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돛ㆍ덫ㆍ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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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돛 - 지중해로 떠나는 여행 지중해로 떠나는 쟝 그르니에의 여행은 북아프리카의 알제리에서 시작된다. 오랑의 싼타 크루즈 언덕에 가득 쏟아지는 빛은 명상의 돛을 둥글게 부풀린다. 부풀어 오르는 그 둥근 빛의 취기 속에서 행복은 저절로 익어가고, 그 열매를 따먹기 위해서 우리는 단지 손을 내밀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시(詩)와 쾌락은 결국 하나의 길에서 만나는 것이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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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돛 - 지중해로 떠나는 여행 지중해로 떠나는 쟝 그르니에의 여행은 북아프리카의 알제리에서 시작된다. 오랑의 싼타 크루즈 언덕에 가득 쏟아지는 빛은 명상의 돛을 둥글게 부풀린다. 부풀어 오르는 그 둥근 빛의 취기 속에서 행복은 저절로 익어가고, 그 열매를 따먹기 위해서 우리는 단지 손을 내밀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시(詩)와 쾌락은 결국 하나의 길에서 만나는 것이다. 그 길은 사막으로 향한다. 사막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인 동시에 오아시스를 감추고 있는 매혹이기도 하다. 사막의 광막함 속에서 나와 세계는 더 이상 구별되지 않는다. 메디나의 밤은 이 단일성으로 빛난다. 밤의 어둠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빛을 발견한다. 그 빛은 사물들과 세계를 뚜렷이 선을 긋고 갈라놓는 대낮의 햇빛이 더 이상 아니다. 그 빛은 우리의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흘러나와 우리 앞에 있는 사물들과 세계를 비춘다. 그 순간, 우리가 죽을 힘을 다해 찾고 있던 그 무엇인가가 모습을 드러낸다. 그 빛 속에서 우리는 비어 있는 꽃병에서 풍기는 향기를 맡고, 깊은 우물에 던진 돌이 만드는 메아리를 들으며, 연극이 끝난 후 어둡고 적막한 무대에 아직도 남아있는 몇 마디 대사를 생생하게 듣는다. 그 때 우리는 행복에 완전히 압도되어 있다. 쟝 그르니에는 이것을 삶의 충만함, 또는 절대의 감정이라고 부른다. 2. 덫 - 비문(碑文)을 읽다 쟝 그르니에는 홀로 여행한다. 이탈리아로, 프로방스로, 그리고 그리스로 계속되는 그의 지중해 여행은 고독하다. 그러나 그는 외롭지 않다. 로마의 부서진 신전의 우아한 회랑 사이에서, 프로방스의 팔로 두른 듯이 바다를 안고 있는 만(灣)의 풍경 앞에서, 아테네의 눈부신 영광의 빛을 거느린 석상과 돌기둥 앞에서 그는 알 수 없는 어떤 대화에 끼어드는 것이다. 은밀하면서도 또 우아한 회랑과 신전과 바다와 하늘과 제신(諸神)과의 대화에. 우리는 살아있는 것들과 함께 있을 때 오히려 훨씬 더 많은 외로움을 느끼는 법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언제나 하나의 증인이 필요하다. 우리의 속내 이야기와 고백을 들어줄 친구가 필요하다. 쟝 그르니에는 죽어서야 비로소 자기 몫의 땅을 마련한, 묘지에 묻힌 자들을 증인으로 불러 세운다. 삶을 증거하기 위하여 죽음을 불러 세우다니! 그는 천천히 묘지를 산책하며 비문(碑文)을 읽는다. 거기 몇 줄로 요약된 한 사람의 삶이 있다. 덧없고 허망한 한 생애가 거기 누워 있다. 우리는 길을 가다가 꽃을 꺾는다. 그리고 잠시 후에 그 꽃을 바라본다. 그 꽃은 이미 시들었고, 썩었다. 묘지에 누운 인간의 삶 또한 그러하다. 그래서 죽음은 인간이 피할 수 없는 덫이 된다. 그 덫에 발목이 잡히는 순간, 아니 삶은 항상 그 덫에 한 발을 집어넣고 살아가는 것이라는 진실을 깨닫는 순간, 행복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나의 행복은 다만 묵주를 만들 수조차 없는 낱알들에 불과할 뿐이다. 