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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의 흑역사를 확인한 십자군 이야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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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횡성 한누리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다. 횡성에서 가장 큰 농어촌버스승강장인 만세공원 옆에 있는 이곳은 비록 작은 도서관이지만 이용하기에는 가장 편리한 도서관인 듯하다. 횡성군은 공공도서관마다 서로 연계가 되어 있으므로, 어느 지역에서 책을 빌렸던 다른 지역의 공공도서관에 반납할 수가 있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이곳에서 책을 읽을 수도 있고, 좀 더 읽고 싶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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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횡성 한누리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다. 횡성에서 가장 큰 농어촌버스승강장인 만세공원 옆에 있는 이곳은 비록 작은 도서관이지만 이용하기에는 가장 편리한 도서관인 듯하다. 횡성군은 공공도서관마다 서로 연계가 되어 있으므로, 어느 지역에서 책을 빌렸던 다른 지역의 공공도서관에 반납할 수가 있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이곳에서 책을 읽을 수도 있고, 좀 더 읽고 싶으면 빌린 뒤에 자신이 사는 지역의 도서관에 반납하면 되니……, 정말 세상이 좋아졌다는 것이 느껴진다.

 

한누리 도서관에는 여러 번 들려서 책을 읽었으나 빌리기는 처음이다. 내가 사는 강림이나 안흥에도 도서관이 있으니 굳이 이곳에서 빌릴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는 강림이나 안흥에서 보지 못한 책이기에 빌린 것이다. 그런 인연으로 만난 책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몇 가지만 적어 보겠다.

 

첫째, 예상외로 진지한 책이었다. 이 책은 글자 그대로 만화였다. 그림체가 사실적인 것도 아니고, 가끔 개그 같은 대사도 나온다. 은자 피에르를 따라다니는 나귀의 머리를 부시로 그린 것에서도 풍자가 느껴진다. 가끔 독자와 농담을 주고받기도 한다. 중세 시대 십자군을 이야기하면서 고대와 현대의 일화도 좌충우돌로 넘나들기도 한다. 당대의 인물들의 모습이나 시대 상황을 우수꽝스럽게 묘사하면서 독자의 웃음을 이끌기도 한다. 그러나 결코 가벼운 책이 아니었다. 굳이 분류하자면 블랙코미디라고 할까? 힘은 있지만 무식한 지도자를 만나서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고 병사들은 고통을 겪었으며, 인육까지 먹었다고 하니 민중들의 가슴은 얼마나 찢어졌을 것인가? 책장을 넘기면서 더욱 힘들었던 것은 십자군 전쟁의 독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유태인을 학살한 히틀러가 광기와 히틀러 못지않게 2차 대전에서 희생된 유대인보다 더 많은 희생을 당한 팔레스타인의 비극, 2001년 9.11테러와 전쟁광 부시가 도발한 침략의 뿌리는 십자군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우수꽝스러운 그림과 대사를 보면서도 결코 웃을 수가 없었다.

 

둘째, 십자군과 기사도에 대한 환상이 무너지며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의 진실을 생각했다. 학창 시절에는 막연하게 십자군이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이교도와 싸운 성스러운 전쟁인 줄 알았지만, 사실은 교회와 서방 세계의 욕망으로 인한 추악한 전쟁이라는 것은 이미 깨달은 터였다. 서양의 기사도는 일부 불미스러운 존재는 있겠지만, 대부분 명예와 여성을 존중하는 낭만적인 집단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 역시 착각이라는 것을 책장을 넘기면서 확실히 알게 되었다. 학창 시절에는 상하이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지사들이 프랑스 조계 등에서 많은 보호를 받은 것을 보면서 서양인들은 신사의 나라라고 생각했지만, 그것 역시 진실은 아닌 듯하다. 제국주의의 잔혹함은 일본이나 서구 국가나 다름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라고 다를 것이 있을까? 우리 민족은 평화를 사랑하는 백의민족이라고 배웠지만, 베트남 전에서의 잔혹 행위, 6.25전쟁 당시 남북한 양쪽의 행위를 보면 우리 역시 힘만 있었다면 일본이나 서구 제국주의와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책장을 넘기면서 동물과 다름없는 인간의 잔인성과 함께 과연 신이 존재하는가를 생각했다. 유대교, 가톨릭, 이슬람교 중에 어느 한 종교에라도 절대자가 있었다면 십자군 전쟁에서의 만행을 그대로 용인했을까?

 

셋째, 십자군 전쟁 시대의 배경을 이해하면서, 정의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철학자들의 사상도 함께 생각했다. 이 책은 앞 부분에서 이슬람 이전의 중동 사회에서 상당 분량(60여 쪽) 소개하고 있다. 옛 이란의 영광과 이란과 로마의 대결의 연장선에서 십자군 전쟁이 일어나게 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권말부록 형식으로 고전 읽기가 있었는데, 루키디데스의 『펠로폰네스 전쟁사』와 『플라톤의 국가·政體』를 소개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생뚱맞게 이게 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십자군 전쟁을 포함한 모든 전쟁과 국가 경영에 있어서 과연 국가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소크라테스와 트라시마코스의 '정의에 대한 논쟁'은 예전에 본 적이 있다. 사실은 책장만 넘겼지 읽지는 못했다. 장황한 주장들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서 핵심을 이해하게 되었으니 과외의 소득이라고 할까?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할까? 십자군 원정뿐만 아니라 당시 유럽의 역사와 서구인들의 생각을 알기 쉽고 표현한 걸작이다. 일반인들의 교양이나 흥미는 물론이고 학생들의 세계사 이해에도 큰 도움이 되는 책이라고 본다. 중학생 이상의 독자라면 흥미 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y******3 2021.08.15.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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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공부는 '의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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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읽었던 책인 데, 내용이 확 달라졌다. 확실히 <개정판>이 맞다. 그렇다고 책 내용이 많이 바뀐 것도 아닌 데 <관점>이 바뀌니 확실히 달라 보인다. 이 정도면 옛날 책이 있더라도 새로 책을 장만해서 서로 비교하며 읽는 맛도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서구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도 <아랍 사람>과 <이슬람 문명>에 대해 <서구적 관점>으로 바라보기 일쑤다.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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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읽었던 책인 데, 내용이 확 달라졌다. 확실히 <개정판>이 맞다. 그렇다고 책 내용이 많이 바뀐 것도 아닌 데 <관점>이 바뀌니 확실히 달라 보인다. 이 정도면 옛날 책이 있더라도 새로 책을 장만해서 서로 비교하며 읽는 맛도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서구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도 <아랍 사람>과 <이슬람 문명>에 대해 <서구적 관점>으로 바라보기 일쑤다. 그래서 서구 사람들이 만들어낸 '부정적인 아랍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고, <한 손엔 칼, 다른 한 손엔 코란>이라며 '폭력적인 이슬람 문명'을 떠올리기 일쑤다. 아랍 사람들이 우리에게 그다지 나쁜 일을 하지 않았음에도 우리는 왜 그들의 문화와 문명에 떨떠름해 하는 것인지 <의심>해볼 일이다.

