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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기 사내의 소시민적 의식 구조를 명징하개 보여주는 시
"중년기 사내의 소시민적 의식 구조를 명징하개 보여주는 시" 내용보기
김광규의 시는 대부분 평이한 언어와 명료한 구문(構文)으로 씌어진 일상시(日常詩)이면서도 그 속에 깊은 내용을 담고 있어, 그를 흔히 난해시에 식상한 독자와의 통교(通交)를 회복시킨 시인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 시 역시 일상적 삶에서 얻은 구체적 체험을 바탕으로 평이한 표현 방법을 통해 중년기 사내의 소시민적 의식 구조를 명징하게 보여 주고 있다. 그들에게 순수와 젊음을
"중년기 사내의 소시민적 의식 구조를 명징하개 보여주는 시" 내용보기
김광규의 시는 대부분 평이한 언어와 명료한 구문(構文)으로 씌어진 일상시(日常詩)이면서도 그 속에 깊은 내용을 담고 있어, 그를 흔히 난해시에 식상한 독자와의 통교(通交)를 회복시킨 시인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 시 역시 일상적 삶에서 얻은 구체적 체험을 바탕으로 평이한 표현 방법을 통해 중년기 사내의 소시민적 의식 구조를 명징하게 보여 주고 있다. 그들에게 순수와 젊음을 반추시켜 주는 것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다만 '플라타너스 가로수'만이 간신히 남아 그들을 반겨 주지만, 그들은 더 이상 '하얀 입김 뿜으며 / 열띤 토론을 벌일' 수 없는 자신들을 확인할 뿐이다. '부끄럽지 않은가 / 부끄럽지 않은가' 라며 꾸짖는 것 같은 바람 소리를 들으면서도 '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기'는 화자의 무거운 발자국에서, 우리는 유수 같은 세월 속에 젊음과 열정, 순수와 이상을 잃어버리고 거의 맹목적일 만큼 현실적인 삶을 살아가는 중년의 소시민적 의식 구조를 엿볼 수 있다.

[인상깊은구절]
결론 없는 모임을 끝낸 밤 혜화동 로터리에서 대포를 마시며 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 때문에 우리는 때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노래를 저마다 목청껏 불렀다 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 겨울밤 하늘로 올라가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 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 혁명이 두려운 기성 세대가 되어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
z******8 2001.05.0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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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소적인, 그러나 희망을 잃지 않는.
"냉소적인, 그러나 희망을 잃지 않는." 내용보기
시인 김광규의 말투는 냉소적이다. 대안도 없이 빈정대는 그런 어투는 좋지 않아, 라고 따질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이런 변명을 할 수도 있겠다. "내 말투가 냉소적인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이 냉소적인 것이다"라는. 실제로 시라 하는 장르 역시 사회의 제반 현상으로 자유롭지 못한 것이라면, 그 현실을 외면하는 게 아니라 거기에 터해 씌어져야 한다. 백안시가 아닌, 관심. 현대를 살
"냉소적인, 그러나 희망을 잃지 않는." 내용보기
시인 김광규의 말투는 냉소적이다. 대안도 없이 빈정대는 그런 어투는 좋지 않아, 라고 따질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이런 변명을 할 수도 있겠다. "내 말투가 냉소적인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이 냉소적인 것이다"라는. 실제로 시라 하는 장르 역시 사회의 제반 현상으로 자유롭지 못한 것이라면, 그 현실을 외면하는 게 아니라 거기에 터해 씌어져야 한다. 백안시가 아닌, 관심. 현대를 살아가는 시란, 무엇보다도 '시란 정직해야 한다'는 기본에 충실한 김수영 시인의 말에 많은 공감을 할 수 있어야 하며, 그 방법은 외면이 아닌 관심이요, 저 위의 천상이 아니라 바로 여기발딛고 서있는 지상에의 주목이다. 