나는 모든 것을 소유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 한 순간이 지나면 내게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쟝 그르니에가 보여주는 것은 이 무서운 진실이다. 3. 닻 - 영원과 절대에 이르기 위하여 행복의 뿌리에 도사린 죽음을 목격한 쟝 그르니에의 여행이 영원과 절대에의 탐구로 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그는 인간은 시간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존재이지만 창조 작업을 통하여 영원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한다. 시인은 순간에 의해 영원에 다다른다. 창조의 순간에는, 인간을 감싸고 있는 숙명적인 유한성(有限性)은 마치 애벌레가 탈피하듯이 벗겨진다. 이 변신의 꿈이 우리를 영원을 향해 날아갈 수 있게 만든다. <위대한 사람에게="" 너무="" 작은="" 것은="" 전혀="" 없다="">라는 나폴레옹의 말은 <창조하는 인간에게……="">로 수정되어야 마땅하다. 창조 작업을 통해 변형될 수 있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소홀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술가는 하찮은 것에 대해 집착하는 사람이다. 육체도 정신도 아닌 절대를 획득하는 일 또한 쉽지 않다. 그에 의하면 절대는 대자연과 정신(신에 대한 성찰)이라는 두 가지 기원을 가지고 있다. 대자연이 보여주는 풍경 앞에서 우리의 정신은 텅 비고, 그 무심의 상태에서 세계의 비어있음은 우리의 영혼을 가득 채운다. 그것은 ‘신(神)적인 것’이다. 반면에 정신은 무심을 거부한다. 정신은 사물들마다 차이를 둔다. 정신은 ‘신적인 것’이 아닌 ‘신(神)’을 추구한다. 그러나 정신은 새롭게 질문을 던지는 시대 앞에서 변화한다. 이전의 모든 개념은 앞서 있던 만큼 거짓말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쟝 그르니에는 항상 ‘신적인 것’을 ‘신’으로 바꾸고 싶어했다고 고백한다. 그는 태생적으로 플라톤의 후예이기 때문이다. 절대가 대자연으로부터 나왔든, 정신으로부터 나왔든 간에, 절대와의 결합은 중개자를 필요로 한다. 그 중개자는 그가 분명하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행동’인 것처럼 보인다. ‘이리하여 지중해는 절대의 숭배와 행동의 숭배를 같은 거리에 두고 있는 하나의 형이상학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그가 닻을 내리고자 하는 영원과 절대는 결코 쉽게 도달할 수 있는 항구는 아니다. 그가 비록 이 책 『지중해의 영감』에서 그 항구에 이르는 길을 우리에게 보여주고는 있지만, 아니 보여주려고 시도하고는 있지만, 어쩌면 그 항로는 항해자에 의해서 매번 새롭게 발견되어야만 하는 그런 항로가 아닐까 싶다. 쟝 그르니에의 『지중해의 영감』은 돛에서 덫으로 다시 덫에서 닻으로 계속되는 정신의 항해를 보여주고 있지만, 그 항해 일지를 온전히 파악하기란 그의 방대한 저작을 모두 읽고 난 후에야 겨우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마음에 와 닿는 하나의 모습, 이것이야말로 지중해의 정신이다. 공간? 그것은 굽은 어깨의 선, 갸름한 얼굴의 윤곽이다. 시간? 그것은 이 해변에서 저 해변으로 달리는 어느 젊은이의 경주이다. 햇빛은 그 특징들을 뚜렷이 드러내고, 수 많은 것들을 나타나게 한다. 모든 것이 인간의 영광과 일치한다. 인간의 영광과 일치하고, 그리고 그 사라짐과도 일치한다. 만일 인간이 어떤 가치를 갖는다면, 그것은 그가 풍경보다 훨씬 더 멀리 있는 죽음을 늘 자신의 배경처럼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죽음이 없다면, 인간은 자기를 깨달을 수 없으리라. 언제나 존재하는, 자신의 최후에 대한 첨예한 직감만이 오로지 욕망에 한계가 있음을 알려 준다. 이 두 개의 힘으로부터 하나의 비극 철학이 태어났다.
