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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강렬한 첫 문장의 날카로운 기억은 문학이 살아있는 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첫 문장은 소설을 읽는 동기이자 이어지는 문장속에 스치듯 등장하다 홀연히 자멸하는 환영이다. 소설이 끝나도 첫 문장의 가시는 내 영혼의 여기저기를 찌르며 짜릿한 전율을 남긴다. 그리고 결국 극도의 쾌감속으로 자신을 던져넣고 싶어 안달이 난다. 소설 속 그 공간이 펼쳐진 하늘 밑으로, 그 길, 그 골목, 그 묘지의 묘석에서 머뭇거리고 싶은 충동을 감출 수 없을 때, 몇 번은 떠나야만 충족이 되는 이기적 생명체! 바로 당신, 당신이 찾아가는 그 곳은 첫 문장의 독기가 풍기는 마성의 공간이 될 것이다.
이 책은 함 정임작가의 문학 여행기라고 볼 수 있겠다. 순전히 여행에세이라고 하기엔 어딘가 여행 냄새가 덜하고 문학평론이라고 하기엔 가벼운 느낌이 든다. 항간에 돌아다니는 요즘 소설이 아닌 세기별 불후의 명작들이 대부분인 소설과 그 작가의 흔적을 찾아가는 일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레이는 일이다. 작가의 전공때문인지 프랑스 작가들이 유독 눈에 띄였다. 한 권의 소설과 섬광처럼 지나가는 첫 문장의 기억을 상기시켜주는 작가의 능력덕분으로 꽤 오랜 시간 소설속 문장들을 되새김질하는 일이 읽는 재미를 더해 주었다. 풍요로운 세계의 소설들을 한꺼번에 소개받은 느낌도 들었고 읽고 싶은 소설도 몇 권 분류해 놓았다. 르 클레지오의 [허기의 간주곡], 마르셀 에메의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는 꼭 읽으리라 다짐했다. 여하튼 나 역시 프랑스 작가에 꽂힌 듯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반가웠던 것은 감수성이 그나마 예민했을 때 즐겨 보았던 소설들의 제목이 문장속에 등장할 때 참으로 행복했다. 아련한 추억이랄까. 언젠가 한번쯤 맞닥뜨려 내 손을 거쳐간 소설들이 새삼 내적 흥분을 일으키다니, 이럴 수도 있구나하면서 반가웠다. 르 클레지오의 [사막]이랄지 코리나 호프만의 [하얀 마사이]같은 작품들, 유명 베스트셀러는 아니었지만 일장일단을 가지고 있는 소설의 다양한 독자들의 시각이 사뭇 궁금해졌다. 한국 작가로는 본인의 작품과 21세기 노마드적 글쓰기를 유행시킨 작가들, 배 수아, 김 영하에게 전하는 예찬일색의 글도 어찌보면 다양한 개개인의 취향과 시각을 테두리에 묶어버리는 일이 아닐까 우려가 되었다. 아직 읽지 못한 박 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내 관심을 끌기에 충분히 성공한 작품이기도 하다. 아울러 내 사랑 알베르 카뮈의 태양처럼 작렬하는 작품들은 이제는 내 책장으로 끌어모아야 할 것 같다. 이렇게 저렇게 읽었던 그의 작품들을 전집의 형태로 진열해 놓아야 할 것 같은 강렬함이라니...
