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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통감 13권, 한기 5권, 여후의 죽음과 문제의 등극입니다. 소제가 등극하였으나 생모가 따로 있다는 걸 알고 되돌릴 의지를 비추자마자 여태후는 폐위 유폐 사망시킨 뒤 후소제를 세우는 등 국권의 주재자가 명백하게 여태후여서 자치통감에서는 무려 '고황후 원년'이라고 표기합니다... 여씨들은 원래 유씨만 될 수 있었던 왕작까지 받아가며 전성기를 맞이하지만, 유씨들은 수난기를 맞이합니다. 첩을 사랑한다고 앙심 품은 여왕후에게 참소당해 불러올려져 유폐당해 굶어죽거나 여태후에게 감시당하고 여왕후에게 애첩이 짐살당해 자살하자 후사를 폐지당하거나 자연사하자 후궁의 아들(아마 여씨 혈연이 아닌 후계자)를 죽이고 나라를 없애버리거나... 그러나 여태후가 죽자 여씨들은 몰락하고, 유방과 박희의 아들 대왕 유항이 문제로서 즉위하면서 다시 유씨 치세가 시작됩니다. 년도표기는 '효문제'로 시작되네요. 천리마를 받은 유항이 “난기(鸞旗)가 앞에 있고, 속거(屬車)가 뒤에 있어서 길사(吉事)로 가면 하루에 50리이고, 군사는 30리를 가는데, 짐이 천리마를 탄다면 나 홀로 먼저 어디로 갈 것인가?” 라고 말한 에피소드가 특히 인상적입니다. 험한 산비탈을 달리려는 문제에게 중랑장 원앙이 ‘천금(千金)을 가진 사람의 아들은 모서리 쪽의 마루에 앉지 않는다.’고 말리는데 이 표현이 여기서 나왔나...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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