c*****t 2002.04.2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지중해, 자주빛 잉크 색깔의 반점……
"지중해, 자주빛 잉크 색깔의 반점……" 내용보기
지중해(地中海, THE MEDITERRANEAN). "누구에게나 행복이라고 미리 운명지워진 곳, 산다는 단순한 즐거움을 뛰어넘어서 황홀함인 것 같기도 한 그런 기쁨을 펼치고 깨닫게 되는 풍경들이 있다."(GRENIER) 한번도 가본적은 없지만, 꼭 한번은 가보고 싶은 곳이며, 그리운 곳. 이곳을 떠나서는 Lenai를 얘기할 수 없는, Lenai의 인식이 시작되고 성숙되어가는 곳. 내가 그르니에를 만난 건
"지중해, 자주빛 잉크 색깔의 반점……" 내용보기
지중해(地中海, THE MEDITERRANEAN). "누구에게나 행복이라고 미리 운명지워진 곳, 산다는 단순한 즐거움을 뛰어넘어서 황홀함인 것 같기도 한 그런 기쁨을 펼치고 깨닫게 되는 풍경들이 있다."(GRENIER) 한번도 가본적은 없지만, 꼭 한번은 가보고 싶은 곳이며, 그리운 곳. 이곳을 떠나서는 Lenai를 얘기할 수 없는, Lenai의 인식이 시작되고 성숙되어가는 곳. 내가 그르니에를 만난 건 90년 여름, 까뮈를 통해서이다. 까뮈는 그를 자신의 스승이자 최고의 친구로 소개했었다. 그르니에는 또한 나에게 앙드레 드 리쇼의 <고통>을 알게 해 준 사람이기도 하다. 1930년 까뮈는 문과반에서 그르니에 교수를 스승으로 갖게 된다. 그는 어느날 까뮈에게 <고통>이라는 책을 주며 읽어보라고 했고, 까뮈는 그 책을 하룻밤 새 모두 읽고 난 뒤 절대로 잊을 수가 없노라고 말했었다. 철학자이며 문필가인 그르니에와 까뮈의 친분은 그 뒤 오래도록 계속되는데, 후에 까뮈는 그르니에의 저서 <섬>의 서문을 쓰고, 그의 저서 <표리>와 <반항인>을 스승 그르니에에게 헌증하기도 한다. 그만큼 그르니에가 까뮈에게 끼친 영향은 크다고 할 수 있는데, 까뮈의 <결혼·여름>에서도 <지중해의 영감>이 언뜻언뜻 보이는 듯도 하다. 그르니에의 글은 참으로 잔잔하다. 그의 책은 오래 전부터 여러 권이 번역되어 나왔는데, 그 중에 이<지중해의 영감>은 특히 나의 홈페이지(“지중해”)와 관련하여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지중해가 강요하는 선과 그 형태로 인해서 지중해는 진리를 행복과는 떨어질 수 없는 것으로 만들어 놓았다. 바로 빛의 취기가 명상의 정신을 더 끌어올리게 할 뿐이다. 이리하여 지중해는 절대의 숭배와 행동의 숭배를 같은 거리에 두고 있는 하나의 형이상학을 불러 일으킨다.”(GRENIER) 이것은 내 홈페이지의 첫 장을 장식하고 있는 문구인데, 지중해라는 말은 그 단어 하나만으로도 나에게 행복과 인식을 가져다 주며, 휴식과 풍요로움을 제공한다. 그리고 물론 지중해에 대한 그러한 느낌의 대부분은 그르니에와 이책으로부터 나왔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다소 의외였던 점은 아직까지 이책에 대한 독자리뷰가 한 개도 없었다는 것인데, 그것은 아마도 책이 출간된 지 10여년이 지나 많은 사람에게 그의 이름이 아득해졌거나, 혹은 지나치리만큼(?) 잘 알려진 책이라 아무도 독자리뷰를 쓸 생각을 안했기 때문이리라. 요즘은 어려운 책을 읽기를 대부분 기피한다고 들었다. 이책은 읽기에 전혀 어려운 책이 아니다. 책도 얇거니와 편안한 마음으로 읽으며 명상에 잠기듯 많은 것을 깨닫게 되는 참으로(!) 좋은 책임을 자신한다. 특히 무더운 여름과 아주 잘 어울리는 책이니, 만약 아직 읽지 않았다면 한 권쯤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보시길…

[인상깊은구절]
