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집을 읽는 것은, 1990년대 중반에서 그 시절을 추억하는 것 이였다. 시의 많은 부분의 제목이 영화 혹은 시에서 살짝 비틀어서 가져오고, 그래서 나도 영화를 보고, 그 감상을 한편의 시를 남겨보면 좋겠구나 생각을 해 본다. 그래서 1990년대 중반의 영화를 다시 한번 보는 느낌도 들었고,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흘러갔나 생각을 하며 추억에 잠긴다.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라는 영화에서,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이라는 제목을 가져왔다는 느낌이 강하게 된다. 세운상가가 가지는 여러 의미가 각자 다르게 있겠지만, 말죽거리에서 청소년을 지낸 공통의 정서에는 도색잡지, 포로노 비데오의 유통공간으로 상징성이 큰 것 같다. 소위 빨간책과 청소년 시기의 금기, 이런 것들이 연상된다. 공감이 가고, 가슴이 찡한 것은 LG25시로 표현되는 편의점에 대한 연작시였다. CVS라는 편의점이 우후죽순처럼 생기고, 24시간 불이 밝혀있고, 소비가 가능하지만 너무나도 도시적인 차가움이 존재했던 그 곳. 편하기도 했지만, 정이 느껴지는 곳은 아니었다. 아래 마지막 구절을 한번 적어본다. 24시간의 일상, 그 끄트머리엔 25시라는 상상의 편의점으로 통하는 비밀통로가 있다. 영혼의 살점을 지불할 수 있는 자만이 박쥐처럼 익숙하게 스며들 수 있는 이 시집을 읽으면서, 롤라의 김지현에 킥킥거리고, 시네마 천국의 영화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고, 황지우의 새들로 세상을 뜨는구나를 비튼 모습도 보고, 헐리우도 영화 저수지의 개들도 만나보고, 여러 영화를 만나본다. 그리고 추억한다. 몇 편 나오지는 않지만, 고창 하나대에 대한 그의 추억은 항상 서정적이다.
|
|
작가는 우리 인생을 재즈로 풀이하고 있다. 불협화음처럼 태어나서 꼴리는대로 살아가는 인생, 그 속에는 어떠한 가치의식도 절대적인 권위로서 인생을 지배할 수 없다. 남들이 비난하고 또 남들이 손가락질해도, 작가는 물결에 대고 섹소폰을 부는 것처럼 차단된 자신만의 자유를 향유한다. 포르노와 말린 지네가 넘실대는 세운상가, 그 속에서 자위를 자양분 삼아 자라온 작가, 세상은 욕망이란 것을 부정하고 비난하지만 한편으론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세운상가와 같은 장소를 마련해 두었다.
사람들의 거짓된 몸짓과 행동, 포르노 테잎 앞에서 점잖은척 거만을 떨고 있는 행인들, 그들은 아무도 모르는 자신만의 공간에서 낮 길거리에서 보았던 포르노 여배우의 가랑이 사이를 생각하며 자위를 할 것이다. 세상은 원래 그런 것이었다. 세운상가 키드는 어쩌면 가장 솔직한 우리의 모습일 수도 있다. 다만 그것이 부끄럽고 비난받기 쉽기 때문에 모두들 감추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상깊은구절] 운명이여 나를 내버려두게나 즉흥적으로 이 세상에 와서 재즈처럼 꼴리는 대로 그렇게 살다 가리니 |
| 진주하가 떠오른다. 그리고 알바트로스, 말죽거리, 술과 장미와 재즈가 떠오른다. 그러나 아무 것도 잡을 수가 없다. 나는 그것들을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영화 감독으로도 유명한 시인 유하. 그의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는 큰 인기를 얻었고, 나는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에서 영화보다 앞서 영화를 읽었다. 이 책은 바로 그 시점에 있는 것이다. 내가 시를 따라하고 싶었을 때 유하를 만났다. 아이들은 영화를 보며 이소룡을 따라한다. 그리고 이소룡 흉내내기를 한다. 그러나 나는 유하를 흉내낼 수가 없다. 분명 내가 알던 이소룡이라는 코드는 예전과 다르다. 20대의 중반...그러나 분명한 이소룡의 이미지를 나는 알지 못한다. 내가 아는 것은 그저 느낌일 뿐이다. [새들은 말죽거리에 가서 잠들다-성수에게]라는 시는 영화의 시놉시스와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머니], [술과 장미의 나날]같은 시들은 시샘이 날만큼 갖고 싶었다. 그리고 나도 거기에서 잠들었다. |
