠다.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3권 출간 기념으로 지난 26일, 서울 마포평생학습관에서 저자 강연이 열렸다. ‘반전과 평화를 넘어 관용과 공존을 생각한다’는 주제로 열린 강연을 통해 여전한 전쟁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태도를 생각해 봐도 좋겠다.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4권은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무슬림의 역습과 인간 살라딘’편으로 매주 월·수·금 알라딘 창작블로그(http://story.aladin.co.kr/via_kimtae)를 통해 만날 수 있고, 오는 11월 출간될 계획이다. 살라딘을 영웅 아닌 인간의 모습으로 그린 이유 이날 강연은, 1163~1186년에 걸친 살라딘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우선 아이유브 왕조의 설립부터. 아이유브 왕조는 시리아, 이집트 두 땅을 통일했다. 살라딘이 이를 이뤘는데, 그 과정에서 운도 따르고,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은 것이 정치적 자산이 됐다. 예루살렘(지금의 이스라엘)왕국을 정복한 것도 그렇다. “20세기 史에 관심 있는 사람은 알겠지만, 과거 이집트 낫세르 대통령이 제안한 것이 아랍연방이었다. 이집트와 시리아를 연방으로 만들어 통일하면 팔레스타인을 회복할 수 있고, 아랍 사람들이 가서 살 수 있다. 시리아도 좋다고 해서 정부를 꾸리나 몇 년 못 가서 깨졌다. 그런 이야기들이 나올 정도로 살라딘의 아이유브 왕조는 좋았던 시절이다.”
김태권 작가의 관점은 그들과 다소 다르다. 아랍권에서는 영웅인 살라딘이다. 초상화만 봐도 짙은 눈썹에 결의에 가득 찬 모습이다. 혹은 근엄하거나 현자의 모습이거나. 그는 살라딘을 영웅의 모습으로 그리지 않았다.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의 십자군 이야기를 관통하는 ‘십자군 사관(史觀)’이다. 그는 함께 생각해봤으면 하는 이야기라고 이 말을 꺼냈다. “영웅을 바라는 민족은 불행한 겨레다.” 타리크 알리라는 아랍 출신의 무슬림계 프랑스 지식인의 이야기로, 영웅을 바라는 것을 왜 굳이 불행하다고 했을지 생각해보자고 했다.
그에 의하면, 영웅(Hero)은 그리스어인 헤로에서 나온 말이다. 헤로(영웅)은 『일리아드』에 등장한다. 책에서 헤로는 서로 죽고 죽이는 사람들이다. 전쟁과 결부돼 있고, 서로 싸우다 죽는 것이 자연스런 일이고, 자기 목숨을 아낌없이 내 던지는 사람들이다. “문제는 이런 사람들이 많으면 위험해진다. 자기 목숨도, 타인의 목숨도 돌보지 않는 것이 고대의 영웅이었다. 『일리아드』에 나오는 영웅이 그렇다. 딱 한 명, 예외적인 인물이 오디세이아다. 늘 살아서 집에 돌아가려고 하는데, 문제는 집에 온 뒤에 다른 사람들을 죽인다. 중세 기사들도 어느 정도는, 시쳇말로 주먹 쓰는 건달과 같은 부류였다. 그런 영웅들만 있는 세상은 피비린내 나고, 얼마나 무섭겠나?” 오답은 있지만 정답은 없는 세계 김 작가는 『슈퍼맨 레드 선』이라는 미국 만화(DC코믹스)의 이야기를 꺼냈다. 이 책은, 일종의 『슈퍼맨』 패러디다. 클립톤 행성에서 태어난 슈퍼맨이 고향이 멸망하면서 지구, 그것도 미국으로 도착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가 『슈퍼맨』이라면, 『슈퍼맨 레드 선』은 아기 슈퍼맨을 태운 캡슐이 6시간 늦게 클립톤을 떠나 소련에 떨어지면서 또 다른 이야기가 벌어진다. 슈퍼맨은 투철한 소련 시민이 되고, 냉전시대의 슈퍼맨은 미국을 항복시키고 세계를 통일하고 소비에트 서기장으로 올라간다는 내용이다. “단순히 이렇게 비틀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이런 완벽한 지성과 완벽한 인격을 갖춘 영웅은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가?’