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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여러 사람이 점령운동 현장을 보고 자신들이 본 것과 견해를 언급하는 책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보았기에, 여러 가지 측면으로 점령운동을 볼 수 있다. 이에 비례해 뚜렷한 견해가 없기에 중구난방식으로 보일 수 있다. 지금 대한민국의 출판의 흐름은 맵시를 중시하고 있다. 그러기에 이런 책이 나온 것이 더 큰 기쁨이다. 점점 줄어들어가는 책의 영향력,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책을 보고 있고, 여기서 배우고 있다. 이 책은 월가점령운동 현실에 관한 이야기이다. “번거로운 일을 거치지 않고 변화하기란 활동가가 꿈꾸는 세상만큼이나 요원한 일일 수 있다.” 지금 미국과 세계는. 한마디로 하면 자본주의의 노예로 전락한 민주주의이다. 또한 금융자본주의, 금융이 지배하는 이상한 세상, 정말로 보이지 않는 돈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한 나라의 운명도 바꿀 수 있을 정도의 거대한 힘을 지닌 금융왕국들, 그들의 실체는 무엇일까? 1% 그들은 누구인가? 2007년 미국, 최상위 1%는 하위 40%의 몫과 같은 양을 독식하고 있다. 1979년에는 하위 20%의 몫과 같은 양이었다. 점점 이 비중은 증가할 것이다. 언젠가는 그들이 다 차지할지도 모른다? 언제나 있었던 것은 부자들을 위한 사회주의였다. 정부가 이 불공정을 시정해줄 수 있을까? 정부의 4개 부처에 기업(로비, 은행, 언론, 대기업), 사법부, 입법부, 행정부라니. 기업은 이미 거대해질 대로 거대해진 무소불위의 집단이다. 정부의 한 축을 차지 할 만큼 그들이 곧 정부이다. 수많은 실업자, 노숙자, 돈 걱정에 찌든 중산층, 무너지는 복지 이것이 지금 미국이다. 이미 아메리칸 드림은 무너졌다. 민주주의 상징이며, 세계의 경찰인 미국이 이 정도의 상황이라면, 과연 우리는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가?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나을 것이 없다. 점령운동. “가난에서 영감이 온다”, 이런 굴종의 삶을 살 수는 없다. 마침내 시작되었다. 월스트리트 점령운동은 수많은 사람들이 월가로 몰려와 금융자본의 탐욕과 부패를 경고하는 점령을 시작했다. 왜 이들이 분노했을까?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월가가 사람들에게 준 거라곤 장미 빛 거짓말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돈과 집은 사라져 버렸다. 누가 가져간 것일까?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점령운동은 수많은 다른 사람들이 똑 같은 경험을 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연대를 형성하는 시발점일 것이다. 그리고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즐거움이다. 점령운동은 말 그대로 점령하는 것이다. 공개총회는 다양한 의견들이 모아져 하나의 큰 주장으로 이루기 위해 만장일치를 요구한다. 그러나 분명히 조용한 사람들을 지나치게 배제하는 측면도 있다. 점령운동은 개인성에 대한 강조를 기반으로 한다. 반드시 합의를 통해서만 결정을 이끌어내며, 누구도 다른 이를 대신해 말할 수 없다. 말하고 싶은 이는 직접 말해야 한다. 점령에서의 전술의 선택은 반드시 구성원 간 상호존중을 바탕으로 해야만 한다. 점령시위대는 점령의 가치와 원칙에 부합하는 문제에 함께 나서야 한다. 또한 사람들의 피부에 직접 와 닿는 메시지가 필요하다. 다행스러운 것은 미국의 백인남성지배문화가 변화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어우를 수 있는 장이 되어가고 있다. 점령과 거주자들. 노숙인의 기여는 없는가? 점령자와 노숙자는 어울릴 수 없는 존재인가? 분명 노숙자는 잔혹한 경제체제의 강력한 상징이지만, 점령운동에 손해와 위험을 끼치는 존재로 보인다. 노숙자에게 사회는 처벌과 배제만을 되풀이 해왔다. 점령현장의 장기노숙자 추방은 멈추어야 한다. 우리 모두 경제적 주변화와 경제 위기 그리고 추방의 피해자이다. 끝없는 소문들과 조작되는 사건들, 하지만, 우리는 점령을 멈출 수 없다. 책 속의 지식과 현실 세상의 많은 지식인들은 점령에 대해 말하지만, 그들은 함께하지 않는다. 단편적으로 대학관계자들과 통화 “그들은 시위에 대한 별다른 대책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당혹해 했다. 그들은 책에서 읽은 대로 옳은 일을 하고 싶어하지만 막상 현실의 중요한 순간에 와서는 체질적으로 옳은 행동을 할 수 없는 것 같았다. 그들이 복지 혜택 없는 한 하급직 호텔 근로자에게 건강보험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는 힘들다.” 를 통해 함께 느끼는 공감의 부족이 가장 큰 적이다. 일어나라. 항상 지배체제는 동일한 하나를 상반된 둘로 나눈다. 그렇게 하여 서로 반목하게 만들어서 통치한다. 어느 목사의 말 “신께 기도를 드려서 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변화는 오직 여러분이 거리로 나설 때에만 일어납니다. 교회 밖으로, 거리로 나가십시오.” 이 와 닿는다. 우리가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이루어야 한다. 합의는 비폭력적 의사결정이다. 절대로 과반수의 폭력을 행사하지 않고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 점령운동은 다양한 정치적 견해를 지닌 사람들이 지도자 없는 저항운동이다. 누구를 위한 경찰인가? 경찰은 99%가 아닌가? 그들도 생존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변명과 그들의 상황을 모르지만, “가장 큰 분노는, 경찰 폭력 때문에 상대적 약자인 많은 시민들이 집회를 할 당연할 권리조차 쉽게 행사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평화적인 노력을 통한 공동체 회복하려 하지 않고 기존 경찰력의 활용한 통제에만 집착할까? 시위를 할 수 있는 기본적 권리가 우리에게는 있다. 그러나 “헌법은 언론과 집회의 자유만 보장할 뿐 텐트를 지켜주지 않는다.” 경찰은 누구인가? 그들은 국민들을 위해 사회질서를 유지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국민들의 집회를 공공무질서를 바로잡는 다는 명목과 공권력이란 이름 하에 철저히 통제하려 한다. 경찰의 통제문화와 폭력성, 스스로에 대한 면죄부를 부여한다. 비폭력은 진정한 민중의 힘이다. “커다란 이슈를 사회에 던지고 싶다면 지역 경찰과 불필요한 마찰을 일으키지 마라. 폭력이 끼어들면 운동은 초점을 잃고 시민들은 등을 돌리게 된다.”, 그들이 폭력을 행사한다고 대응하지 말라 철저히 비폭력으로 대응하라, 무너지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그들일 것이다. 문제는 시스템이다. 단순한 변화도 도움이 되지만, 이 사회를 결코 바꿀 수는 없다. 우리의 정치참여 또한 아웃소싱되고 있다. 또한 자본주의를 비판한다고 해서 민주주의에 반대한다는 협박을 당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바램은 공유, 오직 이것만을 위해 우리는 싸워야 한다. 연대는 삶을 사는 방식과 세상에 대한 종합적 견해까지 서로가 공감하는 것이다. 우리는 연대를 통해 이루어 나가야 한다. 사실 우리는 현실을 직시하는데 거부감을 갖는다. 이런 거부감을 없애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1:99 아주 단순한 나뉨이다. 다수인 99가 목소리를 낮추고, 소수인 1은 큰소리를 치며 협박한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길까? 우리가 무슨 나쁜 짓을 하고 있는가? 우리가 아주 잘못 살고 있는가? 왜 이런 삶을 살아야 하나? 더불어 잘 살아가는 세상, 같이 나누며 살아가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이런 삶을 위해 우리의 땅에서도 작은 점령이 시작되었다. 이 땅에서 우리가 몸통이며, 우리가 주인이다. 하지만, 이런 단순한 진리가 의심을 받고 있다. 1%인 그들이 주인인 세상과 나라가 되었다. 우리는 국민이 주인 되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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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가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지금 문제가 있다면 내가 해결하겠소.” p310
마지막 문장의 말이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하고 싶은 일들이다. 내 아이들이 평화롭게 만드는 세상 말이다. 그런 세상이 오게 만든다면 어느 부모가 앞장서서 나서질 아니 하겠는가? 나조차도 내 아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것 같다. 이 이야기는 우리나라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앞으로 우리나라에도 많이 접할 이야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울컥해진다. 사실 지금도 문제인 것들이 많다. 강제퇴거!, 주택 담보압류!, 의료비!, 학자금대출!, 일자리! 월가점령 운동에 참석하러 공원으로 나온 이들은 이런 이유들로 참석한 것이란다. 우리나라도 문제긴 하다. 아주 심각하게 다가오는 문제다. <애드버스터>는 2011년 9월에 발행한 97호에서 “9월 17일에 월가 금융자본의 부패와 탐욕에 항의하는 평화 점거를 벌이자”는 광고를 실었다. 우스개처럼 시작했고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날 월가에는 150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였고 2012년 수만 명 규모의 시위대가 교대하거나 상주하며 점령 운동을 지속 발전시키고 있다. 월가 반대의 의미로 시작한 점령 운동은 이제 다양한 변화의 메시지로 82개국 1,500여 도시로 번져 일어나고 있다. 첫 시작은 우스울 지라도 이해하고 공감하는 이들이 많았기에 지금은 대단히 많은 인원이 참석한다. 참가하는 사람들도 많고 직업, 인종, 신분, 나이,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고 방송, 인터넷, 특히 메일, 입에서 입으로 스마트 폰 여러 매체들로 전파 되었다.