  서양과 동양의 문명이 충돌하고,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가 맞붙었다면 응당 두 세력의 싸움이 전개되어야 당연할 테다. 그런데 그리스도교를 대표해서 출정한 <십자군>은 이슬람 세력으로 달려가 싸우기는커녕 도리어 같은 종교인 <비잔틴 제국>의 영토를 빼앗고, 재물을 약탈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부대를 지휘하는 영주와 기사들이 '타락'하여 제가 다스릴 영지와 제 배를 불릴 재물을 약탈하라고 명령을 내린 것까지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슬람의 압제>에 허덕이는 같은 그리스도교 사람들을 구하고, 성지인 예루살렘을 탈환하는 것을 기치로 내세운 <수많은 십자군들>은 왜 그런 잘못된 일에 동조했던 것일까? <십자군>에 대해 알면 알수록 궁금한 점이다.

  1권의 마지막에도 '한나 아렌트'의 말을 빌어 자신이 저지르는 행동에 대해 <의심>하지 않고, 부당한 권력과 명령에 대해 <저항>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독재자 히틀러가 잘못된 권력행사를 했는 데도 나치당원들은 아무런 비판도 없이 동조했으며, 부당한 명령을 내렸을 때도 불의에 저항하기는커녕 얌전히 따랐다. 나치당원들이 히틀러만큼이나 '나쁜 사람'이었기 때문일까? '한나 아렌트'는 아니라고 말한다. 그들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는데도 그런 행동을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또 '평범한 사람'이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도 있다는 실험으로 증명한 내용이 담겼었다. 간수가 잘못을 저지른 죄수에게 전기고문을 하는 실험이었다. 그리고 전기고문 장치에 '단추'를 누르는 역할을 '일반 시민'에게 맡겼는 데, 사실은 간수와 죄수가 서로 짜고 '일반 시민의 행동'을 관찰하는 실험인 셈이었다. 그런데 결과는 참 놀라웠다. 간수는 사소한 잘못을 저지른 죄수에게 '전기고문 단추'를 누르라는 명령을 '일반 시민'에게 내렸고, '일반 시민'은 처음에 잠시 망설이다가 간수가 누르라고 <권위적 명령>을 내리니까 별로 망설이지 않고 누르더라는 것이다. 죄수는 진짜로 전기고문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당하는 연기'만 할 뿐이었다. '전압'은 점점 올라가 300~400볼트가 되었는 데도 간수의 명령에 '일반 시민'은 고통스러워하는 죄수에게 서슴 없이 단추를 눌렀다. 더 놀라운 결과는 참가한 '일반 시민' 가운데 상당수가 간수의 부당한 명령에 순한 양처럼 잘 따르더라는 것이다.

  이를 통해 <십자군 전쟁>에 동원된 '그리스도교' 사람들이 저지른 잘못된 행동도 이해할 수 있다. <신이 그것을 원하신다>는 말 한 마디에 전쟁에 동원된 수많은 '일반 사람들'이 저지는 약탈과 파괴의 행동은 '히틀러'의 명령에 복종한 나치당원과 다를 바 없다. 또 부당한 명령을 내리는 간수의 명령에 양심의 가책도 없이 순순히 따르던 '평범한 사람'과도 다를 바가 없다.

  그럴 때 자신의 행동에 <의심>하고 부당한 명령에 <저항>할 정도만큼만 똑똑했다면 어땠을까? <십자군 전쟁> 같은 '부당한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테고, 오늘날까지 서로를 오해하며 갈등과 반목을 일삼는 일도 없었을 테다. 그렇다고 <평화로운 나날들>을 보낸다는 장담을 할 수는 없을 테지만, 적어도 <십자군 전쟁>과 같은 어리석고 부당한 전쟁이 밥 먹듯 되풀이 되는 것만큼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지나간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면 잘못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역사 공부>가 어렵다고들 하는 데, 쓸데없이 <과거의 사실>만 달달 외우려 드니 그런 것일 테다. <역사 공부>를 시험문제 풀 때만 하니 그런 것이란 말이다. 또 <참 역사 공부>는 외워서 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랬을까?>하고 <의심>하는 것이 <참 역사 공부>가 시작되는 것이란 말이다. 그렇지 않았을 때는 '평범한 사람'이 잔혹한 짓을 서슴지 않고 할 수도 있다니 철저히 경계할 일이다. 우리 똑똑해지지 않을라우~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z******8 2011.09.10.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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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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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이야기 1권에 이어 2권에서는 1차 십자군과 보에몽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초반부에는 십자군 전쟁의 대상이었던 이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슬람 이전 중동의 역사와 배경을 풀어냈다. 흔히 우리가 중동,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등으로 부르는 이름은 그들 스스로가 부르던 이름이 아닌 서구에서 지어 부른 것이라고 한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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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이야기 1권에 이어 2권에서는 1차 십자군과 보에몽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초반부에는 십자군 전쟁의 대상이었던 이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슬람 이전 중동의 역사와 배경을 풀어냈다.
흔히 우리가 중동,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등으로 부르는 이름은 그들 스스로가 부르던 이름이 아닌 서구에서 지어 부른 것이라고 한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를 통일했던 페르시아 역시 국가의 이름으로 쓰이지 않고 페르시아인들에게는 이란으로 불렸다.
이슬람 이전 중동에 대한 역사적 배경과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서 옛 이란의 영광에서 시작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알랙산더 대왕인 알랙산드로스와 그의 후계자들, 이란과 로마의 대결을 정리하여 흥미롭게 풀어냈다. 개인적으로 이란과 로마의 대결 부분 이야기는 미국 드라마 ‘로마’를 통해서 접했던 이야기라 기억을 비교하며 보는 나름의 재미도 있었다.