가 만화의 주제다. 당연히 될 것 같은데, 아니라는 게 만화의 결론이다. 재밌는 설정의 만화인데, 슈퍼맨은 결국 지구를 떠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영웅의 대부분은 전쟁을 일으키고 싸움을 하거나, 사람들에게 괴로움을 주는 면도 많다. 그런데, 착한 사람이 권력을 쥐면 세상이 행복해질까, 라는 물음에 그렇진 않을 것 같다는 말을 하고 싶다. 도스토예프스키도 『지하 생활자의 수기』에서 말한다. 이상적인 체제에서 이상적인 사람들이 이상 국가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었다 해보자. 시스템이 오래 갈 것인가? 처음에는 좋다가, 권태로워서 나중엔 다 도망갈 거라고 했다.” 그가 완전하게 동의하진 않으면서도, 만화를 그리면서 자연스레, ‘세상은 어려운 문제들 투성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더 문제는, 그럼에도 내버려 둘 수는 없다는 것. 물론 쉬운 해결책도 없다. 십자군 이야기를 그리면서 느꼈던 점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1권을 그릴 때였다. 미국 부시 대통령이 아프간과 이라크를 쳐들어갔다. 확실히 잘못된 일이었다. 오답이었다. 문제는 지금 이라크에서 나와야 하느냐의 것이다. 이런 것도 있다. 팔레스타인이 잘 살고 있었는데, 이스라엘이 같이 살자고 하면서 전쟁을 일으키고 팔레스타인을 점령했다. 총을 쏘고 폭탄을 터트리고, 서로에게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줬다. 잘못됐다. 그러나 해결이 쉽지 않다. 이스라엘이 땅을 비워주고 나와야 한다고, 간단하게 이야기할 수도 없다. 그러면 팔레스타인이 양보를 해야 하느냐? 그것도 아니다. “오답은 있지만 정답은 없는 세계라고 생각이 든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는 말할 수 있지만, 무엇이 올바른지는 쉽게 알 수 없는 세계다. 악은 명백하다. 그러면 뭐가 선이냐, 옳으냐. 그건 너무 어렵다. 나는 모르겠다. 나는 이것을 선악의 비대칭성이라고 부르고 싶다. 올바름과 불의함의 비대칭성이다. 누가 나쁜 짓을 해서 때려준다고 좋은 일이 되지 않는다.” 잘못된 행위가 존재하나 이후 해법은?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1, 2권에 예루살렘 점령과 학살 등과 같은 잘못된 일을 그렸다. 김 작가는 묻는다. 그렇다면 잘못된 행위에 복수하는 건 정당한가? 그는 이것에 대한 고민을 4권에 담고 있다. “아제르 상귀니스 전투(1119년)가 있었는데, 폭력을 사용해 보복하는 행위였다. 에뎃사라는 도시를 정복할 때 민간인에게도 공격을 한다. 십자군과 무슬림이 싸우다가 해결된 것이 몽골군이 쳐들어와서다. 몽골군이 그들을 싹 쓸어버린다. 사람을 해친 뒤, 목을 갖고 피라미드를 쌓은 살육 뒤 정리를 한다.” 이런 문제도 있다. 12세기 중엽, 잘못된 전쟁으로 탄생한 예루살렘 왕국. 그러나 그곳이 삶의 터전인 사람들도 있다.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3권에서 등장한 멜리장드 공주에게 무슬림이 예루살렘을 되찾겠다며 “너희 선조의 책임이니 책임지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김 작가가 보기엔, 이건 옛날 문제뿐 아니라 현재 팔레스타인 문제의 해법이기도 하다. “이미 1세대가 지나고 젊은 세대가 살고 있는데, 원래 여기는 부모가 나쁜 짓을 해서 뺏은 곳이니 너희는 다 나가, 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과거사를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생긴다. 첫 단추를 잘못 꿰면 아래 단추 입장에서는 난처해진다. 최선을 다해 단추 구멍에 들어갔는데, 첫 단추가 잘못돼 다 엉망인 거니까.”