“우리는 99페센트”라는 말은 1페센트 부자와 나머지 우리들 사이의 차이를 강조한다. 자본주의가 근본적 불공평함에 의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통계를 정치 이슈화한 것이다. 우리는 모두 최상의 1페센트가 될 수는 절대로 없다. 따라서 “우리는 99페센트”라는 말은 집단의 성격을 나타내는 슬로건이 된다. 빼앗긴 자에 빼앗은 자로 구분하는 것이다. 월가 점령 시위가 규정한 이러한 1페센트와 99퍼센트 사이의 간극은 흐지부지 가리려는 뚜렷한 움직임은 민주화, 도덕화, 개인화로 간극 된다. 이렇기 때문에 99페센트의 사람들이 월가점령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1페센트는 아니더라도 앞에서 말한 강제퇴거!, 주택 담보압류!, 의료비!, 학자금대출!, 일자리! 등은 살아져야 하지 않는가? 좀 더 살기 좋은 세상을 원한다.그런 세상이 되도록 다들 나선 것이다.
“누구의 거리? 우리의 거리!” 시위대가 월가 밖으로 나갔다가 돌아오는 대규모 행진을 감행 했을 때 우리의 힘은 가장 먼저 폭발하였다. 우리는 좁은 도로를 따라서 어두운 거리를 걸었다. 경찰도 따라서 걷고 오토바이로 쫒아왔다. “경찰 아저씨들, 함께 합시다! 여러분의 연금도 빼앗기고 있어요.” P 70 어느 누가 빼앗기지 않았을까? 언제 까지 계속 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문제는 월가 점령에 참여하여 우리가 무얼 얻느냐는 거죠. 이 분들은 매일 정신없이 일해야 합니다. 생활도 아주 불편해요. 그래서 참여가 쉽지 않을뿐더러, 막상 가더라도 별로 환영받는 느낌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하는 거죠.” P150. 차이나타운의 힘든 중국인 노동자들은 이런 이유를 참석하지 않았다. 하루 벌어 살기 바쁘기도 하고 참석한다고 이민자들에게 무슨 혜택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끝나지 않고 이어지는 월가점령은 언제 끝날지 걱정이 된다. 많은 분들이 거기서 먹고 자고 하는 생활이 걱정되고 물론 체계적으로 점령활동이 이루어 진다고는 해도 그래도 언제까지 그들에게 이런 고통을 줄지는 모르겠다. 그들이 좀더 편안하게 그들이 이루고자 하는 바 하루 빨리 이루기를 바란다. 시위가 길어지면 다치는 사라도 많아 질거고 체포하는 사람들도 늘어날 것이다. 다들 아무 탈없이 무사하게 월가점령이 성공하길 빌어본다. 우리나라는 이런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알아서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을 잘 모색하길 바란다. 국민이 있어야 나라도 있는것 아닌가? 나라가 있어야 국민이 있는건가? 전자이길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 아이들이 평화롭게 살수 있도록 그런 세상을 만들도록 우리들이 노력해야 할 과제인 것 같다.
< 출판사의 지원을 받아 서평한 책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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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13일부터 뉴욕 맨해튼 주코티 공원에서 '월가를 점령하라'는 구호 아래 일기 시작한 1%를 위한 정부를 향해 99%의 작은 분노가 거대한 물쌀을 일으키며 아직도 진행 중에 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갈 때, 어떠한 형태로든 가지지 못하고 주목받지 못한 자들의 분노는 있어왔고, 시대를 같이 해 왔다. 하지만, 과거의 분노가 민주주의를 향한 소수자에 대한 인권 탄압에 무게의 중심을 두었다면, 월가 점령 시위는 경제 불평등에 대한 분노가 그 중심에 자리 잡았다고 보여진다. 세계에 불고 있는 경제 불황이라는 미명하에 많은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직장과 집을 잃게 되고, 가정이 해체되는 상황에서 가진자들의 축제의 향연은 그것과는 아랑곳하지 않고 누리고 있다. 더구나 그들이 누리고 있는 그러한 부의 밑바닥에는 많은 99% 사람들의 땀이 배어 있는데도 그러한 사실을 묵인해 왔던 게 사실이다. 많은 99%의 사람들은 그러한 그들에게 더이상은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되었고, 급기야 그들은 거리를 나서며 분노를 폭발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월가의 소식이 남의 일이라기보다는 우리의 일이 되고, 우리 나라에서 발생되고 있는 여러가지 경제 현안들에 고스란히 비춰져서 관심이 더욱 집중될 수밖에 없다.
[점령 하라]는 '월가를 점령하라'는 구호아래 벌어지고 있는 시위를 전문가의 입장에서만 써내려 간 것이 아니라, 비전문가로서 시위에 동참한 이들의 목소리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책이다. 그래서 읽으면서 더욱더 생생하게 현장감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들의 목소리엔 단순히 1%에 대한 탄압이나, 그들의 행태를 폭로하기보다는 99%의 분노가 월가에 나서게 된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시위 단체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가지 문제점도 지적하고 함께 고민해 보고 있다. 읽어가면서 다양한 사람들의 비슷비슷한 시위 보고서를 읽는다는 것에 살짝 지루해 지기도 했지만, 그들 나름의 고충과 경제 상황뿐만 아니라, 각 처에서 일고 있는 소수자에 대한 고민도 함께 담겨 있어서 의미 또한 있었다.
또한, 시위자들을 향한 정부의 탄압이 체계적이고 지능적인 것에 비해 월가 점령 시위는 자칫 우후죽순처럼 비춰 지기도 해 답답함도 함께 갖게 되었다. 시위를 주도하는 뚜렷한 중심 단체가 없이 그저 정부의 1%를 향한 99%의 분노가 다발적으로 일어나서 그러한 느낌은 더욱 짙게 받았던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래서 체계적인 전달사항은 자주 비껴가게 되고, 거리 시위도 경찰의 봉쇄에 다소 주춤거려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지 못한 부분도 사실이다. 더구나 책에선 시위자 내부에 일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시위 방법에도 나름대로 문제점이 보이고, 그러한 문제점을 풀어가기엔 중심 세력이라고 할 만한 뭔가가 보이지 않아서 분노가 일고 꺼져버리는 것을 반복하고 있는 듯해서 안타깝기 했다. 그래도 주코티 공원에 모인 시위자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각계 인사들의 자발적인 강연은 나름 의미가 있고, 점점 지쳐가는 시위자들에게 희망의 불씨를 주기도 했다. 다발적 모임으로 시작된 월가 점령 시위가 금방 끝날 것 같았는데 아직까지 진행 중이고 세계적으로 주목을 끌고 있는 것은 분명 시위자들의 무질서 속에 질서를 잡아가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또한, 보이지 않은 많은 시민들의 목소리와 손길이 그들을 향해 뻗고 있어서 가능한 것 같다.
세계의 경제 문제가 하루 아침에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가진 1%들의 마음씀과 태도가 바뀌지 않은 한 더욱더 요원해 보인다. 1%를 위한 정부 정책도 이제는 왜 나머니 99%가 분노하고 거리로 나와야만 했는지를 늦었지만 생각해 봐야 할 때이다. 선거철에만 반짝 민심잡기용으로 정책을 내세우지 말고, 보다 장기적이고 실현가능한 정책들을 고민해 보고 실천해야 99%의 삶이 불안에 떨지 않게 될 것이다.
빈곤이나, 인권 불평등 문제에 대한 책을 읽다보면 늘 가지게 되는 생각이 '과연 내가 이 책을 읽는다고 세상이 나아질 것인가?' 였다. 하지만, 이번 책을 통해 한 가지는 확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직접 현장에 뛰어 들지 못하더라도 그들의 그러한 상황을 알고 주변에 알리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며, 나또한 1%가 아닌 99%의 삶이기 때문에 반드시 빈곤과 불평등에 관련된 책을 부지런히 읽어야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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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이론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참관기에 가깝다. 실제 점령 운동 참가자들이 쓴 글이기 때문에 운동과 관련된 다양한 풍경과 실질적인 쟁점들이 나온다. 예컨대 공개총회에서 벌어지는 즉흥적이고 민주적인 의사결정 과정, 필요에 따라 소규모 작업그룹을 만들어가는 모습들, 경찰이 시위대를 공격하는 생생한 광경들이 그려진다. 또한 점령지를 예전부터 ‘점령’하고 있던 노숙자들과의 관계 문제, 타악기를 두드리며 흥을 돋구기도 하지만 회의를 방해하는 드럼 서클 문제, 무정부주의 성향의 과격파 젊은이들 문제 등이 쟁점으로 묘사된다. 책의 구성이 흥미로운 건 참관기 사이사이 다소 개념적, 이론적인 글들이 채워져있다는 점이다. 참관기에서 제기하는 어떤 문제점은 다음 챕터에 실린 다소 이론적인 글에서 설명된다. 참관기만으로 채워졌더라면 다소 산만하고 감상 위주로 제한될 수 있었을 텐데 이론적 글들이 이 점을 보완하고 책을 더 풍부하게 해준다. 참관기 중간의 이론적인 글들은 대개 <n+1> 편집진들이 썼다. 책날개에 ‘저명한 사회비평 잡지’라고만 소개되어 있어서 대체 어떤 잡지인지 알 수가 없었는데, 책 말미에 가서야 각주에 <n+1>이 <월가 점령 가제트>의 모(母) 잡지라고 소개되어 있다. 다시 정리하면 이 책의 편집자들은 월가 점령 시위 현장을 처음부터 소개해오던 <n+1> 편집진이라는 말이다. 책을 읽다 보면 알게 되는 사실인데, 시애틀, 애틀랜타, 뉴욕의 점령 운동 참관기의 상당 부분을 쓴 이들은 자매지간이다. 아마도 마흔은 넘은 걸로 추정되는데, 멀리 떨어진 세 지역에서 나이도 적지 않은 자매들이(게다가 한 명은 휠체어에 의존하고 있다) 같은 꿈을 품고 점령 운동에 참가했다는 점은 높이 살만 하다. 세 자매의 참관기와 <n+1> 편집진들의 글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탓에 글쓴이들은 샘플링에서 대표성이 없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책은 일관되게 한 가지 성향을 보여준다. 예컨대 무정부주의와 폭력주의에 대해 일관성 있게 반대하고 있는데, 이러한 입장은 일기를 기록한 참가자의 글에도, 편집자들의 이론적 글에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따라서 이 책은 월가 점령 시위에 관한 ‘포괄적인’ 안내서라고 할 수는 없다. 편집자들의 정치적 편향이 드러나 있으므로 독자들은 그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물론 크게 보아 세상에 비정치적인 글은 없다고 볼 수 있겠지만, 이 책은 적어도 다양한 정치적 관점을 포괄하여 소개하려는 의도는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Occupy Wall Street는 자발적 운동이다. 자발적 운동은 그 나름대로의 장점과 의의가 있겠으나 이 책의 어느 글에서도 소개하듯이 사회운동에서 자발성과 무형식을 지향했을 때 나타나는 무구조의 횡포(the tyranny of structurelessness, pp. 79-82 코프먼의 글 참조)에도 주의해야 한다. 혹은 그 반대로 무구조를 지나치게 구조화하려는 시도 또한 운동의 장점이나 방향을 완전히 뒤바꿔 놓을 수도 있다. 볼셰비즘은 러시아혁명을 성공으로 이끈 동력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러시아혁명을 중단시켜버린 장애물이기도 했다. 지도부의 상상력이 민중의 혁명적 역량을 구속해버릴 때 혁명은 정체되고 지도부의 아집만 남는다. 최근 벌어지는 통합진보당 사태도 지도부를 사유화하려는 NL의 가부장제적 발상 때문이 아닌가? 그러고보면 NL은 진보보다는 수구와 더 친화력이 있는 것 같다. 점령 운동에서도 정체불명의 지도부의 주도권이 커지는 것을 보게 된다. 뉴욕 주코티공원 점령자들은 주로 공개총회를 통해서 의사결정을 하지만 점령자 숫자가 늘면서 소수가 장막 뒤에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아졌다. 집단이나 사회의 규모가 커지면 결국 이것을 관리할 지도부가 생겨나는 것은 필연이다. 운동 참가자들의 생각, 문제 의식, 참여 정도, 목적, 정치적 신념 등이 제각각이기 때문에 운동이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목소리를 규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지도부는 운동 참가자들의 상상력을 배가시킬 수 있는 윤활유 역할을 해야 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점령 운동의 의의는 무엇인가? 가장 낮게 평가한다 해도 “1퍼센트 대 99퍼센트’ 그리고 ‘점령’이라는 어젠다 혹은 프레임을 세웠다는 점은 큰 의의이다. 자본주의의 심장부에서 점령 운동이 일어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1%가 부를 (사악한 방식으로) 독점하고 있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명명백백하게 드러내버릴 줄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점령 운동은 이제 출발점에 서 있을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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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꼬프스키의 시들은 역동적이고 혁명적이다. 나도 모르게 피가 끓고 흥분되어서 당장 밖에 나가 어떤 일이라도 하던지 하다못해 욕지거리라고 해야 속이 시원할 것 같다. 마야꼬프스키의 시처럼 변화를 촉구하고 동참하도록 요구하는 글은 엄청나게 매혹적이다. 이 '점령하라'라는 말도 그런 의미에 매혹적이다. 답답하고 꽉 막힌 세상에서 '점령하라'라는 말. 이 말만 듣고도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
