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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k 5. '고전명작'이라는 숲을 탐색하기 위한 지침서
"Think 5. '고전명작'이라는 숲을 탐색하기 위한 지침서" 내용보기
어린 시절,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을 재밌게 읽은 어린이 독자라면 그 후속작인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자연스럽게 접해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톰 소여의 이야기와는 사뭇 다른 전개와 어려운 내용으로 끝까지 읽기도 힘든 것이 사실이다. 나 역시 그랬기 때문이다. 개구쟁이 톰 소여의 이야기는 재미난 장난으로 가득하고 뒤이어 펼쳐질 새로운 장난은 무엇일지 상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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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을 재밌게 읽은 어린이 독자라면 그 후속작인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자연스럽게 접해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톰 소여의 이야기와는 사뭇 다른 전개와 어려운 내용으로 끝까지 읽기도 힘든 것이 사실이다. 나 역시 그랬기 때문이다. 개구쟁이 톰 소여의 이야기는 재미난 장난으로 가득하고 뒤이어 펼쳐질 새로운 장난은 무엇일지 상상하는 재미를 만끽할 수 있었지만, 허클베리 핀의 이야기는 '미국 사회문제'를 비판하고 '잘못된 인식'을 바로 잡으려는 '문제의식'과 '사회비판'으로 가득 채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등시절에 톰 소여는 여러 번 숙독하곤 했지만, 허클베리 핀은 번번히 '도중하차'하기 일쑤였다. 그렇기에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친절한 안내가 필요한 책이다.

 

  먼저,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풍자소설이다. 19세기 미국 사회는 오늘날의 시선으로 보아도 문제가 많은 사회였다. 이 소설에서 언급하고 있는 문제만 보아도 '노예인권 문제', '인종차별 문제', '사회지배계층의 도덕적 해이' 등등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크 트웨인은 이런 미국사회의 문제를 '순수한 어린 아이의 시선'으로 사회고발을 하면서 그 심각성을 더욱 부각시킴과 동시에 풍자와 해학 속에 담아내어 미국사회 스스로 성찰하는 계기로 삼기를 간절히 바랐을 것으로 해석 가능하다. 이렇게나 무거운 주제를 담았으니 어린 독자들이 '안내' 없이 이야기를 소화하고 이해할 수 있겠느냔 말이다.

 

  이처럼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는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읽기 위해선 '배경지식'도 충분히 쌓아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의 역사'를 전반적으로 이해해야만 한다거나 '문학적 이해'를 위해 문학사조를 달달 외워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어린 아이들도 충분히 이해하고 비판할 수 있는 '도덕과 사회윤리'에 관한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줘야 한다는 말이다.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이 소설에는 '인권 / 차별 / 도덕적해이'와 같은 윤리인식의 문제를 소상히 다루고 있다. 그러니 19세기 미국사회에서 '당연시' 여기던 것들이 사실은 인간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이라는 인식에서부터 시작하면 좋을 것이다.

 

  첫 번째, '인권문제'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누구나 평등할 권리를 가진다. 그런데도 19세기 미국사회에서는 '흑인노예'를 사유재산으로 삼아 '사고 팔 수 있는 대상'으로 여겼고, 심지어 흑인노예가 자식을 낳으면 그 또한 태어나면서부터 '노예'가 되어 버리는 악습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과거 '신분사회'를 당연하게 여겼던 '전제왕권시대'처럼 말이다. 아시다시피 미국은 '왕조국가'가 아니라 '민주국가'였는데도, 흑인노예들은 민주시민으로서 권리를 박탈 당하고 미국 경제의 근간인 '노동력 제공'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두 번째, '인종차별 문제'다. 19세기 미국은 철저한 '백인우월주의'에 입각한 '백인사회'였다. 한마디로 백인들은 '모든 것'을 누리는데 반해서 유색인종은 백인들이 당연히 누리는 것들에서 철저히 '소외'시켜버리는 차별화 된 사회였던 것이다. 이러한 차별은 자연스레 '불평등'을 낳는다. 오늘날에도 미국사회는 '소수의 백인'이 '다수의 유색인'을 지배(?)하는 형태로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어떻게 소수가 다수를 지배할 수 있을까? 그건 '경제력'을 쥐고 사회 전체를 흔들며 '소수의 백인'에게 유리하게끔 정치, 사회, 전반적인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있기에 가능하다. 더구나 19세기에는 백인이 '소수'도 아니었다. 그러니 이러한 '인종차별 문제'는 대단히 심각했고 철옹성처럼 견고했기에 더욱더 심각한 사회문제를 일으켰다. 그런데도 '백인'들은 인종차별을 사회문제로 인식하지 못했고, 그로 인한 '유색인종'들의 피해는 끔찍할 지경이었던 것이다.