예루살렘 문제를 놓고 해법이 있었다. 1187년, 살라딘이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예루살렘왕국을 멸망시켰다. 이때, 살라딘은 항복한 기독교 기사들에게 관용을 베풀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은 팔려가는 신세를 면할 수 없었다. 거의 모든 전쟁은 그렇다. 부자나 귀족은 살아나갈 구멍이 많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은 노예로 팔려나거나 죽는다. 살라딘은 달랐다. 그런 시스템을 거부했다. 자기 돈으로 몸값을 치러주고 이들을 풀어줬다. “6권에서 다룰 내용인데, 페데리코 2세와 알카밀이 있다. 알카밀은 살라딘의 동생인데, 평화협상을 한다. 알카밀은 살라딘이 힘들여 뺏은 것을 적에게 넘겨줬다며 같은 편에게 바보 취급을 당한다. 페데리코 2세는 교황청에서 파문을 당한다. 싸움 대신에 화해를 했다는 이유로.” 역사는 되풀이되기 마련이라고 했다. 김 작가가 든 예다. 낫세르 이집트 전 대통령의 경우. 그는 살라딘을 롤모델로 삼았다. 사다트가 이집트 대통령이 된 뒤, 캠프 데이비드에서 협상을 통해 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하자고 했다. 그러나 몇 년 뒤, 낫세르 전 대통령은 암살당했고, 사다트 뒤에 온 것이 무바라크였다. 올바르고자 하는 의도에서 잘못된 경우도 나온다. 김 작가에 의하면, 대표적인 것이 십자군이다. 1095년 교황 우르바누스 2세가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원정 계획을 발표했다. 그는 묻는다. “신은 전쟁을 바라셨을까?” “1권에서 군중 십자군에 주목한 이유가 그렇다. 옳다고 해서 전쟁에 뛰어들었는데, 여러 사람들에게 고통만 줬다. 2권에서의 안티오키아 점령, 마라트안누만의 학살도 마찬가지다. 어른은 삶아먹고 아이는 구워먹는다. 책에서 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 박스처리로 살짝 언급만 했는데, 단지 배가 고파서가 아니다. 여러 추론이 있으나 몇몇 학자에 의하면 종교적인 문제일 수 있다. 뒤에 다룰 이야기인데, 6권이나 외전에서, 어린이 십자군(1212)이다. 유럽전역의 아이들이 모여서 십자군에 나가겠다고 한다.” 원칙과 현실 사이,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 김 작가는 언급한 것이 ‘악의 평범성 banality’이다.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1권에서 이것을 다뤘다. “선악에 대한 거대담론은 어차피 알기 어려우니 하루하루 주어진 삶에 충실하게 살자. 그것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선이다.” 그러나 이것도 어렵다고 김 작가는 단언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아이히만 재판’을 예로 들었다. 아이히만은 나치 전범이다. 유럽 전역의 유대인들을 찾아내서 수용소로 가는 기차에 보내는 역할을 했던 나치의 장교였다. 숨어 있던 그를 붙잡아 법정에 세웠는데,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 그는 악마가 아니라 평범하기 그지없는 사람이었다. 가령 이런 질문과 답변. 히틀러를 왜 좋아했느냐? 자수성가해서 좋아했다. 나치는 왜 들어갔느냐? 친구가 들어가자고 해서 들어갔다. 아이히만은 착실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했던 직장인이었다. 홀로코스트에서 유대인들이 엄청 죽어갔음에도.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이 재판을 기록으로 남기면서 표현한 것이 ‘악의 평범성’이었다. “우리는 선한 동기를 위해 약간의 악을 행할 수도 있지 않은가? 정의로운 일을 하다보면 폭력이 있을 수 있고, 불가피하게 나쁜 일이 섞일 수 있다고 얘기한다. 20세기 중반의 몇몇 사건들이 그런 식으로 면피를 했다. 지금 리비아의 카다피도 그렇다. 헷갈릴 때가 있는데, 얼마 전 만났던 분쟁전문 한 선배기자가 말하더라. 분명한 한 가지는, 어떤 명분이건 사람을 마구 죽이는 쪽이 나쁜 거라고.” 