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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고 있는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어떤 사회일까? 일전에 읽은 [그대의 꿈이 현실이다]란 책에서 저자 이종철은 대한민국을 놓아버리자고 한다. 꿈이 없는 사회, 수능이라는 원샷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사회, 그런 대한민국을 그대로 두고 나만의 대안구조를 만들자고 한다. 그런데 현직기자가 쓴 이 책에서는 저자는 다른 대한민국에서 살고 싶다고 말한다. 나 또한 대한민국을 놓아버리고 싶고, 가능하다면 다른 대한민국에서 살고 싶다. 그 대한민국이 지금의 대한민국보다 더 가난하고, 더 궁상맞을지라도 꿈이 살아있고, 정의가 살아있다면 말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이 기자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것, 그리고 대한민국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모습인지를 통렬하게 파헤친다.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겪을 수밖에 없는, 그렇지만 이 사회에서 살기 위해서 가져야 할 규범들의 일그러진 모습들을 하나하나 들춰낸다. 우리 또한 그런 사회 속에서, 그렇고 그런 규범들과 상식 위에서 살고 있으니, 그만큼 불편할 수밖에 없는 내용들이다. 그러한 위선, 문화, 그리고 말 같지도 않은 규범과 상식들 속에서 저자는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고 있다. 그녀는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상처에 소금을 뿌리며, 우리 모두의 성찰을 바랄 뿐이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조직에 묻혀서 살아왔다. 각종 동창회, 향우회, 학벌, 이런저런 모임들, 그리고 우리가 호구지책으로 삼는 회사라는 조직에 이르기까지. 조직이라는 것, 어찌 보면 나를 감싸주는 외피이기도 했고, 내가 이 땅에서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주는 성채라는 생각도 든다. 우리는 그런 조직에 들어가기 위해 공부하고, 또 열심히 살아간다. 조직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 그것은 바로 패자의 다른 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조직에 들어가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보장되지 않는다. 거기에는 그만한 대가를 필요로 한다. 우리는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나이를 기반으로 하는 비합리적인 권위주의를 지속적으로 학습하고 있다. 저자는 이를 장유유서라는 유교식 규범 속에 자리잡고 있는 권위주의로 보고 있다. 모든 것이 나이와 세월에 의한 질서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만큼 편한 것도 없다. 어렸을 때는 알아서 기고, 윗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다 보면 세월이 지나고, 이제는 내가 그 자리에 오르기 때문이다. 상식은 온데간데 없고, 오직 나이의 힘만이 있을 뿐이다. 어쩌면 사람들은 자신의 권위와 체면이 손상될지 모른다는 것, 그것은 자신의 좌절을 의미한다는 것임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그 권위를 붙들고 있는 것 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권위주의에 일조를 하는 것은 한국사회가 지독한 경쟁사회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양성이 사라진 원 스탠더드를 강요하는 사회, 승자와 패자가 원샷에 결정되는 사회, 알게 모르게 선이 그어져 있는 사회, 우리라는 의식에 함몰된 사회이다 보니 사람들은 조직에 순응하고, 조직 내에서 지시하고 이루어지는 것들이 아무리 비합리적인 것 이라도 상식으로 통한다. 인생의 가치와 목표를 스스로 결정하기 보다는, 조직과 집단사회에 의해 결정되는 사회 속에서 우리들은 살아가고 있다. 개인으로의 삶보다 우리로의 삶이 더 중요한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와 남을 가른다. 거기에는 어떠한 의심도 허락되지 않는다. 그어진 선에는 일탈되는 순간 그에게 사회는 지옥으로 변한다. 그리하여 싸가지 없다는 말을 듣는 순간, 왕따는 물론 어느 누구도 그에게 아는 척도 하지 않는다. 선 밖으로 내 처진 그가 이 사회에서 정상적으로 살아갈 방법은 없다. 따라서 사람들은 우리라는 그어진 선 밖으로 내동댕이 처지지 않기 위해서 필사적일 수밖에 없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들어 이러한 권위주의적 잔재들에 대해 설명한다. 타대학 출신인 그가 서울대 대학원에서 경험한 기막히는 승자들의 논리, 기자생활 초기 조직사회의 문제아로 찍힐 수밖에 없었던 위계의 논리, 그리고 미국 연수기간 중 교제한 미국 사람들과의 경험은 한국사회가 얼마나 권위주의적이고 위계질서가 엄격한 사회인지를 알려주기에 충분하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들이 아침에 눈을 떠서, 저녁에 잠들 때까지 누구나 보고 듣는 일상의 문제들이다. 그러기에 우리들은 당연시 여기기도 하고, 거기에서 어떤 문제점도 찾지를 못하는 것 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지옥이라 말들을 하면서도, 그렇게 만드는 권위주의와 집단주의에 대해서는 일말의 의심도, 분노도 하지 않고 있다. 내가 합리적이라고 믿어온 규범들이, 내가 상식이라고 생각해온 것들이 오히려 나 자신을 이러한 권위주의에 더 얽매이게 만들지 않았나 싶다. 저자는 우리에게 ‘차이’ 공감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있다. 나와 너는 서로 다를 수 있다는, 그 사실을 먼저 인정할 때 획일성이라는, 우리라는 그어진 선에서, 그리고 권위주의로부터 탈피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 조금만 옆을 보고 가자고 한다. 앞만 보고 가던 눈을 돌려 조금만 옆을 보면, 우리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대한민국에서 살수 있다는 말이 가슴속에서 회오리 치고 있다. 나 또한 어렸을때는 싸가지 없다는 말을 너무도 많이 들어왔기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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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익숙한 것 그것은 문화의 일부일 수 있고 습관일 수 있고 생활일 수 있다. 그렇게 살아온 세상이 꼭 나쁘다고 할 수는 없는데 이렇게 책으로 읽어보니 다른 나라와 많이 다르구나 이렇게 보면 나쁠 수가 있구나 하면서 읽었다. KBS 박 에스더 기자가 쓴 대한민국. 그녀가 말하는 회사 혹은 사회, 가정과 가족, 다른 나라 등의 이야기를 보며 이렇게 다르게 볼 수도 있구나 느끼기도 하고 혹은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공감하기도 했다. 사회 생활이 10년이 넘으니 이젠 어떤 일을 당해도 크게 당황하지 않는다. 소위 짬밥이 되니 당황해서도 안 된다. 간혹 얼굴이 확 달아오르거나 심장이 벌렁거려도 절대 얼굴에 티 내지 않고 잘 처신하게 된다. 난 포커페이스 기질이 있나 보다. 뻔뻔해지는 것도 있고 그렇게 배웠나 싶기도 하다. 회사에 들어와서 처음 한 달은 너무 힘들었다. 일이 없어서.. 일이 없으니 눈치를 보게 되고 이 방 저 방 기웃거리며 도울 게 없는지 묻기도 했다. 그러다 차츰 일이 늘고 간혹 다른 부서의 일이 겹쳐서 우선 순위를 따지기 힘들어서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지기도 했다. 지나고 보면 별거 아닌데 그땐 참 힘들었다. 아무튼 그때의 책임자는 놀 때 놀고 일할 때 일하고 회의와 맛난 음식 좋아하는 그런 분이었다. 회의 시간에 뜬금없는 질문에 분위기 파악하느라 웃지도 못하고 정말 진지하게 답했던 기억이 난다. (회사가 뭐라고 생각해? 행복이 뭐지? 어떤 아내가 되고 싶어? 등) 분식집만 다니다 맛 집을 다니던 때이니 이 아니 황홀하지 않을 소냐 누리고 다녔다. 단 그는 ‘뛰어! 빨리!’ 라는 말을 입에 달았는데 일을 시킨 후 어떻게 해볼까 생각을 하고 있는데 ‘다 했냐?’ 라고 물어보기 일쑤다. 근데 이건 모든 매니저들이 다 그렇다고 들었다. 간혹 맘에 안 들어도 또 많이 쓰는 말인 (물론 그는 이 말을 쓰지 않았다) ‘야, 까라면 까’에 맞춰 그저 조용히 엎드려서 일을 끝냈다. 다른 곳에 비하면 그다지 심하지 않다 해도 사회초년생이 겪기엔 좀 너무 낯설었다. 이거이 바로 상하 위계 질서에 의한 권위주의였구나 싶다. 우리의 낮은 행복지수 (가진 게 많아도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가진 게 많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으니 행복하지 않다) 승자들의 두려움인 배타주의 그리고 지독한 경쟁문화 (태어나는 날도 점보고 잡고 태어나서의 교육과 취업 그리고 결혼까지 우리는 경쟁하며 비교하며 그렇게 산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강한 애착 (동시에 부모와 자식 모두 각자의 인생을 독립적으로 끌고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낳는다. 아이는 제2의 나도 아니고 내 소유물도 아니다. 좀더 떨어져서 아이를 볼 필요가 있는데..) 