 

  세 번째는 '지배계층의 도덕적해이'다. 백인이 우월한 사회라 하더라도 그 백인들이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며,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이루고, 올바르게 이끌어나갔다면 크게 문제 삼을 것도 없다. 전제왕권시절에도 '세종대왕' 같은 성군이 이끌던 시절에는 많은 백성들이 평안하고 태평하게 아무런 근심걱정도 없이 살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19세기 미국의 백인들은 그렇지 못했다. 이 소설에서 '허클베리 핀의 아버지'나 '황제와 공작이라 불리는 사나이들', 그리고 <로미오와 줄리엣>에서처럼 사소한 원한 관계로 서로의 목숨을 뺏고 빼앗는 어리석은 백인들이 널리고 샜었기 때문이다. 그처럼 '부도덕한 백인들'이 미국 사회를 이끌고 있는 것에 마크 트웨인은 '옳지 못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것도 어린 아이의 시선을 통해서 말이다.

 

  이처럼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 다루는 주제를 이해하고 읽으면, 이 소설이 단순한 '어린이문학책'이 아니라는 것에 공감할 것이다. 그보다는 사회고발을 하는 날카로운 '비평소설'에 가깝고, 사회의 고질적 문제점을 풍자와 해학으로 비꼬집은 '풍자소설'이라 보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그리고 자국 사회의 문제점을 냉철하게 비판하는 '뜨거운 감자'였기에 올바른 비판의식을 갖춘 어른들의 친절한 안내(?) 없이는 이 책의 진면목을 올바르게 볼 수 있는 '어린 독자'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 틀림없다. 나 역시 그런 '어린 독자'였으며, 아무런 안내도 받지 못하고 어른이 되어서야 겨우 이해할 수 있게 된 '어린 독자'에 불과했던 것이다.

 

  솔직히 어른 독자들도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읽고, '친절한 안내' 없이 제대로 된 주제를 이해하기란 어렵기 마찬가지다. 그래서 적절한 '해설서'와 함께 읽어보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이 책 <서울대 선정 문학고전>이 훌륭하다 여기는 까닭이다. 물론, 이 책에 소개한 내용이 모두 흡족하지는 않지만 부족하나마 '기본적인 개요'를 잡기에 적절한 책도 드문 것이 사실이다. 특히나 '명작고전소설'에 깊이를 느껴보고 싶은 청소년독자들에게 강추하고 싶다. 청소년시절에는 '원작소설'을 읽는 것이 부담으로 작용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책을 '마중물'로 삼아 암반 깊이 감춰진 주제를 '미리' 맛보는 것도 아주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

YES마니아 : 로얄 z******8 2023.07.09. 신고 공감 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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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새 만에 다시 읽은 허클베리 핀
"닷새 만에 다시 읽은 허클베리 핀" 내용보기
이 책은 강림도서관에서 빌렸고, 닷새 전에 완독을 한 뒤에 리뷰까지 마친 책이다. 그 리뷰에서 나는 이런 글을 썼다.   " 『톰 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만난 것은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아동용 도서로 축약한 작품인 듯한데, 『톰 소여의 모험』은 당연히 몰입하면서 읽었다. 그 책의 후속편이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라는 것을 듣고, 상당한 기대를 갖고 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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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강림도서관에서 빌렸고, 닷새 전에 완독을 한 뒤에 리뷰까지 마친 책이다. 그 리뷰에서 나는 이런 글을 썼다.

