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깊은 구절- 경험이라는 것은 아주 놀라운 삶의 한 장치인데, 이것을 겪은 사람과 겪어 보지 못한 사람들 사이의 그 틈이라고 하는 것은 삶과 죽음의 틈과도 같은 것이다. 경험을 한 자들은 대개 이론을 무시하게 마련이고, 경험을 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머릿속으로 상상한 얘기들을 주장하게 마련이었다.
- 너는 그렇다면 언젠가 털어놓을 수 있는 단 하나의 진실을 가지고 있는가? 너의 존재를 가장 객관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말 한마디라도 가지고 있는가? 주인은 백열등이 작열하는 밀실에서 그 질문과 맞닥뜨리고는 수없이 좌절하였다. 결국 나의 존재라는 것은 유동하는 것일 뿐이다. 어떠한 진실도 내 몸안에서는 살고 있지 않다. 내 몸은 텅 빈 동굴일 뿐이며 공허한 울림만이 메아리치고 있을 뿐이다. 주인은 그 곳을 나오면서 그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같이 읽으면 좋은 책
'2009년 독서 계획 - 김연수 작가 책 다시 읽기' 1호
2006년 5월, <청춘의 문장들>로 김연수 작가님과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그 한 권으로 '김연수'에 꽂혀버린 나는 도서관에서 빌릴 수 있는 그의 책은 몽땅 빌려와 한입에 먹어치우듯이 허겁지겁 읽어내렸다. 그리고 작년 12월, 그동안 미뤄뒀던 '꾿빠이, 이상'을 읽은 것을 끝으로, 김연수 작가님의 책 12권을 모두 읽었다.
이미 두 번 세 번씩 읽은 책도 있긴했지만, 한꺼번에 몰아서 읽어댔던 책들은 희미한 인상 밖에 남지 않은 경우도 있어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 기왕 읽을 거 이번에는 출간 순서대로 읽어보자 하며, 책을 살펴보니, 마침 단행본으로 나온 책이 딱 12권이다.(비매품 산문집 포함.) 2009년 1월부터 12월까지, 한 권씩 읽으면 딱이로구나! 그래서 2009년 1월에 읽은 책은, 김연수 작가님의 첫 소설이자, 제3회 작가세계 문학상 수상에 빛나는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이다.
1993년, '강화에 대하여'외 4편의 시로 '작가세계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시인 김연수'가 그 이듬해인 1994년, 이번에는 '작가세계 문학상'을 수상하며 '소설가 김연수'로 거듭났다.(작가세계, 사람보는 눈이 대단히 훌륭하다!) 김연수 작가님의 강연회에서 이 상을 받을까말까, 무척 고민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상을 받으면 나는 이제 꼼짝없이 소설을 써야 되는 것이다, 두려웠다고 했다. 자칫, '소설가 김연수'가 태어나지 못했을 수도 있는 그 갈림길에서 무척이나 다행스럽게 작가님은 그 '운명'을 받아들였고, 소설가로서의 발걸음을 내딛게 되셨던 거다.
이 소설이 세상에 나오고 10년도 더 지난 2006년에 나는 이 책을 읽었다. 작가님과의 첫 만남이었던 <청춘의 문장들>은 산문집이었으니, 이 책은 처음으로 읽은 작가님의 소설책이고, 마침 작가님의 첫 작품이었다. 그때는 책의 내용이 궁금해서라기보다는 '소설가 김연수'라는 인물에 무조건적인 호기심을 가지고 마구 읽어대던 때였는데, 그 탓인지 이 책을 읽고 나서 그저 '좀 어렵다'라는 느낌만 남기고, 다음 책으로 넘어갔었다.(사실은 많이 어려운 책이라고 생각했다. 중국어로 '太難了(너무 어렵다)!'라고 적어놓은 흔적이...)
그리고 2년 반 정도가 지나 다시 읽은 느낌은, 첫느낌과 완전히 달랐다. (그 시간동안 김연수 작가님의 '광팬'이 되어버린 까닭도 클 듯...) 두 번째로 읽는 거라고는 하나, 책 내용을 온전히 기억하지 못하는 탓에(사실 '도널드 덕', '바이러스 연구소'라는 아주아주 단편적인 기억 말고는 제대로 기억하는 것이 없었다) 처음 읽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다음 내용이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해서 뒤쪽 먼저 읽어보는 옛날 버릇이 나오려는 걸 꾸욱 눌러 참기도. 중간중간 읽기에 어려운 부분이 있긴 했지만(하필이면 중요한 내용들이!) 처음 읽을 때처럼 안개 속을 더듬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렇기는 커녕 앞에서도 말했지만 내용 전개에 무척 흥미를 느끼며 재미있게 읽었다.(역시 책은 한 번 읽고 덮어 둘 게 아니라, 두 번 세 번 반복해 읽으며 그 책의 참 맛을 찾아야 한다. 고기만 씹어야 제맛인 것은 아니다.)
책 뒷표지에 실린 당선소감 중에 '이 소설을 나와 함께 뉴 트롤즈의 아다지오를 들으며 87년 대선을 투표권이 없는 눈으로 지켜보았고, 「영웅본색」「개 같은 내 인생」「천국보다 낯설은」의 순으로 영화를 보았던 나의 세대에게 바친다.'라고 적혀있는데, 나도 10년만 더 빨리 태어나서 작가님과 같은 시대를 살았더라면 하는 생각이...(87년에 나는 가슴에 손수건을 달고 나보다 한 살 많은 '친구'들과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작가님과 같은 세대가 아닌 나는, 소설 속에 나오는 '계란 노른자를 띄운 모닝커피'에 깜짝 놀라버렸던 것이다...(한번 마셔보고 싶다!)