이 책은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월가를 점령하기 위해 모여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해제는 우석훈님이 써 주셨는데 해제에 나와 있듯 이 책의 글들은 중구난방이며 독자들에게 친절하게 설명해주지도 않는다. 어떻게 보면 좀 난잡하게까지 보인다. 하지만 이 책은 변화의 시작을 알린다. 이것이 진정한 변화로 이어질 지 아니면 단발성의 모임으로 끝날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은 세계제일의 강대국인 미국부터 변화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변화는 프랑스나 영국에서 일어난 혁명으로 인해 일어난 것보다 많은 변화를 가져다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변화는 천천히 넓게 진행되는 것이어서 언제 변화가 끝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이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동참을 요구하고 자발적으로 동참하는 것은 보다 민주적이고 보다 이상적인 체제로 향해 나간다고 확신한다.
혹자는 모든 사람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은 너무 이상적이기만 하다고 이야기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상이 없다면 현실의 발전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몇 몇 사람들로 시작한 월가 점령시위는 유명 인사들이 참여하게 되었고 또 다른 지역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슬라보예 지젝 외 지음이라고 나와 있지만 사실 지젝의 글은 5페이지 밖에 되지 않는다. 그것도 지젝이 직접 쓴 글이 아니라 점령시위를 하는 곳에 와서 연설을 한 연설문을 적은 것이다.
하지만 지젝의 연설은 많은 것을 포함하고 있다. 단지 했다는 것으로 끝내지 말고 반드시 변화를 일으키하는 강력한 주문이 들어가 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와 사랑에 빠지지 말라'라는 말로 시작하는 이 연설은 이 점령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한번쯤 어떤 일을 시작하기로 하고 사람들이 모였지만 서로의 의견다툼으로 인해 흐지부지 된 경험이 있을 것이다. 사람이 많이 모이면 많이 모일수록 서로 대화하기는 어렵고 대화가 어려운 만큼 이해는 더 어렵다. 몰이해와 오해가 겹치면서 결국 서로 화를 내고 헤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서로 목표를 분명히 하고 소통에 가장 큰 힘을 써야 한다. 이 책에도 마지막으로 향해가면서 다른 단체들의 방해와 서로의 의견과 또는 범죄들로 모여 있는 것에 대한 의심을 보여 주고 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이유로 해산하게 된다면 지젝이 이야기한 '스스로와 사랑에 빠지는' 꼴이 될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바뀐 것 없이 과거에 있었던 일만을 회상하고 자랑스러워만 하면서 끝이 나는 것이다. 이래서는 아무것도 바뀌는 것이 없다. 세상에 가난한 나라와 부자 나라 그리고 부익부 빈익빈이 생기는 것은 시스템의 문제가 가장 크다.
이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비폭력으로 저항하는 수밖에 없다. 비폭력의 힘은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단순히 화풀이가 아닌 진정으로 변화를 원한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 이 변화를 원하는 힘은 다른 사람들 또한 감화시켜 진정한 변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세계를 이끌어가는 많은 사람들은 변화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고 이끌려가는 사람들은 더 이상 뒤에서 이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같이 나아가는 주체가 되고 싶어 한다. 즉 1%가 아니라 99%가 변화를 이루어 내야 한다는 것이다. 99%의 힘을 모은 다는 것은 정말 힘들다. 그들은 교육수준도 들쑥날쑥하고 돈도 없으며 어떤 일을 해야 하는 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99%가 하나의 목표를 보게 된다면 세상은 바뀔 것이다. 그것이 비록 빨리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천천히 그리고 넓게 이루어질 것이다. 미국에서 시작한 이 변화의 바람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 세상 모든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행복해 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얼마가 걸릴지는 모르지만 하나씩 모아진 힘이 세상을 바꾸기를 기도한다.
오타 p5 정이 → 정의 p18 주의 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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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살았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사실 이런 책을 읽는 것은 언제나 부담스럽다. 불편한 진실과 더 불편한 현장을 낱낱이 환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로 돌아와 지금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고 있자면 차라리 책 붙들고 고민하는 시간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엊그제도 지인들끼리 모여 이놈의 자본주의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해가며 도대체 어쩌다 우리가 이렇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새삼 자본주의 비판하자고 모인 것은 아니었지만 요즘 식사와 음주가 이어지는 어디에서든지 이런 풍경은 익숙하다. 내 세대들은 입을 모아 그동안 우리가 좇아온 가치들에 대해 눈물겨운 탄식을 멈추지 않는다. 달라진 게 있다면 예전엔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 어쩐 일인지 최근엔 모두가 투사가 된 기분이다. 지난 2008년 미국 금융위기 이전에 우리의 주된 대화는 이번 명절엔 남들처럼 해외여행을 감행해볼까, 였다.
우린 386 선배들의 투쟁과 성공, 몰락을 바로 곁에서 뒤에서 지켜본 후배들이다.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 학번들은 중고등학교 시절 지겹도록 데모하지 말라는 교육을 받으며 자라왔다. 민주화 운동(그땐 싸잡아 빨갱이 운동이라 했다) 하다가 죽거나 폐인이 되는 사례 수백 가지를 성문 기본 영어의 1장 부정사의 사용법 다음으로 들어왔다. 전두환, 노태우가 주입하고 강요한 가치는 단연 올림픽으로 상징되는 헝그리 정신과 애국심이었다. 금메달을 따면 방송에선 일률적으로 ‘나가자 빛을 내자 대한의 건아들’이런 노래를 하루 종일 틀어줬다. 마트에 가면 과일도 모두 금메달 수박, 금메달 참외였다. 아직도 소름끼치게 기억나는 건 여고시절 학교에서 모범생으로 분류된 학생들만 사박오일 동안 어디로 끌고 가(?) 의식화 교육을 시켰다는 것이다. 물론 명분은 신사임당 교육이었고 예절과 충효와 애국심을 가르친다고 했다. 실제로 그 교육을 받게 된 학생들은 마치 국가의 엘리트 코스를 밟게 되는 과정처럼 보여 지기도 했다. 동선까지 기억나는 그 방에서 우리는 애국심을 고취하는 약 십 분짜리 영상을 보고 모두 울었다. 아직도 왜 울었는지 이해하고 싶지 않지만 밀폐된 공간에서 소수 정예만 모아놓고 대한민국의 발전사와 비전을 상영해주니 예민한 감수성에 무언가 끓어오르는 애국심을 견딜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래놓고 바로 이어지는 다음 시간엔 마르크스가 죽일 놈이고 김일성은 친척이고 공산주의는 사회의 악이라는 강의를 들었고 불온한 사상을 전파하는 대학생은 대한민국의 발전을 저해하는 주범이라고 했다. 당시 열일곱 살의 나는 영상물의 마지막 장면 휘날리는 태극기를 가슴에 간직하며 대학에 가서 죽어도 데모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모두의 바람대로 대학에 들어가 나는 시험거부 같은 집단 시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얼굴 들고 시험을 치루는 학생이 되었다. 평소 친분 있던 한 선배가 강경대 학생이 맞아 죽은 후 단식투쟁에 돌입했지만 그냥 못 본 척 하고 도서관으로 향한 날을 기억한다. 그런데 졸업하기도 전에 취직한 회사에서 우연히 그때 보고 울었던 영상물을 다시 보게 되었다. 우리 회산 정부에서 의뢰한 홍보영상을 제작하는 곳이었고 나는 영상물 시나리오를 작성하게 된 것이다. 웃긴 건 그 영상물 바로 옆에 장산곶매의 <파업전야>와 <닫힌 교문을 열며>의 비디오테잎이 나란히 있었다는 것.(나는 그날 집에 테잎을 가져가 울면서 영화를 보았다. 일부 선배들이 같이 보자고 했을 때 일없다고 했던가. 회사에선 보기 드문 수작이니 꼭 참고하라고 흔한 외국 CF 자료영상처럼 말했다...) 나는 그때 정부가 우리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인지 비로소 깨달았다. 하지만 다음 날 다시 정부를 치장하고 홍보하는 시나리오를 썼고 그걸로 월급을 받아먹었다. 어찌 보면 우린 민주화 선배들에게 빚진 세대일지 모른다. 우린 그들이 틀린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것 같다. 우린 좀 다르게 살고 싶었다. 변명을 하자면 우린 교복자율화 1세대였고 강남 8학군을 누비는 신흥중산층이었다. 옷과 머리, 아파트와 자가용이 신분을 가르는 기준임을 학교에서부터 배운 첫 세대였다. 우린 돈의 가치가 민주화보다 더 중요하다는 걸 일찍 깨우친 영악한 세대였다. ‘벤지’를 보고 자라면서 동물에 대한 사랑을 키웠고 ‘ET’를 보고 외계인을 상상했고 ‘람보’를 보며 미국식 영웅주의에 길들여졌고 ‘주윤발’을 보면서 폭력을 미화했고 ‘마돈나’를 보면서 여성평등을 내재화했다. ‘마이클 잭슨’을 보면서 돈 있으면 흑인도 백인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가끔 우울할 땐 조용필과 변진섭과 이문세, 이승환의 넋두리를 함께 들어주면서.