단일가치에 맞추어 사는 사람들 (개인의 생각보다는 조직이나 소속된 단체의 생각을 그저 떠드는 사람들) 그래서 간혹 이상한 눈으로 보게 되는 소수자들. 제일 공감한 건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말. 그저 튀지 않고 살면 된다는 그런 말이 언제부터인가 내 맘속에 들어와있어서 난 그저 튀지 않고 조용히 그냥 지내왔다 싶다. 물론 간혹 용기를 내기도 하지만 그건 용기라기보다는 익숙함이다. 하는 일에 몸과 마음이 익숙해지니 목소리가 조금 커지고 사실 손해 보려고 안 한다. 그 외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작가의 생각 프랑스의 부르카 착용 금지 – 겉으론 여성에 대한 부당한 억압을 막고자 함이지만 결국 무슬림 차별이라는 게 드러난다. 다양한 문화에 대한 관용의 나라의 이중적인 모습을 고발했다. 미국과 캐나다 - 녹아 드는 항아리와 모자이크 (다양한 사람들이 섞이고 녹으면서 미국인이 되는 미국과 서로 다른 모양을 가진 조각이 그 조각들을 그대로 유지한 채 훌륭한 조화를 이루는 캐나다) 그녀의 생각과 다를 수 있다. 그렇다고 미국이 나쁘고 캐나다가 좋다는건 아닐테고 그런 모습을 볼 수 있다는 말이겠지. 작가의 직장 이야기로 시작하여 우리의 일상의 모습을 다양한 관점에서 보여주며 ‘나는 그저 나일 뿐’이라고 결론 내려준다. 책 표지 하단에 나온 ‘난 이 나라가 도통 체질에 안 맞아. 이민이라도 가고 싶어!’라고 용기 있게 말하지도 못하겠다. 나는 달라지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익숙한 것에 더 마음이 편한가 보다. 쌤앤파커스 감사합니다. ^^ 내가 가지고 있는 쌤의 책 에너지 버스 - 저의 '에너지 버스'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시가 마음을 만지다 - 나를 찾을 수 있는 편안한 책 아프니까 청춘이다 - 란도샘의 청춘 격려기 ‘아프니까 청춘이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 내 마음을 얼마나 아나요?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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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제도 중에서 마음에 맞지 않는것이 많아도 이 나라를 떠나서 살 생각은 해보지 않은것 같다. 한번씩 꿈꾸는 외국으로의 여행이면 몰라도. 개인적으로 우리나라가 그래도 살기좋은 나라라고 생각하며 살아오고 있다. 그런 와중에도 우리나라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많다. 끝없이 누군가와 비교하는 것도 그렇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 체면을 차리느라 자신이 정작 하고싶은 것도 못하는 사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중에 나도 하나이니 뭐 할말은 없다. 남의 눈을 의식하지 말자고 해도 어느샌가 '이런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생각때문에 머뭇거리는 나를 발견하니 말이다.
우리의 이런 마음들을 콕 찝어 말하는 책을 만났다. KBS 방송국의 출신의 박에스더라는 저자가 통쾌하고도 신랄하게 우리나라를 비판하며 더 나은 대한민국을 원하는 글 말이다.
작가도 말했지만, 외국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나이가 아주 많이 차이나는 사람과도 친구로 지내는 경우를 많이 봤다. 나이를 떠난 친구. 오히려 동년배의 친구보다 훨씬 깊은 우정을 나누는 사람.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은 나이 많은게 무슨 벼슬이라고 '너 몇살이야?' '머리에 피도 안마른것이'라는 말을 쓰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 내가 어른이 된다면 절대 나이 갖고 유세하는 어른은 되지않아야겠다는 다짐까지 할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의 내 모습을 제대로 들여다보면 어떤가. 무의식적으로 '내 나이가 몇인데.' 하는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는지.
보도국 기자로서 경찰, 법조, 교육, 국회 등을 출입해서인지 정치쪽으로도 통렬한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보수와 진보의 차이. 자신들이 맞다고 생각하며 국민을 설득해야할 그들도 자신들이 그어놓은 틀 안에서만 움직이고, 막힌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말에도 무릎을 쳤다.
자신이 진정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내 주변에서도 그렇고 많은 젊은 청년들이 공무원 시험 준비하는 걸 보았다. 요즘처럼 살기 어려운때에 대기업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이 좀더 나은 삶을 살아보겠다고, 월급 안나오는 일이 없는 일명 '철밥통'이라는 공무원 시험 준비를 위해 다들 머리를 싸매고 공부하고 있다. 취미가 무엇인지 자신이 진정 하고 싶은건 제쳐두고 부모가 원하기 때문에 공부하는 사람들 말이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 있는 이들에게 질문을 했다 한다. 무엇이 하고 싶었냐고. 어떤 이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하고 뭔가 다른일을 해보고 싶었다 한다. 외국같은 경우는 확실히 우리나라 사람들과는 다른 시각을 갖고 있다. 진정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게 마음처럼 쉽지 않는 일일 것이다. 나 또한 부모로서 아이들이 직업을 선택할때 교사나 공무원 같은 그래도 편해 보이는 직장을 갖길 원할테니까.
저자는 성에 대해서도 숨기려고만 하지 말고 터놓고 얘기하자고 말한다. 사춘기 아이들을 둔 부모 입장에서 저자가 말한 몇 가지를 여기에 써두고자 한다.
우리가 10대들에게 정말 가르쳐야 할 것은 (중략) 성은 나이나 결혼의 유무 같은 사회적 제약과 상관없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사랑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느끼는 감정이고, 성관계는 오로지 사랑하는 두 사람 사이에서 합의 하에 이뤄지는 배타적 행위라는 가장 원초적 진리를 가르쳐야 한다. (291페이지 중에서)
성적 감정은 육체적 본성의 성격도 동시에 갖고 있어 절제를 훈련할 필요가 있다는 것, 또 성관계는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책임이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는 것, 임신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갖고 그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것 등을 가르쳐야 한다. (300페이지 중에서)
우리가 우리나라라고 부르는 대한민국이 좀더 변했으면 하는 의도에서 이 글을 썼다고 했다. 우리와 상대방의 많은 '차이'를 인정하고 좀더 변화되는 대한민국을 누구나 꿈꾸어 보자고 한다. 나도 대한민국이 좀더 변했으면 한다. 변화의 과정에서 다른 이와의 '다름'을 진심으로 인정하는 것을 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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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나는 나에게 물었다. 대답 없는 물음, 그게 반성이든지 회한이든지, 하다못해 변명이든지, 나는 지금 어떤 상황에 놓인 사람인가, 나는 누구인가, 나의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서글펐다. 일면 참 열심히 살아왔노라고, 성실했노라고, 체제에 순응하기 위해 애썼노라고, 부모님과 선생님과 교과서와 나라가 시키는 대로 참 잘 따르면서 살아왔노라고 생각했는데, 나는 내가 참 모범시민이라고 생각했는데, 드러난 애국자는 못 되어도 말없는 착실한 국민이라고는 생각했는데,... 그랬는데....
오래 전부터 가끔 그러기는 했다.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시키는 대로만 살면 안 되는 게 아닐까, 뭐라고 말도 좀 해야 하고 비판도 할 줄 알아야 하고 나서기도 해야 하고 불만이나 불평도 표현해야 하고 다투기도 해야 하고 주장도 해야 하고 그러면서 좀더 나은 결과를 얻기 위한 실제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만 하다가 망설이다가, 그만 입 다물고 멈추었던 날들.
이 책을 읽고 있는 동안 그렇게 살아온 나의 모든 날들이 되살아나면서 나에게 묻는 것이었다. 내가 바로 그랬구나, 이 책에서 작가가 말하고 있는 답답하고 한심한 사람의 전형으로 살아왔구나. 막연하게 그런 점을 인식하고는 있었지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애써 무시하고 잠재우려고 했지만(그 동안 이런 생각을 일깨우면서 부끄럽게 느끼도록 하는 책을 더러 읽었으니까) 이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그렇게 되지 않았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한 줄 한 줄마다 나를 향해 묻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신, 이러고 살아오지 않았는가, 괜찮던가,... 책을 손에서 놓을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새로운 다짐을 강하게 하면서 이제부터 변하겠노라고 스스로에게 말할 수도 없었고, 그만 온통 서글퍼지는 것이었다. 아, 나의 조국 대한민국이 바로 나에게 이런 서글픔을 주는구나 하면서.