 

" 『톰 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만난 것은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아동용 도서로 축약한 작품인 듯한데, 『톰 소여의 모험』은 당연히 몰입하면서 읽었다. 그 책의 후속편이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라는 것을 듣고, 상당한 기대를 갖고 책을 펼쳤으나 10여 쪽을 읽다가 책을 덮었다.

 

왜 그랬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으나, 아마도 두 작품의 성격이 전혀 다르다고 느낀 듯하다. 『톰 소여의 모험』은 그래도 얄개전과 같은 장난꾸러기 어린이의 느낌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베키 대처라는 귀여운 여주인공이 있었다. 그에 비해 『허클베리 핀이 모험』은 후속작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았고, 여주인공이 없다는 것에서 매력을 느끼지 못한 듯하다. (5일 전에 쓴 리뷰 갈무리)"

 

초등학교 시절에 두 작품을 만났는데, 『톰 소여의 모험』은 재미있게 읽었으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재미없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읽기를 포기했다는 추억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생각이 바뀌었고, 특히 이 작품을 읽고서 『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는데……. 쓰고 나서 생각하니 그 배경이 궁금하다. 나의 리뷰에서는 여주인공이 없어서 그랬다고 썼는데, 단순히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이다. 초등학생인 내가 여주인공에 대한 관심이 뭐 그리 크겠는가?

 

내가 읽은 작품 중에는 여주인공이 없는 작품도 많다. 나의 독서 취향은 '역사'였고, 남녀 간의 애정을 다룬 소설을 선호한 것도 아니다. 또한 『톰 소여의 모험』의 여주인공인 베키 대처는 비중도 그리 높지 않고, 이상적인 여성상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톰 소여의 모험』은 여주인공이 있어서 흥미를 느꼈고,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없어서 흥미를 느끼지 않은 것이 아닐 것이다.

 

초등학생인 나는 왜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완독을 하지 않을 정도로 흥미를 잃었고, 그 뒤로 한동안 아예 읽을 생각을 안 했던 것일까?

 

그 이유는 다음 세 가지가 아닌가 싶다.

 

첫째, 『톰 소여의 모험』이 먼저 쓰였다. 나는 지금까지 『톰 소여의 모험』이 먼저 쓰이기는 했겠지만, 시차는 길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두 작품은 연작 소설, 또는 같은 소설의 상권과 하권이라고 할 정도로 관계가 깊다. 등장인물이 거의 일치하고, 내용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톰 소여의 모험』은 마크 트웨인의 40세(1875년) 때 작품이고,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50세(1885년)의 작품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할 정도로 긴 시간이다. 40세는 그래도 청춘이라고 할 수 있는 나이이나, 50세는 아무리 생각해도 청춘이 아니다. 아마도 『톰 소여의 모험』에는 청춘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좀 더 많이 담겨 있고, 『허클베리 핀의 모험』 에는 그것이 약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청춘에 대한 선호가 강했던 내게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흥미를 느낄 요소가 없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생각이 바뀐 것이 아닌가 싶다.

 

둘째, 자유를 향한 강한 의지를 지닌 허클베리 핀에 공감한 듯하다. 『톰 소여의 모험』에서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은 인디언 조가 숨겨둔 보물을 발견한 뒤 큰 부자가 된다. 또한 고아와 다름없었던 허클베리 핀은 교양 있고 양심적인 더글러스 부인에게 맡겨진다. 더글러스 부인은 허클베리 핀을 위해서 열과 성을 다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감옥이나 다름없었다. 결국 가출을 하면서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 시작된다.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이야기는 행복한 결말이 되면서 허클베리 핀은 셀리 부인의 양자가 된다. 아마도 또 다른 작품이 이어졌다면, 허클베리 핀은 그곳에서도 탈출을 했을 것이다.