안타깝다면 좋은 글인데도 오탈자가 빈번해서 멋진 글이 변질되어 함량 미달의 글로 탈바꿈했다고나 할까. 한 두 글자 오타는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진짜 너무 한 것은 어네스트 헤밍웨이의 [킬리만자로의 눈]을 몇번 언급하면서 급작스럽게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된 문장은 읽다가 빵 터져버렸다. 여름을 어름으로 나올 때마다 잘못 쓰고 있고 [율리시즈]의 작가 제임스 조이스의 두상 아래 설명글의 오타, 임스 조이스는 또 뭔가. 게다가 페이지가 끝에 다다를수록 작가의 글이 번역체로 바뀌는 듯해서 답답했다. 나열식 작가 소개나 그 소설의 비하인드 스토리등은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언젠가 내가 읽은 듯한 의심스러운 착각이 들기도 했다. 오대양 육대주를 두루두루 다닌 작가의 글 안에 어느 나라가 빠져 있나 살펴보았더니 바로 "러시아"였다. 거긴 안다녀오셨는지 괜시레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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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소설과 거리를 두고 있음을 느끼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소설 또는 소설에 관한 책을 읽고 싶을 때이다. 한때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게 소설을 읽었지만 지금은 소설과 소설 읽기에 얽힌 옛 추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마음이 푸근해진다. 내가 소설을 읽고 행복감을 느끼는 순간은 색다른 유형의 인물들을 알게 되었다는 지적 만족감 앞에서이다. 함정임의 ‘소설가의 여행법’이라는 에세이에서 우선 내 눈에 띈 것은 저자가 읽은 소설들의 압도적 목록이다. 소설의 배경이 된 외국의 도시들을 여러 차례 떠올리는 것은 물론 소설에 홀려 그 배경이 된 곳을 여러 차례 찾곤 했다는 저자는 무엇보다 부러움의 대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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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 그대로의 의미인‘여행’하는 방법에 대한 책일까? 아닐 수도 있고 그렇다고 할 수도 있겠다. 소설 속 무대인 도시의 거리와 풍경이란 특정 장소로 이동하고 그 감상을 말하고 있으니 여행기이다. 그러나 소설들을 읽고 그 소설의 주인공과 작가들의 영혼이 배어있을 공간을 시간을 초월하여 음미하고 그 감각을 깨워내는 작업이기에 단순히 여행이기만 한 것도 아니다. 책의 제목을 해석하려 할수록 그 제목이 지닌 의미에 수긍을 하게 된다. 소설가(小說家)만이 하는 여행, 지극히 문학적(예술적) 행보라는 얘기다. 그래서 수십 편의 작가와 작품에 대한 ‘함정임’의 소설 여행 담론은 허구의 소설 작품을 현실의 공간, 바로 지금 여기라는 실체감으로 끌어오는 살아있는 서평이 되어 죽은 문장들에 숨을 불어넣어 우리에게 펼쳐 보인다.
그렇다. 이 책은 소설가의 애정이 곳곳에서 숨 쉬는 서평모음이다. 그 애정들이 우리들의 것과 아주 닮은 것이 많아서 그녀의 소설 사랑에 동화되어 버린다. 30여 편의 소설과 작가들의 작품을 축으로 하여 다양한 관계성에 얽힌 작품들의 비교문학적 소개로 거의 100여 편에 이르는 작품들의 맛깔스런 감상을 더불어 맛볼 수가 있다. 일례로 천명관의 작품을 얘기할 때에는 김영하와 김애란의 작품이 같이 등장하고, 애드거 앨런 포를 말할 때는 보들레르와 플로베르가 얘기되며, 헤밍웨이를 따라가다 보면 코리네 호프만과 카렌 블릭센을 만나게 된다. 이렇게 그녀의 감상들은 하나의 작품에서 여럿의 작품으로 확장되어 풍부한 이야기 거리들을 쏟아내고, 소설이 단순히 문학 작품의 의미 이상의 어떤 충일함으로 가득차서 다가오게 한다.
특히 이 책에 새로운 규정을 가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되는데, 소설의 공간적 무대를 같이 거닐며 작품의 주인공이 되어, 혹은 작가의 분신이 되어 그 이미지가 체화된 상태에서 서평을 쓴다는 의미에서 장소적 공간의 어떤 정서적 내면화로 인한 애정이랄 수 있는‘토포필리아(topophilia)적 서평’이란 지위를 부여하고 싶다는 것이다. 물론 장소적 애정에만 머무는 것이라면 여행기에 불과하겠지만 문학이 있고, 삶의 철학과 인문학적 식견이 같이 넘실댄다면 그야말로 환상적인 서평이 되는 것 아니겠는가. 사실 영국, 프랑스, 터키, 그리스, 아일랜드, 미국, 페루, 아프리카 등 소설 속 무대가 된 지역을 모두 돌아다니며 읽고 쓴다는 것이 사치스럽기는 하지만 말이다.
책은 뉴요커인 폴 오스터의 <브루클린 풍자극>의 첫 대목으로부터 시작된다. 언젠가 맞이할 멋진 죽음의 장소, 그리고 자아 찾기라는 인간의 성찰을 얘기하면서 저자의 여행 변과 교묘히 쌍을 이루며 작품과 도시의 얘기를 풀어간다. 그리곤 허먼 벨빌이 그려낸 독특한 인물인 <필경사 바틀비>를 통해 소설은 인간의 조건을 묻는 것, 즉 인간학으로서의 소설론을 전개하기도 한다. 많은 작가들과 작품이 소개되고 있지만 내 눈을 유혹하는 것들은 아무래도 내가 읽고 감동을 받았거나 공감을 했던 작품들, 혹은 그 작가의 문장이나 글쓰기를 흠모하게 된 작가들의 얘기에 더욱 관심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카뮈가 그렇고 키냐르와 칼비노가 그렇다. 그 중에서도 ‘파스칼 키냐르’는 삶에 대한 내 의식과 가장 깊게 공명하는 작가인데, 그의 출생지인‘르 아브르’의 예술적 혼이 깃든 야외의 풍광과 삶의 궤적이 작품, 《옛날에 대하여》의 문장들과 조응하여 다시금‘아연실색’의 기운에 침잠하게도 한다.