대단한 사람이다. 이런 글을 발표할 수 있을 사람이라면 생각이든지 실천하는 태도든지 나같은 사람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경지의 사람일 것이다. 무섭기도 했고, 존경스럽기도 했고, 주눅들기도 했고, 몰래 숨어서 계속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바로 그것, 당당하게 나서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게 아니라 몰래 숨어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 그게 바로 나의 속성이라는 것. 이것을 인정하면서 수십 년 동안 내가 배워 온 모든 것들이 얼마나 나를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좀처럼 바뀔 수 없다는 기나긴 가치관의 형성 과정 말이다.
이미 늦었을까. 나는 이제 안 되는 것일까. 내 아이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도 이미 내가 가진 기득권에 따른 방침을 주입시켰을 텐데, 그들에게 내게 없는 새로운 변화의 시각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일까. 나는 못했으면서 너희들은 해라 그렇게도 못할 것이고, 그러면 또 그만큼 우리 사회의 속도는 느려지거나 후퇴할 텐데, 이래서야 우리 대한민국이 지금과 언제 어떻게 얼마만큼 달라질 수 있을까. 달라지기는 할까, 아, 아득하기만 하다.
작가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지금의 우리 나라가 싫어서 떠나고 싶다는 게 아니라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느끼게 해 줄 수 있는 나라로 바꿀 수 있도록 모두 힘을 모으자고 말하는 것일 게다. 공감한다. 절대적으로 지지한다.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후회했으리라 싶을 만큼 간절하게 응원의 뜻을 보낸다. 그럼에도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 자신있게 말하지도 못하겠고, 내세우지도 못하겠다. '나는 지금 못하겠으니, 당신들이 좀 해 주시오' 바로 이렇게 비겁하게 숨어서 기원하는 소심한 시민 하나. 내가 서글픈 이유이다.
쉽게 바뀌지 않으리라, 내 의식. 편견과 이기심과 기득권(지금 가지고 있는 것도 가진 것이라고)이 나를 살아있게 해 왔던 만큼, 상황에 따라 처지에 따라 변명을 하든지 어쩌든지 내 이익에 맞추어 조정하리라. 그리고는 스스로를 위로하겠지. 어쩔 수 없었노라고. 그래도 의식만큼은 되살려 두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 내게 이런 속성이 있구나, 내가 지금 이런 변명을 하고 있구나, 내가 또 비겁했구나,...그렇게라도 하면 좀 나아질까, 다른 사람과 다른 상황을 조금 더 이해해 줄 수 있을까,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사람과 더불어 행복해질 수 있을까...
나는 대한민국에서 계속 살아가고 싶다. 다른 누가 우리 대한민국을 바꿔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살기 위해서는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바꿔 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의식의 변화, 참 무겁고도 무거운 말이고 숙제이다. 나는 아직 멀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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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른 대한민국에서 살고 싶다>는 책제목만으로도 공감이 간다. 분명 나는 나의 조국 대한민국을 사랑한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태어난 것에 대해서도 감사드린다. 애국가를 들어도 가슴이 찡해져 온다. 해외여행길에 '삼성', ' LG' 등의 광고 간판이나 상품들을 보게 되면 코끝이 찡해져 온다. 누군가 "대한민국"에 대해서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거나, 나라 이름만을 알아 주어도 어깨가 으쓱해진다. 그런데, 이 책 제목이 너무도 가슴에 와닿는 것이 과연 왜 그럴까? 나뿐만 아니라 이 책의 제목을 접하게 되는 사람들은 한 번쯤은 마음 속으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어쩌면, 내 맘을 저렇게 잘 표현했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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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인가, 어린 유아들이 여름 캠프를 갔다가 밤에 화재가 나고, 이에 희생된 아이들이 있었다. 희생된 아이의 엄마는 대한민국을 버리고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갔다. 그 마음이 오죽 했을까? 분명히, 우리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국민들은 내 조국을 사랑한다. 그러나, 너무도 많은 문제들때문에 조국을 등지고 싶을 때가 많이도 있다. 이 책의 저자인 박 에스더가 이런 떠나고 싶은 대한민국,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대한민국에 가지고 있는 고질병들에 대해서 명쾌하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 대한민국은 왜? 이러 이러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가?, 그것을 어떻게 풀어 나갈 것인가?" 이 책을 읽어 보면 저자는 대한민국을 떠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다른 대한민국으로 거듭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책 뒷표지 글처럼 "독약같은 애증의 에세이" (김병근의 추천사 중에서) 인 것이다. 저자인 박에스더. 책을 읽으면서 그녀가 누구인가를 알 수 있었다. KBS 9시 뉴스를 시청하는 사람이라면 그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저자는 KBS 보도국 시자로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중에 파키스탄 종군기자로 갔었으며, KBS 최초의 법조 출인 여기자, 2004년부터 약 4년간에 걸쳐 KBS 라디오 ' 라디오 정보 센터'를 진행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인터뷰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1년간의 미국 연수를 다녔와서 지금은 '취재파일 4321'를 맡고 있다. 이 책은 그녀의 체험담이 바탕에 깔린 이야기들이 주축을 이루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파헤치는 내용들이다. 책의 구성은 5 part 로 나누어져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를 말하고 있다. 권위주의, 집단주의, 합리성의 부재, 비교, 차별. 특히, 여자이기에 성차별을 받았던 경험들이 많이 소개된다.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고, 다르다고 잘못 된 게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며, 어떤 가치든 일단 존재해야 토론과 합의가 가능하다는 것...." (프롤로그 중에서) 장유유서를 통해 우리 사회의 헤체되지 않은 권위주의를 생각해 본다. 사회생활 속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위계질서, 남녀 차별, 폭탄주 문화까지. 그 속에 저자의 체험은 당연히 그 부분을 차지하고, 그렇기에 그런 문제점을 파헤치고 분석하는 수준이 남다르게 날카롭다. 장유유서는 권위주의적 문화, 상하 위계적 문화를 존속시키는 데 가장 일반적인 규범 효과를 가져다 주는 것이지만, 권위주의가 사라지지 않는 것은 자신이 당했던 젊은 시절의 일은 세월이 지나면 자연스레 없어지고, 자신이 권위주의자의 수혜자로 바뀌어 버린다는 것이다. 아마도, 직장생활에서 이런 경우를 많이 보아 왔을 것이다.
