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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적인 여성과 양성의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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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는 여성과 픽션에 관해서 강의를 부탁받고 그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울프는 우선 여성이 픽션을 쓰고자 한다면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1장에서 울프의 의식의 흐름의 기법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여학교를 위한 기부금을 모으는 일을 의논하면서 돈이 있었다면 여자들의 삶이 어떠했을 것인지 상상한다. 그러나 여자들이 돈을 번다는 것은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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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프는 여성과 픽션에 관해서 강의를 부탁받고 그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울프는 우선 여성이 픽션을 쓰고자 한다면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1장에서 울프의 의식의 흐름의 기법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여학교를 위한 기부금을 모으는 일을 의논하면서 돈이 있었다면 여자들의 삶이 어떠했을 것인지 상상한다. 그러나 여자들이 돈을 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으며 그것이 가능했더라도 자신이 번 돈을 자신이 소유할 권리가 법률로 보장이 되어있지 않으니 아무 소용도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울프는 당시 남자들만의 몫이었던 것들을 상상하고 우리의 어머니들은 왜 우리들에게 남겨줄 돈이 없었는지, 가난이라는 것이, 부유하다는 것이, 우리의 마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을 고민한다. 그리고 한쪽 성의 안녕과 번영, 다른 쪽 성의 가난과 불안정에 대해, 전통 혹은 전통의 결핍이 작가의 마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울프는 전체적인 글에서 화자가 자꾸 바뀌는 글쓰기를 하고 있다. 화자는 당연히 울프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읽고 있었으나 어느 순간 화자는 메리 시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또 어느 순간에 화자가 메리 버튼으로 바뀌어 있는 식이다. 여성은 모든 세기 동안 남성의 모습을 원래 크기보다 두 배로 확대 반사시켜주는 마술적이고도 입맛에 맞는 능력을 소유한 거울로써 이바지해왔으며 남자들이 여자들을 열등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여성들이 열등하지 않다면 자신들이 더 이상 확대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전에 여성들이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기록이 없으므로 울프는 세익스피어에게 주디스라는 재능있는 누이동생이 있었다고 가정하고 그녀가 어떻게 살았을 지를 상상한다. 주디스는 비범한 재능을 가졌으나 그녀는 학교에도 가지 못하고 몇 페이지 글을 쓰고는 아무도 모르게 태워버리곤 하다가 원하지 않는 결혼을 강요받고 몰래 집을 나온다. 그러나 그녀는 원하는 일을 할 수 없었고 결국은 자살을 하고 만다는 내용이다. 더구나 세익스피어와 같은 천재란 고생하고 교육받지 못하고 노예같이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태어날 수 없으므로 여자가 세익스피어와 같은 재능을 가질 수도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인다. 19세기 초에 이르러서야 많은 여성들의 작품들이 생겼는데 여기서 울프는 그녀들의 작품들이 아주 소수를 제외하고는 왜 모두 소설이었을까 하는 의문을 갖는다. 울프는 조지 엘리어트, 에밀리 브론테, 샤로트 브론테, 제인 오스틴을 비교하면서 그녀들은 모두 아이가 없었으며 중산층에서 태어나 하나의 거실만을 두고 살았다는 공통점을 찾아내고 이런 공통점들이 그녀들이 소설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된다고 설명한다. 그녀들은 모두 자신만의 시간을 반시간도 가질 수 없었고 늘 방해를 받을 수밖에 없는 거실에서 글을 써야했으므로 시나 희곡을 쓰기보다는 집중력이 덜 요구되는 산문이나 소설을 쓰는 것이 더 쉬웠으리라는 것이다. 