|
시간의 뒷걸음질을 유일하게 허락되어지는 ‘추억’
시간이란 녀석은 늘 그렇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살아내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고 흘러간다. 단지 우리는 현실을 살아낼 뿐이며 흐르는 시간의 사이사이에 나의 몸짓들을 끼워 맞추면서 삶이란 것을 완성해 나간다. 완성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그 끝이 무엇인지, 어떠한 것이 완성이며 정답은 무언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냥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내는 것. 그것이 무심히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우리의 자세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열심히 살아낸 그 시간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듯이 ‘추억’이라는 보물 하나를 챙기게 되는 것이다. 서른 셋, 갈수록 멀리 쓸려가는 삶 재즈처럼, 예정된 멜로디의 행로 바깥에서 한참을 놀다, 아예 길을 잃었네 잠파노처럼 모래알을 부여안고 울기엔 너무도 이른 나이, 나만의 이름 모를 샛길에 토마토를 심고 아무도 찾지 않는 열매를 위해 하모니카를 불었지 바람의 입술을 빌려, 멜로디의 길을 잃은 연주자에게, 알 수 없는 그리움만이 나침반이 돼주었어 당신...... 독약의 감미로운 향기 사랑이 나를 즉흥적으로 변주할 뿐이였네 마음은 그냥 샛길의 연못에 남아 놀고 있는데 육신이 뒤꿈치의 끈으로 북을 두드리며 세월을 떠밀고, 차가운 심장의 하모니카여 나 상처 없이, 내일도 없이 흘러가리 두엄도 잡을 수 없는 저 나비의 발길로 재즈처럼 나비처럼 ― 리오스타,「나의 길」 (p.11) 누군가 시간을 유수와 같다고 했던가? 시간이란 녀석은 그 누군가를 위해 0.1초 조차도 기다려 주지 않는다. 시간은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무심히 흘러간다. 그런데 나는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유일하게도 지나온 시간에 대한 그 머뭇거림을 가능케 하는 것이 ‘추억’이다. 시인이 말하듯 그것은 예정된 행로 바깥에서의 일이며, ‘추억한다’는 것은 현실에서 잠시 길을 잃는 것이다. 또다시 세월이란 녀석에 등 떠밀려 이내 내일로 흘러가야 하지만. 잠시의 머뭇거림도 허용하지 않는 숨 가쁜 삶의 시간 속에서 우리가 또 오늘을 살아낼 수 있는 것은 추억할 꺼리가 있기 때문이리라. 그 속에서 잠시 놀다갈 수 있음이 얼마나 행복한가. 나는 추억이 없는 사람이 가장 가난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길은 미래를 향해 뻗어 있지만 그 길을 만드는 건 추억이었다 길은 속도를 위해 존재해왔다 하지만 추억의 몸인 그 길은 자꾸 속도의 바깥으로 나를 끄집어내곤 했다 실연의 신발은 속도를 갈망했고 사랑의 신발은 정지를 찬양했다 바뀐 사랑을 이끌고 구 길을 지나갈 때마다 새로운 추억은 그보다 오래된 추억을 지웠고 가까운 미래는 더 먼 미래를 지웠다 하여, 미래와 추억은 어느 순간 길 위에서 만났다 난 이미 낡아버린 신발로 미래를 추억하였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그 길은 내 암흑의 내부를 걷기 시작했고 비 내리는 내 기억들의 필름이 몸을 풀어 길의 미래가 되어주었다 - 내 몸을 걸어가는 길(p.53)- 시간의 길에서 유일하게 퇴보를 가능케 하는 것, 그것이 추억이라면 오늘의 추억을 새로이 쓰게 하는 것은 오늘을 살아내게 하는 미래의 추억이리라. 