또한 우리들은 다양성이 없는 사회에 살고 있다. 가정만 보아도 집의 규모만 다를 뿐 거의 비슷한 가구에 비슷한 인테리어에, 비슷한 패턴의 가정생활이 이루어지고 있다. 학생들도 마찬가지. 학교 공부나, 학교 밖의 공부나, 모두가 비슷비슷. 개성이 없는 것이다. '단일 가치'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다양성'을 두려워하기까지 한다. 다양한 사고, 다양한 생활방식,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임은 알고 있지만, 자신들은 단일가치 속에 얽매여 살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아마도 이부분의 내용만 잘 숙지해도 이 책을 읽은 보람이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엄마라는 이름의 사람들. 그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아닐까. " 자신의 인생에 대한 엄마의 영향력과 자식의 인생을 위한 엄마의 희생 (...) 그런데, 그 희생은 무조건적인 희생이 아니다. 때로 조건이 붙는다. (...) 우리가 이만큼 희생했으니, 너희들은 우리가 바라는 삶을 살기 바란다. (...)" (p. 131) 자식은 결코 부모들에게 속한 존재인 소유물이 아니다. 자신의 인생이 투영된 또다른 자신이 자식이라고 생각하면 안될 것이다. 이부분을 읽고 마음에 가책이 드는 부모들은 반성하고, 자식을 그들이 가고 싶은 길로 갈 수 있도록 풀어주면 좋으련만. 저자가 <라디오 정보센터 박에스더입니다>를 하면서 인터뷰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을 접하게 되는데, 그중에서도 정치인들은 정당의 입장은 있지, 자신들의 소신이 없었음을 토로한다. 우리나라는 자신의 소신을 밝히는 매버릭(maverrick: 소속된 조직의 입장과 다른 자신의 소신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은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를 우리는 TV토론을 통해서 많이 보아 왔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의 part 5는 성과 결혼에 관한 이야기, 외국인을 대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야기, 여성들에 대한 차별 등을 다루고 있다. 앞의 내용들보다는 좀 가벼운 것같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내용들이다. 우리 사회의 성문화가 예전과 같지 않고, 결혼보다는 동거를 선호하게 되는 것, 그리고 동성애에 대한 저자의 생각, 미혼모 문제, 낙태문제 등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상당히 진보적인 성향을 띠고 있다. 한국 여성들이 '결혼 파업'에 들어갔다, '파업'이라고 부를 정도로 심각한 문제인 여성들의 결혼. 저자는 이 모든 것들을 단일 잣대로 바라보지 말고 모든 것에는 차이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으로 부터 출발해야 무언가를 이룰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저자의 생각에 공감이 가는 부분들도 많지만, 어떤 생각에 대해서는 아직 공감이 되지 않는 부분들도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해될 수 있는 것과 이해되지 않는 것, 공감할 수 있는 것과 공감할 수 없는 것들이 나에게는 있다. 저자가 책의 앞부분에서부터 수차례에 걸쳐서 자신을 싸가지 없다고 이야기한 이유가 때론 이유가 있음을 느끼게 해주기도 한다. 자기주장이 상당히 강하기에 때론 싸가지 없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는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저자는 자신의 생각에 확신이 있다. 그리고 대한민국을 사랑하기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많은 문제점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것들을 조목조목 따져서 바꿀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저자가 말하는 "다른 대한민국"은 언제쯤 실현 가능한 것일까? 아니, 그런 "다른 대한민국"이 있기는 있는 것일까? 그래서 마음이 더 답답한지도 모르겠다. 나도 " 다른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다." 그런 "다른 대한민국"이 있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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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에스더 기자가 현재 대한민국의 병폐에 대해 고발한 글들이 모여 있다. 권위주의, 혈연지연주의, 집단주의, 가족이기주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몸부림, 겉다르고 속다른 도덕윤리 적용, 성에 대한 이중적 잣대, 패자부활전이 없는 승자독식 사회, 교육문제,,,, 저자는 지금 이 자리 이 순간의 많은 문제를 거론한다. 대강대강 기본 의식있는 정도까지 문제를 지적하고 서둘러 화합으로 마무리하거나 뻔한 계몽같은 결론을 내지 않아서 좋았다. 그런데 예상 외로 이 책의 판매지수가 낮다. 저자의 지명도도 있고, 쌤앤파커스 사의 능력도 있는데. 의외다. ( 사실,,, 책 내용이 시원시원하기는 한데 뭔가 부족한 느낌이다. 이유가 뭘까. )
권위주의적인 문화가 쉽사리 없어지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런 것이다. 당했던 사람들도 세월만 지나면 자연스럽게 그 수혜자가 되기 때문에 나이가 들면 들수록 젊은 시절의 치기를 잊어버리는 기억상실증에 빠져간다. 그리고 한번 거기에 맛을 들이면 그 권위가 무너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게 된다. - 62쪽
한국인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프로젝트를 수행하듯, 마치 숙제하듯 인생을 산다. - 78쪽
조금이라도 기득권을 가졌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속한 영역의 진입장벽을 철저히 높여 놓는다.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 배타주의만큼 좋은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 98쪽
장유유서라는 미명 아래 상처투성이 개인사를 극복 못한 '몸만 어른'들의 이기적 언행을 참고 봐 주어야하는 현실이 짜증나던 참에 읽었다. 다 맞는 소리였다. 내가 생각하는 문제점을 다른 분의 눈으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책을 권해주신 생소해님께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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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를 보면 볼수록 답답하다. 두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있다. 저 손 좀 치웠으면 좋겠다. 눈 가리고 있는 당사자도 안 보여 답답하겠지만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사람도 답답하다. 이 책을 읽으며 왜 저런 사진을 표지에 사용했는지 조금 이해할 것 같았다. 스스로 눈을 뜨라는 것, 그리고 눈 좀 뜨라고 말하라는 것. 장유유서 '장유유서(長幼有序)'는 '오륜의 하나로 어른과 어린이 또는 윗사람과 아랫사람 사이에는 지켜야 할 차례와 질서가 있음을 뜻한다'고 한다. 이것은 '찬물도 위아래가 있다'라는 말과 통한다. '아무리 목말라도 어른에게 먼저 물을 드린다'는 것은 어른을 공경하는 아름다운 풍경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요즘 젊은이들이 어른들을 무시하고 예의없게 대하는 면이 있어서 장유유서를 강조하는 경우가 있다. 장유유서에는 젊은이보다 상대적으로 힘없고 약한 어른들을 먼저 배려한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약자를 먼저 배려하는 것은 아름다운 모습이다. 장유유서는 예절이나 도덕적인 면에서 보면 누구에게나 권장할 만하다. 하지만 장유유서가 옳고 그름을 가리는 일, 업무적이거나 능력을 판가름하는 경우에 적용되면 어떨까? 흔히 언쟁을 하는 모습을 볼 때, "너 나이가 몇이야?", "머리에 피도 안마른 것이" 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언쟁을 한다는 것은 둘 사이에 불화가 있었다는 얘기고 누군가 다른 이를 불편하게 하거나 부당한 일을 당했을 확률이 높다. 그런데 그런 시시비비를 가리는 자리에서 '나이'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그렇다. 저자는 처음에 '장유유서'를 꺼내며 이 책을 시작한다. 옮고 그름을 가릴 때는 논리와 근거로 싸워야지 '나이'를 먼저 물어서는 안 된다는 게 저자의 얘기이고 나 역시 그것에 동의한다. 장유유서가 도덕을 벗어나서 적용되는 순간 독이 되는 것이다. 나이가 많다는 것은 존중받을 만하다. 하지만 나이가 많다고 해서 잘못을 용서받거나 평가에서 가산점을 주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그 경우에는 장유유서는 자유, 평등, 정의, 인권, 다양성 등의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들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불편한 얘기들 저자는 스스로 liberalist, 자유주의자라고 말한다. 저자는 장유유서가 얼마나 한국(우리나라라고 하지 않고 한국이라고 하겠다) 사회에 뿌리깊게 퍼져 있는지 이 책을 통해 알려준다. 장유유서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삼강오륜, 유교가 나온다. 조선은 유교를 국교로 삼았고 그 체제를 약 600년동안 유지했다. 조선이 끝난 해가 1910년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103년 전이다. 약 600년동안 유지했던 유교 문화가 103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에 존재한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문화는 쉽게 변할 수 없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조선은 유교라는 하나의 이념으로 통치한 나라다. 이제야 조선후기 실학자들이 왜 유교문화를 반대하고 싫어했는지 이해가 간다. 장유유서는 예절에서만 적용되고 시시비비를 가릴 때는 적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유교에 있지 않을까? 조선후기에 조선의 유교는 너무 폐쇄적으로 변한 게 아닐까? 하여튼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에 '장유유서'와 유교문화는 분명히 존재한다. 바로 지금 2013년 3월에도. 그리고 그것은 민주주의의 핵심가치들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일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얘기를 왠만하면 꺼내려 하지 않는다. 나 역시 그렇다. 불편한 얘기들이다. 술자리에서나 얘기할 만 하다. 뭐가 그렇게 무서울까? 이 책에는 우리나라에서 태어나서 자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법한 이야기들이 써 있다. 