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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한테 글쓰기는 살아가기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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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는 독일계 유대인으로 1883년 7월 3일에 체코 공화국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작가이고 보험공사관리였다. 아버지 헤르만 카프카는 거칠고 엄격한 군생활을 해서 그것은 카프카의 어린시절에 안 좋은 영향을 미쳤다. 어머니 율리에 카프카는 착했지만 카프카한테 마음쓰기보다 아버지 말에 따라서 살았다. 카프카는 어린시절에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아버지와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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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는 독일계 유대인으로 1883년 7월 3일에 체코 공화국 프라하에서 태어났다. 작가이고 보험공사관리였다. 아버지 헤르만 카프카는 거칠고 엄격한 군생활을 해서 그것은 카프카의 어린시절에 안 좋은 영향을 미쳤다. 어머니 율리에 카프카는 착했지만 카프카한테 마음쓰기보다 아버지 말에 따라서 살았다. 카프카는 어린시절에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일을 하고 카프카를 다른 사람한테 맡겨두었다. 카프카를 돌봐준 가정부가 좋았다면 좀 나았을지도 모르겠지만 별로 좋지 않았다. 카프카가 초등학교에 다니게 되었을 때, 가정부가 카프카를 학교까지 데리고 가면서 선생님한테 카프카가 잘못한 일을 말하겠다고 겁을 주었다. 그것을 카프카는 아주 두려워했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10분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어린 카프카는 그 길을 아주 멀게 느꼈다. 아버지의 엄격함 때문에 카프카는 학교 선생님도 무서워하고 학교 자체도 무서워했다. 그래서 카프카는 자신이 좋은 선생님을 만났다는 것을 잘 몰랐다. 친구도 별로 없었다. 그리고 네 해 뒤에 프라하에서 가장 엄격한 오스트리아 왕립 김나지움에 다니게 되었다. 카프카가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중학교 때다. 카프카는 아무도 모르게 글을 썼다. 하지만 그 글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카프카는 글을 쓰고는 없애기도 했다. 카프카는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는데 수학은 싫어했다. 카프카는 낯선 나라들의 지형·기후·생물·사람을 보여주는 지리를 좋아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따듯하고 햇빛이 찬란하게 비치는 남쪽 나라에서 살고 싶다고 평생 꿈꾸었다.

대학에 들어갈 때 카프카는 전공 때문에 아버지와 말다툼을 했다. 카프카는 철학이나 문학을 공부하고 싶었는데 아버지는 카프카가 법학과에 가기를 바랐다. 대학을 나온 뒤 좋은 일자리를 구하기를 바란 것이다. 이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다니. 카프카는 처음에 화학과에 다니다가 바로 법학과로 바꾸었다. 법학을 공부하면서도 카프카는 글에 대한 마음을 버리지 않았다. 카프카가 즐겨 읽은 책은 작가의 자전 요소가 담긴 일기, 전기, 편지 모둠이었다. 그러한 책을 찾아서 열심히 읽었다. 카프카는 대학 졸업 시험에 합격하지 못할까봐 무척 걱정했다. 이런 마음에 대해 앞에서는 못 썼는데, 카프카는 늘 불안했다. 낯선 일은 더욱. 누구나 그런 마음을 느끼지만 카프카는 누구보다 더 심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도 카프카는 대학 생활에서 좋은 친구들을 만났다.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으로 일하게 된 곳은 카프카를 힘들게 했다. 일을 아주 많이 해야 해서. 카프카한테는 글 쓸 시간이 필요했다. 얼마 뒤 일자리를 옮겼다. 그곳은 아침 8시부터 오후 2시까지 일하는 노동자재해보험공사였다. 시간은 그렇다 해도 여전히 일은 많았다. 카프카가 일을 잘했기 때문에. 노동자재해보험공사는 카프카한테 잘해주었다. 카프카가 아프면 쉴 수 있게 해주었으니까. 카프카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주는 곳이 있었는데, 카프카는 그 점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나라면 기뻐했을 것이다. 지금은 사람은 언제든 바꿀 수 있는 부품으로밖에 생각하지 않나 싶다. 그렇다고 카프카가 살았을 때 아주 좋았던 것은 아니다. 몸을 쓰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아주 힘들었다. 카프카는 그런 사람들 편에 서서 많이 도와주려고 했다. 그런 따듯한 마음 때문에 카프카도 다른 사람이 도와준 게 아닌가 싶다.