다시 돌아와서, 살라딘은 그런 면에서 좋은 일을 많이 했다. 피해를 줄이려고 했고, 싸움을 해야 할 때는 최대한 기다렸다. 그러다 상대편이 포기하거나 먼저 죽는 경우도 있었다. 그에겐 운도 따랐다. “살라딘은 숱하게 전쟁을 겪었다. 먼저 조약을 어긴 적이 없고, 나서서 사람을 죽이자고 한 적도 없다고 한다. 그러나 지나친 이상주의는 파국을 초래할 수 있다. 살라딘은 그나마 운이 좋았던 편이라는데, 살라딘의 동시대 사람들이 그를 비난할 때 이런 말을 했다. 기사를 너무 많이 살려줬기 때문에 싸움이 안 끝나서 전쟁이 계속 됐다는 거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원칙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되, 가끔은 현실과 조율할 필요가 있다. 어느 정도로? 그 답은 아무도 모른다. 다만, ‘이것이 정답’이라고 속삭이는 모든 목소리를 경계해야 한다.” 이어서 그는 다음과 같은 자세를 권한다. 권위에 대한 거부. 도그마에 대한 거부. 상식과 통념에 대한 거부. 당연한 것이라고 믿어왔던 모든 것에 대한 거부.
“이런 거부하는 힘 중에 가장 건전한 것이 ‘웃음’이다. 『장미의 이름』을 쓴 움베르토 에코의 강연록을 보면, 그는 파시즘의 재림을 걱정한다. 파시즘은 웃음을 거부하는 사조다. 그러니까 웃자고 얘기한다. 밀란 쿤데라는 『웃음과 망각의 책』에서 웃음이 사회의 질서를 부수기 위한, 경직된 것을 깨트리기 위한 것이라는 얘기를 한다. 살라딘을 웃음 띤 모습으로 그리고 싶었고 그렇게 그렸다. 살라딘을 보면서 웃을 수 있는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 Q&A 왜 ‘십자군’이 됐는가? 십자모양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있다. 내가 알고 있는 범위에선, 십자가가 그려져 있고, 밑에 어떤 사람이 무릎을 꿇고 손을 모으고 있는 도상이 있다. 그 도상은 몇 천 년 전의 중국 도기에서 나왔다. 그래서 십자모양으로 돼 있는 게 신의 상징이었다는 얘기가 있는데, 기독교에서는 십자가가 죽음과 구원의 상징이다. 십자군은 십자가가 그려진 유니폼을 입은 건 통일성도 있어서 그렇다. 십자군 무늬의 유니폼을 입은 건 1095~1096년 정도일 거다. 십자군은 자발적인가 아님 부추겨서 나간 건가? 나도 궁금한 부분이다. 어디까지가 부추긴 거고, 자발적이었는지 구별이 어렵다. 어제 트위터에서 재밌는 것을 봤다. 에반게리온과 건담, 마징가Z 주인공은 항상 초등학생 혹은 중학생인데, 중학생을 넘어가면 ‘네가 지구를 구할 수 있다’는 말을 믿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거다. (웃음) 농담인데, 묘하게 공감이 가더라. 소년병, 홍위병 그런 게 위험한 이유다. 웃음에 대해 좀 더 듣고 싶다. 움베르토 에코는 웃음을 하나로 이야기했다. 밀란 쿤데라가 주목한 것도 하나의 권위와 체계 안에 하나가 됐다고 기뻐하는데 맞서는 웃음이다. 이것이 정답이라고 하는 목소리에 속지 말자고 했을 때, 하지만 주위에선 아이히만이나 카다피처럼 되라는 그런 목소리가 속삭이잖나. 그런 것에 반박을 하는 방법이라면, 지식을 쌓거나 비판적 사유(사고)를 유지하는 것, 독서를 하는 것도 있고, 그 중의 하나로 웃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도 있을 것이다. 버트런드 러셀은 종교가 없으면 전쟁도 없다고 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하나의 입장일 수 있는데, 나는 그렇지 않다. 어디까지가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고, 버려야 할 것인가를 조심스레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종교가 우리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많이 봤지만, 그럼에도 종교가 할 수 있는 좋은 일도 있지 않나, 아직까지 생각한다. 작업하면서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대학을 졸업하고 그림을 그렸는데, 데뷔 전까지 계속 굶었다. 지하생활자로 살았다. 