여성이 글을 쓰면서 겪게 된 주요한 어려움 중의 하나는 여성 작가들의 배후에는 어떠한 전통도 없었다는 것이며 있었다 해도 너무나 짧고 부분적이어서 거의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울프는 두 성이 서로 협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남성과 여성의 결합이야말로 가장 큰 만족과 행복을 향하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울프가 말하는 양성적 존재란 우리의 각자 안에 하나는 남성이고 하나는 여성인 두 가지의 세력을 다 가진 존재를 말한다. 순수하게 남성적이거나 순전히 여성적인 마음은 창조를 할 수가 없으며 이 두 기능이 융합을 이루어야만 한다고 설명한다. 대부분의 남성작가들은 자신의 남성적인 면만을 가지고 글을 쓰기 때문에 그런 작품을 통해 여성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울프가 전적으로 남성만을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비난을 하고 싶다면 이 모든 것에 대한 책임이 어느 한 성에 있지는 않다는 그녀의 말이 이를 입증한다. 울프는 누가 되었든 글쓰는 사람이 자신의 성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은 치명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남성적 여성 또는 여성적 남성이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창조의 행위가 완성될 수 있기 전에, 마음에서 여성성과 남성성 간의 합작이 일어나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울프는 여성들끼리의 연대의식을 강조하면서 여성은 개인으로서 살아가는 따로따로의 작은 삶들이 아니라 진정한 삶이 되는 공동의 삶이라고 말한다. 울프는 케이트 밀레트 보다는 훨씬 구체적인 태도를 보인다. 울프는 여성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고정적인 수입과 자기만의 방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구체적인 조건들을 제시한다. 케이트 밀레트가 여성을 억압당하고 피해만 받는 존재로만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울프는 양성적인 존재라는 개념으로 양성간의 융합을 중요시한다. 울프는 단순히 여성이 처한 불합리한 상황에 대한 고찰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문학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인다. 울프는 여성들이 초기에는 소설만을 쓸 수밖에 없었으나 점차 시와 희곡, 비평 등에까지 확대되었다고 한다. 집중력의 차이로 구분하는 소설과 시에 대한 울프의 태도가 쉽게 납득이 되지는 않는다. 집중력이라는 이유 외에는 왜 초기의 여성들의 상황과 소설이 맞닿아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지 않나 싶다. 그리고 울프가 제시하는 경제적인 힘은 여성이 글을 쓰는 데에 뿐만 아니라 여성이 자존감을 가지고 사는 데에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그러나 울프가 이 글을 쓸 당시로부터 지금까지 많은 세월이 흘렀으나 자신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고정적인 수입을 누리고 있는 여성이 얼마나 많은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좀 회의스럽다. 울프에게 있어서 문학이란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표현수단이기도 하고 순수하게 예술작품을 만들어내는 일이기도 하다. 울프 역시 문학작품들을 볼 때, 내용에서 읽을 수 있는 남녀간의 관계에 일차적으로 주목한다. 하지만 케이트 밀레트가 그랬던 것처럼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울프는 작품의 감수성이나 캐릭터, 구성 등에도 골고루 관심을 두고 텍스트를 읽고 있다.

[인상깊은구절]
훌륭한 저녁 식사는 훌륭한 대화에 매우 중요하지요. 저녁 식사를 잘 하지 않으면 생각도 사랑도 잘 할 수 없으며 잠도 잘 잘 수 없습니다. 척추 속의 램프는 쇠고기와 말린 자두로 불을 밝힐 수 없습니다. --- p. 37 여성은 이 모든 세기 동안 남성의 모습을 원래 크기보다 두 배로 확대 반사시켜주는, 마술적이고도 입맛에 맞는 능력을 소유한 거울로서 이바지해왔지요. --- p. 66 그 시절의 쓰라림을 기억해 보면 고정된 수입이 가져오는 엄청난 기질의 변화는 실로 괄목할 만한 것이라고 말입니다. … 음식과 집과 옷은 이제 영원히 내 것이지요. 따라서 단지 노고와 노동뿐만 아니라 증오와 신랄함도 그치게 됩니다. 나는 어떤 남자도 미워하지 않습니다. 그가 나를 해칠 수 없으니까요. 나는 어떤 남자에게도 아첨을 떨 필요가 없습니다. 그가 나에게 줄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그래서 나 자신이 인류의 절반에 대해 새로운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것을 미세하게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 p. 70 독서와 비평은 그녀에게 더 넓은 시야와 더 섬세한 예민함을 부여했을테니까요. 자서전에 대한 충동도 다 소비되어 없어졌는지도 모르지요. 그녀는 자기
b*****e 2000.09.30. 신고 공감 3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최소한의 것만큼은.