아무리 좋은 일자리라 해도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없으면 괴롭다. 카프카는 글을 자유롭게 쓸 수 없는 것을 괴로워했다. 아니, 그것보다는 글 쓰는 것 때문에 잠을 못 자서 힘들었을지도. 카프카는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조금 자고 산책을 하고 밤에 글을 썼다. 그런데 집이 시끄러웠다. 카프카는 식구들 모두가 잠들 때를 기다렸다가 글을 썼다. 어느 날은 글이 아주 잘 써져서 밤을 새우기도 했다. 카프카는 자신을 잊고 글을 써내려가는 것을 좋아했다. 그게 어떨지 한번 경험해보고 싶기도. 카프카가 글을 그렇게 썼는데도 끝까지 쓰지 못한 게 많은 것은 여러 작품을 함께 썼기 때문이다. 그런 모습을 보고, 하나 먼저 끝내고 다른 거 쓰지 하기도. 사람마다 글 쓰는 방식이 다를지도 모르겠다. 카프카는 하나를 쓰다가 다른 게 떠오르면 그것을 그냥 둘 수 없었던 거다. 쓰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일할 때 쓰는 글도 늘 문학을 생각하며 썼다.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닌데. 카프카는 일기와 편지도 많이 썼다. 일기로 글쓰기를 단련했다. 어떻게 쓰면 그럴 수 있을까. 나도 일기를 꽤 열심히 썼던 때가 있다. 그냥 별 생각없이 썼기 때문에 도움이 되지 않았던가 보다. 지금부터라도 일기를 잘 쓰면 나아질까. 하지만 카프카와 같은 글은 쓰지 못할 것이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평범하게 생각해서 말이다. 카프카는 꿈도 잘 적어두었다. 카프카의 글은 꿈과 비슷하다고(카프카 소설은 아직 하나도 못 읽어봤다). 꿈은 일이 쉽게 바뀌고 여기저기 갈 수 있다. 꿈에 대한 설명을 이렇게 밖에 못하다니. 카프카는 글쓰기와 책읽기뿐 아니라 연극을 보는 것도 좋아했다. 늘 프라하가 아닌 곳에 가서 작가로 살고 싶어했는데 그 일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글쓰기는 카프카가 살아가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결혼을 하면 글을 쓸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처음 만난 펠리스 바우어와는 아주 많은 편지를 주고받았다. 처음에는 거의 날마다 썼다고 한다. 그 부분을 볼 때는 재미있기는 했는데. 카프카한테 펠리스와 편지를 나누는 일이 처음에는 좋았지만 나중에는 괴로운 일이 되었다. 카프카는 자신은 그대로 있고, 펠리스만이 바뀌기를 바랐다. 그런 마음이면 잘 안 되는 것은 당연하다. 펠리스와는 약혼을 두번이나 했지만 결혼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이런 일은 카프카가 글을 쓰게 했다. 글을 써서 사랑이 깨져버린 일을 이겨냈다. 하지만 몸은 별로 좋지 않게 되었다. 펠리스와 두번째 약혼했을 때 카프카는 폐결핵이 되었다. 카프카가 펠리스한테 폐결핵 때문에 결혼할 수 없다고 했다. 카프카가 펠리스한테 그 말을 할 때 마음속으로는 좋아한 것 같기도 하다. 그 글에서 그런 마음을 느끼다니. 내가 이상한 것인지도. 카프카는 펠리스와 자주 만나지 않고 편지만 엄청 썼다. 두번째 율리 보리체크와는 실제로 만나서 이야기하다가 결혼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반대와 집을 얻지 못해서 잘 안 되었다. 그때 카프카는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를 썼다. 율리 보리체크와 아주 헤어지지 않고 카프카는 밀레나 폴락과 편지를 나누었다. 밀레나는 결혼한 사람이었다. 결혼한 남자는 아내와 헤어질 마음이 없으면서 다른 여자를 사귀기도 하는데, 밀레나도 그랬다. 밀레나를 사귀고 헤어진 일 때문에 카프카의 건강은 아주 나빠졌다. 카프카가 끝내 결혼은 못했지만, 카프카를 진정으로 이해해준 사람을 만났다. 도라 디아만트다. 카프카가 죽음을 맞이할 때도 도라가 함께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고흐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든 것은 왜였을까. 고흐를 누구보다 잘 알아준 동생 테오가 있었지만. 그런 사람이 아주 없는 사람도 있다.