줄곧 라면만 먹고 그림을 그리다가 데뷔하면서 반찬도 사먹고. (웃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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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이라는 단어는 그동안 무의식적으로 정의의 사도와 같은 의미로 사용됐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리고 서구 위주의 십자군에 대한 평가에 익숙해져있던 사람이라면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가 주는 충격은 상당하다. 과면 이것이 논픽션인지 실제 역사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십자군 이면의 실제를 속속들이 파헤치고 있다. 선한 기독교와 악한 이슬람이라는 편향된 시각을 가진 이라면 중립적인 시각을 가진 이 책이 처음은 생소하고 낯설겠지만 용맹한 선을 행하는 것으로만 알았던 십자군의 진면목을 다시 볼 수 있는 귀한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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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야의 책이건 읽다보면 역사를 모르고선 이해가 힘든 부분들이 많다. 인문학 관련 뿐 아니라 가벼운 엣세이나 소설류도 역사적 배경을 가지는 경우가 있으니 말이다. 특히 서양에서 쓰여진 책을 읽다보면 십자군 전쟁에 대한 무지함이 종종 발목을 잡곤 했다. 학교때부터 세계사라면 머리가 아팠던지라 새삼 세계사 책을 펼치려니 왠지 겁부터 나고, (그 낯설고 비슷비슷한 이름과 지명들 ㅠㅠ) 그렇다고 무시하고 넘어가자니 답답하고... 그러던 중 읽게된 이 책,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무려 만화책이다. 그렇지만 결코 대충 쓰여진 책이 아니고, 내용 역시 일반책 못지않게 빵빵하다. '먼나라 이웃나라'보다 좀 더 빡빡한 느낌을 떠올리면 될듯^^ 하지만 만화답게 그림과 지도가 많아 이해하기 편하고, 특히 작가 특유의 유머가 수시로 등장하니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워낙 내용이 방대한 십자군 전쟁이 소재이다보니 자연스레 머리가 아파오기도 했지만^^;; 전공자를 만족시킬 수는 없을지 모르지만 일반인이 유럽의 중세사와 이슬람문화를 이해하는데는 부족함이 없는 책? 만화책이라고 생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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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역사란 그 시대를 사는 사람의 몫이 아니라 후세에 과거를 기억하고 해석하는 사람의 몫이다. 그리고 굳이 예전의 일을 기억하고 들추어 해석하는 이유는 과거는 되풀이 된다는 말이 있듯이 과오는 되풀이하지 않고 교훈은 배우기 위해서 어떤 삶의 방향이 과연 만인에게 올바른 것인지를 알기 위함이 아닐까 한다.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기도 하고 분석하기도 하는 과거의 사건들 중의 으뜸은 전쟁이 아닐까 한다. 크고 작은 전쟁의 과정과 결과로 인하여 많은 인류의 역사에서 중대한 흐름이 생겨났고, 현재의 역사가 탄생했을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인명이 죽고 많은 문화적 유물이 사라진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제 더이상 전쟁으로서 역사를 만들어 내려는 시도는 사라져야 할 것이다. 따라서 과거의 전쟁의 흐름을 살펴보고 이해하며, 위에 썼듯이 과오는 되풀이하지 않고 교훈은 배우려는 시도는 필요하다. 아직도 전세계 곳곳에서 전쟁은 계속되고 있고, 그러한 전쟁으로 남는 것은 피폐한 민중들의 삶과 몇몇 위정자들의 이익이다. 이러한 전쟁의 이중성이 극대화되어 있으되, 아직도 많은 이데올로그 등은 수많은 전쟁광을 양산하고 있다. 이 책은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전쟁인 십자군 전쟁을 다룬다. 