어찌보면 속시원하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런 얘기를 감히 공공연하게 떠벌리거나 책으로 낼 생각을 한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해봐짜 먹히지고 않고 욕만 먹을 게 뻔하고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자유주의자이기도 하지만 용기있는 사람이고 다른 대한민국을 꿈꾸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저자는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사랑하지 않으면서 이런 책을 쓰기 힘들 것이다. 읽었던 책 다시 읽는 느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전에 읽었던 책을 한 번 더 읽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분명 이 책을 처음 읽는데, 왜 그랬을까? 나에게 물었다. 나는 이미 30년 넘게 대한민국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내가 읽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책에서 감추고 싶은 불편한 부분, 아픈 부분들이 이 책에 있다. 이 책은 다시 그것들을 끄집어내어 나에게 하나하나 알려주고 아프게 한다. 마치 읽었던 책 다시 읽는 느낌이다. 권위주의, 왜 후배 기수가 승진하면 선배기수 판검사들은 옷을 벗을까? 튀지 마라, 중간만 해라. 군대문화(상명하복, 폭탄주 문화), 권위주의는 진보쪽에도 있다, 의심하지 말고 그냥 따라라, 형식주의(의전하다 날 샌다), 하나의 기준만 강요한다(공무원들은 대부분 자신의 꿈을 접고 공무원됐단다, 하긴 공무원이 꿈이라는 어린이는 못 봤으니까) 남들과 비교하고 경쟁하는 대한민국, 승패에 대한 지독한 집착(정당하지 않아도 이기기만 하면 돼), 대한민국 교육은 내 의견을 가지라고 하지 않고 하나의 기준을 강요한다, 자신의 의견이 없는 아이들, 삐뚤어진 민족주의, 감추고 왜곡된 성문화 등. 진짜 바보 이 책은 많이 불편하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온 대부분에 나는 공감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원칙과 법에 위반되는 일들이 대한민국에 존재한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은 알고 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괜히 그런 거 끄집어내서 시끄럽게 하지마. 그래봐짜 바뀌는 거 없어. 계란으로 바위치기야. 너만 바보될 거야." 내가 생각해도 바보될 확률이 높다. 하지만 그런 바보들이 많아지면 어떻게 될까? 만약에 당신이 12년동안 하나의 사고방식을 주입받는 교육을 받았다는 것을 알았다면? 많은 사람들이 이런 감옥같은 교육 현실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앞으로 고쳐질 것 같지 않다. 대한민국의 미래이자 희망인 아이들에게 꽉 막힌 교육을 하고 있다는 걸 아는데 왜 고치지 않는가? 이게 진짜 바보 아닌가? 경쟁 또 경쟁, 비교 또 비교, 오직 1등을 위해, 서울대에 가기 위해. 의사나 검사, 판사, 공무원이 되고 싶지 않아도 그 길을 가야 한다. 그래야 한다고 부모와 대한민국이 떠밀고 있다. 자신의 인생과 꿈을 모두 저당잡혔다는 것을 알면서 항의하지 않는다면 이게 바보가 아니고 뭔가? 대학생이 될때까지 피임기구 사용법을 모르고 화장실에서 아이를 낳고 낙태하고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은 그 아이가 당신의 아이라면? 당신은 바보가 안 될 자신이 있나?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은 나라를 위한 정책을 펼치고 있으니 따라와 주라고, 국민들의 반대가 심하지만 결국 나중에 이것이 국가를 위한 길이었음을 알 것이라며 나라를 운영한다. 이건 조폭, 사기업에서나 일어날만한 일이지, 민주주의 국가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4대강 사업, 미국산 쇠고기 개방, 한미 FTA도 무조건 밀어부친 결과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남이가?", "우리가 남이여?"라며 무조건 한당에만 투표한다. 이러면 정치가 바뀔 리가 없다. 이런 비합리적이고 비민주적이고 정의롭지 못한 것에 항의하지 않는 게 진짜 바보가 아닐까? 직장에서 입바른 말 하면 선배 공경할 줄 모르는 싸가지 없는 후배라는 소리를 듣기 쉽다(아마 이런 얘기 책 한 권 쓰신 분들 여럿 계실 거다). 중년 남자들의 성매매는 용인하는 면이 있다('안마'는 안마만 하는 곳이 아니다). 여자들이나 어르신들은 성욕이 없나? 유전적으로 인구의 1~3%는 동성애자라고 한다. 대한민국에서 동성애자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얘기하는 것 조차 힘들다. 장애인과 미혼모들은 또 어떤가? 그들은 약자로서 멸시의 눈길을 받으며 살아야 한다(미혼모는 이혼모라고 속이는 게 더 속편한 실정). 이들이 당신의 가족이라면? 그러면 바보가 안 될 자신이 있는가? 그냥 '한'으로 '팔자'로 생각하고 조용히 사는 사람들 그들이 진짜 바보가 아닐까? 민주주의는 몹시도 시끄럽다는 것 저자는 민주주의는 지독히 시끄럽다고 한다. 여기저기서 자신의 의견을 내놓고 경합하고 서로 타협하고 그러면서 해결책을 만든다. 정-반-합의 원리다. '반대'와 '견제'가 있어서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는 '반대'를 찾기 힘들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기준(원 스탠다드)에 따라 살도록 교육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생각을 갖거나 의심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배웠기 때문일 것이다. 그냥 대한민국이 세뇌한 하나의 기준대로 따라서 사는 게 편하다고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굳이 "나 반대입니다.", "이건 문제가 있습니다."라고 말하기 어렵다. 다행히 요즘 인터넷과 SNS로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변화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즉, 자발적으로 바보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다(누가 진짜 바보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문제는 드러낼수록 작아지고 숨길수록 커지는 법이다. 저자가 말하는 커밍아웃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아직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닌 것 같다. 도지사가 119에 전화해서 "나 도지사요"라고 인정받으려는 것을 보면 권위주의가 여전히 많은 것 같다. 나와 다른 생각들을 인정하는 문화가 빈약하다, 잘못된 것을 아는데도 드러내지 않는 문화. "너 몇 살이야?", "우리가 남이가?" 이런 말들이 줄었으면 좋겠다. 이제 앞으로 가능할 것 같다. 물방울이 모여서 돌을 뚫듯이. 한꺼번에 바꿀 수 없지만 조금씩이라도 변화해야 한다. 나는 지금까지 대한민국이라는 이데올로기에 따라 살아온 것 같다. 지금 생각하니 갑갑하다. 그리고 좀 억울하다. 그 젊은 시절에 다양성에 대한 교육을 못받고 살았으니. 책이란 좋은 것이다. 책을 읽음으로서 나는 나를 더 잘 알게 됐고 내가 사는 곳을 더 잘 알 게 됐고 다양한 삶을 알 게 됐다. 나는 학교에서 배운 것보다 책에서 대한민국을 더 잘 알게 되었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 권위주의, 1등을 향한 집착, 남과 끝없이 비교하고 경쟁하기, '우리가 남이가?', 공공연한 비밀들을 숨기려는 태도 등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 이런 것들은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과 관련된 것 같다. 이 세상에는 하나의 정답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정답이 존재한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 내가 옮다고 주장하는 것만이 옳은 게 아니다. 나와 생각이 달라도 남도 옳을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 또한 나와 겉모습이 다르고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다른 환경에서 자란 사람도 나와 같은 인격체로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 한국 사람들은 하나의 삶을 위해 노력하는 것 같다. 사람이 같이 살다보면 부딧치는 것은 필연적인데, 그 때 다름을 인정하는 것은 필수라고 생각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양한 의견이 표출된다. 그 때 역시 다름을 인정한 뒤에 토론과 타협을 거쳐서 합의점에 이른다. '다름을 인정'하는 것은 민주주의에서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서울대 가면 행복할까? 의사, 판검사, 공무원 되면 행복할까? 서울대 안 가도, 의사, 판검사, 공무원 안 되도 행복한 다른 인생이 있다면? 대학 안 가도 꿈을 키워가며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저자는 묻는다. 한국 사람들 행복한가? 결과는 아니었다. 전세계에서 행복지수가 최하위권이었다. 언제까지 가식과 모른체하는 가면을 쓰고 자신을 학대할 것인가? 남들과 다르게 말하고 행동하려고 하면 망설여진다. 마치, 낭떠러지에 서 있는 느낌이다. 아마 많은 분들이 그런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 까짓 것 한 번 떨어져 보지 라고 생각하지만 한 번 떨어지면 다시 올라오기 힘들다. 한국에서는 패자부활전이 힘들기 때문에. 이런 두려움의 원인은 대한민국에서 다른 생각갖는 것이 어색하기 때문일 것이다(그러니 제발 생각 좀 하고 살자). 눈을 감고만 있다가 뜨려면 두렵다. 그래도 조금씩 용기를 내보자. 지금과 '다른 대한민국'을 꿈꾼다면. 저자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제발 눈 좀 뜨고 이 부당한 현실을 바라보세요. 외면하지 마세요. 행동하지 않으면 바뀌지 않습니다." 나는 기꺼이 바보가 되겠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일인당 1표가 주어진다. 민주국가에서 투표로 무혈혁명이 가능하다. 우리는 바꿀 수 있다. 바보가 될 준비가 되어 있나?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바보였다. 그런 바보는 한 명으로 족하다. 우리 모두 '다른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다. 나는 '다른 대한민국'이란 '다름을 인정하는 대한민국'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대한민국에서 살고 싶다. 이 책은 대한민국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공론화하기에 꺼려지는 것들이다. 대한민국의 어두운 모습들이다. 이런 모습은 어느 나라나 어느 정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보수도 진보도 어느 편도 아니라고 한다. 신입시절 그녀는 입바른 소리를 해서 싸가지 없는 후배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이제 그녀는 대한민국을 향해 입바른 소리를 하고 있다. 이제 누가 그녀에게 싸가지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이제는 적어도 그녀에게 "너, 몇 살이야?"