옛날에는 결핵에 걸리면 모두 죽는다고 생각했는데, 카프카가 살았던 시대에는 낫기도 했나보다. 하지만 카프카는 결핵치료를 제대로 못했다. 이런저런 일 때문에. 결국 후두 결핵까지 걸려서 죽게 되었다. 몸이 안 좋을 때도 카프카는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예전에 나도 어떤 것을 쓰지 못해서 조금 괴로웠던 적이 있다. 그것은 편지다. 다른 글을 쓰지 못해서 괴로워했으면 더 좋았을까. 책을 보다보면 그 안에서 자기 자신을 만나기도 하는데 나도 만난 듯하다. 하지만 다른 점도 많다. 카프카는 친구들과 잘 어울렸고 여기저기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편지쓰기를 좋아하는 것은 같지만, 나는 사람 자체를 두려워하기도. 이것은 아마 나한테 자신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카프카는 글을 써서 자기 자신의 문제를 알아내려고도 했다. 나는 그런 일은 해 본 적 없다. 그런 것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은 못했겠지만 나 자신도 모르게 문제를 알게 되지 않았을까. 카프카는 자신이 느끼는 괴로움을 이겨내기 위해 글을 썼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도 별로고 지금까지 제대로 된 글 하나 쓰지 못한 것인지도. 나는 그저 쓸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어떤 책을 읽고 쓴 것을 타이핑하고 나니 아주 기분이 안 좋았다. ‘이따위로 쓰다니’ 했다. 요새는 이런 생각을 자주 하는 것 같다. 어쩌면 지금 쓰고 있는 것도 나중에 보면 아쉽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카프카 이야기를 하다가 내 넋두리를 늘어놓고 말았다.

어떠한 책이든 끝이 다가올 때면 아쉬운데, 이 책을 볼 때도 카프카의 죽음이 다가와서 마음이 안 좋았다. 카프카가 된 것 같은 마음은 아니었지만 카프카와 가까운 사람 같은 느낌은 들었다. 결핵치료를 좀 잘 하지 왜 그런 거야 하면서 책을 봤다. 카프카를 나흘 동안 만나서 그랬을까. 그런데 카프카가 결핵치료를 잘 하고 조금 건강해졌다면 그 뒤에도 잘 살아남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쩐지 카프카가 그 뒤에 일어난 일을 모르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하다. 그것 때문에 아주 괴로워했을 테니까. 아니, 그것은 그것대로 문학이 되었을까. 카프카처럼 나한테도 글쓰기가 살아가는 게 된다면 좋을 텐데.


*덧붙임

이 책은 평전인데 나는 평전보다 소설에 가깝게 읽은 것 같다. 한 사람이 나고 자라고 죽기까지 이야기이니 소설과 같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카프카는 실제 있었던 사람이다. 카프카가 행복하게 글을 쓰던 시절도 있었다. 다른 식구들은 카프카가 글을 쓰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여동생은 카프카 마음을 알아주었다. 카프카는 여동생이 빌린 집에 다니면서 마음껏 글을 썼다. 그냥 거기에서 자면 안 될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 글을 쓸 때만 그곳에 갔다. 한때는 시골에 가기도 했는데, 그곳도 조용하지 않았다. 그래도 밤에는 조용했을 것 같지만 쥐가 많았다. 다른 소리 때문에 집중하지 못하는 마음 잘 안다. 그래도 다른 것을 하다보면 그 소리를 잊기도 하는데 카프카는 그것도 힘들었던가 보다. 폐결핵은 마음 때문에 생겼다는 말을 했는데, 이것은 맞는 말이다. 내가 잘 아는 것은 아닌데 마음이 편하지 않으면 폐가 나빠지는 게 아닌가 싶다. 심장인가. 공기가 나빠도 폐가 안 좋아질 수 있다. 지금은 폐결핵에 걸려도 약만 잘 먹으면 낫는다. 조금 오랫동안이지만.

이것은 대체 왜 썼을까. 본래 생각했던 것과 조금 다르게 쓴 것 같기도 하다. 맞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 생각났다. 그것은 책을 읽는 동안 카프카가 걸었던 곳을 함께 다닌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한번도 가 본 적 없는 곳인데. 그게 참 좋았다. 여동생이 빌린 그집에 갈 때가 가장 좋았다.