또한 카뮈의 산문인 <티파사에서의 결혼>에 대한 저자의 감상은 그의 마지막 삶의 고장이었던‘루르마랭’과 묘지 곁에 놓고 온 명함의 인연이 어우러져 애틋함이 그대로 전달되어 온다. 그것은 나에게 잔뜩 쌓여 어딘가 놓여있을 그의‘결혼’에 관한 산문집을 찾아내는 수고를 하게하고, 어렵사리 헤집어 마치 새로운 발견이라도 한듯 흐뭇한 기분에 빠져들게도 한다. 그런가하면 시각적, 일상적 환상으로 환상을 구분했던 칼비노를 통해 네르발과 모파상을 새로운 관점에서 보게도 하고, 바로 그 환상이란 “잡히지 않는 것,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것을 언어로 표현해 하나의 질을 내고, 형상을 창조해 내는 것”으로서의 소설의 본질을 이해하는 길잡이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한편 로맹가리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로 시작하여 페루의 작가 바르가스 요사로 이어지고 요사의 관능이 넘치는 문학은 뒤라스와 에르노의 열정과 에로티시즘에 가닿는다. 장소에서 정서(情緖)로, 그리고 정서의 심연으로 깊이를 더해가며 삶 속으로 파고드는 저자의 소설 이야기는 그렇게 묘한 그리움과 생명력으로 우리의 가슴에 “자국을 남기며 공명을 일으킨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나면 책 속에 서술된 작가들과 작품들을 정리하고 읽어야 할 작품 목록에 기입하느라고 분주해진다. 이처럼 이 책은 문학작품을 다양한 층위에서 읽을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도 하고, 독자 자신의 감상과 비교하면서 비판과 새로운 관점을 더하는 시간이 되도록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류의 삶과 그 형식의 탐구가 바로 소설이라는 저자의 정의처럼 문학작품들, 소설들에 더욱 애정을 갖게 된다. 그러고 보니 마치 소설 예찬(?)론 같아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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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궁금했던 그들의 여행, 소설가의 여행법
여행과 책은 떼놓을 수 없는 실과 바늘과 같은 사이라고 볼 수 있다. 여행지에서는 누구나 수필가가 되고 소설가가 된다는 착각에 빠질만큼 별생각없이 쓴 한줄의 문장에도 스스로가 마음을 뺏기곤 한다. 문필과 무관한 보통사람들도 그정도인데 소설가의 여행이라니 서명만 봐도 벌써 아찔하다. 무작정 무궁화티켓을 끊고 이 책 한권들고 대전 정도를 왕복하면서 읽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현실이 보인다. 결국 근처 커피숍과 휴식시간을 쪼개 읽었는데 소설가와 여행지별로 챕터가 나뉘어져 이런 방식이 읽기도 나쁘지 않았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여행지는 제임스 조이스의 발을 묶어둔 아일랜드 더블린이다. 대학교 2학년 때 처음 알게된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은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에블린이 더블린이 떠날 수 없게 만들었던 종소리가 들리듯 지금껏 내삶의 미묘한 종소리를 내고 있기에 많지 않은 분량을 참 아껴가며 읽었던 것 같다. 만 하루 동안에 블룸스가 걸으며 만났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걸었을 저자가 이때만큼은 그 어느누구보다 내게는 부러운 사람이 되었다. 더블린 만큼 내마음의 자리를 꽉 잡고 있는 '베를린' 과 소설가 배수아님의 흔적을 쫓은 여행기도 흥미로웠다. 소설만큼이나 조금 독특한 이력이란 생각이 들었다. 독일어 수업을 들으며 작문할 때 미처 다 써내려가지 못했던 이야기를 작품에 쏟아내었다고 하니 아직 읽지 않은 그녀의 작품을 리스트에 적어두었다. 책을 읽다보면 저자와 안면이 있는 작가와 그렇지 못한 작가와의 차이가 느껴지는데 배수아님과의 깊지도 얕지도 않은 딱 적정한 온도로 맞춰진 그들의 관계가 괜찮아 보였다.