라며 장유유서를 가르치려 드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저자가 바라는 것은 단지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의 원칙들이 지켜지는 것이다. 저자는 그것을 위해 자신과 주변 지인들의 일들을 끄집어내서 호소한다. 나는 앞으로 박에스터의 팬이 될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기꺼이 바보가 되겠다, 다른 대한민국을 위하여. 현재의 대한민국도 나쁘지 않지만 박에스더가 말하는 다른 대한민국도 좋아보인다. 중요한 것은 시끄럽게 표현하고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얘기 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윽박지르지도 말고, 내 깃발 아래로 모이라고 다그치지 말자. "내가 되고 싶은 것은 의사나 판사, 공무원이 아니예요", "나 지금 많이 불행해요" 라고 말해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 대한민국, "다른 사람들은 안 그러는데 너만 왜 그러냐?"라고 물었을 때 "나는 다르니까요!"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대한민국을 꿈꾼다. 대한민국의 GNP를 높인다는 명목 아래 한국인의 행복이 희생되지 않는, 그것을 정당화시키지 않는 대한민국을 꿈꾼다. 어쩌면 조선시대부터 시작되었을, 대한민국을 둘러싼 지긋지긋하게 한국인을 옥죄고 있는 이 불편한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싶다. 더 공정하고 민주적인 대한민국을 위하여. 더 행복한 대한민국을 위하여! P.S 이 책을 읽으며 난 하나의 강박관념에서 벗어난 것 같다. '결혼적령기에 결혼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결혼을 안 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결혼 안 하면 바보되는 것 같고 문제있는 이상한 사람 취급받을 것 같은 생각이 있었다. 나 스스로 이런 생각에 갖혀 있었는데 이제 좀 자유로워진 것 같다. 책장을 넘기면서 책장이 두껍다고 느꼈다. '물 먹인다'는 것은 보통 경쟁 언론사들 사이에게 한 언론사의 기자가 특종을 해 다른 언론사의 기자들을 곤란에 빠뜨리는 상황을 설명하는 은어다. (29쪽) 여기자들은 가만히 있으면 중요한 일이 맡겨지지 않고, 뭘 좀 하겠다고 나서면 튄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던 시절이다. (32쪽) 대학원생 조교들을 비서 정도가 아니라 생활 도우미처럼 부리는 한국의 일부 교수들과 비교해보면 영 다른 문화다. (40쪽) 또한 유교적 윤리 규범들의 정신이 본래 아무릴 좋은 의미였다고 해도, 평등과 자유 등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기본 가치들과의 대립은 불가피하다. 유교 자체가 모든 인간을 평등하게 보기보다 구별과 질서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41쪽) 박노자 교수는 저서 <당신들의 대한민국>에서, (43쪽) 그러자 데스크는, "소통이 되든 안 되든, 그게 진심에서 우러나오든 아니든, 너느 나에게 항상 윗사람에 대한 예의를 갖춰. 그걸 하란 말이야."라고 일갈했다. (47쪽) 내가 모임에서 상석에 앉지 않으면 불편했던 이유는, 후배들로부터 그런 대접을 받지 못하게 될 경우 그것을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우습게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데서 오는 두려움 때문이었던 것 같다. (62~63쪽) 특정 기수가 서울지법 부장판사, 또는 지방법원장, 고등법원 부장판사 등의 승진을 할 때가 되면(사실 그런 게 기수에 따라 연차적으로 진행되는 문화도 우습다) 그 기수 가운데 승진에서 밀린 사람들이 단체로 옷을 벗는 것이다. (64~65쪽) 다만 한국 사회의 권위주의적 문화에 스며 있는 장유유서의 잔재, 즉 '찬 물에도 위아래가 있다'는 단순한 논리가 여전히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느 문화 속에서, 장유유서는 권위주의에 유죄다. (69쪽) 한국인들은 가진 게 많아도 행복하지 않다. 아니, 가진 게 많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으니 행복하지 않다. 저 위를 보면 내 인생은 항상 초라하니 행복하지 않다. 우리는 항상 위아래로만 사고하니 행복하지 않다. 내가 정말 원하는 인생을 살고 있는지 모르겠으니, 행복하지 않다. 아니 이제는 내가 정말 뭘 원하는지도 모르니 행복하지 않다. 누가 정했는지 모를 '성공의 길', 내가 정말 원하는지 아닌지도 모를 '잘사는 길'을 향해 허덕허덕 달려가며 끊임없이 패배감에 시달리는 한국인들. 그 지독한 비교와 경쟁은 도대체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80~81쪽) 하지만 나는 이런 주장을 두 가지 면에서 반대한다. 첫째는 죽도록 공부만 하지 꿈을 꾸지 않기 때문이고, 둘째는 죽도록 일해도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110쪽) 나팔바지를 입든 레깅스를 입든 나를 돋보이게 하는 옷을 입을 수 있도록, 남들의 사소한 일상에 시시콜콜 참견하는 일은 그만두자. 폭탄주를 마시는 사람들 틈에서 맥주를 선택할 자유도, 댄스곡으로 흥겨운 노래방에서 자신만의 가곡으로 분위기를 깰 자유도 보장하자. 스무 살에 결혼을 할 수 있듯이 쉰 살까지 혼자 살아도 문제 있는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고, 결혼한 부부가 아이를 낳지 않을 수 있듯, 혼자 사는 여자가 아이를 2명 낳을 수도 있음을 인정한느 사회를 바란다. 결혼 전까지 순결을 지켜야 한단느 가치와 살아보지도 않고 결혼하는 건 모험이니 동거부터 해야겠다는 가치가 공존하는 문화, 다양성이 살아 숨 쉬는 문화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119~120쪽) 그렇게 4년 동안 무수하게 했던 인터뷰들을 돌아켜보면, 우리나라를 이끌어간다는 정치인과 고위 관료들 가운데, '자신의 생각'을 얘기하는 사람이 참 드물었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가 어딘가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한다. 그게 익숙하고 아주 잘 훈련돼 있다. (165쪽) 사회의 다수가 인정한다고 생각되는 익숙한 가치들만 얘기하는 게 안전하다. 그게 한국 사회에서의 생존법이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168쪽) '자유롭게 사고하고, 스스로의 견해를 갖고, 다른 사람의 견해를 인정하며, 상호간의 논쟁을 통해 발전적 합의를 찾아가는 과정', 즉 자유민주사회의 시민을 길러내는 교육이 우리에게는 없다. (183쪽) 자신들만큼 옳은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없다며, 깃발 꽂고 시민들에게 그 밑으로 다 모이란다. 좌파는 이렇게 항상 시민들을 가르치려 든다. 하지만 시민들 속으로 들어가지는 않는다. (185쪽) 하지만 법이나 제도보다 더 바꾸기 어려운 것이 문화와 의식 구조다. 그것은 눈에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187쪽) 그러나 아이를 갖는 것은 소중하고 태어나지도 않은 생명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생명의 가치는, 규범적 선으로(도덕으로) 존재한다. 그러니 감히 낙태를 합법화하자는 말은 못한다. 그냥 위선적으로 놔두면 된다. 이게 우리 사회의 가치요, 도덕이다. (190쪽) 가까운 예로, KBS의 신관에는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장애인 화장실이 접근성의 매우 떨어지는 위치에 한두 곳밖에 없다. (191쪽) 1987년 직선제 개헌 후, 5명의 대통령이 국민의 손으로 선출되었지만 그들 중 누구나 국민으로부터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의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199쪽) 그러나 진정한 사회 불안정은, 각자의 가치들을 주장할 공간이 주어지지 않아 불만이 정정당당하게 표출되지 못하고 억압돼 왜곡되는 상황에서 발생한다. (210쪽) 어쨌든 이래도 저래도 민주주의는 지독히 시끄럽다는, 몹시도 시끄럽다는 것, 그걸 기억하고 있으면 된다. (220쪽) 민심을 반영한 끊임없는 갈등과 타협, 그것이 바로 정치의 본질이다. (225쪽) 보수의 본질은 "기존의 것을 지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진보의 본질은 무엇인가?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변화를 외치려면 스스로 변해야 한다. (227쪽) 미국의 진보 운동가 제이슨 델 간디오는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된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라는 책에서 (235쪽) 지나친 원리주의는 때로 현실에의 적용을 헷갈리게 만든다. (239쪽) 민주주의는 결코 이데올로기의 학습을 통해서 달성되지 않는다. 시민들 각자가 내가 누구인지, 어디에 서 있는지, 무엇을 원하는지를 자유롭게 생각하고, 그것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그것을 위해 자유롭게 모이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조직을 만들고, 정치를 하는 과정이 가능한 문화, 그 문화가 민주주의를 만드는 것이다. (244쪽) 왜곡된 민족주의 이데올로기가 이처럼 민주주의의 실현을 가로막는 한 기제가 되어왔다. (259쪽) 승자와 패자의 가름질, 우리는 민족에 대해서도 우등민족과 열등민족을 나누고 다르게 대우하는 것이다. (264쪽) 어디에 살든 한국인끼리 울타리를 치고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강하게 유지하려는 경향은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 한국인들의 문화다. (269쪽) 성에 대해서는 위선이 최선이다. 이는 결코 짧지 않은 위선의 전통이다. (285쪽) 성은 나이나 결혼의 유무 같은 사회적 제약과 상관없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사랑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느끼는 감정이고, 성관계는 오로지 사랑하는 두 사람 사이에서 합의 하에 이뤄지는 배타적 행위라는 가장 원초적 진리를 가르쳐야 한다. (291쪽) 그들에게 성 자체는 죄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더라면, 임신은 실수였을 뿐이고 그 생명 또한 너무나 소중하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더라면, (325쪽) '하나 되는 대한민국' 대신 '다른 대한민국' 한번 만들어보자. 그러고 나서 다시 하나 되면 된다. (338쪽) <단어> 수업시수 (55쪽): 평소에 입시 과목이 아니어서 수업시수를 줄였던 과목들이 갑자기. '수업 시간 개수'라고 추측됨. 비혼 (303쪽): 비혼 임신. 독신을 선택하는 여성들이 스스로 '아직 미(未)'자가 아닌 '아닐 비(非)'자를 써 비혼이라는 단어를 사용함. 충격 정도: 별 4개 흡입 정도: 별 4개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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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삶에 아무런 계획이 없었다. 큰 욕심도 없고.. 다만, 빚 없이 살기를.. 내 스스로가 나를 책임질 수 있기를.. 뭐, 기왕이면.. 삶의 여유를 느끼며 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비슷한 가치관의 사람을 만나 심심하지 않게 살기를.. 그게 다였다.