- 쓰다보니 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쏘옥 빠진, 잡설이 되고 말았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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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글을 읽으면서, 나는 한 마디로 어지러웠다.
이 글에는 김연수의 고민이랄까 방황이랄까, 그런 것들이 녹아 있다. 문체만 해도 그렇다. 깊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서는 주어와 목적어, 서술어를 일치 시켜서 읽기 힘든 문장이 가득하다. 게다가 장면의 전환마다 문단이라도 띄어준다면 좋으련만(아마도 오래 전에 출판된 탓이라 생각하지만) 그렇지도 않아서 내용의 흐름을 따라 읽어내려 가는데 어려움도 많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양을 쫓는 모험> 같은 분위기의 이 소설은, 대한민국 정치사의 핵심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기막힌 비유와 은유를 성립시킨다. 내용 중에 나오는 시처럼 그야말로 가면을 가리키면서 걷는 기분인 이 소설은 몽롱하고 애처롭고, 그렇다.
살면서, 가끔씩 진실이라는 것에 대해 목을 매고 살 때가 있다. 음모론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때도 있고, 철학에 의지해 허무한 삶을 그대로 투영해고픈 때도 있다. 어설픈 내 짐작이지만 이 시기의 김연수는 그랬던 것 같다. 여리기만 한 그의 표정에서는 결코 읽을 수 없었던 이 작가의 치기가, 매섭다.
아주, 매섭다. [인상깊은구절] 경험이라는 것은 아주 놀라운 삶의 한 장치인데, 이것을 겪은 사람과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사이의 그 틈이라고 하는 것은 삶과 죽음의 틈과도 같은 것이다. 경험을 한 자들은 대개 이론을 무시하게 마련이고 경험을 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머릿속으로 상상한 얘기들을 주장하게 마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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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김연수가 좋다. 김연수는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다시 글로 풀어내는 작가다. 그의 데뷔작 역시 그렇다.
물론 조금은 난잡하기도 하지만, 스스로도 그런 혐의를 인정하고 있으며, 이 역시 말장난처럼 가볍게 풀어내는 재주도 있다. 이는 소설 말미 작중 인물과 작가의 대화라는 독특한 단락을 통해 풀어내고 있다. 이외에도 그는 서원기와 작가 두 인물을 등장시켜 각 단락마다 그 들 둘의 논쟁을 싣어 액자 구조를 통해 이야기를 전개하며, 액자 안의 이야기를 비판하는 서원기와 작가의 대립을 보여주기도 한다.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란 제목은 대중문화의 가벼움, 그리고 그러한 가벼움을 형식으로 채택한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고찰과 더불어 자본주의에 지배당한 개인의 반성만이 개인을 주체적으로 한 걸음 내딛게 해준다는 이중의 뜻으로 읽을 수 있다.
가면이란 이미지가 지배하는 시대에 대중매체와 문학에 대해서, 경제의 공간 속에 자리잡은 허울의 정치에 대해서, 자본주의의 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는 자신의 세대의 이야기를 펼친다. 정치는 현실보다는 만화 같고, 현실 또한 현실과 허구의 이중 속에 자리한 듯한 현 시대를 상상력을 가미해 풀어낸 책이다. [인상깊은구절] 사랑이 없는 자에게 세계는 아주 단순해 보이는 것일 뿐, 사랑이 가득 찬 눈으로 세계의 가장 미세한 것을 주시하는 자에게는 세계란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그 무엇이 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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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읽은 게 언제쯤이었을까? 1994년 작가세계 문학상 수상작이었으니, 일러야 95년 쯤, 복학해서 나도 소설 좀 써볼까 싶은 마음에 자취방을 뒹굴며 읽었을 듯하다. 뭐, 읽기는 끝까지 다 읽었던 것 같다. 워낙 쉽고 빠르고 그랬다. 깊이라곤 전혀 없고 문장은 겨우 맞춤법을 벗어나지 않는 수준이었다. 사실, 작가세계 문학상 수상작이라고 해서 읽었을 것이다. 초회 수상작인 이인화의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에 크게 마음을 빼앗겼던 세대들인 것이다, 우리(?)는. 물론 2회 수상자인 장태일이 너무나도 저열한 <49일의 남자>로 상을 받은 것을 보고 다소 회의에 빠지긴 했었다. 그리고 3회 수상작인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 이것 역시 장태일 작품과 마찬가지로 서툴기 짝이 없어 보였던 것이다. 며칠 전 작가의 에세이 <여행할 권리>를 읽었다. 나로서는 생애 두 번째 김연수 책이었다. 그런데 이게 상당히 심금을 울렸다. 뭣보다, 참 잘 썼다. 깜짝 놀랐다. 이렇게 잘 쓰는 사람이었다니! 아마, 십 년 넘게 같은 짓을 쉬지 않았으니, 이제는 문장의 달인이 됐을 법도 하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참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다. 그런데 그 책에서 작가는 바로 이 <가면..>에 대한 고백을 하고 있다. ‘설마 그 책을 돈 주고 사 볼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헉. 본인도 알고는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면 양심도 있는 사람이다. 아무려나, 그의 다른 소설을 구해서 읽어볼 일이다. 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