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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비평가들이 쓴 문학에세이들 대부분이 그들이 가진 편협한 이론적 시야에 갇혀 일방적인 해석의 늪 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채, 잘못된 방식으로 해석하고 왜곡시키는 경우가 많은 반면, 작가들이 쓰는 에세이는 적어도 작품이나 작가를 진실된 눈으로 바라보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 때로 더 뛰어난다. 버지니아 울프의 이 산문집 또한 그러하다. 19세기, 20세기 영국 문학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어도 그녀의 문장은 독자를 배려하며 독자의 눈길 앞에 순결한 그 하얀 살결을 드러내며 초봄의 햇살 같은 미소를 지어 보인다. 고도로 문명화된 사회에서는 위장(僞裝)이 너무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공손함이 너무나 필수적이기 때문에 전통과 의식을 던져 버리고 마음에 맞는 한두 사람과 ‘가벼운 말’로 대화하는 것은 더운 방의 한 줄기 공기처럼 필수적이다. - 25쪽 수 차례의 정신병 경력이 있고 빈번한 자살 시도, 그리고 끝내 자신의 생을 자살로 끝냈다는 점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녀의 글은 감미롭고 때로 냉정하며 격정적이면서 타인에 대한 배려를 버리지 않는다. 아니면 그녀 스스로 이러한 에세이에 큰 무게를 두지 않았기 때문일까.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오래 전에 읽었던 그녀의 소설을 꺼내보아야겠다. 세월. 버지니아 울프. 열린 창으로 봄 바람이 들어와 반대편 베란다 창으로 나간다. 그렇게 봄은 지나가고 아직도 영국의 우즈 강은 이승에서의 버지니아 울프의 마지막 표정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
| 이 선집에는 부제가 알려주듯이 편역자가 책에 통일성을 부여하기 위하여 울프의 방대한 양의 에세이 가운데서 문학과 예술에 관한 것들 중 15편이 엄선되어 있다. 이 선별 작업이 편역자에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점은 가히 짐작이 간다. 하지만 편역자는 나름대로 원칙을 세우고 작업에 임해서 방대한 울프 에세이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첫째, 선별 범위는 16세기 영국 작가로부터 시작해서 빅토리아 시대와 모더니즘을 거쳐 1930, 40년대 시인들까지 망라하고 있다. 따라서 독자는 이들 글에서 영문학에 대한 울프의 해박한 지식과 취향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울프가 고전을 읽고 그 작품에 관해서 쓴 평론인 「3세기 이후의 존 단」과 「선녀 여왕」과 같은 예지에 넘치는 글도 만나게 된다. 둘째, 주제면에서는 문학 예술론과 페미니즘에 관한 글들이 실려 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자연스럽게 이들 에세이에서 여성 작가로서의 글쓰기 문제와 예술에 관한 그녀의 지론을 접하게 된다. 울프는 글쓰기야말로 여성이 가부장사회가 여성을 가두기 위해 마련한 감옥의 쇠창살을 뚫고 해방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었다. “마리 왕비는 글을 쓸 수 있다. 그러므로 그 다음 순간 쇠창살이 달린 문이 열린다” (「왕족」중에서). 또한 여기서 우리는 그 유명한 「현대 소설」과 「베네트 씨와 브라운 부인」과 같은 글도 만나게 된다. 문학작품이나 문학사에 관한 울프의 에세이 중 「기울어 가는 탑」은 정치와 예술의 역학관계, 작가와 역사적, 문화적 상황과의 상관관계를 가장 전문적이고도 예리하게 분석한 글이다. 이 글에서 울프는 다음과 같이 문학의 위대성을 찬미한다. “문학은 그 어느 누구의 사유지가 아닌 공동의 장이다. 그것은 여러 나라로 쪼개져 있지도 않다. 거기에는 전쟁도 없다. 그러니 자유롭게 겁없이 침범해 들어가 우리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자”(「기울어 가는 탑」 중에서). 또 한가지 반드시 이 선집에 관하여 언급해야 할 사항은 각주이다. 일반독자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사항에 대해서는 편역자가 친절하게 그리고 상세하게 주를 달아 놓았다. 따라서 영문학에 관한 지식이 전혀 없는 독자도 이 각주의 도움으로 조금도 어려움 없이 이 책을 읽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 울프의 에세이 가운데 「책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라는 글에서 작가는 독서의 즐거움이란 대단히 은밀하게 개인적으로 느끼는 것이라는 말과, 글 읽는 즐거움은 가히 천상의 지복에 견줄 수 있는 것이라는 말을 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