가끔 TV를 보며 이런 말을 할 때가 있다. "이 노무 나라.. 대체 왜 이따위야?" "어유~ 저 노무 정치판.. 진~짜 징그럽다. 징그러~!!"
그리고 가끔.. 주변에 이민을 꿈꾸는 친구들이 있었다. 이 꽉~ 막힌 대한민국이 아닌, 좁디 좁은 대한민국이 아닌, 탁 트인 다른 어떤 나라를.. 좀더 넓은 세상을 꿈꾸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들을 보면서 굳이 왜? 내 나라, 내 가족들이 있는 이 땅을 떠나.. 낯설고 말이 안 통하는 나라를 굳이 왜 찾아 떠나가려 하는지..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그들이나 나나.. 삶에서 추구하는 건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ㅋ
뭐.. 여전히 지금도 이 나라를 떠야겠다! 이런 생각은 없지만, 이제 조금은 그 마음을 알 것 같기도 하다. 조금 조금씩 나이를 먹다보니 이제서야 조금 알 것 같다.
'하나 됨'을 강조하며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이 노무 나라의 꽉~ 막힌 사고방식.. 나도 이제는 좀 갑갑하게 느껴진다. 왠지 뭔가.. 알게 모르게 답답하다. 그리고 지금 이 책의 작가는 이 갑갑함이 어디서 오는 건지, 대체 왜 생겨난건지.. 세세하고 조목조목 따져 말했다.
늘~ 그렇듯.. 나는.. 당신의 생각을 말해보아요~라며 아무 생각 없이 읽기 시작했던 책은.. 어라? 어라? 어라~??? ... 이제는 잔뜩 붙여놓은 포스트잇으로 덕지덕지 지저분해졌다.
나도 나지만, 내 어린 조카들은 지금과는 다른 대한민국에서 살게 하고 싶다. 지금 내 앞에서 짓고 있는 저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금처럼.. 자라면서도, 또 어른이 되어서도 지을 수 있기를.. 그럴 수 있는 대한민국에서 살게 해주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분명, 지금과는 많이 달라야 하리라.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나부터도 달라져야 하리라..
울 꼬꼬맹이들의 세상은 차이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좀더 넓은 세상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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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4 당시, 대한민국 땅에서 26년을 살았어도 ‘조직 지진아’ 박에스더가 도무지 배우지 못했던 두 가지 논리는, 첫째는 상명하복, 둘째는 상하위계질서에서 아랫사람의 생존법이었다. 남자들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배웠던 것이다. 이렇게 군대라는 ‘조직 학교’를 다녀온 한국 남자들은 상명하복의 위계질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윗사람들의 권위주의에 대해 바람직한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조직의 안정을 위해 불가피한 것으로 인식하고, 그 안에서 아랫사람들이 생존하는 방법은 무조건 적극적이거나 능동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안다. 조직의 기존 질서와 안정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적당히’, ‘눈치껏’, ‘튀지 않게’라는 오묘한 생존법을 군대에서 체득했기 때문이다. p.124 한국인들은 유독 ‘우리’라는 말을 좋아한다. 가족이나 집을 지칭할 때도 영어는 나의 집(my house), 나의 부모(my parents)라고 하지, 우리 집, 우리 부모, 우리 동생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한국인들은 가족은 물론 직장이나 조직, 학교, 나라 등을 지칭할 때도 항상 ‘우리’다. 우리 회사, 우리 학교, 우리나라 등등. 나와 관련된 모든 것에 ‘나의’라는 말 대신 ‘우리’를 붙여 부르는 것이다. 이는 자신과 관련된 것들에 대해 ‘나’ 개인을 기준으로 사고하는 게 아니라 ‘우리’라는 집단을 기준으로 사고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한국인들에게 이토록 자연스러운 ‘우리’ 의식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p.161 도덕만 있지 철학은 없는 우리 교육의 실체다. 도덕이 공동체 구성원이 인정하는 단일한 가치를 가르치는 것이라면, 철학은 진리의 상대성을 가르치는 것이다. 다양한 관점에 대해 배우고, 실제로 그 가치들의 갈등에 직면해 논쟁하고 합의를 찾아가는 과정을 훈렴함으로써, 스스로 가치를 판단할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국가의 부속물로서의 국민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자발적 시민이 되는 법을 깨우치는 과정이 철학 교육이다. 이 기본 교육이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왜곡돼온 것이다. p.202 우리 시대의 경제적 화두는 성장이 아니라, ‘왜 수치상의 성장, 위에서의 성장이 아래로 내려오지 않느냐’다. 우리는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은 게 아니라, 그저 편안하게 살고 싶다. 그런데 모든 게 불안하다. 교육, 주거, 취업, 노후... 등등. p.220 단, 여기서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한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결코 나와 같지 않다는 것, 그래서 사람들은 각자 다른 주장을 할 것이라는 것, 그걸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이기기 위해서는 생각이 같은 사람들과 힘을 모으고 외치고 설득해야 한다. 또한 때로 자신의 생각과 반대되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으면 내가 질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다면 또 모여 시끄럽게 떠들고 요구하면 된다. 어쨌든 이래도 저래도 민주주의는 지독히 시끄럽다는, 몹시도 시끄럽다는 것, 그걸 기억하고 있으면 된다. p.240 스마트폰이 세상을 스마트하게 움직이는 이 스마트한 세상에서, 스마트한 기계가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한 가지가 인간에게 있다면, 그것은 인간이 ‘느낀다’는 것이다. 합리와 논리를 뛰어넘는 ‘감정’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소리 내 웃고 소리 내 울고, 그런 남을 되돌아본다. p.242 정치는 사회를 읽고, 시민들은 필요로 하는 얘기를 듣고, 그것을 위로 조직화해 해결책을 찾도록 강제하는 것이다. 정치가 무슨 교육인가? 대체 누구를 가르치려는 것인가? 그저 들어라. 낮아져라. 대중 속으로 들어가라. 대체 뭐가 그리 어려운가? p.291 우리가 10대들에게 정말 가르쳐야 할 것은, 성욕은 억제해야 할 대상이며 성관계는 자녀를 낳기 위한 부부 간의 행위라는 비현실적 고언들이 아니다. 성은 나이나 결혼의 유무 같은 사회적 제약과 상관없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사랑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느끼는 감정이고, 성관계는 오로지 사랑하는 두 사람 사이에서 합의 하에 이뤄지는 배타적인 행위라는 가장 원초적 진리를 가르쳐야 한다. p.332 내놓고 미팅을 하고, 소개를 받고, 선을 볼 수 있는 이성애자들도 몇 달만 싱글로 지내면 ‘외롭다’, ‘누구 없느냐’ 하며 노래를 부른다. 그런데 누가 자신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동성애자인지도 모르고, 대놓고 외롭다고 말할 수도 없고, 대놓고 사랑할 대상을 찾을 수도 없는 숨겨진 동성애자들은 어떻겠는가? 여러 한국 영화나 드라마가 동성애자들을 다뤘지만, 거기 나오는 동성애자들은 대개 너무 멋지고, 지나치게 인텔리에 편중되어 있다. 그런데 현실에는 모든 계층과 모든 직업에 동성애자가 있을 것이다. 패션 아이콘도 될 수 없고, 돈도 없고, 사회적 지휘도 높지 않은데, 정을 나눌 사람마저 찾기가 너무 어려워,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리다 남산 앞 목욕탕이라도 찾아갈 수밖에 없는 동성애자들이 더 많을 것이다. 누가 동성애를 더럽다고 하는가? 그들에게 인간적인 삶은 허락하지 않는 사회의 편견이 끔찍하게 더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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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 초 큰딸이 수술을 하게 되었다. 진작 겨울방학에 했더라면 수술시간이 날 수 있었는데 너무 늦게 결심을 했고 병원에도 늦은 감이 있게 갔다. 졸업을 하고 갔으니 이월에는 시간이 없다는 것,하지만 빨리 해야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데 마음만 급했다. 병원일정은,아니 의사의 일정은 안되는데.다른 방법이 없을까? 어쩔 수 없이 인맥을 동원하기로 했다. 대한민국에서 인맥을 동원하면 안되는 것도 되는 사회이기에 우리도 한번 힘은 없지만 작은 힘이라도 보태보기로 했다. 아는사람의 건너 아는 사람을 찾아 수술날짜를 앞당겨 줄 수 있는지 물으니 비는 시간이 없다고 하더니만 급기야 된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제 이십의 고개에 올라 선 딸이 실망을 한 듯 꼭 그래야만 하느냐며 따져 물었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해서 된다면 해야되는 상황이니 하자고 하여 했는데 우리가 동원한 인맥이 아닌 아주 가까운 곳에 더 큰 인맥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하여 모든 것이 수월하게 돌아가고 모든 것은 무사히 끝나게 되었다. 그런 일이 끝나고 이제 성인이 된 딸은 정말 이런 사회라는 것이 싫다는 것이다. 학연 지연에 연줄이 있어야 알아주고 받아주는 사회,그리고 권위주의에 물들어 고개를 빳빳하게 세우는 그런 사람들이 정말 싫다는 것이다. 알고나면 별거 아닌 사람들인데 말이다.