최근 들어 저자들의 서평을 엮은 책들이 많이 출간되고 있다. 직업이 작가가 아닌 이들의 서평과는 사뭇 다른 느낌인데 지나치게 분석적이지도 않고 서평 그자체가 하나의 문학작품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소설가의 흔적을 찾아 가는 저자의 이야기는 줄거리를 거의 드러내 보이는 뻔한 서평이 아니어서 좋았고 여행지의 맛집이나 이미 알려질대로 알려져 마치 여행사 광고지를 읽는 듯한 거부감도 들지 않은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인 것 같다. 작품의 배경과 실제 그 작가와의 에피소드를 이야기 하면서도 결국 저자가 직접 느껴본 여행지의 감상과 독자가 누려야할 기대치를 고스란히 이어주는 책, 소설가의 여행법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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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었다. 소설 속에서만 존재하면서 자신들의 이야기와 관계만을 보여줄 뿐, 대화단절을 느끼도록 하는 일방적인 관계를 깨고 싶었다. 하지만 소설 속의 인물과 독자와의 관계는 일방적인 것이며, 그것은 앞으로도 깨지기 힘든 것이다. 설사 저자 조차도 그런 관계를 깨기 힘들 것이다. 그런 아쉬움이 있어서인지 독자는 어쩌면 소설 속의 그들이나 시공간의 장소를 종종 떠올리며, 자신만의 새로운 세계를 만들고 또한 그 속을 다시 재구성한다. 그리고 그 속에 자신을 담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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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저자는 공간성이 뛰어난 소설들로 인해서 알수 없는 이끌림으로 여행을 다녀왔고, 이제는 책에 정성스럽게 담아냈다. 개인적으로 소설을 읽을때 그 배경이 되는 곳을 떠나고 싶은 생각을 해본적은 거의 없다. 어쩌면 핑계를 만들고 떠나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곳을 여행을 다녀온 저자! 한국뿐만 아니라 프랑스, 아프리카, 이스탄불, 독일.. 참으로 세계 각국을 많이도 떠났다. 그런면에서는 저자의 용기가 부럽다. 작품의 모티브가 되는 곳을 찾아가 그 느낌을 알려주고, 작품에 대한 재해석을 하고 있다. 이스탄불행은 돌발적이었다고 하지만 그녀를 통해서 알게된 오르한 파묵의 작품을 한번쯤은 접해보고 싶어졌다. 제일 인상적이었던 곳은 아프리카였던것 같다. 프랑스, 파리, 미국등 한국에서는 좀처럼 볼수 없는 멋진 양식의 건물은 아닐지라도 대자연이 주는 감동에 잠시 넋을 놓기도 했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접했던 책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책에 소개되어 있는 작품들을 찬찬히 훑어보면 한번쯤은 읽어봄직도 한데 기회가 닿지 않아서 접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다. 보통 여행사를 통해서 여행을 하게 되면 안내자가 있어서 여행지의 유래나, 설화, 유적지들을 둘러보면서 그 곳을 이해할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이 책이 그런 안내자의 역활을 한다. 저자를 통해서 작품을 만나고 그 여행지를 떠나서 즐거운 여행을 하고 돌아온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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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여행법" 이 책과 처음 만났을 때의 느낌은 크지도 작지도 않은 사이즈가 손에 착 감긴다는 느낌이었다. 사진을 찍을 때 손에 착 감기는 그립감이 좋은 카메라에 왠지 모르게 손이 잘 가게 되는데, 이 책은 그런 그립감이 있는 책이다. 표지 속의 도로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도 어느 여행길 한 가운데 서 있는 느낌에 사로잡히게 된다. 표지 뿐 아니라 본문 속에서도 그런 느낌을 자주 받게 된다. 