 

 

군중십자군이 전멸하고 1년 후, 1차 십자군의 본대가 동로마의 수도로 진격해온다. 서방의 가장 강력한 세 기사인 로렌의 공작 고드프루아, 툴루즈의 백작 레몽, 강력한 노르만 전사 보에몽이 1차 십자군을 이끌고 있었다.
더욱이 동로마의 황제 알렉시오스에게 뼈아픈 패배와 위기를 안겨주었던 보에몽이기에 그가 온다는 소식 하나만으로도 사람들은 공포에 질렸고, 황제조차도 긴장했다. 하지만, 동로마에는 보에몽이 도착하기 전에 먼저 도착한 고드프루아와 레몽의 군대가 먼저 1차 십자군 전쟁의 첫 일전을 벌이게 된다.
수세에 몰렸던 동로마는 다행히 투르크 용병을 고용하여 서방의 노르만 침략자들에게 맞설 수 있었다. 이런 분위기를 몰아 알레시오스 황제는 보에몽을 물리치기 위한 지략을 짜지만, 보에몽은 무예만 능한 것이 아닌 지략에도 능했기에 이를 간파하고 황제를 위기로 몰아넣는다.
하지만, 원정 중에 돌림병으로 보에몽의 아버지인 로베르가 죽음으로써 보에몽의 원정은 흐지부지되고 덕분에 동로마는 구사일생으로 자주독립을 지킬 수 있게 된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권력가들에게 재산과 명성을 빼앗겨버린 보에몽은 숙적이었던 동로마의 황제를 찾아가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고 십자군 원정의 지원을 약속받는다. 보에몽은 동로마의 지원을 받아 투르크로 진격하고 곧바로 니케아를 함락하고 8개월의 공방전 끝에 안티오키아도 함락하여 군주로 등극한다. 보에몽을 비롯하여 십자군은 전쟁에서 승리하며 최종 목적지인 예루살렘을 점령하는데 성공한다.  
이후 십자군 내에서 세력 간 예루살렘의 패권 다툼이 시작되고 보에몽과 새로 파견된 주교 다임베르트가 공모한 계략은 보에몽의 조카와 주변 숙적의 방해로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었던 보에몽은 배를 타고 사라지지만, 얼마 후에 시신으로 동로마 제국의 땅을 밟게 된다. 하지만, 보에몽은 시신으로 위장하고 있었고, 관에서 깨어난 후 서방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와 같은 영웅으로 칭송받게 된다. 이러한 명성으로 보에몽은 프랑스의 부마가 되고 이 세력을 통해서 다시금 동로마 제국을 멸하기 위한 원정길에 나선다.

 

 

이 책에는 1차 십자군의 전쟁 시작과 그 중심에 있었던 노르만 전사 보에몽의 이야기를 통해서 명분 없는 전쟁의 결과와 십자군이 저지른 살육과 방화 등 잔혹한 학살과 만행을 그리고 있다. 이를 통해서 ‘힘은 곧 정의인가?’라는 메시지를 던지며 독자들에게 십자군 전쟁이 일깨우는 깨달음을 상기시킨다.
수 세기가 지난 지금의 현실에서도 간혹 힘의 논리가 정의인 양 벌어지는 일들을 목격할 때면 씁쓸해지기도 한다. 이 책에서도 최근까지 일어났던 미국의 행보나 세계정세를 십자군 전쟁의 일부 사건들과 비교하면서 상당한 유사점을 갖고 있음을 시사한다. 역사적 사건이 후세에 많은 메시지와 교훈을 전해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되풀이되는 것을 보면 진실을 깨닫고 양심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2권에 이어서 불사조처럼 부활한 보에몽은 어떻게 될지, 십자군과 주변 국가들의 이후의 흐름은 또 어떻게 변화되어갈지 3권에서 기대해본다.  



s*****n 2011.08.0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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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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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2권 1차 십자군과 보에몽 - 비아북 출판, 김태권 글,그림     김태권의 십자군이야기 2권은 1차 십자군과 보에몽이 주된 타이틀이다. 역시 1권을 읽어보지 않고서는 쉽사리 역사의 전개가 이해되지 않으리라 본다.   주된 이야기는 안티오키아 공방전과 롱기누스의 창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야욕을 위하여 무엇인가 허구를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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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2

1차 십자군과 보에몽 -

비아북 출판, 김태권 글,그림

 


 

김태권의 십자군이야기 2권은 1차 십자군과 보에몽이 주된 타이틀이다. 역시 1권을 읽어보지 않고서는 쉽사리 역사의 전개가 이해되지 않으리라 본다.

 

주된 이야기는 안티오키아 공방전과 롱기누스의 창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야욕을 위하여 무엇인가 허구를 만들어 내기를 좋아한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한다. 롱기누스의 창의 진위도 아직까지 밝혀지고 있지 않다.

 

 

몇 년 전 미국의 조사팀이 성모마리아의 무덤을 발견했다하지만 지나간 시간을 우리는 무엇으로 밝혀 낼 수 있을까 싶다.

 

보에몽의 군대는 무슬림들을 살육하고 인육마저 먹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과연 기록이 어디까지나 진실일 수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서방의 기록은 과장이 적지 않게 나타난다. 쓴 사람이 느끼는 감정의 크기만큼 같은 일을 산에 비유할 수도 동산에 비유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로 들어보면 사마천이 사기에 진시황에 대한 기록을 한 것에 들 수 있겠다. 시황의 시체가 완전하게 보존되고 있을 것이라 전해 두었으나 다른 문헌에 보면 시황이 성도로 시체가 실려 올 때 이미 오랜 부패가 되어 심한 악취가 풍겨졌다한다. 아마 시황의 무덤이 현재 조사에 의하면 문헌과 같이 수은이 매장 되어 있다지만, 역시 뚜껑을 열어 보지 않은 이상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다.

 

사실상 모든 일에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면 인정받을 수 없다. 지나간 역사를 기록에 의존하다 보니 여러 문헌을 보고 추측을 하게 되니 작가의 시선에 따라 내용이 그만큼 차이 나게 된다는 것이다.

전통주의자들이나 다원주의자들의 정의는 지나치게 한정적이다. 또한 민중 십자군에서 나타난 참여자들의 자발성이나 여타 십자군과 달리 초기 십자군에서 나타난 서유럽 사회의 폭발적인 반응은 소홀히 다루어지고 있다.

 

이를 종합해보면, 초기 십자군 운동은 그리스도교의 이념을 확산시키려는 성직자 및 지배계층과 이를 실천적으로 구현하려는 일반 그리스도교도들의 열망을 모두 반영하고 있었다. 즉 교황의 승인을 받거나 받지 않았거나 이러한 특징을 갖는다면, 우리는 십자군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통합주의자들의 해석은 보완될 필요가 있다. 신의 권위와 신의 명령으로 수행한 전쟁을 모두 십자군이라고 본다면, 모든 십자군 원정 가운데 예루살렘이 차지하는 우선순위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십자군 운동에서 나타난 현상적인 특징에만 주목하였기 때문이며, 십자군 운동이 가능할 수 있었던 배경이나 과정에 대한 충분한 고찰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2권은 통합주의자적인 시각을 벗어나 중세사회를 너무 근대적 시각에서 바라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1권이 적정하게 중간의 관점을 유지하였다면 2권은 다원주의적인 관점이 큰 것은 아니었나한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f********7 2011.08.1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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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이야기]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2: 1차 십자군과 보에몽
"[십자군 이야기]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2: 1차 십자군과 보에몽" 내용보기
제1차 십자군은 예루살렘으로 보내진 최초의 십자군으로 서방의 승리로 끝났다. 당시 이슬람 세계는 분열되어 있던 상태였기 때문에 십자군의 공략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였다.   은자 피에르가 이끌던 군중 십자군이 멸망한 얼마 후 로렌의 공작 고드프루아, 툴루즈의 백작 레몽, 바이킹의 후예 보에몽과 총사령관으로는 명목상이긴 하지만 아데마르 주교가 이끄는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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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십자군은 예루살렘으로 보내진 최초의 십자군으로
서방의 승리로 끝났다
.