시간의 속도에 나를 내던진 채 숨 가쁘게 살아온 삶에서, 우리는 가끔 힘을 빼고 그 속도의 바깥으로의 일탈을 꿈꾼다. 그것은 뒤쳐지는 것도, 멈춰서는 것도 아니다. 단지 계속해서 달리기 위한 숨고르기 일뿐. 어제의 추억은 오늘의 추억을 만들고, 오늘의 추억은 내일의 추억을 위한 길이 되어준다. 우리는 그 속에서 또 하루를 살아가는 힘을 얻는 것이다. 옛사랑이란 노래가 있지 이제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내 맘에 둘 꺼야...... 때론 그렇게, 시보다 시적인 노래가 있지 절,실,하,게, 느끼는 순간들 세상은 왜 그만큼만 비유가 허용되는 걸까 살다보면 종종 느끼곤 해 내 맘보다 더 내 맘 같은 하늘 내 눈보다 더 내 눈 같은 별 내 노래보다 더 내 노래 같은 바람 돌아보면, 옛사랑 나는 개미처럼 절실했어 그래, 절망에 꿀을 입혀 꿀떡 삼킨 사랑 내가 사랑한 건 결국, 네가 아니라 그리움이었어 난 막연한 니힐리스트가 아니야 그림자보다 더 그림자다운 나를 분명히 보았거든 그리고 턴테이블의 거듭 튀는 음반처럼 나 지금 생의 한가운데를 걷고 있어요 - 재즈3 (p.65) - 추억은 과거 속에서 가장 아름답다. 추억은 추억이란 이름 속에서만 빛이 날뿐, 억지로 끄집어 올린 현실 안에서 추억은 그 생명력을 잃는다. 아니, 현실이 되어버린 그것을 우리는 더 이상 ‘추억’이라 하지 않는다. 그리운 것은 그리운데로, 절실한 것은 절실한데로, 그 자리에 있어야 할 것은 그냥 그대로 두는 것이 좋다. 늘 나의 중심축을 이루는 것은 언제나 추억이었고, 그것이 생의 한가운데를 걷고 있는 내가 중심을 잃지 않도록 하는 이유이다. 반짝반짝 빛나는 옛사랑의 추억 또한 그러하다. 시간으로의 뒷걸음질. 역으로의 주행. 오늘의 나를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시간. 이 모든 것을 허락하는 유일한 것은 ‘추억’이란 이름으로다. 갑자기 뒤통수가 간지러워짐을 느낀다. 뒤를 돌아보라는 신호다. 잠시 눈을 감고 스쳐지나온 것들을 위한 시간을 보내야겠다. 기억이 추억이 될 때 그것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왠지 예쁜 포장지에 리본하나 둘러주는 듯한 기분이랄까?
|
|
<결혼은, 미친 짓이다>의 영화감독 유하. 그는 영화감독 이전에 시인이다. 그런데 나는, 그를 시인 이전에 영화감독으로 먼저 알게 되었다. 그런데 또 나는, 그를 영화 이전에 시로서 처음 만나게 되었다. 시인 유하는 "세운상가"로 대표되는 지하세계에서 재즈나 비틀즈, 룰라의 김지현 등의 대중문화와 너무도 맑은 유년 혹은 세운상가의 흘러간 어제를 사유하고 노래한다.(이 시집의 전체적인 구성은 재즈를 닮았다.) 세운상가는 이 시대의 뒷골목을 상징한다.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은 의미를 가진 것처럼, 세운상가는 욕망과 일탈의 숨겨진 천국이고, 또한 지옥이다. 중고 제품, 해적판과 포르노의 세계가 세운상가의 세계이다. 우리 모두에게 있는 세운상가는 개인의 음산한 몽상과 금지된 일탈에의 욕망의 지하실이기도 하다. [인상깊은구절] 내 청춘의 레지스탕스, 지상 위의 난 햇살에 의해 남김없이 저격되었지 세상의 열병이 내 몸 속에 들어와 불을 밝혔네 금지된 生의 집어등이여, 지하의 모든 나를 불러내다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