그런 우리가 대학에 들어갔을 때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고 소련은 붕괴했다. 회사에서 미국비자는 어엿한 신분이었고 자가용 소유는 신세대직장인임을 증명하는 라이센스였다. 우린 IMF가 터지기 직전 너도나도 압구정동에서 연애를 한 세대였다. 부모님은 강남에서 이주하며 부동산 차액으로 자식들 결혼을 시키셨다. 민주화 선배와 IMF 후배와 부모님에게까지 빚을 진, 대단히 운 좋은 우리 세대는 신도시 아파트에서 살림을 시작했다. 이 대단한 속물들은 영어에 맺힌 한 때문에 자식들이 태어나자마자 조기영어교육에 매달렸다. 남들에게 지기 싫어 아이들을 학원으로 내몰았다. 남들처럼 대출받아 집도 샀다. 남들 보는 눈이 있으니 때가 되면 차도 바꿨다. 가끔 주식으로 대박 난 후배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주식 때문에 거리로 나앉은 동창 소식을 들으며 그건 남일 이라고 생각했다. 대통령이 두세 번 바뀌고 그나마 그 중에 존경하던 대통령은 약속이나 한 듯 세상을 떴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아무런 죄책감도 못 느끼고 맘 편하게 사는 작자만 오래 행복하게 사는 건 맞았다. 그러는 사이 더 이상 승진의 기회는 사라졌고 아이는 커버렸고 우린 늙어 있었다. 하우스 푸어로 대변되는, 이젠 언론에서 조차 어쩌다 한번씩 2030 세대에 양념으로 뿌려주는 40대가 되었다. 가끔 <정의를 무엇인가>를 사본 주된 세대가 40대 남성이라며 이들이 움직이면 사회에 변화가 생긴다는 의미심장한 멘트가 덧붙여지는.
시즌이 시즌이어서 그런 것인지 언제부턴가 우리끼리 화두는 대한민국과 정치, 대기업과 실물경제, 부동산과 금융대출, 학교폭력과 배금주의 이런 것들이다. 결론은 모두 돈으로 귀결된다. 특히 가진 자들이 이미 가진 것들을 발판 삼아 못 가지거나 덜 가진 자들과 더욱 엄청난 격차를 벌이게 된 이 현실이 슬프고 분노스러워 죽을 지경인 것이다. 삼년 전 보다 나아진 사람은 아무도 없고 있다면 우리가 볼 수는 없다. 우리 사는 이곳에서 떠난 지 오래이니까. 비강남 지역에 33평 전세, 중형차 1대, 초중생 자녀를 둔 우리 세대 월급쟁이들의 최대 관심사는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는 것도 MBC 사장이 퇴진하는 것도 정봉주가 석방되는 것도 강호동이 컴백하는 것도 아니다. 가장 궁금한 건 학교와 부모님의 바람대로 대학도 가고 졸업 후 취직도 했고 나이가 차서 결혼도 하고 정상적으로 아이도 낳고 이 사회에 반하는 행동 같은 건 하지 않고 살았는데, 아니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는데 왜, 행복하지 않을까이다. 왜 우린 지금보다 도통 나아지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에 시달리는가 이다. 우리의 결론은 앞으로 이 나라 대한민국에서 행복하게 산다는 건 1%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로또일 뿐이라는 것에 몰표를 던진다. 우리 같은 99%는 허구한 날 솟구치는 이자와 날아오는 고지서와 늘어나는 가격표에 둘러쌓여 주름살만 늘어날 뿐이라는 것. 중간에 어떤 극적인 일확천금의 기적이 없다면 우린 어쩌면 아이들에게 빚을 물려주면서 이 세상을 하직 할지도 모른다는 것. 우리 세대가 특별히 더 나라를 걱정하고 특별히 성격이 더 불안하고 유달리 아이를 사랑해서 그런 건 아닌 듯 하다. 그리고 중요한 건 이런 생각을 우리 세대만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나아가 우리나라만 이 꼴인 것 같진 않다.
회의(會議)는 언제나 회의(懷疑)스럽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뉴요커에 대한 환상은 좀 필요이상이었다. 증권가, 패션잡지, 변호사, 검사 등의 전문직으로 상징되는 뉴욕의 능력자들은 정장을 입고 백팩을 매고 스니커즈를 신고 베이글을 먹는다고 들었다. 마천루의 회색빛 이미지와 블랙톤의 슈트, 금발 단발머리, 그리고 빌딩 사이로 언뜻 지나가는 뉴욕의 차가운 하늘. 걸어가는 사람들의 시크하고 무표정한 얼굴. 낮엔 실용성을 따지다가 밤엔 시스루룩으로 파티를 즐기는 사람들. 미드열풍은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뉴요커가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꽤 근사한 인종의 표상임을 각인 시켰다. 혹시 아직도 희미하게나마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이 책을 보시라. 뉴욕의 브로드웨이 거리에 모여든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어떤 모습으로 모여들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한번 들어보시라. 물론 우리가 떠올리는 DKNY 슈트를 입고 주머니에 손을 넣고 모델처럼 걸어가는 젊은 남자들은 거기 없다. 모두 뉴욕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아니다. 어쩌다가 노숙자, 주정뱅이와 마주칠 확률도 있다. 2008년이 되기 전에 뉴욕에 갔을 때 엠파이어트 스테이츠 빌딩 맨 꼭대기 기념품 샵에는 모든 물건에 ‘I LOVE NY’ 라고 적혀있었다. 그땐 거기서 보는 뉴욕의 야경이 부럽긴 했다. 허나 이제 더 이상 우린 뉴욕과 뉴요커를 부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대신 월가에 모여든 사람들에 관심 갖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왜일까. 전후 60년 동안 우리는 미국이 하는 일은 거의 빼놓지 않고 충실하게 따라하는 나라가 되었다. 자발적으로 따라한 것도 있고 어쩔 수 없이 따라하게 되는 것도 있었다. 누가 뭐래도 따라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가 그들이 내세운 가치를 누구보다 적극 수용하고 악착같이 실행해왔기 때문이다.
이 책은 2011년 가을 뉴욕 월가에서 일어난 시위를 기록한 점령보고서이다. 9월에 시작하여 두 달 간 치열한 점령의 시간을 가진 후 현재 혹한과 탄압을 맞아 중단 되었다. 새해가 된지 석 달이 되지 않았으니 시기적으로 따끈따끈한 최신의 뉴스에 해당한다. 책은 실제 시위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생생한 증언, 목격이 주가 되는 체험담과 기자, 편집자, 작가, 교수들의 칼럼 릴레이로 교차 편집되어 엮여졌다. 칼럼을 쓴 지식인들도 현장에서 자원봉사자로 참여했거나 연설을 했거나 공개총회에 참석했거나 어떤 식으로든 시위에 동참한 사람들이다. 어제까지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어느 날 같은 장소에 모여 그날부터 천막을 치고 공동체를 조직해 회의를 하고 의견을 개진하고 행진을 하며 주장을 내세웠다는 이야기다. 뭐 그렇다고 월가의 은행들이 이참에 정신 들여 반성을 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게 모여서 떠들고 행진을 했는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일 것이다. 아니, 그동안 당신은 무엇을 했느냐, 일 것이다.
생각해보자. 내가 사는 아파트 앞에 시민의 휴식공간인 근린공원이 동네의 상징처럼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 곳이 시위대의 점령 장소가 되어 하나둘 천막촌이 형성되더니 밤마다 각종 악기소리가 들려오고 주변 상가들은 제대로 이용할 수가 없으며 곳곳에 경찰들이 배치되 있어 불안해서 죽겠는 날들이 두 달 째 이어진다면 우린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린 아마 ‘책에서 읽은 대로 옳은 일을 하고 싶어 하지만 막상 현실의 중요한 순간에 와서는 체질적으로 옳은 행동을 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로 변심하여 민원을 넣기 바쁘지 않을까.