 

더글러스 부인이나 셀리 부인 모두 좋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허클베리 핀에게는 그녀들이 교도관이고 자신은 죄수와 다름없는 몸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좀 굶주리기는 하지만 먹고 싶으면 먹고, 씻고 싶으면 씻으며, 마음껏 활보하던 거리의 소년이 있다고 하자. 국가에서 그 아이를 위한다면서 아침 일찍 학교에 가야 하고, 학교에서 늦도록 야자를 하거나 학원에 가야 하며, 주말과 휴일에도 이런저런 일정이 빽빽하게 기다리고 있는 시설에 수용한다면 그 아이는 아마 허클베리 핀처럼 탈출을 하고 싶을 것이다. 좋은 옷과 양질의 식사, 편안한 침실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초등학교나 중학교 시절의 나는 허클베리 핀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이가 들수록 자유의 달콤함을 느끼게 되었나 보다. 어린 시절에는 김치의 맛을 몰랐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중독이 되고, 어른이 되면서 술과 담배의 맛을 알게 되듯이…….

 

셋째, 나의 취향이 허클베리 핀의 삶을 지향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청춘 시절에는 결혼하고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자유가 그리웠다. 아내에 대해 불만이 있거나,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식은 것이 아니다. 그냥 '홀로'가 좋았다. 둘이 하면 '3'의 성취를 얻을 수 있고, 혼자 하면 '1'밖에 얻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차라리 혼자서 '1'만 얻고 싶게 된 것이다. 책장을 넘기면서 더글러스 부인에게서 탈출을 하고, 셀리 부인에게 가면서 탈출부터 생각하는 허클베리 핀의 자유를 향한 의지를 전폭적으로 공감하게 되었다고 할까. 어차피 삶의 마지막은 혼자 걷는 길이다. 인생의 마지막 길은 톰 소여가 아니라 허클베리 핀의 삶이 정답일 것이라고 믿게 된 것이다.

 

어린 시절이나 청춘 시절의 나는 톰 소여 같이, 얄개같이 장난을 치더라도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을 지향했을 것이다. 그래서 『허클베리 핀의 모험』보다는 『톰 소여의 모험』이 좋았을 것이다. 틀에서 벗어나고 싶고, 그것이 비록 사랑이라도 간섭을 받고 싶지 않게 되면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 왜 좋은 작품인지 알게 되리라고 본다.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할까? 남녀노소 관계없이 자유를 꿈꾸는 영혼에게 권하고 싶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이런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은 이해가 안 가는 작품일지도 모르겠다.

y******3 2021.07.23. 신고 공감 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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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선정 문학고전] 허클베리 핀의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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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림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다. 서울대 선정 문학고전이라는 이름에서 신뢰를 느꼈고, 작가인 마크 트웨인에 대한 애정에서 이 책을 선택했다. 작가의 작품인 『톰 소여의 모험』은 여러 번 읽어서 잘 알고 있는 작품이지만,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이상하게 친근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 작품은 만화 또는 청소년용으로 축약한 것을 읽은 듯한데 그때는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불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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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림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다. 서울대 선정 문학고전이라는 이름에서 신뢰를 느꼈고, 작가인 마크 트웨인에 대한 애정에서 이 책을 선택했다. 작가의 작품인 『톰 소여의 모험』은 여러 번 읽어서 잘 알고 있는 작품이지만,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이상하게 친근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 작품은 만화 또는 청소년용으로 축약한 것을 읽은 듯한데 그때는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불현듯 새삼스럽게 흥미가 생겨서 선택했다. 그런 인연으로 만난 책을 읽으면서 무엇을 느꼈는지 몇 가지만 적어보겠다.