여행지로 떠날 때 좋은 안내자가 있다면, 그리고 길 동무가 있다면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많은 것을 생각하여 얻을 수 있는 지혜 또한 많은데, 이 책을 여는 순간 좋은 여행안내자, 길동무, 그리고 또 다른 여행지로의 여행을 부추기는 선동자와 같은 느낌을 가진다. 소설가 함정임은 이 책을 통해 그녀가 문학 작품을 통해 만난 많은 작가들의 흔적들을 찾아 여행을 떠나고 있다. 때로는 작품 속의 주인공이 살던 배경 속으로, 때로는 작가의 고향으로 여행을 떠나며, 그들의 작품의 일부를 소개하여, 독자로 하여금 그 도시의 분위기를 작품을 통해 느낄 수 있게 도와준다. 처음부터 좋아하는 작가 폴 오스터의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어 기분 좋게 책읽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간간히 잘 모르는 작가의 이름이 나오고, 간간히 작가와 서명은 아나 읽어보지 못한 소설이 소개될 때는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한다. 소설의 줄거리나 작가가 나의 흥미를 돋우는 것이 아니라, 안내자가 안내하는 안내의 글이 마음을 동하게 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동경의 아프리카, 그곳 케냐를 카렌 블릭센의 시각으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시각으로 미리 맛보기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가끔씩 잠시 차를 정차한 뒤 책을 읽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면, 읽어보기 위해 차에 놓아두고 싶은 책들이 있는데, 소설가의 여행법, 이 책은 꼭 그런 책이다. 책장보다는 차 운전석 옆이 더 어울리는 그런 책, 잠시 책을 펼쳐 다시 작가와 함께, 다른 작가의 작품 속을 들여다 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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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사랑하기에 그곳으로 떠나다... 대학 시절 랭보와 보들레르를 만난 이후, 늘 어딘가로 떠나거나 떠날 채비를 하고 있어서 지인들 사이에 바람처럼이라는 별명으로 통한다는 그녀, 함정임. 소설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사람. 마찬가지로 단 하루도 여행을 떠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사람. 그게 바로 그녀 함정임이라는 사람이다. 이때의 여행이란 물리적인 거리와 이동을 의미하지 않고, 소설 속 환상여행이 주를 이룬다. 그녀의 여행은 다른 이들과 달리 소설과의 만남인 것이다. 평소의 마음 가짐 속에 갓 출간된 국내외 신작 소설과 갓 재번역 소개된 해외 문제작들의 현장을 두 발로 부지런히 찾아다닌 여정의 산물, 소설가의 여행법이 출간되었다.
소설 속으로 파고든 탐색의 보고이자, 소설 밖으로 떠난 여행의 기록인 소설가의 여행법. 이 책은 크게 두개의 챕터로 나뉜다. 소설속을 걷다 편과 소설의 황홀, 황홀의 소설로..
첫 이야기 꾸러미는 폴 오스터의 '보이지 않는' 과 맨해튼 그리고 브루클린.그녀가 뉴욕을 갈때면 꼭 챙겨가는 필수품의 한가지로 한마디로, 브루클린에 갈 때에는 폴 오스터의 소설과 함께할 것! 이라는 습관이 있다. 조용히 죽을만한, 죽고 싶은 장소가 어쩌면 이 곳일지 모른다는 상상을 해왔다는 그녀... 이렇게, 라이너 마리아 릴케와 파리. 오르한 파묵과 터키 이스탄불. 스탕달과 그르노블 그리고 브장송. 제임스 조이스와 더블린.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아프리카 케냐.
그녀는 이렇게 눈을 뜨고 있는 동안 소설과 여행에 관한 중독자의 삶을 즐기고 있다. 그녀가 읽고 즐겨하는 소설에 대한 환상과 재미를 여행속에서 찾아가고 있는 그녀의 멋진 여행법.
다들 누구나 색다른 여행법이 있겠지만, 그녀의 여행법을 읽고 있노라니 나만의 여행법에 대해 다시한번 돌이켜보게 되었다. 어느 장소에서 어느 특별한 순간을 어떻게 기억하느냐는 자신이 경험한 산물에 근거하여 나오는 법. 삶은 여행인 것 처럼. 그녀처럼 지속되는 여행을 계속 하고 싶어졌다.
하루도 소설없이 살 ㅅ ㅜ없는 사람, 하루도 여행을 떠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사람의 소설 속 탐색 그리고 소설밖으로 떠난 여행의 기록. 한번 빠져 보길 바라며...