우리의 교육제도는 '성공지향적'이면서 '경쟁'을 부추기고 붕어빵 기계에서 똑같은 붕어빵을 찍어내듯 그렇게 교육을 시키고 있지만 점점 '나 너 우리'라고 배우던 교과서 속의 나 너 우리에서 탈피를 하여 '나는 나' 너는 너'를 찾아가고 있는 듯 하다. 다름을 이제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에 나가면 자신도 모르게 권위주의와 계급과 규범과 질서들에 길들여지며 '당연'하게 따라가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지 말아야지'하다가도 나 또한 세월이 가고 짬밥의 수가 늘어날수록 배가 배운대로 똑같이 밑에 사람들에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무서운 시어머니 밑에서 똑같은 시어머니가 나오듯이 배운대로 밑의 세대에게 똑같이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가끔 삶을 무료하게 만들기도 한다.그렇다고 훌쩍 대한민국을 버리고 이민을 갈수도 없는 것이 또한 현실이다. 내가 나고 자란 뿌리를 쉽게 버린다는 것은 글쎄? 우리 민족처럼 '뿌리'와 '근본'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다른 곳에서 다름을 인정하며 잘살수 있을까? 물론 잘살수도 있겠지만 어느 순간에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길들여진 습관이라는 것이 무섭듯이 단번에 무얼 고치기에는,그것이 개인일 때도 힘이 든데 '우리'라는 거대한 단체의 입장에서 움직인다는 것은 더 많은 시간을 요할 것이다. 하지만 서서히 변화는 나타나고 있다. 이런 책을 어떻게 예전에는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을 했을까? 읽는 처음부터 나의 가려움을 대신 긇어주고 있는 것처럼 속시원함은 무엇인지. '전시,허세,체면, 이런 다양한 종류의 보여주기 속에서 우리는 항상 내용보다는 형식,업무보다는 의전을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자꾸만 헷갈린다. 뭐가 진짜고, 뭐가 우선인지를 말이다. ' 나 또한 형식을 무척이나 싫어한다. 내용을 중요시하지 형식적으로 무엇을 하라고 하면 반기를 제일먼저, NO를 외치고 나선 사람중에 한 명이다. 그러니 당연히 '싸가지 없는'으로 손가락질을 당할 때도 분명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속이 비었을까? 그것은 아니다. 모두가 옳다고 하고 무조건적으로 형식적인 것을 따라갈 때 그것이 잘못되었다면 고쳐야 한다고 한소리 하고 나서는 사람이 지금까지는 그리 많지 않았으리라.아니 우린 '좋은게 좋은거'라면서 또한 그렇게 따라가는 것이 사회를 잘 버티어 나가는 덕목이라도 되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난 정말 내게 맞지 않는 옷처럼 벗어버렸다. 그래도 지금까지 잘 살고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어느 순간 나이가 들어가다보니 'NO'를 외치면서도 어느 순간에는 나도 'YES'로 기울고 있더라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느끼게 된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승자가 되었다고 꼭 잘사는 법은 없다. 사회는,행복은 성적순이 아닌것처럼 아니 그와 반대로 행복은 성적의 거꾸로 순처럼 일등만 달리던 사람들은 대부분 사회에 나가서는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그런 반면에 학창시절 성적이 좋지 못하던 사람들은 주변에서도 잘 살고 있다. 하지만 그러면서 내자식에게는 '승자'가 되길 강요하고 '대학'이라는 허울 좋은 간판을 따기를 부추기고 있다. 사회가 모두가 타고 달려가는 그 기차에서 벗어나면 낙오자가 될까봐 용감하게 다른 길을 선택하지 못하고 마지못해 '편승'하여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한이 있어도 보통의 사람들이 겪는 그 고통을 고스란히 겪으며 달려가길 바라고 원한다. 그래야만 할까? 딸이 이십이 되고나니 생각이 많아졌다. 꼭 다른 사람과 똑같은 길을 걷게 해야만 할까? 다른 길을 제시해 주었지만 자신만 낙오자가 되는 것 같고 도태되는 것,도피하는 것 아니냐며 싫단다. 그렇다면 꼭 모두가 걷는 길을 걸어가면서 나 또한 똑같은 붕어빵이 되어야 할까?
많이 변했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사회에 나가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아직도 학벌이 중요시되고 간판이 중요시되고 학연 지연에 체면이나 형식이 난무하는 사회이다. 나부터가 대학을 가지 않고 다른 길을 갔다고 했다면 먼저 '왜?' 하고 묻게 된다. 하지만 그럴수도 있음을 인정해야 하면서도 그동안 몸에 겹겹이 굳어져 떨어지지 않는 굳은살처럼 되어 버린 것을 하루 아침에 떼어낼 수는 없지만 서서히 너와 내가 다름을 인정하고 형식보다는 내용을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요시 하는 그런 사회로 되어 나간다면,우리 그렇게 변화할 수 있게 너와 내가 만들어야 한다. 아니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 획일성을 걷어내고 서로가 다름을,차이를 인정하자고 그녀가 나섰듯이 점점 생각이 깨인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싫다고 모두가 떠날 수는 없다. 어느 사회에 가던지 '문제점'은 반듯이 있다. 내가 싫다고 떠나고 나면 그리워지기 마련이다. 다시 그 사회에 돌아가면 잘살것만 같은 그런 '오류(?)' 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다시 자신의 자리에 돌아왔을 때 내가 과연 변해있을까? 위와 앞만 보고 달리지 말고 밑을 보고 옆을 보면 정말 지금보다 더 자신을 인정하며 살수 있다. 늘 승자가 되고 정상에 서는 것만 가르쳐 왔고 그렇게 배워 왔지만 이젠 아래를 보고 옆을 보며 차이를 공감하며 자신부터 변해간다면 살만한 사회이고 세상이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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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y Angry, Stay Coolish.
이책을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말. 스티브잡스의 열정과 애증이 생각났다. 박에스더는 말그대로 인사이드에 있는 아웃사이더로서 상당히 보수적인 진보주의자로 보인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상당한 카타르시스를 기대할 순 없었지만 상당한 인사이트를 발견할 순 있었다. 아픈 대한 청년들에게 이 에스더의 에세이를 쿨하게 권한다. (나 알바아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