당시 이슬람 세계는 분열되어 있던 상태였기 때문에
 
십자군의 공략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였다.

 

은자 피에르가 이끌던 군중 십자군이 멸망한 얼마 후

로렌의 공작 고드프루아, 툴루즈의 백작 레몽, 바이킹의 후예 보에몽

총사령관으로는 명목상이긴 하지만 아데마르 주교가 이끄는 본대가
동로마제국 콘스탄티노플에 입성하였다
.

이후 동로마 지원을 얻어낸 십자군은 보스포로스 해협 너머 무슬림의
땅으로 진격하여
결국 수도 니케아를 함락하였다.

 

[십자군 기사]

 

그러나 동로마 황제 알렉시오스 콤니노스가 관용정책을 일관함으로써

십자군 역사에서 보기 드물게 파괴와 약탈이 적었다 한다.

이 즈음 다시 은자 피에르가 등장하는데 종종 성배와 더불어
영화에 자주 나오는 주제로
실질적으로 예수님을 죽게 만들었다는 병사의 창,

즉 성창이라 불리우는 롱기누스의 창을 그가 발견하였다고 한다.

 

이로 인해 은자 피에르는 군중들의 신임을 다시금 받게 되었고,

그는 안티오키아의 함락도 성창의 신통력 때문이라 여겼다.

그러나 그를 믿지 않는 반대편도 많았고 이에 분노한 그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악명 높은 중세의 3대 재판 중 하나인
 
[불의 심판]을 받겠다고 자청하였다.

 

이것을 보면 그는 자신의 영감을 확신하고 있던 것 같았으나

불구덩이 속에서 끔찍이 데었고 12일 동안 고통 속에서 연명하다
결국 화상으로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

 

[두 개의 불기둥 사이를 걸어들어가는 피에르 바르톨로뮤 - Gustave Dore (1832-3)]

 

중세의 3대 재판은 무기를 들고 한 쪽이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결투 재판,

혐의자를 밧줄로 묶어 물통에 넣고 가라앉는지 살펴 바닥까지
가라앉으면 무죄
, 가라앉지 못하면 유죄로 판명하는 물의 심판,

숯을 깔아 숯불을 만든 뒤 혐의자가 그 위로 걸어간 뒤 정해진 시간에
죽으면 유죄
, 살면 무죄가 되는 불의 심판이 있다.

 

결투 재판에서 죽은 자는 유죄이므로 죽었어도 목에 밧줄을 걸어
교수대에 매달았다
.
물의 심판에서 유죄로 판명되면 불에 달군 부지깽이로
눈알을 파버렸고
,  
불의 심판에서 혐의자가 불의 심판을 거부하면
확실한 유죄로 여겨 화형에 처했다고 한다
.

, 결과는 신이 정해준다는 신명 재판 (神命 裁判)인 것이었다.

 

은자 피에르의 죽음으로 그의 편에 있었던 레몽 백작은 타격을 입었다.

함락한 안티오키아를 약속대로 동로마에 돌려주어야 한다던 그의 의견은
무시되었고,
안티오키아는 보에몽의 손에 들어갔다.

 


[1099, jerusalem}

 

 

[1099년 6월 15일 십자군의 예루살렘 탈환]

걷잡을 수 없는 십자군 지휘관들의 내분과 바닥난 식량으로 안티오키아
근교에 있는 마라트안누만을 침략했다.

바닥에 떨어진 십자군의 사기를 진작시키기라도 하려는 듯이
 마라트안누만
철저히 파괴하고 유린하였다.

그리고 그 여세를 몰아 드디어 1099 6 15일 예루살렘을 점령하게 된다.

성 안으로 난입한 십자군은 많은 시민들을 학살하고,
재물을 약탈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b******i 2011.08.1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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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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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2  글,그림 김태권/비아북/2011년/336쪽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2 -1차 십자군과 보에몽-   "반전과 평화를 넘어...관용과 공존을 생각한다"   우리가 알아야 할 부분, 우리가 모르고 있던 부분, 우리가 확인해야 할 부분 그런 것들을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에서는 꼭꼭 집어주고 있다. 언론이나 다른 나라에서 만들어놓은 이미지를 가지고 우리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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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2 

글,그림 김태권/비아북/2011년/336쪽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2

-1차 십자군과 보에몽-

 

"반전과 평화를 넘어...관용과 공존을 생각한다"

 

우리가 알아야 할 부분, 우리가 모르고 있던 부분, 우리가 확인해야 할 부분 그런 것들을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에서는 꼭꼭 집어주고 있다. 언론이나 다른 나라에서 만들어놓은 이미지를 가지고 우리는 그냥 그들을 미워하고 함께 반대편에 서서는 안 될 것이다. 사실에 대해서 확인하며 되짚어 보면서 우월한 국가만이 살아가는 세상이 아닌 어렵고 힘든 나라까지 함께 아우르면서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1편: 군중 십자군과 은자피에르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2편:1차 십자군과 보에몽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3편:예루살렘 왕국과 멜리장드

 



"우리는 주로 서구의 눈을 통해서만 중동을 바라보는  있는 것이 아닌지, 중동을 아우른 제 3세계를 얕잡아보는 시가은 또한 과거 한때 우리가 따갑게 느껴야 했떤 그 시선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 이웃 민족을 깎아내리면 깎아내릴 수록 우리 스스로도 자긍심을 가질 수 없다"p.6

 

이 글을 읽으면서 책의 내용과는 별개로 다문화 아이들을 돌이켜보게 되었다. 엄마나 아빠를 통해서 한국이란 나라에 왔고 함께 교육받고 살아가는 그 아이들은 왠지 모르게 우리 나라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우리나라 민족이 우월하고 다른 민족과는 함께 생각하지 않는 그런 선입견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이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의 문화나 습관을 존중하면서 어울려 살게 되는 이 시점에서 우리들의 딱딱한 고정관념을 이제는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한다.

우선 나부터도...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를 읽기 전까지는 이슬람, 중동은 매일 싸움을 일으키는 나라, 욕심만 있는 곳, 미국을 힘들게 하는 곳 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관점으로 중동이라는 나라를 객관적으로 봐야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런 역사책들이 그동안 가지고 있던 많은 어그러진 생각과 관점들을 다시금 바로 잡아 줄 수 있는 귀한 책들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1차 십자군은 무엇을 위한 원정인가

 

종교적인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고 하지만 정작 그들이 행한 모습들을 돌이켜 볼 때 오직 종교적인 것만이 아닌 듯 싶다.