희선




☆―

모든 사람은 저마다 고유하고, 그 고유성을 발휘하도록 되어 있다. 물론 저마다 가진 고유성에서 좋은 점을 찾아내야 한다. 그러나 내가 경험한 바로는 학교도 가정도 이 고유성을 지우려고만 애쓴다. 그렇게 해야 가르치기 쉽고 아이 삶도 편해진다. 그러나 그에 앞서 아이들은 강요가 가져다주는 괴로움을 맛보아야 한다. ……그렇듯 내 고유성은 인정되지 않았다(KKANI 7). (46쪽)


카프카는 작품을 쓰지 않을 때에도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편지나 일기, 그밖에 무엇이든 글 쓰는 일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카프카가 글을 쓰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것은, 글쓰기가 바로 카프카의 타고난 운명이고 카프카의 실존이고 삶 자체였기 때문이다. (479쪽)


이달의 사락 n***8 2013.10.19. 신고 공감 2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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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는 글쓰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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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씀으로써, 낯설고 부조리한 세상을 텍스트의 서사 안으로 끌고 들어온 카프카였다. 그리고 남들이 잠든 밤에 홀로 깨어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했던 사람이었다. 처음 『카프카 평전』을 집어 들었을 땐 '평전'이란 단어가 주는 시간과 압력에서였는지 이유 없는 거부감이 들었지만, 수수께끼와도 같은 그의 작품은 물론이거니와 카프카란 인물 자체도 꼭 알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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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씀으로써, 낯설고 부조리한 세상을 텍스트의 서사 안으로 끌고 들어온 카프카였다. 그리고 남들이 잠든 밤에 홀로 깨어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했던 사람이었다. 처음 『카프카 평전』을 집어 들었을 땐 '평전'이란 단어가 주는 시간과 압력에서였는지 이유 없는 거부감이 들었지만, 수수께끼와도 같은 그의 작품은 물론이거니와 카프카란 인물 자체도 꼭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다는 생각에 미쳐 이 두꺼운 평전에 빠져들었다. 초인 혹은 거인이었던 아버지의 반대를 비롯해 사회와 세상이란 굴레 속에서 그를 존재하게 한 건 언제나 글쓰기였다.



불행하고, 불행하다. 하지만 좋은 생각을 했다. 한밤중이다 (...) 불이 켜져 타오르는 램프, 조용한 집 안, 어두운 바깥, 깨어 있는 마지막 순간들, 그것은 나에게 쓸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다. 비록 가장 불행한 권리이긴 하지만. 나는 이러한 권리를 서둘러 이용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자려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아도 자꾸만 저절로 눈이 떠지는 것처럼 극히 자연스런 귀결. 물론 카프카에게 글쓰기란 일종의 윤리(도덕)적 문제로 간주되었다. 그의 작품들은 상상 속에서도 가능하기 쉽지 않은 부조리함을 활자화하면서 그것으로 세상을 보여주는 동시에 고통 또한 보여주었다 ㅡ '당연하지 않은 일상'을 '열린 해석'으로 보여줌으로써 말이다. 특히 그의 작품 「변신」을 보라. 아침에 잠에서 깨어났을 때 벌레로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인간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소설 말이다. 부조리한 데포르메의 충격이 주는 섬뜩함은 언제 읽어도 우리로 하여금 질겁하게 한다. 게다가 그와 함께 조직으로 대변되는 사회구조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오히려 그들이 벌레로 변한 주인공보다도 낯설게 다가오지 않던가. 그러니까 당연히 당시 사회체제와 맞물려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데 여기서 '함몰된 개인'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ㅡ 어찌 「변신」의 경우만 그렇겠는가, 하고 느껴지긴 하지만. 그는 1922년 (두 번째)유언장을 쓰는데 그 후 침대에 누워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들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카프카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많이 읽되 자신의 마음과 맞닿아 있는 책은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다. 그가 키르케고르의 책을 자주 반복해서 읽은 것은 그의 삶이 아버지와의 갈등, 약혼자와의 파혼, 여러 번의 졸도, 세속적이고 범속한 것에 대한 거부, 소외된 삶, 부족한 신앙심에서 오는 불안, '죽음에 이르는 병'으로 다가온 인간적인 절망 등 여러 가지 점에서 카프카의 삶과 많이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다(p.761). 후두결핵으로 죽기 전 카프카는 그를 따랐던 클롭슈토크에게 모르핀을 놓아달라고 소리쳤고, 그는 카프카의 분노에 마취제인 판토폰을 투여했다. 그러자 카프카는 이렇게 외쳤다. 「속이지 말게. 자네는 내게 해독제를 주고 있잖아! 나를 죽여주게. 그렇지 않으면 자넨 살인자야.」 그리고 클롭슈토크가 주사기를 씻으로 침대에서 멀어져 가자 그는 떠나가지 말라고 했고, 클롭슈토크는 가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카프카는 내처 말했다. 「하지만 내가 떠나가네.」