세계는 지금 자본주의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집단적 반성에 여념이 없다. 미국발(發) 금융 위기에 이어 유럽 국가의 재정 위기로 세계경제가 다시 휘청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소득 불평등의 심화로 1%가 독식하고 99%가 소외되는 자본주의에 대한 회의(會議)는 너무 오래된 회의(懷疑)가 되었다. 우리는 위기 때마다 자본주의 종말이 시작되었다는 주장을 얼마나 지겹게 들어왔던가. 그런 가운데 '새로운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을 찾아온 한국은 여당과 야당이 한목소리로 '경제 민주화'를 제시하고 있다. 시장을 공정한 경쟁 체제로 만들고 결실을 공평하게 분배하는 데에 역점을 두자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시장’이 아니라 민주화의 주체인 ‘국민’이다. 바로 경제 민주화라는 한국적인 '새로운 자본주의'를 만드는 것은 시장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몫이며, 이는 국민의 몫이라는 주장이다. (중략... 조선일보. 2012. 3. 12) - 정말 지겹다. 국민의 힘이며 국민의 몫이라는 말. 왜 늘 책임 이야기 할 때만 국민을 그다지도 챙기는 것인지.
나는 어쩐지 ‘국민의 몫’이 국민이 수행할 수 있는 힘이 아니라 국민이 지는 책임이라는 소리로 들렸다.(그러니 앞으로 선택이나 잘하라는 뜻으로 들린다) 보수 언론은 여전히 경제위기의 책임을 국가냐 시장이냐의 이분법 안에서 규정지으려 한다. 이는 세계경제의 위기가 '자본주의의 실패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실패'라고 규정한 미국의 주장을 근거로 한 시각이다. 불공정한 자본주의 체제를 만들어 낸 것은 민주주의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탓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는 국가가 시장에 던진 질문에 시장이 국가에 반론하는 전형적인 대립구도이다. 그 사이에서 국민은 언제나 설득과 통제의 대상이 되고 기득권은 변함없이 유지된다. 결국 가진 자들이 달라지는 건 하나 없고 국민만 가르치려 드는 작태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미국의 점령시위를 해석하고 보도하는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점령시위를 자본주의에 맞서는 범세계적 운동으로 의미를 두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저 특정 시기 미국 내 일어난 민주화 운동이거나 금융권의 비도덕성을 성토하는 규탄대회이거나 개인화를 주장하는 행위라며 그 집단성의 의미를 축소하고 퇴색시키는 것이다. 어딜 봐도 시위현장에서의 폭력 장면을 주로 노출하면서 시민에게 불안과 두려움을 제공하고 현장에서 일어난 주장이나 평화적 의지 같은 건 묻히도록 의도한다. 미국도 장애인을 앞에 두고 최루탄을 쏘는 나라인지 미처 몰랐다. 단지 모였다는 이유만으로 몸수색을 당하고 체포가 되는 나라인지 몰랐었다. 시위의 ‘시간’, ‘장소’, ‘방법’에 대한 규제가 우리나라처럼 꼼꼼한지 처음 알았다. 질서유지에 강박관념을 가진 뉴욕경찰은 사소한 위법행위에도 엄격한 단속을 시행하는 조직이었다. 낮은 수준의 무질서를 단속하여 공동체의 건강에 기여하겠다는 야무진 발상을 도시이념으로 삼아온 곳이었다. 이 돈 가진 윗 것들이 안 가진 아랫 사람을 통제하겠다는 발상은 어찌 이리 똑같은 것일까. 예를 들어 통장해지를 위해 은행에서 줄을 선 것도 점령시위대 소속이다 싶으면 바로 무질서 현행범으로 잡혀 들어가는 나라, 그 나라의 가장 쏘 쿨한 도시. 그럴 수 있는 것과 실제로 당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그들이 보여준 것은 미래의 한 단면이다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단지 뉴욕의 경찰은 물대포가 아닌 어떤 방법으로 시위대를 탄압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먼저 사람들이 모인 이유를 떠올려야 한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의 데자뷰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파산 일보 직전의 월가 은행은 국민의 세금으로 구제받고 시민은 그 덕에 파산했다. 이 책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미국발 금융위기의 진원지에 해당하는 AIG는 2009년 회생의 목적으로 받은 공적 자금을 임직원에게 거액의 보너스로 지급했다. 핵심인재관리를 위해 회사로서 어쩔 수 없었다고 했지만 미국인의 공분을 사고도 남을만한 작태였다. 우리가 지금 미국을 걱정할 주제는 아니지만 우리처럼 미국인 대다수는 한 평생 채무자의 삶을 살고 있다. 서브프라임 쇼크 이후 일반가정은 주택담보 압류, 강제퇴거, 학자금대출, 실업의 수순을 밝으며 고통을 떠안게 되었다. 금융권의 불공정 행위와 지속적인 착취, 도둑질의 결과 노숙자는 늘어갔고 방만 경영의 대표주자 세계 최대 기업이었던 GM은 파산했다.
월가에 모인 사람들은 주로 20,30대의 고학력 이면서 뉴욕에 거주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들은 버거킹에서 굴욕적으로 화장실 사용을 금지 당하고 맥도널드에서 줄을 서야 했다. 그래도 커피는 마셔야 하므로 그 앞 스타벅스에 앉아 관광객들이 화장실이 어디에 있는지 의아해 할 때 답해주는 친절을 행하면서 말이다. 어쩌다 편집자의 집에서 샤워를 하게 된 날 트위터에 그 한 줄 기쁨을 알려가면서 말이다. 이들은 60년대 히피나 괴짜도 아니고 부잣집 철없는 도련님도 아니고 대단한 사회운동가, 평등주의자도 아니다. 한마디로 말해 그냥 우리와 다르지 않은 그저 1퍼센트가 아닌 그 나머지에 속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만나서 대화하면서 모든 게 이루어지는 형국이었다. 날 것으로 노출된 그들의 대화는 합의에 도달하는 과정을 담았고 대단한 결론은 아니지만 합의가 창조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 협력의 문화임을 보여주었다. 공개총회나 대변인 모델의 시도는 다양한 정치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지도자가 없이도 저항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점령시위대는 뜻있는 사람들이 머리띠를 두르고 모여 앉아 북치고 구호를 외치는 운동이 아니다. 내가 놀랐던 것은 천막으로 이루어진 점령 공동체의 생활이 분명 자본주의를 넘어선 하나의 대안으로 또렷이 인식되었다는 점이다. 시위대는 분권화된 여러 작업 그룹으로 나뉘어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게 된다. 음식, 의료, 법률과 같이 가장 필수적인 분야부터 예술, 교육은 물론 여성, 장애인, 이민자, 퇴역군인 등 소수자에 대한 평등과 배려까지 담당하고 있었다. 박세길의 『자본주의, 그 이후』(돌베게, 2012)에선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상생의 인본주의 사회를 제시하고 있다. 창조력이 자본이 되고 구성원이 복지의 주체가 되어 스스로 경제 생태계를 구축해 나가는 풀뿌리 지역경제의 이상향이 바로 점령 시위대속에 있었다. 시위대는 ‘대안 경제 작업 그룹’을 만들어 지역자치회와 연대하고자 노력했다.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비록 경찰에 의해 해산되기는 했지만 그것은 분야별로 다양하게 구성된 직능조합의 형태와 유사했다. 자율적이면서 독립적인 창조자들의 수평적 연합체는 승자독식의 원리에서 벗어나 다 같이 잘 먹고 잘 사는 상생의 생태계 구축의 핵심이다. 그러니까 월가 점령은 시위라기보다는 ‘대안적 미래에 대한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훌륭한 사례’인 것이 맞았다. 칼럼니스트 들은 이를 ‘점령 생태계’라 칭했고 점령을 무언가 아름다운 것으로, 무언가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것으로 바꾸는 일이라 평가했다. 사랑과 행복과 희망을 부르는 것이니 ‘공동체 정원’의 베이스캠프가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누가 이런 말을 해준 사람이 있었던가. 있다고 해도 잘 들리지 않았다.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 할 또 하나의 이유는 이들이 얼굴을 맞대고 고민하는 가운데 수면위로 떠오르는 또 다른 ‘정의’에 대한 성찰이다. 이들은 분명 고용불안과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을 느껴 경제정의를 실현하고자 한자리에 모였다. 같은 분노와 같은 희망으로 모여들어 같이 가슴이 뛰는 시간을 경험했다. 사실 그곳에 다 같이 있다는 것 자체가 점령운동의 승리로 느껴지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단지 거대 은행의 파렴치한 행위를 중단시키기 위한 방법만 고민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시위대 주변 차이나타운에서 희망을 잃어버린 이민자의 문제를 그들 다음으로 고민하기 시작 했다. 백인과 흑인의 발언권이 같다는 인종적 균형감을 잃지 않으려 노력해야 했다. 시위대에 걸림돌로 작용하던 노숙자 문제를 끌어안으려 고민하고 설득해야 했다. 사회운동에 늘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던 드럼서클과 연대하며 주민을 설득시키기도 했다. 시위대 안에서도 소수민족과 백인, 남성과 여성, ‘가치 있는 빈민’과 ‘가치 없는 빈민’으로 나뉘어 지는 이분법의 한계에 부딪혀야 했다. 소수 시위자의 폭력 때문에 다시 경찰의 폭력을 유발하는 전술을 반성하기도 했다. 갓 성인 된 혈기 왕성한 백인 청년들(무정부주의자)의 치기어린 난동을 이해해야 했다. 사람이 모였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폭력, 강간 등의 범죄 및 안전 문제, 빨래와 용변 같은 위생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확인되지 않은 각종 ‘카더라 통신’으로 인한 내부분열을 막아야 했다. 이들은 공동체 속에서 부딪히는 현실적 문제들과 끊임없이 대화하면서 연대와 동맹의 새로운 형태와 모습을 만들어 나간 것이다.