"오늘날 학자들은 1차 십자군의 주된 동기를 역시 경제적인 욕심으로 지적한다(.p.90)"

 

그 시대의 맏이들은 아버지의 상속을 받았기 때문에 어느정도 여유롭기 때문에 십자군에 소극적이였지만 경제적으로 아쉬움이 많은 기사라면 십자군을 통해서 나라를 얻고 영토를 얻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적극적으로 달려들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 중에서도 단 한명의 기사는 순수한 종교적인 동기로 인해서 십자군에 참여했다고 하는데 그는 바로 부유한 귀족 레몽 백작이었다.

 

"단 판명의 기사만이 여기서 예외였다고 하는데 그는 바로 부유한 귀족 레몽 백작이었다. 이미 초로의 나이였던 그의 주된 동기는 신앙과 명예때문이었다고 이야기된다"p.90



김태권 작가는 책 속에서 우리들이 단순히 알고 있는 사실만을 가지고 이 책을 쓰지 않았다.

중동 관련, 현대 사회 관련, 중세 서양 관련 등등의 수십권의 책을 하나하나 읽으면서 관점을 바로 잡기 위해서 노력했고 숨겨진 내용들과 그가 추측한 내용들까지 모두 이 책에 담으려고 했다. 그러한 노력들을 책 속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었다.

 

1차 십자군과 보엥몽은 어떻게 예루살렘으로 이동하여 네 개의 나라를 세웠을까?

책속에서 찾아보세요^^

 


 

j****m 2011.08.1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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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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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화사한 색깔의 분홍색 위에 확 튀는 파란색 십자가를 드러내면서 [김태권 십자군 이야기 2]의 서막이 올려 졌다.     2권에서는 어떤 재치있고 기발한 말들이 도출될 지 그리고 어떤 재미와 흥미로 십자군 이야기를 술술 풀어내려 갈 지 1권에 이어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고 책장 속으로 신나는 여행길에 오르기 시작했다.   2권에서는 1차 십자군과 서방 최강의 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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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화사한 색깔의 분홍색 위에 확 튀는 파란색 십자가를

드러내면서 [김태권 십자군 이야기 2]의 서막이 올려 졌다.

 

 

2권에서는 어떤 재치있고 기발한 말들이 도출될 지

그리고 어떤 재미와 흥미로 십자군 이야기를 술술 풀어내려 갈 지

1권에 이어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고 책장 속으로 신나는 여행길에

오르기 시작했다.

 

2권에서는 1차 십자군과 서방 최강의 전사 보에몽의 이야기를 담아 내고 있다.

그리고 2권에 등장하는 인물 보에몽과 레몽, 아데마르 그리고 고드프루아를

중심으로 이 책을 읽어 가면 더 재미 있을 것이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군중십자군이 쓸고 간 지 1년 뒤,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로에

서방의 1차 십자군들이 들이닥친다.

 

 

서방 최강의 기사, 북유럽 '바이킹'족의 후예 전사 보에몽의 출현한다는

소식에 사민들은 술렁대로 불안에 휩싸이게 된다.

 

한편 고드프루아와 레몽의 군대는 보에몽보다 먼저 동로마에 도착하게 되고

그들은 동로마 제국의 군대와 일전을 벌이게 되는데

이것으로 인하여 본격적인 1차 십자군의 첫 번째 전투가 시작되게 된다.

 

 

보에몽은 우여곡절 끝에 동로마의 지원을 얻어내어 투르크로 진격하게 되고

순식간에 수도 니케아를 단숨에 빼았어 버린 십자군의 기세는 당당할 수

밖에 없었다.

 

안티오키아를 공격해야 하는 것에 레몽과 보에몽은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게 되지만 결국 십자군은 안티오키아를 8개월간 포위하고 시간을

가지다가 마침내 1097년 10월 안티오키아로 출격하게 되고 

8개월여에 걸친 공방전 끝으로 안티오키아를 함락시키게 된다.

 

 

십자군 지휘간들 사이의 갈등과 함께 그들의 만행은 시작되고

만여명의 무슬림들은 잔혹한 학살에 희생이 된다.

 

생지옥이 된 마라트안누만에서의 십자군의 대학살이 이어지면서

보에몽은 안티오키아의 새 군주로 등극한다

 

십자군의 정복사업은 계속 이어졌고 최종 목적지인 예루살렘을 정복하게

되면서 예루살렘은 피로 얼룩진 참상에 경악하게 된다.

 

2권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은 4명의 주요 인물 보에몽과 레몽, 아데마르 그리고

고드프루아를 중심으로 이슬람의 니케아, 안티오카, 예루살렘을 차례로

점령하는 정복사업에 대한 스토리가 전개되고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일어난 1차 십자군의 잔혹한 학살과 만행을 묘사해

주고 있고 폭력의 정당화에 대한 반기를 들게 하는 마음을 가지게 한다.

 

2권도 마찬가지로 책을 읽어 가면서 만나게 되는

불쑥 불쑥 튀어 나오는 장난끼 가득한 말들의 대출현은

딱딱한 역사에서 느끼는 지루함과 무미건조함에 탄력을 주고 있고

웃음을 자아 낼 수 있도록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의 대사는

책의 흐름에 활력을 불어 넣어 주고 있는 것 같고

책장 넘기는 속도에 박차를 가하기도 한다.

 

더구나 각 인물들의 표정이라든지 우스꽝스러운 동작들을

그려내고 있어 한층 더 책을 읽은 재미에 빠지게 하기도 했다.

 

다음은 3권에서 일어날 십자군의 행방을 탐색하러 가야 할 

때가 임박하게 되었다.

 

b*******2 2011.08.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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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2]1차 십자군과 보에몽-십자군, 힘, 그리고 정의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2]1차 십자군과 보에몽-십자군, 힘, 그리고 정의" 내용보기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2 : 1차 십자군과 보에몽 편에 들어갑니다.   책 날개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반전과 평화를 넘어...관용과 공존을 생각한다." 21세기 벽두 미국은 '악의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했다. 11세기 말 십자군은 '이슬람으로부터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해'전쟁을 일으켰다. 900여 년의 시차를 두고 발생한 두 전쟁은 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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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2 : 1차 십자군과 보에몽 편에 들어갑니다.

 

책 날개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반전과 평화를 넘어...관용과 공존을 생각한다."

21세기 벽두 미국은 '악의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했다. 11세기 말 십자군은 '이슬람으로부터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해'전쟁을 일으켰다. 900여 년의 시차를 두고 발생한 두 전쟁은 묘하게 닮았다.

'명문도, 최소한의 도덕성도, 정의도 없이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악순환의 현실'을 보면서 작가는 "기억은 약한 자의 마지막 무기이다"라는 말을 시작으로 <십자군 이야기>를 기록했다.

 

 

 우선 독자로서 십자군에 대해 상당히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많았다고 시인해야겠습니다.