-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서적을 읽고 작성된 주관적인 서평임을 첨언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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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하고 고대했던 영화가 생각과 달리 기대에 못미칠 때의 실망감이 배가 된다면, 기대하지 않았던 영화가 의외의 생경함과 강렬한 인상을 줄 때의 짜릿함은 오랫동안 여운이 가시지 않는다. 함정임 작가의 <소설가의 여행법>이 내게는 기대하지 않았던 선수가 2루타를 치는 것처럼 읽는내내 소설을 통해 보았던 여행지의 흔적과 손에 닿지 않았던 작품의 매력을 찾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작품이 아닌 여행기로서 마주대하는 그녀의 글은 잔잔하면서도 매혹적이다.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마음을 설레며 좋아할만큼 스테디 셀러의 주인공들이 즐비했다. 폴 오스터, 허먼 멜빌, 라이너 마리아 릴케, 니코스 카잔자키스, 배수아, 오르한 파물, 스탕달, 조너선 사포란 포어, 제임스 조이스, 르 클레지오, 알베르 카뮈, 장 폴 사르트르, 로맹 가리, 카렌 볼릭센,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어니스트 헤밍웨이, 캐서린 맨스필드, 이탈로 칼비노, 줌파 라히리, 파스칼 키냐르,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구효서, F. 스콧 피츠제럴드, 제임스 설터, 마르그리트 뒤라스와 아니 에느 에느노까지 작품을 읽어보지 않았다면 한번쯤 들어봤을 작가들의 이름들. 좋아하는 작품이 나올 때는 눈을 반짝이며 그녀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읽었던 작품에 대해서는 상상속으로만 마주대했던 곳들을 탐험했다면, 전혀 읽어보지 않았던 작품 중에서 유독 그녀의 설명에 혹해 읽어보리라 결심했던 책은 오르한 파묵의 <순수 박물관>과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킬리만자로의 눈>, 캐서린 맨스필드의 <가든파티>다. 오르한 파묵의 <순수 박물관>은 평소 가고 싶었던 터키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한 남자의 사랑이야기를 그린 것이 마음에 들었다.어니스크 헤밍웨이의 작품에는 작가에 대한 매력과 <킬리만자로의 눈>이라는 제목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함이 끌렸으며, 캐서린 맨스필드의 <가든파티>의 경우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상황적 설명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평소 책을 매개로 한 책과 책의 만남은 좋거나 장황했다면 그녀의 글은 작가와 작품을 품에 안고 그동안 갈망했던 곳을 그리는 것처럼 진정성이 느껴진다. 더불어 소설 밖으로 나가 직접 그곳의 정점을 밟고 오는 그녀의 여행은 부럽고도 멋진여행(법)이다. 좋은 소설을 만났을 때 그곳에 대한 환상을 품었다면, 그녀는 소설의 장소를 끄집어내어 현실과 조우했다. 소설이 품어낸 여행지, 가상의 인물들. 언젠가 여행을 간다면 그녀의 여행법을 따라 가고 싶을만큼 즐거운 여행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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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 수 없이 많은 이야기로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소설가라는 직업은 언제나 매력적이라고 느껴진다. 하지만 한권의 소설이 탄생하기까지, 소설가가 소설을 써내려가기위해선 산고의 고통처럼 엄청난 정신적, 육체적 고통과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러한 가운데 한 소설가가 이번엔 소설이 아니라 여행을 떠난 이야기를 <소설가의 여행법>에서 들려주어 서둘러 책을 읽기 시작했다. 소설가가 여행을 한다면 도대체 어디를 갈까? 일반 사람들이랑은 다르게 특별한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는지 내가 생각했던 내용과는 다른 내용이어서 약간은 실망하긴 했지만, 소설 속의 배경으로 쓰였던 곳들을 직접 여행하면서 소설 속 이야기와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써내려갔다는 점에서 참신하고도 역시 소설가는 뭔가 다르긴 다르구나 하는, 약간의 충격을 받기도 했다. 말 그대로 소설 속을 걷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소설을 쓸 때와는 또 다른 매력을 느끼게 했달까? 이처럼 특별한 공간 속에서 그녀는 더욱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특히 폴 오스터의 <보이지 않는>의 배경이었던 맨해튼과 브루클린에서 직접 주인공이 되어보기도 했고, 그런 이야기가 탄생하기까지 폴 오스터라는 작가의 환경과 생각에 대해 관심을 가져 책을 읽는 동안 더욱 몰입도를 높여주었던 것 같다(음울하면서도 우울한 분위기가 특히 마음을 울렸다). 그 뿐만 아니라, <순수 박물관>을 썼던 오르한 파묵, <위대한 개츠비>의 F. 스콧 피츠제럴드, <고령화 가족>의 천명관,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의 박민규 등등..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전이나 최근에 나왔던 소설까지 섭렵하며 속속들이 소설 속의 장소들을 여행한 그녀가 이제는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소설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이 느껴지기까지 하다. 나도 앞으로 여행을 하게 된다면, 그녀처럼 내가 사랑한 소설 속 그 장소로 꼭 떠나보고 싶다^ㅁ^ |