그 관심의 형태는 냉소일 수도 있고, 풍자일 수도 있으며, 때로 사랑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김광규 시인은 자신이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방법으로 '냉소'를 택한 것일게다. 시집을 읽고 있으면 부조리하고 모순된 우리의 삶이 시인의 냉철하고 정제된 언어로 담담하게, 그러나 또 날카롭게 다가선다. '(자유시는 그러므로/자유로운 시도 아니고/자유에 관한 시도 아니다)//다만 여기에 세금이 붙는다'('자유시'), '한두 군데 손을 대서는/도저히 고칠 수 없는 집/헐어 버리고/새로 지을 수도 없어/조심스레 그대로 살아간다/지은 지 40년도 더 된/퇴락한 나의 집'('나의 집'), '원인과 결과를 끊으려는 미련한 곰아/새로운 원인을 오래된 결과라 부르고/오래된 결과를 새로운 원인이라 부르며/원인 없는 결과를 만들려 하지 마라/때로는 죽음도 하나의 원인이 되는 법이다/그리고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반달곰에게')라는 시구들에서부터 '자기의 몸이 늙어 가기 전에/여보게 젊은 친구/마음이 먼저 굳어지지 않도록/조심하게'('늙은 마르크스')라는 시구에 이르러서는 시인의 냉소가 가벼운 비웃음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또 '보안등'에서 비꼬고 있듯이 '- 그래 그건 나도 보았어', '- 암 그래야지 가만 있을 수 있나', '- 그래 그렇겠지 그것도 사실일 거야'라는 체념투의 어조는 시인이 인식하는 비관적 현실이 쉽게 해결될 수 없는 성질의 것, 즉 구조적인 문제로 이어짐을 알게 한다. 그러나 시인은 결코 절망하고 있지만은 않는다. '어디선가 이리로 오는 것이 아니라/누군가 우리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싸워서 얻고 지켜야 할'('희망') '희망'이라는 단어는, 감성이 아닌 이성의 영역에서 시를 쓰고있는 시인의 건조한 말투에도 불구하고 뜨겁게 가슴에 와닿고 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물신'이라는 비인간적 영웅에 대한 경계의 눈초리를 드러내는 시인은, '스무 살의 젊은 나이로/그는 헛되이 사라지고 말았는가//아니다/그렇지 않다/'('아니다 그렇지 않다')라고 스스로 절망적인 회의의 질문에 힘주어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시집의 마지막 작품인 '나의 자식들에게'에서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있다. '조용히 사는 죄악을 피해/나는 자식들에게 이렇게 말하겠다/평온하게 살지 마라/무슨 짓인가 해라/아무리 부끄러운 흔적이라도/무엇인가 남겨라'라고. 젊은이여, 어떻게 살겠는가. 절망적인 현실이라 해서, 혼자 헤쳐나갈 수 없는 흐름이라 해서 외면하고, 눈을 가리고 살 것인가? 비록 그것이 부끄러운 흔적만으로 남는다 해도 현실을 바라보며 직시하며 앞장서서 달리며 사는 것이 '스무 살 젊은 나이'가 할 수 있는 일이며 또한 해야 하는 일이지 않을까? 형식과 방법의 문제, 마음과 머리의 우선시 경향에 있어서 스스로 반성해가며 살아야겠지만, 우리가 밀실이 아닌 광장으로 나와야 한다는 것만은 명약관화한 사실일 터, 포악한 자본의 거대 논리- 거역하기 힘든 사회의 커다란 틀에 맞서 "아니다, 그렇지 않다"라고 당당하게 외쳐야 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 아닐런지.

[인상깊은구절]
희망이란 말도 엄격히 말하자면 외래어일까 비를 맞으며 밤중에 찾아온 친구와 절망의 이야기를 나누며 새삼 희망을 생각했다 절망한 사람을 위하여 희망은 있는 것이라고 그는 벤야민을 인용했고 나는 절망한다 그러므로 나에게는 희망이 있다고 데카르트를 흉내냈다 그러나 절망한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 유태인의 말은 틀린 것일지도 모른다 희망은 결코 절망한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희망을 잃지 않은 사람을 위해서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희망에 관하여 쫓기는 유태인처럼 밤새워 이야기하는 우리는 이미 절망한 것일까 아니면 아직도 희망을 잃지 않은 것일까 통금이 해제될 무렵 충혈된 두 눈을 절망으로 빛내며 그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렇다 절망의 시간에도 희망은 언제나 앞에 있는 것 어디선가 이리로 오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우리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싸워서 얻고 지켜야 할 희망은 절대로 외래어가 아니다
b********g 2001.08.0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