물론 이는 우리가 배웠던 역사의 관점, 즉 서방세계가 논한 역사를 반복해 배우는 관점이라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도 있겠지만,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시점을 체크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듭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입니다. 그래서 어떤 승자가 어떤 관점으로 써서 후세에 남겨지느냐에 따라 역사를 판단하는 시야가 상당히 다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역사 역시 많은 작가의 정확한 서술과 객관적인 시점에서 쓰인 책이 나오는 터라 중.고생때 배웠던 역사의 관점을 저 역시도 아주 새롭게 알아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십자군은 표면상으로는 성지 회복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일어났습니다만 실제로는 동방정교회를 로마 카톨릭 관할권 아래 흡수, 통합시키고 교황권을 확대하려는 의도가 짙게 깔려 있습니다. 1차 십자군 역시 종교를 명분으로 내세우기는 했지만 결국 경제적인 욕심이 주된 바탕이라고 해석하면 되겠습니다.

여기에 당시 서유럽의 영주는 장남 이외의 아들들은 상속권을 부여받지 못했기 때문에 미지의 땅에 대한 욕구가 강한 것도 십자군 발발의 한 원인이 됩니다. 당시 영주의 아들은 장남을 제외하고는 상속받는 유산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군 전쟁에 더욱 맹목적으로 동참하게 되는 경우가 많게 됩니다.

 

2권에서는 보에몽이 군중 십자군에 대한 승리로 자만하고 있던 니케아를 1차 십자군은 점령하고 이어 안티오키아를 공략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까지 정복하게 되는 과정을 보게 됩니다. 전쟁은 결국 약탈과 학살만 남게 됩니다. 끔찍한 만행에 대해서는 책에서 비교적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결국, 모든 전쟁은 명분 없는 전쟁이라는 결론을 내린다는 것을 여기에서 이해하게 되는군요.

2권 1차 십자군과 보에몽 편은 좀 복잡한 면이 있습니다. 십자군 전쟁이 8차까지 진행되고, 대부분의 십자군 전쟁의 결과를 발전적인 면, 이를테면 르네상스 문명의 발달, 화약의 발달, 신생국가의 탄생 등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을 외우기 바쁜 역사 시간이었던 기억이 많아서 1차 십자군의 행보가 복잡하고 헷갈리는 점도 있습니다. (이렇게 얽히고설킨 1차 십자군 시대를 단 몇 줄로만 외웠다니..새삼스럽게도 합니다.)

 

  

2권에서 말하고 싶은 주제는 무엇일까요? 보에몽과 1차 십자군의 행패를 두고 무엇을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정의"에 관한 것입니다.

갑자기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베스트셀러가 떠오릅니다만, 제목만 보고 어려울 것 같아 읽지 않았는데 좀 읽어둘 걸이란 아쉬움이 남습니다.

힘이 곧 정의일까요?

2권에 따르면 맞다고 하기도 어렵고, 아니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부분입니다.

후반에 첨부된 고전 읽기에서는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5권과 플라톤의 <국가> 1권을 읽고 '정의'라는 것에 대해 독자에게 명제를 던집니다.

이 '정의'에 대해 그리고 힘과 연관성이 있다는 무언의 찬성에 대해 생각해봐야 할 때인가 봅니다.

 

재미도 있지만, 역사 공부를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2권입니다.

만화라는 점을 들어 때론 유머러스하게 표현하는 부분도 있지만, 역사지식이 약한 독자들이 보기에는 더 헷갈리게 하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만, 작가는 십자군 전쟁을 기독교와 이슬람의 중간에서 객관적으로 중심을 잡으려고 했던 부분은 독자들이 함께 공유하는 시선을 가졌으면 합니다.

신의 이름으로 미개 문명을 일깨웠다는 서양 중심의 사상을 다른 시선, 다른 관점에서 보는 역사적 시선을 가졌으면 합니다.

 

r*******0 2011.08.0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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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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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1권은 '군중 십자군과 은자 피에르'에 대한 이야기로 피에르가 콘스탄트노플에서 1차 십자군과 보에몽을 기다리며 1권이 끝나는데 2권은 역시도 이슬람 이전의 중동에 대해 간단히 설명으로 시작한다. 고대 이집트의 찬란한 유산을 본 서양인중 일부 사람들은 자존심이 상해 '백인문명설'을 주장하는데... 이는 인종주의적 논리를 강화하기 위한 노력으로 미국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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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1권은 '군중 십자군과 은자 피에르'에 대한 이야기로 피에르가 콘스탄트노플에서 1차 십자군과 보에몽을 기다리며 1권이 끝나는데 2권은 역시도 이슬람 이전의 중동에 대해 간단히 설명으로 시작한다.

고대 이집트의 찬란한 유산을 본 서양인중 일부 사람들은 자존심이 상해 '백인문명설'을 주장하는데... 이는 인종주의적 논리를 강화하기 위한 노력으로 미국에서 1840년 이후 뚜렷하게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이들의 주된 관심사는 아프리카의 발달된 문명이 흑인들의 문명이 아니라는 주장하는 것이고 고대 이집트의 지배층도 백인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이집트의 문명이 쇠퇴한 것이 인종 혼합 때문이라고 지적하며 중동 지역에 걸린 큰 이권들로 인해서 이런 일이 발생한다고 쓰여 있다.

 

알렉시오스 황제는 예전 전투에서 보에몽에게 깊은 상처를 입어 보에몽이 껄끄러운 대상인데 서방 최강의 기사라는 호칭을 받고 있는 보에몽은 북유럽 바이킹족의 후예로서 3형제중 막내인 보에몽은 시대 여건상 상속 받을 재산이 부족해서 경제적 이유로 십자군 원정에 적극 참여한다. 예외로는 신앙과 명예를 위해서 참전한 부유한 귀족  레몽 백작이 있다. 알렉시오스의 개혁 정책에 불만을 품은 세력을 만난 십자군 지휘관 고드르푸아는 콘스타티노플 성문 앞에서 동로마 제국의 군대와 고드프루아 일행의 일전이 벌어지게 되고 이것이 본격적인 1차 십자군의 첫번째 전투였다.

 

보에몽은 아버지 기스카르가 죽자 아버지의 새부인인 시켈가이타 여사에게 쫓겨나 알렉시오스를 찾아온 보에몽은 동로마 황제에게 충성 서약을 다짐하고 동로마의 지원을 얻어낸 십자군을 이끌고 투르트의 술탄 킬리치 아르슬란이 있는 곳으로 쳐들어가며 술탄은 군중십자군에 쉽게 거둔 승리로 인해 성을 비워 놓고 원정을 떠나며 만삭의 술탄 아내가 십자군에 맞서 싸우면서 아이를 순산하고 결국 술탄의 예상을 벗어난 십자군의 기세 앞에 수도 니케아를 빼앗기고 퇴각을 하게 된다.

