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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무제 시기를 다루고 있다. 대충은 들어 알고 있었지만 많이 별로네. 특히 농사짓는 땅으로 말을 달리는 건, 그것이 실수였다 하더라도 옳지 못한 행동이었다. 한무제라는 인물의 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그 값은 하지 못하는 듯. 가장 기억에 남는 문장은 "큰 기근이 들어서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었다." 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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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즉위로부터 처음 7년에 해당하는 기간입니다. 그런데 시작부터 동중서의 책문이 전재되어 있는데 이번권 본문 전체의 1/4 가까이 되는군요. 전한, 나아가 역대 중국 왕조의 정치적 방향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중요한 장면이긴 한데 좀 과한 거 아닌지. 무제가 15세에 즉위했으니 10대 중후반과 20대 초에 해당하는 생애에서는 일부에 불과한 기간이지만 이 부분만 봐도 무제의 품성이 잘 드러나는 게 재미있습니다. 위청을 비롯해서 무제 초의 주요 인물들 상당수는 이미 이 때에 등장합니다. |
| 사마광이 쓴 방대한 역사서 자치통감을 모두 완역한 자치통감 시리즈의 17번째 책인 자치통감 17권 증보판을 읽었습니다. 중국 고대 역사의 여러 이야기가 생생하면서도 많은 자료와 함께 묘사되고 있으며, 역사 이야기가 눈앞에 그려지는 듯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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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통감 17권은 한무제 치세의 첫 구간을 다룹니다. 한무제는 연호를 최초로 사용한 황제로 알려져 있습니다. 17권은 무제의 첫 연호인 건원 1년, 기원전 140년부터 시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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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통감 17권, 한기 9권, 한 무제의 제왕학. 황상이 친히 치도에 관한 대책을 물었더니 동중서 왈 '무릇 교화가 확립되지 아니하여 만백성이 옳지 않아서입니다. 무릇 만민들이 이로움을 좇는 것은 마치 물이 아래로 흘러가는 것과 같아서 교화로써 이를 막지 아니하면 이러한 것을 중지시킬 수가 없습니다' 하여 강도의 재상으로 등용됩니다. 한편 승상 위관이 상주하길 '신불해, 한비자, 소진, 장의의 언론을 공부한 사람은 국정을 어지럽히는 사람들이니 청컨대 모두 파직시키십시오'. 유교의 입지가 늘어나는데, 늘어나기 시작하자마자 다른 학맥을 다 말려죽이는 것은... 타 학파를 대하는 평범한 자세인지 유교의 종특인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