「변 신」 · 『소송』 등을 쓴 그가 죽었다는 것은 ㅡ 그의 글쓰기가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누구나가 그렇겠지만)이제 글로만 카프카를 만날 수 있는 나는 멀리 있는 그에게 「변신」의 주인공인 그레고르의 여동생이 했던 말로 찬사 아닌 찬사를 하려 한다. 「이리 좀 와 보세요! 그것이 뒈졌어요. 저기 누워서 완전히 뒈졌어요!」


u******o 2012.04.24.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카프카에게 글쓰기는 실존의 증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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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카프카 평전>과 이사야 벌린의 <칼 마르크스 그의 생애와 시대>를 동시에 읽게 되었다. 오랜시간 지하철을 이용하는 나는, <카프카 평전>이 휴대가 불가할 정도로 양이 많아 집에서만 읽을 수 있었는데, 때문에 휴대용 책을 따로 준비해야 했다. 카프카와 마르크스는 모두 디아스포라적 유대인이었고(정확히 카프카와 마르크스는 디아스포라는 아니다. 두사람 다 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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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카프카 평전>과 이사야 벌린의 <칼 마르크스 그의 생애와 시대>를 동시에 읽게 되었다. 오랜시간 지하철을 이용하는 나는, <카프카 평전>이 휴대가 불가할 정도로 양이 많아 집에서만 읽을 수 있었는데, 때문에 휴대용 책을 따로 준비해야 했다. 카프카와 마르크스는 모두 디아스포라적 유대인이었고(정확히 카프카와 마르크스는 디아스포라는 아니다. 두사람 다 유대인관습에 대해 무심했고, 시온주의를 표방하지 않았으며, 마르크스의 경우 자신이 유대인 것에 어떤 모멸감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디아스포라적의 의미는 팔레스타인 땅을 떠난, 이주한 유대인으로서 의미이다), 공교롭게도 마르크스가 사망하던 해에 카프카가 태어났다. 저돌적인 마르크스의 계급에 대한 세기말적 투쟁은 예민한 카프카에 의해 권력과 욕망의 제도화된 메커니즘 속에서 물화되고 소외된 존재에 대한 고뇌, 즉 20세기 실존문학으로 이어졌다. 해서 전혀 관계 없을 듯한 두 사람의 시대가 자연스럽게 이해되는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마르크스가 어린시절 좌절이나 억압을 경험하지 않고 성장했다면, 카프카는 아버지의 가부장적인 권위와 폭력 속에서 성장했으며 확대사회에서는 프라하의 독일계 유대인으로 사회적 경멸과 억압 속에서 성장하고 생활했다. 카프카의 실존에 대한 고민은 바로 거기서부터 출발한다.

그는 항상 부모로부터 독립하고, 자신의 능력에 관대한 직장 '노동자재해보험공사'로 부터 독립함과 동시에 독일계유대인을 경멸하는 자신의 고향 프라하를 떠나, 글만 쓰는 자유로운 작가로서의 삶을 꿈꿨다. 그러나 그러한 카프카의 소망은 폐결핵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사망하기 1년 전 도라 디아만트를 만남으로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자유도 잠시, 병이 깊어짐에 따라 카프카의 독립은 6개월만에 막을 내리고, 부모가 있는 프라하로 되돌아가야 했으며, 결국 카프카는 '죽음'으로 권위와 억압으로부터 영원한 해방을 이루게 된 것이다.

카프카는 평생 자신의 존재를 믿지 못했으며 자신을 무능력하고 나약한 존재라고 확대 해석했다. 결혼을 인간의 가장 행복한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한 카프카는 자신은 병약하고 비사회적이며 우울하고 희망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결혼에 적합하지 않다라고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혔다. 때문에 카프카는 세번의 약혼과 세번의 파혼을 경험했으며, 네번째에는 같은 유대문인이었던 에른스트 폴락의 아내를 사랑한다. 이 사랑 또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카프카의 무의식은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시작된 사랑이었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는 아버지의 뜻에 어긋나는 여인을 사랑함으로써 아버지의 권위에 도전하지만, 그 도전을 늘 스스로 철회함으로써 자신의 무력함을 자기 자신에게 증명해 보이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결혼함으로 아버지와 동등해지길 원하면서도,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으로 결혼을 거부하고, 이루어지지 않은 결혼으로 그토록 좌절했던 것은 아니였을까.