그에 대한 우리의 교육과 시각은 극히 서양, 특히 기독교 적인 해석으로 편향되어 있으며 이러한 편향성이야말로 계속적으로 무의미하고 몇몇에게만 이익이 되는 전쟁을 낳음을 저자는 역설한다. 과거 십자군 전쟁을 일으켜 내적 갈등과 모순을 외부로 돌려 해결하려 했고, 그 와중에 많은 반사이익을 얻으려 했던 그 모습과 현대에 와서도 계속적으로 전쟁을 일으키고 있는 미국, 특히 부시의 그 모습과 너무도 같지 않은가. 그 와중에 보여주는 여러 가지의 일화들은 과연 전쟁이라는 것의 기치와 의의가 존재는 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촌극이고, 사실 매스미디어와 통신의 발달로 많은 정보를 공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현대의 전쟁에서도 그러한 점은 변하지 않았다. 결국 저자가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십자군 운동에 대한 또 다른 해석. 편향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지 않았던 그러한 해석을 들려줌과 동시에 전쟁이라는 것이 일어나서는 안되며, 역사의 근원과 시각에서 중요한 것은 결국 인권이라는 것.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방향을 수렴하게 해야 한다는 것으로 읽힌다. 이 책과 함께 저자가 추천하는 풍성한 참고 문헌을 읽기를 권한다. 훌륭한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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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이야기를 가지고 풀어쓴 역사만화책이다. 1권과 2권이 있어서 어제 다 읽었다. 금방 읽게 한다. 그만큼 재미와 흥미가 있는 책이다. 어짜피 십자군이야기에 대한 기본 이해는 있었기 때문에 금방 읽었을 것이라고 내 자신은 생각하지만 그러나 기존에 있는 지식과 다른 것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더 관심을 가지고 보았다. 군중 십자군과 은자 피에르라는 소주제로 글을 풀어나가고 있다. 처음부터 십자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로마시대로 부터 풀어가고 있다. 이유는 십자군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다른 책들은 십자군을 이야기하면 배경으로 동로마 서로마 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이 책은 그 이전부터 역사적인 배경을 시작한다. 폭력과 무지의 배경을 말한다. 아무튼 재미가 있는 책이다. 관점도 새롭다. 책의 전반적인 관점이 우리가 배운 서양적 관점이 아닌 다른 관점으로 글을 사용한다. 중동의 관점, 피지배자의 관점, 약자의 관점에서 글을 풀어가고 항변하는 것을 본다. 그래서 재미가 있고 흥미가 있는 것이다.
문화평론가 진중권씨가 말하는 것처럼 이 책은 그냥 내용전달에 관심을 두고 있지 않다. 또 다른 생각, 사상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 책을 쓰기 전에 김태권씨가 보았던 책들, 참조한 책들의 면면을 볼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서양적인 관점이 아닌 이슬람의 관점이 있다. 이슬람에서 본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이라는 책들이다. 저자는 이름과 명칭등에 사용하는 기본 서적으로 말하고 있지만 그것이 저자의 글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런 부분도 많이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십자군에 대해 다른 생각을, 기존 교육에 대한 반대의 글을 읽을 수 있어서 사상의 중용을 가져올 수 있는 책이었다. 또한 저자의 위트와 역사에 대한 생각은 또 다른 저자의 책에 대한 흥미를 가져오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