 

첫째, 작가의 작품에 대한 이런저런 추억을 생각했다. 내가 읽은 작가의 작품은 세 편인 듯하다. 가장 흥미 있게 읽은 책은 『톰 소여의 모험』이었고, 『왕자와 거지』는 재미있게 읽었지만, 작가가 마크 트웨인인 것을 몰랐다. 『허클베리 핀』은 학창 시절에 두 번인가 읽기를 시도하다가 포기했다. 『톰 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만난 것은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아동용 도서로 축약한 작품인 듯한데, 『톰 소여의 모험』은 당연히 몰입하면서 읽었다. 그 책의 후속편이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라는 것을 듣고, 상당한 기대를 갖고 책을 펼쳤으나 10여 쪽을 읽다가 책을 덮었다.

 

왜 그랬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으나, 아마도 두 작품의 성격이 전혀 다른다고 느낀 듯하다. 『톰 소여의 모험』은 그래도 얄개전과 같은 장난꾸러기 어린이의 느낌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베키 대처라는 귀여운 여주인공이 있었다. 그에 비해 『허클베리 핀이 모험』은 후속작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았고, 여주인공이 없다는 것에서 매력을 느끼지 못한 듯하다. 그 뒤 고교 시절에 작가의 작품 3편(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 미시시피강의 생활)이 담긴 세계 문학전집을 만났는데, 여기서도 『톰 소여의 모험』만 읽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읽을 생각도 안 했고, 『미시시피강의 생활』은 소설이라고 할 수 없으니, 10여 쪽을 읽다가 포기했다.

 

그 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어느 방송에서 만화 영화로 연재하는 것을 몇 번 보았는데, 예상외로 재미있다는 생각은 했지만, 원작을 읽을 생각을 못 했고, 어느 신문사에서 만화로 축약한 작품을 읽고 예상외로 재미있다고는 느꼈지만, 역시 원작의 독서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작가에 대한 생각은 초등학교 때의 인식 '『톰 소여의 모험』 외에는 재미가 없다.'가 내 뇌리에 깊이 박혔나 보다. 평자들은 마크 트웨인의 대표작으로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꼽는다는 것은 들었지만,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 작품을 지금 읽었으니, 아무튼 나와 어떤 인연이 있기는 한 듯하다.

 

둘째, 원작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특히 완독을 하고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미국인의 정서를 느꼈으며, 이야기 자체도 흥미진진했고, 무엇보다도 자유로운 영혼을 갈구하는 허클베리 핀의 마음에 공감했다. 그런데 초등학교 때는 이런 감동을 왜 느끼지 못했을까?

 

잘 모르겠다. 미국인의 정서나 이야기의 흥미로움과 자유로운 영혼의 갈구를 느끼기에는 초등학생인 나는 너무 어렸을까? 어린아이들은 김치나 파를 싫어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 맛을 느끼고 중독이 되기까지 하는데,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김치와 같은 매력을 지닌 책이 아닌가 싶다. 좀 더 세월이 지나야 느낄 수 있는 매력이라고 할까? 그렇다면 이 작품을 너무 빨리 만난 것인 듯하다. 고교 시절쯤 만났다면,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 만났더라도 이 책처럼 이해를 돕는 여러 장치가 있는 책이었어야 했을 것이다. 이제 생각하니 그 시절의 책은 제본이나 인쇄 모두 열악했던 듯하다. 거기다가 내용까지도 내게는 좀 어려운 것이었으니…….

 

지금의 나는 원작을 만나더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을 듯하다. 인연이 닿는다면 원작을 통해서 좀 더 깊은 이해를 맛보고 싶었다.