그러면서 점령운동의 본질은 ‘누군가를 살아 숨 쉬게 하는 표현의 형태’라는 것을 깨닫는다. 드럼을 연주하는 사람처럼 ‘말소리를 들은 사람은 자신의 몸으로 그 말을 반복하며 말을 한 사람의 독특한 운율에 응답하는’ 펄스의 원리를 체험한다. 정신과 육체의 단절이 해제되는 순간이다. 연대는 단지 이익집단끼리의 단순한 악수가 아니라 ‘삶을 사는 방식과 세상에 대한 종합적 견해까지 서로 공감하는 것’임을 깨닫고 점령운동의 가치가 포용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점령은 특정 공간을 정복하여 사람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모여든 장소에서 서로와 손을 잡고 마음을 일치시킨 후 그것을 나누는 일이었다. 그들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공동체 미래사회의 초기 모델을 보여준 것일지 모른다. 그런데 정부는 점령을 테러리스트의 행위와 유사하게 재구성하여 무질서한 폭력집단으로 중계하는 것이다. 물대포는 경찰의 폭력성을 부각시키는 것이 아니라 물대포를 쏠 만큼 과격한 시위대의 폭력성을 강조할 뿐인 것이다.
분노했다면 점령하는 것이 다음이다
세상은 변했고 세대도 달라졌고 방식도 진화했다. 그저 우리 생각만 변하면 된다. 아니 맞다고 생각하는 그것을 행하면 된다. 우린 생각은 하지만 그저 생각만 하기 때문이다. 작년 연말 7,80년대 ‘민주화 운동의 대부’로 불리던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아직 이른 나이로 세상을 떠나 가슴이 아팠다. 그가 월가의 점령시위를 보고 블로그에 10월 달에 올린 글이 안타깝게도 유언이 되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2012년을 점령하라’ 였다. 2008년 촛불집회, 2009년 조문행렬, 2011년 희망버스... 그리고 다음은 무엇인가. 그는 미국이 비호감이더라도 우리가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미국보다 사정이 낫다. 미국보다 금융이 정치에 비해 권력이 강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굳이 증권사가 많은 동 여의도를 점령할 필요는 없다. 국회가 있는 서여의도, 청와대가 있는 종로를 점령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운 좋게 내년 2012년에 두 번의 기회가 있다. 최선을 다해 참여하자. 오로지 참여하는 사람들만이 권력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권력이 세상의 방향을 정할 것이다. - 2011년 10월 故 김근태
‘나꼼수’는 시종일관 쫄지마라고 했는데 ‘웃음을 잃지 않는 분위기’와 ‘비폭력적인 방법’은 월가 시위대에서도 일관된 기본방침이었다. 그런 가운데 뉴욕 주코티 공원에서 연설한 슬라보예 지젝의 일침은 매우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다. 그는 모인 사람들에게 훗날 지금 이 순간을 아름답게 추억하며 그땐 우리가 젊었고 뜨거웠다고 곱씹는 사람이 되지 말자고 충고했다. 무엇보다 우리 스스로 자기 합리화에 빠지며 현실에 안주한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기위한 일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아시다시피 자본주의의 역사는 체제적 배제, 사회적 배제, 경제적 배제의 역사였다. 대한민국 1 퍼센트는 이제 그 옛날 쌍용 자동차 추억의 렉스턴 광고가 아니다. 우리는 이대로 가다간 살아있는 동안 1퍼센트를 위해 배제된 99퍼센트로 사는 길 말고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점령해야 할 것은 변화를 불신하는 아주 오래된 비겁함이다. 1퍼센트의 철벽같은 굳건함과 금빛 찬란한 위력을 믿고 의심 없이 현실을 체념하고 포기하며 온갖 종류의 절망을 푸념하고 사는 우리들 자신일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와 연대하기도 지레 겁을 내며 만연된 불신으로 체제에 순응하여 온 사람들이 아니던가.
이 책에 어느 편집자가 미국의 대형은행 경영진에 편지 보내기 운동을 독려하면서 느꼈던 심정을 적은 글이 더욱 고개를 숙이게 한다. 편지는 미국의 중산층이 주축이 된 부르조아의 시위였다. 직접 은행에 편지를 전달하러 간 편집자는 편지들이 청소부에 의해 쓰레기통에 처박히는 광경을 목격한다. 그는 표면적으로는 점령시위대와 함께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대학교수이고 수입은 좋았고 건강보험 혜택을 받고 있었다. 부친은 은행에 다니고 도서관과 박물관이 집처럼 편하다는 사람이었다. 주변에 금융권에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잘 안다고 했다. 한마디로 ‘우리들 가운데 일부는 쓰레기’라고 생각한다 말했다. 하지만 대다수는 아직도 건전한 도덕성을 가지고 있다고 항변한다. 자신도 그들과 다르지 않은 그가 과연 그들만 비판하는 것이었을까.
당신 역시 은행가들과 늘 함께 있다 보면 잘못된 일도 괜찮다고 여기게 될 것이다. 잘못인 줄 모른다는 말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거품 안에서 살고 있다. 만약에 하나의 메시지가 날아가 그들의 거품을 깨뜨릴 수 있다면, 그리고 “당신이 하는 일의 결과는 당신이 믿고 있는 그런 게 아니라 국가적 재앙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사람들은 분명히 바뀔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 p181 , 마크 그리프, <n+1>의 창간 편집자
혹시 왜 여러 방법이 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느냐는 질책은 아닐까. 나같이 먹고 살기 편한 사람이 봐도 문제인건 빤한데 왜 당신들은 아무 말도 안하느냐로 들렸다. 사람은 무언가를 가지게 되면 관점과 마음이 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돈이 돈을 모으게 만들었고 그렇게 돈을 모은 사람이 왕이 되는 세상이었다. 1%만 가지는 것이었지만 그 1%가 나도 될 수 있다는 착각을 희망으로 여기며 살아왔을 뿐이었다. 새삼 이제와 가진 자들의 도덕을 기대하는 건 어쩌면 우리가 가지지 못해봐서는 아닐까 싶다. 지젝이 지적했듯이 이것은 부패와 탐욕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시스템이 부패를 만든다면 우린 시스템에 대항하는 삶을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 자본이 되고 스스로 경제와 복지에 주체가 되는 일은 불가능하거나 말도 안 되는 일은 아니다. 자본주의는 필멸한다. 다만 그 속도를 앞당기는 일은 우리에 달린 듯하다. 특히 우리 다음 세대의 지속가능한 새로운 사회를 위해서라면 더 절실하다. 누군가 세상을 바꾸어 주리라 기대만 하는 것은 만약 안 바뀌더라도 할 수 없이 살겠다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분노했다면 다음엔 일어서서 점령하는 것이 순서다. 그리고 먼저 우리들 자신의 절망부터 점령하는 것이 마땅하다. 비록 99%의 절망으로 가득 찬 가슴이라 할지라도. 나머지 1%의 희망을 믿어 보는 것이다. 나와 같을 것이라 믿는 당신들의 가슴도 같을 것이라 확신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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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령 시위가 시작됐을 때 어떤 사람은 그를 지지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비난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 대부분은 무관심 했다. 그리고 조금 심하게 말하면 무관심한 사람들 중 많은 수의 사람들은 시위자들을 보고, 열심히 일하지 않고 살다가 이제와 저렇게 하는 것이라고 비난 했을 것이다. 점령하라. 는 열심히 일하지 않고 세상을 뒤엎겠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점령하라. 는 열심히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거울 나라 앨리스’에서 붉은 여왕의 나라에 간 앨리스는 아무리 뛰어도 자신이 제자리인 걸 알고 왜 그런지 물어본다. 붉은 여왕이 말하길. “제자리에 있고 싶으며 죽어라 뛰어라.” 그 나라는 어떤 물체가 움직일 때 주변 세계도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주인공이 끊임 없이 달려야 겨우 한 발 내딛을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지금 붉은여왕의 나라에서 살고 있는 듯하다.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죽어라 뛰면 현상유지할 뿐이고 그나마도 못 버티고 속속 떨어져 나가기 일쑤다.
역경 무뢰 카이지 한 장면 (이 만화는 무직인데다 보증으로 빚만 잔뜩 남은 카이지라는 젊은이가 빚을 갚기 위해 희망의 배 에스포와르에 올라 인생을 하룻밤 도박에 거는 이야기이다)
도박으로 인생을 거는 건 분명 개인의 잘못이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이 진입하기에 이미 골대는 너무 높게 설치돼 있는 게임에서 공정한 룰이라고 우기는 사람들에게 잘못은 없는 것일까?
“내가 생각하는 점령이란, 월가가 금융 제국이 아니라 뉴욕 시에 속하고, 은행의 돈은 그것을 잠시 은행에 맡겨둔 사람들의 것이며, 그들의 은행이 자신의 돈으로 무언가 좋은 일을 하기를 바라며 돈을 맡긴 것이라는 사실을 알리려는 행위다. 그리고 게임의 규칙은 궁극적으로 시민들이 정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모두에게 상기시키는 것을 의미한다.”(p.44) 점령하는 사람들의 목적은 은행을 점령하는 것도 증권사를 전복시키려는 것도 아니다. 지금 이 시스템을 만든 사람들에게 지금 당신들이 틀렸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것 뿐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금융권의 규제 완화부터 시작된다. 사실 1980년대 이전에는 예금자들의 예금으로 투자하는 것은 금지 되어 있었다. 1981년 레이건은 메릴린치의 CEO를 택했고, 앞으로 30년 간 이어질 금융규제 완화를 시작했다. 90년대 후반에 들어서 금융부분은 거대한 몇 개의 회사로 합쳐졌고 힘은 강해졌다. 은행들이 고객의 돈으로 투자행위에 관여하지 못하게 하는 법은 매번 시련을 맞을 뿐이었다. 90년 대 말에는 인터넷 주식에 투자해서 엄청난 거품을 만들어 냈고 2001년에 추락했다. 비슷한 시기에 파생상품이 등장하면서 엄청난 금융상품의 폭발을 일으켰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시스템이 등장한다. 투자은행은 수천 개의 대출 상품을 모아 부채담보부증권(CDO)를 만들고, 이것을 투자자들에게 팔면 모기지를 갚을 때마다 투자자들에게 돈이 들어가는 시스템이다. 새로운 시스템에서는 채권자와 채무자가 직접 관계하지 않으므로 대출은 점점 위험 부담이 커진다.