마르크스와 카프카 두사람의 어린 시절을 한꺼번에 봄으로써, 역시 한 개인을 이루는 것은 타고난 성정이기도 하겠으나, 그가 나고 자란 환경과 부모의 태도를 비롯한 사회적 환경이라는 것을 두 사람을 통해 확인하게 된다. 카프카는 자신의 전생애를 관통하는 불안과 심약함, 한정된 사회적 관계에서 오는 소외를 아버지의 자기 본위적인 교육 외에도 어머니의 따뜻한 품이 아닌 유모의 손에 자라야 했던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깊이 생각해 볼 때 나에 대한 교육이 많은 방향에서 나에게 해를 끼쳤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37쪽) 이 말을 바꾸면, 부모의 세심한 보살핌 속에서 자신의 본성을 잊지 않는 교육을 받았더라면 오늘날까지 실존문학의 선구자로 추앙받는 카프카는 존재하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이야기다.

 

 

마르크스에게 엥겔스가 있었다면, 카프카에게는 막스 브로트가 있었다. 일생동안 뿐만 아니라 카프카 사후까지도 우정을 포기하지 않은 막스 브로트는, 카프카가 대학시절 독서 모임에서 만난 둘도 없는 친구이자 문학의 대변자이며 후원자였고, 카프카 평전을 기술하기도 했다. 지은이 이주동은 막스 브로트가 마지막까지 신의를 포기하지 않았다라고 기술하고 있지만, 카프카는 막스 브로트에게 보낸 두번에 걸친 유서에서 몇몇 작품을 제외한 자신의 글을 모두 불태워 줄 것을 강조했다. 막스 브로트가 카프카와의 신의를 저버리지 않은것이 맞다면, 카프카의 유언은 지켜져야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막스 브로트가 카프카에게 충실했기 때문에 그 유언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라고 이주동은 보고 있지만, 나는 살짝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혹여 막스 브로트가 카프카를 들어 어떤 실익을 본 것은 아닐까 하는. 이는 나의 몹시 개인적인 생각으로, 실존적 고민이라 해두자.

 

 

 

이 책의 지은이는 반갑게도 우리나라 사람으로, 번역에 대한 무리없이 쉽게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매력이었다. 또한 이사야 벌린의 마르크스와는 달리 카프카 개인사에 촛점이 맞춰진 것도 내가 바라는 평전의 모양이여서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특히 아버지와 사회의 가부장적 권위와 억압에 억눌림으로 평생을 질식할 지경으로 살아온 카프카의 인간적 비애를 피부로 느낄 수 있어 좋았다. 내 무의식 속에도 권위에 대한 부당함이 공기처럼 녹아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은이 이주동은 이 책을 자유롭고 주체적이며 창조적인 작가로서 살아가려고 했던 카프카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 위해 그의 일상적인 삶에 포커스를 맞추었다. 때문에 카프카 문학 속의 장면과, 편지와 일기가 세세하게 관찰되었고, 그에 대한 기록으로 책이 무척이나 방대했다. 그러나 읽기에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카프카가 느끼는 억압과 권위에 대한 반발심에 깊이 공감할 수 있어 무척 재미있었다. 또한 카프카에게 글쓰기의 의미가 자유와 해방이며,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찾기 위한 실존이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덕분에 혼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소송>과 <성>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었다.

이 책을 읽고 나는 불현듯 카프카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가 느낀 불안, 고독, 소외, 외에도 그가 꿈꾼 행복, 작지만 따뜻한 인간적인 것에 대해 한없이 가슴이 저려오는 경험을 하였다. 이어서 읽고 싶은 책은, 인간의 폭력 앞에서 자신의 본성을 버리고 어쩔 수 없이 인간의 관습을 받아들이는 한 불행한 원숭이의 인간화를 그린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와, 아버지의 폭력적이고 이기적인 교육이 낳은 자신의 불안과 심약함에 대해 토로한 <아버지께 드리는 편지>와, 추운 겨울에 한 톨의 석탄도 얻지 못하는 상황에 쓴 고통 체감기 <양동이를 탄 사나이> 이다.

 

 

그가 원하는 가장 좋은 삶의 방식은 문방구와 램프를 갖고 밀폐된 지하실의 가장 깊숙한 곳에 앉아 글을 쓰는 것이었다. 그에게 창작은 깊은 잠, 곧 죽음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a*****0 2012.09.27.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