아프리카, 그곳은 빛이 넘쳐 흐르고 하루에도 시시각각으로 빛이 변하는 알몸인 채로 유린당하는 땅이다. 이 광막한 사막을 횡단하려면 분명 배고픔이 극도에 달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포기함으로써 얻게 되는 청빈과 단조로움에 빠져들게 되는 시간을 갖는다. 밤은 우리로 하여금 단일성을 깨닫게 한다. 밤은 낮이 뚜렷이 선을 긋고 갈라놓은 존재를 모으고 섞어놓는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그것이 살아 있다는 그 단 하나의 힘만으로도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지나치게 선택에 신중을 기할 필요는 없다. 우리 자신 또한 선택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로지 이것 아니면 저것만을 원해서도 안 된다. 우리는 단 하나의 욕구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YES마니아 : 로얄 l***i 2001.06.23.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지중해 여정을 통한 삶에 대한 성찰
"지중해 여정을 통한 삶에 대한 성찰" 내용보기
[또다시 쟝 그르니에에 빠져들다] 한동안 쟝 그르니에의 책들이 유행한 적이 있다.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 "섬"을 처음으로 읽었으며 "어느 개의 죽음에 관하여", "일상적 삶", "모래톱"을 차례로 읽었다. 그리고 그후로 쟝 그르니에의 책들은 서서히 잊혀져 갔다. 아마 요즘엔 대학생들의 필독서 리스트에서도 빠진 것같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변화하여 쟝 그리니에 같은 명
"지중해 여정을 통한 삶에 대한 성찰" 내용보기
[또다시 쟝 그르니에에 빠져들다] 한동안 쟝 그르니에의 책들이 유행한 적이 있다.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 "섬"을 처음으로 읽었으며 "어느 개의 죽음에 관하여", "일상적 삶", "모래톱"을 차례로 읽었다. 그리고 그후로 쟝 그르니에의 책들은 서서히 잊혀져 갔다. 아마 요즘엔 대학생들의 필독서 리스트에서도 빠진 것같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변화하여 쟝 그리니에 같은 명상적인 언어들과 현재가 어울리지 않는지 그의 독특한 난해함으로 거리감을 느끼는 지 모르겠지만 요즘과 같은 바쁜 세상일 수록 한번쯤 그의 책을 읽으며 깊은 명상을 해 볼 만 하다. 난 10년전과 마찬가지로 책의 전부분을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책을 읽으면 마음속에 어떤 미묘하고 아스라한 감정들이 살아나 한동안 지배를 하곤 한다. 지중해 여러 지역을 순회하며 철학자 쟝 그리니에가 느꼈던 정신적 영감~ 그런 언어들을 소유하며 이 시대에서 한박자 느리게 살아가는 삶도 괜찮은 것 같다.

[인상깊은구절]
단 하나의 그림에서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어랜애처럼 무한을 암시하는 어떤 간결함, 지중해에 대한 정의란 이런 것이 아닐까? 우리의 눈 앞에 기지개를 켜는 듯한 이 흰 빛 해안은 호수와 만 사이에 크레딘느와 막슐라를 하나로 묶어 놓는다. 그리고 이 해안은 그 순수함에 약간은 여성적인 매혹을, 동양의 정취를 느끼게 하는 젖향기를 덧붙인다.
t******i 2001.10.1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