(다큐 영화 '인사이드 잡' 중에서)
이 과정에서 대형 보험사는 채무자가 빚을 갚지 않을 상황에 대비해 보험 상품을 판매한다. 문제는 대형 보험사는 잠재적 손실에 대한 아무런 대비조차 하지 않은 채 상품을 판매한다는 사실이다. 계약이 성사되면 직원들끼리 보너스를 나눠 갖는다. 그리고 결국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발생했을 때 그들은 이미 돈을 나누고 난 후였으므로 정부에 손을 벌린다. 결국 그들의 보너스는 국민들의 세금으로 보전해 줄 수 밖에 없다. 그들은 망해서는 안되는 회사이므로.. 기업이 대형화 될수록 사회적 파급효과는 크고 그를 악용하면서 방만한 경영을 한다. 그리고 위기가 닥쳤을 때 국민들의 돈으로 회생시키고 난 후 다시 그 돈으로 보너스 잔치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떳떳하게도 우리가 아니면 우리 나라가 죽는다고 떵떵거린다.
특히, 금융사가 대형화 되면서 이런 문제들이 불거졌고 그들의 도덕성이 우리의 생존에 직격탄을 날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점령하라는 이런 시스템의 불합리에 대한 99%의 조용한 외침이다. 혹자의 말처럼 사회주의 시도도 아니고, 시스템을 전복하겠다는 의도도 없다. 다만 우리가 아닌 우리 아이들이 살 세상이 지금보다 나아지기 위해서 지금 당신들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소심하면서도 용기있는 목소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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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미국의 좌파 잡지, 애드버스터는...
한 광고를 실었다.
바로, '9월 17일에 월가 금융자본의 부패와 탐욕에 항의하자는 평화 점거를 벌이자'라는 광고였다. 바로 이 광고가 뉴욕의 월가를 넘어 전세계적으로 부르조아 1%에 대한 반대와 저항을 불러일으킨 나머지 99%들의 성난 목소리, 월가 점령 운동의 시작이었다.
우리는 모두 패배자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패배자는 뉴욕 도심의 월가에 있습니다. 우리 돈 수십억 달러가 금융권을 구제하는데 들어갔습니다. 혹자는 우리를 보고 사회주의라고 합니다. 언제나 있었던 것은 부자들을 위한 사회주의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사유재산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설령 여기에 있는 우리 모두가 한 달 내내 밤낮으로 사유재산을 파괴한다고 해도 그건 우리가 잃은 사유재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피땀 흘려 번 것 보다 더 많은 사유재산이 2008년 금융위기로 날아가렸으니 말입니다. 그들은 우리를 몽상가라고 합니다. 진정한 몽상가는 과거의 상황이 앞으로도 무한히 계속될 거라고 믿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몽상가가 아닙니다. 우리는 악몽으로 바뀌는 꿈에서 깨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파괴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단지 이 사회 시스템의 자폭을 목격하고 있을 뿐입니다.
-2011년 10월 9일 슬라보예 지젝의 주코티 공원 연설 중에서 -
월가 점령은 그랬다. 그토록 산재해 있던 모든 개인들의 아픔이 더 이상 그 개인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며 바로 자본주의라는 시스템 그 자체로 부터 야기된 것이라는 걸 깨닫는 것이었다. 그렇게 '모든 것이 당신 자신 때문이다.'라며 자본주의가 주입한 환상과 꿈에서 영화 매트릭스의 네오 처럼 깨어나는 일이었고 이제 이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주렁주렁 매달고 타이타닉호 처럼 가라앉아만 가고 있는 자본주의에 대해 더 이상 이대로 수수방관만 할 수 없다며 떨치고 일어난 것이었다.
우리가 여기에 있는 이유는 코카콜라 캔을 재활용하고 불우이웃 돕기에 몇 달러를 내고 혹은 수익금의 1퍼센트를 제3세계의 굶주린 아이들을 위해 쓴다는 스타벅스 카푸치노를 구매하여 흐뭇해하는 세상에 이제 그만 지쳐버렸기 때문입니다. 각 종 일거리를 아웃소싱하다 못해 이제는 결혼정보업체가 우리의 사랑마저 아웃소싱하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 이런 모습을 보아왔죠. 우리의 정치 참여 또한 아웃소싱되고 있습니다. 이걸 되찾자는 겁니다.
- 슬라보예 지젝의 같은 연설 중에서 -
'n+1' 'n+1' 은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는 점령 운동 당시의 현장 상황을 생생히 전해 주는 '점령 풍경' 섹션이고 다른 하나는 그 점령 풍경들 마다 제기 되었던 주된 문제들에 대한 당시의 발표문이나 연설문들이다. 그러니 전자는 실천 부분을 후자는 이론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하겠다. 이 두 개의 섹션은 별개로 묶이어지지 않고 하나하나가 서로 교차로 편집되어 있는데 그것은 이 책의 편집자들이 운동이 전개되어나감에 따라 어떤 문제들이 일어났고 그 문제가 점령 운동에 있어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점령 운동'은 어떤 원칙과 이론적 바탕에 의해 그 문제들을 해결해 나갔는지 보다 직접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점령 운동' 당시 거주하고 있던 '주코타 공원'에서 시위에는 참가하지 않는 뉴욕의 노숙인들이 무료로 지급되는 음식과 잠자리 때문에 자꾸만 노숙하게 되어 시위 참가자들 사이에서 불만이 제기된 적이 있었다. 단순히 그들이 시위에 참가하지도 않으면서 무임승차만 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 노숙자들로 인해 운동의 순수성이 훼손되고 노숙자들의 범람으로 언론들에 의해 '무법천지'로 왜곡 보도 됨으로써 장차 진압을 위한 구실을 주게 되리라는 염려 때문이었다. 풍경의 섹션이 이렇게 제기된 문제를 드러내면 바로 그 뒤 이론 섹션에서 이 문제를 바람직하게 풀어나갈 방향을 이렇게 제시한다.
점령 운동이 성장해가는 가운데 우리는 점령 운동에서 노숙인의 자리라는 문제를 단기적으로 또 장기적으로 고민하고 있다. 우리를 하나로 묶는 체제적 연결과 역사적 연결을 기억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자본주의의 역사는 한편으로 체제적 배제와 사화적 배제, 경제적 배제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모두는 상대적 잉여 인구의 일부가 될 위험에 처해있는 것이다.
현대 역사에서 추방과 경제적 몰락의 순간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회 전반에 경제 위기가 닥쳤을 때 아주 통렬하게 다가온다. 따라서 "당신은 왜 여기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우리는 반드시 이 배제와 경제 위기의 논리를 살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노숙인 문제와 점령 운동 전반을 실제로 아우르는 대답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이 둘은 모두 경제적 주변화와 경제 위기 그리고 추방에 의해 생겨난 것이다. (...) 지난 40년 동안 노숙자 인구는 꾸준히 늘어났다. 이러한 문제는 이제 인종 집단을 가리지 않고 나타난다. 우리는 이러한 사태의 밑바닥에 깔린 공통의 논리를 이해해야만 한다. 1970년대 초반에도 최상위 1퍼센트가 빠르게 득세하자 미국의 거리에 노숙자가 늘어났다. 역사적으로 똑같은 상황이 지금 다시 벌어지고 있는 것은 단순한 우연히 아니다. "우리가 왜 여기에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려면 우리의 공통된 곤경을 심각하게 따져보아야만 한다. (...) 마침내 우리는 이 불확실함과 불안과 배제가 함께 합류하는 지점에 함께 도착했다. 이 공통적 곤경은 반드시 배제가 아닌 '포함'의 새로운 정치를 세우는 작업을 위한 연대의 원천이 되어야만 한다.
- '홈리스의 문제 -당신은 왜 여기 있는가?' 크리스토퍼 헤링과 졸탄 클루크의 글 중에서 -
이렇게 '점령하라'는 운동의 과정에 생겨났던 문제를 가감없이 드러내어 그 문제들이 운동에 있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바람직하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고려하고 원칙을 삼아 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글들을 함께 붙여둔다. 그 이유는 여기에 있는 문제들이 사실 '점령 운동'에서만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사실 모든 운동들이 그 규모가 커지고 영향력이 증대되면 반드시 가지게 될 보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 가장 비근한 예는 얼마전 '나꼼수'로 일어났던 비키니 논쟁이 될 것이다. 이 책 '점령하라'가 이런 식의 편제를 취한 것은 이러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문제에 대해 '누가 옳은가 그른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모든 문제는 저마다의 사유를 촉발하는 계기들이며 모두가 열린 마음으로서 그 계기가 촉발한 저마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더 나은 진화를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 그것이 정말로 더 중요한 문제임을 알리기 위함이다.
월가 점령 운동에도 앞서 얘기한 노숙자 문제를 비롯 숱한 차별과 배제의 문제가 있었다. 타악기라는 것으로 운동의 정체성을 삼았던 드림 써클은 그 소리 때문에 사람들의 회의 순간을 방해하여 원성을 샀다가 지역적으로 분리되기도 했다. 점령 운동의 규모가 커지자 더이상 공개 총회로는 사안의 처리가 힘들어지자 '비대위'를 추진하려 했을 때는 한 이슬람 여성으로 부터 비대위가 모두 백인들로만 구성되어 있는 것은 아니냐고 비난을 듣기도 했다. 사실 모든 운동은 그렇게 결국 근본적으로는 차별과 배제의 문제를 배태하게 된다. 잠재되어 있던 갈등이 수면으로 드러나는 경우도 있고 운동의 영향력이 커지자 서로 그 선봉을 잡고 스포트라이트를 받겠다며 공격을 위한 선가르기가 횡행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나꼼수'의 비키니 논쟁 때 경향신문이 3일 연속 1면에 실었던 것이 이것에 대한 하나의 방증이기도 하다. 결국 이럴 때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운동의 성패를 좌우한다고도 말할 수 있다. '점령하라'는 이러한 때 '점령 운동'은 어떻게 풀어나갔는지를 그 때 그 때 그 뒤 '이론 섹션'에서 보여주는 것인데 그럴 때 그들이 언제나 기억했던 것은 '왜 우리가 이 자리에 있는가?'하는 운동을 일으켰던 본연의 동기들이었다.