"최소한의 것만큼은." 내용보기
페미니스트의 필독서라는 말에 홀려서, 여성주의 마을 언니네 사이트에서 회원에게 주는 글쓰는 공간 이름이 왜 '자기만의 방'인지 궁금해서 덥썩 사들인 이 책.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기 까지는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몇 번이고 읽으려 했지만 도통 진도가 나가지 않았던 탓이다. 다 읽은 지금에서야 이유를 알았다. 내가 읽어온 책들(문학이 아닌)은 저자가 생각을 한 후 그것
"최소한의 것만큼은." 내용보기
페미니스트의 필독서라는 말에 홀려서, 여성주의 마을 언니네 사이트에서 회원에게 주는 글쓰는 공간 이름이 왜 '자기만의 방'인지 궁금해서 덥썩 사들인 이 책.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기 까지는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몇 번이고 읽으려 했지만 도통 진도가 나가지 않았던 탓이다. 다 읽은 지금에서야 이유를 알았다. 내가 읽어온 책들(문학이 아닌)은 저자가 생각을 한 후 그것이 모두 정리되어 결론을 내린 후 그것을 차분히 정리해놓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다르다. 저자가 주제를 접한 후, 그에 대한 생각을 풀어가는 과정을 여과 없이 약간의 픽션을 가미해 서술해가고 있는 것이다. 난 이런 방식의 차이에 적응하지 못했고, 그래서 이제야 이 책을 다 읽게 된 것이다. 여성이 픽션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는 저자의 중심 주장. 여성이 재산권을 얻은 건 20세기 초의 일. 씨받이나 부엌데기나 보모가 아니라 하나의 인격체로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려는 노력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 아닐까.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하다는 식의 남성들의 생각을 보여주는 많은 글들.... 그런 틈바구니에서 산 여성들을 생각하니 깝깝하다. 하긴, 지금이라고 뭐 다를까. 소위 위인이라 하는 사람 중에 여성이 극히 드문건 여성 탓이 아니라 기본 조건이 양성에게 다르게 적용된 탓이었음을 왜 모를까.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울프는 생각을 정리하며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던진다. 양성성을 모두 가져야 한다고. 그런데 문득 든 의문. 울프는 한 성의 정체성에 갇힌 글은 결국 의미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성과 관련한 문제에 대한 글을 쓸 때는 한 성의 정체성을 띄게 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양비양시도 아니고.... 어렵군. 마지막에 울프가 하는 말들. 젊은 여성들에게 수치스러울 정도로 무식하다고 지적한다. 이제 더이상 '기회와 훈련과 격려와 여가와 돈이 부족하다고 하는 변명은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일침을 가한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떤 영향력을 가질 것인지 제시하기 위해서 수천개의 펜이 준비되어 있다'고 말한다. 아직까지는 열악한 상황인데 그런 말은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독한년이 되려면 그런 말쯤 마음에 단단히 새기는 게 좋을 듯.

[인상깊은구절]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떤 영향력을 가질 것인지 제시하기 위해서 수천개의 펜이 준비되어 있다'
y********1 2004.01.19.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떠돌이별 지구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
"떠돌이별 지구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 내용보기
책을 읽는 동안 버지니아 울프가 양쪽 호주머니에 돌을 채워넣고 우즈 강에 투신자살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함께 했다. 이미 오래전에 이 작품에 대한 이야기들을 귀동냥으로 얻어 들은 탓이었을까? 내용에 대해 어느정도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막상 책을 마주하고 읽기까지 긴 시간이 걸렀다. 떠돌이별 지구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더군다나 "그 누구에게도, 어디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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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동안 버지니아 울프가 양쪽 호주머니에 돌을 채워넣고 우즈 강에 투신자살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함께 했다. 이미 오래전에 이 작품에 대한 이야기들을 귀동냥으로 얻어 들은 탓이었을까? 내용에 대해 어느정도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막상 책을 마주하고 읽기까지 긴 시간이 걸렀다. 떠돌이별 지구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더군다나 "그 누구에게도, 어디에도 부속되지 않은 독립된 존재로 살아간다는 것"은 호주머니에 잔뜩 돌을 넣고 강물에 투신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일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버지니아 울프가 존경해 마지 않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인 제인 오스틴도 자기만의 방이 아닌 공용 거실에 쭈그리고 앉아서 소설을 써야했음은 물론 울프가 여성이 오롯이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경제적인 조건으로 제시한 500파운드의 돈을 소유하지도 못했다고 한다. 하물며 노동자계급의 여성들의 "종속적"인 삶이야 말해 무엇하리? 아주아주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서양이든 동양이든.... 여성의 "경제사정"은 별반 나아진 것 같지 않다. 나는 매일 매일 생각한다. 여행을 하고, 빈둥거리기도 하고, 상념의 낚시줄을 강물에 깊이 드리울 수 있기에 충분한 돈을 어디서 어떻게 벌 수 있을까? 일년의 반을 힘들게 일해서 단 한달이라도 그리 살 수 있다면 그 수고로움을 어찌 마다하겠는가? 그러나!! 울프의 책을 덮으며 더욱 답답해지는 것은 평생동안 그 수고로움을 다 하고도 "한달"이라는 시간을 오롯이 나 자신만을 위해 가질 수 있는 여성들이 얼마나 될까? 하는 의문에서이다. 그러나, 울프가 책 말미에서 지적하듯 이런저런 방법으로 일년에 오백파운드를 벌어들일 능력이 있는 여성이 이 순간에 있다면 기회와 훈련과 격려와 여가와 돈이 부족하다는 변명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는지 모른다. 그리고, 영국의 극작가 "애프러 밴(글쓰기를 생업으로 삼은 영국 최초의 여성)"같이 이제까지 없었던 길을 만들어 가는 여성들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럼에도 답답한 속내가 시원해지지 않는 것은 "세상과 맞설" 용기가 부족해서일까?

[인상깊은구절]
나는 여러분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행을 하고 빈둥거리기도 하고, 세계의 미래와 과거를 사색하고 책을 보고 몽상에 잠기며 길모퉁이를 어슬렁거리고 상념의 낚시줄을 강물에 깊이 드리울 수 있기에 충분한 돈을 스스로 소유하게 되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h*****y 2001.10.1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