 

셋째, 참고 자료가 좋았다. 이 책은 모두 10장으로 구성되었는데, 각 장마다 작가의 삶과 작품의 세계와 배경을 들려주는 자료를 덧붙였다. 마크 트웨인을 만나다, 『톰 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 핀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고향 미시시피강 등으로 이어지는 참고 자료들은 이 작품뿐만 아니라 작가와 다른 작품들의 매력까지 들려주고 있다. 자료들을 읽는 동안에 『톰 소여의 모험』을 한 번 더 읽고 싶은 마음은 물론 『미시시피강의 생활』도 만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이런 참고 자료는 '서울대 선정 문학 고전'시리즈의 특징으로 다른 시리즈의 작품에서도 실려 있다. 그것이 단순한 해설이 아니라, 한 걸음 더 들어가서 또 다른 차원을 생각할 수 있는 길잡이의 역할을 한다고 할까.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할까? 초등학생 시절의 나는 재미를 느낄 수 없었지만, 이 책은 초등학생도 몰입을 시킬 수 있을 듯하다. 지금의 아이들이 우리 세대보다 더 안목이 높은 면도 있겠지만, 책의 구성이 좋았다. 나의 초등학교 시절에 이 책을 만났다면 나는 이 작품에 대해서 절대로 실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초등학생에서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흥미 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y******3 2021.07.18. 신고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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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선정 문학고전 05 - 허클베리 핀의 모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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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19세기 미국의 사실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작가는 도망자 신세가 된 노예 짐과의 여정에서 허클베리 핀이 성장하는 과정을 위트 있게 그려내고 있다. 백인과 유색인종이 공존하는 사회를 고민하였던 마크 트웨인은 이러한 꿈과 현실을 허클베리 핀과 짐의 여행을 통해 가늠하고 있다. 때문에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는 이상적인 미국에의 꿈과 불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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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19세기 미국의 사실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작가는 도망자 신세가 된 노예 짐과의 여정에서 허클베리 핀이 성장하는 과정을 위트 있게 그려내고 있다. 백인과 유색인종이 공존하는 사회를 고민하였던 마크 트웨인은 이러한 꿈과 현실을 허클베리 핀과 짐의 여행을 통해 가늠하고 있다. 때문에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는 이상적인 미국에의 꿈과 불안감, 그 불안감을 완화시키는 두 도망자의 우정이 함께 그려지고 있다.

 

 허클베리 핀이 문화와 문명, 아버지의 부당한 권력 행사에서 자유를 얻고자 도망간 잭슨 섬에는 도망 노예 짐 역시 숨어들어 있다. 잭슨 섬은 백인과 흑인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공간이었는데, 그러한 이상적인 공간은 다시 뗏목으로 형상화된다. 뗏목 여행을 통해 허클베리 핀은 짐을 동등하고 고귀한 친구로 받아들이게 되고, 그 귀한 우정과 대비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이러한 인간 군상과의 만남은 두 도망자에게 때로는 경직된 명분을, 때로는 부도덕한 상업주의를 대면할 기회를 준다. 작가 마크 트웨인은 당대의 미국 사회를 풍자하기 위해 이와 같은 다양한 인간들을 그려 냈다.

 