 

십자군 병사들은 굶주림과 공포를 견디다 못해 대규모 탈영하는 사태에 이르게 되고 군중 십자군을 이끌던 피에르가 '롱기누스의 창' 기적의 유물을 발견하며 십자군의 총사령관 아데마르의 죽음은 십자군의 분열하는 계기가 된다. 유럽으로 돌아온 보에몽은 영웅 대접을 받으며 공작의 딸 콩스탕스와 결혼을 하고 다시 동로마 원정 길을 떠나는데 알렉시오스와 본격적인 전쟁을  시작한다.

 

고전 읽기에서 힘은 곧 정의인가에 대해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재밌게 이야기해준다.

 

2권에서는 이슬람 이전의 중동에 대해 알수 있고 서방의 시선이 아닌 이슬람의 시선으로 바라본 내용들이라 이슬람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는데 좋은책이다.

q******5 2011.07.2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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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십자군과 보에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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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5년 서유럽, 은자 피에로가 출현하여 이교도로부터 예루살렘을 탈환해야 한다고 외치고 다녔다. 이슬람과의 전쟁을 통해 우위를 확보하려는 교황 우르바누스 2세가 피에르를 불러들인다. 교황청의 허수아비가 된 이후 군중십자군의 리더가 된 피에르와 주변 인물들은 무지와 편견에서 비롯된 가당치도 않은 전쟁을 벌인다. 이름하여 십자군 전쟁이다. 유럽은 피에르가 주도한 이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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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5년 서유럽, 은자 피에로가 출현하여 이교도로부터 예루살렘을 탈환해야 한다고 외치고 다녔다. 이슬람과의 전쟁을 통해 우위를 확보하려는 교황 우르바누스 2세가 피에르를 불러들인다. 교황청의 허수아비가 된 이후 군중십자군의 리더가 된 피에르와 주변 인물들은 무지와 편견에서 비롯된 가당치도 않은 전쟁을 벌인다. 이름하여 십자군 전쟁이다. 유럽은 피에르가 주도한 이 전쟁으로 어처구니 없는 학살이 자행되고,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학살자가 되는지를 1권에서 살펴 볼 수 있었다.

 

 

군중십자군이 휩쓸고 간 지도 어언 1년. 다시 평화를 찾은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은 밤마다 울려 퍼지는 소리가 있었다. 바로 은자 피에로의 콧소리였다. 얼마 후면 1차 십자군의 본대가 도착하므로 좋은 시절도 이게 마지막이라는 비아냥이었다. 이번 십자군은 서방의 강력한 세 명의 기사가 이끌고 있었다. 이들은 바로 로렌의 공작 고드프루아, 툴루즈의 백작 레몽, 그리고 보에몽이었다.

 

보에몽과 알렉시오스 황제 간에는 이런 일화가 있다. 1081년 보에몽의 아버지 로베르가 동로마 제국을 침공했다. 당시 동로마 최강의 장군이 젊은 시절의 알렉시오스였다. 열세로 어쩔 수 없이 꽁무니를 빼는 로베르의 뒤를 쫓던 알렉시오스 앞을 왠 낭자가 가로 막았다. 로베르의 젊은 새 부인 시켈가이타가 큰 목소리로 병사들에게 전투를 독려했다. 이후 아들 보에몽이 원군을 이끌고 오는 바람에 전세가 오히려 불리하게 뒤집어졌다. 동로마의 전열이 완전히 무너지고 퇴각하는 알렉시오스에게 보에몽이 칼 끝이 이마로 향했다. 가까스로 피했지만 이마에 부상을 입었던 것이다. 투르크 용병을 고용하여 제국을 지키던 알렉시오스에게 보에몽은 여간 부담이 아니었다.

 

1097년 1차 십자군이 도착하여 니케아를 점령하다

1097~1098년 안티오키아를 둘러싼 엎치락뒤치락 공방전

1098년 십자군 지휘관들의 갈등과 마라트안누만의 학살

1099~1104년 예루살렘 함락에서 하란 전투까지

 

1096년 12월, 십자군 지휘관 고드프루아가 콘스탄티노플에 도착했다. 동로마에서 환영을 하지 않자  이들은 동로마 군대와 일전을 벌였다. 1차 십자군의 첫 번째 전투였다. 1097년 4월, 레몽도 동로마에 발을 들여놓았지만 아무도 환영하지 않자 약탈과 파괴를 일삼았다. 또한, 4월에 보에몽도 동로마에 얼굴을 비친다.

 

"사실 나는 옛날 당신의 적이자 원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나의 자유의지에 따라 폐하의 친구로 왔습니다"

 -보에몽/안나 콤니니의 <알렉시아스>중에서 (99쪽)

 

아버지 로베르가 죽자 새 어머니 시켈가이타가 권력을 차지하면서 찬밥 신세로 전락하여 빈둥거리던 보에몽이 십자군 모집 광고를 보고서 새로운 기회를 찾아서 동로마로 왔던 것이다. 동로마에 막대한 이익을 남길테니 십자군 원정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한다. 아울러, 알렉시오스 황제에게 충성 서약까지 했다.

 

동로마의 지원을 얻어낸 십자군은 보르포로스 해협 너머 무슬림 땅으로 진격했다. 투르크의 젊은 술탄 킬리치 아르슬란은 이들 십자군을 졸로 여겼다. 십자군은 수도 니케아를 단숨에 점령해버렸다.1097년 6월 19일의 일이다. 만삭인 아내에게 성을 맡기고 킬리치 아르슬란은 원정을 떠나고 없었다고 한다. 한편, 복수를 다짐하는 투르크 전사들은 도릴레온 협곡에서 매복하여 십자군이 지나가길 기다리고 있었다. 화살로 공격을 감행하였지만 용맹한 보에몽의 기병에 의해 투르크는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패배의 소식은 이슬람 세계로 퍼져 나갔다. 십자군은 다음 목적지 안티오키아로 향했다.

 

1097년 10월, 안티오키아 주민들의 완강한 저항으로 십자군은 당황스러웠다. 레몽은 즉각 공격하자고 주장하나 보에몽의 결사적인 반대로 안티오키아를 포위하고 8개월이나 시간을 끌었다. 보에몽과 레몽의 대립각이 날카롭기만 했다. 보에몽이 안티오키아 스파이의 머리로 요리를 해먹었다는 소문이 나돌자 무슬림들은 공포에 떨게 되었다.

 

"보에몽 공작 진영의 주방에 잠입한 밀정들은 쇠꼬챙이에 꿰여

숯불 위에 돌아가고 있는 몇 구의 시신을 목격해야만 했다."

-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쇠망사>제 58장 중에서

 

마침내 보에몽의 속셈이 드러난다. 그는 육상과 해상의 교통 요충지인 안티오키아를 자신의 수중에 넣어 재기하겠다는 것이었다. 날이 밝자 보에몽이 비책을 얻었다는 소문이 빠르게 퍼져 나가고, 이 소식을 들은 십자군 지휘관들은 궁금해서 모두 보에몽에게 찾아왔다. 그는 그들에게 안티오키아를 점령하면 자신에게 양도할 것과 더 이상 토를 달지 않겠다는 두 가지 약속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후 안티오키아의 내부 밀고자 피루즈의 협조로 성벽을 차지한 십자군은 안티오키아를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이다.