지배체제는 동일한 하나를 둘로 나눈다. 데카르트의 정신과 육체의 분리가 대표적인 예다. 똑같은 분열이 공개 총회와 드럼 서클 사이에서도 재생산되고 있었다. 드럼 서클은 '소수 민족'이고 공개 총회는 '백인'이었다. 드럼 서클은 '남성'이고 공개 총회는 '여성'이었다. 지금에 와서 여러 인종과 남성과 여성의 구체적 현실이 꼭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내 말은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공개 총회와 드럼 서클도 이 본질을 충실히 반영했다. 이러한 양극 분리야 말로 점령 운동이 깨부수려던 것인데 말이다.
- 드럼 서클에 관한 고찰, 마크 그리프 -
아마도 우리는 여기서 우리의 우선 순위를 정확히 전달할 필요가 있을 겁니다. 우리는 높은 생활 수준을 원하는 게 아니라 더 나은 생활 수준을 바라는 겁니다. 우리를 공산주의자라고 부를 수 있는 단 하나의 맥락이 있다면 우리가 모두의 것(the commons)을 생각한다는 겁니다. 자연의 공유, 지식의 공유. 아, 물론 지적재산권은 있어야죠. 유전공학의 공유 이것을 위해서 그리고 오직 이것만을 위해 우리는 싸워야 합니다.
- 슬라보예 지젝 -
만약에 희망이 불가능한 것이라면 우리는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겁니다. 불경기에 수익을 얻은 자들에게 부를 재분배하고 탐욕을 멈추라고 하는 것이 불가능한 요구라며 그렇습니다. 우리는 불가능한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여기 우리에게 중재할 어떤 주장도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단지 경제적 정의와 사회적 평등만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공공의 장소에 함께 모여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 거리와 광장에서 육체를 지닌 인간으로서 연합하여 하나로 뭉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만들며 하나로 여기 서 있습니다. '우리가 국민'임을 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 2011년 10월 23일 주코타 공원 발언, 주디스 버틀러 -
그렇게 이 책 '점령하라'는 단순한 운동의 현장이나 과정이 어땠는지 알려주는 정보 차원만의 책은 아니다. 이 책은 차라리 하나의 '교본'이다. 어쩌면 월가 점령 운동에서 촉발되어 장차 일어날지 모르는 반자본주의 운동(그 뿐만 아니라 모든 현 체제 저항 운동까지)들이 월가 점령 운동에서 직면했던 문제들로 좌초되지 않고 성공적으로 해결하여 꾸준한 지속과 성장을 위해 참조가능한 사유의 계기들을 던져주는...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해설을 썼던 우석훈이 이 책에 대해서 했던 말 "변화의 기로에 서 있는 2012년 대한민국이 열독해야 할 단 한권의 책"이라는 말에 무조건적 지지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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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갑자기 월가를 점령하게 되는 점령운동은 2011년 9월 잡지 <애드버스터>에 실린 광고에서부터 출발된다. " 9월 17일에 월가 금융자본의 부패와 탐욕에 항의하는 평화 점거를 벌이자" 라는 광고가 실리게 된다. 큰 반응을 예상하지는 않았지만, 그날 월가 주코티공원에 150명 정도의 군중들이 모이게 된다. 이렇게 시작된 월가의 반대의미의 점령운동은 다양한 형태로 점령운동이 번져 나가면서 현재 82개국 150 여 도시에서 진행되고 있다. 점령운동이 내세우는 구호는 "우리는 99퍼센트다" 이다.
월가에서 시작된 점령운동. 내가 TV를 통해서 점령운동에 관한 보도를 접하게 되었을 때는 생활에 곤란을 느끼는 사람들의 단순한 시위겠거니 하는 생각을 하였다. 피켓을 들고 조용히 공원을 도는 사람들의 모습이 취직을 못했거나, 생계의 곤란을 느끼는 빈민층의 평화적 시위로 다가왔던 것이다. 물론, 월가를 중심으로 이런 시위를 하게 된 것이 월가를 비롯한 금융 자본들에 대한 정부의 특혜 등이 시위의 초점이라는 것은 알게 되었지만. 점령운동이 일어나기 3개월 전에 가본 월가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세계 금융의 중심인 월가. 그곳은 여행자로 넘쳐 흘렀다. 뉴욕 증권거래소 건물에 나부끼는 성조기, 그리고 월가의 상징인 황소 동상에는 여행자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서 북적거렸었다. 세계 만방에 미국의 경제력을 자랑하는 것처럼 보였던 그곳이 점령운동의 출발점이 되었던 것이다. 선택된 1퍼센트의 부자들과 그들의 손에 놀아 나는 권력층을 향하여... 잠깐, 1 퍼센트의 불공평한 성장율을 들여다 보면 1979년 최상위 1 %의 몫은 바닥 20 % 전체가 가진 몫과 같은 양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2007년에는 최상위 1%가 가진 몫이 하위 40% 가 가진 몫과 같은 양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아마도, 지금은 최상위 1%의 몫이 더 증가했을 것이다. 미국 2008년 금융 위기에서의 구제금융은 그 누구의 세금으로 들어가게 되었던 것일까? "우리는 99 퍼센트다"라는 구호가 가슴이 와닿을 것이다. 이런 불합리한 경제 구조에 사람들은 조용히 그들의 생각을 나타내게 된 것이 점령운동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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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령하라>는 월가 점령운동 현장에서 나온 첫 번째 책이고, 점령운동은 아직 끝나지 않고, 지구촌 여기 저기에서 오늘도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처음 접할 때는 점령운동에 관한 총괄적인 내용이 담겨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들의 요구조건, 그것에 대한 상세한 내용들이 담겨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런 내용보다는 점령시위의 전개과정, 점령 현장에서 행해진 연설문 몇 편, 날짜별로 기록된 점령시위의 현장 스케치, 그리고 점령운동에 참가했던 사람들이 점령운동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다양한 관점과 생각들이 담겨 있는 것이다. "점령운동은 무엇에 관한 것인가? 우리 대부분은 대화를 여는 공간을 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다. (...) 직접적 참여가 가능한 진짜 민주주의를 말한다. " (p. 27)
월가의 점령운동에서 흥미로운 것은 '인간 확성기'이다. 미국은 시위현장에서 허가받지 않은 확성기는 사용이 금지된다. 그래서 시위현장에서 연설을 하는 발표자는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문장을 한 문장씩 끊어서 말을 하게 된다. 그러면 그것을 들은 모든 사람이 그 문장을 앵무새처럼 똑같이 따라한다. 그러면 그 문장을 들은 또 다른 사람들이 더 먼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똑같이 따라한다. 대규모 집회일 경우에는 서너 차례를 거쳐야 발표자의 연설이 도달되게 되는 것이다.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서 발표자의 연설은 멀리 멀리 퍼져나가는 것이다. 월가에 있는 점령시위대의 존재 자체가 경제정의 실현, 부자증세, 기업자금의 정치권 유입금지 등을 말하는 것이다. 점령운동에서는 텀블러 블로그를 운영하는데, 그 제목이 바로 "우리는 99 퍼센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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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에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종이에 적어 들고 있는 사진들이 게제된다. 다양한 사연들....
![]() 또 어떤 사람은 시위 도중 경찰에 체포될 경우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미국 전국 법률인 조합의 전화번호를 몸에 새겨 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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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99 퍼센트" 라는 것은 1% 부자와 나머지 우리들 사이의 차이를 강조하는 구호로 자본주의가 근본적으로 불공평함에 의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통계를 정치 이슈화한 것이다. 그렇다고 점령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사회주의자들로 생각할 것인가? 물론, 그들은 사회주의자들은 아니다. 월가 점령을 오로지 비도덕성을 성토하는 시위로만 볼 것인가? 물론, 그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그런 문제들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않는다. 시위 참여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들의 시위행동은 조직적이지도 않고, 일관성이 없기도 하고, 뚜렷한 계획이나 전략이 없기도 하다. 그것이 점령운동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런데, 시위 풍경을 스케치한 글들을 읽어보면, 뉴욕 시장의 대처방법이나, 뉴욕 경찰의 과잉진압이 비인간적이기도 하다. 루머인지 사실인지 모르지만, 점령운동의 시위현장에 노숙자나 마약 중독자 들의 투입설, 그리고 시위현장에서 일어나는 성추행 사건들... 이 책은 짧은 글들의 모음이기도 하다. 다양한 직업과 계층의 사람들의 글 34편이 모여서 한 권의 책이 되었다.
![]()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사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사회의 1퍼센트를 생각하게 된다. 과연 그들은 얼마나 도덕적으로 부를 축적했는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세계적 명품 매장을 들여오기 위해서 재벌가의 딸들은 혈안이 되어서 싸우기도 하고, 동네 작은 가게들의 매상을 갉아 먹기도 하고, 문어발식 경영으로 중소기업들의 품목을 빼앗아가기도 하고, 상속문제로 낯부끄러운 행동을 하기도 하고...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제어되지 않은 자본주의의 폐해와 금융의 지나친 권력화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월가의 시위의 소수의 군중의 외침이 아닌, 전세계적으로 많은 나라들에서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들을 제시해 주는 시작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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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인간 확성기가 되어 우리사회 99 퍼센트의 생각을 한 마디씩, 한 마디씩 우리 사회 1퍼센트에게 전달해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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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전 세계를 뒤흔든 사건 중 하나가 바로 월가 점령 운동이다. 그들의 운동을 대변하는 단어가 바로 ‘점령하라(occupy)'다. 전후 사정을 모르는 상태에서 이 단어를 들으면 먼저 전쟁을 떠올릴 것이다. 총칼이 오가고 군인들이 등장하는 그런 전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 운동도 전쟁이 맞다. 월가 점령 운동이 1%에 대항하기 위한 99%의 운동이자 투쟁이기 때문이다. 비록 이들이 보여주는 운동이 평화적이고 비폭력적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 운동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이 바로 부제인 세계를 뒤흔든 용기의 외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