 노예제가 만연한 당대 사회에서 노예를 백인의 고결한 친구로 묘사한다는 것은 대단히 혁신적인 시도였다. 그러나 마크 트웨인은 지나친 감상주의나 낙관주의에 빠져 있지는 않다. 허클베리 핀과 짐의 이상 사회인 뗏목은 작은 충격에도 쉽게 부서지고, 두 도망자의 자유는 그들의 노력이 아니라 외부 요인으로 얻어진다. 더욱이 이들 주인공은 사회의 인습에 얽매이지 않은 어린이와 순박한 노예라서 인습에 물든 문명 속 일반인들에게는 그 우정이 가능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인식을 남긴다. 이러한 인식은 이 작품의 사실주의적인 성향을 더 선명히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마크트웨인은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본명은 사무엘랭혼 클레멘스이다. 1835년 미국 미주리 주 플로리다에서 태어난 트웨인은 4살 되던 해 미시시피 강 근처의 작은 마을 해니벌로 이사하게 되는데, 이 마을은 그의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배경으로 등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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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종 차별과 노예 제도는 당시 미국 사회에서는 당연시되던 일이었다. 당시의 흑인은 백인의 도구나 재산의 일부였고, 그랬기에 인권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아무도 의심하거나 건드리려 하지 않았던 미국 사회의 부조리를 트웨인은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흑인 노예 짐과 백인 소년 허크의 인간적인 유대 관계를 통해 아주 세련되고 자연스럽게 짐을 흑인도 노예도 아닌 한 명의 사람으로 만들었다. 이는 파격 중의 파격이었다. 훗날 헤밍웨이가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미국 현대 문학의 시작이라고 지칭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마크 트웨인 창작의 산실이자, 허크와 짐의 모험이 시작되는 미시시피 강은 작품을 이해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허크가 폭군 아버지에게 갇히는 오두막도, 그곳을 탈출한 것도, 흑인 노예 짐을 만나 모험의 여정에 오르는 것도 다 미시시피 강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미시시피 강은 지리적으로 미국의 중심을 관통하는 대 하천이다. 나일 강, 아마존 강, 양쯔 강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긴 강으로, 총 길이는 6,300여 킬로미터에 달한다. 미네소타를 시작으로 위스콘신, 아이오와, 일리노이, 미주리, 아칸소, 루이지애나 등과 접해 있다. 이 강의 이름인 미시시피는 인디언의 말로 큰 강, 혹은 위대한 강이라는 뜻이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 노예 제도는 아직 과도기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북부 주는 이미 노예 제도의 폐지를 선포했고, 남부 일부 주들은 아직도 노예 제도를 고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왓슨 부인이 가족을 팔아 버리고 자신마저 팔아 버리려 한다고 생각한 흑인 노예 짐은 노예 제도가 없는 북부를 향한 여정을 시작하고, 이 과정에서 허크와 우연히 만나게 됨으로써 허크의 모험에 목적을 더해 준다. 폭력과 돈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 찬 아버지로 대변되는 백인 사회로부터 떠나려는 허크와 인권을 무시하는 백인 사회로부터 새로운 세상을 향해 떠나가는 짐의 모습은 당시의 남북전쟁이 일어난 배경을 고스란히 보여 주고 있다. 표면상 노예 제도의 폐지가 목적이었던 전쟁이었으나 그 내면은 백인 사회의 계층 간 갈등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으로 지목되기 때문이다.

 

 흑인 노예 제도를 기반으로 부를 축적한 남부의 백인들은 스스로를 귀족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흑인이란 단지 재산이고, 재산을 불려 주는 도구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에 비해 상공업이 발달한 북부의 주들은 노예 제도에 연연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에게 흑인 노예는 값싼 노동력이자 상품을 판매할 새로운 시장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시각의 차이는 갈등의 시발점이며 백인 사회의 동요를 말하는 것이다.

 

 

 

t**********3 2017.04.20.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청소년 도서 추천~!
"청소년 도서 추천~!" 내용보기
다들 잘아시는 소설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조카가 어떻게 결말이 나냐고 물어봤을때,, 대답 못했어요정말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인데 말이죠,,이번 기회에 조카와 다정히 읽고 토론할 예정입니다책읽기 더 없이 좋은계절 좋은 도서를 저렴하게 구매해 너무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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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잘아시는 소설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조카가 어떻게 결말이 나냐고 물어봤을때,, 대답 못했어요
정말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인데 말이죠,,
이번 기회에 조카와 다정히 읽고 토론할 예정입니다
책읽기 더 없이 좋은계절 좋은 도서를 저렴하게 구매해 너무 좋네요~!
g******9 2016.05.20.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