 

1098년 6월 3일부터 성안에서는 대학살이 시작되었다. 이틀 후 카르부카가 출현하자 십자군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무슬림들은 기사회생의 기쁨을 누렸다. 권력을 유지하려고 적을 이용한 카르부카는 안티오키아를 탐냈다. 아무튼 십자군은 투르크 군에게 포위당해 아사 직전이었다. 굶주림과 죽음의 공포 때문에 많은 십자군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군대 용어로 대규모 탈영이었다. 한편, 안티오키아 대성당에 은자 피에로와 나귀가 숨어 들었다. 수도사 한 명이 메시아의 창이 안티오키아에 묻혀 있다고 장담했다. 보에몽은 일꾼들을 데리고 여기저기 파헤쳐서 '롱기누스의 창'을 찾아냈다.

 

"기뻐하시오, 승리는 분명 그대들 것이니!" (177 쪽)

 

성창과 성배의 전설은 그리스 신화 만큼이나 중요한 주제어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처형될 때 어느 군인이 예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더니 피와 물이 흘러 나왔다. 요셉이 예수의 시체를 모셔다가 유대인 장례 풍습대로 향료를 바르고 고운 베로 감았다. 이 때 사용된 창이 바로 '성창'이고, 군인의 이름을 따 '롱기누스의 창'이라고도 한다. 영국의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들도 성창과 성배를 찾아 모험을 떠나기도 했으며, 히틀러도 성창의 신통력이 제3 제국의 승리를 가져다 준다고 믿었다고 한다.

 

피에르가 낡은 고철을 성창이라고 주장하자 십자군 사령관 아데마르 주교가 즉각 피에르에게 사기를 중단하라고 명하자, 이를 진짜라고 믿는 레몽 백작의 보증 때문에 더 이상 이를 문제 삼지 못했다. 1098년 6월 28일, 안티오키아 정문 앞 전투에 대해 십자군은 성창의 신통력 탓에 이룬 위대한 승리라고 기록하고 있다. 미심쩍은 이 전투에 대해 무슬림 측은 카르부카의 독재가 싫어 그를 배반하면서 발생한 일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보에몽이 안티오키아를 차지하려 하자, 레몽이 태클을 건다. 카르부카의 포위망을 뚫은 것은 성창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잘난 척하던 피에르에게 아데마르 주교가 1098년 8월 1일에 공개 토론회를 하자고 제안했다. 궁지에 몰린 피에르는 고민에 빠진다. 그런데, 그에게 또 다시 기적이 일어났다. 7월, 안티오키아에 심각한 전염병이 돌아 아데마르 주교가 죽고 만 것이다.

 

모두 애도하는 가운데 기고만장한 피에르는 성창을 믿지 않은 아데마르가 벌을 받아 지옥으로 갔다고 비난성 망언을 서슴치 않았다. 이에 십자군들이 피에르의 말에 격분하여 여론이 들끓자 피에르는 다시 궁지에 몰리는 신세가 되었다. 성창을 믿는 레몽의 중재로 신명 재판을 하기로 했다. 불의 심판을 받게 된 피에르는 결국 화상 때문에 죽고 말았다. 피에르가 죽자 레몽도 타격을 입고, 마침내 안티오키아는 보에몽의 수중에 들어갔다.

 

한편, 십자군 지휘관들의 내분과 식량 부족으로 병사들의 사기가 바닥에 떨어졌다. 약한 적과 싸워서 승리하여 사기를 올리려는 대책이 마련되어 십자군은 작은 도시 마라트안누만을 공격했다. 격렬한 저항이 있었지만 결국 주민들은 항복했다. 이후 만여 명의 무슬림들이 잔혹하게 학살되었다. 다음의 행선지는 예루살렘이다. 보에몽은 안티오키아에 눌러 앉았다.

 

"마라트안누만에서 우리 십자군은 이교도 어른들을 커다란 솥에 넣어 삶았다.

또 아이들은 꼬챙이에 꿰어 불에 구웠다"

-십자군 병사 라울 드 카엥의 연대기 (231 쪽)

 

1099년 6월 15일, 십자군은 보에몽의 예상과 달리 예루살렘 점령에 성공했다. 그들은 이곳에서 엄청난 약탈과 살육을 자행했다. 피로 얼룩진 참상에 사람들은 경악했다. 보에몽도 충격을 받았다. 보에몽에게 교황의 특사로 새로이 다임베르트 주교가 파견되었다. 둘은 궁합이 잘 맞았다. 보에몽은 안티오키아에서 여론을 조성하고, 다임베르트는 예루살렘에 잠입하여 공작을 꾸미기로 둘은 손발이 척척 맞았다.

 

1100년의 성탄 전야, 다임베르트가 예루살렘에 도착했다. 그는 고드프루아 공작에게 왜 예루살렘을 통치하느냐고 따지듯 물었다. 이후 노골적으로 통치권을 자신에게 넘기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고드프루아 공작이 갑자기 사망했다. 한편, 빨리 예루살렘으로 오라는 다임베르트의 전갈이 레몽 백작때문에 전해지지 않고 보에몽은 평소대로 무슬림 마을로 노략질 나섰다가 오히려 체포되고 만다. 고드프루아의 동생 보두앵 백작이 통치권을 넘겨 받는다.

 

1101년의 십자군이 보에몽을 구출하러 오자 투르크의 칼리치 아르슬란의 기병대에 의해 전멸하고 만다. 그래도 여전히 보에몽은 자신의 조카 탕크레드가 구하러 온다고 믿었다. 그러나, 탕크레드는 안티오키아에 군침을 흘리고 오히려 석방이 안되도록 방해 공작을 벌이고 있었다. 수감생활에서 풀려난 보에몽은 일대의 복수전을 준비한다. 

 

1104년 하란 전투가 시작되었다. 무슬림 연합군은 후퇴하는 척하며 프랑크 군을 유인했다. 이후 곧장 에워싸고 섬멸하는 작전을 펼쳤다. 동로마 제국에 보에몽이 죽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보에몽의 시신이 동로마 제국에 들어섰다. 송장 냄새를 풍기던 관에서 보에몽이 벌떡 일어나 앉았다.

 

1106년, 대단한 인기를 누리던 보에몽은 프랑스의 부마가 되었다. 다시 한 번 동로마 원정의 길에 나서는 보에몽의 소식에 콘스탄티노플은 발칵 뒤집어졌다. 과거에 아버지와 함께 공격했던 두라초가 공격 목표였다. 이 전쟁이 어떻게 전개될지 3권이 기대된다.         

 



이달의 사락 5****0 2011.08.0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